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군항제는 1963년에 시작되었고 올해가 53회째라고 했다. 62년생인 나와 한살차이 동생인 셈이니 같이 늙어 갈 좋은 도반이다. 진해는 나의 고향이다. 6살에 춘천 오음리에서 외갓집이 있는 진해로 이사를 와서 스무살이 넘어 진해를 떠났고, 진해를 떠난 뒤로도 일년에 서너번씩 부모님을 뵈러 방문해야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진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던 다섯 외삼촌댁과 이모댁을 내집같이 드나들며 외사촌들이랑 같이 자라다시피했고, 진해 시가지는 물론이고 행암이며 속천 그리고 멀리 웅천 바닷가와 장복산 구석구석까지 나의 발길이 닫지 않은 곳이 없도록 돌아나녔다. 참 말할 수 없이 많은 추억이 서려있고, 나의 삶을 따듯하게 유지시켜주는 마르지 않는 온기의 원천이 바로 진해다.
그중에서도 군항제는 빼어놓을 수 없는 내 어린 시절 추억의 특별한 보고다. 진해에 봄이오면어디론가 꼭 떠나야만 할것 같은 가슴벅찬 설레임, 거부할 수 없는 미지의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 저항할 수 없는 유랑의 유혹에 몸부림쳐야했다. 어쩌면 나는 그냥 벗꽃에 미쳐버렸다고해도 좋을 정신상태에 빠져들었다. 할일없이 벗꽃장을 쏴 다니는 것만으로 뜨거운 가슴을 식혀야 했지만 그것은 유독 나만의 정서는 아니었다. 군항제가 끝나고나면 꼭 한반에 한두명씩 가출해 버린 친구의 소식을 들어야만했기 때문이다.
53회 군항제 전야제가 있던 날, 부슬부슬내리는 봄비를 가르며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반만에 진해에 도착했다. 그리고 1박1일의 짧은 진해 투어를 시작했다. 해군통제본부를 시작으로 해군사관학교 그리고 진해루, 경화역을 거쳐 여좌천과 내수면 양어장을 두루 둘러보는 초압축일정을 소화했다. 일본에서 귀향한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가마니로 움막을 짓고 살던 동네라고 어릴적 '가마니골'이라고 불렸던 동네의 새롭게 들어선 현대적 까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한잔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저녁 늦게 고향친구를 만나 명물인 '가야밀면'을 한그릇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봉화로 돌려야했다.
이번 군항제 투어는 사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여행이었다. 어머니의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에 지나간 추억을 반추하고, 나중에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따듯한 어떤 느낌만이라도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강행한 여정이었다. 사실 마음뿐이고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힘들기만 했던 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네째 아들이 같이한 군항제의 기억이 어머니의 뇌리 깊이 스며들길 비는 마음으로 2015년의 3월의 마지막날에 시작하여 4월의 첫날에 마친 진해 군항제 투어의 거친 기록을 남긴다.
20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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