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웃 형이 연주하던 '로망스'와 '아람브라라궁전의 추억'을 듣고 클래식 기타에 처음 혹한 것이 1970년대 말, 고등학교시절이다. 그러니  벌써 30년을 휠씬 더 전에 기타와의 인연은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 그기타를 한번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이 그냥 기타를 가까이 두는 것에 만족하며,  언젠가는 꼭 기타를 배울 수 있겠지 하는 근거없는 희망만 간직한채 살아왔다. 그런데 딸애가 중학교를 다닐 때 이 때다 싶어 딸애에게 내가 배우지 못한 기타를  배울 것을 종용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 때 딸은 기타의 매력을 공감할 수 있었던지 한 일년 먼길을 버스를 타고 기타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그뒤 입시로 인해 오래동안 기타를 방치해둔 세월이 있긴 했지만 다시 대학에 진학하면서 기타써클에 가입하고 나름대로 기타를 즐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도 가끔 집에 내려와 기타를 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딸애가 참 사랑스럽다.

그렇다고 내자신 영영 기타 배우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2년전 봉화문화원에 클래식 기타반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큰 용기를 내어 등록을 했다. '쉰나이에 왠기타 초보?'하는 생각을 가지고 나간 문화원 기타반은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었다. 젊어서 부터 배우고 싶었던 기타를 이제사 배우게 되었다는 정년 퇴직하신 어르신은 물론이고 일흔이 넘은 할머니도 계셨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한테 어우려져 기타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나이도 실력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봉화문화원 기타반에서 방치되었던 꿈을 다시 실현할 수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기타반  선생님의 열정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살면서 많은 배움의 과정이 있었고  수많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토록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가진 분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모처럼 용기를 내어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고 좋은 분들과 같이 기타를 배우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같이 합주곡을 연습하고 지역 사회의 작은 무대에 첫 공연을 할 때의 두근거림은 평생 잊혀질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 기타를 배운지 2년만에 처음으로 작은 음악회에서 독주곡을 연주하는 영광스런 기회를 가졌다.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있은 [재능기부단 정기공연]에서 [Mi Favorita]를 연주했다. 너무 긴장하다보니 악보를 놓쳐 헤메기도하고, 손이 땀에 젖어 코드를 제대로 잡지 못해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자신이 평생 처음으로 독주곡을 연주했다는 기쁨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시 마음솟에는 많은 계획이 절로 생겨났다. 앞으로 1년동안 연주할 수 있을 만치 숙달하고 싶은 곡들이 벌써 정해졌다. [Serenta Espagnola], [Sons De La Campanellas]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난 뒤겠지만 언젠가 [Cavatina]도 꼭 도전하고 싶다.  

 

반응형
반응형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 귀농 15년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보따리 싸들고 서울을 떠나온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강산이 바뀌고도 남을 세월이 흘러 나는 삼십대 중반의 새신랑에서 오십대 초반의 중년으로 변했다. 변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얼치기 귀농자에서 이제 산골 마을 비나리의 어엿한 주민의 한 사람이 되었고,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자랑스러운 농부가 되었다. 물론 세월이 저절로 나를 비나리마을의 주민으로, 농부로 만들어준 것만은 아니다. 한명의 농부, 한명의 마을 주민이 되기 위해서는 인고의 세월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고 쉽지 않은 고난의 통과의례를 헤쳐 나와야 했다.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니 아득한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아직 갈 길이 더 먼 것 같다. 그것은 내가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렇게 하면 귀농 실패 한다’라는 제목의 전문가연하는 분들의 글에 나오는 딱 그런 귀농을 했다. 세상살이에 지쳤고, 그리고 막연한 농촌살이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막무가내 보따리를 쌌다. 내가 받은 귀농관련 교육이라고는 농협주관의 2박3일 교육이 전부였고, 그리고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요구된다는 최소한의 자금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농촌도 사람 사는 곳이고, 저 허리 굽은 노인네도 농사지어 자식 다 키우고 밥 안 굶고 살고 있는데 시퍼렇게 젊은 내가 설마 처자식 굶길라고. 하는 오기만 잔뜩 가슴에 품고 낯선 마을에 짐을 풀고 난생 처음으로 호미를 잡았다.

그리고 농촌의 실상을 잘 아시는 분들이면 쉽게 예상하시겠지만 나는 번번이 엎어지고 깨어졌다. 벼랑 끝에 내몰려 다시 귀도를 고려해야할 만치 절박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산골마을은 각자도생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내가 가졌던 산골살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많은 부분 사실과 맞아떨어졌다. 내가 어려울 때 이웃은 외면하지 않았고, 또 이웃이 고난에 처했을 때 내 역시 무심할 수 없었다. 흩어진 기억을 추슬러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품삯에 연연하지 않고 해 떨어진 고구마 밭에서 수확을 거들어 주시던 이웃 할머니, 도끼 자루 만드는 일부터 장작 패는 일까지 고스란히 삶의 지혜를 전수해 주셨던 이웃 어르신, 어떻게 하면 희망이 사그라지는 농촌에서 아름답고 풍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같이 고민을 나누던 젊은 친구들이 있어 나는 좌절할 수 없었다. 해거름에 지쳐 돌아오는 날 아득한 눈빛으로 맞으시며 ‘인자 오는가’라는 한마디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을 담아 전해주시던 앞집 형님,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피땀으로 농사지은 수박이 한줄기 소나기에 다 갈라져도 몇 개 남지 않은 성한 놈을 골라 이왕 망한 농사 맛이라도 보라며 가져다주시던 바로 그런 이웃이 있어 나는 이제 어엿한 비나리마을의 주민의 한사람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공동체에 눈을 뜨고 더불어 사는 재미를 맛보게 했던 [청량산감자작목반]의 일원이 되고, 또 농촌의 활로를 개척하고자 앞서가던 이웃의 손에 이끌려 [관북 팜스테이마을]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세상과 부대끼지 않고 혼자 농사지어 내 가족 먹여 살리겠다던 나의 삶의 모토는 폐기되었다. 산골살이를 시작한지 오륙년이 지나면서 소위 다양한 공동체 사업, 특히 도농교류사업에 참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관이 지원하고 주민이 주도하는 도농교류사업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세월이 가고 성과가 쌓이면서 이제는 농민회와 같은 농민 자치조직이나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양한 공동체의 형식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도농교류가 먹거리의 공급처와 소비처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도시와 농촌을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하고 이를 통해 도시와 더불어 농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도농교류의 일면성이 갖는 위험을 자각 하고 외부와의 관계보다 내부의 변화를 중심에 둔 사업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오직 ‘소득증대’만이 마을을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주민의 행복에 기여하는 가치기반의 공유와 귀속감 형성을 통한 정체성 확립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자각에 이르기도 했다. 나의 관심은 녹색체험마을과 정보화마을 사업에서 마을공부방이나 자활농장으로, 체험프로그램에서 동제나 초롱계같은 마을의 전래풍습으로, 도농교류에서 주민교육 중심의 “마을학교”로 관심의 중심이 바뀌었다.

이제 다양한 마을사업의 작은 성과로 ‘비나리마을학교’라는 외적 인프라와 그 ‘학교’를 채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혹은 가치를 빈약하게나마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주말이면 도시의 청년학생들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배우러 마을을 찾고, 주중이면 주민들이 같이 모여 자신의 삶의 소중함을 지키고 고양시킬 다양한 배움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초라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제 필요한 것은 조금의 시간과 좀 더 많은 열정뿐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언제부턴가 농사는 뒷전이고 이웃과 더불어 ‘비나리마을학교’를 통해 마을의 가치, 농업 농촌의 가치,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모으고 다듬어서 세상에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물론 하루라도 빨리 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지금 주어진 일에 조갑증 갖지 않고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나는 세상을 버렸지만 마을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마을살이를 통해 더불어 사는 재미를 찾았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 수 있었다. 그것은 땅을 일구며 누대를 살아오신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의 심원한 삶의 지혜에 내가 감화되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을이 갖고 있는 유구한 역사가 전해주는 에너지에 내가 동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자신이 생애동안 내렸던 수많은 선택 중에 가장 잘한 것을 ‘귀농’이라고 자신한다. 그렇게 선택한 길은 온갖 위험과 유혹이 도사린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 길을 걸어 한참을 왔지만 아직 갈 길이 더 멀다. 나는 그래서 좋다. 쉽지 않고 또 멀기까지 한 길의 매력에 공감하는 분이라며 나는 스스럼없이 귀농을 권할 것이다.

2013.11.30

반응형
반응형

2013.11.28 유교문화재단 봉화군 포럼

마을문화자원의 발견 - 비나리 초롱계

초롱계의 재생이 마을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까?

비나리마을학교

초롱과 주민의 삶

초롱은 어둠을 밝히는 수단이다. 초롱이 있어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올 때, 온기를 지키며 생명을 보존하던 ‘방’이라는 작은 공간에 스며드는 어둠을 물리칠 수 있었다. 어쩌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고샅길을 걸어 이웃나들이라도 해야 할 급박한 처지가 되면 초롱은 어둠을 가르고 길을 여는 없어서는 안 될 생활 기구였다. 하지만 전기가 없던 시절 초롱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정도의 가치를 지닌 하나의 등불이라는 연장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초롱이 담고 있던 것은 단순한 조명기구의 의미를 넘어 삶의 온기, 인정, 안녕, 평화 이 모든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따스함을 이웃과 나눌 때는 공동체 전체를 밝히는 어떤 삶의 지표, 공동의 가치를 담고 있는 그릇으로 승화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비나리초롱계란 무엇인가?

[초롱계]는 그와같은 초롱의 의미가 마을공동체의 삶속에서 구체화된 하나의 제도였을 것이다. 전쟁이나 난리, 돌림병이나 자연재해 같은 재난이 닥치지 않았을 때조차 먹을거리마저 넉넉하지 못했을 산골 마을의 삶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선 아슬아슬한 하루살이의 삶과 진배없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삶의 조건 속에서 누대를 지나며 축적된 삶의 지혜는 더불어 사는 삶의 틀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마을을 지키고 삶을 보전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제도를 만들었을 것인데 초롱계는 그와 같은 공동체적 삶의 존속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결과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롱계는 비나리마을은 물론 인근 고계리 등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전통이다. 전기가 없던 시절, 큰일을 치루는 이웃에 초롱불로 부조를 하던 아름다운 풍습이다. 이웃에 상이나, 혼례가 있으면 온 마을이 집집이 한손에는 두부나 떡을 해 들고, 또 한손에는 초롱불을 들고 큰일을 치루는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웃을 도와 가며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나마 마음 넉넉하게 살아올 수 있게 했던 아름답고 지혜로운 전통이었다. 이웃의 도움으로 큰일을 치룬 주인은 그뒤 자신의 사정에 맞춰 적당한 금액의 돈을 초롱계 기금으로 내어 놓기도 하고 그렇게 모인 돈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운영되어왔다.

비나리초롱계의 현재

새마을운동으로 전통 공동체 문화가 쑥대밭이 되기전인 1970년대 초까지 이어져오던 초롱계는 그뒤 마을의 쇠락까지 겹쳐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현재는 동네 상여계와 합쳐져 그 본질적 내용은 유실되고 외형적 흔적만 겨우 유지되고 있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는 변화는 마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일대 사건이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초롱의 의미, 초롱계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뒤부터 초롱을 부조하던 전통은 사라지고, 초롱계의 형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상여계’는 동네에 상이 났을 때 상주가 상여꾼에게 주는 노잣돈을 밑천으로 마을주민의 편리향상을 위한 다양한 일을 하는 기금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계다. 상여계의 기금은 기본적으로 여러가지 마을행사 비용이나 마을 공용 비품을 조달하는데 사용하고, 그러고도 남는 기금은 마을 주민중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일정한 이자를 물게 하고 1년단위로 빌려주어 기금을 유지하거나 불려나간다. 언제부턴가 비나리마을 초롱계는 마을 대소사 중 장례만 해당하는 상여계와 통합되어 구별되지 않게 되었지만 '초롱계'라는 이름만 남아 내용적으로는 상여계로 변형되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올해도 음력 섣달 25일이 되면 어김없이 비나리마을 초롱계가 열린다. 그날은 마을주민이 모두 마을회관에 모여 작년에 빌려간 기금을 이자와 함께 모으고, 지난 일년간 동네일로 쓴 금액을 제하고 나머지를 다시 필요한 주민에게 빌려주고, 그 모든 내용을 기록하고 서명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친다, 그리고 나서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나누며 주민 모두가 하루를 더불어 즐길 것이다. 하지만 비나리초롱계는 그 본질적 의미는 물론이고 그 외형마저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먼저 기금의 원천이 되었던 상여를 메지 못한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마을에 상이 나도 상조회사 같은 업체가 마을주민이 주도하는 상여계를 대신하게 되었다. 더 이상 기금은 들어오지 않고 지출은 계속하다보니 비나리마을 초롱계 기금은 고갈직전이다. 기금의 고갈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 제도의 존속을 위한 순환체계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이 나도 상여 맬 젊은이가 귀하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마을주민의 의식도 ‘합리화’되었다. 굳이 마을 상여계에 상을 맡겨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 상조회사에 더 적은 비용을 주고 깔끔하게 맡겨버리는 걸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상여계가 붕괴되는 과정이 지난 10여년 동안 진행되었다. 10여년 전만해도 동네에 상이나면 주민이 모두 상여꾼으로 나서고 상주가 내어놓은 노잣돈은 초롱계 기금으로 모였다. 하지만 마을에 인구가 줄고, 특히 상여를 맬 청장년이 줄어들면서 상여멜 최소 인원이 충당되지 못하자 초롱계 기금으로 모으던 노잣돈을 상여꾼의 일당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더나아가 얼마남지 않은 기금이 고갈되어가자 기금이 형성되는 데 오랜 기여를 해 오신 어르신을 중심으로 기금을 나누어 쓰고 없애버리자는 의견이 나오고 이 때문에 몇년간 논란이 이어지기 했다. 이제는 상여계의 중단, 초롱계의 소멸이 마을의 소멸로 나아가지 않을까 걱정해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초롱계의 부활-비나리초롱축제

‘초롱계’는 ‘마을 동제’와 함께 마을을 유지 존속케하고 주민을 통합시키는 데 있어 양대축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마을동제가 동신을 중심으로 주민의 의지를 모아 신의 영역에 마을의 삶을 의지케했다면 ‘초롱계’는 마을 주민 스스로 자신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삶속에 체현해 나가던 제도이다. 마을 초롱계의 형식은 세월따라 바뀌었지만 이웃의 대사에 초롱을 부조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담고 있던 가치와 정신은 여전히 부식될 수 없는 핵심으로 남아있다. 그 가치와 정신을 마을살이의 여건 변화에 맞춰 새롭게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비나리 초롱축제'로 새롭게 태어났다.

몇년전 비나리산골미술관 개관식에 맞춰 초롱을 부조하는 초롱행렬을 개관식 참가객과 주민이 함께 재현한 적이 있다. 하나의 문화 이벤트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재현해본 초롱핼렬이었지만 세월따라 알게 모르게 침체되고 생기를 잃은 마을이 수많은 초롱행렬로 아름답게 되살아나는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 초롱행렬의 재현은 연년이 이어지지 못하고 예산의 벽에 부딪혀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끊어진 초롱행렬을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한 청량산 인근마을과 더불어, 주민과의 연대와 소통에서, 마을과 마을의 연대와 소통을 이루는 축제의 장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소멸되어가던 마을이 비나리초롱축제를 매개로 활력과 신명이 넘치는, 사람사는 마을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마을이 가지된 하나의 작은 꿈이다.

지난 70년대 [새마을운동]이라는 관주도 마을 재생사업이 나름의 성과와 많은 부작용 속에서 마무리 된 뒤 마을 공동체 사업은 실제적으로 중단되어 왔다. 그뒤 지난 10여년간 비나리마을을 위시한 청량산권역 마을들은 마을자치역량을 중심으로 민간이 주도하고 관의 보조를 받아 마을의 경제적 부흥을 위한 다양한 마을 사업을 진행하여 왔다. 이제는 마을 사업의 한축인 경제적 부흥과 더불어 또 다른 마을 사업의 한축으로 마을 공동체의 정신, 마을공동체의 가치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비나리마을 초롱축제의 재생은 그와같은 마을공동제의 가치와 정신을 새롭게 구축하고 실현해 나가기 위한 의미있는 마을운동의 일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반응형
반응형

2013.11.15  [커뮤니티와 경제] 주관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 워크삽

 

비나리마을의 미래 협동조합이 바꿀 수 있을까?

 

1. 소득증대로 마을을 살린다? : 마을 공동체 사업의 시작 [ 징코민 토종닭 작목반]

- 지역 자원을 이용한 첫 공동 소득창출 사업

- 명호초등학교 교정의 오래된 은행나무에서 착안

- 은행잎 분말을 혼입한 사료로 닭사육 시작

- 2000년 청량산도립공원 인근 농가식당을 중심으로 “작목반” 결성

- 고비용, 저산출의 징코민 토종닭

- 2001년 판로개척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팜스태이”사업 유치

- 도시민을 마을에 유치하여 단기간이나마 머물면서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에서 나는 농식품을 소비하게 하여 마을의 소득 증대를 도모하고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사업

- 현재 10여농가가 참여하고 있고, 지역특산물로 인정받아 안정화된 소득 구조를 유지

* 한계 :

1) 지역 확장성에 한계가 있고,

2) 참여농가의 개별적 이익중심으로 운영되어 조직적 성과가 미흡하고

3) 반원간 경쟁구조를 가짐.

2. 문화예술을 통한 마을의 변화를 시도하다.

1.1 비나리미술관 : 사람을 모으는 문화 예술에 주목하다.

- 2002년 팜스태이마을 사업 경험을 통해 본격적인 도농교류사업을 펼칠 목적으로 “녹색체험마을” 사업 유치

- 먹거리 공급처에서 고향의 향수, 정서적 가치를 팔 수있을까?

- 농촌이 직면한 문제를 농촌과 도시의 새로운 관계설정에서 찾으려는 의도로 녹색체험마을 사업 시작

- 2억원의 지원금중 일부로 “비나리산골미술관”지음.

- “비나리산골미술관”을 농촌과 도시가 만나는 매개거점으로 이용하다.

- 도농교류사업의 위험성 : 주민 모두가 행복한 도농교류가 가능한가?

- 교육과잉의 도시아이와 산골살이가 부끄러운 농촌아이의 첫 조우

- 도농교류사업의 방향전환 : 도시민 유치가 중심이 아니라 주민의 문화복지가 우선이다.

- “비나리토요미술교실” 6~7년운영, 이를 통해 마을사업의 새로운 전기를 맞음

- 어린이 미술교실이 어른의 사람방, 젊은 학부모의 모듬으로 이어짐

- 교육, 농사 등 지역 모듬살이와 관련된 현안이 논의되는 자리, 지역사회의 변화를 도모할 새로운 모임이 태동하는 자리가 됨

1.2 청량산비나리정보화마을 사업

- 지역내 젊은 세대의 요구로 정보화마을 사업 유치

- 인터넷 사각지대에 인터넷 망이 들어오고

- 사이버상의 마을정보의 중심이 형성됨

- 농업, 농촌의 가치를 도시로 확산하는 획기적 게기 마련

- 인터넷 교육을 통해 마을내 교육의 가능성, 가치 확인(마을공부방 태동)

- 도농교류 및 농산물 판매 등에 기여하고 있고,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음

1.3 청량산 감자 작목반 : 협동과 신뢰의 중요성을 확인

- 공동노동의 ‘낭만’을 쫓아 10여 농가로 작목반을 구성하고, 작목반원의 일부(4가구)가 참가하는 공동경작 시도.

- 2만평 토지에 씨감자회사와 계약재배

- 공동노동의 비효율/ 무책임성에 직면

- 년말 결산 600만원 적자: 1가구당 150만원 적자

- 새로운 대안 찾지 못하고 공동경작 사업 1년만에 무산

** 성과

1) 비록 적자농사였지만 더불어 공동의 생활기반을 만들기 위해 땀흘리는 기쁨 확인

2) 지역사회내 작은 미담으로 남아 다시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사례로 기억됨. (같이 손해보는 사업을 웃으면서 했던 아름다운 시간!!)

3.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마을을 바꾼다?

- 정부주도 마을사업의 결정판, 2009년 농림부로부터 69억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유치

- 유치 목적은 도농교류 사업, 마을내 교육문화사업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것과, 풍호1리 중심의 마을 사업을 7개리로 확대하는데 있었음

- 현제 ‘비나리마을학교’ ‘청량산농산물판매장’ ‘귀농인의 집’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 시민단체, 소기업, 노조, 학교의 MT, 워크삽 등 유치를 기본으로 하면서

- 공동체 가치중심의 단체나 프로그램 유치, 자체 프로그램 개발

- 마을주민의 문화복지 차원의 프로그램 기획운영중

4. 정부지원 사업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노력들

- 도농교류 사업을 통해 직접적인 성과보다는 마을 내부로 향하는 시각이 변화한 것이 더 튼 성과일수도 있다.

- 단순한 도시민의 유치를 통한 소득증대가 아니라 우리의 삶은 어떼야 한는가를 두러보게 됨.

- 그 과정에서 농민의 삶의 가치, 농업의 가치를 지켜나갈 농민회를 결정

- 혐동농업의 정신을 유지하고 확산시켜나갈 매개로 자활농장 도입(4개의 일자리 창출)

- 공동 육아나 공동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밭두렁공부방 설립(5년전부터 운영중)

** 풀리지 않는 문제들 :

- 정부주도 사업을 하기위해선 마을을 보다 더 자본주의적으로 개편해야 :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

- 농가경영체 등록 : 농업경쟁력의 관점에서 덜자주의화된 농민의식이 낙후의 원인이다?

- 마을사업단위의 영농조합법인화 : 작목반이나 ‘마을‘단위의 사업 주체보다 회계의 투명성, 경영의 효율성을 기할 수 있다고 하나, 근본적으로 가치 중심에서 성고중심으로 합리화-자본주의화 하자는 것. (비나리마을 사업의 현재 단계)

- 참여범위의 한계 : 노령화된 농촌현실에서 사업 참여 주체보다 사업을 통해 보듬어야 할 노년층이 훨씬 더 많은 현실을 돌파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

- 가치공유의 문제 : 마을 사업이 단순한 소득증대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 사업추진 과정에서 가치의 공유과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마을사업이 마을의 유지 존속되고 발전하는데 기여하는게 아니라 오히러 분해를 촉진하게 될 위험도 있다. (* 특작을 통해 소득증대에 성공했지만 공동체 분해가 가속화된 예들이 많다)

4. 협동조합이라는 대안에 눈돌리다

- 스페인 이탈리아의 사례들을 눈여겨보면서 개인의 욕망을 인정하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하는 새로운 사회구성의 가능성을 확인

- 현재는 초보적 인식을 가치고 실무자 중심으로 각종 교육에 참가 중

-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을 중간 과정으로 해서 협동조합으로 나아갈 게획

- 봉화군 농민회를 하나의 협동조합으로하고

- 청량산비나리마을(7개리)를 또 한 단위로 해서 협동조합구성할 계획

- 초보적으로 공동구매사업, 공동생산, 공동판매등을 시도하고

- 농협이 해야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톰새를 찾아 사업을 해 나감으로써 지역사회에 신뢰감을 쌓고 영향력을 키워나갈 생각.

**

1) 영농조합법인과 다른 협동조합만의 특징, 장점 등 확인하고 있지 못한 상태

2) 지역사회에 마을 공동체 사업의 헙동조합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작업이 미진.

반응형
반응형

 

해가 떨어진 산골마을은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산짐승 울음소리만 간혹 정적을 깰뿐 사람 사는 흔적은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어둠이 설금설금 마을을 삼키려들자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급히 저녁을 드시고 이골저골에서 소문을 들으신 주민들이 하나둘 비나리마을학교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비나리상영회] 플랭카드가 펄럭이는 비나리마을학교는 이날만은 어둠을 이기고 빛이 마을의 밤을 지배했다.

사실 “여성영화상영회”를 비나리마을에서 갖기로 약속을 받고 보니 멋진 타이틀에 걸맞는 주민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같았다. 밭둑에서 마주친 이웃 아주머니께 영화보러 오시라고 권하면서도 혹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뭔놈의 영화?”라고 타박이나 하지 않으실까 걱정이 앞섰다. 가난한 산골마을이지만 그래도 TV는 없는 집이 없고 그러다보니 드라마다 뭐다 할 것 없이 넘치는 영상 속에 빠져사는 게 현실인데, ‘영화’는 또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TV가 유일한 낙이자 문화매체인 산골마을에서 한편의 영화를 튼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정정엽작 제 1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스터]

영화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비나리마을학교를 밝히던 불빛이 꺼지고, 왁작지껄 떠들던 사람 소리가 죽어들었다. 대신 마을학교 강단 가득 반짝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빛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웃의 잔기침 소리와 산만한 아이들의 분주함이 잦아들고, 순간 화면가득 스위스 산록의 아름다운 마을이 우리의 시야를 압도했다. [할머니와 란제리]!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골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만으로도 정감이 넘쳐났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더 큰 공감이 갔다. 그래서 일까? 비나리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산골마을에서 한명의 할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이 갖는 비슷한 처지에 공감하는 관객들의 맞장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유쾌한 할머니들의 반란이 끝나고 크게 한판 웃음과 박수가 쏱아지고 난 다음 여성영화제 관계자의 사회로 간단한 영화감상평을 나누는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30년만에 영화를 보셨다는 멀리 만리산에서 달려오신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승리에 속이 다 시원하다는 북곡리 아주머니, 할머니가 속옷장사하시겠다면 ‘쪽 팔릴것 같다’는 중학생 남자아이, 그냥 이렇게 주민이 모여 같이 영화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좋다는 도천리 주민, 그리고 도시 못지않게 우리 비나리마을도 문화와 예술이 넘쳐나는 곳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이웃 아저씨까지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밤이 깊어 한분두분 집으로 돌아가고, 미련이 남는 사람은 남아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상영회를 다 마무리하고 나니 처음 가졌던 걱정이 얼마나 터무니 없었는지 확인이 되었다. 산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영화에 무슨 관심을 보이겠냐는 생각은 짧은 소견머리가 낳은 편견에 불과했다.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지역 정서에 여성주의 영화가 거부감을 주지나 않을지, 혹시라고 격한 내용들로 주민들을 자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괜한 기우였다. [할머니와 란제리]의 내용이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설령 격한 내용을 담은 다른 영화가 상영된다고 해도 주민들은 벌써 나름의 시야를 가지고 보다 폭넓게 소화해낼 자질을 다 갖추고 있을 것같았다.

이번 상영회를 통해 터득한 한 가지가 또 있다.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영화는 같이 보는 재미에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영화를 혼자 몰입해서 보는 것도 좋지만 이웃과 더불어 같이 분노하고 같이 기뻐하며 맞장구로 공감을 나누며 보는 영화는 또 다른 맛을 가지고 있었다.

산골마을 비나리에 좋은 영화를 매개로 주민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주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감사드린다.

송성일 비나리마을학교 대표

<2012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뉴스레터 원고>

반응형
반응형

- 관훈갤러리에서 가져옮-

http://www.kwanhoongallery.com/bbs/board.php?bo_table=gal_02&wr_id=76

 

[관훈갤러리기획]류준화개인전

 

 



관훈갤러리기획

대지의 꽃 - 류준화 개인전


보라, 이 소녀들을 : 류준화의 소녀 월드, 소녀 미학

김영옥(이화여대, 이미지 비평가)

1. 동굴 우화, 그 이후: 소녀의 탄생

나는 주로 대중 잡지나 광고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내가 의도하는 이미지로 다시 만들어 내고 있다. 잡지나 광고 이미지에서 에로틱한 여성의 신체 일부를 새의 날개처럼 표현하기도 하고 물고기의 꼬리처럼 보이게도 하여 남성적 시선에 고정된 여성의 전형화된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의 독립적 욕망을 담아내고 있다. ... 하지만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자유롭기란 어렵다. 나는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조차 이미지 안에 머물러 있음을 동시에 ‘보여 주고자’ 한다.(강조: 필자)

여성의 욕망은 류준화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화두 중의 하나다. 비교적 작업 초기에 해당되는 <그녀의 침묵>(2001)전에 부친 위의 말은 <Spring>(2011)전에 이르기까지 이후 이어지는 그녀의 작업 모두에 대한 일종의 각주처럼 읽힐 수 있다. 국가주의-가부장제-자본주의가 통치해온 여성의 실존에 빗금처럼 그어져 있는 (그래서 그 상징계가 기획한 그 ‘여자’의 주체성을 실패로 이끄는) 자유의 욕망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 트랜스포머처럼 자신의 신체 일부를 새의 날개로 물고기의 꼬리로 변형시켜 이 상징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여성들. ‘이미지로 호명되면서 삶을 얻지만 또 그 이미지를 벗어나고픈 독립적 욕망, 그 경계지점’에 서 있던 초기의 작업세계가 돌파구로 찾은 것이 바로 소녀-새의 존재태다.



속삭임 mixed media on canvas 162x130cm 2011



류준화의 작업들은 그 초기에서부터 현재의 소녀 시리즈들에 이르기까지 ‘보기’를 둘러싼 다양한 철학ㆍ미학적 성찰들을 함께 불러들인다. 대중잡지나 광고 이미지에 등장하는 성애화된, 남성적 시각 주체의 쾌락의 대상인 여성 이미지, 그 이미지를 모방하고 싶으면서도 그 이미지에서 자유롭고 싶은 여성‘들’의 욕망, 이미지를 생산함으로써 여성들의 ‘자유’를 표현하고자 하는 류준화 여성 작가의 예술가적 욕망,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다양한 소녀 이미지들. 류준화가 생산해 낸 이미지들을 ‘보고 있는’ 관람객은 말하자면 이 모든 이미지들의 관계와 그것들의 추동력이거나 매개물인 욕망을 함께 보고 있다. 그렇다면 관람객의 이 ‘보기’는 어떻게 수행되는가? 명백하게 소녀로 ‘보이는’ 류준화의 ‘그림들’은 남성적 시각쾌락의 대상에서 자유롭고 싶은 여성들의 욕망을 어떤 ‘본질적 관점’에서 표상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표상은 (플라톤의 동굴우화에 따른다면 심지어 이중적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가? 플라톤의 동굴우화와 그를 잇는 서구 형이상학 전통을 비판적으로 거슬러 읽으면서 카자 실버만은 세계관객(world spectator)로서의 바라보기를 주창한다. 서구 형이상학은 감각적 현상 세계와 초감각적 관념 세계를, 즉 모습(appearance)과 존재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고 현상을 참 존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 대항해 카자 실버만은 서로‘에게’ 나타남으로써 (즉, 보여짐으로써) ‘존재’하는 사물들의 세계를 강조한다. 우리가 삶을 꾸려나가는 ‘세상’은 바로 서로의 바라봄에 그 존재를 빚지고 있는 존재들의 실존적ㆍ현상학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라봄’이 세상 안에서 세상을 향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류준화의 소녀들은 다른 생명체들, 사물들을 ‘향해’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고/표현하고’ 있는 소녀들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미지 ‘재현’은 이미 현존하는 것들의 다시 드러냄으로서의 재-현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비로소 현존하게 하는 수행적 실천행위로서의 재현이다. 그렇게 해서 류준화는 ‘이미지로 호명됨으로써 존재하되, 동시에 그 호명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존재하고자 욕망하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늘 초감각적 관념 세계를 남성적 영역으로, 감각적 현상의 세계를 여성적 영역으로 간주해온 기존의 젠더화된 사유방식을 염두에 둘 때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류준화의 소녀는 누구인가? - 없거나 하나가 아닌 여성주체들

치렁치렁 자라고 흐르고 날아다니는 머리카락으로 (특히 여성과 관련된) 상형문자를 형상화함으로써 기존의 가부장적 상징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기호계를 구성하는 문자도(文字圖)까지 포함해 류준화는 오랫동안 다양하게 소녀들의 형상화에 주력했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소녀 형상화가 드디어 어떤 ‘세계’ 즉 ‘소녀 우주’라 일컬을 수 있는 경지로까지 나아갔음을 확인한다.)



문자날개 mixed media on canvas 145.5x112cm 2012


소녀, 아니 ‘류준화의 소녀’는 누구인가? 그녀의 작업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도대체 소녀란 어떤 존재이며, 류준화의 소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여타의 소녀들과 어떻게 다른가? - 이런 질문으로 관객들은 류준화의 소녀 그림에 다가갈 것이다.

소녀는 일반적으로 아이와 여성의 사이 공간 (in-between), 문지방의 공간에 위치해 있는 존재다. 소녀가 불러일으키는 매혹과 두려움은 소녀의 이런 문지방적 성격에서 나온다. 소녀들은 급격한 사회 변동기에 아방가르드의 상징적 위치를 부여받는다. 한국사회에서 촛불집회 때 실제와 상징 양측에서 ‘촛불소녀’가 보여주었듯이 소녀성은 사이공간으로서 특히 급격한 사회변혁의 와중에서 성공과 희망, 실패와 불안의 투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소로 기능한다.

한국사회의 현실 공간 속에서 소녀들은 남아선호 사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전통적인 위치에서부터 테크놀로지와 팬픽, 야오이, 코스프레 등 대중문화의 선진적ㆍ유희적 소비를 통한 하위문화 주체로, 그리고 가출과 원조교제의 위험한/위협받는 성적 주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소녀는 또한 성적 폭력에 가장 빈번히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로서 지식인 남성들의 감성적/감상적 자기 반성이 투영되는 타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 소녀들이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사회의 순수와 오염을 상징하는 이 기표로서의 소녀들은 현실에서 또한, 오형근의 ‘소녀 연기’ 사진들이 보여주고 있듯이, 무구와 유혹 사이에서 능수능란한 시이소 게임을 벌인다. 그렇다면 작가 자신에게 소녀는 누구인가?


대지의 꽃 mixed media on canvas 181x227cm 2012



나에게 소녀는 불안한 경계입니다. 뭔가 충돌하는 긴장된 지점이기도 하고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모호함이고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미래를 고집스럽게 확신하는 분열의 지점입니다. 그리고 소녀는 자신의 출구를 발견하게 되는 문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첫 자기 이해의 순간, 그 지점이 소녀 아닌 소녀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 생각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 경계지점에서 소녀와 소녀의 감성이라는 게 생긴다고 본다. ... 자기를 알게 되고, 또 ‘자기를 알아가고 싶어 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지각하는 그 지점, 그게 바로 죽음의 경계를 넘어 이승으로 돌아오는 바리데기의 지점일 거라고 생각한다.

각각 2007년, 2012년에 행해진 이 설명들에서 소녀의 ‘경계적’ 존재성은 현상적 차원에서 점차 여성의 ‘자기 이해’에 대한 존재론적 원형 이미지로 움직인다. 정체성의 관점에서 볼 때 소녀는 이후에 전개될 삶의 모든 국면들을 품고 있는, 혹은 관통하고 있는 어떤 단단한 핵 같은 것이다. 여기서 나는 소수자 감수성이 뛰어난 소설을 쓰는 쓰시마 유코가 ‘남자’와 ‘소년’에 대해 한 말을 떠올린다. ‘남자는 부재한다. 남는 것은 남자 속에 계속 살아있는 소년이거나 아니면 사회적인 관념 그 자체일 뿐이다. 사회적인 관념으로 화하여 살고 있는 남자를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묘사하는 것은 헛수고라는 기분도 든다’고 그녀는 말한다. 소년이거나 사회적 관념 그 자체이거나, 둘 중의 하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소녀면서 여자로, 여자면서 소녀로 살 수 있다. 가부장적 언어체계 안에서 여성은 남성/성을 설명하기 위한 기호로 작동한다. 많은 여성주의 철학가들은 그래서 ‘여성에겐 성이 없다’고 말하거나(모니크 위티그), ‘여성주체는 없다. 만약 여성이 주체라면 주체는 하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뤼스 이리가레). 모든 담론이 남성중심의 의미경제 체계 안에 갇혀 있다면 그 안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그 어떤 주체적 위치성도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남자는 소년이거나 사회적 관념 그 자체일 뿐이지만, 여자는 소녀이면서 수많은 여자들로, 즉 하나가 아닌 주체로 존재한다. 류준화의 소녀는 그래서 현실적 연령을 가늠하기 어려운 몸과 표정을 간직하고 있다.



꽃구름 mixed media on canvas 112x145.5cm 2012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여자들로 존재하기까지, 그토록 슬프고 괴기어린 “초록날개”(2007)에서 “새”(2007)로 변신하기 시작해 그토록 단단하고 고요하게 생명을 창조하는 “물의 시간”(2009)에 이르기까지, 이번 전시가 보여주듯이 아예 거대한 꽃들의 대지가 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환희의 지경에 이르기까지, 류준화의 소녀들은 폭력과 희생, 분노를 숨기면서 드러내고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되었으므로), 드러내면서 숨겨왔다 (기존 재현 방식의 일의적ㆍ투사적 수용에 저항하기 위해). 그렇게 소녀를 소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즉 여성들을 ‘스스로 이해한 자기’로 살지 못하게 하는 폭력적 현실을 무대화했다.

본격적으로 여성/주의 그림을 그리기 전 대학시절에 작업한 그림들에서는 그 기괴함이 더 강하다. 구체적인 형상은 없는 추상화들인데도 그랬다. 내 안에 분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사실 내 그림 속에는 엄마의 한들이 서려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추상적인 형상들 속에 내가 담고 싶은 그 분노의 내용들을 숨겼던 거다. 그 때도 역시 내 머리 속에는 늘 약자에 대한 생각이 있었고, 그 약자의 대변인으로서 항상 어린 아이를 담았던 것 같다 ... 추상적 형상 속에. 휠체어 탄 아이를 넘어뜨리는 어른같은.

휠체어 탄 아이를 넘어뜨리는 어른. 망설임 없이 작가의 입에서 나온, 그만큼 작가의 마음속 깊숙이 새겨져 있음에 틀림없는 (‘도가니’ 현상이 보여주듯 장애소녀에 대한 폭력은 사실 한국인 모두의 무/의식에 새겨져 있다.) 이 이미지는 인간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폭력의 어떤 원형적 이미지 같은 것이다. 그녀의 전 작업과정은 말하자면 폭력의 원형적 희생 이미지 소녀에서 죽음과 삶 전부를 껴안는 여성적 생성의 원형적 이미지 소녀로 변화해온 셈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과정은 제의적 아우라에 둘러싸여 있다.

첩첩산중 두메산골에 살던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에는 늘 폭력에 희생당하는 여자들이 등장했다. 어머니들이 모여 앉아 나누던 이야기도, 실제 삶도 그랬다. 어머니 주변에, 내 주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던 여자들이 많았다. ... 그때 어머니는 촛불 켜놓고 공양을 드리며 신들을 모셨다. 신들을 모시던 어머니의 행위는 내게 익숙했다.




검은 땅 mixed media on canvas 130x194cm 2012


작가가 들려주는 이 어머니의 이야기는 물론 그녀의 ‘사적인’ 어머니의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을 겪고, 유교가부장제의 혹독한 조건 속에서 묵묵히 삶을 책임지던 당시 어머니들의 보편적 이야기다. 촛불을 켜고 정한 물을 떠놓고 기도를 드리는 것은 험난한 삶을 견디는 일상적 제의였다. 류준화의 소녀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약간의 으스스한 유령적 느낌과 어떤 구원적 영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은 이렇듯 한국사회 어머니‘들’의 제의적 행위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 유년기에 나의 어머니도 늘 신들을 모셨다.) 그녀에게 가장 강력한 영감을 준 어머니‘들’의 제의행위는 그녀의 작업에 등장하는 소녀들에게 이중적 존재성을 부여한다. 즉 여기서 소녀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장소를 다녀온 바리데기처럼 만신이면서 동시에 그 만신이 생명을 구원하는 소녀-여성들이다. 그녀의 소녀에게서는 제의를 관장하는 만신과 제의에 자신의 삶을 (혹은 그 삶의 구원을) 의탁하는 여성들이 함께 숨 쉬고 있다. 한을 씻어 내리기 위해 신들을 향해 밝힌 ‘어머니 만신들’의 촛불은 류준화의 그림에서 소녀를 비롯해 모든 존재들이 몸담고 있는 투명하고 성스러운 물로 계속 빛나고 있다.

이렇듯 류준화의 소녀 그림들은 예술이 한편에서는 아직 종교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연에서 분리되지 않았던 시기의 예술-자연-종교의 관계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그녀의 이미지가 상상계로서의 설화적 세계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한은 “실현되지 않은 욕망들”이다. 류준화가 불러낸 이 소녀들은 실현되지 않은 바로 그 욕망들을 품고 귀환하는 여성들이다. “출항”(2009)이라는 그림을 보자. 배 위에 노를 잡고 있는 한 소녀가 있다. 뺨은 상기되어 있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린다. 당차고 늠름한 자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소녀는 떠나는 게 아니라 이제 막 도착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경우 류준화의 소녀들에게서 ‘출항’은 이렇듯 떠남과 귀환의 이중적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귀환으로서의 떠남, 떠남으로서의 귀환. 떠남과 귀환의 이 겹침은 의미심장하고 매우 실존/주의적이다. 이 겹침은 설화의 세계와 역사적 현장의 겹침이고, 원형적 이미지를 개별적 ‘사건’으로서의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겹침이다. 지워지고 침묵된 욕망으로 피흘리던 소녀들이 차례로 불림을 받아 ‘지금 여기’ 역사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3. 이주의 시대, 소녀-이방인의 환대

이동 중의 사람들 ...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하고 기억하고 싶기도 하고 지워버리고 싶기도 한 경계 위에 서있는 자의 감성을 표현하고 싶은 거였습니다.

소녀와 새에 관한 오래된 전설이 하나 있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전승되던 아주 슬프고 잔혹한, 그러나 전율과 매혹으로 빛나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러 먼 길을 떠나야 했다. 그 길은 너무 멀어서 소녀는 날개가 필요했고, 소녀를 등에 태우고 강과 들판 위를 나는 새는 굶주린 배를 채울 고기가 필요했다. 소녀는 새에게 자신의 팔과 다리를 떼어 주며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류준화의 “발 없는 새” 소녀 그림이 있다. 그 그림 속에서 소녀는 발 없는 새를 오른 팔로 안고 있다. 그녀의 허리께에 착 붙어있는 그 새는, 소녀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소녀의 욕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발 없는 새와 날개 없는 소녀가 만나면 새는 발이 생기고 소녀는 날개가 생긴다. 소녀-새가 탄생한다.


날개 mixed media on canvas 72x91cm 2012


이 그림을 두고 작가는 인터뷰에서, 계속 날기만 해야 하는, 발이 없어 쉴 수 없는 새를 한 소녀가 쉬게 해 주는 것처럼 자신의 그림들이 이동 중에 있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불균등 발전 때문에,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좇아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 중이다. 근대 이래로 이주는 일국의 차원에서, 지구적 차원에서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기술, 통신, 초국적 자본, 미디어 등이 촉발하는 당대의 이주는 더 이상 비서구에서 서구로의 일방향이 아니라, 아시아 내에서, 혹은 비서구와 서구 간의 쌍방향으로 진행되면서 특히 이방인과의 삶에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류준화의 “발 없는 새”는 모든 이동하는 이들, 이방인들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여기서 “하나가 아닌 주체들”로서의 소녀는 성별을 벗어나 아무 곳에도 정착할 수 없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모든 곳에 정착할 수 있는 이방인들의 정체성으로 확장된다. 사람마다 소녀-새를 바라보고 교감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시대적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발 없는 새’의 비행을 이방인과 환대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촉구한다. 인류학적 관찰이 증명하듯이, 그리고 데리다가 역설하듯이 모든 이방인은 환대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손님을 맞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의 이 환대권에 응답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 이 응답은 손님과 적의 바로 그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방인을 손님으로 인정하고 환대하는 것, 이것은 개인과 국가의 차원 모두에서 당대가 요구하는 가장 급진적인 정치학의 하나가 될 것이다.


4. 끝나지 않은 에필로그: 봄의 제전, 소녀 월드

우주인의 관점으로 이 지구를 봤을 때 나는 물이 제일 신비롭다고 생각한다. 물처럼 신기한 게 없는 거다. 생긴 모양도 너무 특이하고. 잡혀지긴 하는데 잡히지 않고 경계가 없고 그러면서 투명하고 ... 마실 수도 있고. 또 그 안에 모든 영양분이 다 들어있고 ...

너무나 성스러운, 너무나 흔한, 누구에게나 흘러드는, 누구에게나 세례를 베푸는 물. 이 물의 감흥이 나를 키웠다.

류준화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물의 성스러움에 감염되어 있다. 이 감염의 결과는 ‘덩어리’로 등장하는 소녀들이다. 이전에도 여러 소녀들이 물속을 유영하거나 여행하는 그림들이 있었지만, 지금 거침없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솟아나고 있는 이 소녀들처럼 이렇게 무리지어 나타난 적은 없다. “대지의 꽃”, “봄의 소리”, “달의 정원”, “검은 땅” 등등 - 그렇다. 광대하게 펼쳐지는 “봄의 제전”이다. 이 작업들은 물의 성스러움과 생성의 황홀에 전율한다. 여전히 소녀들의 몸에서는 크고 작은 날개가 솟고, 꽃들은 피흘리며 만개한다. 소녀는 어머니와 딸로 증식하고 개와 사슴이 소녀의 곁을 지킨다. 소녀들은 오체투지를 하고 기도를 올리며 애도에 잠긴다. 사막을 횡단하는 중인가? 소녀의 곁에 선인장들도 무성하다. 그리고 엉키고 설킨 덩어리로 나타나는 소녀들. 이 소녀들은 더 이상 예전의 설화적ㆍ알레고리적 소녀-여성의 모습을 띠고 있지 않다. 머리카락이나 표정에 있어 현실세계의 구체적인 개별 얼굴들을 하고 있다. 이 변화는 봉화에 내려와 살면서 류준화가 경험한 ‘자연세계’의 우주적 생성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에는 끊임없는 반복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자리에 똑같은 풀이 나고 ... 그러나 그러면서 조금씩 자기의 씨앗을 번식시킨다. 자연을 계속 접하다보면 여자의 몸과 닮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더라.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여자의 시간이 자연의 시간과 마찬가지라는 거다. 신비롭고 영적이다. 우주적이다. 꽃망울이 알아서 터지면서 씨앗을 흩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긴 겨울동안 또 다른 생명을 키우기 위해서 시간을 축적하는...

류준화는 화가다. 화가는 색과 형태의 스케일에 민감하다. 광대한 스케일에 대한 욕망은 예술가적 추동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스펙타클이 드 기보르가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지적한 이데올로기적 문제점들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문화정치, 문화전쟁의 시대에 주류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문화산업과 결탁해 무차별하게 확대시키는 스펙타클한 문화생산품들, 행사들에 대항해 반문화적(counter-culture) 행동으로 기획되는 스펙타클도 있다.

저렇게 소녀들이 군상으로 나오면 그 소녀들이 품는 기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거다. 소녀들의 그 기들이 자연이 내뿜고 있는 생명의 기운들을 보여줄 거라 생각한 거다.

이처럼 화가 류준화는 문화산업이 만들어내는 ‘소녀 시대’와는 다른 소녀 세계를 꿈꾸고 있다. 이 소녀 세계가 펼쳐 보이는 봄의 축제는 ‘봄의 제전’이 거대하고 풍요로운 봄의 생성을 위해 어떻게 소녀들을 희생제물로 바쳤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꽃의 한가운데를 파먹는 새들의 모습이나, 늘 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꽃들, 발 없는 새 - 이 모든 형상들을 품고 있는 제전이고 황홀이다. 여기서 소녀들과 사물들은 서로에게 ‘나타남’으로써 ‘존재’하는 세계 내적 존재인 세계 관객‘들’로서 세계 관객‘들’인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다. 우주적 경이를 품었으되 초월이나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생명들로서.
(중략)


'보라, 이 소녀들을: 류준화의 소녀 월드, 소녀 미학 중에서..




장 소 : 관훈갤러리 1, 2F

일 시 : 2012. 11. 14 - 11. 27

반응형
반응형

10월 22일, 정신없는 하루를 시작했다.

11월14일 여릴 예정인 아내의 개인전에  앞서  헥사곤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선의 한권으로 작품집을 내게 되었다.

그 책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촬영이 안된 작품 몇점을 차에 싣고

서초동 포토리스트로 향했다.

이런 저런 일정 때문에 아침 9시에 약속을 잡아 놓고 5시 반에 집을 나섰다.

원주를 지나갈 때나 되어 아침 안개가 가쉬고

쾌청한 하늘이 하루의 즐거운 여정을 예정케 했지만 갈길은 멀고 할일도 많았다.

난생 처음으로 시속 170km까지 밟아가며 도착한 서울은 진입단계에서 정체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서둔 덕분인지 포토리스트에 도착후

아침 식사까지 하고나서야 사장님이 출근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시간은 예정대로 끝나고 다시 을지로에 있는 헥사곤으로 향했다.

큰 사무실에 일인 출판사업자들이 곽들어찬 말로만 듣던 그런 사무실 분위기는 열기에 가득했지만 왠지 좀 서글픈  느낌이다.

내가 만약 을지로 인쇄골목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이런 사무실에서 일인 출판 편집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도서출판 헥사곤 대표님과 아내 류준화의 재미없고 긴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차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협의를 끝낸 아내를 싣고 한전아트센타에서 시작한 [Woman + Body 전] 2차 전시가 열리는 전남 광주의 광주 문화재단 미디어큐브로 향했다. 막임없이 달리느 고속도로를 스쳐 낯익지만 다른 느낌의 산천을 두눈 가득담다보니 어느새 광주다.

혁명의 도시 광주는 근 10년 만이다. 10여년 전쯤 장성군의 한 산꼴짜기 마을의 작은 미술관 개관식에 초대 받아 갔던 길이었을 것이다. 오는 길에 광주를 들러 광주민중항쟁중에 산화하신 민주 영령을 기리기 위해 어린 딸아이와 참배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광주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광주는 여전히 낯선 도시지만

아직 거리거리마다 민중의 함성이 남아 있는 듯 

가슴을 들떠게 했다.

오픈 시간에 임박해 광주문화재단 미디어큐브에 도착했다.

한전아트센타전 때 처음 뵈었던 큐레이트 탁혜성님을 다시 뵙고 이내

낯익은 한국 여성 문화계의 인사이지 아내의 동료들과 조우했다.

박영숙 선생님, 윤석남선생님, 정정엽 선생님이 반가이 맞아 주셨고,

늘 이런 자리에 함께하시는 시인 김혜순선생님도 같이 하고 계셨다.

 

오픈은 늘 설레이면서 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날 오픈은

조금 정도가 심했다. 계속되는 인사말이 이어지고

작가들은 조금씩 지쳐가는 듯했다.

그사이 나는 전시장을 살피며

한국 여성미술의 정점과 조우하는 호사를 누렸다.

미국작가와 한국작가가 '여성'과 '몸'을 테마로 모인 전시를 호기롭게 기획한

큐레이트 탁혜성씨의 노력이 덧보이는 전시였지만

주제의식이 뚜렷하지 않다는 나의 주제 넘는 지적에

아내는 그래도 한국 미술풍토에서

이렇게라도 페미니즘미술이 한자리에 모일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다고 받아쳤다.

 

아뭏튼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을 만나고

또 광주 변두리의 한 한옥마을에서

먼길을 달려온 작가분들과 따뜻한 저녁시간과 밤을 함께하고

얇은 잠을 자고 아침을 같이 나누고서야 봉화로 향했다.

일박이일의 긴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미술과 작가의 삶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대해,

그리고 아내 류준화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깊어가는 가을 산천을 만끽했다.

 

 

 

 

 

 

 

 

 

 



반응형
반응형

 


 

 

 

 

연일 성폭행, 성추행 관련 뉴스가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많은 여성작가에 의해 월경과 임신 그리고 여성의 욕망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작품이 표현되어 왔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부터 AIDS나 성형과 같은 주제까지 결합하며 몸에 대한 새로운 담론들이 등장하고 표현되어 왔지만 여전히 여성의 몸이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 읽혀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여성 + 몸이라는 큰 타이틀 아래 1)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여성의 몸, 2) 변신- 성형, 트랜스젠더, 바디아트, 위장과 변이 등을 포함한 변형된 신체, 3) 여성작가의 시각으로 보는 남성의 몸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기획되었습니다.

여성의 시각에서 인체를 바라보고 인체를 통해 사람을 그리고 세상을 재해석하는 작업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작가의 시각으로 보는 남성의 몸은 전통적인 남성 이미지뿐만 아니라 외부 시각에 예민해진 변화된 현대남성들의 모습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남/녀의 구분이나 대립적 시각보다는 제3의 경계 혹은 해석에 주목하였습니다. 또한, 소통과 화해라는 화두가 대세인 요즘 개인으로 활동하던 여성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또 거리와 문화적 차이가 있는 지역의 작가들을 모아 인체라는 주제를 통해 다름과 차이점보다는 다양성과 그 다양성의 시각이 모여서 만드는 조화와 공존의 힘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께 함으로 얻어지는 부차적인 이익- 여성작가들의 네트워크화, 여성작가의 전시 기회 확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여성작가들에 대한 평가 기회 제공- 에도 주목하였습니다. 미 전역에 걸쳐 30개가 넘는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WCA와의 연합 전은 70년대 초반부터 활동해 온 그들의 역사와 노하우를 배우고 네트워크를 확장함으로써 서로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 큐레이터 탁혜성



<후원>

한전아트센터, 광주문화재단, Women’s Caucus for Art

<전시일정 및 장소>

한전아트센터 KEPCO Gallery; 2012년 10월 13일(토)-10월 19일(금)

오프닝 2010년 10월 13일(토) 오후 4시

광주문화재단 내 미디어큐브338; 2012년 10월 23일(화) ~ 11월 6일(화)

오프닝 2010년 10월 23일 화요일 5시

<참여 작가>

한국측 참여작가 : 권민경, 김미루,김민형, 김은주, 김주연, 난다, 류준화, 박영숙, 변현수, 유현경, 윤석남, 윤성희, 이림, 이자연,이주리, 정정엽, 주하영

미국측 참여작가 : Ann Rowles, Brenda Oelbaum,Chanel Govreau, C.M. Judge and Paula Rendino Zaents, Elaine Alibrandi,Jessica Burke, Krista Jiannacopoulos, Karen Purdy,Laurie Edison, Lee Lee,Mary Shisler, Pamela Flynn, Patricia Tinajero, Priscilla Otani, Sandra Mueller,Sheri Klein, Sherri Cornett, Tracy Brown, Trix Rosen

반응형
반응형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강신주, 동녘, 2010.

 

21명의 철학자와 21명의 시인을 짝지어 그들의 사유가 기반한 공통된 정신을 축출하고 추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결과로 태어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고 독자로서 다시 요약하고 정리하는 일 역시 쉬운 일일 수 없다. 따라서 이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되읽어 봄으로써 그 어려움을 대신한다.

 

‘철학의 능선’을 오르던 필자는 문학의 장르중 고도감이 제일 높은 시와 철학이 공유한 동일한 정신에 주목한다. 능선은 쉽게 오를 수 없지만 도달하면 좋은 조망을 얻을 수 있다. ‘철학’도 마찬가지로 결국 우리 삶을 조망하기 위한 여정이다. 플로로그에서 필자는 인문학의 정신을 드러내는 이성복 시인의 잠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2001)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일상적 세계를 동요시키고 낯선세계로 접어들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성찰의 성격이다. 이는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이고 “철학은 삶을 낯설게 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시와 같은 예술과 철학은 동일한 정신을 공유한다.

시에는 주관적이고 낯선 이미지들이, 철학책에는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 용어들이 산재한다. 이것은 시인과 철학자가 친숙한 세계가 아닌 원초적으로 낯선 세계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따라서 시와 철학은 독자에게 폭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 난해함은 일상적 삶을 동요시키는 불쾌함에서 비롯된다. 시는 기존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낯선 상처 혹은 어떤 감각을 새로운 말을 만들어 말하려고 하는데서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시는 어렵다. 철학은 개념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엮음으로써 새로운 사유 문법을 만드는 학문이다. 그래서 철학은 기존의 그물로 잡을 수 없는 새로운 물고기를 잡기위해 새로운 그물을 짜는 일과 같다.

흔히 시는 주관적인 것이고 철학은 객관적 혹은 보편적인 것이라는 인상을 가진다. 하지만 시는 가장 주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보편적일 수도 있다. 철학은 가장 보편적인 것 같지만 실은 가장 주관적인이기도 하다. 사실 시와 철학은 인문학의 양끝단에 위치한다. 그렇지만 시와 철학은 이성복의 말처럼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해” 친숙한 세계를 낯설게 하는 인문학의 본령에 충실한 것들이다.

낯선 느낌은 철학을 포함한 모든 인문학적 경험의 출발점이다. 시인은 그 느낌을 포착해 전달하려고 온갖 단어와 상징을 찾고, 철학자는 기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혹은 새로운 개념을 창조함으로써 그 낯선 느낌을 보편적인 논리로 포착하려고 한다. 그래서 철학과 시는 어렵다.

철학자와 시인들이 우리를 ‘사실’과 ‘안전’의 세계에서 ‘느낌’과 ‘위험’의 세계로 내모는 진정한 속내는 스티노자의 자유정신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주저 [윤리학]에서 ‘코나투스의 윤리학’ 피력한다. 코나투스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힘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타자와 연결되어야한다.

들뢰즈는 인간이 과거에 만들어진 주름을 가지고 있고, 현재에도 주름을 계속 만들고 있는 존재라는 자각을 피력한다. 이것은 우리가 유한자이기 때문이다. 한계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외부가 있다는 것, 즉 타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부 혹은 타자가 우리 삶에 마주쳤을 때 우리에게는 생각지 못한 새로운 주름이 만들어 진다. 타자와의 마주침으로 ‘정치’가 발생한다.

스피노자의 사유로 되돌아와서 보자. 인간은 “기쁨을 지속하고 슬픔을 피해야만 한다.” 스피노자가 말한 코나투스의 윤리학을 기쁨의 윤리학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나의 기쁨은 타자의 기쁨을 방해해서는 안되고 결국 기쁨의 윤리학은 나만의 기쁨이 아니라 모두의 기쁨을 지향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라는 개념의 의미가 분명해 진다. 그래서 기쁨의 윤리학은 자유의 정치학으로 변모한다. 피에르 크라스트르라는 정치인류학자가 국가가 없는 사회를 지향했던 인디언 사회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이런 자유정신이다. 기쁨과 자유, 이것이 철학과 시를 포함한 모든 인문학의 궁극적인 꿈이자 인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철학의 대중화와 인문학의 보편화를 추구하는 강신주의 지적 여정의 선상에 있는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은 인문학의 양극단에 선 철학과 시를 마주하게 함으로서 우리 삶을 낯설게하고 궁극적으로 “진정한 삶을 복원”하고자 한다. 저자의 의도가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와 철학이 ‘일상적 삶을 낯설게 함으로써 진정한 삶을 복원하는 것’이라는 필자의 문제의식, 그리고 진정한 삶을 위한 자유의 정치학으로 전개되어가는 필자의 사유의 여정에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하지만 박노해와 김남주를 위시한 21명의 시인과 아감벤과 데리다를 포함한 21명의 철학자를 한권의 책에서 만나는 것은 참 버거운 일이다. 감칠맛나는 지적 소품과 장치,  그리고 매혹적인 필자의 글발에 취해 한권의 책을 훗딱 읽어버린 뒤 짧은 꿈에서 깬듯 알지못할 허전함이 남는다. 아마도 그것은 필자의 폭넓은 지식에 압도되었지만 '대중적 인문학 상품'의 달콤하지만 깊지안은 뒷맛때문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자유의 정신을 뼈대로 이들을 살로 내장으로 근육으로 만들어 한권 책을 저술할 수 있는 필자의 발랄한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수 없다.

반응형
반응형

 

 

 

함께 해서 더 좋은 여성영화 봉화에서 만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gogo시네마

10 19일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열려

 

 

전국 각지를 누비며 다양한 여성영화로 지역관객을 만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지역순회상영프로젝트 gogo시네마가 스위스 코미디 영화 <할머니와 란제리>를 들고 봉화를 찾아간다.

 

여성가족부가 후원하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청량산비나리마을이 공동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10 19일 금요일 오후 7시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열린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gogo시네마는 찾아가는 상영회로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여성영화의 문턱을 낮추고 다양한 부대행사를 통해 성평등 문화 형성에 기여하는 뜻 깊은 행사로 기대된다.

 

할머니들의 유쾌한 반란 <할머니와 란제리>

10대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여성영화 선보여

 

<할머니와 란제리>스위스를 배경으로, 남편을 잃고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속옷 가게를 열려는 할머니 마르타와 이에 반대하는 마을 남자들의 갈등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린 수작이다. 친구들과 함께 벌이는 할머니의 반란이 속시원한 웃음을 던져준다.

영화 상영 후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참석해 여성의 독립과 노년의 삶에 대해 진솔하고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지역순회상영프로젝트 gogo시네마를 통해 성평등문화를 확산하고 지역 여성 연대와 함께 발전하는 영화제로 계속 활동해 나갈 것이다.

 

[작품 상세 소개]

 

<할머니와 란제리>

드라마 | 베티나 오베를리 | 2006 | 상영시간: 89 | 제작국가: 스위스 | 전체 관람가

스위스 작은 시골마을에서 남편을 잃고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속옷 가게를 열려는 80세 할머니 마르타와 마을 남자들의 갈등을 유쾌하게 그린 수작. 시골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맞서 속옷 가게를 준비하고 지키려는 마르타와 친구들의 도전기를 통해 개인의 독립과 자긍심은 나이와 성을 불문하고 지켜져야 하는 것임을 통쾌하게 그렸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