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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명호면의 '비나리마을'은 권정생선생님의 작품

[비나리달이네 집]의 배경이 되었던 동네입니다.

권정생선생님과 이야기의 주인공이되었던 달이 그리고

정호경 신부님 마저 다 돌아가시고

이제 비나리마을에는 달이가 살았던 통나무집과

권정생 선생님이 전하고자 했던

애틋한 생명사랑의 정신만 주민의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비나리마을 학교에서는 권정생선생님의 마음을

세상의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

"비나리 달이네 집에서 시작하는 [권정생 동화캠프]"를 열게 되었습니다.

* 주관 : 비나리마을학교

* 후원 :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 일시 : 2013년 1월 26일(1박2일) / 오후2시까지 비나리마을학교 참가자 개별 도착

* 참가대상 : 초등생을 포함한 가족 누구나

* 정원 : 50명

* 참가비 : 1인 8만원 / 2인가족 15만원 / 3인가족 21만원 / 4인가족(26만원)

         (농협 355-0018-5420-33 예금주 : 청량산비나리마을)

* 참가 신청 : 비나리마을학교 010-6345-6234/ 010-7755-8618 / 054-673-1927

* 프로그램:

01/26()

14:00~14:50

일정 시작-도착 후 숙소배정 명찰, 팀 구성

15:00~15;50

오리렌테이션, 권정생 작가, ‘비나리달이네집에 대한 소개

16:00~18:00

비나리달이네집통나무 집 방문, 주인공 신부님 이야기 듣기

18:00~19:00

저녁식사

19:00~19:30

그림자 연극 공연

 19:30~20:00

 참가자 시나리오 작성(비나리달이네집주제를 바탕으로 )

 20:00~20:50  시연(역할극)

21:00~22:00

동화구연 한마당(놀고 즐기는 시간)

01/27()

07:30

기상

08:00~08:50

아침식사

09:00~10:00

독서 골든벨

10:00~11:00

전래놀이(비석치기, 마당 윷)

11:00~12:00

편지쓰기- 달이에게, 신부님에게

12:00~13:00

중식 프로그램 종료

 

글 : 권정생
그림 : 김동성

다리를 잃은 강아지 달이와 비나리 마을로 귀농한 신부님 이야기입니다.

자연 속에서 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귀농한 신부님. 신부님이 농사 일로 바빠서 혼자 놀던 달이는 마을 사람들이 산동물을 잡으려고 놓아둔 덫에 다리를 잃게 됩니다.

농촌 생활을 하면서 달이와 신부님이 나누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화입니다.

비나리 달이네 집에 나오는 달이와 신부님은 비나리 마을에 살고 있는 실제 인물을 토대로 쓰여진 동화입니다.

달이는 그후 몇 년 뒤 나이가 들어 신부님 곁을 떠났고 달이를 대신해 반달이라는 강아지가 신부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달이도 사람들이 산동물을 잡기 위해 놓아둔 덫에 다리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강아지 못지 않게 세 발로 온 동네를 뛰어 다니는 못 말리는 개구쟁이 강아지로 마을에서 유명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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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 귀농 15년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보따리 싸들고 서울을 떠나온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강산이 바뀌고도 남을 세월이 흘러 나는 삼십대 중반의 새신랑에서 오십대 초반의 중년으로 변했다. 변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얼치기 귀농자에서 이제 산골 마을 비나리의 어엿한 주민의 한 사람이 되었고,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자랑스러운 농부가 되었다. 물론 세월이 저절로 나를 비나리마을의 주민으로, 농부로 만들어준 것만은 아니다. 한명의 농부, 한명의 마을 주민이 되기 위해서는 인고의 세월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고 쉽지 않은 고난의 통과의례를 헤쳐 나와야 했다.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니 아득한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아직 갈 길이 더 먼 것 같다. 그것은 내가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렇게 하면 귀농 실패 한다’라는 제목의 전문가연하는 분들의 글에 나오는 딱 그런 귀농을 했다. 세상살이에 지쳤고, 그리고 막연한 농촌살이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막무가내 보따리를 쌌다. 내가 받은 귀농관련 교육이라고는 농협주관의 2박3일 교육이 전부였고, 그리고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요구된다는 최소한의 자금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농촌도 사람 사는 곳이고, 저 허리 굽은 노인네도 농사지어 자식 다 키우고 밥 안 굶고 살고 있는데 시퍼렇게 젊은 내가 설마 처자식 굶길라고. 하는 오기만 잔뜩 가슴에 품고 낯선 마을에 짐을 풀고 난생 처음으로 호미를 잡았다.

그리고 농촌의 실상을 잘 아시는 분들이면 쉽게 예상하시겠지만 나는 번번이 엎어지고 깨어졌다. 벼랑 끝에 내몰려 다시 귀도를 고려해야할 만치 절박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산골마을은 각자도생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내가 가졌던 산골살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많은 부분 사실과 맞아떨어졌다. 내가 어려울 때 이웃은 외면하지 않았고, 또 이웃이 고난에 처했을 때 내 역시 무심할 수 없었다. 흩어진 기억을 추슬러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품삯에 연연하지 않고 해 떨어진 고구마 밭에서 수확을 거들어 주시던 이웃 할머니, 도끼 자루 만드는 일부터 장작 패는 일까지 고스란히 삶의 지혜를 전수해 주셨던 이웃 어르신, 어떻게 하면 희망이 사그라지는 농촌에서 아름답고 풍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같이 고민을 나누던 젊은 친구들이 있어 나는 좌절할 수 없었다. 해거름에 지쳐 돌아오는 날 아득한 눈빛으로 맞으시며 ‘인자 오는가’라는 한마디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을 담아 전해주시던 앞집 형님,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피땀으로 농사지은 수박이 한줄기 소나기에 다 갈라져도 몇 개 남지 않은 성한 놈을 골라 이왕 망한 농사 맛이라도 보라며 가져다주시던 바로 그런 이웃이 있어 나는 이제 어엿한 비나리마을의 주민의 한사람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공동체에 눈을 뜨고 더불어 사는 재미를 맛보게 했던 [청량산감자작목반]의 일원이 되고, 또 농촌의 활로를 개척하고자 앞서가던 이웃의 손에 이끌려 [관북 팜스테이마을]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세상과 부대끼지 않고 혼자 농사지어 내 가족 먹여 살리겠다던 나의 삶의 모토는 폐기되었다. 산골살이를 시작한지 오륙년이 지나면서 소위 다양한 공동체 사업, 특히 도농교류사업에 참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관이 지원하고 주민이 주도하는 도농교류사업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세월이 가고 성과가 쌓이면서 이제는 농민회와 같은 농민 자치조직이나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양한 공동체의 형식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도농교류가 먹거리의 공급처와 소비처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도시와 농촌을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하고 이를 통해 도시와 더불어 농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도농교류의 일면성이 갖는 위험을 자각 하고 외부와의 관계보다 내부의 변화를 중심에 둔 사업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오직 ‘소득증대’만이 마을을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주민의 행복에 기여하는 가치기반의 공유와 귀속감 형성을 통한 정체성 확립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자각에 이르기도 했다. 나의 관심은 녹색체험마을과 정보화마을 사업에서 마을공부방이나 자활농장으로, 체험프로그램에서 동제나 초롱계같은 마을의 전래풍습으로, 도농교류에서 주민교육 중심의 “마을학교”로 관심의 중심이 바뀌었다.

이제 다양한 마을사업의 작은 성과로 ‘비나리마을학교’라는 외적 인프라와 그 ‘학교’를 채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혹은 가치를 빈약하게나마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주말이면 도시의 청년학생들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배우러 마을을 찾고, 주중이면 주민들이 같이 모여 자신의 삶의 소중함을 지키고 고양시킬 다양한 배움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초라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제 필요한 것은 조금의 시간과 좀 더 많은 열정뿐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언제부턴가 농사는 뒷전이고 이웃과 더불어 ‘비나리마을학교’를 통해 마을의 가치, 농업 농촌의 가치,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모으고 다듬어서 세상에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물론 하루라도 빨리 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지금 주어진 일에 조갑증 갖지 않고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나는 세상을 버렸지만 마을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마을살이를 통해 더불어 사는 재미를 찾았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 수 있었다. 그것은 땅을 일구며 누대를 살아오신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의 심원한 삶의 지혜에 내가 감화되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을이 갖고 있는 유구한 역사가 전해주는 에너지에 내가 동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자신이 생애동안 내렸던 수많은 선택 중에 가장 잘한 것을 ‘귀농’이라고 자신한다. 그렇게 선택한 길은 온갖 위험과 유혹이 도사린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 길을 걸어 한참을 왔지만 아직 갈 길이 더 멀다. 나는 그래서 좋다. 쉽지 않고 또 멀기까지 한 길의 매력에 공감하는 분이라며 나는 스스럼없이 귀농을 권할 것이다.

201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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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8 유교문화재단 봉화군 포럼

마을문화자원의 발견 - 비나리 초롱계

초롱계의 재생이 마을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까?

비나리마을학교

초롱과 주민의 삶

초롱은 어둠을 밝히는 수단이다. 초롱이 있어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올 때, 온기를 지키며 생명을 보존하던 ‘방’이라는 작은 공간에 스며드는 어둠을 물리칠 수 있었다. 어쩌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고샅길을 걸어 이웃나들이라도 해야 할 급박한 처지가 되면 초롱은 어둠을 가르고 길을 여는 없어서는 안 될 생활 기구였다. 하지만 전기가 없던 시절 초롱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정도의 가치를 지닌 하나의 등불이라는 연장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초롱이 담고 있던 것은 단순한 조명기구의 의미를 넘어 삶의 온기, 인정, 안녕, 평화 이 모든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따스함을 이웃과 나눌 때는 공동체 전체를 밝히는 어떤 삶의 지표, 공동의 가치를 담고 있는 그릇으로 승화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비나리초롱계란 무엇인가?

[초롱계]는 그와같은 초롱의 의미가 마을공동체의 삶속에서 구체화된 하나의 제도였을 것이다. 전쟁이나 난리, 돌림병이나 자연재해 같은 재난이 닥치지 않았을 때조차 먹을거리마저 넉넉하지 못했을 산골 마을의 삶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선 아슬아슬한 하루살이의 삶과 진배없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삶의 조건 속에서 누대를 지나며 축적된 삶의 지혜는 더불어 사는 삶의 틀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마을을 지키고 삶을 보전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제도를 만들었을 것인데 초롱계는 그와 같은 공동체적 삶의 존속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결과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롱계는 비나리마을은 물론 인근 고계리 등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전통이다. 전기가 없던 시절, 큰일을 치루는 이웃에 초롱불로 부조를 하던 아름다운 풍습이다. 이웃에 상이나, 혼례가 있으면 온 마을이 집집이 한손에는 두부나 떡을 해 들고, 또 한손에는 초롱불을 들고 큰일을 치루는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웃을 도와 가며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나마 마음 넉넉하게 살아올 수 있게 했던 아름답고 지혜로운 전통이었다. 이웃의 도움으로 큰일을 치룬 주인은 그뒤 자신의 사정에 맞춰 적당한 금액의 돈을 초롱계 기금으로 내어 놓기도 하고 그렇게 모인 돈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운영되어왔다.

비나리초롱계의 현재

새마을운동으로 전통 공동체 문화가 쑥대밭이 되기전인 1970년대 초까지 이어져오던 초롱계는 그뒤 마을의 쇠락까지 겹쳐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현재는 동네 상여계와 합쳐져 그 본질적 내용은 유실되고 외형적 흔적만 겨우 유지되고 있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는 변화는 마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일대 사건이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초롱의 의미, 초롱계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뒤부터 초롱을 부조하던 전통은 사라지고, 초롱계의 형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상여계’는 동네에 상이 났을 때 상주가 상여꾼에게 주는 노잣돈을 밑천으로 마을주민의 편리향상을 위한 다양한 일을 하는 기금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계다. 상여계의 기금은 기본적으로 여러가지 마을행사 비용이나 마을 공용 비품을 조달하는데 사용하고, 그러고도 남는 기금은 마을 주민중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일정한 이자를 물게 하고 1년단위로 빌려주어 기금을 유지하거나 불려나간다. 언제부턴가 비나리마을 초롱계는 마을 대소사 중 장례만 해당하는 상여계와 통합되어 구별되지 않게 되었지만 '초롱계'라는 이름만 남아 내용적으로는 상여계로 변형되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올해도 음력 섣달 25일이 되면 어김없이 비나리마을 초롱계가 열린다. 그날은 마을주민이 모두 마을회관에 모여 작년에 빌려간 기금을 이자와 함께 모으고, 지난 일년간 동네일로 쓴 금액을 제하고 나머지를 다시 필요한 주민에게 빌려주고, 그 모든 내용을 기록하고 서명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친다, 그리고 나서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나누며 주민 모두가 하루를 더불어 즐길 것이다. 하지만 비나리초롱계는 그 본질적 의미는 물론이고 그 외형마저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먼저 기금의 원천이 되었던 상여를 메지 못한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마을에 상이 나도 상조회사 같은 업체가 마을주민이 주도하는 상여계를 대신하게 되었다. 더 이상 기금은 들어오지 않고 지출은 계속하다보니 비나리마을 초롱계 기금은 고갈직전이다. 기금의 고갈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 제도의 존속을 위한 순환체계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이 나도 상여 맬 젊은이가 귀하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마을주민의 의식도 ‘합리화’되었다. 굳이 마을 상여계에 상을 맡겨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 상조회사에 더 적은 비용을 주고 깔끔하게 맡겨버리는 걸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상여계가 붕괴되는 과정이 지난 10여년 동안 진행되었다. 10여년 전만해도 동네에 상이나면 주민이 모두 상여꾼으로 나서고 상주가 내어놓은 노잣돈은 초롱계 기금으로 모였다. 하지만 마을에 인구가 줄고, 특히 상여를 맬 청장년이 줄어들면서 상여멜 최소 인원이 충당되지 못하자 초롱계 기금으로 모으던 노잣돈을 상여꾼의 일당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더나아가 얼마남지 않은 기금이 고갈되어가자 기금이 형성되는 데 오랜 기여를 해 오신 어르신을 중심으로 기금을 나누어 쓰고 없애버리자는 의견이 나오고 이 때문에 몇년간 논란이 이어지기 했다. 이제는 상여계의 중단, 초롱계의 소멸이 마을의 소멸로 나아가지 않을까 걱정해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초롱계의 부활-비나리초롱축제

‘초롱계’는 ‘마을 동제’와 함께 마을을 유지 존속케하고 주민을 통합시키는 데 있어 양대축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마을동제가 동신을 중심으로 주민의 의지를 모아 신의 영역에 마을의 삶을 의지케했다면 ‘초롱계’는 마을 주민 스스로 자신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삶속에 체현해 나가던 제도이다. 마을 초롱계의 형식은 세월따라 바뀌었지만 이웃의 대사에 초롱을 부조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담고 있던 가치와 정신은 여전히 부식될 수 없는 핵심으로 남아있다. 그 가치와 정신을 마을살이의 여건 변화에 맞춰 새롭게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비나리 초롱축제'로 새롭게 태어났다.

몇년전 비나리산골미술관 개관식에 맞춰 초롱을 부조하는 초롱행렬을 개관식 참가객과 주민이 함께 재현한 적이 있다. 하나의 문화 이벤트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재현해본 초롱핼렬이었지만 세월따라 알게 모르게 침체되고 생기를 잃은 마을이 수많은 초롱행렬로 아름답게 되살아나는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 초롱행렬의 재현은 연년이 이어지지 못하고 예산의 벽에 부딪혀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끊어진 초롱행렬을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한 청량산 인근마을과 더불어, 주민과의 연대와 소통에서, 마을과 마을의 연대와 소통을 이루는 축제의 장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소멸되어가던 마을이 비나리초롱축제를 매개로 활력과 신명이 넘치는, 사람사는 마을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마을이 가지된 하나의 작은 꿈이다.

지난 70년대 [새마을운동]이라는 관주도 마을 재생사업이 나름의 성과와 많은 부작용 속에서 마무리 된 뒤 마을 공동체 사업은 실제적으로 중단되어 왔다. 그뒤 지난 10여년간 비나리마을을 위시한 청량산권역 마을들은 마을자치역량을 중심으로 민간이 주도하고 관의 보조를 받아 마을의 경제적 부흥을 위한 다양한 마을 사업을 진행하여 왔다. 이제는 마을 사업의 한축인 경제적 부흥과 더불어 또 다른 마을 사업의 한축으로 마을 공동체의 정신, 마을공동체의 가치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비나리마을 초롱축제의 재생은 그와같은 마을공동제의 가치와 정신을 새롭게 구축하고 실현해 나가기 위한 의미있는 마을운동의 일환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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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5  [커뮤니티와 경제] 주관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 워크삽

 

비나리마을의 미래 협동조합이 바꿀 수 있을까?

 

1. 소득증대로 마을을 살린다? : 마을 공동체 사업의 시작 [ 징코민 토종닭 작목반]

- 지역 자원을 이용한 첫 공동 소득창출 사업

- 명호초등학교 교정의 오래된 은행나무에서 착안

- 은행잎 분말을 혼입한 사료로 닭사육 시작

- 2000년 청량산도립공원 인근 농가식당을 중심으로 “작목반” 결성

- 고비용, 저산출의 징코민 토종닭

- 2001년 판로개척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팜스태이”사업 유치

- 도시민을 마을에 유치하여 단기간이나마 머물면서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에서 나는 농식품을 소비하게 하여 마을의 소득 증대를 도모하고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사업

- 현재 10여농가가 참여하고 있고, 지역특산물로 인정받아 안정화된 소득 구조를 유지

* 한계 :

1) 지역 확장성에 한계가 있고,

2) 참여농가의 개별적 이익중심으로 운영되어 조직적 성과가 미흡하고

3) 반원간 경쟁구조를 가짐.

2. 문화예술을 통한 마을의 변화를 시도하다.

1.1 비나리미술관 : 사람을 모으는 문화 예술에 주목하다.

- 2002년 팜스태이마을 사업 경험을 통해 본격적인 도농교류사업을 펼칠 목적으로 “녹색체험마을” 사업 유치

- 먹거리 공급처에서 고향의 향수, 정서적 가치를 팔 수있을까?

- 농촌이 직면한 문제를 농촌과 도시의 새로운 관계설정에서 찾으려는 의도로 녹색체험마을 사업 시작

- 2억원의 지원금중 일부로 “비나리산골미술관”지음.

- “비나리산골미술관”을 농촌과 도시가 만나는 매개거점으로 이용하다.

- 도농교류사업의 위험성 : 주민 모두가 행복한 도농교류가 가능한가?

- 교육과잉의 도시아이와 산골살이가 부끄러운 농촌아이의 첫 조우

- 도농교류사업의 방향전환 : 도시민 유치가 중심이 아니라 주민의 문화복지가 우선이다.

- “비나리토요미술교실” 6~7년운영, 이를 통해 마을사업의 새로운 전기를 맞음

- 어린이 미술교실이 어른의 사람방, 젊은 학부모의 모듬으로 이어짐

- 교육, 농사 등 지역 모듬살이와 관련된 현안이 논의되는 자리, 지역사회의 변화를 도모할 새로운 모임이 태동하는 자리가 됨

1.2 청량산비나리정보화마을 사업

- 지역내 젊은 세대의 요구로 정보화마을 사업 유치

- 인터넷 사각지대에 인터넷 망이 들어오고

- 사이버상의 마을정보의 중심이 형성됨

- 농업, 농촌의 가치를 도시로 확산하는 획기적 게기 마련

- 인터넷 교육을 통해 마을내 교육의 가능성, 가치 확인(마을공부방 태동)

- 도농교류 및 농산물 판매 등에 기여하고 있고,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음

1.3 청량산 감자 작목반 : 협동과 신뢰의 중요성을 확인

- 공동노동의 ‘낭만’을 쫓아 10여 농가로 작목반을 구성하고, 작목반원의 일부(4가구)가 참가하는 공동경작 시도.

- 2만평 토지에 씨감자회사와 계약재배

- 공동노동의 비효율/ 무책임성에 직면

- 년말 결산 600만원 적자: 1가구당 150만원 적자

- 새로운 대안 찾지 못하고 공동경작 사업 1년만에 무산

** 성과

1) 비록 적자농사였지만 더불어 공동의 생활기반을 만들기 위해 땀흘리는 기쁨 확인

2) 지역사회내 작은 미담으로 남아 다시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사례로 기억됨. (같이 손해보는 사업을 웃으면서 했던 아름다운 시간!!)

3.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마을을 바꾼다?

- 정부주도 마을사업의 결정판, 2009년 농림부로부터 69억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유치

- 유치 목적은 도농교류 사업, 마을내 교육문화사업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것과, 풍호1리 중심의 마을 사업을 7개리로 확대하는데 있었음

- 현제 ‘비나리마을학교’ ‘청량산농산물판매장’ ‘귀농인의 집’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 시민단체, 소기업, 노조, 학교의 MT, 워크삽 등 유치를 기본으로 하면서

- 공동체 가치중심의 단체나 프로그램 유치, 자체 프로그램 개발

- 마을주민의 문화복지 차원의 프로그램 기획운영중

4. 정부지원 사업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노력들

- 도농교류 사업을 통해 직접적인 성과보다는 마을 내부로 향하는 시각이 변화한 것이 더 튼 성과일수도 있다.

- 단순한 도시민의 유치를 통한 소득증대가 아니라 우리의 삶은 어떼야 한는가를 두러보게 됨.

- 그 과정에서 농민의 삶의 가치, 농업의 가치를 지켜나갈 농민회를 결정

- 혐동농업의 정신을 유지하고 확산시켜나갈 매개로 자활농장 도입(4개의 일자리 창출)

- 공동 육아나 공동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밭두렁공부방 설립(5년전부터 운영중)

** 풀리지 않는 문제들 :

- 정부주도 사업을 하기위해선 마을을 보다 더 자본주의적으로 개편해야 :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

- 농가경영체 등록 : 농업경쟁력의 관점에서 덜자주의화된 농민의식이 낙후의 원인이다?

- 마을사업단위의 영농조합법인화 : 작목반이나 ‘마을‘단위의 사업 주체보다 회계의 투명성, 경영의 효율성을 기할 수 있다고 하나, 근본적으로 가치 중심에서 성고중심으로 합리화-자본주의화 하자는 것. (비나리마을 사업의 현재 단계)

- 참여범위의 한계 : 노령화된 농촌현실에서 사업 참여 주체보다 사업을 통해 보듬어야 할 노년층이 훨씬 더 많은 현실을 돌파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

- 가치공유의 문제 : 마을 사업이 단순한 소득증대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 사업추진 과정에서 가치의 공유과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마을사업이 마을의 유지 존속되고 발전하는데 기여하는게 아니라 오히러 분해를 촉진하게 될 위험도 있다. (* 특작을 통해 소득증대에 성공했지만 공동체 분해가 가속화된 예들이 많다)

4. 협동조합이라는 대안에 눈돌리다

- 스페인 이탈리아의 사례들을 눈여겨보면서 개인의 욕망을 인정하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하는 새로운 사회구성의 가능성을 확인

- 현재는 초보적 인식을 가치고 실무자 중심으로 각종 교육에 참가 중

-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을 중간 과정으로 해서 협동조합으로 나아갈 게획

- 봉화군 농민회를 하나의 협동조합으로하고

- 청량산비나리마을(7개리)를 또 한 단위로 해서 협동조합구성할 계획

- 초보적으로 공동구매사업, 공동생산, 공동판매등을 시도하고

- 농협이 해야하지만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톰새를 찾아 사업을 해 나감으로써 지역사회에 신뢰감을 쌓고 영향력을 키워나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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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농조합법인과 다른 협동조합만의 특징, 장점 등 확인하고 있지 못한 상태

2) 지역사회에 마을 공동체 사업의 헙동조합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작업이 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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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진 산골마을은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산짐승 울음소리만 간혹 정적을 깰뿐 사람 사는 흔적은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어둠이 설금설금 마을을 삼키려들자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급히 저녁을 드시고 이골저골에서 소문을 들으신 주민들이 하나둘 비나리마을학교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비나리상영회] 플랭카드가 펄럭이는 비나리마을학교는 이날만은 어둠을 이기고 빛이 마을의 밤을 지배했다.

사실 “여성영화상영회”를 비나리마을에서 갖기로 약속을 받고 보니 멋진 타이틀에 걸맞는 주민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같았다. 밭둑에서 마주친 이웃 아주머니께 영화보러 오시라고 권하면서도 혹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뭔놈의 영화?”라고 타박이나 하지 않으실까 걱정이 앞섰다. 가난한 산골마을이지만 그래도 TV는 없는 집이 없고 그러다보니 드라마다 뭐다 할 것 없이 넘치는 영상 속에 빠져사는 게 현실인데, ‘영화’는 또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TV가 유일한 낙이자 문화매체인 산골마을에서 한편의 영화를 튼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정정엽작 제 1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스터]

영화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비나리마을학교를 밝히던 불빛이 꺼지고, 왁작지껄 떠들던 사람 소리가 죽어들었다. 대신 마을학교 강단 가득 반짝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빛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웃의 잔기침 소리와 산만한 아이들의 분주함이 잦아들고, 순간 화면가득 스위스 산록의 아름다운 마을이 우리의 시야를 압도했다. [할머니와 란제리]!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골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만으로도 정감이 넘쳐났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더 큰 공감이 갔다. 그래서 일까? 비나리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산골마을에서 한명의 할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이 갖는 비슷한 처지에 공감하는 관객들의 맞장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유쾌한 할머니들의 반란이 끝나고 크게 한판 웃음과 박수가 쏱아지고 난 다음 여성영화제 관계자의 사회로 간단한 영화감상평을 나누는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30년만에 영화를 보셨다는 멀리 만리산에서 달려오신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승리에 속이 다 시원하다는 북곡리 아주머니, 할머니가 속옷장사하시겠다면 ‘쪽 팔릴것 같다’는 중학생 남자아이, 그냥 이렇게 주민이 모여 같이 영화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좋다는 도천리 주민, 그리고 도시 못지않게 우리 비나리마을도 문화와 예술이 넘쳐나는 곳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이웃 아저씨까지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밤이 깊어 한분두분 집으로 돌아가고, 미련이 남는 사람은 남아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상영회를 다 마무리하고 나니 처음 가졌던 걱정이 얼마나 터무니 없었는지 확인이 되었다. 산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영화에 무슨 관심을 보이겠냐는 생각은 짧은 소견머리가 낳은 편견에 불과했다.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지역 정서에 여성주의 영화가 거부감을 주지나 않을지, 혹시라고 격한 내용들로 주민들을 자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괜한 기우였다. [할머니와 란제리]의 내용이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설령 격한 내용을 담은 다른 영화가 상영된다고 해도 주민들은 벌써 나름의 시야를 가지고 보다 폭넓게 소화해낼 자질을 다 갖추고 있을 것같았다.

이번 상영회를 통해 터득한 한 가지가 또 있다.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영화는 같이 보는 재미에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영화를 혼자 몰입해서 보는 것도 좋지만 이웃과 더불어 같이 분노하고 같이 기뻐하며 맞장구로 공감을 나누며 보는 영화는 또 다른 맛을 가지고 있었다.

산골마을 비나리에 좋은 영화를 매개로 주민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주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감사드린다.

송성일 비나리마을학교 대표

<2012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뉴스레터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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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서 더 좋은 여성영화 봉화에서 만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gogo시네마

10 19일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열려

 

 

전국 각지를 누비며 다양한 여성영화로 지역관객을 만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지역순회상영프로젝트 gogo시네마가 스위스 코미디 영화 <할머니와 란제리>를 들고 봉화를 찾아간다.

 

여성가족부가 후원하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청량산비나리마을이 공동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10 19일 금요일 오후 7시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열린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gogo시네마는 찾아가는 상영회로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여성영화의 문턱을 낮추고 다양한 부대행사를 통해 성평등 문화 형성에 기여하는 뜻 깊은 행사로 기대된다.

 

할머니들의 유쾌한 반란 <할머니와 란제리>

10대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여성영화 선보여

 

<할머니와 란제리>스위스를 배경으로, 남편을 잃고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속옷 가게를 열려는 할머니 마르타와 이에 반대하는 마을 남자들의 갈등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그린 수작이다. 친구들과 함께 벌이는 할머니의 반란이 속시원한 웃음을 던져준다.

영화 상영 후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참석해 여성의 독립과 노년의 삶에 대해 진솔하고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지역순회상영프로젝트 gogo시네마를 통해 성평등문화를 확산하고 지역 여성 연대와 함께 발전하는 영화제로 계속 활동해 나갈 것이다.

 

[작품 상세 소개]

 

<할머니와 란제리>

드라마 | 베티나 오베를리 | 2006 | 상영시간: 89 | 제작국가: 스위스 | 전체 관람가

스위스 작은 시골마을에서 남편을 잃고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속옷 가게를 열려는 80세 할머니 마르타와 마을 남자들의 갈등을 유쾌하게 그린 수작. 시골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맞서 속옷 가게를 준비하고 지키려는 마르타와 친구들의 도전기를 통해 개인의 독립과 자긍심은 나이와 성을 불문하고 지켜져야 하는 것임을 통쾌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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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있은 [협동조합 운동가 양성 집중교육]을 다녀왔다.

28일 아침 태풍 볼라벤이 서해로 올라오는 시간에 봉화를 출발해,

태풍이 서해안에 상륙할 때쯤 교육이 진행대전에 도착했다.

 

이번 교육은 지금까지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주관으로

주로 '농협 개혁'을 위한 운영실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오던 것을

최근 협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놓아짐에 따라

'협동조합' 정신과 의의 등에 대한 농민의 이해를 높이기위한 강좌를 중심으로 만든 과정이다.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근본적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자본주의의 고통을 줄여주는 사회적 장치 정도가 아닌가하는 이해만 가지고

마을 사업을 현재의 영농조합법인 형태에서 '사회적 기업'을 거쳐

'협동조합'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리고 협동조합이 정확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배우기 위한 확인 차원에서 이번 교육을 참가하게 되었다.

 

원래 제주도가 교육장소 였지만 태풍으로 항공기가 결항되면서

급히 대전의 카토릭 청소년 수련관인 대철회관으로 교육 장소가 변경되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와중에 도착해 보니

50여명의 수강 신청자 중에 열두어명만이 참가를 했고,

예정시간을 넘긴 오후 2시쯤 강의가 시작되었다.

 

 

 

 

첫날 강의는 장원봉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님의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이란 주제의 강의와

녀름연구소의 이호중 팀장의 [괴산불정농협의 성과와 과제]라는 사례 발표로 진행되었다.

막연히 알고 있던 협동조합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진행되어왔고

무한 경쟁이 전일화된 신자유주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존립하고 작동하고 있는지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특히 예천 참우작목반 최병용 대표의 발표는

나같은 농민에게도 희망을 주는 값진 사례였다.

 

다음날은 스페인의 몬드라곤 사례를 통해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파고로 부터 어떻게 인간적 삶을 지키고 고양시킬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이어서 한겨레 두레공제조합 연합회 대표이신 박승옥님으로부터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리,

혐동조합운동사 등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정되었던 남무현 불정농협협동조합장님의 강의는

조합장님이 태풍으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극심한 현장을 떠날 수 없어 무산되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앞으로 비나리마을 사업을

어떤 전망을 가지고 해 나가야할 지 길을 찾는데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막연한 마을 활성화는 물론 아니지만,

마을공동체의 심원한 내적 변화는 어떻게 도모해 나갈지 고민이 많았고,

특히 변화과정에 마을 주민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작목반의 형태서 부터 여타 다양한 마을 사업의 실험들을 진행해 왔지만

사실 뚜렷한 답을 차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협동조합'은

좀 더 구체적인 마을사업의 바람직한 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충분한 범례가 되는 것 같았다.

특히 몬드라곤의 사례는 가슴뜨겁게 다가왔고

예천참우의 사례는 우리가 가진 희망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이번 교육을 통해 이해한 협동조합은 이해에 기반하지만 경쟁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내의 신뢰와 협동에 기초해서

사회적 경제를 이뤄내는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협동조합은 공동체 구성원의 생활경제의 틀을 보다

협력적 차원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삶' 자체의 변화를 도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영농조합법인 형태로 시작한 비나리마을 사업을

앞으로 협동조합의 형태로 나아갈 수 있기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맨 바닥으로부터의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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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나무닭움직임 연구소 장소익선생님과의 인연 덕분

이번에 두번째 남미 인형극 공연을 비나리마을에서 가지게 되었다.

난생 처음 비나리마을에서 남미 인형극 공연이 있었던 날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비나리마을에는 번듯한 시설이 들어섰고,

마을을 문화 예술적으로 풍요로운 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주민들의 의지도 상당히 고양되었는데

아쉽게도 지역의 명호초등학교 아이들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훨씬좋은 시설에서 공연을 가지게 되었지만

열기는 그때만하지 못해 못내 씁쓸한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사실 공연시간이 다가오는데 찾아오는 아이들은 없어 무척이나  가슴졸여야했다.

그래도 다행히 공연시간에 임박하자 다른마을 분들을 포함해

명호면 내의 여러마을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도착하기 시작했다.

공연이 한창 진행중일 때 세어보니 

아이와 부모를 포함해 약 쉰 가량의 주민이 공연에 참가했다.

아름다운 공연, 귀한 공연을 이웃과 같이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날 공연작은 파랄라마노극단의 2인인형극 [징글버]였다.

거리의 천사, 거지들이 맞는 성탄절 이야기를

인형극의 형식에 노래까지 곁들여

처절한 아름다움 혹은, 가혹한 가난속에 피어나는

희망 같은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배우가 미리 직접 만들던 소품하나하나에 묻어있는

볼리비아의 민속예술 감각하며

전체 진행과정에서 진지함을 잃지않고

공연에 임하는 두 배우의 겸허한 자세 등 어느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대사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도

인형의 동작하나하나가 전해주던 정서적 공감은  

가난한 삶에 임하는 인간의 공통된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가혹한 삶의 여건 속에서도 잃을 수 없는

삶의 숭고한 가치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

아마도 볼리비아인 두 배우는 그런 메시지를 가지고

우리를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의 초입, 비나리마을학교에서

주민과 함께 한 볼리비아 인형극이 남긴 울림은

오래도록 나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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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청량산권역 비나리마을학교에서 [볼리비아인형극]을 상연합니다.

2010년 비나리미술관에서 성황리에 판을 벌였던 남미연극제에 이어,

올해 다시 청송 나무닭움직임연구소와 컬춰라인이 함께하는

남미인형극을 청량산비나리마을에 유치하게 되었습니다.

남미특유의 인형극을 만나 볼수 있게 하는

귀한 기회인 만치 지역의 어린이와 학부모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흥겨운 남미 인형극을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뜻을 같이 하시는 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로

이번 연극공연이 신나는 마을 잔치가 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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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북북부문화정보센터(이하 컬처라인)은 2012년 8월 13일, 청송군을 시작으로 볼리비아 인형극단 ‘Parala Mano'와 함께 하는 인형극 여행을 떠난다. 경상북도와 경북 북부권 11개 시·군이 주최하고, 컬처라인이 주관하는 이번 인형극 여행은 경북 북부권의 마을로 들어가 지역의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면서 남미 특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인형극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유대감을 두텁게 하고 지구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하고자 기획되었다.

1998년에 설립되어 볼리비아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인형극단 ‘Parala mano'는 인문학적 상상력에 기반 한 감동 깊은 인형극을 직접 창작하고 공연하는 단체로 해외 인형극 축제에도 초청되고, 한국에도 올해 세 번째로 초청되었다.

이번 인형극 여행에서는 관람객 연령층에 따라 주요 레퍼토리 세 작품을 선보인다. 크고 파란눈을 가진 못생긴 거인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나 우정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 <파란눈>은 초등학생들을 찾아가고, 전쟁과 폭력, 현대인의 고독을 다룬 작품 <소박한 이야기들>과 크리스마스에 소외되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징글버>라는 작품은 청소년과 성인들이 주 관람객이 되도록 공연이 배치되었다.

약 한 달 동안,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 의 마을을 찾아가 9월 6일, 울진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볼리비아 인형극 여행의 자세한 일정은 컬처라인 홈페이지(
http://www.cultureline.kr)에 공지되어 있다.

■ 문의: 054-843-6231~2 (컬처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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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 서른 분을 모시고 이틀간(8/13~14)의 선진지 견학을 잘 다녀왔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선진지 견학을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쫌 특별한 견학 길이었습니다. 비슷한 조건의 농산어촌의 선진 마을이 아니라 첨단 문화를 대표하는 서울과 그 인근의 색다른 코스를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마을사업, 특히 도농교류사업을 위해서는 우리를 객관화해 보고 현대적 도시 문화도 경험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이번 견학 프로그램을 짜게 되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아래 다음과 같은 3곳의 견학지를 선정했습니다. 시민운동을 토대로 해서 도시 속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과 한국의 건축, 미술,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을 집약해 놓은 파주 헤이리 마을의 [쌈지농부], 그리고 대안적 청소년 문화를 대표하는 서울 영등포의 [하자센타]가 그곳입니다.

 

이번 견학코스를 정하면서 혹시라도 어르신들이 재미없어하지나 않을지, 시민문화, 청년문화에 거부감이라도 느끼시지 않을지 많을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희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걱정과는 반대로 어르신들이 더 도시 청년들의 역동적 문화에 접해보시기를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요구로 서울의 문화 중심지 인사동 견학을 추가 코스로 잡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성미산마을 견학은 먼저 주민의 자발적인 출자로 운영중인 유기농식당인 성미산밥상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어서 [시민공간 나루]로 이동해서 마을 실무자로부터 성미산 마을의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공동체 사업들과 그 의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미산마을은 기본적으로 주민 자체 역량을 중심으로 해서 주민의 필요에 따라 주민의 손으로 직접 해 나가는 도시 속 마을공동체 운동의 사례를 보여주는 드문 경우였습니다.

 

성미산마을은 농촌마을과는 달리 시민역량의 면에서 탁월한 조건이지만 마을의 지리적 경계가 막연하고 주민의 공동체 의식이 미약한 측면은 공동체사업을 하는데 있어 어떤 한계로 느껴졌습니다. 이점은 농촌 마을의 공동체 사업과 정확히 반대조건인데 농촌마을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부족, 주체 역량의 부족으로 고통 받지만 마을의 경계가 정확하고 주민의 공동체의식이 아직 전승되어 오고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미산마을은 그런 조건에 맞게 공동육아사업을 시작으로 해서 성미산 개발 반대운동, 그리고 그렇게 모인 시민의 주체역량을 기반으로 해서 유기농식당, 대안학교, 마을축제, 마을공방, 공동체주택 사업까지 지역 커뮤니티 전체를 비체계적이지만 다중적으로 묶어 내는 나름의 방식을 통해 도시 속 마을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내고 있었습니다. 조직이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바람직한 삶의 추구라는 가치기반에 토대해서 인간미를 상실해 가는 도시의 삶에 공동체정신을 불어 넣는 성미산 마을 사업의 사례는 농촌 마을 공동체 사업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두 번째 견학 장소인 파주 헤이리에 도착해 먼저 현대적 건축과 예술이 만들어낸 [헤이리 예술마을]을 산보했습니다. 이어서 [쌈지농부]에 들러 천호균사장님으로부터 강의를 들었습니다. 큰 기대하지 않았던 천호균님의 강의는 그야말로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노숙인 같은 차림으로 등장해 자신은 농업의 가치를 어떻게 예술과 결합해 실현하고 있는지 토로하시고, 농업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농민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 설파하셨습니다.

 

 

우리 예술가는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어떤 권력 앞에서도, 대통령 앞에 가도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농부 앞에만 가면 기를 펴지 못합니다. 왜냐? 농사는 가장 숭고한 창조 작업으로 예술은 농사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낯선 차림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 설득력을 잃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어르신들의 반응은 무덤덤했고 차라리 그분의 그런 자유스런 차림에 신기해하고 친근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습니다. 강의와 그에 이은 자유토론을 통해 청량산비나리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예술가들이 농업과 농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들어보고 주민들이 농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껴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첫날 견학을 마치고 다음 날은 영등포구에 있는 [하자센타]를 들렀습니다. 농촌마을 사업과 [청소년 대안적 직업 교육 기관][하자센타]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하자센타 실무자 분부터 당황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 청소년 문화의 흐름을 느껴보고, 요즘 청소년들이 어떤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그 점에서 좋은 견학지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주민의 신뢰와 협동에 바탕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추구하는 측면과 요즘의 청소년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모아 공동의 직업을 직접 만들어내고 같이 운영하며 살아감으로써 청년실업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 내는 모습은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성공적인 사례를 접해 본 점 만으로도 [하자센타] 견학은 충분히 우리 목적에 부합하는 견학지가 되었습니다.

 

 

하자센타 견학을 마치고 봉화로 돌아오는 일만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몇몇 어르신을 중심으로 이왕 서울에 왔으니 좀 늦게 집에 도착하더라도 서울의 중심부 인사동에 들러 서울 사람 살아가는 모습 좀 보고 가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관광 요구로 받아들이고 이 제안을 거두어들이도록 설득할 수도 있었지만, 그분들의 요청은 도농교류 사업을 하는 농촌사람들이 도시 문화의 진수를 경험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요청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무더위와 따가운 햇살 속을 걷는 고행에 가까운 인사동 탐방이었지만 역동적인 도시민의 삶속에서 느끼는 생동감 덕분인지 아무도 힘들어하거나 불평하는 일 없이 열심히들 보시고 배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르신 중의 한분은 쌈지길 탐방중에 도시 사람들은 농촌스러운 것을 갖다놓고 장사를 하는데, 우리 농촌사람들은 농촌 한가운데다가 도시스러운 것을 가져다 놓고 장사를 하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견학을 통해 도시적 삶과 농촌의 삶을 비교해보시고, 도시 속에 수용된 농촌스러움을 세밀하게 관찰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량산비나리마을 어르신들은 12일동안 무리할 만치 빡빡하게 잡은 일정을 너무나 잘 소화하셨습니다. 이번 견학을 통해 농업의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농사를 짓고 사는 우리에게는 고역에 불과한 농업의 가치가 어떻게 되살어 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견학은 주민 한분 한분이 농부의 한 사람으로 농업과 마을공동체가 새로운 시대를 풍미할 새로운 화두로 회자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경험은 가슴 벅찬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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