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8일 ~
하노이서 밤새 달린 라오까이행 침대열차는 낡았고, 간식은 물론 물한병 준비 못했고 화장실은 좁고 불편했다. 위층 침대에는 낮선 사람도 함께 했고 기대했던 바깥 풍경은 암흑천지일뿐 기차는 진동으로만 달리고 있음은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기차는 여행이 주는 모든 설레임을 선물했고 나는 밤새 행복했다. 잠들 것 같지 않았던 설레임과 기차의 진동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밤새 우리를 낯선 공간으로 옮겨놓았다. 같은 캐빈에 여정을 풀었던 승객이 떠나는 것도 못 느낄 만치 깊은 숙면을 취했다. 기차 운행 중에 사파행 버스 티킷이 필요하냐고 승무원이 물었지만 거절했는데 라오까이 역에서 내리자마자 역무원이 버스표를 파는 임시 카운터를 펼쳐놓고 있었다. 쉽게 버스를 찾고 승차하니 버스로 가파른 길을 한 시간이나 달려 사파에 도착했다.
라오까이도 큰도시였지만 사파도 작은 시골은 아니었다. 보통의 읍보다 규모있고 짜임새있는 시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메인 광장인 사파센타를 중심으로 애초에 여행지로 조성된 듯 광장과 호수공원 그리고 호텔과 까페 등 여행관련 업소로 가득했다. 기념품과 가이드 써비스를 제안하며 여행자를 향해 달려오는 몽족 여인과 아이들은 이곳이 낯선 여행지임을 한시도 잊지 않게 했다. 애써 호객을 물리치고 예약한 호텔을 찾아 가는 길 중간에 한 식당을 들러 아침을 주문하고 나서야 겨우 사파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식당을 나와 캇캇마을 쪽으로 내리막길을 10여분 걸으니 예약한 숙소인 Catcathills Resort 가 나왔다. 체크인전이라 호텔에 짐을 맡기고 천천히 걸어서 사파 센타로 나오니 MGallery Hotel과 함께 판시팡 가는 사파역이 나왔다. 적지 않은 가격에 잠시 망설이며 현장 구매보다 혹시 인터넷 구매가격이 싸지나 않은지 확인한 뒤 표를 사고 모노레일에 올랐다. 모노레일은 먼저 Sun Home Fansipan Legend에서 멈춘 뒤 케이블카를 갈아 타고 판시판역까지 올라간 뒤 다시 모노레일을 한 번 더 타고 베트남 최고봉이라는 판시팡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까지 올라갔다. 모노레일을종착지에 내려 가파른 계단을 10분도 걷지 않아 판시판 정상에 도착했다.
판시판은 해발 3147m로 베트남 최고봉인 데다 힘들이지 않고 모노레일과 케이블카를 이용해 쉽게 등정이 가능한 관계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붐볐다. 모노레과 케이블카를 갈아타는 중간 기착지마다 선물가게와 식당을 가로 질러야 했고 작은 롯데월드를 온양 조금은 분주하고 들떠 있는 관광지의 모습이었다. 외국인보다 훨씬 많은 베트남 인들이 눈에 들어왔고 베트남인들에겐 신혼 여행지로 사파가 유명하다고 했는데, 젊은 연인이 많았다. 유명 관광지 답게 혼자 카메라를 들고 중얼거리는 유투버들을 심심잖게 만날 수 있었다. 나 역시 판시판에 오르니 장대한 풍광에 한없이 기분이 고조되고 들떠 인파를 비집고 같이 쓸려다니며 연달아 사진을 찍었다.
다소 지친 몸으로 하산해서 사파시내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늦은 체크인을 했다. 굳이 풀이 있는 비싼 숙소를 얻은 덕분에 아직은 추운 풀장에서 몸을 풀었다. 잠시 휴식 뒤 숙소를 나와 본격적으로 사파를 돌아다니다 사파호수에서 화려한 일몰을 맞고 캇캇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사이공맥주‘와 ’하노이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온 종일 들떠 신나게 뛰어다닌 덕에 이번 여행의 가장 값진 하루를 보냈다.
2023년4월 19일
분에 넘치는 시설과 친절 그리고 풍경까지 제공한 깟깟힐즈호텔에서 숙면을 취하고 아침에 눈을 떠자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고 얼른 일어나 커튼을 걷으니 저 멀리 캇캇마을이 안개 속에 살아나고 있었다. 얼른 아내를 깨워 아침 안개속에 피어나는 캇캇마을 풍경을 보는 감동을 공유했다. 아내는 스케치를 하고 나는 짐을 싸고 또 다른 하루의 여정을 구상했다. 오전 일찍 깟깟마을 트레킹을 하고 오후 늦게 버스로 하노이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늦게 조식을 한뒤 호텔 정원을 둘러보고 바로 깟깟마을 탕방을 나섰다.
호텔을 나와 캇캇마을을 향해 언덕길을 내려갔다. 여러 번 오토바이가 호객을 했지만 내리막길이기도 하고 걷는 재미를 위해 전통의상 대여점들이 즐비한 길을 지나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했다. 가지고 잇는 베트남 돈이 부족해 미국달러나 카드로 결제를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마을은 겉만 보고 오토바이 택시를 흥정 끝에 타고 묵었던 호텔로 돌아왔다. 다시 하루 일정을 논의 한 뒤 택시로 사파 시내로 나가 환전을 하고 하노이로 돌아갈 버스를 예약했다. 남은 시간이 애매해 트레킹을 포기하고 택시투어를 할까 했지만 이역시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버스사무실에 맡기고 넓지 않은 사파 시내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여유를 만끽했다. 지루하기 시작할 때쯤 재래시장에 들러 2인 한 끼 3500원 짜리 시장음식을 맛있게 먹고 사파호 주변 까페로 돌아와 커피를 시켜 노상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지나는 강아지 그리고 거리를 흐르는 바람을 느끼며 모처럼 일정비운 시간의 공백을 누렸고 바쁠 필요가 없었던 어렸던 그 언젠가를 회상했다. 걷고 먹고 쉬기 위한 일정치고는 이동이 잦았지만 그래도 하루 2만보 이상 걷고 싼값 덕분에 실컷 먹고 좋은 풍광 속에서 삶을 누렸다. 이번은 관광이고 휴식이고 결국은 소비지만 언젠가는 다시 순례로 구도로 세상을 주유할 것을 꿈꿨다. 오늘 하루도 세상에 삶의 기쁨이 가득하고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축복이기를 빌며 하노이행 버스에 올랐다.
난생처음 타는 슬리핑 버스는 편안하고 아늑했다. 두어 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300원을 내고 화장실을 사용하고 버스가 출발하면 바같 풍경을 즐기다 이내 잠이 들곤 했다. 6시간을 길다고 느끼지 않은 채 하노이에 도착했고 이동 중에 예약한 마리나 호텔은 버스 종점 바로 길 건너였다. 호텔은 좁았지만 깨끗했고 있을 거 다 있고 아늑했다. 거리로 나와 길모퉁이 해산물 가게에 들러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와중에 이번 일정 중에 제일 비싼 고동 요리와 조개탕을 시켜 볶음당면과 맥주로 저녁을 해결했다. 호안끼엠 호수주변 구시가지는 그냥 그 속에 들어서는 순간 박물관 관람도 유적지 탐방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여행자가 되는 신기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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