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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있은 [협동조합 운동가 양성 집중교육]을 다녀왔다.

28일 아침 태풍 볼라벤이 서해로 올라오는 시간에 봉화를 출발해,

태풍이 서해안에 상륙할 때쯤 교육이 진행대전에 도착했다.

 

이번 교육은 지금까지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주관으로

주로 '농협 개혁'을 위한 운영실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오던 것을

최근 협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놓아짐에 따라

'협동조합' 정신과 의의 등에 대한 농민의 이해를 높이기위한 강좌를 중심으로 만든 과정이다.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근본적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자본주의의 고통을 줄여주는 사회적 장치 정도가 아닌가하는 이해만 가지고

마을 사업을 현재의 영농조합법인 형태에서 '사회적 기업'을 거쳐

'협동조합'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리고 협동조합이 정확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배우기 위한 확인 차원에서 이번 교육을 참가하게 되었다.

 

원래 제주도가 교육장소 였지만 태풍으로 항공기가 결항되면서

급히 대전의 카토릭 청소년 수련관인 대철회관으로 교육 장소가 변경되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와중에 도착해 보니

50여명의 수강 신청자 중에 열두어명만이 참가를 했고,

예정시간을 넘긴 오후 2시쯤 강의가 시작되었다.

 

 

 

 

첫날 강의는 장원봉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님의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이란 주제의 강의와

녀름연구소의 이호중 팀장의 [괴산불정농협의 성과와 과제]라는 사례 발표로 진행되었다.

막연히 알고 있던 협동조합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진행되어왔고

무한 경쟁이 전일화된 신자유주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존립하고 작동하고 있는지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특히 예천 참우작목반 최병용 대표의 발표는

나같은 농민에게도 희망을 주는 값진 사례였다.

 

다음날은 스페인의 몬드라곤 사례를 통해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파고로 부터 어떻게 인간적 삶을 지키고 고양시킬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이어서 한겨레 두레공제조합 연합회 대표이신 박승옥님으로부터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리,

혐동조합운동사 등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정되었던 남무현 불정농협협동조합장님의 강의는

조합장님이 태풍으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극심한 현장을 떠날 수 없어 무산되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앞으로 비나리마을 사업을

어떤 전망을 가지고 해 나가야할 지 길을 찾는데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막연한 마을 활성화는 물론 아니지만,

마을공동체의 심원한 내적 변화는 어떻게 도모해 나갈지 고민이 많았고,

특히 변화과정에 마을 주민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작목반의 형태서 부터 여타 다양한 마을 사업의 실험들을 진행해 왔지만

사실 뚜렷한 답을 차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협동조합'은

좀 더 구체적인 마을사업의 바람직한 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충분한 범례가 되는 것 같았다.

특히 몬드라곤의 사례는 가슴뜨겁게 다가왔고

예천참우의 사례는 우리가 가진 희망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이번 교육을 통해 이해한 협동조합은 이해에 기반하지만 경쟁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내의 신뢰와 협동에 기초해서

사회적 경제를 이뤄내는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협동조합은 공동체 구성원의 생활경제의 틀을 보다

협력적 차원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삶' 자체의 변화를 도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영농조합법인 형태로 시작한 비나리마을 사업을

앞으로 협동조합의 형태로 나아갈 수 있기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맨 바닥으로부터의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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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나무닭움직임 연구소 장소익선생님과의 인연 덕분

이번에 두번째 남미 인형극 공연을 비나리마을에서 가지게 되었다.

난생 처음 비나리마을에서 남미 인형극 공연이 있었던 날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비나리마을에는 번듯한 시설이 들어섰고,

마을을 문화 예술적으로 풍요로운 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주민들의 의지도 상당히 고양되었는데

아쉽게도 지역의 명호초등학교 아이들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훨씬좋은 시설에서 공연을 가지게 되었지만

열기는 그때만하지 못해 못내 씁쓸한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사실 공연시간이 다가오는데 찾아오는 아이들은 없어 무척이나  가슴졸여야했다.

그래도 다행히 공연시간에 임박하자 다른마을 분들을 포함해

명호면 내의 여러마을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도착하기 시작했다.

공연이 한창 진행중일 때 세어보니 

아이와 부모를 포함해 약 쉰 가량의 주민이 공연에 참가했다.

아름다운 공연, 귀한 공연을 이웃과 같이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날 공연작은 파랄라마노극단의 2인인형극 [징글버]였다.

거리의 천사, 거지들이 맞는 성탄절 이야기를

인형극의 형식에 노래까지 곁들여

처절한 아름다움 혹은, 가혹한 가난속에 피어나는

희망 같은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배우가 미리 직접 만들던 소품하나하나에 묻어있는

볼리비아의 민속예술 감각하며

전체 진행과정에서 진지함을 잃지않고

공연에 임하는 두 배우의 겸허한 자세 등 어느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대사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도

인형의 동작하나하나가 전해주던 정서적 공감은  

가난한 삶에 임하는 인간의 공통된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가혹한 삶의 여건 속에서도 잃을 수 없는

삶의 숭고한 가치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

아마도 볼리비아인 두 배우는 그런 메시지를 가지고

우리를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의 초입,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주민과 함께 한 볼리비아 인형극이 남긴 울림은

오래도록 나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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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3번째이면서 첫 새차였던 아반떼와 작별을 고했다.

어제 새차를 주문하면서 행사 보상가 110만원을 받기로 하고 딜러에게 키를 맡겼다.

바쁜 하루였기도 했지만 나는 키를 맡기자 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로 들어와버렸다.

16년을 우리가족과 같이한 아반떼의 떠나는 모습을 나는 애써 외면했다.

 

 

처음 두 차는 짧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사연때문인지 차를 처분하는 마음이 아렸던 기억이 난다.

대학원생이던 신혼 시절 딸애가 태어나 자라기 시작하면서이를 업고

기저기 가방에 책가방까지 들고 다니기가 힘들어질 무렵

친구의 소개로 거의 폐차 직전인 르망을 샀다.

똥차지만 운전을 처음 하는 설레임을 안고 참 여러곳을 돌아디닌것 같다.

특히 차를 산지 이틀만인지 사당동에서 지리산까지 다녀온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88고속도로를 타고 지리산 허리를 지나면서 차 속도가 떨어지는데

오르막에서 힘이 딸리면 저속기어로 바꾸어야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차는 추월차선을 달리고 있는데 차선을 바꿀려고 하니 다른차가 너무 세게달려와

겁은 나고 그냥 식은 땀을 팥죽같이 흘렸었다.

기어는 물론 상향등 하향등도 모른채로 가족을 싣은 차를 몰고 전국여행을 떠났으니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우리 가족의 첫차 중고 르망은 겨우 1년을 넘기고는 작별을 고했다.

도저히 창피해서 타고 다닐 수 없을 만치 흰연기를 뿜어대어 폐차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폐차장에 직접 몰고가 첫 인연을 맺고 1년이란 시간을

우리가족과 같이한 차의 참혹한 최후를 직접 목격했다.

달려온 지게차에 옆구리를 바로 찍혀 덜렁 들려가는 우리 차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날뻔했다.

 

 

두번째차는 아내가 광명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할 때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샀던 봉고다.

한달을 운행하다 개인적인 일로 6개월동안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자마자 차를 되팔았다.

고작 두어달도 타지 못한 차였지만 이 봉고도 나름의 사연이 많은 차다.

처음으로 연대앞에서 딱지를 떼이고, 순간 당황해서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통순경에게 5,000원인가의 돈을 주었던 불쾌한 기억이 있다.

그 뒤부터는 단속에 간혹 걸리기도 했고,

돈을 달라는 눈치를 보내는 순경도 만났지만

딱지떼라고 오히려 큰소리 쳐서 순경을 당황하게 하곤 했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어 다시는 거리에서 그와같이

염치없는 순경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봉고와의 긴 인연은 차를 처분한 뒤에 일어났다.

를 처분하고 잊어버린지 2~3년뒤 갑자기 자동차세고지서가 한웅큼 날아왔다.

나는 이미 차를 처분했다고 관공서에 연락을 했지만

서류상으로 내 앞으로 되어 있다면 계속 고지서를 보내고 독촉을 했다.

그러다가 봉화로 이사를 온뒤 독촉등쌀에 못이겨

직접 차의 행적을 추적해 나갔다.

광고지에 알려 차를 처분했기 때문에

내 차를 사간 사람의 연락처가 남아 있어 그분에게 연락도 하고

광명시의 자동차관리사무소인가 하는 곳도 찾아 가고

시청도 가고 몇날 몇일 애를 먹을 끝에 우리 차는

여러명의 손을 거쳐 최종적으로 강원도의 한 도시에

팔려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있었다.

아뭏튼 그렇게 애를 먹고 관공서로부터

자신들의 행정착오라는 시인을 받아내고

봉고와의 인연을 종결짓게되었지만

그 시절이 인신매매 뉴스가 도배를 하던 시절이라 그랬겠지만

우리차의 '인생유전' 아니 '차생유전'이 너무 기구한 것 같아

가슴아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 생애 첫 새차이자 3번째 차 아빤떼는

1996년 10월, 을지로 인쇄골목을 떠나고 싶어

주말이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시절, 나를, 우리가족을

자유의 땅으로 싣어다줄 것이라고 주문을 외워대며 구입했다.

그때 형편에 다소 무리였지만

그래도 ABS에 듀얼에어백, 그리고 오토를 갖춘 아반떼를 구입했다.

자칭 그랜저급 아반떼라고 당시에는 첨단 기능을 다 갖춘 멋진 차였다.

그 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봉화에 정착을 했고,

우리 어린딸이 대학3학년생이 될만치 자라도록

우리가족과 희노애락을 같이했다.

이 차를 타고 우리 가족은 보길도의 아름다운 길을 달렸고,

화순의 와불을 만나러 갔고, 울진에서 새해를 맞았다.

우리 딸이 진학하게된 도시를 뻔질나게 돌아다녔고,

아내의 그림을 싣고 부산에서 서울,

대구에서 대전까지 안가본곳이 없을 만치돌아다녔다.

 

그렇게 나는 16의 인생을 살아왔고.

우리 아반떼는 16년의 세월동안 우리가족과 함께하면서

늙어왔나보다.

근년에 접어들어 잔고장이 잦고 소음도 심한데다가

엔진소리마저 이상해지면서 주로 승용차를 모는 아내의 

'안전'이 늘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저질렀지만... 새차를 맞이하는 기쁨 못지않게

지금까지 같이했던 차를 보내는 마음이 참 아린것도 사실이다.

 

우리 가족의 행복했던 순간, 불행했던 기억들...

16년 동안의 우리 가족의 이 모든 삶을 우리 아반떼는 온전히 같이한 셈이다.

1996년 10월 24일에 만나, 2012년 8월 24일에 헤어진

우리 아반떼를 나의 기억 창고에 남기고 싶어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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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청량산권역 비나리마을학교에서 [볼리비아인형극]을 상연합니다.

2010년 비나리미술관에서 성황리에 판을 벌였던 남미연극제에 이어,

올해 다시 청송 나무닭움직임연구소와 컬춰라인이 함께하는

남미인형극을 청량산비나리마을에 유치하게 되었습니다.

남미특유의 인형극을 만나 볼수 있게 하는

귀한 기회인 만치 지역의 어린이와 학부모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흥겨운 남미 인형극을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뜻을 같이 하시는 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로

이번 연극공연이 신나는 마을 잔치가 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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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북북부문화정보센터(이하 컬처라인)은 2012년 8월 13일, 청송군을 시작으로 볼리비아 인형극단 ‘Parala Mano'와 함께 하는 인형극 여행을 떠난다. 경상북도와 경북 북부권 11개 시·군이 주최하고, 컬처라인이 주관하는 이번 인형극 여행은 경북 북부권의 마을로 들어가 지역의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면서 남미 특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인형극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유대감을 두텁게 하고 지구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하고자 기획되었다.

1998년에 설립되어 볼리비아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인형극단 ‘Parala mano'는 인문학적 상상력에 기반 한 감동 깊은 인형극을 직접 창작하고 공연하는 단체로 해외 인형극 축제에도 초청되고, 한국에도 올해 세 번째로 초청되었다.

이번 인형극 여행에서는 관람객 연령층에 따라 주요 레퍼토리 세 작품을 선보인다. 크고 파란눈을 가진 못생긴 거인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나 우정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 <파란눈>은 초등학생들을 찾아가고, 전쟁과 폭력, 현대인의 고독을 다룬 작품 <소박한 이야기들>과 크리스마스에 소외되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징글버>라는 작품은 청소년과 성인들이 주 관람객이 되도록 공연이 배치되었다.

약 한 달 동안,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 의 마을을 찾아가 9월 6일, 울진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볼리비아 인형극 여행의 자세한 일정은 컬처라인 홈페이지(
http://www.cultureline.kr)에 공지되어 있다.

■ 문의: 054-843-6231~2 (컬처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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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 서른 분을 모시고 이틀간(8/13~14)의 선진지 견학을 잘 다녀왔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선진지 견학을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쫌 특별한 견학 길이었습니다. 비슷한 조건의 농산어촌의 선진 마을이 아니라 첨단 문화를 대표하는 서울과 그 인근의 색다른 코스를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마을사업, 특히 도농교류사업을 위해서는 우리를 객관화해 보고 현대적 도시 문화도 경험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이번 견학 프로그램을 짜게 되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아래 다음과 같은 3곳의 견학지를 선정했습니다. 시민운동을 토대로 해서 도시 속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과 한국의 건축, 미술,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을 집약해 놓은 파주 헤이리 마을의 [쌈지농부], 그리고 대안적 청소년 문화를 대표하는 서울 영등포의 [하자센타]가 그곳입니다.

 

이번 견학코스를 정하면서 혹시라도 어르신들이 재미없어하지나 않을지, 시민문화, 청년문화에 거부감이라도 느끼시지 않을지 많을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희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걱정과는 반대로 어르신들이 더 도시 청년들의 역동적 문화에 접해보시기를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요구로 서울의 문화 중심지 인사동 견학을 추가 코스로 잡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성미산마을 견학은 먼저 주민의 자발적인 출자로 운영중인 유기농식당인 성미산밥상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어서 [시민공간 나루]로 이동해서 마을 실무자로부터 성미산 마을의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공동체 사업들과 그 의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미산마을은 기본적으로 주민 자체 역량을 중심으로 해서 주민의 필요에 따라 주민의 손으로 직접 해 나가는 도시 속 마을공동체 운동의 사례를 보여주는 드문 경우였습니다.

 

성미산마을은 농촌마을과는 달리 시민역량의 면에서 탁월한 조건이지만 마을의 지리적 경계가 막연하고 주민의 공동체 의식이 미약한 측면은 공동체사업을 하는데 있어 어떤 한계로 느껴졌습니다. 이점은 농촌 마을의 공동체 사업과 정확히 반대조건인데 농촌마을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부족, 주체 역량의 부족으로 고통 받지만 마을의 경계가 정확하고 주민의 공동체의식이 아직 전승되어 오고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미산마을은 그런 조건에 맞게 공동육아사업을 시작으로 해서 성미산 개발 반대운동, 그리고 그렇게 모인 시민의 주체역량을 기반으로 해서 유기농식당, 대안학교, 마을축제, 마을공방, 공동체주택 사업까지 지역 커뮤니티 전체를 비체계적이지만 다중적으로 묶어 내는 나름의 방식을 통해 도시 속 마을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내고 있었습니다. 조직이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바람직한 삶의 추구라는 가치기반에 토대해서 인간미를 상실해 가는 도시의 삶에 공동체정신을 불어 넣는 성미산 마을 사업의 사례는 농촌 마을 공동체 사업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두 번째 견학 장소인 파주 헤이리에 도착해 먼저 현대적 건축과 예술이 만들어낸 [헤이리 예술마을]을 산보했습니다. 이어서 [쌈지농부]에 들러 천호균사장님으로부터 강의를 들었습니다. 큰 기대하지 않았던 천호균님의 강의는 그야말로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노숙인 같은 차림으로 등장해 자신은 농업의 가치를 어떻게 예술과 결합해 실현하고 있는지 토로하시고, 농업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농민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 설파하셨습니다.

 

 

우리 예술가는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어떤 권력 앞에서도, 대통령 앞에 가도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농부 앞에만 가면 기를 펴지 못합니다. 왜냐? 농사는 가장 숭고한 창조 작업으로 예술은 농사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낯선 차림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 설득력을 잃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어르신들의 반응은 무덤덤했고 차라리 그분의 그런 자유스런 차림에 신기해하고 친근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습니다. 강의와 그에 이은 자유토론을 통해 청량산비나리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예술가들이 농업과 농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들어보고 주민들이 농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껴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첫날 견학을 마치고 다음 날은 영등포구에 있는 [하자센타]를 들렀습니다. 농촌마을 사업과 [청소년 대안적 직업 교육 기관][하자센타]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하자센타 실무자 분부터 당황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 청소년 문화의 흐름을 느껴보고, 요즘 청소년들이 어떤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그 점에서 좋은 견학지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주민의 신뢰와 협동에 바탕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추구하는 측면과 요즘의 청소년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모아 공동의 직업을 직접 만들어내고 같이 운영하며 살아감으로써 청년실업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 내는 모습은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성공적인 사례를 접해 본 점 만으로도 [하자센타] 견학은 충분히 우리 목적에 부합하는 견학지가 되었습니다.

 

 

하자센타 견학을 마치고 봉화로 돌아오는 일만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몇몇 어르신을 중심으로 이왕 서울에 왔으니 좀 늦게 집에 도착하더라도 서울의 중심부 인사동에 들러 서울 사람 살아가는 모습 좀 보고 가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관광 요구로 받아들이고 이 제안을 거두어들이도록 설득할 수도 있었지만, 그분들의 요청은 도농교류 사업을 하는 농촌사람들이 도시 문화의 진수를 경험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요청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무더위와 따가운 햇살 속을 걷는 고행에 가까운 인사동 탐방이었지만 역동적인 도시민의 삶속에서 느끼는 생동감 덕분인지 아무도 힘들어하거나 불평하는 일 없이 열심히들 보시고 배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르신 중의 한분은 쌈지길 탐방중에 도시 사람들은 농촌스러운 것을 갖다놓고 장사를 하는데, 우리 농촌사람들은 농촌 한가운데다가 도시스러운 것을 가져다 놓고 장사를 하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견학을 통해 도시적 삶과 농촌의 삶을 비교해보시고, 도시 속에 수용된 농촌스러움을 세밀하게 관찰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량산비나리마을 어르신들은 12일동안 무리할 만치 빡빡하게 잡은 일정을 너무나 잘 소화하셨습니다. 이번 견학을 통해 농업의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농사를 짓고 사는 우리에게는 고역에 불과한 농업의 가치가 어떻게 되살어 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견학은 주민 한분 한분이 농부의 한 사람으로 농업과 마을공동체가 새로운 시대를 풍미할 새로운 화두로 회자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경험은 가슴 벅찬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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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궁지에 몰린 MB의 국면전환용 독도방문쇼가 한일간 독도를 둘러 싼  영토분쟁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 동안 일본은 지속적으로 노이즈 마켓팅을 통해 독도영유권 분쟁을 국제적 이슈로 제기해 왔고, 이번 '뼛속까지 친일'인 MB의 독도방문쇼는 그런 일본의 술수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일간의 독도 영유권 논쟁이 어딜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단시일내에 개인적 채무관계 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독도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이고, 한국은 지금까지 처럼 역사적 '사실'을 내걸고 실효적 지배상태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외교적, 경제적 카드를 넘어 군사적 충돌이라는 극단적 카드조차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앞으로 전개될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의 상황전개는 전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국내 정치적 지형의 변화에 따라 좌우될 것이고, 여기서 우려스러운 것은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공히 일고있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여론과 이에 편승한 극우 정치세력들의 준동이다.  


최근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지금까지 독도분쟁은 일본 극우 세력과 한국 극우세력의 공생 기반으로 활용되어 왔다. 연일 보수언론들은 자극적  기사를 통해 극우적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고, 가장 친일적인 보수세력들이 독도분쟁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애국자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독도분쟁의 씨앗은 바로 박정희 정권이 뿌려놓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미국의 주선으로 일본 자본을 빌어 산업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독도를 일본에 볼모로 제공하였다. 독도가 한국땅임을 드러내는 숱한 역사적 자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의  법정에 당당하게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천박한 한국 보수 언론은 독도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국민적 감정에 불을 붙여 극단적 국면으로 내몰고 있다. '전쟁' 운운하는 광기를 보이며 인터넷 언론을 온통 극단적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다. 여기에 편승한 대중들 역시 지금 당장이라도 일본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일본의 추악했던 전쟁 범죄 관련 사진 자료등을 퍼나르며 전의를 붙태우고 있다. 

하지만 평화의 적은 '일본'이 아니라 '전쟁'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한국과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저지른 야만적 전쟁범죄는 '일본인'의 야만성이 아니라, 바로 '전쟁'의 야만성을 드러낼 뿐이다. 일본의 패망과 러시아군의 진주에 따른 철수 과정에서 다시 일본인 여성이 전쟁의 제물이 되어야했다. 한국전쟁 전후의 역사 과정에서 우익세력에 의한 좌익가족에 대한 학살은 일본군의 만행을 그대로 따랐음을 우리는 잘 안다. 제주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전국각처에서 자행된 집단 강간과 살육은 입에 담기도 두려울 정도다.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에 용병으로 투입된 '따이한'이 자행한 베트남인에 대한 야만은 일본군이 저지른 한국인에 대한 것과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독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화다. 아니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영토분쟁을 우리가 바라는대로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도 바로 평화가 아닐까싶다. 일본의 한국 침략과 지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는 독도가 한국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한일 평화주의자가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의 이니셔티브를 쥐게 된다면 그와같은 평화적이고 이상적인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독도는 이미 법리가 아니라 도리, 역사적 정의의 문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마도는 우리땅' 혹은 '만주고토회복운동' 운운하는 한국의 극우세력과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극우세력은 반평화 동맹세력이다. 한국의 가장 친일적인 보수집단과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졌어야할 일본의 전쟁범죄 당사자들이 독도 영유권 논쟁의 이니셔티부를 쥐고 애국자 행세를 하는 현실을 저지하고 한일의 평화주의자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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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월요일부터 한주 내내 비나리 마을학교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안동예술의 전당이 주최하는 [함께오케스트라] 여름캠프가

비나리 마을학교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올라와 첼로,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의 아름다운 선율이

아름다운 마을의 풍광과 어우러지고

천사보다 더 이쁜 아이들의

생기발랄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아름다운 비나리마을을 환상의 세계로 이끕니다.

 

40여명의 아이들이 악기별로 팀을 나눠

틈틈히 윷놀이도 하고, 딱지치기도 하면서

각자가 맡은 악기를 집중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마을길도 걷고

옥수수따기 등 농사체험도 하면서

한주 내내 음악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마지막날 밤에는 이렇게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확인하고

그 성과를 마을과 나누는 작은 음악회도 가집니다.

 

학부모님과 마을 주민을 모시고

캠프에 참가하는 어린이들의 오케스트라연주를 비롯해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연주도 함께 가진답니다.

 

이렇게 비나리마을이

예술과 농업,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행복한 마을, 아름다운 농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마을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비나리 마을학교에서 여름캠프를 열고 있는

[안동예술의전당 함께오케스트라]의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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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비나리마을 영농조합법인은

권역의 주민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님을 모시고 주민대상 특강을 가졌습니다.

이날 7개리에서 모인 40여명의 주민들은

힘든 농사일에 졸음이 몰려오는 오후 시간이지만

모두다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경청하시며

마을공동체의 삶이 얼마나 뿌듯한지,

우리 마을이 앞으로 얼마나 더 인심좋고 풍요로운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헌 선생님께서는 마을의사결정구조를 민주화하고 활성화함으로써

마을공동체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안에 개입하고 참여해서 더불어 풀어나가는 마을 자치의 꿈을

현실화 알 수 있음을 피력하셨습니다.

 

이름하여 마을공화국은 주민이 마을공동체의 미래에 희망을 가지고

자긍심과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고,

문화적 예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자족적인 삶의 단위입니다.

 

강의를 듣고 나니 마을내적인 경제적 자립, 의사결정구조의 민주적 확립,

미래의 희망과 가치 공유 로 마을공화국의 꿈을 이루는

협동적 마을살이가 우리 권역을 아름답게 꾸며나갈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귀한 걸음해 주신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님,

피곤한 중에서 강의에 참여해 주신 주민여러분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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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번 공부방에서 수업을 해야하는 금요일

부득이하게 공부방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양해를 구하고

대구로 향했다.

대구에 있는 경북 농업인 회관에서

전농 경북도연맹 21차 간부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저런 바쁜 일이 있었고, 또 누구도 같이 갈 형편이 안되어 혼자 가야할 형편이라

썩 내키지 않는 길이지만

이날 교육과 더불어 고령 개실마을에서 있을 사회적 기업 창업과정 워크삽에도

참가해야했기 때문에 부득불 길을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왕 길을 나서는 김에 그동안 계속 미루기만 했던 치과진료도 받을 겸 오후 일찍 길을 떠났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봉화에서 대구까지는 가까운 길이 아니었다.

거의 2시간 30분정도가 걸리지만 휴계소라도 들러 우동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면

3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이날도 대구 신서동에서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에스치과'를 찾아 네비에 입력하기 위해

한참을 휴계소에서 지체하다보니 3시간을 넘겨서야 치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진료를 받고 저녁까지 대접받고 보니

경북 농업인회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교육이 한참 진행중이었다.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만 보았던 김진숙 씨의 강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육을 받기 위해 경북내 각 시군에서 모인 쉰명 가량의 농민회 간부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강의에 몰두하고 있는 와중에서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김진숙님은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300일 넘어 목숨을 건 농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행된

사측의 야만적 대응과 경찰의 비호를 받는 용역깡페들의 폭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로 투쟁을 이끌 수 있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트위트'라는 매체의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적 여론을 이끌어내어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희망버스라는 새로운 투쟁 형식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숨을 죽이고 강의에 몰두하는 농민회 회원들은

김진숙님과 함께 같이 분노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직도 서러운 사회적 약자로서의 농민과 노동자의 삶을 생각하고

약자들간의 연대를 통한 궁극적 승리에 대한 희망을 나누었다.

 

강의가 끝나고 간단한 뒷풀이가 준비되어있었다.

바쁜 농사일을 급히 끝내고 경북 구석구석에서 저녁도 굶고 달려오신 농민회회원들께서는

늦은 식사를 하시며 막거리와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농업인회관을 나와 봉화군 농민회회장님, 춘양면 지회장님과

농민회 관련 업무를 상의하고  난 뒤 늦게 나마

고령 개실마을에서 열리고 있는 사회적기업창업과정 워크삽에 참석하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고속도로 대신에 5번 국도를 따라 안동을 거쳐 봉화로 돌아오는 길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농사지어 먹고 살기도 힘든데

허구한 날 집회다 교육이다 쫒아다니는 농민회 회원님들의 열정과 희생이

존경스럽고 또 안스러웠다.

하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 맞서

자신의 삶터에서 싸워 나가는 노동자 농민이 있는 한

세상을 밝힐 희망의 불씨를는 결코 꺼지지 않고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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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산골마을에 사는 농사꾼이 서울 갈 일은 일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다.

그런데 최근 MB정권 덕분에 서울 나들이가 잦아졌다.

한국 농업 농촌을 실제적으로 갖다 버리는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해

상경 집회를 다녀 온지도 얼마된 것 같지 않은데

조용히 농사나 짓고 살고 싶은 사람을 또 서울로 불러 올린다.

 

7월 3일 12시에 농협중앙회 앞에서 농협법 개악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가하고

다시 오후 2시에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한중 FTA저지 집회를 하기 위해서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와 춘양지회 동지들은

봉화농업기술센타앞에서 만나 일찍 상경길에 올랐다.

 

한미 FTA를 밀어 붙인 이 정권은 농민들의 분통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중  FTA를 강행한단다.

한미 FTA로 인한 농업생산액 감소분이 정부측 연구기관의 자료에 따라도

연 1조가 넘는다는데 이번 한중 FTA는 그 피해예상액이

한미FTA와 비교도지 않을 정도 클 것이라는 점은 정부 비정부를 떠나 

대부분의 연구 기관이 동일하게 인정하는 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라도 

최소 년 2.5조 이상의 농업생산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올해 농업생산예상액이 작년도보다 1.1%줄어 44조 1천억원 정도라고 본다면

한미 한중 FTA로 인한 연 손실액만봐도 거의 총 농업생산액의 8%에 육박한다.

사실 그와 같은 예상치도 최저치에 불과하고, 그 신뢰성도 떨어진다고 본다면

한국 농업은 향후 얼마만한 타격을 받게 될지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게 사실이다.

 

복지와 내수확대 등 내실있는 경제 구조를 차분히 다져나가야 할 시기에

무역확대라는 신기루를 쫒아 1%도 안되는 재벌만 살찌우고

농민은 물론 중산층 이하 대다수 국민의 고혈을 짜는  FTA 강행 정책은

반드시 철회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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