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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베푼 기억이 거의 없다. 세상살이가 제각각인 시대를 탓하며 어느 누구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고 살아가지만,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일까... 참 많이도 세상 신세를 지고 살고 있다. 보답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고마움의 마음도 전하지 않은 채 그냥 주니깐 받는 몰염치에도 불구하고 착하고 너그럽고 마음 넉넉한 분들과의 인연이 늘 이어지니 바로 그분들은 물론이고 하늘에도 감사를 드려야할 것 같다.

어제는 마을 한가운데 공사장에 예취기를 들고 날품팔이를 갔다. 건물과 주차장 등이 들어 설 1,500여평의 밭에 풀을 베는 작업중에 택배사에서 전화가 왔다. 택배가 올만한게 없는데 뭔지 궁금했는데 예취기를 끄고 받아든 택배는 다름아닌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같은 농번기가 되면 일고싶은 책은 한권두권 사 모으는데 별로 읽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니 읽어야 될 책들이 밀린 숙제 처럼 계속 쌓여간다.  그래도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겨울 농한기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박스를 뜯고 책을 꺼냈다.  얼마전 국정원의 불법사찰로 고통받았던 박원순 변호사의 [마을이 학교다]와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그리고 구도완의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사실 내게 필요한 책이면서도 또 너무 낯익어 돈을 주고 사기에는 좀 망설여지던 책들이다. 아마 익숙한 것들을 저평가하는 비합리적 습성때문일 것이지만 나는 교훈적이거나  정서적인 내용을 담을 책들을 잘 사지 않게 된다. 아마도 책이 가르키는 데로 살 자신이 없고, 또 책은 풋풋한 삶의 향기보다 뭐 대단한 진리라도 담고 있어야된다는 강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문한 적이 없었지만 내손에 들린 책을 한참들여다 보며 도대체 누가 보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지인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포장 박스를 이리지러 다시 살폈다. 결국 인터넷 서점에서 직접 보낸 책이다보니 주문자 이름이 나와있었다. 책을 선물로 보내주신 분을 확인하고선 고맙고 기쁜 마음 한편으로 부담스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일어났다. 왜 그분은 내게 이런 책들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니 선물이 아니라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비나리 마을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산지 벌써 십수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작목반을 만들고 없애고, 가입하고 탈퇴하고, 팜스태이사업, 녹색체험마을 사업, 정보화마을 사업, 마을종합개발사업도 추진하고 그리고 마을 공부방과 청량산문화연구회 등 이런 저런 임의 단체를 만들거나 가입한 것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마을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마을로 되어가길 그리고 영원히 사람 사는 마을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도한 것들이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다. 내용없이 액션만 큰 셈이다. 사람은 쉬 지쳐가고  성과는 더디 타나는게 마을사업의 이치기도 하고 또 나 자신의 무능력과 불성실 때문이기도 하다. 참 멀리 온것 같지만 되돌아 보면 그자리다.  

책을 보내주신 을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나를 독려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
"힘내세요. 아직 포기할 땐 아닙니다." 
사실 맞는 말이다. 마을은 쉬 변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을은 학교다.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을은 오래 익은 술처럼 깊은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보물창고다. 그래서 마을에서 '희망' 만날 수 있다.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그분'께 고마운 마을을 전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기분좋은 선물인 책을 보내주신 그 분은 젊지만 가진 것 별로 없어 보이는  경북의 한 작은 지자체의 말단 공무원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도정에서 늘 가까이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다짐하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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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가 내렸던 지난 토요일 저녁, 경북 봉화군 명호면 소재지 면사무소 건너 편 농협경제사무소 마당에서 작은 규모지만 큰 의미가 있는 [밭두렁공부방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하루종일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이번 음악회를 준비해 온 밭두렁 공부방 학부모들께선 행사가 비로 무산될까 하루종일 걱정해야했습니다. 무대는 어쩔 수 없이 천막으로 덮었고, 관객석도 비를 피할 수 있는 농협 물류창고옆 상하차 작업장에 마련했습니다. 리허설중인 오후 내내 내리던 비가 다행히 행사가 시작되면서 기적같이 그치고 마당 가득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채우며 작은 음악회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회는 먼저 봉화주민인 청초이순섭 화백의 개막 퍼포먼스로 시작되었습니다. 청초님께서 대형 광목에 큰 붓으로 용을 그리고  '이나리강에 용나다'라는 글귀를 쓰주셨습니다. 이나리강은 명호 아이들이 뛰어놀고 자라나는 삶의 터전입니다. 그 강에서 이 아이들 하나하나가 바로 '용'으로 자라나길 기원하는  청초 이순섭선생의 마음을 표현한 글귀였습니다. '용'이 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고 출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가꾸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명의 인간으로 자라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농촌에 살고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라고 주눅즐지 않고  당당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기원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은 글귀입니다.



이어서 [나무피리 요술피리]라는 음악공원을 가꾸고 계신 이웃 법전면의 조성용선생님께서 직접 만든 악기를 소개도 하고 연주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연주체험도 하는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날 행사의 백미인 밭두렁공부방아이들의 태권체조와 노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산골이 좋아 비나리에 정착한지 일년도 되지않는 전직 태권도 도장 관장님이 지도한  공부방아이들의 이날 공연은 태궈도를 배우기 시작한지  한달여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치 씩씩하고 멋있었습니다. 이어서 공부방을 직접 운영하시는 4분의 선생님께서 그동안 지도로 준비한 노래  '과수원길'과 '꼬부랑할머니'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너무나 이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날 작은 음악회의 초정가수는 이지상과 손병휘님입니다.  두분은 주로 거리와 광장에서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호흡을 같이하며 노래를 해 오신 '민중가수'입니다. 두분다 4집까지 앨범도 내고, 이지상님은 성공회대학교 경임교수로도 재직중이십니다. 작은 경비에도 마다않고 농촌마을의 작은 공연을 찾아주신 이지상님은 이번 공연을 기획한 이웃의 친구십니다. 그 인연에 얹혀 우리 마을과 관계가 맺어진 두분과 지속적인 연대가 이어질 수 있었으면 참좋겠습니다.

저녁 9시가 넘어 공연이 끝나고 뒷정리가 시작되면서 공연자를 모시고 먼저 뒷풀이장소로 안내를 했습니다. 늦은 저녁식사와 술을 나누며 가진 뒷풀이 시간을 통해 공연자 여러분들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었고 특히나 이지상님과 손병휘님의 소탈하고 호쾌한 기상에 인간적으로 매료되었습니다. 다음날까지 이러진 개인적인 뒷풀이까지 주말 이틀이 작은 음악회로 가득찼습니다. 




이번에 가진 [밭두렁공부방 작은 음악회]는 특별합니다. 먼저 300만원 가량의 적은 예산으로 진행한 마을 음악회 입니다. 그리고 그돈 마저 주민과 후원인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마련하였습니다.  대구에서 치과를 운영하면서 단지 우리 마을이 좋아 자주 걸음하시는 지인한분이 100만원의 거금을 쾌척했지만 나먼지는 많게는 10만원 작게는 2~3만원의 후원으로 음악회가 열릴 수있었습니다. 공부방의 운영주체가 봉화자활후견기관이긴하지만 이 기관으로부터도 물질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오직 학부모의 정성과 노력으로 아름다운 음악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가수를 초정하기도 했지만 지역의 어린이와 지역 예술인의 공연을 기본 프로그램으로 채웠습니다. 이 음악회를 기획한 것도 마을주민이고, 행사 진행자도 마을주민의 한사람이었습니다. 면사사무소에서 음료수를 지원받기도 했지만 그것이 관공서로부터 받은 지원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민중가수인 이지상님과 손병휘님이 단지 농촌마을주민의 자력으로 여는 음악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소한의 경비만 받고 출현했습니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 지역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활력을 되찾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제일좋았습니다. 학부모와 청년들이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의자를 나르고, 관객을 안내하고, 음료수와 떡을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지역의 작은 행사 하나하나가 지역의 생기를 북돋고 지역주민에게 자긍심과 애향심을 불러일으키고 지역 사회에 대한 사랑과 애착을 키워나간다면 우리 지역사회의 미래는 밝기만합니다. 작은 음악회를 통해 지역주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신 관계자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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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비나리마을에 정착한 뒤 낯설은 마을과 농사일에 적응해나가면서 다른 한편 수원과 서울을 마다않고 새로운 영농기술을 배우기위해 농업기술관련 교육을 찾아 다녔다. 어떤 작목을 할까 마음정하지도 못하고 결행한 농촌살이를 해쳐나가기위해 사과나 버섯같은 작목관련 교육을 물론 친환경농업이나 농업경영 관련한 강좌도 나름대로 열심히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교육비나 교통비의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열심히 교육에 임했다.  나중에 수강생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대부분의 교육참가자들이 농협이나 자치단체의 교육출장비 지원을 받고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 역시 관공서에 교육비 지원을 문의해 본 적도 있었다.

그뒤 정부지원의 다양한 마을사업을 진행하게되면서 수도없이 많은 농업 농촌관련 교육을 다니게 되었다. 나름대로 전국의 유명한 성공사례가 되는 마을들은 대부분 몇번씩 다녀오게 되었고, 농촌관광이나 도농교류사업 그리고 농경영관련 교육을 포함해 다양한 리더쉽 양성이나 마을공동체 갈등해소방안 관련한 교육까지 안 받아본 교욱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떤 강사의 특정강좌는 이런저런 교육에서 몇번씩이나 수강하기도 해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끼리 '누구누구의 무슨무슨 강좌는 이미 다 외운다'고 우스개소리를 할 정도가 되었다.



지난주에는 경기도 이천 부래미마을에서 '명소'라는 농촌사업관련 컨설팅업체가 주관하는 영농조합법인 운영실무 교육을 다녀왔다. 일정중에 그 마을의 지도자의 한분과 마주쳐 인사를 나누다가 그분으로부터 악의없는 일침을 받았다. '아직도 교육받으러 다니세요?' 굳이 그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농번기에 그것도 2박3일간 진행되는 교육을 다녀오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교육을 다니는가? 이것이 나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교육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농업관련 교육의 현장에서 그와같은 교육의 취지가 얼마나 실현되고 관철되고 있을까? 등등

사실 농촌마을 사업은 대부분의 경우 특정마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 일부 언론에서 '한마을에 수십억 짜리 사업 중복 지원'등의 선정적인 타이틀을 단 기사가 속출했던 적이 있다. 이들 기사가 농촌마을사업의 낭비적인 관행을 혁파하고 바람직한  행태를 모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농업정책을 무력화시키고 농업 농촌에 정부예산이 투여되는 것 자체에 반감을 가진 친자본적 입장을 관철하기위해 제기된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와같은 비난을 자초한 원인을 농정의 관료적 행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같은 입장의 연장선에서 농업 농촌관련 교육의 난맥상을 짙어볼 수 있고, 그 점은 바로 나 자신이 왜 불필요한 교육에 반복적으로 참가하게 되는가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내가 사는 마을은 농협 주관의 팜스테이마을이다. 또한 팜스태이마을과 동일한 내용의 당시 농림부 주관의 '녹색농촌체험마을'이기도 하다. 이들 사업관련한 예산 지원은 2억을 넘지 않았고 도농교류 관련한 시설투자와 컨설팅 등에 소요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행자부주관의 정보화마을에 선정되면서 7개리 124명의 주민이 PC를 지원받고, 관련 교육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3년전 정보화마을을 이루고 있는 7개리가 단일 권역으로 해서 총예산 69억원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선정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동일 마을에 4개의 사업이 중복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마을 주민의 눈으로 볼때 팜스태이와 녹색체험마을의 사업 내용만 겹칠뿐 정보와마을 사업이나 종합개발사업의 취지와 성격은 일부 겹치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정보화마을 사업은 농산물직거래나 농촌체험객 유치가 사업의 주목적으로 잘못 정립되어 있지만 사실은 '농촌지역의 정보격차 해소'가 가장 중심적인 사업의 목적이라고 본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농촌공동체의 붕괴가 급속히 진행되는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있는 지역을 선정하여 몇개단위의 리를 한 권역으로 묶어 권역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을 찾아 실행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는 마을의 주민이다보니 각각의 사업마다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비슷한 강좌라도 마을지도자 교육, 마을주민교육, 기초과정 심화과정, 특성화과정 등에 따라 차이가 있고, 각 사업의 성격에 따라 또 조금의 차이가 있다보니 한 사업단위당 일년에 최소 두세번의 교육에 참가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요구되는 교육에 대부분 참가하고나서 연말에 정리해보니 1년간 교육받은 날짜가 무려 30일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일단은 농업인도 지속적으로 영농 기술에 등의 변화에 따른 필요한 다양한 내용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그 기회가 넓혀진 것은 무조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와같이 농업인 교육의 문호를 넓혀나가는 과정에서 몇가지 이유로 바람직한 흐름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먼저 마을의 현실에서 농업인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흔쾌히 참가할 수 있는 주민이 거의 없다. 그것은 그간의 부실한 교육내용의 문제이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탐구하는 자세로 농사를 지을 이유를 찾지 못한 농업인의 책임도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을사업을 주도하는 몇몇 주민이 중복적으로 교육에 참가하게 된다. 주민의 교육 참가가 마을사업에 대한 평가에 반영되다보니 꼭 필요한 교육이 아니더라도 마을주민중에 누구라도 참가하는 것이 좋고, 결국은 마을사업을 주도적으로 하는 소수의 주민이 반복적으로 교육에 참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피교육자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에 종속되어 농번기에도 교육에 불려나가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또한 근년에 들어 이런저런 농촌관련 교육 컨설팅 업체가 우후죽순 처럼 생겨났다. 그리고 대학의 농촌관련 학과에 적을 둔 교수들이 사회기여나 성과를 중시하는 분위기를 타고 대거 마을사업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들중 몇몇은 농업관련 정책 입안에 관여되 있기도 하다보니 그들의 '밥그릇'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된다. 마을사업에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중시되는 분위기는 그렇게 나타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역시 바람직한 측면이 크지만 농업인 교육이나 마을 컨설팅 등이 이권화되면서 교육과잉과 부실교육의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새로운 사업을 선정받아 진행하려는 마을은 마을사업관련한 심사원이기도 한 교수의 강의에 무조건 많은 인원이 참가해야된다는 심적 압력을 받는다. 교육 내용이나 필요성과 무관하게 참가하게 되는 교육에서 주민들이 배우는 것은 없다.

농업인 교육관련하여 교육과잉과 낭비의 관행은 물론 뿌리깊다. 보통 년초가 되면  지자체의 농업기술센타 주관으로 영농기술교육이 군단위나 면단위로 진행된다. 고추나 수박 등을 비롯해 지역의 대표작목 중심으로 진행되는 새해 영농기술교육에는 비교적 많은 수의 주민이 참가하게된다. 하지만 이 역시 리당 몇명의 할당과 점심제공이라는 유인이 작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역시 농민들이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는 부실한 교육 제공자와 불성실한 피교육자 모두의 문제로 보인다.
 
상황이 그렇다면 개인의 바람직한 선택은 명확하다. 먼저 자신의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 교육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로 교육을 마다하는 주민을 최대한 설득하여 주민들이 고루 교육에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지만 간단한 처방을 실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이 마을 사업의 성패, 농업인 자신의 존립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성과있는 교육에 참가하고, 교육을 통해 농업농촌의 새로운 비젼을 찾아나가는 일은 결코 멈출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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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것 같지 않던 봄농사가 오늘로 드디어 끝났습니다. 올봄 사과 농사 2,000여평을 새로 시작하면서 일손이 밀리기 시작했지만 사실 봄농번기에 4번의 행사에 무려 12일이나 봉화군 홍보 행사에 미술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위한 출장을 다녀오는 등 외유를 하다보니 일손을 놓치지 않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멀리 진해에서 동생까지 불러올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마다않고 밀어붙인 덕분에
오늘 팥과 기장, 수수 파종을 마치고,
집텃밭에 파모종까지 정식을 하고나니 이제사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온것 같습니다.
게으른 농사꾼이 이제사 봄농사를 끝냈지만 
그래도 큰 강을 건넌듯 뿌듯하고 흐뭇합니다.



항상 한해 농사를 마치고 나면
'내년에는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지' 혹은
'내년에는 이러지 말아야지'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저가 매년 하는 다짐 중의 하나가 '내년에는 일손을 놓치지 말자'입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새 농사가 시작되면 이내 일에 쫒기기 시작하고
결국 손을 놓쳐 밭의 일부를 묵히곤합니다.
그래서 새로 하게된 다짐이 '농사를 추스릴 수 있을 만치만 벌이자' 입니다.



그렇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꼭 봄이면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다 그렇겠지만
무엇이라도 해 낼 것 같고,
다 잘 될 것 같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4월이 지나면 점점 불안해 지기 시작하고
5월이면 이미 작기를 놓치기 시작해서
6월이면 이미 수습이 불가능해서 손을 놓는 작목이 생겨납니다.

예년에 비해서 올해는 그래도 일손을 따라잡아 아직까지는 손을 놓은 작목은 없습니다.
면적은 많지 않지만 감자, 고구마, 고추는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바이러스로 수확을 전혀 못했던 감자도 잘 자라고 있고,
500여평을 심은 고추도 현재까지는 진디물도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니다.

고구마도 미리 심은 놈은 활착이 되어 줄기가 뻣기 시작했고,
야콘, 땅콩, 속청은 모종을 해서 본밭에 정식을 잘 마쳤고,
팥, 쥐눈이콩, 수수, 기장 등은 이제야 파종을 마쳤습니다.
돈이 될만한 농사는 없지만 그래도 작목은 가지가지 골고루 심은 올해 농사가
한여름 퇴얔볕아래 무럭무럭 자라, 모진 비바람과 병해충을 다 이기고
풍성한 결실을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 

게으른 비나리농부는 오늘부터 풍요롭고 행복한 가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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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은 쉬 끝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지만 찾아오는 절기는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5월5일 단오입니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다는 단오는 멀리 마한 시절부터 파종을 끝내고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며 음주가무를 즐기던 풍습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마을 비나리는 단오라고해서 별다른 풍습이 남아있는게 없습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단오날은 돈을 모아서라도 나들이를 가십니다. 그런데 마을분들이 어디 놀러가시게 되면 꼭 울진 바닷가로 나가십니다.


산속마을에 살다보니 항상 바다가 보고싶으신가 봅니다..
가까이에 소백산도 있고, 주왕산도 있고 태백산도 있지만
산은 다 마다하고 몇년전부터 매년 두어번은 놀러갔었을 울진을 고집하십니다.
바다도 싣컷보시고, 무엇보다 산골사람에게는 귀한 진미인 생선회를 드십니다. 
저도 두어해 따라나섰지만 관광버스에 오르자마자 술을 권하고 가무(!)를 요구하시는 놀이문화에 결국 적응을 못하고 지금은 가능하면 설설 피하고 맙니다^^*


오늘 아침  나들이에 나서시는 동네분들의 분주한 발걸음에 잠을 깨고
사람의 발길이 더물어져 정적이 감도는 마을에 남아 늦은 농사일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열흘전부터 고향 진해에서 올라와 농사일을 돕고 있는 동생과 고추밭골에 풀을 뽑고는 다시 풀이 나지 못하도록 비닐로 멀칭을 하는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작업중에 동생의 한마디에 오늘 오후 일정을 바꾸었습니다.
'형집에 와서 일만하고 낚시도 같이 한번 못하고 가야되네.'라고 하는 동생 말에
콩밭 멀칭 작업을 뒤로 미루고 마을앞 낙동강에 낚시를 가기로 마을먹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낚시를 한대씩 들고 강으로 나갔습니다.
꺽지낚시를 즐기는 동생의 조언과 도움으로 작년에 이어 평생에 두번째로 꺽지 낚시에 나섰습니다. 꺽지 낚시는 '루어낚시'의 일종으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물과 산과 하늘을 바라다보고 상념에 빠질 수 있는 그런 낚시가 아니었습니다.
끊이없이 낚시를 던지고 줄을 감고, 또 던지고 다시 감고... 그리고 입질이 없으면 강을 따라 장소를 옮겨가며 낚시를 해야되는 부지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낚시였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동생을 따라 꺽지 낚시를 갔다가 스피너라고 하는 낚시 바늘과 가짜미끼가 달려있는 뭉치만 서너개 잃어버리고 꺽지는 한마리도 구경도 못했습니다.


오늘도 대단한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강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래도 왠지 작년과는 다른 예감이 들었습니다. 호기롭게 동생한테 '오늘 내가 꺽지를 먼저 잡을 것 같다' 고 큰소리마저 쳤습니다. 두어개의 스피너를 잃어버리고 서너번 장소를 옮긴 뒤에 낚시를 시작한지 거의 1시간만에 오늘의 첫 꺽지를 건졌습니다. 이 놈은 오늘 낚시의 첫 꺽지이기도 하지만 저 일생의 첫 꺽지이기도 합니다. 


다시 30여분 뒤 드디어 동생 낚시대에 대물 한마리가 걸렸습니다.
억지로 줄을 감고 물밖으로 건져 올린 고기는 역시 꺽지지만 아까의 꺽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물이었습니다. 너무 신이나 연신 사진기를 들이대고 오늘 하루 더 이상의 낚시는 필요가 없게 되어 낚시를 접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낚시는 하는 다른 낚시꾼에게 다가가서 괜히 물어보지도 않은 오늘 작항을 자랑하고 대물 꺽지를 바구니에서 건져올려 구경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를 찾아 오늘 잡은 대물 꺽지의 길이를 재어보았습니다.
무려 27.5cm!


동생이 찾아본 바로는 국내 꺽지 낚시 최고 기록이 31.5cm라고 하니 오늘 잡은 꺽지가 얼마나 큰놈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민물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그런 큰 꺽지는 일생에 몇번 잡기가 힘들 정도라니 오늘 하루 농사일을 뒤로 미루고 낚시를 나섰던 보람이 있었습니다.

망중한이라고 바쁜 중에 억지로 만든 오늘 오후의 여유는 또다시 몇달이 지나야 볼 수 있는 동생과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흐르는 물, 파란 하늘, 그리고 산... 그 속에서 동생과 보낸 오늘 하루 오후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저를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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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은 환경적 재앙을 넘어 사회문화적 재앙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는 신성과 왕권의 완전한 결합을 나타내는 절대 권력의 상징물이었다. 진시황은 중국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황제의 권능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자금성을 짓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유사 이래로 이렇게 대규모 토목공사는 인간의 물질적 생활상의 필요성에서 뿐 아니라 지배자의 권능을 과시하고 강화하는 상징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루어져 왔다. 근대사회에 들어와 토목건축 기술 등이 폭발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마천루와 도로 등이 근대화, 문명화의 상징으로 지배 권력의 권능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등장했다. '댐'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토목공사 역시 현대 과학기술의 총화로 인간의 물질적 요구와 더불어 '문명화'의 상징이 필요한 곳에서 이루어져 지배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하나의 액세서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규모 토목 건축물은 '우리 같은 후진 사회에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이렇게 대단한 진보를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적 선전탑 노릇을 한 것이다. 히틀러가 그랬고, 스탈린이 그랬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개발독재자인 박정희가 그랬다. 자연을 '미개'로 폄하하고, 무조건적인 개발을 근대화, 문명화로 신봉하던 서구의 도구적 합리성이 독재자 박정희를 만나 한국식 개발독재로 자행되었던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도는지 21세기 한국에 다시 개발독재의 바람이 분다. 이른바 '사대강 죽이기 사업'으로 대표되는 MB표 개발 독재는 국토의 대동맥마다 포클레인을 들이대고 콘크리트로 쳐 바르고 있다. 강은 인공적 수로가 되고, 물은 자연스런 흐름을 잃고 '합리화'되어 토막토막 잘리어 보에 막히고 댐에 갇히고 있다. 그런데 사대강 삽질은 사대강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활한 개발독재의 망령에 고무되어 토건자본이 설쳐 되기 시작했다. 봉화 운곡천에 산업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시도하는가 하면, 지역주민의 반대와 댐의 효율성의 문제 등으로 보류되었던 '송리원댐'이 MB표 개박독재를 만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운곡천 산업폐기장은 주민들의 결사반대로 다행히 저지되었지만, 영주댐은 ‘댐 건설’이 가져올 효과에 대한 개발주의의 환상에 빠진 지역주민의 무관심속에서 일사천리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영주의 경계 안에 세워지는 댐은 당연히 영주의 지역성을 드러내어야 한다며 '영주댐'이라는 명칭으로 개명까지 할만치 토건세력은 의기양양 하다. 지역의 경계 안에 개발의 상징인 댐이 건설된다는데 대해 지자체가 갖는 얼토당토않은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과연 영주댐이 영주시민의 자랑일 수 있을까? 과연 영주댐이 영주 지역사회에 어떤 측면에서든 긍정적인 물질적 효용을 가져다줄까?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댐으로 이집트 나일 강의 에스원 댐이 있다. 에스원 댐은 1960년에서 1970년에 걸쳐 건설된 댐의 용량은 세계 제2위인 1690억 톤에 이른다. 에스원 댐은 이집트 현대화와 개발의 상징물로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이집트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조차 했다. 하지만 댐 건설 후에 댐 유역 주민들 사이에 수질계통의 감염증이 급격히 증가하고, 주흡혈충증(住吸血蟲症)이 만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홍수로 쓸려나가던 염분이 출구를 잃어 관개 농지 35%가 염해를 입고, 나일 강이 운반해내던 연간 1억 톤의 비옥한 토양이 줄어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피해는 이렇게 육지서만 일어난 것도 아니다. 나일 강 인근의 해안은 침식되어 지중해 연안에서 연간 1만 8천 톤이던 정어리 어획량이 고작 5천 톤으로 감소되기도 했다. 이렇게 아프리카 개발과 산업화의 상징인 에스원 댐은 이제 무분별한 수자원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의 대표적 사례가 되어버렸다.

최근에 중국은 양쯔강에 샨샤댐을 건설했다. 샨샤댐은 댐의 길이가 2309m, 높이가 185m, 제방 두께가 15m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댐에 물이차면 우리나라 소양댐 저수량의 13배가 넘는, 무려 4백억 톤 규모의 거대한 인공호수가 형성되게 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인공 댐을 건설하는데 있어 MB의 사대강 사업과는 비교되지 않은 만치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와 절차를 밟았다. 샨샤댐은 1918년 쑨원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30년대 국민당 정부에 의해 전문가들이 초빙되어 검토에 들어가고, 몇 번의 중단과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1984년에야 댐 건설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전국의 전문가들이 모여 수년간에 걸쳐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측면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심도 깊은 토론의 과정을 거친 후 비로서 1988년에야 최종결론을 도출했다고 한다. 이후 2006년 완공되었으니 샨샤댐 건설에 무려 10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샨샤댐은 가장 최근의 인공적 환경재앙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일단 댐 건설로 120만 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이주해야만 했고, 중국의 주요한 역사 유물이 엄청나게 수몰되었다. 그리고 무려400억 톤에 달하는 댐의 저수량은 지구지표의 특정지점에 국부적인 압력을 가하게 되고 이는 지압의 변동을 초래하여 지진을 일으키고 나아가 지구의 자전축의 변화까지 초래할 정도라고 한다. 최근 중국에 빈발하는 지진과 이로 인한 막대한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는 바로 샨샤댐의 건설과 무관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학자와 단체가 늘어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황해의 유입수량이 줄어들어 바다의 염도가 올라가 바다식생이 변화하고 있고, 샨샤 지역의 기온이 상승하여 고비사막 등 만주벌에 증기 공급이 막혀 황사발생이 증가하고 있다. 샨샤댐이 완공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숱한 환경피해가 발행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재앙이 닥치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댐 찬성론자들은 댐을 통해 물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댐을 통해 수해도 조절하고, 덤으로 댐 주변을 관광지화 해서 지역사회의 경제를 윤택하게 하고, 댐 자체의 근무 인력으로 일자리가 증가하는 등의 긍정적 효과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영주댐 건설을 옹호하고 있다. 또한 영주댐 같은 중규모 댐은 샨샤댐 같은 대규모 댐이 초래하는 환경재앙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사실 일부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는 하다.

영주댐은 2009년 7월에 착공하여 2014년에 완공예정이다. 총 예산 8380억 원을 들여 댐 길이 380m에 높이 50m, 그리고 저수량은 1억8100만 톤이 될 예정이란다. 인근 안동댐에 비해 1/7에 불과한 영주댐은 연간 2억 톤의 용수를 확보하여 92%를 하천유지 용수로 흘러 보내고, 1000만 톤을 생활용수, 공업용수 영주 등 인근 도시에 공급할 예정으로 그 과정에서 연 약 16Gwh의 전기도 생산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긍정적 효과는 미미하고 그 부작용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벌써 영주댐 수몰 예정지는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등져야 할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댐의 수위가 올라옴에 따라 총 511가구가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나가야 한다. 물론 금전적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어쩌면 그 지긋지긋한 농사를 때려치울 수 있어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수몰 예정지의 땅은 이미 많은 면적이 땅 투기 꾼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고 수몰 농민의 80%가량이 소작농이다. 보상비라는 돈을 움켜지는 사람과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니다.

댐건설로 지역에 가져올 경제적 효과도 명확하지 않다. 일단 수몰예정지의 마을공동체가 파괴되고 주민들이 떠나고 나면 그만치 지역의 인구는 감소한다. 인구가 감소하는 만치 지역경제가 입는 손실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토목공사를 통해 지역경제가 입는 효과는 얼마나 될까? 이것 역시 미지수다. 건설기간 내에 일시적으로 일정한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지만 이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고, 건설 후 댐 관리 인원만치 일자리가 생겨나게 되지만 댐 건설로 인한 피해에 견준다면 미미하기 이를 데 없다. 댐 인근 지역 농지에 주는 피해는 산정하기도 쉽지 않을 만치 심각하다. 영주댐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에서 추정하는 예상 피해액은 연 1,000억 원 이상이다. 그 정도의 피해를 상쇄하고 남을 만치 영주댐건설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가 클까? 시민은 지방권력과 토건세력들이 제시하는 자기들만의 셈법을 믿을 수 없다.

이미 영주댐 공사는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정확이 공정의 몇%가 진행되었는지 모르지만 댐 건설지 일대의 강과 산을 포클레인으로 전부 파헤쳐놓았고 마을은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MB식 밀어붙이기가 가져올 환경재앙이 공포스럽다. 댐 찬성론자들은 댐의 규모가 작아 환경영향이 미미한 것처럼 호도하지만 댐이 크면 큰 대로, 댐이 작으면 작은 대로 환경변화는 피할 수 없고 그로 인한 재앙은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다.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소수력댐인 [명호댐]은 규모면에서 얼마 되지 않지만 댐건설이후 명호 이나리강의 수질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지역주민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투명하던 강바닥에 청태가 끼고 한 번씩 댐이 방류라도 하면 흙탕물이 강 전체를 뒤덮는다. 당연히 강에 서식하던 각종 민물고기 등의 식생도 엄청나게 바뀌었고 댐 유역을 중심으로 안개가 빈발하여 교통장애와 농작물피해가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 조류가 댐건설에서 댐 해체와 원상복구로 바뀌어가는 시점에 이루어지는 영주댐 건설은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임에도 불구하고 지방권력이 강행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영주댐 건설은 MB식 사대강사업과 동일선상에서 환경적 재앙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사대강 사업과 영주댐 건설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문화적 풍토는 또한 결과적으로 다시 그와 같은 풍토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영주댐 건설을 백지화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시민들은 영주댐이 가져올 환경재앙을 넘어 그와 같은 사회문화적 재앙에 주목한다.

먼저 영주댐 사업의 시행과정에서 드러나는 개발독재의 망령이다. 수몰지구 문화재의 현상변경 절차를 무시하거나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하는 등 불법과 탈법적 방법을 총동원해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개발독재자가 되어가는 지방권력의 추악한 모습을 본다. 영주댐건설 같은 주요한 사안에 대한 지역민의 민의는 철저히 무시되고, 지방권력은 독재자의 범죄행위에 가까운 행태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하고 철저히 토건자본에 봉사하기 위해 자행되는 국토 유린은 지방권력의 배후에 있는 박정희와 히틀러의 모습을 드러내준다. 유사 이래 한반도 최대의 환경재앙이 될 사대강 사업에 기대어 지역의 작은 개발독재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지방권력은 ‘댐’을 통해 또 다른 권력을 탐한다.

그와 같은 연장선에서 숫자는 중앙에 종속된 지방권력들이 항상 빠지는 함정이다. '몇 천억 짜리 무슨 무슨 사업 유치' 등을 내세우며 지역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 양 떠벌리는 지자체장은 도대체 그렇게 따온 예산이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않는다. 8000억을 들여 영주댐을 만들 때 가져올 긍부정적 효과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거나 기회비용의 측면은 고려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예산 따오기에 목을 매고, 외적 실적 위주로 행정을 집행한다. 중앙권력에 기생하는 지역의 식민권력자들에 의해 과대포장 되는 그 돈으로 지역민의 복지를 강화하고, 지역 농업, 농민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지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할 문화 복지에 사용한다면 백보 양보해도 댐으로 인해 지역사회가 얻을 긍정적 효과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영주댐은 영주를 살리고 영주경제를 윤택하게 하는 사업이 아니다. 영주댐은 경제적 환경적 재앙은 물론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정신문화적 풍토까지 해치는 재난이다. 하지만 이미 권력은 온갖 절차적 과정을 무시하고 강산을 파헤쳐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가름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영주댐 건설 반대운동은 지역의 환경을 지키는 운동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산하고 주민을 조직하는 과정이고, 일정한 시기에 국한된 특정사업에 대한 반대운동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인 지역사회의 변화에 기여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영주댐 건설 반대운동은 자연과 환경, 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가치를 확산하고, 주민의 권익과 생존권을 지켜나가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고 고양되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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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비나리마을도 선거철은 선거철인가보다. 이런저런 후보들과 선거 운동원들이 뻔질나게 마을을 들락거리고 한번씩은 요란스런 음악소리와 함께 선거홍보방송차량이 마을을 휘젖고 지나가기도 한다. 각 후보쪽 사람들은 안그래도 일손 바쁜 주민을 마주치기만 하면 냅다 달려와 허리를 90도로 꺽어 인사를 하고,  자기를 자기 후보를 찍어달라고 애걸복걸이다. 설거철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일반 군민이 정치인들로부터 이렇게 대접받고, 군민과 정치인이 이토록 가깝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 좋게보면 선거철이나마 정치지망생들이 그런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만도 우리사회가 그만치 민주화가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선거가 정치인과 주민이 대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만 기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라나 어쩐다나. 뭐 그럴 수 있다. 당선과 낙선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고, 낙선은 죽기보다도 싫을 것이라 짐작이 간다. 그런데 문제가 선거과열이 아니다. 후보자들끼리 과열선거지 유권자는 무관심하다못해 냉담하기 까지한 것이 더 큰 문제다. 내가 살고 있는 경북 봉화같은 곳은 특정정당이 독식하는 구조가 갖춰진지 오래고 타당후보가 발붙일 틈조차 없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런 선거쟁점도 없고, 오직 당선가능성과 후보자 와 유권자 개인의 연고성을 내세우는 선거홍보가 선거운동의 전부이다. 지난 군수선거나 농협조합장선거가 돈선거로 얼룩져 지역사회에 끝 파란을 몰고왔었는데 이번 선거는 그렇지 않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없는 상활이다.



봉화같은 작은 지자체의 선거는 도시의 선거와는 좀 많이 다르다. 군의원을 뽑는 지역구는 인구 만여명에 불과하다. 군전체 인구는 3만5천여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지자체에서는 사실 조금이라도 외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속속들이 다 알고 지낸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래서 선거운동은 지역인심을 사납게 하고, 승패의 휴유증이 다음 선거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선거라는 게 유권자 입장에서도 참으로 곤혹스럽다. 이래저래 다 아는 처지에 계속되는 지지부탁과 지원요청을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것도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도시에 있는 이런저런 관변단체는 기본이고 농촌에만 있는 단체들도 하나둘이 아니다. 농촌지도자회, 농업경영인회, 농민회, 인구 2천명조금넘는 면내에만 이런저런 단체가 열댓개가 넘으니, 친목회나 동갑계 등을 합치만 거의 50여개는 족히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적게는 서너개, 많게는 일이십개 단체에 가입되어 있고, 특히 정치 지망생들은 발이 닿는 모든 단체에 가입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이래저래 후보자와의 연고에서 자유스런 유권자는 한명도 없다. 보다 넓을 그물을 치고, 거미줄같이 얽히고 설킨 연고성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자가 선거의 승자가 된다. 어떤 정책도, 정치적 입장도 사실 관건이 아니다. 정치지망생의 도덕성, 인품, 업무능력은 다 하위 조건이다. 그러다보니, 혈연, 학연, 기타 연고성을 타고 돈이 돌고, 여론이 돌고, 당락이 결정된다. 그런데 바로 그 '연고주의'가 지역정치를 망치는 주범이다. 

지역정치를 망치는 '연고주의'의 생명력이 왜 그렇게도 끈질긴 것일까? 아직 '현대적 개인'으로 분화되지 못한 지역적 특수성도 한 이유가 될 것이고,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개인의 삶이 나름대로 그 연고성 속에서 보장받아 온 오랜 세월의 경험이 또 다른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 연고성의 그물이 부재한 사회적 안전망을 대신해 개인의 삶을 보전하는데 하나의 안전망으로 역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유권자들의 의식이 연고성으로 부터 탈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고성을 대체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회적 안전망이 만들어져야하고, 집단에 귀속된 개인에서 독립된 현대적 개인성을 찾는 지난한 과정이 요구되기도 한다. 지금 당장 그와같은 연고주의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사회적 진보를 그리고 개인적 성숙을 준비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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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후딱 지나가길 학수고대했던

비나리 5월도 어느새 다 끝나갑니다.

아직 콩 파종이며, 수수 같은 여러가지 잡곡 파종도 남아있고,

더러는 고구마며 야콘도 더 심으셔야히지만

그럭저럭 한해 봄 농사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감자는 벌써 꽃이 맺히고 알이들려고 하고,

고추며 수박은 살음을 끝내고 힘차게 새순을 밀어내고 있는데,

하늘하늘 어설픈 벼이싹도 뿌리를 내리고 재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봄농사가 무르익어가는 만치 마을 풍광도 바뀌어 왔습니다.

회색 가지끝에 연두빛 새순이 피어나고

삭막했던 밭들도 서서히 정리되고 고추가 심기면서

검정 비닐 밭이랑에 초록빛이 늘어났습니다.

산은 벌써 연두빛이 줄어들고 짙은 검초록빛이 가득합니다.

마당가에 과실나무들도 다 꽃을 떨어뜨리고 잎을 피운지 한참이고

게으르기 짝이없는 대추나무마저 새잎을 피워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겨우내 살도 오르고 한결 깨끗해졌던 농부들의 얼굴은

거친 봄햇살과 봄바람속에서 살도 다 빠지고 검게 타버렸습니다.

부드러워졌던 손마디도 거칠어지고

손바닥에는 쇠가죽같은 굳은살이 늘었습니다.

겨우내 '아야아야'하시며 물리치료 받으려

침맞으려 보건소며 의료원을 들락날락하시던 할머니들도

정신없는 봄농사에 무릅아프시고 허리아프신 줄 잊어버렸습니다.

일로 골병든 몸에 일이 또 제일 좋은 물리치료인가 봅니다.

이제 비나리할머니 할아버지께선 허리를 자주펴고

거친 얼굴 가득 눈웃음머금고 하늘도 보고 먼산도 보시며

도시에 사는 아들 딸이며 손주들 생각도 자주하시지만

그렇다고 여름농사가 거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너른 고추밭에 막대도 바고 줄도 치고,

막자라기 시작한 수박 순도 쳐 줘야하지만

또 장마가 오기전에 밭골에 풀도 잡고

팥이며 녹두며 참깨같이 이제 곧 파종을 시작해야 하는 것들도 줄을 서 있습니다.

농사가 시작되면 첫눈오기전까지는 눈코 뜰새없는 게 어쩔 수 없는 농부의 삶이지만

그래도 그네들의 삶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고 넉넉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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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꿈많은 청년"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이다. 그래서 내리는 비인가 보다. 전날 시작한 비가 하루 온종일 내리고도 못다내린양 밤늦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농사일에 쫒겨 도착한지 일주일 넘어 손에 들지 못했던 책을 펼쳤다. 그는 [운명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깊은 슬픔을 감춘듯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싱긋이 웃어보이며 우리를 떠나갔다. 그가 떠난 자리는 너무도 컸다. 세상은 꺼꾸로 돌기 시작했다. 해는 서쪽에서 뜨고 동쪽으로 졌으며, 낮에 달이 뜨고, 밤에 해가 떴다.
민주주의는 독재자의 전용어가 되었고, 평화는 전쟁을, 환경은 무자비한 토건공사를 의미하게 되었다. 모든 진보적 가치는 좌익뺄갱이의 기만선전술에 불과한 것으로, 복지에 대한 요구는 거지근성으로 치부되었다. 진솔함과 정직함은 무능력의 다른 이름으로 뜻이 바뀌었고, 분권과 자치, 대화와 타협은 사전에서 사라졌다.  

[운명이다]는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간단한 가족사와 어린시절의 추억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자의식의 흔적들을 추적한다. 가난에 대한,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 자라나는 청년 노무현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나고 자라고 살았던 시대,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시대의 흔적들을 만난다. 그는 어떻게 한 평범한 인간이 시대의 격랑속에서 한명의 시민운동가로 정치가로 그리고 마침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살았고 그리고 죽어갔는지 담담히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이야기를, 한명의 정치가가 아니라 한명의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불의에 맞섰고, 어떻게 '사람사는 세상'을 실현하고자 분투했는지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 깊은 슬픔이 묻어난다. 그의 한계가 아니라 시대의 한계를, 그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의 실패를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쉬 끝나지 않고았 낙숫물소리와 함께  신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책을 덮었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나는 오늘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나 아니면 대한문 앞에서 비를 맞고 서 있어야했다. 지인으로 부터 문자가 온다. '혹시 봉하마을에 와 계신가 해서요?' 나는 오늘 집을 나서지 않았다. 하루종일 [운명이다]를 읽고 그의 삶을, 그리고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생각했다. 가슴이 미어진다. 그의 삶과 죽음이, 우리의 삶과 우리시대의 과제가 뒤엉킨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묻고 또 물었다. 



그는 부림사건을 통해 새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긴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었다. 도반이 없어도, 노자가 떨어져도 그는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길의 끝이 모멸과 오욕, 좌절과 실패의 구렁텅이일지라도 그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9년 5월 23일, 지구가 꺼꾸로 돌기 시작하던 날 [운명이다]는 멈춘다. 그의 삶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술수가 정직을, 돈이 사랑을 이기는 세상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삶은 비장하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그는 이웃 형님의 한분같이 소탈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고 그래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그의 죽음은 그만의 죽음이 아니고, 그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었기에! 책을 덮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이야기는 우리의 몫이다. 그가 던지고 간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꿈은 온전히 우리 손아귀에 남아있다. 그리고 삶들은 계속되고 그 꿈은 싹을 피우고 자라날 것이다. 노무현의 자서전은 우리의 자서전이 되고, 우리의 자서전은 완결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한다. 그것은 운명이기 때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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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어제 오전 비나리마을 청년들이 모여

마을길에 접시꽃을 심었습니다.

올봄 일찍 포트에 파종을 하고 접시꽃 모종을 길러 왔습니다.

고추 정식도 끝나고 모종 하우스가 비어가는데, 마지막 남은 접씨꽃 모종 포트를

트럭에 싣고 마을 안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빈터마다 심었습니다.

온 동네가 모내기에 정신이 없었지만 자신의 일을 잠시 뒤로 미룬채

은혜아빠, 와우네, 산이네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이서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을 안길은 마을 주민 모두의 정원입니다.

그렇지만 다들 농사일에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항상 풀만 우거지고 가꿀 틈이 없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마을총회에서 마을안길 꽃길가꾸기에

사용해라고 30만원의 식대를 배정해 주셨습니다.

은혜아빠를 중심으로 청년들이 함께 마을 길을 가꾸어 나가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올해는 우선 접시꽃으로 마을 길을 장식하지만

내년에는 길 둔덕마다 개나리를 심고

노란 국화를 심을 계획도 세웠습니다.

마을 청년들이 같이 마을길을 가꾸면서

서로 마을 일을 걱정하고,

마을의 미래상을 논의해 보는 것은

어쩌면 꽃 몇포기보다 더 가치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마을을 어떤 마을로 만들어나갈 것인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그 공통 분모를 찾아

최소한의 실천을 해 나가는 마을의 미래는 밝기만 합니다.

 

접시꽃이 활짝핀 마을길을 미리 상상해보고

마을의 인심도, 마을의 미래도 접시꽃처럼

넉넉하고 아름다운 세월을 꿈꿔봅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있고,

또 그 가치에 반해 그 삶을 닮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비나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습니다.

세상 모든 마을이 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득 차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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