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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봄을 알리는 징후가 우후준순처럼 솟아나는 날, 비나리마을의 새 주민이 된 와우네, 산이네, 그리고 저희 부부가 함께 운곡천을 걸었습니다. 삼동 가는 국도 다리 밑에 자리한 명호정미소 앞에서 먼저 온 가족이 행여나 늦게 도착할 도반을 기다렸습니다. 출발예정시간인 오전 10시를 조금 넘겨 같이하기로 했지만 오지 않는 분들께 확인 전화를 하고 운곡천변 길을 따라 걸음을 시작했습니다..

 

국도가 지나는 콘크리트 다리 밑을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운곡천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반깁니다. 두어 사람이 같이 걸을 수 있을 폭의 흙길과 큰물이 나도 다 받아줄 것 같은 펑퍼짐한 물길이 나란히 기대어 흐릅니다. 장난스런 물길이 만들었을 모래밭에 갈대가 자라고, 길과 산이 만나는 언덕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지난 세월 갖가지 물굽이를 지켜봤을 굽은 소나무 두어 그루가 길을 따라 흐르는 물길을 들여다봅니다. 강바닥에 누워있는 형형색색의 해맑은 자갈들이 아침햇살에 뒤척이고, 밤새 숨죽였을 강물이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합니다. 물길을 산을 피해 강을 열었지만 무거운 몸을 피하지 못한 바위는 오랜 세월 물길에 씻겨 새 얼굴을 얻었습니다. 무심코 지나는 발길을 동행의 외치는 소리에 멈췄습니다." 스크림이다!" 물살은 세월과 공동 작업으로 뭉크의 스크림을 창조했습니다. 아니면 뭉크가 '스크림'을 그리기 전에 언제 이 바위 곁을 지나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상에 어떤 예술도 자연 앞에 초라합니다.

운곡천을 걷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 매력에 빠져들고 어느 순간 운곡천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름 모를 물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너는 왜 이 길을 걷는지 물새가 묻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쫒아 세상의 온갖 편리를 다 누리고 그것도 부족해 또 원시의 자연마저 누리려드는 인간의 욕심은 끝간 데가 없습니다. 원시적 생태 그대로 놓아두기에 뭐가 그리 아까운지 꼭 사람의 손길을 보태 [생태공원]이라 이름지어야하고, 더 끔찍하게는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하나로 청정한 산하를 인간 욕망의 배설물인 갖가지 폐기물의 매립장으로 이용합니다. 한 때 강을 따라 사람이 살았고, 지금은 그 흔적만 길로 남아 드물게 찾는 사람을 반기고 있지만 이 아름다운 운곡천에 언제 개발의 삽질이 시작될까 두렵습니다. 물살이 강을 열고 강을 따라 사람이 들어오면서 길이 생기고,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문명의 편리가 부르는 도시로 사람들은 떠나갔지만 언제 다시 사람들은 포클레인을 앞세우고 이곳 운곡천을 점령해 들어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운곡천 산업폐기물 처리장 설치 시도를 명호면 지역주민들이 함께 저지할 수 있었지만, 자본의 힘은 강하고, 그 생명을 끈질겨 언제 다시 개발의 기치아래 물밀듯 운곡천을 점령해 들어올 지 알 수 없습니다.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마주친 민가가 명호양어장입니다. 출입을 삼가라는 팻말을 남겨놓고 외출중인 주인에게 전화를 걸고, 주인 없는 집 마당을 가로 질러 운곡천 길을 이어갑니다. 주인없는 집 마당 한편의 물웅덩이에는 맑은 하늘이 가득 담기고, 온갖 모양의 구름들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다녀갑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의 터전도 만나게 되지만 운곡천을 따라 걷다보면 강을 따라 사람들이 살았던 옛 흔적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가시고,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해 쓰러져 가는 폐가가 낯선 사람들을 반깁니다. 잡초가 무성한 마당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있는 살림살이의 흔적들이 기울어 가는 저 집 기둥이 반듯이 지붕을 이고, 그 아래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한 지난 한때의 살가운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저 지붕아래 아기 울음소리 가득하고, 어머니가 끓이는 된장국 냄새가 석양지는 하늘로 피어오르는 시간, 멀리 온종일 밭을 갈다 돌아오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농토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운곡천이 지나는 이 좁은 골에 그분들은 어떻게 가족을 먹이고 살아갔을까 궁금했는데, 천에서 머지않은 곳에 금광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몇몇 폐가가 작은 동네를 이루다 시피 흩어져 있고 산같이 막아선 자갈 더미는 모두 한 때 이곳이 금을 쫒아 들어온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한 시절, 한 가족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을 항아리들이 폐가의 한 켠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빈 항아리만 나뒹구는 폐가의 마당에도 봄 햇살을 가득합니다. 그 언젠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을 위한 밥을, 소수의 사람에게 부를 가져다주었을 금광의 흔적이 이렇게 완연한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몇 년 전 폐광의 침출수로 운곡천이 중금속오염으로 몸살을 앓자 많은 예산을 들여 침출수 방지 처리를 했다고 합니다. 아직 폐광의 흔적을 지우기에는 세월의 경륜이 부족한지 폐광 근처에는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돌을 갈고 금을 모았을 무쇠덩어리 기계가 다 삭아 자취를 감출 만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맑은 생명수가 흐르는 운곡천을 상상해 봅니다.

강길을 걷기 시작한지 두어 시간 만에 사미정 계곡근처까지 당도를 했습니다. 사미정 계곡 첫 집이 보이는 바위위에서 아침 일찍 서둘러 싸온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강과 산이 너무 가까이 만나 길이 끓어진 곳에서 어렵고 위험한 곳을 피해 겨우 강을 건넜습니다. 여차하면 아직은 차가운 강물에 풍덩 빠져 버릴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강 건너기는 이날 하루 걷기의 최고 이벤트였습니다. 다시 강은 길을 되찾고 우리의 걸음은 빨라졌습니다. 잠시 강길을 벗어나 아스팔트 포장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멀지않은 '나무피리요술피리'농원엘 들렀습니다. 불시에 들이닥친 우리는 주인장이신 조성용 김연희 부부를 만나 맛난 차를 얻어 마시고 지역문화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이들 부부의 '음악정원 만들기'계획에 대해 듣고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머지않아 '음악정원'의 풀을 뜯을 염소 한 마리가 사람들의 발길이 붐빌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무피리 요술피리' 음악정원을 떠나 다하지 못한 운곡천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사미정을 지나 사미정계곡 입구에서 국도변버스정류장에 도착해보니 오후 4시 40여분, 농사일에 바쁜 어르신께 차 시간을 여쭈어 보니 5시 15분경 버스가 오긴 하는데 우리가 돌아가야 할 명호로 가는 차인지는 알 수 없답니다. 오늘 하루 지난 시간을 음미하며 담소를 나누며 서서히 땀이 식고 한기를 느끼기 시작할 무렵 버스가 도착했지만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인 춘양으로 돌아나가는 차랍니다. 결국 농사일에 바쁜 이웃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또 한대 오고 다행히 명호를 간다기에 무조건 올라탔습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다시 전화를 했지만 부지런한 이웃 청년은 벌써 차를 몰고 사미정 계곡입구 근처까지 오고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운곡천 강길 걷기로 보낸 하루는 삶의 애틋함과 자연의 숭고함을 나누고 이웃의 정마저 담뿍 느낄 수 있었던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산을 비켜 강이 생기고 세월을 겪으며 강줄기를 넓혀왔을 운곡천을 따라 봄바람 맞으며 정겨운 분들과 같이 걸을 행복한 봄날의 하루는 오랜 동안 저의 기억에 남아 그리움으로 익어갈 것입니다.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등반 후 청량산이나 명호면 소재지 인근에 있는 민박집에서 1박 후 명호면 도천리 삼동다리 밑에서 운곡천 걷기 시작, 운곡천을 따라 3~4시간 약 15km를 걸으면 사미정에 도착, 명호에 승용차를 두고 걷기에 나선 경우 35번 국도를 따라 약 4시간 15km에 이르는 삼동 고갯길을 지나 출발지로 돌아온다.

가벼운 걷기로 마무리하실 분은 사미정 계곡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거나, 숙박지의 차량 지원을 받아 명호로 돌아온다.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기에 나선 분은 명호에서 사미정까지 걸은 뒤, 다시 춘양까지 2시간 약 10km를 걸어가 춘양면 소재지를 둘러보고 만산고택이나 민박집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태백으로 이어지는 외씨버선길 걷기에 나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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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문명의 발전과 이를 통한 대중매체의 폭발적 증가는
지식과 정보의 보편화와 동시에 집중화를 낳았다.
그와같은 사회 기술적 변화가 몰고온 극적인 변화중의 하나가
바로 '스타'라는 신인류의 출현이다.
현대사회는 극장이나 TV의  스크린 혹은 라디오의 전파를 통해
낡은 시대의 지배자인 장군이나 황제가 아니라 새로운 권력자인 '스타'를 낳았다.
처음에 그들은 가수이거나 배우였지만,
어느새 스포츠맨이었고 그리고 글을 다루는 작가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와같은 시대적 조류의 끝에서 나는 여행가 스타들을 보았다.
그들은 여행을 하고,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과 깨달음을 글로 쓰고
그리고 대중강연을 통해 '스타'가 되었다.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나 하던 여행이, 아무나 하는 여행으로 변하더니,
결국 여행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나오게 되었고,
그 절정이 바로 여행가 스타인 셈이다.
세상은 바야흐르 여행자가 스타가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실 여행은 누구에게나 문호가 열려있다.
누군들 배낭하나 달랑 매고 길을 나서지 못하겠는가?
없으면 없는데로 노숙여행을 떠나고,
있으면 있는데로 크루저여행을 떠난다.

그렇지만 막상 배낭을 짊어지고 문지방을 넘어서려는 순간
온갖 사회적, 심리적 압박에 직면하게 되고
그리고 대부분 문지방을 넘어서려던 걸음을 슬그머니 거두고
얌전히 자신의 성에 눌러앉아 애써 싸멘 배낭을 풀게된다.

세상에는 여행없이도 잘 사는 크레마뇽인에서 진화를 포기한 인종이 있는가 하면,
여행이 일탈인 사람이 있고. 더 진화하여 여행이 생활인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진화의 끝에는 생활이 곧 여행인 최신인류가 존재한다.
 그 최신인류의 한명인 유성룡을 만났다.
바로 [생활여행자]란 책을 통해!

그는 여행을 하지만 여행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지 않는다.
그는 생활이, 삶이 곧 여행이기 대문이다.
그의 여행기는 사막의 푸른도시라는 조드푸르에서 울진 불영계곡까지,
봉화의 승부와 석포를 지나 봉화읍내 앵두다방까지 종횡무진 이어지지만
그의 여행은 지리적 물리적 공간이동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에곤실레에서 에바 케시디로,
손인호와 남인수에서 시인 이성복까지 그의 여행은 이어지지만
이런 대단한 문화적 아이콘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삶에 대한, 모든 존재에 대한
그의 따뜻한 눈길이 가 닿는 곳 전부는 그의 여행지이자
성소이고 순례지이다. 

'어느 가난한 시인은 가난을 팔아 가난을 벗어나느데'
유성용은 여행을 팔아 여전히 여행을 떠나니
그야말로 여행중독자가 아니라 생활중독자이고
그의 생활은 곧 여행이다.

사실 원초적 여행은 나로부터의 벗어남, 나의 욕망의 내려놓음,
나의 가치관 나의 경험 나의 기억들, 나의 관계들 에서 탈주하는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여행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니지만
도처에 있고 무시로 있고 통속적이기도 한 행위이고 습관이기조차하다.
여행마저 삶에서 제거해 버린다면 우리는 미치거나 아니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물과 산소, 그리고 탄수화물과 함께 여행은 현대인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비타민이다.
모두는 아닐지라도 여행의 묘미에 한번이라도 취해본 사람은 그 끈질긴 중독으로 부터 
영영 벗어나기는 글러버린 것이다.
치유법은 단 한가지다. 다시 여행을 떠나는 것!

지난 몇일 여행자 스타 유성용의 [생활여행자]와 함께한 
나의 시간은 긴, 뜻깊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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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공지한 6번째마을 걷기 코스를 거무실, 초방사 코스에서

급히 운곡천 코스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최근 봄비로 낙동강 물이 불어 걸어서 거무실에서

초방사쪽으로 강을 건너기도 어렵게 되었고

무엇보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오려다 저지된

운곡천을 다시 걸으며 운곡천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그 아름다움을 지켜야만한다는 의지도 북돋을겸

긴급히 마을걷기 코스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가해 비록 바쁜 봄날의 하루지만,

만사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고 즐거운 봄날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 일  시 : 4월 11일/일요일 오전 10시

- 출  발 : 삼동다리밑 명호정미소 인근

* 코  스 : 삼동다리밑에서 출발 운곡천을 따라 사미정까지 갑니다.

           가는 길 중간에 운곡천 산페장 예정부지였던 곳을 방문해

           생명의 보고인 운곡천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세우겠다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생각인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편도로 총 12~14km이고 사미정에서 국도로 삼동고계를 넘어 명호로 돌아오면

           총 30여km가 됩니다.

           사미정에서 아이들은 차량으로 돌아가고, 오른들중 더 걸을 사람만

           국도로 삼동고계 넘어 명호로 돌아옵니다.

 

- 준비물 : 약간의 음료와 점심/준비가 힘드신 분은 몸만오셔도 좋습니다.

           준비를 하시는 분은 당연히 좀더 여류있는 양을 준비하셔야겠죠.

 

[봉화오지마을 걷기]는 봉화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좀더 잘 알고 사랑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형식도 강제도 없이 오직 자발적인 의사만으로

아이에서 어른, 장애인이나 노인분까지 누구라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참가하시는 분들의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일정, 코스 등

모든 것을 협력적으로 조정 가능합니다.

또한 봉화 지역이 아닌 타지역, 특히 도시에 사시는 분께서

함께 하신다면 더욱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

참가인원이 적어 걷기가

불발되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단, 비가 올 경우 자연 연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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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인 강제에 의한 이주도 아니고
일로 인한 출장도 아니고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유랑도 아닌
오직 내적인 힘에 밀려 집을 떠나
낯선 거리를 떠도는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몇일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관광박람회에 참가해서
봉화은어축제를 홍보하는 은어만들기 체험을 진행하는 중에
행사진행본부에서 하는 방송소리를 들었다.

3층 메인 무대에서 도보여행가 김남희 씨를 초청하여
[유럽배낭여행]에 대한 강연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은어마을기 체험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와이프에게 체험장은 맡겨두고 급히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행사장 한쪽 켠에 놓인 무대위에서
검정 옷을 입은 조그만 여자 한명이 마이크를 두손으로 쥐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이라는 표현 하나로 
나를 사로잡았던 김남희씨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내 스스로 만들어낸 조작된 이미지인지 알 수 없지만
검은 옷 때문일까? 왠지 수녀같다는 느낌과
아둥바둥 살아가는 현실의 장에서 왠지 비켜선 사람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강연은 진행되고 있었고,
관중석에는 30~40대 여성분들을 중심으로
의외로 나이드신 어르신들까지
남여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붐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적지 않은 관객들을 향해 
김남희씨는 '여행'이란 무엇인지.
여행은 어떻게 준비하고 떠나고, 정리해야하는지
나름의 삶속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깨달음을 전해주고 있었다.
열심히 받아적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을 표시하는
아주머니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에모준비도 없이 급히 강연회에 참가했지만
김남희씨의 강연중에 몇몇 구절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메아리로 남아있다.

'여행은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은 성의 바깥으로 나가는것'이라며
누군가를 인용해 정리한 여행에 대한 규정은 참으로 공감되었다. 
또한 여행중인 사람의 배낭을 열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단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기 때문이란다.
 
강연의 중반을 넘기면서
김남희가 걸었던 유럽의 여행길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여행의 후일담을 진행하는 걸 보고
행사장이 걱정이 되어 강연회장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여행에 대한 생각들은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행은 자신이 쌓은 성 바같으로 나가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
새로운 타인들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인류의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게 한단다. 
그리고 끝으로 좋은 여행이 되기위해서는
준비하는 여행, 공부하는 여행, 그리고 공정여행이어야 한단다.
특히 공정여행에 대해서는 긴 설명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여행이 여행지의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지,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피해를 줄지 생각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단다.

세계 도처를 가도 꼭 있는 3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중국음식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이 관광객이란다.
일본의 관광은 이미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
나만의 여행을 떠나는 단계로 접어들었단다.

그런데 3번째는 무엇일까?
무척 굼금했지만 
세계 어디에나 있는 3가지 중의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이 화끈거리고 참혹한 기분이 드는
내용이었다. 바로 한국인 기독교 선교사란다.

수세기전 유럽의 선교사들이 군사적, 산업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지적,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신을 강요하던 선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꼭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그와 같은 큰 잘못을 
한국 사람들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나라 저나라에 나가,
당시의 종교가 틀리고 당신의 신을 대신해 예수를 믿어라 외치는
한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 문화, 그들의 신과 종교를 존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속에서 맺는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 관계 맺음의 대상으로 타국사람들을 바라다보는
협소한 시각은 인류의 평화를 해치는 
불의의 씨앗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김남희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의 소유자라는 느낌이다.

여하튼 글로만 만날 수 이었던 여행가 김남희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2010년 대구경북 관광박람회는
이래저래 참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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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면민의 단합된 의지로 우리의 젖줄 운곡천을 지켜내었습니다.

아직 최종단계에서 반려된 것이 아니지만

해당 지자체인 봉화군에서 반려의견을 제출했고,

이에 따라 대구지방환경청도 지자체의 의견을 존중하여

반려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완전히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일부 주민을 편가르고 회유하여

생명의 강 운곡천에 폐기물매립장 설치를 획책할지

두눈 부릅뜨고 감시해야만 합니다.

이번 투쟁은 선거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터져나와

의외로 쉽게 승리를 한지도 모릅니다.

지자체나 군의회, 도의회 할 것없이 누구도 지역민의 분노를 사는

운곡천 폐기물매립장 설치를 묵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폐기물 회사 측은 그런 선거철의 어수선함을 노려 매립장 설치를 시도했다가

의외의 주민 반발에 한발 물러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민이 찬성할 경우'라는 제한된 여지를 열어두고 반려된 이번 사업계획서는

언제라도 새로운 불씨로 살아날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치 주민의 깨어있는 의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승리는 운곡천 산업폐기물매립장 저지 투쟁위원회에 참여하신

각 단체와 주민개개인의 의지와 헌신의 결과입니다.

또한 이번 투쟁은 명호면민의 저력과 생태환경에 대한 애착,

나아가 속깊은 애향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값진 투쟁이었습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각 기사에 댓글이라도 달아. 기사를 써주신 기자님들께

우리 지역현안을 알려주심에 고마운 뜻을 표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봉화 명호면 폐기물매립장 백지화 전망 <경북일보> 4월8일기사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482728&news_area=040&news_divide=&news_local=&effect=&page=

"봉화 육봉은어 서식지 오염될라"
명호면 주민들, 폐기물 처리장 건설 추진에 강력 반발 <경북일보> 4월1일기사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481666&news_area=040

봉화 대형폐기물 매립장 건립 백지화 <영남일보> 4월7일기사

http://www.yeongnam.com/yeongnam/html/yeongnamdaily/society/article.shtml?id=20100407.010120754220001

청정지역에 봉화 명호면에 웬 폐기물 매립장? <매일신문>3월30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3439&yy=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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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명호면 청량산도립공원 서쪽 맞은편에 만리산이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명호면 관창리와 상운면 신라리에 걸쳐있는 만리산은
해발 792m로 정산부근에 비교적 완만한 지형의 넓은 농토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직접 가보기 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들만치 
산 정상부근에 넓은 농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밭은 옛날부터 소 9마리가 갈아야 할 만치 넓은 밭이라고
구우전(九牛田)이라 불려 왔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민들은 이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구우전을 중심으로 10여가구가 삶의 터전을 일구며 마을을 이루어 있는데
1950년대는 빨치산과 내통한다고 한 때 마을주민 모두가
강제 이주당하기도 했고,
1960년대는 울진삼척 일대의 독농가들이
무장공비와 내통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이 마을로 강제 이주당하기도 한
특이한 내력을 가진 마을입니다.
지금도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집단이주민 주택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마을은 최근까지 고냉지 채소재배단지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고냉지 채소를 많이 재배하기도 하지만 
10수년 전부터 사과과수원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봉화군내에서도 사과 재배단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몇년전 마을 작목반에서 재배한 사과가 [탑푸르트]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국내뿐 아니라 수출용으로도 각광을 받는
품질좋은 사과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저가 이 마을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이유는 사과맛이 아니라
마을과 과수원의 풍광때문이기도 하고
그 마을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 때문입니다.
10여년전부터 마을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귀향을 하고
지금은 40대의 젊의 친구들이 4가구나 고향마을을 지키며
아름다운 과수원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처자식과 더불어 만리산 기슭에
아름다운 과수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타인의 가슴에 온기를 전해주기에 충분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서 더욱 아름다운 만리산 과수원은
낙동강을 사이로 청량산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마을의 동쪽 기슭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강을 건너 청량산이 우뚝솟아 마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시사철 밭에서, 집에서 고개만 돌리면
멀리 청량산과 청량산 기슭에 자리잡은 또다른 마을인
윗뒤실마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시사철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지만
특히나 사과꽃만발한 봄이나
과수원의 사과가 익어가는 늦가을이면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마을이 있을까 싶을만치
구우전 마을의 아름다움은 그 극에 도달합니다.



그러다보니 봄이면 사과꽃 그늘아래서 
봄날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도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아마추어나 프로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진가들이 몰려듭니다.
가을이면 사과다기 체험을 하기위한 도시민의 발길이 
또 한번 몰려듭니다. 아직 마을까지 대형 버스가 올라올 수 있는 
도로 여건은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마을아래에서 승용차나 승합차,
어떤 때는 동네 트럭에 나누어 타고 사과수확체험에
나서는 도시민의 상기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곳 구우밭마을의 과수원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몇일전 우리집 사과나무 심기를 도와준 친구네 과수원에서
추가로 조성하는 사과밭의 나무심기 작업을 하였습니다.
삽질에 허리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고개를 들어 멀리 청량산을 바라다 보면
어느덧 육체적 고통이 가쉬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 더욱 아름다운
만리산 사과과수원에서 보낸 오늘 하루.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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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관광박람회에서 있은 두번째 애피소드는
시군 관광 홍보와 이를 돕기위한 체험프로그램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최근들어 각 시군은 자신의 시군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아이템과 연관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홍고관련 행사때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구경북 관광박람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동시는 회회탈 골격에 색깔있는 스치로폼 알갱이 뭉치를 이용해
형상을 완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하회탈춤은 안동을 대표하는 문화예술로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프로그램의 세부적 내용을 바꿀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안동에 어울리는 선택입니다.

울진군은 나뭇가지를 이용한 
곤충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인상에 남는 것은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 
체험선생님이 다름아닌 울진군의 공무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공무원이지만 문화체험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 배워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사안일이나 복지부동이 문제가 되는 공직세계에서
아주 드문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군에서 곤충체험관을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울진의 이미지와 곤총이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시군에서 탁본찍기, 비누만들기,
등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사실 이런 박람회장 등에서 진행하는 체험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체험프로그램이 너무 인스탄트화 되어
체험의 진정한 학습효과가 반감되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말해 간단히 참가해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쪽으로만
체험프로그램이 경도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비나리미술관만 고집스럽게 
좀더 거칠고 자연적인 체험의 성질을 유지하려고 하다보니
항상 우리부스가 제일 지저분하고, 제일 분주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수의 사람이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참가하는 사람의 만족도는 엄청 좋은데
체험을 한번 시작한 사람이 기본적으로 30분
길게는 1시간씩 버티니 하루종일 두명이 진행해도
참가자가 최대 150명을 넘기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이와같은 시군홍보와
체험프로그램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부스에서 은어만들기 체험을 하던 어떤 아주머니가 
갑자기 울린 전화를 받으며 하는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가졌던 체험프로그램에 대한
저의 생각을 확 바꾸어버렸습니다.

마우머니 왈
"아까 거미만들기한 부스있제? 바로 그 앞 부스에서 물고기 만들기 하고 있다. 
억수로 재밌다. 니도 얼릉 이리 온나."  

이 대화를 엿듣게 되면서
먼저 '억수로 재밌다. 니도 얼릉 이리 온나.'는 발언에 순간적으로 고무되었습니다.
다음, '물고기 만들기 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조금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봉화은어 만들고, 여름휴가를 은어축제가 열리는 봉화에서 지내세요'라고
호객행위까지 하며 체험객을 끌어들였건만
많은 사람들이 홍보내용에는 무관심하고
홍보와 분리된 체험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의 실망을 여기서 그친게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절망시킨 구절을 바로
'거미만들기 한 부스'라는 발언입니다.
우리 앞부스는 영덕군입니다.
영덕군은 영덕대게를 홍보하기 위해 '대게 케릭터' 아이템과 더불어
'대게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고객은 '대게'에서 '영덕군'을 분리한 것은 물론이고
'대게'도 '거미'로 변신을 시켜버렸습니다.
다시한번 더 정리하면 최소한 그 고객은
'영덕군'이나 '영덕대게'에 전혀 문관심했고
단지 무엇인가를 무료를 만드는 재미로
'영덕대게만들기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냥 웃자고한 이야기지만 사실 앞으로
홍보와 체험프로그램의 시너지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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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구경북관광박람회]에서 있은 첫번째 에피소드 입니다.

이번 박람회때 급작스럽게 많이 생긴 홍보 아이템중하나는
돌림판 맞추기 입니다. 시간을 정해 이벤트를 여는데
던진 화살이 맞은 곳에 쓰인 상품을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공짜 경품을 받기위해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부스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시군 홍보 케릭터의 대대적인 등장입니다.
이전에는 한두군데 시군만 준비해 왔는데
이번에는 상당히 많은 시군에서 준비를 한듯
하루종일 우리 부스앞을 케릭터들이 지나다녔습니다.
바로 이 케릭터와 관련한 문제인데
다음 사진들을 보고 왜 케릭터들은
모두 두손으로 볼을 감싸안은 모습을 하고
다닐까 궁금했습니다.



주로 영덕대게 케릭터만 사진에 찍혔지만
다른 테릭터들도 다 마찬가지 였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일종의 '이쁜짓'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었습니다.

바로 케릭터 머리의 무게 때문이었습니다.
하루종일 무거운 머리를 이고 다닐려니
보통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목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두손으로 볼을 받치고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케릭터들의
맑고 귀여운 표정뒤에 고통스런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이 감춰져 있는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전같이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케릭터들을 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10년 대구경북 관광박람회를 통해, 
세상만사가 겉으로 느끼는 것이랑
실상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다시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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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일부터 오늘 4월4일까지 대구 엑스코컨벤션센타에서열린
대구경북 국제관광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봉화군 문화관광과의 요청으로
행사장내 봉화군 홍보부스의 한켠에서
봉화은어축제 홍보를 위해 은어만들기
미술체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박람회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각지자체와
여행사나 리조트 증 관광관련 업체별로 부스를 열고,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등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나라들도 별도의 부스를 마련하고
자국 홍보에 열을 올렸습니다.

행사중에 대구 경북 일원의 관광관련학과를 다니는 
대학생들의 단체 참가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비교적 관람객도 많아
우리 부스도 부부 둘이서 체험을 진행하기애
벅찰 정도로 정신없이 4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정동안 너무 바빠 타 시군 부스를 세밀히 관찰하지 못했지만
날이 갈수록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여타 홍보 준비도 치밀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동시의 안동하회탈 만들기 체험과
영덕의 찰흙을 이용한 게만들기,
나무재료를 이용한 울진의 곤충만들기 등의 체험프로그램이 있었고
우리 봉화는 나무토막을 이용한 은어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우리부부가 진행한 [은어만들기]는
얇게 사선으로 저민 나무토막을 몸체로 해서
아크릭물감으로 은어를 그리고
색종이로 꼬리와 지느러미을 만드는 체험입니다.
은어를 만드는 과정에 [봉화은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올 여름 휴가를 봉화은어축제로 오시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손님이 우리부스 근처에 오면
'은어 한마리 만들고, 올 여름휴가는 봉화은어축제에서 보내세요'라고
홍보를 했습니다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행사를 갈 때마다 느끼는 점 하나는
홍보전단부터 기념품까지
각 주체로 부터 엄청난 물량공세가 이어지지만
그냥 스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비용대비 효과라는 측면에서
홍보책자나 기념품을 그만한 물량씩이나
들이부을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체험이 여행상품의 필수 요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것도 왠지 일시적인 유행이거나
너무 부풀려져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여행이나 관광에 꼭 체험프로그램이 있어야하나,
그리고 특히나 학습과잉인 시대에 여행까지 가서도
무엇인가 배워야한다는 강박도 일시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쉬는 여행. 아무것도 하지않고
먹고, 걷고,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고 관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는 6월 4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동일한 행가가 다시한번 더 진행된다고 하는데
아마 참가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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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한 죽음의 고유성을 회복함으로써 현대적 삶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다.
 

[애도하는 사람]은 삶 속에서 분리된채 가려진 죽음의 현재성을 되살리는 작품이다. 현대인은 위대한 과학의 성과를 토대로 신에 의한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에 성공했고, 그렇게 창조된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위상을 재정립했다. 과학은 인간을 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고, 인간의 삶은 그 자연적 한계를 모두 극복한듯 보였다. 자연은 인간의 이성아래 재정립되고, 인간의 삶에서 모든 자연적-비합리적 요소를 배재할 듯 보였다. 하지만 현대과학을 통해 극복한 삶은 그 극대화된 합리성과, 위대한 과학의 은총아래서도  끝내 극복할 수 없는 장벽에 봉착한다. 그것은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그 의미를 달리했지만 죽음은 생명탄생과 짝을 같이해 인간의 삶에서 비과학적인 영역, 이성적 빛이 비춰질 수 없는 영역으로 끝내 남게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에 굴복하며 신의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오만해진 인간은 그 증표인 죽음의 처리에 골몰한다.  


여기서 절대화된 과학, 산업화된 자연,, 절대화된 이성의 빛아래 '죽음'은 필연의 영역에서 잘못 끼어든 실수거나, 제거되어야할 우연적인 오류로 처리된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격리되고, 가려지고, 잊혀지고 만다. 죽음은 삶에 우연적으로 잘못 끼어든 잡티나 불순물일뿐 우연적인 발생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청소하듯 흔적조차 지워버려야할 것으로 격하된다.


[애도하는 사람]은 이렇게 현대사회에서 죽음과 삶의 잘못된 분리를 고발한다. 삶은 죽음의 이면일뿐 독립되거나 분리될 수 없는 인간존재의 근원적 본질임을 폭로한다. <애도하는사람>은 죽음으로 가득하다. 지천이 죽음이고 그 죽음의 사이사이에 삶이 기생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일본 도시의 풍경이 <애도하는 사람>이 펼쳐지는 구체적 현실이다. 일본 고유의 죽음의 미학에 기반한 작가는 죽음으로 곽찬 도시를 통해 충만한 삶의 의미를 되살린다. 이 삶과 죽음의 역설이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에서 극복된다. 그 극복의 과정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삶의 존재 이유를 찾는 시즈토의 순례길과 나란히 이어진다.


시즈토의 애도여행은 스스로 직면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그는 타인의 죽음의 무가치성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아무도 주목하거나  안타까와하지 않는 죽음은 세상과 격리된채 철저히 삶과 세상과 격리된채 어느날 갑자기 절대적 무로 인간을 덮쳐온다. 인간은 현재의 삶을 누리며 미래의 삶을 준비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죽음은 비현실이기 때문이다. 시즈토의 애도여행은 죽음의 현재성을 회복하는 순례의 여정이다. 시즈토에게 죽음의 현재성을 극복하는 의식은 잊혀진 죽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그 삶과 죽음을 하나로 애도하는 의식이다. 불타가 죽음의 허망함에 직면하고, 삶의 공허함에 절망한채 성을 나가 구도의 길을 떠나듯 그렇게 시즈토는 집을 나섰지만 그가 걸은 구도의 길은 우주의 원리나 존재의 근원을 꿰뚫는 위대한 깨달음의 길은 아니다. 소박한 개개인의 죽음 하나하나에 '그는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누구에게 감사를 받은적이 있는가'를 물음으로써 차가운 죽음에 삶의 온기를 불어넣고, 그 삶의 허망함에 죽음의 숭고함을 부가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무의미성을 극복한다.
그의 깨달음은 단순하다.
"누군가의 죽음이 잊혀지면 나중에는 모든 사람의 죽음이 잊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잊혀진 모든 사람의 죽음속에 나의 죽음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한다면, 나중에는 모든 사람의 죽음이 기억될 수 있고,그 기억된 모든 사람의 죽음 속에 나의 죽음이 있게 된다. 기억된 죽음은 허무하지 않고, 허무하지 않은 죽음은 허망하지 않은 삶을 가능케 한다.

더불어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의 발병과 죽음의 과정은 철저한 죽음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녀는 죽음을 찬미하고, 탐미한다. 공포가 제거된 죽음, 자연스런 삶의 한 과정으로서의 죽음은 아들 시즈토의 죽음의 순례길과 고스란히 겹쳐진다. 삶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삶의 무게를 내려 놓음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동시에 줄여나가는 작업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과정을 통해 역으로 그 삶의 연장으로서의 죽음의 자연스러움을 깨우쳐가는 죽음의 여정은 철저히 아들 시즈토의 순례길과 겹쳐지면 또 다른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일상, 죽음에 직면한 한 개인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준다.

[애도하는 사람]시즈토와 더불어 애도여행을 동반하는 도반은 또 있다. '에그노'라 불리며 삶의 지고지순한 신비와 가치를 잃어버린 마키노 고타로는 시즈코의 애도 여행을 추적하는과정에서 숭고한 죽음의 가능성을 깨닫고 다시 삶의 신비와 가치를 회복한다. 사쿠야와 유기요 역시 시즈코의 애도여행을 동반하면서 죽음에 대한 욕망, 삶과 분리된, 절망적인 삶으로부터 탈주한 죽음의 탐미를 포기한다.

[애도화는 사람]은 해피엔딩이다. 어머니 준코의 죽음은 여동생 미시오의 출산과 겹치며 삶과 죽음의 통일을 완성한다. 애도하는 사람 시즈코의 구도의 길은 마키노 고타로와 유기요가 뒤따른다. 

[애도하는 사람]은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작가 텐도 아라타는 이 지점에서 위대한 세계구원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죽음의 개별성을 회복하라. 그를 통해 개별적 삶의 허무가 극복되고, 바로 내 삶의 고유성, 내 삶의 존재이유와 의미가 창조되나니!!

"죽은 자들은 자신을 애도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애도하는 사람]이 무의미한 죽음, 따라서 허망한 삶에 직면한 현대인에게 던지는 유일한 구원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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