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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것은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다. 과연 유기농법으로 사과재배가 가능할까, 그리고 가능하다고 해도 내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감당할만 한 농법인가 하는 것을 알고 싶었다.
농사 10년 동안 참 많은 작목을 키웠다. 수박부터 감자, 고구마는 물론 고추에 각종 잡곡 거기다가 참깨며 대추농사까지 지었으니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능한 작목의 거의 다를 키워본 셈이다. 초기 5여년은 일반농법으로 남들처럼 농약치고 화학 비료 뿌리는 농사를 지었고, 그리고 다시 몇년은 [저농약농산물인증]을 받고 비료와 농약을 관행 사용량의 절반이하로 줄여가며 농사를 지었다. 5년전부터는 아예 비료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고 [무농약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13년동안의 경험을 통해 농사가 힘들고 돈안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었고, 나아가 한국 농업의 미래는 더 비관적이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달리 개인적인 대책을 세울 재주는 없고해서 우선 땅파먹는 밭농사는 면해보자고 올봄 큰 맘먹고 2000여평의 밭에 450여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었다. 와이프는 나름의 직업이 있기때문에 순전히 내 혼자하는 농사로 그 정도 규모의 사과밭이 적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과 농사에 대한 기술이 전무한데다가 특히나 사과 친환경 재배에 대해서는 더더군다나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의 친환경 농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보다는 그 어려움을 더 절실히 느껴오던 터에, 사과재배를 무턱대고 유기농법으로 한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것 같았다. 일단은 유기농 사과재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최종 판단을 내려야할 처지에서 이책을 주문했다
이시카와 다쿠지라가 쓴 [기적의 사과]는 일본의 대표적인 친환경 사과 농사꾼인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분의 친환경 사과농사의 궤적을 담고 있다. 필자의 눈은 단지 그의 사과농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무라의 인생 역정과 삶의 철학을 파고 든다. 다시말해 이책은 기무라씨의 무농약, 무비료 사과재배 성공기를 통해 곧바로 현대 문명비판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기술만능, 효율만능에 젖은 현대 농업을 대체할 대안적 농업,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기적의 사과]는 이 책의 제목이기 이전에 먼저 기무라가 재배한 사과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기도 한가보다. 10여년의 고난을 겪고 나서 기무라씨가 키운 사과는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사과로 일본인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고 한다. 그가 키운 사과는 온라인상에서 주문을 받자마자 3분만에 매진되기도 하고, 그가 키운 사과만 재료로 쓰는 한 레스토랑에서 스프를 먹어보려고 하면 무려 1년전에 예약을 해야지만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이런 사실만 두고 본다고해도 기무라의 사과농사는 거의 '기적'을 낳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기무라씨의 사과농사는 그 결과만 두고보면 누구라도 따라 해볼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보면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오직 그 만의 삶을 담고 있다. 단순히 사과농사가 아니라 그의 삶의 태도, 나아가 그의 인생관이 그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사실 과도한 인간의 개입과 기술의 도입을 거부하고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중시하는 기무라씨의 농법은 지금은 너무 잘 알려져있다. 최근들어 온갖 친환경 농법이 소개되어 있고, 기무라씨가 실천한 '자연농법'은 하나의 주요한 친환경 농법으로 국내에도 잘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기무라씨에게 있어서 친환경 농업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문제는 실천이고 실천을 통한 가능성의 확인일 것인데, 나는 그 지난한 과정을 감내할 자신이 있는가?
책을 펴고 흥미진진한 기무라씨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금새 뒤표지에 이른다. 그만치 그의 삶이 드라마틱하고 필자의 생동감 넘치는 필력이 감탄스럽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애초에 이 책을 손에 쥐게된 이유를 되짚어 보면, 내가 의도한 소기의 성과는 얻지 못했다는 판단이 든다. 이 책은 사과재배 기술을 다루는 책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을 헛읽은 것은 분명 아닌데 책을 다 읽고 난 뒷맛이 무척 쓰다. 기무라씨가 성공한 친환경 사과 재배를 나라고 못할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가 감내한 지난한 세월을 되씹어보면 그를 따를 자신이 없다.
이 책의 필자가 전제한 많은 '가치'들이 있다. 그것을 시시콜콜히 나열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을 통해 다시 야기된 의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 과제로 남았다. 그 과제를 해결하는 지점에서 나의 사과농사가 시작될 것 같다.
우선은 이책을 통해 농업에만 유독 현대 과학의 적용을 기피하는 정서는 어떻게 이해해야하나는 물음이 생겼다. 자동차없는 생활이나 현대적 의술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듯이 현대 과학문명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경계와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원리주의적 비판과 맹신사이의 균형이 필요할 것이고 결국 개인은 합리적 타협점을 찾아 삶의 지표로 삼거나 생활의 준거로 삼는 것이 아닐까한다. 그러면 농업은 그 합리적 타협점을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주변에서보면 농약을 물쓰듯하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의 현대 기술 문명을 거부하고 오직 호미와 낫만으로 한가족이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분도 계신다. 단순한 도구와 육제적 힘만으로 살아가려는 그분들을 나는 무척 존경하지만 따라 할 자신도 없고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의 저자 이시카와 다쿠치는 명실공히 '대중작가'인듯. 농업에 대한 지식의 전달보다는 가ㅣ무라 아끼노리씨의 삶, 그리고 그의 농사 철학에 서술의 중심을 두고 이 책을 쓰고 있다. 농민을 대상으로 한 [기무라 아끼노리의 유기농 사과 재배기술] 이라는 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 [기적의 사과]는 문제는 농업을 단순화, 신비화함으로써 대중의 농업에 대한 이해를 왜곡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안타깝지만 농민은 생태운동가가 아니다. 품종개량과 새로운 작목의 이식 그리고 고품질 고상품성을 중시하는 시대가 고투입 석유농업을 보편화 했다. 시대 탓을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남들이 차로 서울 부산을 오르락거릴 때 자전거나 아니면 지게를 지고 걸어서 짐을 나르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농업은 인류가 영위해 온 가장 오래된 산업의 하나이고 또 생명을 다루는 원초적인 노동이라는 특수한 성격 때문인지 농업에 대한 이해는 특히나 이념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농법과 이념이 상호 침투되어 나중에는 '농업 기술'이 아니라 '농업 도덕'이 되어 버리는데 이는 개인들의 사고뿐 아니라 농업정책에 혼란을 초래하는 측면이 있다. '기적의 사과'에서 기적만큼이나 비실재적이고 비합리적인 재배기술은 많은 사람의 감탄을 불러일으키겠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동의할 수가 없다. 솔직히 농업에 부가되는 도덕적 가치, 도덕적 의미가 농업, 농민에게 득일까 해일까 모르겠다.
책이 보여주는 세상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간격 혹은 균열을 나의 개인적인 분열일뿐인지도 모르겠지만 말과 글이 다르고 책과 현실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다시 나의 사과농사는 출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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