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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들어가자마자 딸은 호기롭게 외쳤다. 온종일 도서관에서 살면서 엄청나게 독서를 할거고, 친구도 다양하게 많이 사귈거고, 그동안 미룬 기타도 서클에 가입해 열심히 배우고 그리고  아르바이트도 할거라고!! 아빠 입장에서 딸의 다짐들에  대해 처음부터 초칠 수는 없고 '그래야지' '그래 열심히 해봐라'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청춘은 허비하는 와중에 그 소중함이 드러나는 것임을 스스로 체득했던 아빠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딸의 다짐들이 젊은 객기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학기가 흘렀다. 한학기동안 두어번 집에 내려왔고, 그리고 일주일에 두어번씩 전화통화를 했는데 딸은 많은 다짐 중에 두개 정도는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첫째는 기타 써클에 가입해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친구를 많이 사귀는 건지는 몰라도 친구들이랑 열심히 논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혜화동에서 친구들이랑 연극보기로 되어 있다는 둥, 강남에서 식사약속이 있다는 둥 엄마아빠는 영 뒷전이었다. 그렇게 한학기가 흘러가고 드디어 첫 여름방학을 맞아 딸아이는 많은 다짐들 중의 하나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우리나라 아르바이트 처우수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차라리 부모가 좀더 고생을 하더라도 그 시간에 딸아이가 공부나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램을 이야기했다. 대학 등록금은 다른 선진국 수준을 추월하고, 임금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차라리 공부 좀 더 하는게 낮다는 것이 아빠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고집하는 딸아이는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더니. 결국 수원시내의 한 문구점에서 주말 이틀을 일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일자리를 찾은 딸아이에게 축하를 할 겨를 도 없이 두주가 지난뒤 딸아이는 별안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고작 4일 일하고 그만두었냐고 놀렸지만 딸아이는 나름대로 고민도 하고 또 짧은 아르바이트 경험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는가 보다. 먼저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처우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토로했다. 하루 12시간을 가게안에서 손님을 안내하고, 물건을 찾아주고, 돈을 받아 계산을을 하고, 틈틈히 흐트러진 상품진열장을 정리도 하고 하지만 딸아이가 받는 임금은 너무 초라했다. 시급 3500원!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일당 42,000원을 받기에는 억울해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법정 최저임금이 4,110원인 것을 확인한 딸아이가 문구점 주인에게 따지니깐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밥값을 치면 법정 최저임금 이상이 된다며 알바비 인상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딸아이의 첫 아르바이트는 끝이 났다.  

하여튼 딸아이는 처음으로 이 징긍징글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 것이고, 그것도 하루 12시간이라는 장시간 근무를 견뎌야했고, 그 긴 시간을 거의 서서 걸어다니며 손님을 대하는 노동을 한 것이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겪은 딸아이는 나름대로 할말이 많았는지 알바를 그만둔 날 30분을 넘게 엄마랑 통화를 했다. 그리고 와이프가 딸아이랑 통화한 많은 말중에 전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빠의 사랑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는 어쨌다나~~

'먹고사니즘'이 뭔지. 나날이 경쟁을 격화되고, 복지는 개선되지않거나 후퇴하고, 기득권의 탐욕을 갈수록 크지니 이 암담한 현실에서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밤낯으로 공부타령이나 하고 있고, 뼈빠지게 벌어 오직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불구적 삶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전언이나 이론이 아니라 몸소 느껴야했던 딸아이의 다음 선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참혹한 생존경쟁의 장에 자식을 내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렇더라도 아빠의 입장에서는 딸아이가 이번 아르바이트 경험을 세상에 대한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높이고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또 자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절감하는 그런 기회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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