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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창밖이 환해져 커튼을 걷으니

밤새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우리집 테크에 가득 모였다.

어제 초저녁부터 한송이 두송이 날리기 시작한 눈이

밤새 마을풍광을 바꾸고,

우리집 풍경을 바꾸고

그것도 모자라 아침 밥이라도 기다리는듯

우리집 데크에 웅성이며 모여든 것이다.

화야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외친다.

'이놈들아 저리가거라.'

손님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가벼운 빗질에도

이리저리 다 날아가 버린다.

테크에 모인 불청객을 쫒아버리고 아침밥을 먹으려니

오랜만에 이장님 목소리가 창을 두드린다.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많은 눈이 왔습니다.

차량통행과 보향 안전을 위해, 9시 30분부터 각 반별로 눈을 치웁니다.

한가정에 한명씩... "

우리 이장님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우리마을이 사람사는 마을임을 새삼 느끼게 되고,

또 우리 이장님 선한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눈 덕분에 기분좋게 시작해

이웃과 얼굴을 맞대고,

겨울내 움쳐려든 몸과 마을을 풀었다.

산골에 살면서 이렇게 눈이라도 한번씩 오지않는다면

무슨재미로 겨울을 날까?
어릴적 생각이 난다.
눈이 왔다고 쫄랑거리며 좋아하는 친구를 보면
'눈이오면 니하고 개가 제일 좋아하는구나.'며 면박을 주었다.
그래도 오늘은 나도 개처럼 좋아라고 눈밭을 뛰어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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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꼬리를 잡는 잡사들.. 훌훌던지고 길을 떠나고 싶었는데 뭔 질긴 인연들이 이렇게도 많은지... 마을 사업들, 나의 생계, 나의 집, 나와 함게하는 생명들... 마지막으로 우리집 강아지 불쌍한 초롱이를 이웃 형님께 부탁드리고 한달여의 긴 여정을 위해 집을 나섰다.

영인이 아빠는 하루 기사를 고집하며 먼길을 마다 않고 우리 부부를 픽업하러 왔다. 가만이 있는 사람 옆구리를 찔러대다 못해 억지로 떠밀다시피 네팔여행을 독려한 죄값을 치룬 셈이다. 중앙고속도로를 지나며 원주의 친구 한의원에 들러 저녁 대접을 받고 한보따리의 상비약까지 선물로 받았다. 이래도 좋을까 불안을 느낄 만치 호사로운 하루 여정은 인천공항청사안에 있는 찜질방 '스파 온 에어'까지 이어졌다.

난생 처음 찜질방에서 1박을 청한 셈이다. 몸과 마음은 피곤한데 떠남이 주는 긴장감인지, 찜질방 문화에 익숙치 못해서 그런지 밤이 새도록 잠들지 못했다. 날이 새면 비자본주의의 길을 모색하며, 현대문명의 대척점에서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꾸고 있는 나라 '네팔'로 날아간다. 어찌 잠이 오겠는가... 당연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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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땅 안나푸르나로 떠납니다.
안나푸르나는 저에게 혹독한 자연의 원초적 힘이 살아있는  미지의 세계이지만,
그곳에 터잡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일구어 가는 안락한 삶의 보금자리입니다.

많은 바같세상 사람들이 안나푸르나를 찾는 이유는 어쩌면 
안나푸르나가 간직한 원시적 생명력이 주는 어떤 힘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구화된 문명에 적응해 살아가면서도,
나름의 고유한 문명을 일구고 살아온 사람들의 원초적 삶에 대해 목말라 하고, 안락한 삶에 겨워 그와는 또 다른 원시적 건강성에 기반한 삶에 대한
새로운 욕망에 들떠 있는 이중성이 그 이유일까 두렵습니다.

이번 여정을 통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어올까 생각해 봅니다.
위대한 자연앞에 서서, 그 위대한 자연에 순응해서
작게, 낮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주해서
나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무엇을 버리고 또 다른 무엇을 얻어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2월 29일 인천공항에서 밤을 새고 30일 카트만두에 들어가
불불레서부터 트레킹을 시작 마낭을 거쳐
토롱라를 넘어 묵티낫, 고레파니까지,
다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걷고 포카라에서 걸음을 멈출 계획입니다.
1월26일 인천에 돌아와 우리가족의 삶의 터전인 비나리마을에 돌아오면
세상은, 그리고 나 자신을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합니다.

2011년 12월 29일 아침 집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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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웠고,

또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계획들은 까마득히 잊어 버리기도했고

또 어떤 다짐들은 뻔히 알면서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해가 다 가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켜내었던 한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봉화문화원 기타강좌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피치못한 사정으로 3번의 결석을 하기는 했지만

어떤 업무, 어떤 잡사보다 앞서

기타교실 참가를 최우선적으로 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끝내 자켜내고야 말았습니다.

 

충분한 연습도 못하고 어떤 때는 다음 수업까지

일주일내내 기타를 가방안에서 꺼내보지도 않은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타 수업에는 꼭 참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고,

또 수업시간에나마 기타연습에 몰입하기도 했습니다.

몇일전 봉화문화원에서 이렇게 한해동안 배운

각종 강좌의 수강생들이 모여

문화학교 수료식겸 학예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참 뜻깊고 행복한 자리였습니다.

이자리에서 누군가 인사말 중에

'악기를 배우는 일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내년부터 저와 같이 기타교실에 나가기로 한 한 친구말씀이

고단한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는 대견스런 자신에게

기타를 연주해 주고 싶어서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참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올 한해 기타와 더불어 많은 좋은 분들은 만나고

기타 선율 속에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어설픈 실력으로나마

3번이나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그 3번의 연주를 올 한해 거뜬히 잘 보낸

저 자신에게 헌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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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포럼 발제


주민의 삶이 곧 자원이다

: 봉화 지역문화자원의 산업화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문화산업’이라고 하면 문화생산물을 상품화하는 현대의 산업형태를 말한다. ‘지역문화자원의 산업화’란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을 지역주민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기반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지역문화자원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상품화 혹은 산업화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이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두가지 중요한 문제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취사선택 가능한 ‘지역문화자원’의 외연을 확정하는 문제로 지역사회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의 가치를 발굴하거나 부여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구체적 상품 아이템 개발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두 번째 문제는 ‘산업화’의 성공 여부를 확정짓는 핵심적 측면으로 그 지속가능성과 ‘산업화의 결과가 초래할 지역주민의 변화된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문화 자원의 산업화 과정은 ‘지역 문화자원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하되, 전 과정에서 어떻게 지역주민을 참여시키고 주역주민의 이해에 입각해 사업을 수행할 것인가 하는 과제로 집약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가진 지역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지역‘축제’와 봉화를 대표하는 ‘청량산’, 봉화의 최대 문화 자산인 ‘마을’ 그리고 근래에 붐이 되고 있는 ‘걷기 길’만들기 사업과 봉화군이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있는 ‘봉화정자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자원 산업화 과정을 되짚고 동시에 각각의 단위 사업들과 관련한 단상을 정리해 본다.

축제

봉화군의 은어축제와 송이축제는 상당한 성공사례로 많은 상도 타고 봉화를 상징하는 축제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하지만 외부적 평가와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적잖은 반론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 부정적 입장은 면단위 간 혹은 농업/상업 간의 이해관계 대립에 연원한 측면도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이들 양대 축제가 지역의 핵심 산업인 농업 자원에 기반 하지 않고 있고, 특히 ‘은어축제‘의 경우 지역 주민의 삶과 밀착된 파급력 있는 자원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것 같다.

다시말해 봉화의 대표적 축제가 외형적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지역민의 삶과 괴리되어 지역민의 삶을 고양하지 못하고 지역민의 경제적 이해와도 일정정도 분리된 채 진행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은어축제, 송이축제는 현재의 성공에 머물지 말고 지역민에게 자긍심을 주고,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민밀착형’축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진행해야 할 것같다. 나아가 이들 대표 축제와 병행해서 이를 보완할 보다 주민밀착형인 작은 ‘마을축제들’의 발굴과 육성이 필요하다.

둘러보면, 우리 지역의 특유한 장례문화, 동제, 풋거 먹는 날(머슴의 날), 초롱계 등 마을축제화 할 수 있는 자원이 산재해 있다. 이들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하면 농촌공동체의 행복한 삶, 아름다운 마을살이를 드러내고, 주민의 삶을 고양하는 축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축제의 최종 목적이 주민의 행복한 삶이고, 주민의 행복한 삶이 바로 관광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비나리초롱축제’가 성공가능할까?)

현재까지 봉화군에 여러 걷기길이 생겼고 지금도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길을 만들고 관리하고 홍보하는데 많은 예산이 들어간 것에 비해 가시적 성과는 크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실 걷기가 붐이 되는 트렌드에 맞춰 걷기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미 선점된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의 성공 사례를 모방하는 방식으로는 그 성공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차라리 상품화된 ‘큰길’이 아니라 봉화지역에 맞는 무수한 작은 길을 만드는 사업이 보다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은길’은 예산중심 사업이 아니라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업으로 ‘돈’보다는 ‘공’이 더 들어가야 하는 사업이다. 나아가 걷기 트렌드를 이끄는 가치(반개발주의, 자연과 일치하는 삶, 마을공동체에 대한 그리움 등)에도 더 부합한다.

봉화만의 작은 길 만들기는 지금은 단절된 마을간 실핏줄을 잇는 작업으로 마을간 소통을 통해 침체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하면서 동시에 농촌과 도시를 잇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이 되지 않을까?

봉화를 대표하는 산은 청량산이다. 청량산은 유불선 문화의 보고로 알려져 있고 숱한 명사들이 다녀갔던 산이다. 그러다보니 100여 편의 유산기와 1,000여 편의 시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풍부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청량산에 대한 개발을 주로 하드웨어적인 개발에 머물렀고 그 문화적 내용을 자원화 하는 데 소홀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산행 중심의 단일한 방문객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공원 상가에서 매출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지역 농민들은 더더군다나 불만을 가지거나 무관심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비춰보면 청량산의 문화적 자원을 상품화하여 방문객을 다양화하고 등산객의 체류시간을 늘이기 위한 작업이 좀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유산기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청량산을 불교 성지화 하는 작업 그리고 다양한 성씨의 역사적 명사들이 다녀간 길을 따라 안내문 등을 설치하여 문중 순례지 등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청량산을 단지 등반용 산이 아니라 문화적 명승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청량산 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청량산 박물관은 청량산의 문화적 자원을 집대성하여 ‘상품화’를 위한 기초 자료를 생산해내는 역할과 더불어 청량산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단위로 거듭나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량산 박물관을 관리사무소 부속 기관에서 독립시키고 대폭적으로 인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청량산 박물관이 청량산의 자연자원, 문화자원에 대한 조사, 각종 연구 및 전시, 방문객이 참여 가능한 상설 프로그램,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수행하는 실행기관으로 청량산 방문객이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명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청량산 도립공원”이라는 상품에 마을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들마을이 보고 싶어, 아름다운 윗뒤실이 보고싶어’ 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 날 수 있도록 ‘청량산’에서 차지하는 마을의 위상을 제고해야한다. 사실 도립공원내 주민들은 ‘도립공원 청량산’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일 경우까지 있다. 도립공원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안될 뿐아니라 불편마저 초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이와같은 현실을 타개하기위한 사업들이 시작되고 있다. ‘북곡리 명품마을 사업’과 공원내 ‘농산물 홍보판매장 설치’ 등이 그것이다.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사업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더 나아가 ‘마을’을 청량산이라는 상품에 결합시키기 위한 작업들은 보다 더 심원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봉화 정자 투어

봉화 정자투어는 대표적인 봉화 관광 투어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봉화가 전국 최다의 정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성립가능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정자를 단일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힘들다. 정자들 간 투어도 성공적이지 못하다. 다시생각해보면 정자라는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을 수는 없다. 따라서 봉화의 훌륭한 자산을 관광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정자가 마을살이에서 가지는 의미를 살리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을과, 마을사람의 삶과 결합된 의미의 정자를 생각한다면 부가적인 보조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정자’가 아니라 정자가 있는 ‘마을사람의 삶’이 상품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기에 덧붙여 ‘정자’를 현대화해서 현대인에게도 친밀한 공간으로 되살려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요구된다. 특히 유교와 연관된 유무형의 자원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해석‘이 꼭 필요하다. 유교가 ‘충효교육’이나 ‘예절교육’에서 풀려나 스마트한 유교가 될 때만이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 과자축제 : 닭실 마을과 후토스 동산, 전통한과와 현대식 과자의 기묘한 결합이 가져온 작은 성공!)

마을

봉화의 최대 자산은 전통마을들이다. 이골 저골 아름답지 않은 마을이 없다. 앞으로 봉화의 최대 관광자원이 바로 이 마을들이 될지도 모른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공동체가 해체되면 될수록 전통적 마을 공동체에 대한 향수는 늘어날 것이다. 유럽인에게 네팔이나 티벳여행은 일생 일대의 꿈이다. 이곳은 현대문명에 반한 곳이고, 심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지역이면서 동시에 ‘불행한’ 현대인 자신들과는 달리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봉화의 많은 마을들은 충분히 도시인의 로망에 부합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마을의 상품화는 이제까지 진행되어온 ‘체험마을’ 등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행복한 주민의 삶이 전제되어야만 진정한 행복을 찾는 도시인의 발길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마을이 어떻게 보전되고 어떻게 ‘변화’되어야할지 고민해야한다.

“주민의 삶이 곧 문화자원이고, 문화자원의 산업화의 주체는 지역주민이다.” 충분한 자료를 검토하고 세련된 입론에 입각하지 못했지만, 가능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고, 나름대로 봉화 문화자원을 이용한 관광산업화 과정을 전반적으로 되짚어 보았다. 잘못되고 부족한 생각을 토론과정에서 바로잡고 채울 수 있길 빈다.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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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을 맞아 각 가정의 김장담그기는 물론
각종 단체가 주관하는 이웃돕기 김장담그기 행사가 한창이다.
이에 맞춰 봉화군 농민회는 지난 11월 6일부터 8일까지 
화원들이 재배한 배추와 각종 양념을 모아
500여포기의 [사랑의 김장]을 담았다.
이날 행사는 가진 것이라고는 농사일에 이골이 난 몸과 
직접 키운 농산물밖에 없는 농민회회원이
지역공동체의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었다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특히 이번행사에 올해 새롭게 조직을 복원한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 회원들이 참가해
지역 사회에 뜻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다.
땅을 일궈 살아가는 농민의 생명사랑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몸소 실천하는
농민회 회원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이번의 작은 활동속에서 지역주민 모두는
앞으로 살아갈 우리 지역사회의
아름다운 미래상을 꿈꿔볼 수 있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켜나가는 일은
농민형제가 먼저 서로 돕고 이웃을 보살피며
마을공동체의 온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만나서 즐겁고 행복한 농민회,
형제같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농민회,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농민회,
무엇보다 가정의 화목을 이끌고
우리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라가는 데
도움이 되는 농민회를 만들어나가자는
농민회 명호지회 회원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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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미FTA가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고 나서 몇분 지나지 않아
봉화군청 농업기술센타 인력육성 담당이라는 분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저기 24일 서울 집회에 가시나요?"
너무 의외의 질문을 받고 황당한 나머지 '예?'라고 되물었다.

"24일 FTA반대 집회에 명호면 농민회에서 몇명이나 참가할 예정인가요?"
이쯤에서 어떤 전화인지 파악이 되고 꼭지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까지 봉화군 농민회로 부터 24일 FTA반대 서울 집회에 대한 연락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봉화군청 공무원이 먼저 알고 파악에 나선것이다.


국회 소식을 듣고 이날 공부방 수업을 할 의욕이 사라졌지만
갈등끝에 할 수없이 면소재지 공부방에서 아이들 수업을 막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이런 전화를 받고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옆에 학부모님들이 계신것도 잊고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원파악해서 봉화군에서 여비라도 주실라고 그러십니까?"
"그게 아니라 과장님이 전화 걸어 알아봐라고 해서..."
"지금 전화하신 것은 인력육성담당의 고유업무로 하신 건가요?" 
"예. 농민단체 동향파악을 하라고 해서...."

"이보세요. 지금이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절입니까? 주민동향파악이라니...
봉화군 공무원이 정보경찰인가요?
과장하고 계장한테 반드시 전하세요.
다시 한번 더 이런 전화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순진한 말단 여직원 시켜 이런 전화를 걸게한 비겁한 담당 과장을 직접 바꿔달라고 해서 욕이라도 한바가지 해주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몇번이나 봉화군농업기술센타로 전화를 걸까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아이들이 도착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봉화군 농민회 명호면지회가 사라진지 10몇년만에 최근 한미 FTA 반대 과정에서 젊은 농부 10여명이 농민회를 재구성했다. 그냥 서로 돕고 살고, 살림에 보탬이 되고, 가정의 화목에 도움이 되는 그런 농민회 만들자고... 농민회를 중심으로 재미나게 살자고 만든 농민회가 구성되자마자 관공서의 파악대상이 되어버렸다. 

벌써 면사무소로부터 누가 지회장이냐, 몇명이 가입했냐, 내일 서울 집회에 몇명이 가냐는 식의 전화를 여러번 받았다. 지회장을 맡기로한 나뿐 아니라 다른 회원에게도 여러번 전화가 갔다고 했다.

사실 봉화군 같은 좁은 지역사회에서 공무원이든 농민이든 서로 이래저래 얽혀있고 최소한의 안면은 거의 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다보니 애원쪼의 전화든 무덤덤한 전화든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전화를 받고도 대충 둘러되기도 하고, 애둘러 거절하고는 했지만 사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이런 일은 그냥 용납하고 말 사안이 아니다. 농민회가 무슨 비밀지하조직도 아니고 해서 회원 명단을 공개하지 못할 일도 아니고, 서울 집회에 누구누구가 가는지 굳이 비밀로 부칠만치 대단한 일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군민을 위한 행정서비스가 중심 업무여야 할 공무원이 주민 동향파악에 나서고 있는 사태는 분명히 용납해서는 안될 사항이다. 이 모든 것이 MB 때문이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알아서 기는 봉화군 공무원의 행태는 비열하기 짝이 없다.

24일 서울집회를 알려준 봉화군 공무원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날 집회에는 가능한 많은 회원들과 함께 꼭 참석해야겠다.

그리고 허울뿐인 조직이지만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곳에 제소를 하든지, 사생활 침해로 고발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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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농협대의원 총회가 있어 다녀왔다.

다른 볼일로 봉화나갈 일이 있어 다행히

부담없이 총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날 의제는 봉화농협 상임이사 선출과

2012년도 예산안 심의라고 했다.

늘 그렇듯 예산안은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실히 예산안을 검토할 만한 나 자신의 성의도 없었고,

늘 나오는 이야기지만 예산안을 미리 인쇄해서

우편으로 보내주기로 해놓고선 가끔씩 이렇게

회의 당일 현장에서 배포하니 이래저래 까막눈일 수밖에 없다.

 

예산안은 그렇다치고 전임 상임이사의 임기가 남았는데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사퇴를 해서 

새로 상임이사를 선출하게 되었다고 했다.

 

상임이사 제도는 농협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농협의 부실 운영을 막겠다며

도입한 제도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농협의 기능적 전문성은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농민의 대표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우선 농협 대의원이 직접선출하는 농협조합장은 비상근으로 바뀌었고

농협조합장은 대내외적으로 상징적인 자리에 불과하게 되었다.

결국 농협 경영 실무의 대부분을 상임이사가 좌우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나 상임이사가 되고자하는 자는

금융기관 몇년 이상 근무 이상 등의 조건이 달려있어

현실적으로 농협 퇴직자들만이 후보로 나설수 있고,

그 사실은 지금까지 상임이사 선출과정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기회를 만들어 꼭 알아보고 싶고,

이웃 농민 동료들과 공부해서

농협의 농민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시라도 하고 싶다.

 

 

아뭏튼 농협 상임이사가 공석이 되어 새로 상임이사를 뽑게 되었는데

그 과정 또한 이해하기 힘든게 하나둘이 아니었다.

먼저 기존 농협 이사들 중심으로 추천위원회

(이사3명, 외부1명,,,,,등 총 7명이라나)가 꾸려진다고 했다.

추천위원회는  등록후보자 중 1명을 결정하여

농협 대의원회의에서 그 후보에 대한 찬부만 묻는 방식이었다.

사실 대의원들은 누가 후보등록을 했고,

최종 추천후보는 어떤 이유로 타 후보를 제치고

추천되었는지 알길이 없었다.

농협이사회는 그냥 추천위원회가 추천했으니,

그리고 이래저래 다 아는 안면이니 설마 부결을 시키겠냐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3명의 후보 중 추천위원회에서 선택된

1명에 대한 찬부 투표가 이날 있었고

결과는 이사회의 예상밖이었고,

대의원들에게는 당연하게도 부결이었다.  

 

이번 농협 상임이사 선출과정을 지켜보니

낙선한 후보의 자질의 문제라기 보다는

선출제도 자체가 많은 문제가 있어보였다.

농협경영의 전문성과 농민의 대표성을 다 확보할 수 있는

제도는 무엇인지,  

대표의 선출과정에 대한 제도적 보완을 어떻게 해야할 지

농민들이 직접 고민을 많이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상임이사를 선출하는

농협대의원임시총회가 열린다는 공문이 왔다.

나같은 대위원은 한번 회의를 나가면

기본 10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이래저래 상임이사 선출 문제로

농협 돈을 추가로 몇천만원 더 쓰게 되었는데

이 문제는 누가 책임을 지는지 모르겠다.

 

농협이사회와 한 몸인 추천위원회서 추천한 상임이사 후보를

감히 낙선시킨 우리 농협 대의원들의 책임이 클까?

아니면 이런 대의원을 뽑은 농민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을까?

정작 책임져야할 이사회나 인사추천위원회는 함구하고 있으니

우리 조합원이 다 책임지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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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마늘과 양파를 심었다.

부모님 두어접 드리고 우리식구 먹으면 될 조그만 양이지만

그래도 농촌살면서 생활비도 줄이고

조그마한 겨울 농사라도 하는게 좋다는 생각에

양파는 아니지만 마늘은 올해 처음으로 심어봤다.

사실 '돈이되는 본농사 제대로 짓고

내 먹는 농사 이것저것 하느니 차라리

사먹는게 싸게 치인다'는 게

요즘 농부들의 상식이지만

나는 올해 부터 그 상식을 배반하기로 했다.


돈이 안되지만 내가 먹을 농사 이것저것이라도 지어

아주 조금이지만 상대적으로

돈에 덜 의존하는 생활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대형마트 발을 끊은 것 하고

우리집 먹을 채소 내가 직접 키우기로 한 것은

그만치 내가 돈을 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하는 선택일 것이다.

어떤 선택이 더 나을까 모르지만

아무튼 내년에는 양파와 마늘, 파 정도는

사먹지 않을 수 있어 올해보다

0.01%는 돈에서 더 자유스럽지 않을까 생각된다.

눈속에서도 녹색을 잃지않고 자랄

마늘과 양파의 모습이 벌써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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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비나리권역 마을역량강화사업의 일환인
전문가 초청교육에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님을 모셔
"마을이 인류의 미래다"는 주제로 말씀을 들었다.
이날 명호면사무소 이층에서 진행된  강연회에
적지않은 지역주민들이 참가하여
재미있고 열정에 찬 교수님의 강연에 귀기울였다.


교수님은 우리 농민의 삶이 한 때는 낡고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되어
새로운 것, 서구의 것으로 대체되어야한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김치, 막걸리 등등 우리의 옛생활방식이나 문화 등이
결코 진부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
지속가능한 삶의 공동체를 위해
꼭 다시 되살려야할 것으로 가치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하셨다.

나아가 바로 그와같은 문화를 체현하고 사는
농민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농촌공동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강연을 듣는 할머니들이 공감하는
많은 예들을 드시면서 말씀해 주셨다.

사실 비나리마을에 벌써 십수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마을에 제일 부족한 것은 바로
돈도 아니고, 다른 자원도 아닌
농민의 자긍심, 마을살이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농부로서의 자신의 삶이 당대에 끝나고
자식에게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 너무 많기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마을의 미래를 꿈꾸고
가꾸어나가려는 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주민들은
듣기는 좋은 말이지만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의아해하시는 듯도 했지만
지역사회에 더불어 살아가고 계시는 훌륭한 선생님이
주민들과 만나 좋은 말씀을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시고 뿌듯해 하시는 느낌이었다.
사실 자긍심은 그렇게해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기때문에
앞으로 기회가 닿는데로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어 나가야 되겠다.

귀한 기회주신 임재해 교수님과
바쁜 중에 강연회에 참석해주신 주민여러분께도
고마운 마음 전해드리고 싶고
이날 강연의 결론대로
'농촌 마을이 인류의 미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신나게 마을살이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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