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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살면서 다 좋은 데 딱 한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네'와 같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벌레들은 다 괜잖은데  그놈의 지네 만은 결코 정이 가지 않습니다.

건데 이놈이 마당가에는 아무리 많이 살던 말던 상관치 않은건데

봄이되면 꼭 집안으로 기어 들어 옵니다.

그리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그땐 정말 첫서리내리기 전까진 본격적으로 기어들어옵니다.

일년에 집안에서만 볼펜만한 지네를 10여마리

그 반토막한 놈을 또 한 10여마리씩 잡아야되는데

그때마다 한 이틀 잠자리가 불편합니다.

작은 부스럭 소리에 잠이 깨고 후닥닥 이불을 걷고 일어나게됩니다.

그리곤 아무것도 아니란 것이 확인 되면 다시 잠을 청하지만

이렇게 몇번 반복하고 나면 잠은 잦는지 말았는지

영 몸이 개운치 않습니다.

 

지네와의 인연은 참 질기기도합니다.

13여년전 새집을 짖고나서는 집안에 지네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네가 집안으로 기어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5~6년 되는 것 같습니다.

아뭏튼 10여년전 뒷마당에 석축을 쌓다가

허벅지 쪽에 무언가 기어가는 느낌이 나서  손바닥으로 탁 쳤더니

갑자기 작은 못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퉁퉁한 지네 한마리가 바지가랭이 사이로 툭 떨어졌습니다.

"우잉~~ 자네 물린거잖아!"

일단 치료에 앞서 나를 문 지네가 도망가기전에

복수하기 위해 삽으로 능지처참을 하고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와 바지를 벗어보니

벌써 허벅지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치료법을 인터넷에 찾고 수의사에게 전화도 걸고 해서알아본 결과

지네독이 사실 별거 아니라서 대부분 자연치유되는데

인구10만명당 2명정도가 이상반응으로 목숨을 잃을수 있고

암모니아수로 씻고 얼음찜질정도면 치료가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나같이 재수 없는 사람은 10만명당 2명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봉화읍의 한 병원에 전화를 하니 최대한 빨리 응급실로

달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차로 25분 정도 거리인 봉화읍까지 와이프가 모는 차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하니, '응급'할 것이 뭐가 있냐는 듯

느긋한 간호원과 의사로 부터 간단한 치료를 받으며

농담따먹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사를 맞고 본일 왈,

'아 쓰바, 지네한테 물리는 것보다, 주사 맞는게 더 아프네요."

하여튼 단시간에 거의 손바닥만한 고기덩어리가 덧붙혀진 것 만치 부어오른

상처는 다음날 아침까지 거의 가라앉았지만

가려움증은 한 3~4일 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곤 잊어버린 지네가 갑자기 실내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네와의 인연은 이어집니다.

온갖 서적 인테넷 할 것없이 지네퇴치법이라는 퇴치법은 다 알아보고

시도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붕소가루를 집 둘레에 다 뿌리기도하고,

분말형 살충제를 뿌리기도 하고,

스프레이 바퀴벌레약을 집을 삥둘러 뿌리기도 했지만

집에 들어오는 지네의 수는 줄일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완전히 박멸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나 집안에서 삼겹살 등을 구워먹고 나면

꼭 당일이나 그다음날 지네가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집안에 들어온 지네에게

그것도 잠을 자다 물리게까지 되었습니다.

자다가 갑자기 다리 한쪽을 무언가 뾰족한 물체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아침까지 그 통증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날 유달리 피곤했기때문에 잠을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도저히 일어나서 확인할 기력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 보니

상처는 지네에 물린 증상을 보이고

이불을 털어보니 중간크기의 지네 한마리가 툭 떨어졌습니다.

상처는 붉게 부풀어 올랐지만

이번에는 그냥 집에 있는 연고 등만 바르고 자연치유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가려움증만 3~4일가다가 다행히 완치되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화장실에서 한마리, 마당에서 2마리를 잡았는데

3일전 와이프가 드뎌 지네한테 물렸습니다.

초저녁에 빨레를 뒷마당에 걸려고 나서는데

신발위에 지네가 낮아 있었나 봅니다.

와이프의 비명소리가 나서 달려가 보니

무엇인가 뾰족한 쇠같은데 찔린 것 같다는데

상처는 딱 비네 이빨 자국이었습니다.

렌턴을 들고 주위를 살펴보니 역시

지네 한마리가 신발아래에서 기어나왔습니다.

 

다시 인테넷을 뒤지며 지네 퇴치법을 살표보니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 나온 지네 퇴치 약이 있었습니다.

잽싸게 주문하고 어제 그 약을 받아

온 집둘레에 도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의 효과를 확인해 보기위해

저녁은 삼겹살을 구워 먹었습니다.

일단 아침까지 집에 들어온 지네는 확인하지 못했는데

제발 이번에는 효과가 확실해서 실내에서만이라도

완전히 지네의 흔적을 볼 수 없게 되기를 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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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살아도 시간이 부족한 농번기에
집마당 파헤친다고 몇일동안 생고생을 했습니다.
매주있는 미술관 수업 때도 그렇고.
어쩌다가 작은 행사라도 하면
작지않은 우리집 마당이지만 늘 방문객들이 몰고 오는 차들로 
곽 차 버립니다. 어떤 날은 차를 댈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기도 합니다.

지난달 밭에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포크레인을 불렸는데
떡본김에 제사지낸다고 좁을 마당을 넓히는 작업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본 작업이 사과나무 심는 일이다보니
마음은 급하고 할일은 많아 그냥 대충 뒤뜰의 언덕을 까서 펴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곧장 사과밭으로 내달렸습니다.

훗날 넓혀놓은 마당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예 호미와 삽만으로
원하는 모양으로 마당을 다시 깍고 돌담을 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하면 30분이면 할 작업인데
그뒤로 틈만 나면 한삽 두삽 흙을 퍼서 마당에 깔고
돌들은 골라내어 앞 개울에다 가져다 버렸습니다.
이렇게 골라낸 돌만 손수레로 스무차는 될 것같습니다.


이제 마당 모양은 잡았는데 돌로 석축을 쌓는 일이 남았습니다.
석축쌓기는 일단 밭일들 좀 끝내 놓은뒤 덤벼들 생각입니다.

삽질을 하다보니 'MB.정부의 사대강죽이기 삽질이 생각납니다.
동력 엔진을 이용하지 않고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하는 작업의 진수가 바로 '삽질'입니다.
당연히 사대강 죽이기 포크래인질을 삽질로 표현하는 것은 조금 어패가 있습니다.
그런데 '삽질'이란 말은 '삽으로 하는 노동'을 넘어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마 군대에서 통용되어 오는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삽질은 '계속 반복해야하는 쓸데없는 짓', 혹은
'성과가 쉬 드러나지 않으나 힘들고 지루한 일'을 지칭합니다.
특히나 어떤 일을 처리하거나 해결하는데 있어
그 원인이 되는 것과 다른 엉뚱한 처방에 입각하여 시도하는 행위나
목적과 수단이 어긋나는 행위를 지칭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맨날 바쁘기만 한데 성과는 없는 사람을 두고 '삽질하고 있네.'라고 놀리기도 하고,
어떤 사태를 엉뚱하게 파악하고 대처하는 경우, 예를 들면
자동차를 수리하는데 연료계통에 고장이 났는데,
전기계통을 뜯어 수리한다고 진땀을 흘리고 있으며 '삽질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집 마당은 지난 한주의 삽질을 통해 많이 정비되었습니다.
디딤돌 위쪽의 터가 두배정도 넓어진 셈입니다.
적어도 이전보다 2~3대 정도의 자동차가 더 주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명박정부의 사대강 죽이기 삽질은 어떤 성과를 가져올까요?
녹색개발이라는 미명아래 4대강 젓줄을 다 파헤치고 콘크리트를 갖다 부은뒤에
어떤 결과가 그들의 손아귀에 전리품으로 남아있을까요?
멀쩡한 사대강을 파헤쳐 운하로 만들겠다던 사람들이
운하의 허구성이 들어나자 무슨 관광용 보를 만들어 
그냥 방치(?)되어 있는 4대강을 관광자원화하겠다고 우기다가
그 역시도 말이 안되자 이제는 멀쩡히 살아있는 4대강을 
죽은 강이라고 우기고 그 강을 살리겠다고 
복지예산과 한국 미래 성장동력이 될 IT예산,
그리고 지방교부금등 지역예산을 줄여가며 
4대강 올인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명쾌한 적이 없는 이명박정부지만
4대강죽이기 사업은 참으로 이해가지 않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 정권의 대표 정책입니다.

위대한 삽은 더러운 MB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어
신성한 삽질의 본령을 되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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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도 청명도 지나고 벌써 오늘이 곡우랍니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의미로 6번째 절기랍니다.

이날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손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농사철에 접어든다고하지만

우리마을 비나리는 이제 고추농사준비가 한창입니다.

 

지난 몇일 봄같지 않은 차가운 날씨가 계속되더니

오늘 봄햇살과 함께 포근한 봄기운이 비나리마을 가득합니다.

그렇게 계절은 가고 오고,

계절따라 또 세월도 그렇게 흘러가버립니다.

 

하지만 봄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준비하고 땀흘려 가꾼 봄이 진짜봄입니다.

나의 손으로 만든 봄을 보여드립니다.

 

 

고추 모종이 이만큼 자랐습니다.

발아가 잘 되어 수량이 넉넉하고

이종도 적기에 해서 그럭저럭 건강한 모로 자랐습니다.

지난달 사과나무를 심는 날, 하도 바쁘다보니

 물주는 일을 잊어 물을 못주는 바람에

일부 모종이 말라 밑잎이 낙엽이 지긴 했지만

그뒤 영양제도 주고 이런저런 신경을 쓴 덕인지

건강한 모종으로 자라났습니다.

이제 한 보름 뒤면 비바람 불고

거친 햇살이 하루종일 내리쬐는

밭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애써 키운 고추 모종을 본밭에 옮겨 심는 농부의 마음은

품에서 키운 자식은 험한 세상 밖으로 내 보내는

그런 심정과 다름이 없습니다.

  

 

야콘이 새싹을 내 밀었습니다.

저 싹 한하나를 다 짤라 포트에 얾겨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옮겨 심은 싹에서 뿌리가 내리고

활착이 되면 4월 초순경부터 본밭에 옮겨 심을 예정입니다.

 

 

비닐 하우스 한쪽 끝에 무성하게 자란 봄채소가 싱그럽습니다.

고추파종을 하면서 열무녀, 상추며, 시금치 등 봄 야채 씨를

아무렇게나 뿌려 놓았습니다.

고추와는 달리 사람의 손길도 느껴보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하우스 한켠에 처박혀 있었지만

부지런히 뿌리를 내리고 잎을 펼쳐

누구보다도 먼저 싱그러운 봄향기를 하우스 가득 가져왔습니다.

  

 

울퉁불퉁, 삐틀배틀 못생긴 고구마만 골라 땅에 묻어놓았더니

멋쟁이 새순을 땅박 세상으로 키워내었습니다.

비단결 보다도 더 보드랍고 윤기가 흐르는

고구마 새순이 벌써 올 가을의 풍요를 예견케 합니다.

 

 

몇년을 묵히던 대추나무 사이 골을 올해 모처럼 갈아 감자를 심었습니다.

어차피 일년에 적어도 새번은 풀을 베어줘야하다 보니

차라리 그럴 바에는 감자라도 심자는 마음으로

관리기로 로타리를 치고 골을 만들어 감자 파종을 마쳤습니다.

올 여름 비나리미술관에 놀러오신 도시민의 농사체험용으로

요긴하게 쓰일듯합니다^^*

 

이렇게 나의 봄은 무르익어가고

비나리마을의 풍경은 그 아름다운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온통 슬픈 소식이 가득찬 대한민국에

비나리의 봄 풍경처럼

햇살가득하고 따뜻한 소식이 넘쳐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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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미술관]
제미란
이프, 2007년 10월 

필자 제미란은 어느날 보따리를 쌌는가보다. 그리고 길을 나서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그림과 작가를 만나고, 눈물 콧물 훌쩍거리며 밤새 수다를 떨고 회포를 풀었단다. 그 여정이 가진 의미를 좀 번듯하게 정리하자면 필자에게 그림을 보러 떠나는 일은 ‘순례’의 여정이자 여행자를 위한  "치유"의 과정이었고, 그리고 그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단다.


그런데 그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사실 평범할 수 있다. “길에서 쓴 그림일기”인가하는 책도 그렇고 뭐 ‘길’과 ‘화가’, 혹은 ‘길’과 ‘문학’을 짝 짓는 일은 ‘결혼중매업’만치 ‘통속적’이다. 자칫 제목만으로는 통속이라는 늪에 빠질듯 위태롭던 이 책이, 독자인 나에게 이필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여성미술 순례’라는 소제목이다.


좀 어거지로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림과 작가가 다름 아닌 “여성”이란 사실은 이 시대, 우리에게 뭔가 특별한 데가 있다. ‘계급’이라는 화두가 잠복하면서 ‘여성’과 ‘환경‘이 시대정신을 담는 화두로 급속히 대체되던 시대를 청년으로 살았고, 그 열정으로 나머지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세대가 바로 필자 그리고 독자인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뭇 싱겁게 끝나 버릴 수 있었던 ‘이산가족 상봉’이, 필자와 필자가 만난 작가와의 사이에 ‘여성’이라는 공통성에 기반 한 정서적 공감대 혹은 세계관이 있어 이토록 애절하고 신파적인 감동을 줄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 본다. 하지만 도대체 그 “여성”의 삶이라는 공통성이 뭐길래, 도대체 그 “여성성”이 갖는 세계관의 차이가 뭐길래 사상적 동지를 만난듯 필자와 작가는 그토록 애절할 수 있었을까?


참 많은 여성 작가의 구구절절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필자가 명시적으로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보질 못했다. 오히려 필자는 작가와 그림을 마주한 개인적 소회와 ‘사적인 대화’를 통해 그 ‘여성성’을 구현해 내고 있는 듯했고, 그것을 읽어 내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듯했다. 그래서 더 ‘여성’적 글쓰기에 성공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또 하나, 독자는 호기심 하나로 필자의 생채기를 들여다 본다. 방관자의 특권일 것이다. 나는 필자의 ‘언어장애’를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충돌에서 빗어진 ‘개인’의 좌절로 읽었다. 필자는 한 특수한 시기의 삶이 가졌던 규정성에 의해 침묵이 강요되었던 자신의 정신적 고통 혹은 상처를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치유과정의 설득력이, 치유를 필요로 했던 상처의 ‘우연성’에 의해 손상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일까? 동일한 시대 동일한 상황에서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 받닸던 기억이 있는 독자로서 필자에게 말을 걸고 싶다.


그토록 절실했던가? 스스로의 삶의 진정성에 그만치 충실했던가? 시대를 탓할 만치 우리는 당당한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뭐 시간이 흐른다고 알아질 문제도 아닐 것이다. 길에서 만나 작가들의 크기에 비해 필자의 고뇌는 너무 작은 것이 아닐까? 아니 그러한 나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닐까? 세상에 위대한 삶은 따로 있을지언정, 크기가 작은 삶, 가치가 작은 삶이 따로 있진 않을 것인데, 개인에게 사적인 고뇌는 세상의 전부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렇듯 이 책은 나같은 나태한 독자에게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귀찮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게으른 독자를 책 속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은 엉뚱하다. 책속에서 미술, 특히나 여성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인 내가 잘 잡히지 않는 갈피를 찾아 헤메다 문득 자신의 지난 시절 기억과 내면의 알리바이를 추적하고 있는 스스로를 섬짖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한번 더 읽어 봐야겠다.“



필자가 길에서 만난 니키 드 생팔, 키키 스미스, 루이 브루주아 등과 그들의 대표작들은 겨우 한두번 인쇄매체나 전자매체에서 마주한 것이 고작인 무식한 독자인 내가 필자 나름의 작가론이나 작품론이라 할 수 있는 해석과 의미부여에 대해 구구절절 토를 달거나 평가할 자질도 이유도 없다. 그냥 새 세상을 알아가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낯선 대양을 항해하는 초보 항해사의 어설픈 설레임과 괜한 호기 아마 그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졌던 지적, 정서적 반응의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 바깥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팔자에 없던 낸시 스페로와 낸 골딩과의 교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친절한 필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책을 통해 적어도 나의 무미건조한 삶에 삶이란 얼마나 구구절절한지, 그리고 치열하고 진실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남성과 다른 여성의 삶은 떠 얼마나 다르게 절실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다름아니라 미술 역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자기 표현의 한 양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끝났지만, 아마 필자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독자인 나는 책을 덮었지만, 그 여정의 동반자로서 여전히 길 중에 서 있다. 그리고 긴 여정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계속할 할 것 같다. 그리고 필자와 필자가 만나 작가와 긴 인생의 도반이고 싶다. 

나는 이책이 많이 팔리면 좋겠다. 필자 제미란의 글맛을 두루 나누어서 좋고, 여성과 여성 작가에 대한 세상의 이해가 넓어져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미란은, 모든 독자가 만나서 와인 한잔 사 달라고 졸라 긴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은 그런 필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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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홍인숙 저
서해문집, 2007년 10월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는 역사에서 배제된 "여성의 역사"를 한 시대를 풍미한 걸출한 여성예술가들의 "개인사"를 통해 복원하고 있다. 어디 우리 역사 속 여성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마는 사실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모든 시대의 모든 사회에서 여성의 역사를 "눈물"없이 "분노"없이 읽는다는 것이 어디 가능이나 하겠는가! 그래서 이책의 제목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가 공감될 수 밖에 없었다면 너무 감상적일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친구이자, 멋진 예술가인 많은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물론 그 반가움은 분노로 슬픔으로 변해갔고, 결국 상처로 남아 오랫동안 가슴에 쓰린 통증을 일으키겠지만,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면서도 결코 뛰어날 수 없었던 배제와 억압 구조 속에서도 나름대로 분투한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나아가, 조선과 근대를 있는 완벽한 가부장적 억압 구조속에서나마 여성 예술가의 삶이 단지 좌절과 굴종, 비애와 원통함만을 남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 얻은 또다른 위안이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여성예술가의 삶을 대하면서, 타고난 재주마저 다하지 못하고 삶을 마무리하거나, 열악한 삶의 조건을 뚫고 이룩한 예술적 성취마저 박탈되거나 가려져 전승된 예술적 성과물들이 미미하기 이를 데 없거나 아예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경우라 할지라도, 그들의 삶만으로도 현대를 사는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어쩌면 위장된 가부장주의가 그 야만적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시대를 딸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한 아버지로서의 절박함이 일으키는 ‘공감’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만난 허난설헌과 허소설헌, 황진이와 이매창 등등 많은 여성예술가 중에 누구 하나 애절하게 다가오지 않은 삶이 없었지만 끝내 그 애절함이 분노와 처절함으로만 남은 몇몇 여성예술가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김명순과 이월화, 그리고 나혜석... 그들은 어떻게 ‘계명된’ 근대에 조차 구조화된 가부장주의가 교묘히 작동하여 적가부장주의자를 박멸하고 응징하는가를 보여준 극명한 실예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모델'소설이라는 야만적 무기로 가부장주의에 도전하는 여성예술가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하고 능욕하고, 삶에 대한 애착을 그 근원에서부터 파괴해버리는 근대의 계몽된 가부장주의의 수호자인 남성 예술가들의 작태는 차라리 등에 칼을 꽂는 직접적 살해보다도 더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기독교의 마녀사냥이 있었다면, 우리 근대에는 '모델소설'이 있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와같은 '모델소설'을 대하면서 나는 왜 소위 최근에 있은 '신정아 사건'이 떠올랐을까? 합법과 예술을 가장한 폭력장치를 통해 가부장주의에 도전하는 불온한 여성을 살해했던 "모델소설"이 학력위조 사건인 "신정아사건"과 어떻게 같은 맥락일수 있을까?

우리사회에 만연한 출세주의에 빠진 한 여성이, 역시 우리사회에 강고히 뿌리내린 기득권 보호장치인 "학력주의"의 틈을 비집고 권력의 언저리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다 낙마한 소위 "신정아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가부장주의와 학력중심주의 그리고 여성상품화의 논리가 교묘히 결합된 한편 드라마를 보는듯했다.  

소위 잘난 여자에 대한 마초들의 숨겨진 적개심과 열등감이, 알고보니 가짜라는 사실에 직면하자 마자 "그 미친년이..."식의 폭발적인 대중적 반응으로 표출되고, 그러한 야만적 반응을 리더하는 보수신문은 연일 신정아에 대한 가십성기사로 도배를 하고 그리고 그 클라이막스가 된  "누드"로 신문 1면을 채운 문화일보의 인격살해행위까지... 그 과정에서 적어도 나는 현대문명의 기본적 합리성은 물론이고 소위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개인의 인격보호원칙은눈을 닦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고, 한국 언론의 '언론자유'로 분칠 한 얼굴 이면의 간악함을 날얼굴 그대로 직면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감히 그것은 신정아가 "여자"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김명순과 김일엽, 나혜석 그리고 이월화, 그리고 신정아 사이의 핵심적인 공통점 하나는 단지 그들이 여성이라는 것 말고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근래에 들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고, 가부장주의에 대한 도전이 거세지면서 어쩔 수 없이, 가부장주의 이데올로기로 분칠한 “심사임당”이나마 고액권 화폐에 사용할 인물로 채택하니 마니 하는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한편 코미디를 보는 듯 우습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변화가 근원으로부터 균열을 내며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난 그대들의 슬픔을 같이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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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농촌이 희망이다]
박진도 저
한울, 2005년 12월



농촌에서 농사로 밥벌어 먹고 살고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고 새삼 느끼고 깨달은 점이 많아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리뷰를 쓰게 되네요^^* 이 책의 많은 부분은 한국 농촌의 참담한 현실을 만들어온 개발독재 페러다임이 어떻게 지금껏 작동하면서 우리 농촌의 미래까지 발목잡고 있는가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사실 보수언론이나 신자유주의 지식인들에 의해 철저히 매도당하고, 무시당해온 농민의 입장에서 지금 농촌의 피폐함이 농민의 게으름이나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치 못하는 보수성, 무능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이익편에서 추진되어온 국가적인 농업희생 정책에 기인한다는 필자의 분석만으로도 가슴이 다 시원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필자는 지금의 피폐한 농촌 현실을 가져온 원인을 분석하는데 거치지 않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농촌공동체를 향한 열정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특히 서울공화국의 해체-지방이 살아야 농촌도 산다는 인식에 근거한-, 경쟁력 지상주의에 기반한 선도농 육성 정책의 폐지 등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농촌문제의 기초는 농협의 혁파에서 오고 농협의 혁파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에서 온다는 일관된 주장은 특히나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이책을 농업 종사자, 농협관계자, 농업농촌정책을 담당하는 많은 분들이 읽고 우리 농촌을 아름답고 넉넉한 복지 공동체로 거듭나는데 기여토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상깊은구절]
농업 농촌의 가치와 사회적 역할은 지금보다 분명히 증대하고, 농촌에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자.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는가 하는 것이다. 첫째, 농촌은 생활공간으로 발전해야한다. ... 농촌 주민도 도시인 못지않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생활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농촌은 경제활동 공간으로서 발전해야 한다. 농촌 지역의 기간산업인 농업의 발전뿐 아니라 농민과 비농민에게 다양한 경제활동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셋째, 농촌은 환경 및 경관 공간으로서 발전해야 한다 . ... 넷째, 농촌 지역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주체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지역의 주체역량이야말로 농업 농촌 발전의 요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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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명호면 7개리로 구성된 '청량산비나리권역"
마을종합개발사업이 시작된지 벌써 3년째인데 그동안
이런저런 주민역량강화사업이 진행되었고
최초의 시설 공사가 
다음달이면 착공이 될것 같습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올 가을정도에 청량산 도립공원내에
농산물홍보관이 준공이 되고,
내년봄이면
비나리 마을활성화센타가 역시 준공될 예정입니다.

마을 활성화센타는 강의와 숙박, 식사가이루어지는
 마을사업의 핵심 시설로 일종의 '학교'로 활용될 것입니다.
가칭 '비나리시민학교'는 문화 예술 등 다양한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할 예정이나 기본적으로 농촌마을 사업이
일반적으로 대상으로하는 고객과는 다른 새로운 대상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할 계획입니다.
마을 사업을 통해, 도농간의 이해를 깊이하고,
농업농촌의 가치를 확산하고, 농촌공동체 문화를 되살리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도움이 되는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될 목표지만,
우리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고 민주주의를 성숙하게하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민주주의 시민강좌도 개발 운영할 생각입니다.

현제 진해중인 이런 저런 사업들이 완료단계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현 추진위원회는 마을운영위원회로 전환이 되고
출자를 통한 법인을 설립하여 완공된 시설의 운영권을
봉화군으로부터 이양받습니다.

그러면 그대부터 마을사업은 본격적인 경영단계에 들어갑니다.
아직 시간이 많지만 향후 마을사업 경영을 위한
조직적 준비, 사업 아이템 준비 등을 슬슬 시자할 때가 되어
아래와 같은 토론자료를 기초로하여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청량산비나리주민여러분은 물론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을 추진중인 타권역,
나아가 농업 농촌에 대한 관심을 가진 많은 분들과 청량산비나리권역의
마을사업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자

미흡하나마 아래의 토론자료를 올립니다.
많은 고민하시고 많은 좋은 생각을 모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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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청량산 비나리권역 운영방안(토론자료) 

 

작성일 : 2010415

 

       1.     본 토론자료는 향후 정밀한 운영방안을 마련하기위한 기초 토론자료임.

2.     지금까지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토론되어 온 내용을 중심으로 위원들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될 주요 지점을 짚어보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됨.

      3.     향후 토론을 통해 각사안을 분류하고 정리하여, 우선 결정되어야 할것이   
             무엇인지 순위를 정하고,
사안별로 중점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하여
             토론을 거친 후 결정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됨

4.     토론을 통해 정리된 보고서는 컨설팅을 받기 위한 기초자료로 유현소프트에 제공될 것임.


 

현재 사업의 추진 상황은 기본계획과 이에 따른 주민교육, 연수 등 소프트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시설 관련해서는 세부설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사업 관련한 부지 매입이 막바지에 이르렀음.  

1차사업의 주요시설물에 대해 발주와 착공이 있고, 마을활성화센타(학교), 청량산 도립공원 농산물홍보관,

귀농연수시설 등이 2012년초까지 완공될 예정이고, 실제적인 사업운영 시작 시점은 2011년 여름부터로 예상됨.

개별 사업별로 보면 운영이 필요한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고계리 담장사업,

북곡리 환경개선 사업, 만리산 마을회관 사업 등은 완공과 동시에 사업이 완료되고, 마을커뮤니티센타,

농산물홍보관, 귀농연수시설, 장류가공사업 등은 완공과 동시에 경영(운영)이 필요한 사업임.

현단계에서 제일 중요한 과제는 사업 경영을 위한 조직을 꾸리는 것이고(법인), 장류 가공시설 설치에 필요한 마을자부담금과 시설 완공 후 초기 운영자금의 마련 방안을 세우는 일, 그리고 그 시설들을 경영할 세부 계획을 세우는 일 등임.

이에 따라 시설물의 공사진행의 일정과 맞춰 운영위원회의 준비 스케줄을 예상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법인설립 2010

2.     농산물홍보관 운영시작 20109

3.     마을활성화센타 운영자금마련 2011 4

4.     마을활성화센타 운영시작 2011 5(개관식)

5.     마을축제 시작 2011 5

6.     귀농연수관 운영시작 2012 5

7.     장류가공시설 자부담금 마련 2012 12

8.     장류가공시설 운영 시작 2013 10  


 

1.     법인 설립과 운영조직(이사회) 구성

1.1   법인설립

-       원칙적으로 단일 법인으로 해야 운영의 효율화를 기할 수 있다

-       출자는 마을주민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       이사회는 주민총회(주주총회)에서 구성한다.

-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외부 출자자도 허용한다.(출향인 등)

-       출자 주체는 개인이어야 한다.

-       개인의 출자한도는 출자 총액의 30%이하로 제한하여 의사결정의 독점을 막는다.

-       출자금은 장류가공시설 자부담품 포함 1억에서 15천만원 정도가 적절하다.

-       출자금은 일정기간동안 이익 배당을 보류하여, 법인설립에서 출자 완료기간 동안 출자 시기에 따른 권리 차별을 두지 않는다.

-       현 위원은 모범적으로 출자에 참여하여 여타 마을 주민의 출자 의지를 북돋는다. 

 

타 권역의 사례

1.     예천회룡포권역

-       농산물 가공시설을 별도 법인으로 하고 모법인에 보조금의 1% 지불 

2.     상운권역

-  마을별 대표1인으로 운영위 구성, 1인당 50만원 출자로 모법인 구성. 개인자격으로 출자

-  저온저장고, 장류가공시설은 별도 법인으로 하고 보조금의 년 1%를 모법인에 납부.

 

3.     춘양서벽권역

- 솔잎엑기스공장, 장류공장 등은 별도 법인, 저온저장고등은 모법인 소유로 작목반 등에 임대

- 보조법인은 보조금의 년3% / 15년동안 모법인에 납부.

 

1.2   운영위(법인)구성

                   - 운영위(이사회)는 운영위원장, 사무국장(총무/회계), 경제사업부장
                      (
부위원장), 탄매팀장
  가공팀장, 교육사업부장(부위원장),
                       
학교사업팀장, 귀농귀촌지원팀장 등으로 구성한다.

- 운영초기에는 경제사업장이 가공팀장(공장장), 교육사업부장이 귀농지원팀장을 겸임하는 등  조직구성을 단촐하게 할 수도 있다.

- 판매팀은 농산물홍보관을, 가공팀은 가공공장을, 학교사업팀은 활성화센타를 귀농지원팀은 귀농연수관을 관리, 운영한다.

 

1.3 출자금 모집 방안

- 초기에는 운영위원들이 일정액을 모범적으로 출자한뒤, 법인을 등록하고, 이후 공개적으로 마을주민에게 홍보하여 출자에 참여토록 유도한다.

- 법인 설립을 위한 최소 출자액을 1,000만원으로 하고 이를 빠른 시일내 달성토록 노력한다.

  

2.     사업별 운영방안

2.1   농산물 홍보관

-       임대, 위탁운영 혹은 직영할 수 있다.

-       임대 시 안정적인 임대료를 받을 수 있고, 업무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       위탁운영시 <() 만리산사과작목반)> 판매량에 따라 수수료를 징수하는 방법이 있다.

-       직영 시 농산물 판매에 따른 수수료를 징수 하고, 시설 관리, 판매 등에  인력을 배치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가능 수입을 증대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시설의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       임대시 연 임대료를 500만원으로 한다.

 

2.2   귀농연수관

-       예비귀농자 대상 장기 임대(3개월에서 1년단위)를 주로 하고  년 임대료 1~200백만원 정도가 적절하다고 본다.(전기세, 연료비 등 별도)

-       6채를 전부 귀농연수관으로 임대하지 않고 2~3채는 펜션으로 사용해 수입 증대를 기할 수도 있다.

-       년 총 1,000만원 수입 중 관리비, 관리인건비 충당후 순수익 500만원 정도 예상된다.

-       현 귀농 상담자의 수요만 보아도 운영에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2.3   마을활성화센타

- 주시설 : 강의실, 침실, 식당, 휴게실(까페)로 구성  

- 주사업 :

1) 공간 임대 및 숙식 제공 : 단체 MT, 연수를 위한 공간으로 임대하고, 관내 레프팅 업체 등과 협약하여 숙박을 제공한다.

2) 교육사업/문화예술, 농업농촌 관련 교육사업 중심으로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 건강관련 프로그램, 시민강좌 등을 개설하여 도시민을 유치한다.

 

- 운영방안

1) ‘교육사업의 성격을 정확히 하여, 타권역과 차별성있는 최고의 강좌,  최고의 강사로 꾸려진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2) 지역내 다양한 인재를 발굴 육성하여 프로그램 진행에 적극 활용한다   () 심마니, 서예가(정민호학예사), 헬스전문가, 태권도유단자, 미술가, 생태해설가  숲해설가, 농사이야기꾼, 사과박사, 마을나룻터지기 등을 임명하여 프로그램 진행에 참여토록 한다.

3) 마켓팅 대상을 정확히 하여 고객유치를 위한 외부 자문단을 꾸리고 이를 적극 활용한다.

4) 강의실은 연 50, 숙박시설 연 100일 이상 운영을 초기목표로 한다.

5) 식당은 마을 부녀회를 활용 지원팀을 꾸려 직접 운영하거나, 지역 업체에 운영을 위탁할 수 있다.

6) 휴게실은 음악까페로 활용한다. 직접 운영도 가능하나. 위탁운영, 임대도 가능하다 년 임대료 3~500만원 예상.

7) 마을활성화센타내 명호관광안내소를 설치 운영한다. 지역내 식당, 민박, 래프팅 등   업체로부터 유상등록케하여, 각종 인쇄물 등에 홍보해주고 고객 유치하여 배정하고 적정한 수수료를 받음.< () 매출의 5% >
 

* 학교 운영관련 외부 자문윈원단을 구성중.

- 자문위원단은 년 1회정도 학교사업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보고받고,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에서 지원할 방안을 강구하는 것을 의무로 합니다.

현재까지는 예술문화 관련한 영역에 계신 분을 위주로 구상 중인데 '사업에 도움이 될만한' 분이 계시면 추가해 나가야. 현재까지 접촉했거나 제안하면 승락해 주실 분은 다음과 같음.

<개인신상정보로 생략>


 2.4   장류가공시설 (다음으로 연기)

 

 

초롱축제 기초기획안 

-       착안: 초롱계를 모태로 하여 그 문화와 정신을 계승 지역 통합과 활성화를 도모할 마을 축제를 개발한다.

-       초롱계란? 마을에 전기가 없던 시절, 이웃의 대소사에 주민들이 초롱불을 만들어 걸어주고,

        두부나 떡을 부조하던 풍습. 비나리, 고계리 등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전함

-       1970년대에 사라졌지만 2003년 비나리미술관 개관식 재현하여 많은 호응을 받음(4개방송국 방영)

-       이를 마을내 행사에서 권역의 축제로 확대 발전시키는 형태가 될 것

-       주민의 통합, 마을 간의 통합, 그리고 서로 돕고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 공동체의 건강한 원시성을 드러내는 축제가 될 것임.

-       구체적 안으로는 각리별 대항 올해의 초롱시상제, 각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 초롱을 들고 활성화센타로 모여듬.

-       활성화센타에서 다양한 공연, 행사 등을 진행

-       12일 정도의 축제로, 5월고추정식 직후 정도에 맞추면 좋을 것 같음

-       1일차 만리산 사과과수원 찍기 사진대회, 위뒷실 마을 그리기 사생대회초롱행렬, 공연 및 잔치, 장터운영, 농촌미술제, 농촌문학제 등 진행,

-       2일차 올해의 초롱선발 및 시상식, 사생대회 평가 및 시상식

-       마을 역사 사진전 개최,

-       마을이야기 구술대회 등 개최

-       주민 솜씨 자랑 농부는 예술가전 개최

-       초기에는 주민 단합과 지역 홍보, 지역 문화수집에 집중하나 장기적으로는

-       농촌공동체 문화의 성지로 키워나갈 것을 도모한다.

-       농촌다문화축제 인터빌리지구상

-       사라져 가는 농촌 공동체 문화를 수집, 복원, 집약하여 농촌다문화 축제로 만드는 과정은 봉화군내 타 권역과 공동으로 추진 가능.

 

재정 계획 기초기획안 

-       출자금 : 1 ~ 15

-       년 예상 수입

농산물홍보관 임대료 : 500만원

학교임대료(숙박포함) : 1 (50명기준) 50만원*50 = 2,500만원

식당운영(임대)수입 :  40*100*2*5,000 = 4,000만원

까페임대료 : 300만원

강좌진행수입 : 3,000만원(10강좌/ 20/20만원)

귀농자연수관임대료 : 1,200만원

 

합계 11,500만원 중 목표 70% 달성시 약 8,000만원

 

-       비용

건물유지관리 : 수도료, 전기료, 연료비, 보수, 소모품 등 : 1,000만원

프로그램진행비, 강사료 등 : 1,000만원

식재료비 : 2,000만원

시설관리자인건비 : 500만원 (자활기관 청소사업활용)

식당운영인건비 : 1,000만원

전담자 인건비 : 1,000만원(사무장 외 1)

 

-       순수익

2011년 수익 0를 목표

2012년부터 수익 +로 전환

2014년부터(장류사업시작년도) 출자배당을 하는 것을 목표

 ---------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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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미치다]는 얼마전 무료사진서비스 사이트 개설 이벤트에서 얻은 책이다. 
이 사이트에 와이프가 노무현 대통령과 찍었던 사진을 찾게된 추억담을 올려
5등으로 선정되었다. 무척 신이났고 기분이 좋았지만
이 책을 손에 넣기 까지는 순탄치가 않았다.
책을 받을 사람의 인적사항과 주민증 사본을 보낼달라고했지만
메일은 들어가지 않았고 몇번이나 반송되어 왔다.
그 사이트의 고객게시판에 사정을 알려서 겨우 받게 되었다.  
그런데 대체로 그렇듯 무엇인가를 공짜로 받게되면 
무조건 기분좋은  일이긴하지만 별반 쓸모 없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가 넘치는 세상에 살면서
누군들 사진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겠냐마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사진에 대해 책 몇권 재대로 읽은 적은 없지만
항상 사진에 대한 이해에 목말라왔던 것은 또한 사실이다.

농사일에, 그리고 게으름에 읽지 못하고 쌓아놓은 책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사진에 대한 책이라는 기대에다가, 작은 판형과 얇은 두께가 주는 적은 부담.
그리고 무엇보다 상품으로 받은 책에 대한 예우를 고려해서
[사진에 미치다]를 먼저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사진에 대해 알고 싶은 초보자에게 필요한 책으로,
사진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도 들어봄직한 유명 사진가들을 포함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진가 까지 총 11명의 사진가를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11명을 어떻게 왜 선정한지는 끝내 알수 없었지만,
아마 필자의 개인적 취향 이상의 사진에 대한 어떤 입장이
선정의 기준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아뭏튼 이 책은 사진가의 삶, 사진가의 활동, 사진가의 생각을 이해함으로써
역으로 사진을 이해하기위한 통로를 제시하고자 집필된 책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성공여부에 대해선 부정적이지만!
사실 초보적 의문이지만 어떻게 사진이 예술이 되는가에 대해 늘 궁금했지만
그리고 사진이 어떻게 회화와 더불어 예술의 한 장르로서
공존 가능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이 채은 그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만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솔직히 이 책은 성공한 사진가의 '성공기'정도라고 보면 차라리 더 적당해 보인다.
부자되기. 성공하기 관련 책이 넘치는 세상에서
사진가로 성공하기 혹은 사진가로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기가 한권 더 추가된 셈이다.

책을 덮으며 여전히 남는 의문을 곱씹어 본다.
사진이 무엇인지, 왜 사진을 찍는지.
그리고 좋은 사진가가 어떤 사진가 인지...
아쉽지만 이 책은 좋은 사진은 어떤 사진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단 한마디, '좋은 사진가는 성공한 사진가'고,
'좋은 사진은 성공한 사진가가 찍은 사진이다!'는 것 말고는...

책을 덮으며 후회한다.
읽을 책을 선정할 때는 좀더 신중해야지!
그리고 세상사가 주는 지혜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한다.
역시 공짜는 공짜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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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자를 뒤집어 쓴 귀신이다.
유교적 덕목이라는 오래된 집에 사는 귀신이다.
그 집에 나의 자리는 없었다.
나는 슬며시 스며들어 나를 배척했던 그 집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나는 禮이고 廉이고 義이다.


염(廉), 2010



(), 2010


의(義), 2010


문자도란 것이 있다.
조선 지배 이데올로기인 유교의 도덕관을 대표하는
8자의 한문자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초기에는 권력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지배양반계급에 의해 독점적으로 이용되었지만 ,
18세기 이후 신분질서의 경계를 넘어 민간에 보급되면서
민화화한 문자도로 완성된다.
문자도가 민화화함으로서 문화예술적 성격을 가진 장식물로 자리매김 된다.

유교적 도덕덕목을 나타내는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여덟 글자는 바뀌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 본령을 잊고 장식적 요소로 강등되어 일자무식한 여염집 사랑방을 장식하는
조형적 요소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그와 같은 문자도의 계급문화적 성격 변화는 
문자도가 가진 유교적 도덕관의 표현이라는 틀을 깨고,
글자의 획에 따라 연관된 고사속의 장면 등을 그려넣기도 하는 등
장식성이 강한 자유분방한 형식의 발전을 야기했다.
이렇게 문자도는 부가된 다양한 민화적 상상력을 통해
민중의 생활관념이나 정서, 신앙을 표현하는 하나의 예술적 매체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대중화는 곧 '희소성을 기반으로한 고급문화'로 부터의 추방을 의미한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문자도는 시골 장터의 '혁필쟁이'를 통해
명맥이 유지되곤 했지만 그 빛을 잃어버린 게 사실이다.
 
류준화는 문자도의 민화적 상상력을
현대적 감수성을 통한 여성적 패러디에 이용한다.
죽은 문자도가 시대정신의 세례를 받고
유교적 덕목에서 철저히 배제된 여성적 가치와 더불어 부활한다.

그렇다고 류준화는 반 여성적인 유교적 덕목을
폭로하고, 모멸하고, 격하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배제된 여성성을, 근엄한 유교적 도덕관에 스며들게 한다.
그 무기는 다름아닌 색과 꽃과 여성적 선이다.
류준화는 문자도의 그 조형적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여성성이 배제된 유교적 덕목을 표현코자했던 문자도가
공교롭게도 가장 여성적 조형미를 담지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섹션인종 - 작가 : 류준화 

 

인종은 지극한 효성과 너그러운 성품을 지녔으나 역대 조선왕 중 최단 기간 재위했던 불운한 왕이다. 어려서 생모인 장경왕후를 여의고 계비인 문정왕후에게 모정을 향한 애절함과 지극한 효성을 보여준다. 그는 조선왕도의 근간인 성리학을 중하게 여겼으며 선비의 고고한 성품을 지닌 왕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알력과 문정왕후의 지속적인 계략 속에 일찍 삶을 마감했다. 특히 자신의 아내인 인성왕후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계모를 위해 스스로 절손하였는데, 문정왕후의 친자를 세자로 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류준화

류준화 작가는 인종의 효심과 고고함에 주목하였다. 문정왕후가 생모는 아니었지만 부모자식간의 도리를 다하였으며, 이기심과 모략의 덧없음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비롯한 지고한 희생과 초연함을 보였던 인물로 평가하였다. 작가는 전통적인 문자도를 작품형식의 토대로 삼아 작가적 시각을 담아내었으며, 인종의 선한 인간성과 타인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고통과 감내의 슬픔 속에 피어나는 꽃처럼 슬프지만 고운 빛깔로 구현되었다.

[출처] 섹션3 인종 - 류준화|작성자 고양아람미술관

<전시정보>


- 고양문화재단 아람미술관
- 왕릉의 전설전 
- 2010년3월18일 ~ 6월 13일
- 연계 프로그램으로 조선왕실문화와 전통제례문화 체험관 운영
- 조선왕조에 대한 학술 강연 진행 
- 일반 3천원, 19세 미만 2천원.
- 문의:(031)960-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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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다 공중파가, 케이블 방송에 개인 방송까지
이런 저런 방송이 흔한 세상이다보니
저같이 귀농해서 농사짓고 하는 사람도 방송을 타는 경험을 여러번 했습니다.
초기에는 농산물 팔 욕심에
방송 제안이 오면 쉬 응하기도 했고,
간혹 출연료라고 몇푼 받게되면 기분좋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두번 방송 횟수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이건 영 아니다는 판단을 굳혔습니다.
방송에 응하는 과정에서 사실 많은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괴로움도 있었고 휴유증도 있었습니다.
팔 상품이 없으니 '쪽'만 팔게 되고, 나아가
'반갑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나 방문을 받게 되는 것은
다른 모든 즐거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세상에 귀농자가 지천인데 다른 분들은
섭외가 어려운지 요즘도 자주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곤 합니다.
하지만  아예 '귀농' 관련 개인 프로그램은 절대로 응하지않기로 마음 먹은지 오래고,
대신에 마을관련한 프로그램 정도는 마지못해 촬영에 응하고 있습니다.


'귀농' 등 '농촌'과 관련한 프로그램의 방송 촬영에 응하면서 느낀 몇가지 문제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소재설정, 대상섭외에 있어 제작자들의 불성실을 느낍니다. 요즘 귀농자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림이 되는, 스토리가 되는 귀농자를 꼭 짚어 내기란 쉽지 않겠지만. 몇몇 유명세를 얻은 귀농인이 맨날 잡지에 나고, 신문에 나고, 방송에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거기다가 방송내용도 다 대동소이합니다. 인터뷰라고 묻는 질문도 다 똑같구요. 기본적으로 표현하고자하는 가치나 틀이 다 비슷하기도 합니다. 

두번째, 비용대 효율 문제인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너무 번개불에 콩구워먹기 식으로 촬영이 급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맨날 그 내용이 그 내용이고, 나아가 자연스런 취재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귀농자의 일상을 취재한다면 오랜 시간을 두고 계절에 따른 생활의 변화과정을 취재한다든지 해서 총제적 모습을 방송에 담는 것이 좋을 듯한데, 일단 촬영에 들어갔다 하면 그냥 밀어붙입니다. 그러다보니 억지 연출도 요구하기도 하여, 촬영당하는 사람을 짜증나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번째, 방송관계자의 권위주의랄까, 자기중심주의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촬영에 응한 것을 후회하고 촬영 실무자들과 마찰이 있기까지 합니다. 업무중심적인 사고가 피촬영자의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치 못하게 하다보니, 피촬영자가 무례나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여름날 동네 할머니들을 콩밭에 불러 놓고 동일한 동작을 계속 반복시켜 지치게 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봉화의 버스정류장 벽화가 잠시 유명세를 타면서 작업자인 저의 처에게 인터뷰 요청이 있어 응했는데, 알고보니 작업에 대한 인터뷰가 아니고 오락성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있다, 없다'를 외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우 사전에 충분히 설명이 있어야 하지만 전혀 사전 설명없이 작가를 불러놓고 뜬금없는 요구로 기분을 상하게 한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방송관계자의 개인적 자질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방송사의 제작시스템 상의 문제가 아닐까 짐작됩니다. 방송사로 부터 의뢰를 받아 적은 비용으로 제작을 감행하다보니 이런저런 여건을 살필 여유도 없고, '질'보다는 '효율' 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짐작됩니다.

지난주 토요일 한 방송국에서 비나리미술관의 '토요자연미술교실'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취재오신 분들이야 경우 바르고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결과적으로 조금의 불미스런 마찰이 있었습니다. 수업 시작 시간인 오후 2시에 도착하기로 한 촬영팀이 한시간여를 늦게 도착하면서 애초의 스케줄이 어긋나 버렸습니다. 아이들과 마을 길을 산책하면서 자연 소재를 주워, 미술관으로 돌아와 찰흙판 위에 나름의 봄동산을 꾸미는 수업을 진행하려 했지만, 수업시작 시간인 2시를 넘겨 그냥 찰흙으로 도자기 만들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취재량이 부족해 다른 체험 장면을 연출할 것을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즐거워야할 촬영과정이 그렇지 못하게 된 셈입니다. 서로 기분좋게 헤어지긴했지만, 촬영을 나오신 그분들께도 미안함이 남고, 뒷맛이 개운치가 못했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별로 '문제상황'이 아닙니다.  약속을 늦은 돌발상황이 '문제'가 아니고 촬영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서른명이 넘는 아이들의 그날치 수업 분위기를 흐트려놓게 되는 상황이 더 근본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촬영과정이 더 섬세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방송을 타게 해주니 너희들이 협조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태도는 옳지않다고 봅니다. 특정 목적으로 방송을 이용할 경우가 아니라면 취재에 따른 불편함과 들어가는 시간, 기타 노력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출연료'로 제공하고 촬영협조를 구해야한다고 봅니다. 

한번씩 방송국 관계자로 부터 '이제는 농촌도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투덜거림을 듣곤합니다. 옛날처럼 방송에 나간다면 무조건 좋아라고 협조하던 시절은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농촌인심'이 나빠져서 그런 것이 아니고,  촬영과정에서 감내한 불편함이 방송을 통해 보상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입니다. 

사실 방송을 타게 되어 즐거운 경우도 많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로 부터 연락을 받기도 하고, 촬영과정에서 방송국 관계자분들과 인간적으로 친하게되어 촬영이 끝나고 헤어지는 것이 서운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뭏튼  방송을 타는 일이 누구에게나 덜 괴롭고 더 즐거운 경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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