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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모처럼 조합원 교육이 있던 날
라티는 점심을 마치자 마자 분주합니다.
새벽부터 물에 불려두었던 콩을 차에 싣고
명호소재지의 봉봉조합원이 운영하고 있는
[아름다운방앗간]으로 달려갔습니다.

잽싸게 콩을 갈아오자마자
큰 솥에 물을 끓이고 드디어 봉봉 특별 두부만들기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몇시간의 공을 들여 만든 봉봉 손두부^^가 드디어
완성되자 교육에 참가하기 위한 조합원님이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가 우선 대여섯모를 먼저 홀딱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의 교육을 마치고 밤 10시나 되어서야
두부김치와 막거리가 있는 조합원 간담회와 친교의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무려 새벽2시 넘어까지 이어진 막걸리 파티...
참가하신 모든 조합원님께 감사드리구요.
강사님 접대에 새벽을 맞은 정도윤 조합원님
이날 빈약할 뻔한 행사를 알차게 만들어주신
라띠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 교육때도 지속적으로 두부 부탁드립니다~~
특히 다음에는 순두부로도 좀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용~
그리고 이번에 라티표 손두부를 맛보지 못하신 조합원님은
다음에 꼭 참가하시어 
같이 손두부 만들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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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 17일)는 상주 승곡체험마을에서 열린

[커뮤니티와 경제]주관의 경북마을/공동체 네트워크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경북의 마을 공동체 사업단위들 중 대표적인 마을과 협동조합, 마을 기업 등

20여개 단위에서 대표자 분들이 참석을 했는데

봉화에서는 두실마을영농조합법인이 마을기업을 대표해서 참석을 하고

청량산비나리마을 영농조합법인도 권역사업을 대표해서 참석을 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지역재단 유정규이사님의 강연과

각 마을공동체 대표자간의 경북 단위 네트워크의 필요성과 형식 등에 대한

허심탄회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날 논의 결과 [경북 마을 공동체 네트워크]는

올 연말까지 2달단위로 3번 더 진행을 하고 그 성과에 대한 평가를 통해

향후 경북 마을 공동체 네트워크의 존립과 발전 방향에 대한 결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남은 3번의 행사는 각 단위의 현황과 과제를 담은 자체 보고서를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 컨설팅(조언)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하면서 구체적인 상호 협력의 가능성도 도출해 보는 곳으로 했습니다.

다가오는 8월 모임은 영양 대티골에서 장소 등 제공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마을공동체 네트워크의 성격과 목적 등의 불확실성에 대한 의견도 있었고 유사한 모임의 과잉속에서 실효성없는 모임이 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향후 모임들 속에서 차차 구체화해 나가야하지만 일차적으로 커뮤니티와 경제의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지원단위와의 인연이 있는  공동체 단위, 사회적 경제 단위들의 네트워크로 시작을 하지만 나름의 가치 기반을 공유하고 공통의 목적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단위간의 학습과 정책개발, 공통의 사업영역의 개발 등으로 사업 방향을 잡아 간다면 의미있는 네트워크로 작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 바쁜 사람들이지만 시간 아깝지 않고 만나서 반갑고 의미있는 모임으로 [경북 마을-공동체 네트워크]가 발전해 나가는데 모두 힘을 보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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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들은 늘 변하기 마련이라지만

길지않은 17년 마을살이를 하면서

대보름 윷놀이의 변천사를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해가 갈수록 사람이 줄고 마을의 활력이 사라져

 대보름 윷놀이를 건너뛰는 해조차 나오게 된 게 

언젠부터인지 기억에도 없다.

서툰 장구에 꽹과리 소리가 온 동네를 떠들썩하니 울려퍼지고

이집 저집 지신밝기가 하루 온종일 이어지던 때가

벌써 옛 일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참 오랜만에 온동네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윷놀이 판을 벌였다.

마을 노인회가 주최가 되고

몇몇 청년이 찬조를 해서 집집이 돌아갈 선물도 마련하고

조촐한 음식과 음료를 나누며 오늘 하루 신나게 윷을 놀 수 있었다.


이제는 낡아 몇개 남지 않은 사물이지만

서툰 꽹과리 장단에 춤사위도 마다않고

복되게 따스한 햇살이 머지않은 봄을 예감케하는 오늘 하루

비나리마을 온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같이 웃고 떠들다 보니 하 루해가 짧았다.


멀리 베트남에서 시집 온 로티리도 난생 처음 옻을 던졌고

올 정원초하루날 귀농하신 김선생님도 비나리주민으로 처음 윷을 던졌다.

길학이 형님의 재롱에 온 주민이 배를 잡고 웃었고,

마을의 안녕과 화목을 비는 노인회 회장님의 인사말에 온 주민이 귀를 귀울였다.

걷기도 힘든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윷을 던지셨고,

모처럼 나의 아내도 이웃과 함께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준비했다.


오늘 같이 한 재학이 형님, 병용이형님, 영화형님, 창목이 형님, 영만이 형님,종락이 형님

종열씨와 도진씨, 

그리고 어르신 한분 한분의 이름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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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3일 자정, 또 한번의 비나리마을 동제가 있었다.

마을의 주민이 된지 17년... 벌써 몇번의 동제에 참석했는지 이제 기억도 없다.

단지 동제의 변화된 풍경이 주마등 처럼 지나갈 뿐이다.

사실 한해 한해 표나지 않게 동제의 형식도 간소화되고, 

또 참가하시는 사람들도 바뀌고 줄었다.


올해 역시 유사를 맡아 잡은 돼지를 싣어오고,

하루종일 당나무를 지키며 추위에 떨다가 자정에서야 동제를 올리고

뒷정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올해는 삶은 돼지고기를 가구수로 나누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돼지 한 마리를 비나리 마을 온 가구에 한토막씩이라도 돌아갈 수 있도록 나누다보면

날이 훤히 새기 일쑤다.


올해는 돼지를 직접 잡지도 안았고,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어 덜 고생스러웠다.

동네에 이런저런 번잡한 일도 없어 

동제의 신성함을 지키기에 아무런 흠이 없는 좋은 날이었다.

제사를 올리고, 소지를 올리고

한해 풍작과 마을의 화평, 그리고 모든 생명가지 것들의 안녕을 빌었다.

 

그래도 다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동네 형님과 넋두리를 했다.


"한것 없이 힘드네요 형님."

"힘들고 말고제. 그라이 다 안할라안카나."


이런 현실에서 그래도

같이 하신 주민, 당주 이하 제관과 유사님들

그리고 돼지를 보내준 이슬이 아빠며 여러 찬조자님이 고맙다.

가난한 산골 마을에 이 정도라도 성대한 당제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모두의 정성이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다.


올해 동제를 마치고, 꼭 무엇인가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컴앞에 앉았지만

막상 무엇을 기록할지 모르겠다.

올해 동제가 다른 해와 달리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직 내 머리가 복잡하고

나의 발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냥 기록할뿐!!














* 당주 : 신영록  / 축관 : 강진희 / 유사 : 권희대, 안태랑, 유창목, 정재학,송성일

* 돼지희사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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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농민회 회원들이 뭉쳐

농민장터를 개설했다.

안동시 송현동 하나로마트 옆 공터... 

한 회원이 농사짓는 밭의 길쪽 부분을 내어놓아

천막과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지금 상품 진열공간도 공사중이다.

최소한의 비용만 갹출해서 마련하고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들은 거의 모두 기부와 울력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농민의 자력으로 농민의 자립적인 유통기반을 만들고자 

비싼 땅을 흔쾌히 내어놓은 윤창회장님,

내 농사만해도 바쁜 중에도 장터를 책임지기로 한 권영돌 낙동지회장님,

그리고 몸으로 농산물로 같이해 나가는 

안동시 농민회 회원들의 노력이 감동스럽다.

사실 봉화군농민회도  도시민과 더불어 

우리 농업을 지키고 농민과 도시민의 건강한 삶의 기반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서

봉봉협동조합을 발족한지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봉봉협동조합은 나름의 운영기반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지난 6개월동안 많지 않은 초기 출자금을 

설립비용과 초기 경상비로 거의 다 소진해 가고 있고 

마땅한 수익모델은 아직 보이지 않는 어려운 상황이다.

온라인 쇼핑몰 모델만으로는 솔직히 답이 없다.

그렇다고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할 여력도 없다.

이 현실에서 봉봉이 나갈 길은 오직 타 사회적 경제단위와의 연대뿐인지도 모른다.

그와같은 문제의식에서 우선 봉화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자체인

안동, 영주에 눈을 돌려본다.

영주로컬푸드, 안동농민장터, 봉화친환경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열어나가기 위한 노력들은  

가까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봉봉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 단위와의 연대가 무엇보다 급선무다.

아직 연대의 틀이나 방법론에서 정확한 입장을 정할 수는 없지만,

모두 지혜를 모은다면 해답을 못구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제 곧 다가올 봄, 봉봉도 이들 사회적 경제 단위들과의 연대를 통해 봉봉협동조합의 봄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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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개업한 '착한드림'을 아시나요?

착한 사람들이 모여 주중에 국밥을 팔고

그 이익금으로 주말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무상급식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착한 식당입니다.

안동을 따뜻한 인정으로 넘치는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는 착한 식당- '착한드림'

우리 '봉봉협동조합'의 단체조합원이기도 합니다.

'착한드림'을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 봉봉의 개인 조합원이기도하지만

'착한드림'이 또 봉봉의 단체조합원으로

봉봉이 고추가루와 쌀 등을 공급하는 거래처이기도합니다.

이제 막 개업해서 첫걸음을 내딛었지만

머지않아 봉봉의 큰 납품처가 될 것이 확실합니다.

 

멀리계신 분들은 마음으로라도 응원해주시구요.

가까이 계신 분께선 꼭 

'착한드림'에서 식사와 모임을 가지시길 당부드립니다.

 

착한드림은 낮시간에 '한우국밥'을 팔고

저녁시간에는 다양한 안주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봉화농민회가 농사짓고 봉봉이 공급하는 우렁이쌀과 고춧가루 등

순수 지역농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고

MSG나 핵산같은 화학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착한 식당 - '착한드림'에서

조합원 여러분을 뵐 수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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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음식의길85(북문동7번지)

안동의료원에서 상지 평생교육원방향 음식의길 입구에서 10m이내 보임

054) 843-3719 (010-4526-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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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저뭅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 가는 해가 아쉬워 뜬눈으로 밤을 샙니다.
초저녁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 새벽2시부터
책상에 앉았습니다.

무엇을 할까 할참을 망설이다가
자판을 두드립니다.
지난 한해 나를 둘러싼 세상에는 어떤 일이 있었고
나는 어떻게 대응하고 무슨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놓쳤는지
정리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농민인 저에게 주어진 지난 한해 최대의 화제는 
한국 농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탄시킬 한중 FTA 협상과
30년래 최대의 농산물가 폭락사태일 겁니다.
한달이 멀다하고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집회를 가야했고
급기야 년말에는 농협은행 마당에 농산물을 쌓고 21일을 넘기며
칼바람 속에서 농산물생산비보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천막노숙투쟁까지 벌였습니다.


지난 한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던 집회와 농성 등이 
외부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대한 일차적 대응이었다면
'봉봉협동조합'은 그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실천이었습니다.
그래서 2013년 저의 삶을 규정하는 최고의 화두는 단연 '협동조합'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극단적 경쟁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왔고
개인의 삶조차 한발짝도 그 지배로 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아가야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감히 '협동과 신뢰'를 기반한 새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협동조합이란 걸 통해 그걸 이뤄보자는 꿈을 나누었습니다.

먼저 시작한 협동조합들도 많고
참 잘하는 협동조합들도 많지만 
우리가 발딛고 사는 조그만 공동체를 기반으로해서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사회를 100개의 한살림과 100개의 아이쿱 그리고 수천개의 
군소 협동조합들로 얽히고 섥힌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상살이는 좀더 아름답고 편안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봉봉협동조합은
몇달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6월 29일 발족을 했고
다시 몇달의 정비기간을 걸쳐
부족한 중에 10월 중순부터 물품공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꿈을 꿀 때와는 달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경영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보고 안되면 말고'가 아니라 꼭 되도록해야한다는 마음의 짐은 참으로 무거웠고
그 짐을 고스란히 지고 나가기엔 허리도 약하고 지혜도 부족했습니다.
좌충우돌하는 지난 몇개월간 낙담을 하고 의기소침하기도 하고
다시 용기를 얻어 일어나 달리기도하고, 넘을 수 없는 벽을 향해 
머리로 부딪혀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맞은 연말,
여러가지 측면에서 되짚고 반성하고 나 자신의 한계, 우리의 한계, 
그리고 시대의 조건에 대해 고민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나누는 일일 것입니다.
지난한해 실수와 실패,  좌절과 고통속에서 나는 무엇을 건졌는지 되돌아보는것 
그것이 송년에 임하는 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주 오래전에 접한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시인의 화두에 비소를 보냈지만
내 삶의 경험속에서 다가온 '사람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은
다시금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화두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합니다.

절임배추 공장과 노숙투쟁천막을 오고가며 지내야하는 와중에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괴로워했지만
또 사람으로 인해 위로받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협동의 편익 이전에 단지 같이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희열은 진정으로 협동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힘은 같이하는 기쁨,
같이 나누는 희열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협동의 참 맛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철처히 가르고 파편화해서 지배하는
이 체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일 것입니다.

봉봉협동조합의 존재이유는 신뢰와 협동에 기반한
새세상의 꿈을 만들어 나가고 나누는 데에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조합원이 꿈을 공유하지 않으면
조합은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를 위해 지난 한해의 과오와 성과를 딛고
새로 맞는 2014 갑오년 봉봉협동조합은
조합원간 교류와 교육 사업에 매진해야 할것입니다.
당장은 '경영적 생존'이 더 절박하겠지만
'생존'을 넘는 지점까지 우리의 눈이 가 있지 않다면
그 생존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생존 넘어 있는 '희망'이 이끌어 주지 않는 조직은
그 동력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한해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 속에서 기뻐했고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모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그 인연 내년한해 더 깊어지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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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협동조합의 '봉봉'은 불어의 'bonbon'이다.

'bon'은 '좋다'는 뜻으로

'도시 좋고 농촌좋고' 봉봉협동조합이라 작명했다. 

처음에 봉화사과 상품명을 정하면서 '청량산 산우리에서 글자란 어쩌구' 하다가

"봉봉사과"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정봉주님을 뜻하는 '봉 도사'라는 뉘앙스도 가지는 게

이래저래 재미있어 보였고, 알고보니 유명한 까페이름이나 

유명하진 않지만 다양한 업종의 상호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우선 무조건 어감이 좋고 재미있어

봉봉이라고 말하는 순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런데 'bonbon'은 과일잼이 들어있는 사탕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연히 마트에서 만난 봉봉사탕 괜히 반갑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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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노발대발’하며 하나가 되었다!

[2013 자원봉사자 봉하캠프 회원후기] “내가 좋아서”라는, 놀라운 힘 확인한 1박2일

회원 ‘송화’님

 

 

노란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 하나,
태양 볕을 홀로 묵묵히 받아내고 있는 큰 바위 둘,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 셋,
수많은 장면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 곳에 오롯이 머물고 있었다.

지난 주말 봉하마을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1박2일 캠프가 열렸다. 실은 나는 자원봉사자에게 마련된 캠프인지 모르고 신청했다가 운 좋게 얻어 탄 외부인이었다. 그저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였을 뿐 제대로 자원봉사를 해본 적이 없다. 타인 아닌 타인으로 캠프에 참석하게 되었지만 이번 여행은 봉하마을에 머물게 된 것만으로도 참으로 고마운 여행이었다.

8월 10일 토요일 아침.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봉하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막상 버스가 출발하고 나니 기대감보다 큰 초면의 어색함이 엄습해왔다. 어리둥절하게 서서 사람들이 서로 인사 나누는 모습을 구경하고, 그들이 흥겹게 어우러지는 것을 그저 멀찍이서 바라만 보았다. ‘혼자라도 봉하마을을 실컷 즐기다가 가야지’하던 중에 불행 중 다행으로 같이 점심을 먹자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고마운 언니 둘. 통성명을 하고 갖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색함 속에 작은 물꼬가 트이자 친해지는 건 순간이었다.

대학 3학년 영화학도가 만난 ‘내마음속 대통령’

마침내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먼저 오신 자원봉사자 여러분이 우리를 반겼다. 언니 오빠들도 있고, 삼촌과 이모뻘 되는 분들도 많다. 직업과 사는 곳도 참 다양했다. 대구에서 두 딸과 함께 열심히 노무현 대통령님을 응원하고 계신다는 분, 남자친구와 지지하는 당이 달라 고민이시라는 분, 부모님과 정치성향이 달라 갈등을 겪고 계신다는 분, 주변사람들 몰래 오셨다는 분, 매주 한 번씩은 꼭 봉하에 와야 마음이 놓인다는 분,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뒤부터 습관처럼 봉하마을을 찾는다는 분, 온라인 활동만 하다가 처음 나오셨다는 분…, 다들 처음 뵌 분들이었지만 모두가 참 좋은 사람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나같이 유쾌하고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나는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소중한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1박2일 내내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다녔다. 처음엔 내 스스로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의식을 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잘 다가갈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싫어하시거나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꺼림칙해 하실 수도 있다는 우려감, 촬영을 하면서도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촬영을 아예 중단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다. ‘저기요 학생, 촬영 말인 데요…’하는 부름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덜컥 내려앉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오히려 사람들이 먼저 호기심 있게 다가와주었고, 응원을 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도와주겠다는 분도 계셔서 나는 점점 더 대범해질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방궁(?)에 들다

대통령님 묘역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예를 표하는 모습, 영상 40도에 달하는 폭염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대통령 길을 오르는 모습, 봉화산에 올라 평화롭고 아늑한 대지 본연의 풍경도 감사한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앞사람과 뒷사람이 하는 농담과 산속 가득 울려 퍼지는 유쾌한 웃음소리, 방문하는 곳마다 대통령님의 관한 갖가지 숨은 일화가 영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대통령의 길을 걷기 전 노무현 대통령님의 사저를 직접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더위에 지친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권양숙 여사님께서 시원한 차와 수박을 내어주셨다. 환한 웃음, 따스한 그 마음은 카메라에 담지 않기로 했다. 온전히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은 마음이었다.

사저는 목재로 벽이 둘러싸여 있고 마당을 중심으로 부엌과 방이 분리된, 조금 불편하지만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고 느낄 수 있는 구조였다. 잘 정돈된 마당엔 꽃과 들풀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다. 지붕이 낮은 게 눈에 띄었는데,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설계했다고 한다. 대통령님이 업무를 보고 책을 읽으셨던 서재, 사자바위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위치의 사랑방, 소담하지만 기품이 있는 정원. 곳곳에서 소탈하고 진실된 마음이 느껴졌다. 집 안팎의 풍경만 보면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어떤 이가 살고 있는지 절로 느껴질 만했다. 아름다운 집이었다.

자원봉사자 60여 명이 한목소리로 ‘노발대발’했던 밤

그리고 두 번째 날, 아니 봉하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명계남 선생님의 명강연, 김정호 대표와 김경수 본부장과의 살가운 대화, 몸과 마음이 하나 되었던 ‘별밤 운동회’ 그리고 뒤풀이까지… 밤 깊은지 모르고 ‘노발대발’(무현재단이 전해야 한민국이 전한다)를 외치며 보낸 탓에 표정들이 다들 가관(?)이다. 눈곱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채 부어있는 얼굴들이 하나 둘 마당으로 모였다. 마치 오래 함께 산 한식구들처럼 격의 없는 모습. 우리들 사이의 작은 벽은 밤사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화포천 길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싱그럽고 향기 좋은 풀 냄새와 흙내음이 아침잠을 깨웠다. 마음이 정화되며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달리는 길이 노무현 대통령님도 자주 산책하며 오갔던 길이라고 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

화포천 자전거 산책을 마치고 방앗간에 들러 김정호 대표에게 친환경 농사와 봉하쌀의 이모저모를 배워 듣는데 특별한 손님이 우리를 찾아주셨다. 어제 권양숙 여사님에 이은 두 번째 깜짝손님의 등장이다. 문재인 의원님이셨다. 최근 좋지 않은 일들이 이어져서 그런지 조금 수척해진 모습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강한 의지와 힘 그리고 희망이 실려 있었다. 어렵지만 함께 이겨나가자는 말에 용기가 솟았다.

꿈같은 1박2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캠코더의 촬영 표시등에도 이내 불이 꺼졌다. 솔직히 더운 날씨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고, 등산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금은 주저했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드러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정작 집으로 돌아가는 봉하버스에 앉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뭔가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못 다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봉하로 간 까닭은?

버스 안에서 대통령님의 애창곡 ‘작은 연인들’을 합창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내 나이보다 오래된 노래라 가사도 음정도 잘 모르지만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가슴 뭉클했다.

이제는 좀 더 속내를 터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캠프에 참여 신청을 한 건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다른 마음도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내 욕심은 봉하마을을 향해 움직이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그 사람들을 봉하로 모이게 하는 ‘그 어떤 것’을 카메라에 담아가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지. 그러나 아직 잘 모르겠다. 1박2일 동안 많은 자원봉사자 분들이 나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분명한 대답을 주진 않았다. 대신에 묘하게 자꾸 떠오르는 대답이 하나 있다. “내가 좋아서.”

많은 분들이 같은 말을 했다. 내게는 복잡한 퍼즐 같은 그 말을 이리저리 조합해본다. 내가 좋아서? 그냥 좋으니까 봉하에 온다? 봉하에 무엇이 있기에 그리 좋을까. 퍼즐을 잘못 맞췄는지 애초에 맞출 필요가 없던 것인지, 나 역시 ‘내가 좋아서’라는 말밖에는 별다른 게 생각나지 않는다.

사람들 속엔 씨앗이 있다.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다른 씨앗. 우리는 느리지만, 또 생각보다는 빨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을 닮아가면서 말이다. 다음번 봉하행에서는 어떤 느낌이 들까? 내 카메라에 담길 풍경도 지금과도 또 다를 테지. 아름다운 세상, 봉하와의 재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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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17년만에 내가 보유하게 된 농기계는 고추건조기 1대, 농업용 관리기 두대, 경운기 한대, 예초기1대, 잔가지 파쇄기 1대 그리고 농업용 1톤 트럭이 전부다. 농사경력에 비해 결코 많은 농기계가 아니다. 트렉터도 없고, SS기 라고 불리는 농약살포기도 없다.  

이들 농기계에는 일정량의 면세유가 나온다. 타산업에 비해 농업의 산업경쟁력이 약한 현실에서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일부다. 대부분 농가의 농업용 유류 사용량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양에다 해마다 배정양도 줄어드는 추세지만 그나마 과도한 농비를 줄이는데 도움이 적지 않다. 작년은 선거 덕인지 농업용 트럭도 면세유 대상이 되었다.

면세유 배정 양이 적고 많음을 떠나 우선은 일반 기름값에 비해 값이 확실하게 싼게 현실이다 보니 면세유를 살 때는 늘 공돈이라도 생긴듯 기분이 좋다. 여기에 맹점이 있었다. 일반 기름값에 비해 싼 면세유를 살때는 가격을 잘 살피지 않게된다. 차에 기름을 넣을 때는 리터당 50원만 차이가 나도 예민하게 느꼈던 것과는 달리 면세유를 살때는 이상하게도 가격에 대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일단 싸니깐 얼마나 더 싼지 혹은 비싼지 묻지않게 된 것이다.

이번 봉화농협의 농업유 면세유 폭리 사건은 바로 그와같은 농민들의 면세유 구입 습관을 철저하게 이용한 비열한 영업행태가  적발된 것이다. 적어도 농협이 운영하는 주유소라면 일반기름값을 설사 비싸게 팔더라도 농업용 면세유만은 농민에게 싸게 팔아야되는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데 농협이 일반기름은 싸게 팔고 오히러 면세유를 일반 주유소에 비해 비싸게 팔아왔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농협면세유 비싸다 농민들 반발(리) (안동MBC)

2013/05/29/작성자 : 이호영 

http://andongmbc.co.kr/adboard/index.php?doc=news/news_list_view.php&seq=0043&date=20130529&lnktitle=Ur7Itb+777/4KbPzx/m46by8wK8guvG9zrTZILPzuc616SC53bnfKLiuKSAgICAgICA=&menuID=0201000000

“농가 면세유를 비싸게 팔다니…”(대구신문, 5/21)http://www.idaegu.co.kr/news.php?code=tk0302&mode=view&num=98116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농협은 오랜 세월을 두고 비료값 단합과 농약값 단합을 통해 부당이익을 챙겨오다 적발되어 공정거래위에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왔고, 농민회 등으로부터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당해 재판을 받고 있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082297

이들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은 바로 농협이 협동조합의 성격을 상실한데 있다. 농협은 협동조합임을 표방한 조직이다. 신뢰와 협동에 기반해 조합원의 이익을 지켜주는 조직이 협동조합이라면 농협은 바로 농민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어야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그와같은 조직의 의미와 농협의 행태가 얼마가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농업경쟁력 약화는 국제적 농업시장의 변화 등 다른 외적 요인도 있지만 농협이 재 역할을 못하고 있는데도 적지않게 연유한다. 이번 봉화농협 등의 면세유 폭리사건은 최근 전국적으로 일고 있는 협동조합운동과 농협개혁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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