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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날, 강건너 거무실을 걸었습니다.

늦은 아침, 살을 에는 추위가 한낮의 햇살에 누그러들자

간단한 간식을 챙기고 아내와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이런저런 핑게로 오랫동안 떠나지못한 마을길 순례를

이번은 사전 계획도 없이 갑자기 나서게 되었습니다.

 

거무실은  비나리마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입니다.

비나리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쪽으로 오백미터만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초방산 가는 길이 나오는데, 바로 그 반대편 강건너

보일듯 말듯 골짜기에 숨어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몇년전에야 겨우 전기가 들어가면서 언론도 타고,

그 덕분에 외부에 알려지게된 거무실은

직선거리로 따진다면 국도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마을앞은 낙동강으로 막히고 마을뒷길은 청량산의 한자락인

문명산에 가로막혀, 차로는 당연히 접급할 수도 없고

걸어서도 접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세상에 숨겨진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비나리마을에서 출발해서 옷갓재를 지나 고계다리를 건너고,

고계리 마을을 관통하다 오른쪽으로 틀어 산길을 접어듭니다.

고계리를 지나 30분쯤 산길을 오르다보면

정상쪽으로 난 가파른 비포장길과 오른쪽 강쪽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나누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파른 산길에는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차바퀴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산이 깊어질수록 그 길마저 사라집니다.

매서운 추위가 살을 애는 한겨울에도 등에 땀이 흐를 만치 걷다보면

그 길의 끝에서 민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세상이 싫어서 이렇게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가 싶기도하고, 어쩌면 옛 고향집을 꾸며

간혹 들러서 쉬어가는 집같기도했지만

아무리 불러봐도 사람은 나오지 않고 빈마당엔 겨울 바람만 가득했습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강쪽으로 갈라진 오솔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첩첩산중이지만 그래도 가는 길목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가쉰 폐가들을 만날 수 있고,

잘 손질된 잔디가 덮인 무덤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대신해 객을 반깁니다.

 

풀숲을 더듬어 없는 길을 만들어 30분쯤 더 걷다보면

이제는 포기하고 돌아서야지 하고 마음먹기 시작할 즈음

오랜동안 그리도 가 보고싶었던 거무실 아랫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는 두어집이 남아 동네를 지키지만

가파른 산능선에 심겨진 대추나무와

겨울 찬바람에 마른 고추댓궁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천연덕스럽게 지난 여름 받았을

따뜻한 사람의 손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두어채의 폐가와 사람사는 흔적이 있는 또다른 두어채의 집이 전부인 마을에는

인기척이라곤 찾아볼수 없고

낯선 객을 반기는 강아지 한마리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명산자락이 모은 빗물이 지나는 거무실 계곡은

도연명이 찾던 무릉도원이 꼭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치

선계를 닮아있습니다.

큰물에 씻긴 집채만한 바위로 이루어진 거무실계곡은

언제 다시한번 꼭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찾고 싶습니다.

계곡을 이루는 바위위에 작은 상을 차리고 오늘은 만나지 못했던

거무실 사람들과 잔을 비우며 물소리와 함께

거무실 사는 이야기라도 듣고싶습니다.

 

한해를 보내야하는 즈음,

거무실을 걷기는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 비나리마을에서 거무실까지 왕복 10km // 일부구간 난코스

* 소요시간 4시간

* 거무실마을 도착후 낙동강을 따라 북상, 고계 다리에서 강을 건널 수 있지만 비나리마을 앞 구간에서 강변을 따라 지나기에 어려운 코스가 있다.

* 고계리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를 시작하면 넉넉잡아 3시간이면 거무실 마을 걷기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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