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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첫 비나리달이네 동화캠프가 있었다.

이번 캠프는 마을역량의 충분히 동원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또 개인적인 여러사정이 겹쳐

충분한 사전 준비도 하지 못했다.

특히 모객을 위한 홍보가 턱없이 늦게 시작되었고,

세부 프로그램도  치밀하지 못한 데다가 

그에 따른 역할 분담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충실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자료의 수집 차원에서라도 시행착오를 겪자는 마음으로 행사를 강행했다.

실제로 행사를 마치고 보기

예상밖의 성과가 적지 않았고, 또 그 한계도 보다 명확히 드러났다.

 

안동과 영주를 중심으로 학생과 학부모 약 서른분이 참가하시고

봉화읍과 명호에서도 스무명가량의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하셨습니다.

부족한 예산에 전적인 자원봉사로 진행된 이번 행사를 위해

함께 고생해주신 권정생문화재단 안상학 사무처장님과 그림자극단 여러분을 비롯한

마을주민과 자원봉사자가 있어 그나마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충분한 평가와 개선책의 강구가 뒤따르겠지만 우선

모객시기의 조정, 홍보방식의 다변화, 마을 내부역량의 개발과 동원,

치밀한 동선 및 타임테이블 검토,

그리고 무엇보다 참가대상의 욕구파악이 필요해 보였다.

나아가 권정생문화재단과 출판사와의 협력,

학교 등을 통한 모객, 마을내 공연팀 구성 등 전문역량의 개발,

그리고 식사준비팀의 구성등이 요구되었는데

이는 모두 작은 일이 아닌만치

그 모든 것을 다 감수하고도 마을 체험프로그램으로 성립이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은

시간을 두고 검토해 보아야할 과제로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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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없는 자식이 된지 벌써 6개월...

돌아가신뒤 처음 맞는 생신날 당신의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죽음을 맞던 당신의 고통과

그 고통을 넘어 마침내 영원한 평화를 얻으시던 마지막 모습이

문득문득 저의 일상을 깨고,

생명과 죽음, 그리고 가족과 세상살이의 의미를 묻게하였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눈꼽만치도 나누지 못하는

생명의 섭리에 눈물흘리면서도

그래도 저 자신을 포함한 남은 가족들이 모두 행복해야된다는

주관적 당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세상을 떠난 뒤 처음 맞는 생신날

남은 가족 모두는 웃음으로  보냈습니다.

생전에 3번의 전쟁을 겪은 당신과는 달리

자식인 저는 결코 국립묘지가 편안한 마지막 안식처가 될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단지 당신의 뜻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승리'가 아닌 '평화'의 상징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당신의 선택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당신과 맺은 부자의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생전에 저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마침내 내 삶이 끝나는 날

당신의 삶과 죽음이 주었던 의미만치 나의 자식에게도 그런 아버지로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 사랑 잊지 않고 저에게 주어진 삶 성실히 살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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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비나리마을학교 강당에서

[봉화공동체 포럼]이 있었습니다.

이번 포럼에는 봉화군 농민회 등 단체와 개인을 포함해

아름답고 활력넘치는 마을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노력해오신

많은 분들이 참가하여 열띤 발표와 토론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참여 단체로는 '교육복지문화공동체 하모니'와

'봉화친환경생산자협동조합', 재산 갈산마을에 둥지를 튼 '별난농부들'

'봉화지역 자활센타', '청량산비나리마을', '봉화국악협회' '봉화귀농인협회'

그리고 '봉화군 농민회'가 같이 했습니다.

 

참가 단체들은 각 단체의 목적과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해 나갈 활동들에 대한 발표를 했고,

향후 지역사회내에서 이들 단체가 연대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꿈들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포럼이 갖는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는

 봉화의 각 지역에서 흩어져 터를 잡고

나름대로 오랜 세월동안 지역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하고 활력넘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분투해 오신 분들이 같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만남의 기쁨과 같이 살아갈 날의 희망을 나눌 수 있었던

이날 회합에 참가하고 나서가지게 된 생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참 외로웠는데 이제 외롭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 봉화에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고

오랫동안 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감동적이다."

 

앞으로 한달에 한번씩 가지게 될

봉화공동체 포럼이 외연을 넓히고

그 내용적 깊이를 더해간다면

봉화를 아름다운 농촌공동체의 새로운 전형으로 거듭다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세대와 신세대, 토착주민과 귀농인,

농업인과 예술인을 포괄해

다양한 세력과 개인이 연대하여

지역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봉화공동체 포럼"의 무궁한 발전이 계속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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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님이 비나리마을 주민이 되신지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이주뒤에도 많은 방송과 언론사 취재 일정을 소화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신데

그 와중에도 비나리마을 주민이 되기위한 노력들을 경주하고 계십니다.

몇일전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고추 이종작업을 하고 계시던 비나리마을 이장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나누고 마을 주민으로 살아갈 꿈을 피력하시기도 했습니다.

평생 먹을 줄만 알았지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모르셨을

고추 농사를 직접체험도 해 보시고

우리 농촌마을의 인심 넉넉한 주민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다시 마을 전체 주민을 모시고 술 한잔 나누며 인사를 드리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화들도 많지만 우선 간략한 소식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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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금요일, 봉화읍내에 급한 볼일을 보러 나갔다.

연금관리공단에 들러 서류를 떼고, 다시 철물점을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산뒤 

읍내를 지나 봉화군청 사거리에서 잠시 신호대기중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다정히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급히 창을 내리고 얼른 카메라를 찾아 셔터를 눌렀지만

마음에 드는 좋은 사진은 찍지 못했다.

 

 

하지만 카메라에 제대로 담지 못한

그 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은 내마음에 더 깊이 더 단단하게

새겨져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몸이 더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던

똑같이 불편한 몸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보였던

할아버지...

신호가 바뀌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지만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도 저렇게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을까?"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

아름다운 노부부의 백년회로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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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K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분투하다 국회의원직을 잃고 감옥살이까지 한 정봉주님이 자신의 조상 정도전의 고향 봉화로 이주하겠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소식을 접한뒤 나를 포함한 봉화 지역의 친구들은 나름대로 정봉주님과의 연락을 위해 시도했고 그 결과  몇일전 정봉주님께서 비나리마을을 방문하시게 되었다. 설득도 하기전에 먼저 많은 준비를 하고 생각을 정리한 뒤에 오신 것인지 너무나 쉽게 정봉주님으로부터 비나리마을 주민이 되시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벌써 여러해 전에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통해 설립한 [비나리마을학교]의 운영과 관련해 마을 외부 역량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가지 방안을 가지고 실제 추진을 했고 어떤 경우는 성사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 최종적으로 외부인사 영입에 실패를 한뒤 마을사업에 외부 역량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되었다. 그때 최종적인 결론은 마을의 자체 역량에 기반하지 않은 외부 인사의 영입은 실제적으로 마을의 변화를 수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마을자체의 충분한 준비 없이 마을의 자산으로 외부인사를 활용하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물적 인적 자원이 빈약한 마을에서 지속적으로 외부의 자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없는 인력과 자원에도 불구하고 마을 자체 역량을 가지고 토대를 단단히 닦을 때만이 외부 자원의 동원도 활용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와같은 시도가 좌절된 뒤 비나리마을은 부족한 중에도 마을의 내적인 변화와 내재적 가치의 외부적 확산을 위해 노력해왔다. 성과는 미미했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진전도 없지 않았다. 대구사회적 기업지원센타 "커뮤니티와 경제"와 업무 협약도 맺고 '공동체 학교'나 '사회적 기업 창업가 과정' 등 많은 가치있는 프로그램도 유치하게 되었고, 여성영화제 상영작 마을 상영을 비롯해 남미 인형극 공연, 재능기부단 공연등 마을 주민을 위한 문화공연을 지속적으로 연 것을 비롯해 주민을 위한 문화강좌로 등공예교실, 도예교실, 풍물교실 등을 운영해 오고 있다. 쉽지않은 일이기에 잠시 멈춰서거나 후퇴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마을 사업을 '협동조합'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고,  봉화 지역사회내에 사회적 경제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지역생협과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 움직임에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마을사업이 한단계 도약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 절묘하게도 정봉주님과의 인연이 맺어졌다. 큰 기대없이 지역 인근으로 이주하시면 '알고 지내면 좋지', '마을사업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했는데 의외로 그분은 적극적으로 마을과 결합하여 진정한 풀뿌리로서의 삶을 각오하고 있어서 놀랄 정도였다.

 정봉주님이 봉화 생활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확인하기도 전이지만 사실 비나리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의 이주에 거는 기대가 많다.  그의 비나리마을 이주는 도농교루 사업이나 농산물 판매와 관련된 비나리마을의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를 넘어  농업 농촌의 가치를 널리퍼뜨리고 나아가 마을의 심원한 변화를 이루는데 건강한 기여를 할 것이라 확신한다. 몇몇 마을에서 진행된 스타마켓팅과는 달리 정봉주님의 비나리마을 이주는 단지 한명의 스타로서가 아니라 그가 담보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와 공동체라는 가치'의 영입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수의 감성마을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겠지만 정봉주의 비나리마을 이주는 진정한 마을 속으로의 이주, 땅으로의 하강,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자기 하방이기 때문에 더더욱 값지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말로만 듣고 매체를 통해서만 뵙던 정봉주의원님 내외는 너무 소탈하시어 세련된 외모와는 달리 시골스런 정감을 가진 발랄하신 분으로 다가왔다. 그의 비나리마을 이주가 아름다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마을 주민으로서의 몫을 해야만 한다는 책임감 역시 없진 않지만 그분과 더불어 한마을 주민으로 재미나게 살아갈 시간들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비나리마을은 아직 엄동이지만 나의 마음은 벌써 봄이다.

정봉주@BBK_Sniper

오늘 경북 봉화에 이주할 집보고 올라가는 중입니다 젊은 귀농인들이 시골 마을을 잘 꾸며놨더군요 환대해주고 쌀까지 선물로 준 송성일 정도윤농부님 감사합니다 잠시뒤 7시 CBS 라디오에서 뵐게요즐청! 폭풍RT!!

봉화군 농민회가 공동경작한 쌀을 선물로 드렸더니 소년같이 좋아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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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4일 비나리마을은 첫 비나리초롱축제를 가졌다.

지역 사회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70년대 초까지  이어져 오던 초롱계는

큰일을 치루는 이웃을 위해 마을 주민 모두가 등불을 부조하던  아름다운 전래풍습이었다.

전기도 전기지만 마을 주민의 수가 줄고 농촌이 피폐해 지면서

자연스레 초롱계는 규모가 줄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부조의 전통을 다시금 되살리기 위해

변화된 여건에 맞춰 이웃 7개 리가 함께하는 마을 축제로 승화시키기로 했다.

그 결과  첫 비나리초롱축제가 열리게 된 것이다.

 

 

 

사실 전국적으로 축제가 사태가 나면서 예산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질타받고

하나둘 중단하고 있는 실정에 새로운 마을 축제를 하나더 한다는 것은 조금은 무모해 보였다.

대부분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을 통한 마을 축제를 보면

지속가능한 마을 축제보다는 일회성 마을 잔치로 기획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것은 아주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축제 아이템을는 일이 쉽지 않을 뿐아니라

2~3년간 년 1000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아 마을축제를 자리잡게 한다는 것은

무모한 시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나리마을은 초롱계라는 아름다운 전래 문화에 힘입어

주민 화합의 장이자 나아가

도농교류의 매개가 될 수 있는 비나리 초롱축제를 열게되었다.

 

 

이번 축제는 첫회인 만치 7개리의 주민 화합잔치에 초점을 맞춰 기획되었다.

우선 주민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주민 자신이 즐기는 축제가 된 뒤

그뒤 도시민의 방문은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 자신이 즐기지 못하는 축제가 된다면

그것은 이미 축제라고도 할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마을 경로 잔치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그간에 마을 주민 스스로 참여해온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성과를

총정리하는 그런 자리로 만들었다.

주민 노래자랑과 풍물공연, 먹거리 장터와  등공예 작품 전시,

청량산 풍경사진전과 주민의 생활이 담긴 사진을 모아 연 마을 옛사진전

그리고 호응은 낮았지만 마을정보센타를 영화관으로 만들어

흘러간 60년대의 고전 영화를  보여주는 '마을극장'을 운영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지만

원주 행복 한의원의 재능기부를 받아

마을회관을 [마을한약방]으로 꾸며 주민을 위한 침술봉사 등을 진행했던 것은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하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낮은 경로잔치 분위기로 채웠지만 밤은 젊은 취향의 분위기로 전환했다.

위대권 강미영 가수의 도움으로 포크가 흐르는 밤의 정취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이번 초롱축제에 시도한 것 중에 가장 특이한 것은

마을화폐의 제작과 도입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중에 마을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면서 마을 방문자에게

일정한 입장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게 장기적인 목표이기도 하고 

또 마을이 이런저런 시설의 이용이나 체험 농산물 구입을 유도하기 위해

마을화폐를 나름대로 만들어 보았다.

사실 마을 방문객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할 지도 모르고

특히 마을 주민들이 잔칫집에서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 상황에

불편해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많이 제기했지만  

시행결과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엽전을 사용하는 나름의 재미도 있었고,

소수의 방문자지만 엽전을 바꾸어 음식을 사 드시도록 유도하는데

일정한 효과가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사후적이긴 하지만 비나리마을 화폐가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많은 문의를 받게 되었고 지금까지 50만원어치 정도 판매까지 하게되었다.

 

많은 가능성을 확인하긴 했지만 첫 축제가 갖는 한계도 많이 노출되었다.

먼저 주민의 참여가 생각만치 충분하지 못했다.

적어도 마을축제에는 7개리 주민이 모두 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지만

어림짐작으로 약 50%정도의 주민이 축제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사전 홍보 부족 등의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계절적으로 축제 시기를 잘못잡은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농사가 완전히 끝나는 철에 맞춰 주민 모두의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던 의도와는 달리

농사는 끝났지만 김장철이 바로 걸려 많은 주민이 이날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요즘 생활패턴이 농촌마저 농한기 농번기 구별없이

일년 내도록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극히 바쁜 농사철 일부를 제외하곤 축제날짜가 언제라도 상관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2회 축제는 비나리가 가장 아름다운 봄날이나 수확기 직후

늦가을쯤 추워지기 전에 잡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이번축제는 애초에 계획잡았던

'청량산비나리권역 비나리마을학교 개관식'을 겸해 열기로 했다가

대통령선거로 인해 관계 기관 기관장들이 참석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연기냐 축소냐를 갖고 어물쩡거리다보니

늦게 축제를 열기로 결정하면서 사전 준비가 소홀하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마을극장 장문을 가릴 차광 커튼을 달 봉이

축제 당일날 도착해서 설치도 못한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치밀하게 챙기지 못한 어설픈 모습은

첫 마을 축제라고는 하지만  지나칠 정도였다.

진행 참여자들의 역할분담도 매끄럽지 못했고,

그 연장선에서 방문자에 대한 안내도 소홀했다.

더 중요하게는 축제 준비과정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마을자원을 충분히 동원하질 못했다.

다 예산상의 문제기도 하지만

좀더 성의를 가지고 참여를 독려하는 노력을 기울렸다면

훨씬 더 풍부한 축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마을 축제는 집중적인 준비기간이 따로 필요하긴 하겠지만

연중 마을축제를 염두에 두고 꾸준히 준비하는 것이 꼭 필요해 보인다.

 

축제의 지속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는 사실 예산상의 문제에 대한 검토도 필요해 보인다.

지원 예산 1,000만원에  청량산비나리마을 자체 수익금을 통한 예산

200만원 정도가 이번 축제에 투입된 예산의 전부다.

사실 지원 예산 1,000만원이라고는 하지만

소프트업체를 통해 집행되다보니 마을에서 받은

실제 적인 도움은 약 600만원 정도라고 보면 될것이다. 

수익은 물자 찬조와 조금의 찬조금을 받은 것이 거의 전부다.

문제는 지원예산 1,000만원이 끈겼을 때 조차

축제를 이끌어가기 위한 재정 대책을 어떻게 만들것인가 인데

그래서 2회 초롱축제부터는 마을주민화합잔치 성격과 더불어

도시민 유치 프로그램을 보다 강화해

수익성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뭏튼 오래전에 착상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마냥 미루어져오던 초롱축제를

이번에 불완전한 상태에서나마 개최할 수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첫 마을축제가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비나리초롱축제를 마을축제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잔치상만 받는 마을잔치가 아니라 더불어 같이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축제가 되는 단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사실 마을 축제의 성격상 축제의 내용보다는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가 더 문제가 될것인데

물론 그 존속가능성이 내용에 의해 규정받긴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주민의 참여에 달렸다고 본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나리초롱축제는 이제 시작이다.

10년뒤 20년 뒤에도 비나리마을에서 초롱축제가 열릴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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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을 통한 도시재생과 도시해체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몇년전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가까이 두고 읽었다는 책의 목록이 공개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그뒤 구입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맙게도 친절한 이웃으로 부터 먼저 선물을 받게되었다.  이렇게 내 손에 들어온 [아바나의 탄생]은 나의 게으름과 산만함에 쫒겨 책장 한켠에 몇년을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었다.  

[아바나의 탄생]이 나의 책장에 방치되어 있던 세월동안 생태도시 아바나는 참 친숙한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작동불능에 빠질 조짐을 보이자 사람들은 부지런히 쿠바를 찾았다고 한다. 환경운동가나 농촌운동가는 물론이고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발길까지 부지런히 쿠바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쿠바는 신자유주의의 작동유무이전에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도시의 황폐화, 후쿠시마가 보여준 핵재앙,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기상재앙 등 기존의 세계를 지탱해왔던 기반이 흔들리게 될 때마다  우리의 의식에서 되살아나는 어떤 이상향 같은 곳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제 쿠바는 하나의 엄연한 생태적 대안 모델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부당한 무역봉쇄정책에 맞선 생존전략으로 채택된 쿠바의 도시농업 도시공동체 사업이지만 이제는 쿠바모델이 에너지 위기- 경제위기 대응전략이 아니라  하나의 엄연한 존속가능한 반생태적 자본주의 대안 모델로 모색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쿠바의 도전은 적지않은 충격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렇게도 살 수 있을까하고 의문을 가질정도로 소비적 반생태적 삶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사실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해본 사람은 다 아는 유기농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 전국적으로 보편화시키는 과정은 참으로 고무적이었다.  "중앙집권적 '복지국가'의 체제를 개조하여 의사와 환자와의 동반자적 관계에 의해  개인의 자연치유력과 커뮤니티의 힘을 이끌어내는 '자급적인 의료'로 전환을 꾀"한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중국의학을 도입해 약품등 물자부족으로 인해 의료가 중단된 서양의학을 대체해 나가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로 감동적이었다. 특히 빈곤문제를 사회자본의 활성화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문제의식은 낙후된 한국의 복지 인식에 비해 훨씬 진전된 것으로 느껴졌다. 저에너지를 넘어 에너지 제로 사회를 향한 쿠바의 노력은 핵위기에 노출된 한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아뭏튼 쿠바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사회 구성을 상상할 때 불가능하다고 밀쳐두게 되는 영역이 그만치 줄어들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한명의 농부로서 이 책의 내용을 다시금 음미해 보면 몇가지 의구심을 피할 수 없었다. 도시농업과 농촌농업의 건강한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하는지 이 책은 다루고 있지 않았다. 사실 사회 시스템 전반이 바뀌지 않고 도시농업을 도시 재생 프로그램으로 적용가능할지도 잘 이해되질 않았다. 도시 근교의 텃밭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서울 도심에 개인적 취미 생활정도가 아니라 유의미한 채소밭이 가꾸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잘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앞장서서  황폐한 서울의 삶을 치유하기 위해 공동체의 가치와 도시농업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고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도시속으로 들어간 농촌이 진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지  궁금해 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도시는 도시적인 편리를 비롯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급기야 농촌스런 가치마저 흡수하게 되는 현실이 결국 농촌의 존재가치를 손상하는 로 나아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농촌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도시농업을 통한 도시의 재생이 더나아가 도시의 해체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도시의 해체는 지방과 서울의 차별을 사라지게 하고 나아가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도시의 유지 존속을 위한 많은 노력들 대신에 도시해체를 통해 시가 갖는 병폐 자체를 해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센프란시스코 등 소개된 다른 도시의 도시농업은 쿠바의 도시농업과 비교될 수 없어보인다. 도시농업을 통해 도시 재생이 과연 가능할까는 의구심을 가지는 사례는 바로 서울이나  센프란시스코와 같은 도시의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 쿠바의 사례는 그런 도시의 사례와 분명히 단전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아바나는 도시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속에서 도시의 해체ㄹ르 통해 도시를 구한 사례가 아닐까? 그런데 과연 서울이, 센프란시스코에 쿠바의 사례를 적용하는게 가능할까? 사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끝내 해결되지 않는 한가지 의문이 남았다. "카스트로 정권은 이전까지의 중앙집권적인 관료국가 체제를 개혁하고, 관청을 반으로 줄이는 철저한 행정개혁을 추진하면서 시장과 경쟁원리를 끌어들여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동을 시험하고 있다'는 필자 요시다 타로의 진술을 어디까지가 질실인지 가름할 어떤 논거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 극복 방안으로 주목받는 쿠바가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동을 시험하는 사례로 언급된다는 점은 아무리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쿠바의 노력은 중앙집권적 국가주의 사회주의에서 민주적 분권적 사회주의로의 전환으로 이해해야하지 않을까?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농민시장을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로 이해하는 필자의 입장을 나는 받아 들일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상을 구상하는 데 있어 보다 폭넓은 자유를 얻었다.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는 늘 경험에 종속된다. 그 한계를 깨고 상상력을 넓혀주는 책은 분명히 양서일 것이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그와같은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에 누구에게라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그런 책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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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법이 아니라 이기는 법을 배우는 책

 

만델라는 자신의 삶의 역정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이라 말한다. 그 길은 자유를 향한 길이었기에 멀 수 밖에 없는 길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먼나먼 길이라고는하지만 자유를 향한 길이기에 중간에 주저앉지 않고 참고 버텨낼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델라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해방 투쟁은 먼길이었을지언정 불투명한 길은 아니었다. 아파라트헤이트를 분쇄하고, 다인종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위한 투쟁의 대열은 명확한 목표를 공유했다. 영미의 불투명한 자세가 끊임없이 문제를 꼬이게 하고 본질을 흐려놓았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라는 든든한 기반위에서 도덕적 정치적 명분을 동시에 움켜지고 치룬 질 수 없는 투쟁의 길이었다.

그렇다고 남아프리카 해방 투쟁이 희희낙낙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극단적인 인종차별에 기반한 백인지배 권력은 체제의 존속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다. 일제시대 일본제국주의가 그러했듯 소위 문화 통치라 부를 수 있는 포섭 회유책에서 부터, 원주민 부족간 분쟁을 부추키는 분할통치 수법, 저항 세력에 대한 합법을 가장한 정치적 억압, 그리고 테러와 암살이라는 비합법적 방법을 넘어 나찌를 연상케할 만한 대량 학살까지 백인 정부는 그들의 기득권을 존속시키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서 흑인 청년 만델라가 갈 수 있는 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백인 지배질서를 수용하고 그 아래 부역함으로써 자신의 부귀와 영달을 꾀하는 길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존귀한 백인과 미천한 흑인의 이분법이 통용되는 세상의 부정의를 향해 분노하고 저항하는 길이었다. 만델라는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해방을 끝내 쟁취했다. 

두어달 전 만델라의 자서전을 선물받았을 때 지금 왠 뜬금없는 만델라인가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잠들기 전 이부자리에서 한쪽 두쪽 읽기 시작한 뒤 나는 만델라의 삶에 빠져들었다.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배울수 있는 것이 많긴 하겠지만 그로부터 얻은 배움이 고스란히 나의 지금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 역시 그랬다.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반동의 시대, 파시즘이 온갖 치장을 하고 민주주의 행세를 하는 거짓의 시대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것인가에 대해 만델라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일대기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구체적인 답보다 훨씬 깊은 영감을 제시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넘어 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를 다시금 되묻게 하는 만델라의 일대기가 다시 먼 전망을 모색해야하는 우리에게 참 좋은 교과서가 될 것같다.

나는 만델라의 삶의 역정을 따라가며 투사의 삶보다는 친근한 인간적 면모를 가진 한 사람의 성인을 연상했다. 그것은 이 책이 사후적으로 지난 투쟁을 정리하는 자서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만델라의 삶에서 분노와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부정의에 대한 분노없이 정의를 위한 투쟁이 있을 수 있겠는가마는 만델라는 인종차별이라는 극악한 부정의에 맞서 흑인우월주의나 타인종 적대주의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인종이 조화로운 삶을 사는 세상을 추구했다.  백인정권의 포악한 억압에 맞서 만델라가 무장투쟁 노선을 선언하고 '민족의 창'이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군사훈련과 군사적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평온하고 담대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대적투쟁에서 보였던 만델라의 노선은 전선 내부의 분열과 대립과정에서도 그대로 견지되었다. 해방을 위한 투쟁의 도정에서 그가 속한 ANC(아프리카 민족회의)와 ANC의 온건노선에 반대해 조직된 PAC(범아프리카회의)가 분립하여 대치할 때도 그는 두조직이 적대하는 상황에 빠지지않도록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흑인 우파를 대표하는 인카타자유당과 줄루족의 분열주의와 참혹한 테러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도 만데라는 결국 백인 이든 줄루족이든 같이 위대한 남아프리카인으로 더불어 살아갈 사람이라는 전제를 견지했다. 그와같은 만델라의 연대와 평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입장은 결국 남아프리카 인민과 세계인의 공감을 획득하게 된다. 결국 해방투쟁을 군사적 전투가 아니라 국제적 여론에 힘입은 지난한 협상의 과정을 통해 승리한다. 만델라가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와같은 연대와 평화의 정신이 아닌가싶다. 무장투쟁노선을 견지한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탈 수 있었던 것도  만델라 자신이 견지한 평화와 연대의 원칙 때문이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백인 정권으로부터 해방되고나서도 만델라의 원칙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 그대로 반영된다. '진실을 밝히되, 처벌하지 않는다'는 만델라의 입장은 수많은 목숨을 받쳐 승리한 세력이 쉽게 채택할 수 있는 노선은 아니었다. 내부적인 반발과 권력을 잃은 구백인정권의 비협조와 조소는 만델라를 곤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델라는 그와같은 노선을 통해 결국 진정한 승리를 챙취한다. 청춘을 바친 투쟁과 27년의 감옥살이, 그리고 수년에 걸친 협상과정을 통해 만델라는 백인정권을 해체하지만 그의 진정한 승리는 정권 장악뒤에 진행된 진실을 밝히고 화해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나는 그의 삶을 통해 어떻게 싸우는 것이 진정한 승리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덤으로 이책을 번역한 김대중전 대통령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만델라와 김대중.. 이 두 사람은 참 많은 유사점을 가진 것 같다. 오랜 세월 억압속에서도 평생을 정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끝내 승리를 가져온 점 뿐 아니라 투쟁과정에서 견지한 비적대적 입장, 정권 장악뒤에 가진 신실과 화해를 위한 노력, 나아가 그와같은 노선을 인정받아 노벨 펑화상을 타게 되는 것까지 똑같다. 만델라와 김대중 이 두 사람의 힘은 사실 일희일비하지 않는 담대함에 있는 것 같다.  

대선이 끝난뒤 한국의 진보 개혁 세력은 큰 혼돈에 빠진듯하다. 내부적으로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또다른 분열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대선 패배의 원인분석과 그에 따른 책임부여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학적 비판이나 정파적 이해에 얽힌 기싸움은 진보개혁세력의 미래에 아무런 희망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조중동 프레임을 그대로 채용한채 자행되는 '친노패권주의' 운운하는 마녀사냥이나, 좌편향 우편향으로 흔들리며 제기되는 선거전략의 이념적 편향에 대한 분석은 극히 위험해보인다. 연대의 방식에 대한 분석과 검토를 넘어, 연대 무용론까지 나가버리는 청산적 태도는 비의회주의적 변혁노선에서나 유의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만의 진지를 온전히 보전하겠다는 소수좌파정당의 고집은 51대 49라는 판세로 결정되는 선거판에서 채택할 수 있는 전략으로는 적합하지 않기때문이다. 이 모든 의문에 대해 만델라는 정답이 아니라 그 답을 찾기 위한 바른 태도를 보여준다.  

뜬금없는 시기에 만델라의 일대기를 읽고 나는 그의 삶이 전해 주는 메시지를 싸우는 "방법을 넘어 승리하는 방법"로 읽었다. 극히 주관적인 감상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질 수 없는 싸움에 번번히 지는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아직 승리하는 법에 서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만델라의 싸움과는 달리 목표는 분명하데 상대는 훨씬 불투명한 싸움을 해야하는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만델라가 주는 메시지는 그뿐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보다 담대해지고, 나아가 작은 정파적 차이에 대해 서로 관대해지고 파도치는 정치적 지형에 따라 보다 유연해 진다면 파시스트 잔당에 의해 장악된 기득권세력과의 싸움에서 진정한 승리를 획득하는 날이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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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명호면의 '비나리마을'은 권정생선생님의 작품

[비나리달이네 집]의 배경이 되었던 동네입니다.

권정생선생님과 이야기의 주인공이되었던 달이 그리고

정호경 신부님 마저 다 돌아가시고

이제 비나리마을에는 달이가 살았던 통나무집과

권정생 선생님이 전하고자 했던

애틋한 생명사랑의 정신만 주민의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비나리마을 학교에서는 권정생선생님의 마음을

세상의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

"비나리 달이네 집에서 시작하는 [권정생 동화캠프]"를 열게 되었습니다.

* 주관 : 비나리마을학교

* 후원 :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 일시 : 2013년 1월 26일(1박2일) / 오후2시까지 비나리마을학교 참가자 개별 도착

* 참가대상 : 초등생을 포함한 가족 누구나

* 정원 : 50명

* 참가비 : 1인 8만원 / 2인가족 15만원 / 3인가족 21만원 / 4인가족(26만원)

         (농협 355-0018-5420-33 예금주 : 청량산비나리마을)

* 참가 신청 : 비나리마을학교 010-6345-6234/ 010-7755-8618 / 054-673-1927

* 프로그램:

01/26()

14:00~14:50

일정 시작-도착 후 숙소배정 명찰, 팀 구성

15:00~15;50

오리렌테이션, 권정생 작가, ‘비나리달이네집에 대한 소개

16:00~18:00

비나리달이네집통나무 집 방문, 주인공 신부님 이야기 듣기

18:00~19:00

저녁식사

19:00~19:30

그림자 연극 공연

 19:30~20:00

 참가자 시나리오 작성(비나리달이네집주제를 바탕으로 )

 20:00~20:50  시연(역할극)

21:00~22:00

동화구연 한마당(놀고 즐기는 시간)

01/27()

07:30

기상

08:00~08:50

아침식사

09:00~10:00

독서 골든벨

10:00~11:00

전래놀이(비석치기, 마당 윷)

11:00~12:00

편지쓰기- 달이에게, 신부님에게

12:00~13:00

중식 프로그램 종료

 

글 : 권정생
그림 : 김동성

다리를 잃은 강아지 달이와 비나리 마을로 귀농한 신부님 이야기입니다.

자연 속에서 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귀농한 신부님. 신부님이 농사 일로 바빠서 혼자 놀던 달이는 마을 사람들이 산동물을 잡으려고 놓아둔 덫에 다리를 잃게 됩니다.

농촌 생활을 하면서 달이와 신부님이 나누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입니다.

비나리 달이네 집에 나오는 달이와 신부님은 비나리 마을에 살고 있는 실제 인물을 토대로 쓰여진 동화입니다.

달이는 그후 몇 년 뒤 나이가 들어 신부님 곁을 떠났고 달이를 대신해 반달이라는 강아지가 신부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달이도 사람들이 산동물을 잡기 위해 놓아둔 덫에 다리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강아지 못지 않게 세 발로 온 동네를 뛰어 다니는 못 말리는 개구쟁이 강아지로 마을에서 유명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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