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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4월23일

이번 여행은 하나 있는 딸 혼례를 마치고 남은 부부의 새로운 삶을 여는 계기이자 그동안 작업으로 고생한 아내에 대한 위로 그리고 세상살이를 나름 잘 버텨낸 내 자신에 대한 위무차원이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만나 일했던 베트남 분들을 통해 궁금해진 베트남을 여행하고픈 숨겨진 의도도 있었다.  덤으로 청년시절 읽었던 [베트남혁명사]와 [사이공의흰옷]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베트남의 정치경제 사회적 변화를 읽고 싶었다. 작은 여행에 너무 큰 미션을 얹다보니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모든 것이 허욕임을 직감했다. 일단 그 부여된 의미의 무게에 비해 너무 초라한 일정이었다.  여행 전후의 준비와 마무리도 너무 허술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떠나 여행은 난에게 더 많은 여행의 꿈을 선물했다.  모든 것이 감사한 여행이었고, 지나 온 모든 시간에 감사하는 여행이었다.

사소하지만 이번여행을 통해 처음 만난 베트남에 대해 알게되거나 더 궁금해진 사실이 있다. 베트남에 의외로 모기가 많지 않았다. 건물은 좁은 터에 지어진 경우가 많았고 창문이 너무 작았다. 대중교통비가 싸서 여행하기에 너무 좋았다. 시내외 버스며 택시며 기차 요금이 기대 이상으로 저렴했다. 내가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다 친절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했다. 안내문이나 표지판에 의외로 영문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군경 등 공직자들은 의외로 권위적 이어서 놀랬다.

하노이 다녀오면서 비엣젯 타면 반복해서 나오던 노래가 궁금해 찾아봤다. Hello Vietnam. 단순히 달콤한 사랑 노래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베트남계 벨기에인인 ‘팜 꾸이난’이 조국 베트남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처철한 전쟁으로 기억되는 베트남을 넘어 그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애끓는 사랑이 가사에 담겨 있어서일까 오랫동안 하노이여행을 환기하는 노래로 나에게 기억될 것 같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OY1o16T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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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역에 도착하니 닌빈행 3시반 기차를 30분 전부터 탑승이 가능했다. 기차가 출발하자 오징어 땅콩 있어요를 외치며 지나가던 지금은 잊혀진 풍경이 재현되고 시골아줌마들의 수다와 지친 아이들의 울음소리, 숨죽인 서양인 여행가족의 낯설은 속삼임과 시끌벅적한 중국인 무리의 알 수 없는 유쾌한 대화 속에 녹아들었다. 거친 진동 속에서 나는 현실감을 잃어갔다. 문득 고개를 드니 끊없이 이어질듯 계속된던 풍경 끝에 닌빈 역에 도착했다.

급히 예약한 숙소는 손님도 주인도 없었고 익스큐즈미를 수십번 외친 끝에 주인 할머니를 만났다. 오너를 불러 주겠다며 할머니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고 달려온 오너는 전혀 준비 안 된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에어컨을 켜고 방이 식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저녁을 해결하러 숙소를 너왔다. 주택가 골목을 잠시 걷다 들어선 선술집은 동네 청년들의 아지트로 보였지만 좋은 식당을 골라 찾아갈 만치 여력이 없어 그냥 들어섰다. 구글 번역기로 한바탕 법석을 한뒤 볶음면과 두부구이 그리고 볶음밥을 받고 베트남 와서 기본이 된 한 끼 한 맥주로 하루를 접었다.

 

2023년 4월 22일

긴 여정이 끝나는 닌빈의 하루를 즐기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새벽 6시에 숙소를 나와 그랩을 불러 항무아에 도착하고 날이 더워지기 전에 봉우리를 올랐다. 입장료 10만동에 의아했지만 입구에서 정상까지 가꾸고 다듬은 정성이 충분했고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항무아는 마땅히 대접받아야할 명소였다. 항무아는 차라리 사진 몇장으로 모든 언어를 대신할 수 있는 곳이었다. 표현할 말을 잃고 마냥 풍경속에 녹아들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이미 인간세계가 아니라 곧 신선이 학을 타고 나올법한 선계에 다름아니었다. 새벽부터 많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다양한 국적의 커플들이 함께 등산길에 동반했고 모든 인종이 공통의 진리를 찾아 순례의 길에 만난 도반같이 반갑고 정겨웠다.

하산뒤 간단한 요기를 하고 택시를 불러 짱안으로 달려갔다. 역시 명성대로 짱안은 인파로 북적였고 인당 25만동의 입장료를 요구했다. 또 한번 비싼 입장료에 입을 삐죽거렸지만 짱안 역시 명성과 입장료에 값하는 명소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수백대의 쪽배와 몰려오는 손님을 싣고 선착장을 떠나가는 무리진 배들이 연출하는 풍경이 가히 일품이었다. 힘차게 노를 저어 선계를 향해 달려가는 수십대의 쪽배가 그려내는 풍경 속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갔다.

30분 맛만보고 끝난줄 알았던 뱃놀이는 두시간 넘어 이어졌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몇개의 동굴을 지나고 적절히 쉬어가는 사원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두시간이 지났다. 모두가 하나의 풍경 속에 스며들어 각자의 생각에 골몰한 채 물위를 흘러갔다. 같은 풍광속에서 누구는 먹고 사는 문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또 누구는 지친 영육을 치유하고 있었고 또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구애 중이었고 또 누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꿈을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짱안 뱃놀이가 끝나고 하노이행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3시간 반이나 남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닌빈시내의 명소 기린사를 향해 달려갔다. 갓 세운 호수위에 불교 조형물이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물가의 풍경 속에 자리한 까페가 마음에 들었다. 사원을 둘러보고 까페에 들러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커피향속에서 페북을 만지며 땀을 식히고 다시 힘을 내어 거리로 나왔다.

숙소를 들러 짐을 챙기고 역에 도착하니 우리가 거의 선발주자였다. 지인에게 톡을 보내 하노이서 만나 같이 저녁을 먹을 약속을 정하고 출국 시간과 한국 도착시간을 확인하고 인천에서 나주까지 교통편을 알아보고 예약하다보니 하노이행기차가 도착했다. 세상의 축소판같은 번잡한 하노이행 기차칸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베트남 여행의 느낌을 반추할 수 있게 해 줄 것만 같았다. 친근하고 즐거운 여정이 끝나고 하노이에서 만난 지인과 비싼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노이바이공항까지 환송을 받고 대합실에 들어섰다. 남은 시간 뼈속까지 베트남 여행의 느낌이 스며들길 기대하며 공항을 주유하며 남은 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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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0일

새벽부터 붐비는 36거리에서 쌀국수로 아침을 해결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롱비엔 거리의 기운을 느끼며 노상에서 먹는 아침 쌀국수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식사를 마치고 롱비엔버스 터미날로 달려가니 이내 47A 버스가 도착했고 인당 350원을 주고 타고 홍강을 건너 40여분을 달리니 밧짱 도자기마을에 도착했다. 밧짱은 도자기마을 답게 도자기 가게와 공장이 즐비했지만 이른 시간 탓에 거리는 한산했다. 가게들도 자세히 보니 개별 관광객 손님이 아니라 도매상인을 대상으로 하는 분위기였다. 오직 한곳 도자기박물관만은 그렇지 않았다.

단체로 관람 온 학생들로 활기가 넘쳤고 볼거리도 풍부했고 기념품을 사기도 수월했다. 한국 도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원색의 화려한 문양과 다양한 자태가 이채로웠다. 제작 과정과 역사를 담고 있는 전시실을 돌다 옥상 라운지에서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일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러 딸을 위한 작은 선물을 사는 것으로 한 시간 정도의 박물관 관람을 마무리했다. 다시 버스로 롱비엔으로 돌아와 뜨거워진 거리를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체크아웃을 하고 예약된 LeaH Silk Hotel로 짐을 옮겼다. 오후 2시 체크인까지 호안끼엠 호수가의 고급진 레스토랑에서 조금의 미안함과 함께 맥주를 겉들인 점심을 먹고 호수가를 덜었다.

체크인 하자마자 수영복을 챙겨 루프탑 풀장으로 달려가니 조그만 풀이지만 사람이 없어 둘만을 위한 풀에서 더위와 먼지에 시달린 몸을 위무할 수 있었다. 지치지 않을 만치 수영을 하고 다음날 떠날 닌빈행 기차를 예약할 겸 그랩 택시를 불러 하노이 역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왕복표는 여분이 있었지만 카드는 안된다고 해 달러로 결제하니 10%이상 나쁜 환율을 제안했다. 거부하고 역앞 가까운 은행을 둘러 좋은 환율로 환전을 해서 다시 역으로 돌아와 표를 예매했다.

하노이에서 마지막 여유 있는 시간을 쇼핑으로 할애했다. 그랩으로 롯데센타로 달려가 지하 롯데마트에 들어서니 손님의 절반은 한국 사람들이었고 친숙한 상품에 가격대는 착했다. 과자며 건과일이며 이것저것 싸고 간편한 선물을 잔뜩샀다. 베트남가면 많이 먹겠다던 잭풀룻과 망고, 망고스틴은 실컷 먹었지만 꼭 먹어보겠다던 두리안은 롯데마트에서 처음 만났다. 비싼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망설이다 캐리어에 담고 말았다. 베트남 청년들이 주요 고객인 듯한 한켠의 푸드코트에서 한국식 떡볶기와 순대를 사고 코코넛을 마시며 저녁식사를 대신했다.

호안끼엠 거리로 돌아와 오직 두리안을 먹기 위해 길모퉁이 까페에 들렀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호텔 침실에서 먹는 것도 금지되어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까페 여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맥주와 함께 두리안을 먹기 시작했다. 모양은 그렇다고 해도 향은 너무 지독해 오래 묵은 정화조 냄새와 진배없었고 질감은 삶은 고구마 상한 것 같이 뭉컹거렸다. 비싼 두리안을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여사장에게 한 덩어리를 드리고, 혼자 외롭게 맥주를 마시던 옆 자리 서양인에게도 권했다. 다행히 맛이 있다며 고마워했다. 구글번역을 이용해 짧은 대화를 하고 늘어난 짐을 감당할 가방을 하나 서서 호텔로 돌아오니 아쉬운 또 하루가 가고 3일의 여정만 남겨놓고 있었다.

 

421일 닌빈으로!

LeaH Silk Hotel 에서 잘 자고 잘 먹고 닌빈행 기차가 떠나는 오후 3시까지 하노이를 마지막 즐기기 위해 거리를 나섰다. 먼저 역에 들러 가방을 맡겨두고 지난번 호치민박물관만 들러고 참배를 실패했던 호치민 묘소를 향해 걸었다. 기차거리며 성요셉성당이며 벌써 익숙해지기 시작한 거리를 지나 그리 머지 않은 거리였지만 아침부터 온몸은 땀에 젖고 지치기 시작했다.

호치민 묘소를 향해 걷는 길에 레닌 동상을 다시 만났다. 전에 없는 화환이 놓여져 있었고 알고 보니 422일이 그가 태어난 날이라고 했다. 그가 꿈꾸던 혁명이 여전히 유효한지 이미 파탄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인간의 꿈과 열정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 들었다. 역사는 늘 미완이기 마련이고 인간은 변화를 추구하고 도모하기에 더 중요한 것은 시대적 과제와 이를 해결하려는 시대정신이 아닐까는 생각을 하며 길 건너 머지 않은 곳에 우뚝 선 하노이깃발 탑으로 향했다.

하노이 깃발탑은 베트남군사박물관과 함께 있었다. 관광 혹은 학습을 위한 명소인 듯 유치원 아이들이 단체로 몰려왔고 주차장은 멀리서 온 듯한 관광버스가 몰려있었다. 박물관 마당에는 제국주의 침략자 프랑스와 미국에 대항한 해방전쟁의 승리를 웅변하는 기록물과 전리품으로 가득 찾고 특히 격추한 프랑스와 미군기로 만들어 놓은 상징물이 인상적이었다. 탑을 오르내리며 베트남 독립항쟁의 역사를 반추했다.

 

이어서 탕롱황성을 들러 프랑스침략군을 전멸시키고 해벙전쟁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온 디엔비엔푸 전투의 기록물과 민족해방전사들이 패태하는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하노이로 진주하면서 군사퍼레이드를 펼치며 승리를 축하하던 기록물들을 관람했다. 이곳 역시 유치원아이들이 단체로 몰려왔고, 성을 배경으롣 ᅟᅡᆫ체사지을 찍는 아이들이 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김치를 외쳤다. 한때 침략군에 부역하던 나라의 대중문화가 지금 세대의 삶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향유되는 세상의 섭리가 씁쓸하고 오묘했다.

탕롱황성을 나와 바딘광장을 가는 길에 콩까페에 들러 코코넛커피를 마시며 땀을 식혔다. 커피향에 취해 하노이 거리를 내려다보며 여전히 베트남을 지배하고 있는 해방전쟁 승리의 기억과 도이모이를 통해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는 베트남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 생각의 늪에 빠져들었다. (베트)콩 까페는 해방군 코스프레를 한 종업원들과 실내 디자인으로 특화되어 각인된 탓에 특히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했다.

공항같은 검색을 거친뒤 바딘광장을 들어서고 호치민묘소에 들렀지만 금요일 역시 참배를 쉬는 날이었다. 호치민 관저도 점심시간 때문인지 입장이 거부되고 뭇꼭만 들른 뒤 바딘을 벗어났다. 서호로 향해 꽌탄도교사원을 들른 뒤 이어 쩐꾸억사원에 들렀지만 점심 휴관이라 남는 시간에 가까운 파리파게트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계속 먹으려고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반미를 파리바게트에서 비로소 처음 영접했다. 다시 사원으로 돌아가니 같은 이유로 관람객들이 줄서 기다리고 있었고, 버스투어를 하던 한국인 부부와 잠시 이야기도 나눌 수있었다.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은 쩐꾸언 사원을 관람하고 하노이 역 근처로 다시 이동해 에어컨 켠 까페를 찾아 쥬스를 마시고 마지막 환전을 한 뒤 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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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8일 ~

하노이서 밤새 달린 라오까이행 침대열차는 낡았고, 간식은 물론 물한병 준비 못했고 화장실은 좁고 불편했다. 위층 침대에는 낮선 사람도 함께 했고 기대했던 바깥 풍경은 암흑천지일뿐 기차는 진동으로만 달리고 있음은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기차는 여행이 주는 모든 설레임을 선물했고 나는 밤새 행복했다. 잠들 것 같지 않았던 설레임과 기차의 진동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밤새 우리를 낯선 공간으로 옮겨놓았다. 같은 캐빈에 여정을 풀었던 승객이 떠나는 것도 못 느낄 만치 깊은 숙면을 취했다. 기차 운행 중에 사파행 버스 티킷이 필요하냐고 승무원이 물었지만 거절했는데 라오까이 역에서 내리자마자 역무원이 버스표를 파는 임시 카운터를 펼쳐놓고 있었다. 쉽게 버스를 찾고 승차하니 버스로 가파른 길을 한 시간이나 달려 사파에 도착했다.

라오까이도 큰도시였지만 사파도 작은 시골은 아니었다. 보통의 읍보다 규모있고 짜임새있는 시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메인 광장인 사파센타를 중심으로 애초에 여행지로 조성된 듯 광장과 호수공원 그리고 호텔과 까페 등 여행관련 업소로 가득했다. 기념품과 가이드 써비스를 제안하며 여행자를 향해 달려오는 몽족 여인과 아이들은 이곳이 낯선 여행지임을 한시도 잊지 않게 했다. 애써 호객을 물리치고 예약한 호텔을 찾아 가는 길 중간에 한 식당을 들러 아침을 주문하고 나서야 겨우 사파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식당을 나와 캇캇마을 쪽으로 내리막길을 10여분 걸으니 예약한 숙소인 Catcathills Resort 가 나왔다. 체크인전이라 호텔에 짐을 맡기고 천천히 걸어서 사파 센타로 나오니 MGallery Hotel과 함께 판시팡 가는 사파역이 나왔다. 적지 않은 가격에 잠시 망설이며 현장 구매보다 혹시 인터넷 구매가격이 싸지나 않은지 확인한 뒤 표를 사고 모노레일에 올랐다. 모노레일은 먼저 Sun Home Fansipan Legend에서 멈춘 뒤 케이블카를 갈아 타고 판시판역까지 올라간 뒤 다시 모노레일을 한 번 더 타고 베트남 최고봉이라는 판시팡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까지 올라갔다. 모노레일을종착지에 내려 가파른 계단을 10분도 걷지 않아 판시판 정상에 도착했다.

판시판은 해발 3147m로 베트남 최고봉인 데다 힘들이지 않고 모노레일과 케이블카를 이용해 쉽게 등정이 가능한 관계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붐볐다. 모노레과 케이블카를 갈아타는 중간 기착지마다 선물가게와 식당을 가로 질러야 했고 작은 롯데월드를 온양 조금은 분주하고 들떠 있는 관광지의 모습이었다. 외국인보다 훨씬 많은 베트남 인들이 눈에 들어왔고 베트남인들에겐 신혼 여행지로 사파가 유명하다고 했는데, 젊은 연인이 많았다. 유명 관광지 답게 혼자 카메라를 들고 중얼거리는 유투버들을 심심잖게 만날 수 있었다. 나 역시 판시판에 오르니 장대한 풍광에 한없이 기분이 고조되고 들떠 인파를 비집고 같이 쓸려다니며 연달아 사진을 찍었다.

다소 지친 몸으로 하산해서 사파시내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늦은 체크인을 했다. 굳이 풀이 있는 비싼 숙소를 얻은 덕분에 아직은 추운 풀장에서 몸을 풀었다. 잠시 휴식 뒤 숙소를 나와 본격적으로 사파를 돌아다니다 사파호수에서 화려한 일몰을 맞고 캇캇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사이공맥주하노이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온 종일 들떠 신나게 뛰어다닌 덕에 이번 여행의 가장 값진 하루를 보냈다.

 

2023년4월 19일

분에 넘치는 시설과 친절 그리고 풍경까지 제공한 깟깟힐즈호텔에서 숙면을 취하고 아침에 눈을 떠자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고 얼른 일어나 커튼을 걷으니 저 멀리 캇캇마을이 안개 속에 살아나고 있었다. 얼른 아내를 깨워 아침 안개속에 피어나는 캇캇마을 풍경을 보는 감동을 공유했다. 아내는 스케치를 하고 나는 짐을 싸고 또 다른 하루의 여정을 구상했다. 오전 일찍 깟깟마을 트레킹을 하고 오후 늦게 버스로 하노이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늦게 조식을 한뒤 호텔 정원을 둘러보고 바로 깟깟마을 탕방을 나섰다.

호텔을 나와 캇캇마을을 향해 언덕길을 내려갔다. 여러 번 오토바이가 호객을 했지만 내리막길이기도 하고 걷는 재미를 위해 전통의상 대여점들이 즐비한 길을 지나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했다. 가지고 잇는 베트남 돈이 부족해 미국달러나 카드로 결제를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마을은 겉만 보고 오토바이 택시를 흥정 끝에 타고 묵었던 호텔로 돌아왔다. 다시 하루 일정을 논의 한 뒤 택시로 사파 시내로 나가 환전을 하고 하노이로 돌아갈 버스를 예약했다. 남은 시간이 애매해 트레킹을 포기하고 택시투어를 할까 했지만 이역시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버스사무실에 맡기고 넓지 않은 사파 시내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여유를 만끽했다. 지루하기 시작할 때쯤 재래시장에 들러 2인 한 끼 3500원 짜리 시장음식을 맛있게 먹고 사파호 주변 까페로 돌아와 커피를 시켜 노상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지나는 강아지 그리고 거리를 흐르는 바람을 느끼며 모처럼 일정비운 시간의 공백을 누렸고 바쁠 필요가 없었던 어렸던 그 언젠가를 회상했다. 걷고 먹고 쉬기 위한 일정치고는 이동이 잦았지만 그래도 하루 2만보 이상 걷고 싼값 덕분에 실컷 먹고 좋은 풍광 속에서 삶을 누렸다. 이번은 관광이고 휴식이고 결국은 소비지만 언젠가는 다시 순례로 구도로 세상을 주유할 것을 꿈꿨다. 오늘 하루도 세상에 삶의 기쁨이 가득하고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축복이기를 빌며 하노이행 버스에 올랐다.

난생처음 타는 슬리핑 버스는 편안하고 아늑했다. 두어 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300원을 내고 화장실을 사용하고 버스가 출발하면 바같 풍경을 즐기다 이내 잠이 들곤 했다. 6시간을 길다고 느끼지 않은 채 하노이에 도착했고 이동 중에 예약한 마리나 호텔은 버스 종점 바로 길 건너였다. 호텔은 좁았지만 깨끗했고 있을 거 다 있고 아늑했다. 거리로 나와 길모퉁이 해산물 가게에 들러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와중에 이번 일정 중에 제일 비싼 고동 요리와 조개탕을 시켜 볶음당면과 맥주로 저녁을 해결했다. 호안끼엠 호수주변 구시가지는 그냥 그 속에 들어서는 순간 박물관 관람도 유적지 탐방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여행자가 되는 신기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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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16일~

4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새벽비행기라 모두 창을 내리고 잠만 자는 바람에 내가 좋아하는 창밖 구경을 하지 못한 점이 많이 불편했다. 현지 시간 아침 8시 조금 넘어 하노이 노이바이공항에 착륙했다. 비행은 편안했고, 공항은 한산했다. 나의 첫 베트남여행은 트랩을 내려설 때 갑자기 들이닥친 습하고 뜨거운 공기로 다가왔다. 영상과 활자를 통해 베트남 전쟁으로만 접했고, 나의 농사일을 돕는 베트남 노동자를 통해 간접 체험했던 베트남 풍경을 바라다 보는 마음이 복잡했다. 마음은 혼란스러웟지만 베트남에 입국심사는 쉽게 끝났고 이내 대합실로 넘어와 유심을 갈고, 환전을 했다. 하노이행 버스를 타기 전에 공항내 식당을 찾아 첫 베트남 현지 쌀국수를 비싸게 체험했다.

하노이 시내로 가는 86번 버스는 찾기 쉬웠다. 비슷한 차림의 다양한 인종의 여행자들이 몰리니 그냥 무리지어 따라다니기만 해도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버스는 편안했는데 차창 선팅 때문에 창밖 풍경을 보기에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베트남의 첫인상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고개를 돌리고 몸을 틀어 전통과 현대가 만나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하노이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어디 홍콩 영화의 뒷골목 배경 같은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 버스가 들어서고 승객의 대부분이 몰려 내렸다. 구글맵을 켜고 골목을 걸으며 영화 속에서나 보던 베트남의 거리와 현실을 비교하며 좁고 복잡한 인도로 트렁크를 끌고 예약해 둔 호텔을 찾아 나섰다.

메이드빌프리미어 호텔을 찾았지만 체크인 시간이 많이 남아 짐을 맡기고 거리로 나섰다. 먼저 호안끼엠 호수를 한바퀴 돌기 시작했다. 외국인도 적지 않았지만 더 많은 현지인들의 무리가 거리를 쓸고 지나갔다. 여기저기 부스가 설치되고 작은 공연이나 체험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었고 상황을 살펴보니 프랑스와 무슨 교류의 날 같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우선은 낯선 베트남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아이스크림을 사 물고 사방을 두리 거리며 베트남스러움을 한껏 느끼기 위해 호안끼엠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호숫가의 응옥썬사당엔 인파로 넘쳐났다. 비집고 들어가 오래전 나라를 구할 칼을 전해줬다는 거북이의 전설을 읽고 유물을 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한낮의 더위는 들뜬 여행객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고, 난생처음 호텔 옥상 풀장으로 달려가 수영을 했다. 오직 풀장을 위해 두 배의 비용으로 예약한 호텔이니만치 풀장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규모는 작고 수질을 그럭저럭 이었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는 풀장에서 신나게 놀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즐겼을 때쯤 덩치 큰 서양인들이 몰려오자 풀장을 나와 다시 하노이 투어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호텔을 나오자 마자 길모퉁이 식당에서 쌀국수를 포함한 몇가지 정체불명의 음식을 시켜 점심을 해결하고 그랩을 불러 호치민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호치민 묘소로 향했지만 오픈 시간이 지나 다시 걸음을 옮겨 레닌동상이 있는 거리로 향했다. 길 중간에 한국인에게 더 유명하다는, “베트콩에서 이름 따 왔다는 밀리터리컨셉 인테리어의 콩까페에 들러 코코넛 커피를 마시고 베트남 현대사와 호치민의 삶을 생각했다. 역사에서 한 번도 부패한 지배세력을 신진세력이, 구시대를 신시대가 완벽히 제압하고 승리하는 경험을 갖지 못한 대한민국과 그 경험을 가진 베트남의 차이는 무엇일까? 많이 부러운 게 사실이지만 또 한편 그 승리에 도취되어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있는 듯한 베트남의 현실은 또 다른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승리한 혁명이 부패한 관료의 손아귀로 귀착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혁명의 역사를 공유한 민족의 자존과 자긍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코넛 커피로 몸을 식힌 뒤 다시 거리로 나서 레닌 동상에 들러 참배하고, 포토존으로 유명한 철도건널목을 지나 따히엔 맥주거리까지 걸으며 하노이의 밤을 맞았다. 하노이는 밤에 살아났다. 한낮의 더위가 가쉬자 마자 맥주거리로 알려진 호안끼엠 호수 인근의 따히엔 거리는 낮은 탁자와 앉은뱅이 의자로 길이 채워졌다. 2차로의 중간만 오토바이가 지나갈 정도만 남기고 길 양쪽의 거리는 업종에 관계없이 모두 빽빽이 좌판으로 채워졌다. 골목 여기저기서는 다양한 공연이 이어졌고, 풍선장사나 기타 기념품을 파는 상님들까지 모여들어 그야말로 거리는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한번씩 경찰이 나서 통로확보를 지시했지만 경찰이 지나가자마자 이내 거리는 다시 의자와 탁자로 메꿔졌다. 우리가 묵는 호텔이 그야말로 맥주거리의 중심이다 보니 같이 들뜬 기분에 거리로 나서 좌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닭발요리와 이런저런 안주거리를 시켜놓고 타이거 맥주를 마시며 거리를 휩쓰는 맥주거리의 열기에 휩쓸려 들어갔다. 하노이의 첫 밤은 그렇게 뜨거웠다.

2023년4월 17

아침부터 침대머리에서 오늘 하루 투어 코스를 점검했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고 동선이나 그곳에 대한 정보는 미리 준비된 것이 없었다. ‘베트남 여성박물관호아 로 감옥 박물관그리고 국립미술관을 대충의 목적지로 잡고 구글맵에 의지한 채 거리로 나섰다. 먼저 택시를 불러 하노이역을 들러 짐을 맡기고 밤에 떠날 사파행 기차표를 예매한 뒤 발길 닫는 데로 걷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에 대한 인식 없이 마냥 걷다보니 다시 호안끼엠 인근의 항쫑 화원을 지나 성요셉성당에 이르렀다. 자료를 찾아보니 프랑스 식민제국 시절 하노이를 제압한 프랑스는 본국의 노트르담 성당을 본 따 성요셉성당을 지었고 이후 프랑스 식민군을 물리친 베트민에 의해 장악되고 성당의 기능을 잃었다가 1990년 이후 베트남의 개방과 더불어 교회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민중의 종교적 열망의 상징물이 된 성요셉 성당이 지금은 이방인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는 삶과 역사의 섭리가 오묘했다.

이어서 찾은 여성박물관은 큰 기대 없이 일정에 넣었지만 의외로 다양한 콘텐츠로 많은 울림을 남겼다. 입구에서 조금의 비용을 지불하고 한국어 설명이 나오는 헤드폰을 빌려 각 섹트마다 돌며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박물관은 일상적인 베트남 여성의 삶과 혁명기 여성 혁명가의 역할을 비롯해 다양한 소수민족의 혼례와 일상 노동에 대한 컨텐츠까지 적어도 반나절은 할애해 둘러보아야 할 만치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일터로 내몰려 혹독한 노동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보조하는 여성의 삶‘14살에 프랑스군에 체포되어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18살이 되자 처형당한 어린 민족해방투사의 삶까지 베트남에서 존재했던 그리고 현재도 존재하는 여성의 다양한 삶을 담고 있는 베트남 여성박물관은 오래도록 하노이 여행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 같았다.

여성박물관을 나와 다음 행선지로 호아 로 감옥 박물관을 잡고 거리를 걷다가 마침 점심 나절이다 보니 거리의 여기저기에 앉은뱅이 의자를 놓고 앉아 쌀국수를 먹는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고 우리 역시 그 무리에 휩쓸려 베트남인이 되고 싶은 이방인마냥 스며들어 즐거운 마음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이어서 찾은 호아 로 감옥은 의외로 외국인 관람객이 넘쳐났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최고의 문명국을 자처하던 서양인에 의해 자행된 야만과 학살의 현장은 찬 기운이 가득했다. 원래 호아로는 한자로 火爐로 식민지 이전 시대에는 숯을 굽고 도자기를 굽던 곳이라고 했다. 이곳은 프랑스에 대항해 베트남의 독립을 도모하던 베트남인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그리고 처형하던 장소로 베트남인에게는 독립항쟁의 상징적 성지였다. 나중에 프랑스를 물리친 뒤에는 다시 미국의 침략에 맞서 생포한 미군 조종사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이용되어 미군들에겐 하노이 힐턴호텔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관람객 모두 긴 침묵을 이어가며 묵묵히 안내된 동선을 따라 감옥을 탐방했는데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설명에 시간가는 줄 모를 만치 몰입하 모습이었다. 문득 가해국이었던 프랑스와 미국의 국민들은 호아루 감옥을 둘러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이어폰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개별적 사연을 들을 때면 하나의 역사적 드라마인양 장엄하고 비장했다. 두어시간이나 흘렀을까? 독립투사의 사형을 집행하던 마지막 장소에서 그분들의 명복을 빌며 향을 올린 뒤 거리로 나섰다.

이어서 인근의 국립미술관과 하노이 문묘를 관람했다. 미술관은 불상 등 몇몇 불교 문화재와 20세기 이후 현대화 중심으로 꾸려져 있었고 관람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근의 문묘 역시 많은 관람객이 있었지만 그냥 한번 훝어보고 지나칠 정도의 명소로 느껴졌다. 더위에 지친 몸을 이끌고 하노이역 인근으로 돌아와 스타벅스에서 더위를 식히다 약속된 지인을 만나 고급진 후에 전통요리를 전문으로 한다는 식당에서 화려한 저녁을 먹었다. 반세오의 맛을 기억하고 다시 하노이역으로 돌아와 사파행 야간열차를 기다리며 역내를 살피고 오고가는 인간 군상을 구경했다. 10시 출발 예정인 기차에 30분 전부터 승객을 들이기 시작했고 우리가 탈 기차는 임시 증설된 기차인지 제일 마지막 칸으로 다른 기차에 비해 훨씬 세월의 흔적이 진했다. 10시에 정확히 출발한 기차는 손에 닿을 듯한 건물사이를 비집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나는 흐린 창으로 보는 바깥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졸린 눈을 부릅떴지만 어느새 기차의 진동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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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신혼여행 가고 우리 부부는 舊婚旅行을 떠나다!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 아이 하나 낳아 기르며 산지 삼십 몇 년이 흘렀다. 그사이 아이는 자라 짝을 만나고 혼례를 치루니 우리 부부도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하노이 구혼여행길에 올랐다. 지난 고난의 기억을 지우는 행복한 여정을 기록에 남겨 노후를 대비해 본다.
 
2023년 4월 14일
휴가를 얻어 딸아이 결혼식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사실은 딸 결혼식보다 식 끝나고 떠날 울 부부 베트남 여행에 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서울 왔다. 용산역에서 마라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23서울화랑미술제”를 관람했다. 일만여점의 현란한 작품에 눈이 호사를 누렸지만 그림이 너무 많아 어떤 작품도 귀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2만원이라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방대한 아트페어 현장을 누볐지만 그래도 마음에 남는 유일한 작품은 [관훈갤러리]를 통해 출품한 아내 류준화의 작품이었다.

코엑스 나와 홍대로 달려오니 아내와 딸은 네일샵에 들어가고 나는 거리의 미아가 되었다. 아내가 홍대서 학위를 하고 내가 합정에서 친구들과 출판사를 하면서 합숙을 할 때 자주 들렀던 홍대거리를 혼자서 배회했다.

추억이 서린 홍대 거리를 걷고 고풍 찬연한 프랑스식 요리점에서 딸과 아내와 더불어 세 식구가 같이 비싼 저녁을 먹고 초저녁에 호텔에 들어와 곯아 떨어졌다. 새벽에 눈을 떠니 축의금 문자가 쌓였고 꼭 그만치 사정이 생겨 혼례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메시지가 쌓여 있다. 오히려 마음 쓰이게 한 내가 미안하다. 결혼식이란 게 참 걱정이 많다. 평생에 한번 치루는 대사니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객이 너무 많을까봐 걱정이었는데 나중엔 너무 안오실까봐 걱정이다. 신랑신부에게 누가되지 않을까 사돈께 실례를 범하지 않을까 다 걱정이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데 다시 생각하니 그냥 되는대로 즐기면 되는 게 아닌가는 생각도 들었다.

4월 15일 혼례가 무사히 끝났다. ‘식’은 단순하고 단조로웠고 부모의 역할이라고는 하객맞이와 정해진 성혼선언문과 당부의 글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부모로서 별로 도와주지도 못했고, ‘식’보다 ‘실’을 중시하기에 아쉬운 것도 없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결혼식이었지만 그래도 식이 끝나니 긴장이 풀리고 미리 세워둔 하노이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비로소 일기 작했다. 인근 까페에서 마지막 하객과의 담소가 끝나고 작별한 뒤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고, 살아갈 날을 점치며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인천공항 는 지하철로 달려갔다. 올림머리에 메이크업 그대로 딸사위보다 먼저 공항으로 떠나니 지인들이 놀리며 부부여행이 아니라 재혼여행으로 보인단다.

출국 때마다 자주 이용하는 인천공항 찜질방인 [스파온에어]에 누울 자리를 확보하고 몇 일간 먹지 못할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마땅히 할일도 없고 마음은 들떠 그냥 공항 청사를 할 일없이 걸었다. 공항은 나에게 알 수 해방감을 준다. 내안에 사는 내가 통제 불가능한 내가 숨을 죽이고 내가 통제 가능한 내가 기세를 얻는다. 나는 늘 길 위에서 행복하다. 자식가진 인간의 책무를 벗어던지고 나니 이제 좀 막 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6일 새벽6시 출발하는 비엣젯을 타기위해 4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트램을 타고 승강장 까지 이동하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침식사를 해결할 곳은 유일하게 햄버거집 밖에 없었다. 그것도 주문의 선택지는 없고 오직 한 메뉴만 주문이 가능했다. 비싼 기내식 사먹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란 생각에 새벽부터 버거랑 찬 콜라로 배를 채웠다. 정시에 비엣젯에 올라 덜 잔 잠을 채우려 애쓰는 사이 착륙준비 멘트가 잠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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