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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칼은 최고의 거짓말장이다. 그녀에게 타인을 속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고, 나중에는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정말 탁월한 거짓말장이다. 그녀의 글은 읽는 사람은 모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는 그녀 자신도 스스로 한 말이, 스스로 쓴 글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꾸며낸 것인지 모르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녀는 예술적 성취를 만끽한다. 그녀는 거짓이 진실을 이기고, 악이 선을 이기는 세상의 못된 섭리를 비판하거나, 아니면 꽉짜인 진실이 지배하는 갑갑한 세상을 허물어뜨리고 가상의 영역까지 확대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그녀의 예술적 의도가 문명비판인지 세계창조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사진예술가이자, 개념예술가, 설치미술가이기도하고 또한 문학과 미술, 문학과 사진의 영역을 넘나드는 예술장르의 장벽을 허무는 파괴의 여왕이기도 하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딱 한가지였다. 그녀는 익명으로 소위 심부름센타에 의뢰해서 자신의 신상정보를 제공하고 바로 자신 '소피 칼'을 추적하게 한다. 심부름센타의 사설 탐정이 그녀를 미행해 찍은 사진과 그녀를 추적해 작성한 자료를 넘겨 받은 그녀는 [미행]이라는 책의 자료로 고스란히 활용한다. 한낮 심주름센타의 사설탐정이 건넨 사진과 자료가 그녀의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선세이셔널한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소피 칼의 예술적 성취에 감응한 와이프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진실된 이야기]는 그녀의 그와같은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그녀는 객관적 태도로 바같세상의 아름다움을 논하거나 탐하지 않는다. 그녀는 모든 작품 속에 개입한다. 객관적 태도로 위장하고 '신'의 손으로 그린 '위대한' 작품을 창조하는 관습적 방법을 내팽겨치고, 그녀는 자신의 예술작품 구석구석에 개입해 들어간다. 그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을 예술적 소재이자 창조적 주제로 격상시킨다. 최소한 그녀의 작품 속에서 그녀는 창조신이자 스스로 만든 세계의 지배자이다. 소피 칼은 재래의 '초상화'의 기법을 차용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초상화 속에서 대상화된 작가와 대상화된 자신을 그리는 초상화 밖의 화가로 구분되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녀는 재래의 자전적 소설 속에서 대상화된 작가와 자전적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 밖의 작가가 구별되는 방식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녀는 철저히 개입하고 동화되고  작품안과 작품밖의 자신이 한시공간에서 공존하게 한다. [진실된 이야기]의 서사구조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그 특수성을 갇는다.

[진실된 이야기]는 엄마의 남자 친구가 친부가 아닐까 짐작하고 의심하는 아홉살 소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좀도둑질 재미에 빠진 열한살 때의 이야기가 가벼운 웃음을 독자에게 선사한다면, 책을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웃음기는 사라지고 처절한 한 여자의 삶이 이어진다. 이혼과 결혼, 또 결별 그리고 결혼,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사물과 사연들, 그리고 임의적이고 심각하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이어지지만 책의 결론은 없다. 어쩌면 소피칼은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가져온 지난 삶을 실제로 살았던 삶과, 살았으면 하는 삶, 그렇게 살 수도 있었던, 가능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던 가상의 삶을 섞고 비벼 완전한 하나의 '거짓된 그러나 진실된 이야기'를 창조해 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피 칼은 자전적 소설의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는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다. [진실된 이야기]는 그녀의 도저한 예술적 도발을 이어가는 과정상 섹션과 섹션 사이의 잠깐동안의 휴지기에 불과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또한 온전히 그녀의 예술세계를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작품이기도하다. 짧고 난삽한 [진실된이야기]속에서 만난 소피칼의 진면목이 그녀의 다음 작품으로 눈을 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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