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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청량산비나리정보화마을 정보센타에 화상상봉 시스템이 설치되었습니다. 마을 정보센타의 활용도도 높이고 특히 외국에서 한국 농촌마을에 시집와서 지내시는 다문화가족들이 원활히 고국의 가족 등과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비나리정보화마을이 있는 명호면에는 모두 15명 가량의 외국인 새댁이 계십니다. 하지만 바쁜 농사일과 이동거리가 먼 문제로 많은 분들이 이 화상상봉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차량지원을 자원봉사로 해결하는 등 이용을 종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분들의 고국의 인테넷 사정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고, 충분히 홍보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갈골 사는 왠티화 민경동 부부가 아들 선홍이를 데리고 모처럼 비나리마을정보센타에 나들이를 왔습니다. 바쁜 하루일과를 끝내고 멀리 고국 베트남에 있는 친구들과, 그리고 한국에 모두 시집와서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세 자매들이 모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묻기위해서입니다.


가입절차가 까다로운 정보화마을 회원가입을 하다가 여권 번호가 필요해 다시 갈골 집까지 다녀와야했는데, 또 바쁜 손님이 집에 왔다는 연락을 받고 또 다시 집까지 다녀와야했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야후메신저 등을 이용해 화상채팅을 해오긴 했는데 정보화마을 시스템을 통해 시도하다보니 여러가지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 저녁 내내 고생을 해야했습니다. 평낵에 사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접속을 요청하고, 또 광주에 사는 언니에게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첫날의 시도는 화상상봉시간보다 전화 통화시간이 훨씬 더 길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드디어 접속이 되었지만 화상이 떠질 않아 실망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날 정보화마을에 가입을 하고, 화상상봉시스템을 체험을 하고 덧붙여 모처럼 이웃과 같이 정보센타에서 냉면과 탕수욕을 시켜놓고 담소도 나누는 즐거움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멀리낯선 타국에 시집와서 착하고 멋진 남편만나 이쁜 아들 선홍이를 낳고 오손도손 살아가는 왠티화님이 참 아름답습니다. 산골마을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농사일과 식당을 겸해 바쁘게 살아가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왠티화님께 우리 지역사회는 큰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마을을 사람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나가는 민경동, 왠티화, 선홍이 가족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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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나리마을 주민이 모여 옷갓재 풀을 베었습니다.

매년 6월이 오고 장마비에 풀숲이 우거지기 시작하면

젊은 비나리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옷갓재를 비롯해

마을 안길 풀베기를 해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낫을 들고

또 어떤 분들은 예초기를 짊어지고

미리 정한 날에 맞춰 새벽부터 옷갓재로 모여듭니다.

마을입구쪽에 살아 일년내내

옷갓재를 한번도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분들도 나오시고,

연로하시어 마을 공동작업에 나오시지 않아도

누구하나 흉할 것 없으신 분들도 낫을 들고 따라나섭니다.

한해두해 세월이 지나면서

낯익은 어르신의 얼굴이 보이질 않게되고

비나리마을에 새둥지를 튼 낯선분들의 얼굴로 바뀌어가지만

마을의 아름다운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나오지 않은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의 예초기로

자신이 산 휘발유를 사용해 마을 길을 베는 일에 불평하지않고

그냥 묵묵히 마을길을 베고 농사일에 쫒겨 묻지 못했던

이웃의 안부를 묻고, 잠시잠깐 담소를 나누다

또 급히 자신의 밭으로 돌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행정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농촌마을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부당한 부역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이 작은 전통조차 비나리마을이

아직 건강한 공동체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미풍양속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마을 동제가 살아있고,

풋거먹는날과 마을 풀베기가

여전히 공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은

아직은 분명 사람살만한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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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진정한 친구를 얻는 일은 참으로 귀하고 어렵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절실해 지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세상을 참 아름답게 살았던 한사람과 그 사람의 죽음으로 혼자 남은 또 한 사람의 우정이 있다.  관포지교가 친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이야기 한다면, 이 두사람의 우정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나누고 함께 그길을 걸은 동지적 신뢰에 바탕한 지고지순한 우정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뒤  '관포지교'를 대신해  이 두사람의 우정을 나타내는 새로운 고사성어로 '노문지교'가 자리잡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 노무현이 실패한 대통령,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우리시대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의 지표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데에는 친구 문재인이 있다. 이 책 '운명'은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길 원했던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사람사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길위에서 같이한 도반 노무현과 맺었던 30년 우정의 기록이다. 필자는 반역의 무리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친구 노무현을 회상하며, 자신의 인생역정이 어떻게 노무현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친구 노무현과 어떻게 꿈을 나누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했는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30년 우정을 나누던 친구를 먼저 보내고, 같이 가고자한 길을 다시 혼자서 떠나야하는 사람의 깊은 고뇌를 담고 있다.

문재인은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이야기하고, 학창시절을 회상하지만 그것 모두는 결국 노무현과의 만남으로 수렴되는 개인사 저변에 흐르는 한 시대의 도저한 정신사를 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필자는 '운명'을 이야기하고 이 책의 제목을 삼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대통령 노무현'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고, 친구 문재인과 함께한 지난한 투쟁의 산물이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다하지 못한 시대적 책무에 짓눌려 한으로 남은 먼저간 친구와 살아남아 그 책무를 다해야할 또 다른 친구의 남은 삶의 무게 때문이다.

이 책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난 참여정부 5년을 규정하는 주요 이슈들에 대한 입장을 표출하며, 우리시대가 극복해 나가야될 다양한 과제와 그 과제를 현실적으로 수행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현실인식과 철학을 이야기하며 정치적 논쟁의 여지를 열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입장에 대해 동의하지만 나는 오직 이책 '운명'을 한 시대를 살아간 멋진 두 인간의 지고지순한 우정의 기록물로만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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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비바람에 장미 꽃잎이 휘날리더니

비그친 길바닥이 피빛으로 물들었습니다.

봄의 영화는 이렇듯 허망하게 지고

또 일상의 햇살은 무심히 내리비치겠지요.

 

한참은 져버린 꽃잎을 내려다보다가 5월광주가 그리고

문득 장선우감독의 '꽃잎'이 떠올랐습니다.

전체 스토리조차 까마득한 중에 그래도 문성근과 이정현의 연기보다는

오직 노래 '꽃잎'의 가사를 저도 모르게 더듬고 있었습니다.

끝내 기억을 되살리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져서나마

이정현이 부르던 '꽃잎'을 읊조려봅니다.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 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서로가 말도 하질 않고
나는 토라져서 그대로 와 버렸네

그대 왜 날 잡지 않고 그대로 가 버렸나
꽃잎 보면 생각나네 왜 그렇게 헤어졌나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 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서로가 말도 하질 않고
나는 토라져서 그대로 와 버렸네

그대 왜 날 잡지 않고 그대로 가 버렸나
꽃잎 보면 생각나네 왜 그렇게 헤어졌나
꽃잎 꽃잎 꽃잎 꽃잎

그대 왜 날 잡지 않고 그대로 가 버렸나
꽃잎 보면 생각나네 왜 그렇게 헤어졌나
꽃잎 꽃잎 꽃잎 꽃잎
꽃잎 꽃잎 꽃잎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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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농사꾼을 자칭한지 십수년이 넘었지만
저는 아직 멀어도 한참을 멀었습니다.
본농사라는 것도 묵어 수풀에 덮혀버리기 예사고
사시사철 먹어야할 야채도 키워서 먹는 것보다
시장에서 사먹는 게 훨씬 많습니다.

이웃 형님들을 보면 본 농사일에도 늘 허덕이며 살아가시지만
꼭 가까이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1년먹은 마늘이며 양파며, 계절마다 각종 채소며 어느것 하나
돈주고 사 드시는 것 없이 알뜰하고 체계적으로 농사를 지어 드십니다.

몇일전 게으른 이웃 아우에게 앞집 형수님이
양파를 한소쿠리 들고 오셨습니다.
계절마다 절기마다 새 야채가 나오면
이렇게 얻어먹은 게
한두번이 아니고,
다른 이웃분들로부터도 매번 얻어먹기만 하고 살아온 지가
벌써 15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도 얌채라고 내치지 않고 여전히 챙겨주시는 이웃 어르신,
형님들의 사랑에 우리 가족은 산골사는 어려움을 잊고 삽니다.

양파 한 소쿠리에 태산같은 이웃의 정을 실감하고
나도 모르게 그분들의 삶앞에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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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시인을 친구로 지내다보니 곁다리로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다.
산을 탄다기보다는 차라리 산을 걷다가
적당한 곳에서 발길을 멈추고 그냥 산을 바라보고, 커피를 나누고,
담소를 나누다가 내려오는,
산 정상을 오르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분들과 함께하는  

가칭 '비정상산악회'라는 등산모임의 회워분들도 그런분들이다.
물론 그분들 중에는 미리 인연이 계신분들도 있긴하지만
안상학 시인을 통해 다른 차원의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안동 정상동에 있는 반구정 마당에서
안상학 시인의 또다른 친구들과 인연을 맺었다.
시인과 친분이 깊은 가수분들을 모시고,
안동 지역사회에서 안상학시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만 모여
작은 음악회를 연다는 연락이 왔다.
타이틀조차 '우리끼리음악회'란다.
안상학 시인이 지인이신 가수분들과 한 자리에서
'안동에서 하루놀자'는 말이 불씨가 되어 열게된 음악회란다.
 
우리끼리음악회에 초대된 '징검다리'의 가수 위대권님은
2004년 비나리산골미술관 개관식때 축하 노래를 해주셨고
부인이신 강미영님과 한께 징검다리라는 시노래패를 꾸리고 계신분이다. 
지금은 안동 정하동에서 라이브 카페 리코를 운영중이시다.
인디언 수니님은 광주5.18묘소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동영상을 본적은 있었지만  이날 처음으로 공연을 보게 되었고
음악에 문외한이고 식견이 좁은 사람이다보니 '녹우'님은
이날 처음으로 알게되고
공연을 보게되기까지 되었다. 
모두 인연을 맺게 되어 고마운 분들이다.

저녁 7시 30분 안상학 시인의 인사로 시작한 음악회는
미리 짜여졌던 공연을 1부라 이름붙여 마무리하고
이어서 술과 음식을 나누며 담소와 노래를 나누는 2부로 이어갔다.
다시 새벽 1시를 넘겨 부슬비가 내리는 반구정 마당을
밤새 노래와 웃음으로 채우는 와중에 아쉬움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

이날 녹우님의 기타소리에 혼이  빠지고,
인디언 수니님의 정열에 매혹되면서도,
안동의 가수이신 위대권강미영님의 징검다리가 노래를 부를 때
더욱 몰입이 되고 신명이 났다.

그래도 이날의 주빈은 역시 안상학 시인이었다.
다른건 다 몰라도 안시인은
얼마나 사람복이 있는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늘 행사때마다 지원에 나서고 이날도
구질구질한 뒷치닥거리를 마다않던 권경옥님, 권기혁님도 그렇고,
몸을 던져(!) 잔치판에 신명을 돋구던 박경환님 부부, 이정희님, 권두현님의
새로운 모습도 볼수 있어 너무 좋았고, 
조명을 지원해 주신 송봉근님, 찬조출연을 해 주신 김이난 가수 등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다 베푼만치 거둘겄이지만 유독 안시인은
사람사는 멋 하나로 그냥 인심을 얻고 사랑을 받는 사람인 것 같다.

우리시대 시인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지만
안시인은 구질구질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대신해
호쾌하게 쌈빡하게 그리고 멋있게 살아주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나에게 안상학시인은 언어를 넘어 삶으로 먼저 말하는 예술가이다.
그것이 창작의 걸림돌이 아니라
작품의 밑거름이 되는 경지였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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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다시 시작한 기타에 빠진지  벌써 서너달이나 지났다. 

봉화문화원에서 기타반을 개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대책없이 먹은 나이가 민망해 망설이다가
불쑥 등록을 하고 수강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번 두번 수업이 진행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기타 배우는 재미에 빠져버렸다.
휴일도 따로 없이 오직 먹고 사는 일에 일주일 내내 쫒기다
기타수업이 있는 수요일만은 그래도
아침부터 다른 날과는 다른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작은 설레임으로  시작한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하고
오후 6시 30분이면 봉화문화원에 도착한다.
미리 나와 연습하시는 수강생도 계시고,
수업이 시작한 뒤 늦게 수업에 합류하는 사람도 계시지만
하나같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기타수업에 참가하시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다행히 45명가량의 수강생중에 나와 비슷한 연배가 몇분 계시고
이미 정년퇴직을 하셨거나, 예순이 다 되어 가는 분도 계시다보니
나는 쉰의 나이에 기타수업만 가면 당당히 소년이 된다.

봉화문화원 기타교실에 참가하는 수강생 모두는 거의 나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기타를 배우는 일을 얼마나 즐거워하시는지,
기타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얼마나 고마워하시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기타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바로 알수가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배우시는지,
얼마나 깊이 몰입해서 기타의 선율에 빠져드시는지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수강생들의 열의가 얼마나 대단한지 벌써 8월에 있을 봉화은어축제에
봉화문화원기타교실 수강생들로 구성된 기타합주반이
축제 부속행사에 참가해 기타연주를 하기로  결정까지했다.
누구 한분 반대하시는 분없이 흔쾌히 
연주에 참가하시겠다고 승락하시는 걸 보고 놀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수요일 저녁이면 기타를 처음 배우는 소년의 설레임으로
2시간 30분동안 기타  수업에 몰입를 한다.
학창시절에 잠시잠깐이나마 공부에 몰입한 이후 참으로 드물게
무엇인가에 몰입해서 그 재미에 빠져본다.
나는  세상사가 아무리 복잡하다고해도
그시간만은 참으로 단순한 감각으로 세상을 느낀다.
먹고사는 일이 아무리 고달프다고해도
꼭 그 시간만은 나는 마냥 평화로운 마음으로,
순진무구한 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기타반에서 어제는 늦은 스승의날 파티를 열었다. 
그동안 수강생 모임을 꾸리겠다고 나서는 분도 없었고
수강생 상호간은 물론 수강생과 강사분간에 인간적 유대가 소홀했는데
늦게나마 모임이 꾸려지고 수강생들끼리 자발적으로
작은 돈을 거두어 강사선생님께 드릴 작은 선물도 준비하고
처음으로 수강생 상호간에 인사도 나눌 피티를 열게 된 것이다. 

어설픈 자리지만 준비가 늘 부족한 수강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강사님께 감사의 뜻을 전한뒤,
수강생 한분한분의 자기 소개와 질문을 이어가며
봉화문화원에 웃음이 넘치는 즐거운 파티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급기야는 조선화 강사님의 기타연주를 청해
작은 파티를 풍성하게 마무리했다.

조선화 강사님은 영주시 하망동에서 소리누리라는 음악학원을
부군과 함께 운영하고 계시단다.
음악학원이 번창하길, 아니 우리사회에 음악이 넘쳐나고,
음악을 배우는 재미를 누릴 수 있을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넘치는 사회로 거듭나길 빈다. 

요즘 나는 봉화문화원 기타교실에서 기타를 배우는  재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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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개인전 오픈을 마치고 서울서 새벽4시를 넘어 내려온 날, 얕은 아침 잠을 자고, 오후 늦게 부석사를 향했다. 15여년전 비나리마을에 자리잡은 뒤, 안동 봉정사와 함게 영주 부석사는 집에서 1시간도 안되는 거리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빼어난 아름다움에 반하여 비교적 자주 들렀던 곳이다. 마음같이 않게 일상에 쫒겨 자주 들러지 못하게 될 때도 늘 마음만은 그 곳으로 향하던 곳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점점 발길이 줄었다. 봉정사는 영국 엘리자베뜨 여왕이 왔다가고 뒤이어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절로 들어가는 길과 주차장이 닦이고 주차료를 징수하면서 발길을 끊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봉정사로 향하는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한 때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부석사 역시 언제부턴가 주차장을 닦고 주차비를 징수하기 시작했고, 관광객의 발길이 무척이나 늘어나면서 자연히 나의 발길은 줄어들었다. 다행히 가까이에 청량사라는 좋은 절이 있고, 덕망있으신 지현 주지스님이 계시기도 했지만 나는 블교신도로서가 아니라 단지 불교의 문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봉정사는 봉정사 나름대로의, 부석사는 부석사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에 반해 발길을 이어왔다.
 
특히 부석사는 10여년전 언젠가 아내와 둘이서 해직무렵 들렀다가 저녁예불 장면을 목격하고 그냥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인간과 자연이 더 이상 조화로울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저녁예불 모습에 나는 세상을 등진 마음을 풀었고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그 기억이후 수시로 부석사 저녁예불을 보러가겠다고 다짐과는 달리 일상의 관성에 밀려 부석사 저녁예불은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이날은 서울서 늦게 돌아온 덕분에, 하루종일 피곤이 가쉬기 않아 일을 하기에는기운이 없고 그냥 이부자리에 뒹굴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아 모처럼 부석사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3000원의 주차비를 지불했다. 지역주민에게는 좀 부담을 줄여줘 자주 편안하게 들를수 있게해야하지 않겠냐며 주차비징수원에게 이야기했지만, 영주가 아니라 봉화주민이라 해당사항이 없다는 사실을 들어야했다. 주차장 인근 절 진입로 양편에 즐비한 식앙중한 곳에서 산채비빔밥을 사먹고 6시가 되기전에 무량수전에 도착하기 위해 발길을 독촉했다.

부석사 입구 매표소에서 1인당 12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물어보니 저녁예불이 7시라고 알려줬다. 부석사를 비교적 자주 들렀지만 평생처음으로 1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사찰 경내에서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없이 어슬렁거릴 수 있었다. 그냥 절 구석구석을 거닐며 승과 속을 경계에서 세상사를 되짚고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음미했다. 그리고 드디어 저녁 7시 무량수전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를 시작으로 벅고와 목어, 운판소리로 이어지는 저녁예불은 소백자락에 울러퍼지는 범종소리로 마무리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가진 것들이 그 업과 고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불구 사물의 소리를 뒤로하고 대지를 번져나는 석양을 받으며 훨씬 맑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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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의 노래는 좌절된 꿈, 상처받은 자존, 나도 모르게 배게를 적시게 하던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아픔이 아니라 삶이 주는 달콤함, 생명의 환희임을 알게 해준다. 송창식의 노래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세상을 보는 눈길이 깊어짐을 느낀다. 송창식의 노래는 슬픔을 아픔이 아니라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이상한 힘이 있다.  

가지고 있던  CD를 테잎으로 구워 근 10년을 넘어 운전대를 잡으면 늘상 틀어 듣고 중얼거리며 따라불러 오던 송창식이 언제부턴가 보고싶어지기 시작했다. 더 늦기전에...



오늘도 안동갔다 들어오는길 내내 아내와 같이 송창식을 들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듣기는 편안하지만 따라부르기가 왜이리 참 힘드냐며 투들거리며 집에 들어오자마자 미사리 어디에 송창식의 라이브까페 록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오랜 세월전의 기억을 되살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이상 송창식의 라이브 가페는 찾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송창식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없어 보였다.

그 순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송창식은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나보다 10년은 족히 더 되었으니 한갑은 넘었겠네 하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무며 그와 나에게 주어진 세월의 여분을 생각해 봤다. 이러다가 결국 내 인생에서 송창식의 라이브를 못듣는거 아니냐며 포기를 하려했다.

그리고 다시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송창식의 곡을 뒤적이다 세시봉 전국순회공연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올려본다.
"세시봉친구들"이 올 연초부터 전국 순회 공연을 하고 있다. 트윈폴리오의 멤버였던 송창식, 윤형주 그리고 김세환이  MC 이상벽의 지행으로 공연을 펼치고 있단다. 어제 오늘은 안산에서 공연이 있고, 6월23~24일에는 대전에서, 7월1~2일에는 진주에서, 7월 8일은 서울에서 공연을 가진다는 사실이 웹서핑에 걸려들었다. 이렇게 기록에 남기고 게획을 세워본다. 입장료는 7만7천원에서 11만원정도다.

이번 기회에 공연을 보러가든지 그렇지 않더라도 다음기회가 또 있을 것같아 일단은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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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우곡성지 내 청소년수련관에서 참여당 삼각끈담쟁이동호회 회원들과 가족 그리고 기타 참여당 지지자들이 단합대회를 가졌다. 준비단계에서 100여명의 회원 가족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갑작스런 폭우성 비바람에 참가 인원이 30여명으로 줄었다. 
주최측인 봉화군지구당 준비위원회 위원장이신 "사과꽃향기"님을 비롯한 지역 당원가족분들이 여러 날을 준비해 100여명이상의 손님을 맞을 음식과 잠자리등 충분한 준비를 하였지만 직전에 있은 김해을 재선거 결과와 행사 당일의 불순한 기후 때문에 참가인원이 대폭줄게 된 것이었다.

나는 참여당 당원이 아니지만 아내가 참여당 당원이다보니 "사과꽃향기"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게되었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단지 봉화지역분들이 보고싶어 행사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사과꽃향기님은 1여년전 연락을 주시어 만나게된 분으로 척박한 지역 토양에서 기필코 참여당 지구당을 만들고말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나에게 연락을 하셨던 분이다. 그분의 열의에 감명을 받고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긴 했지만 내 자신이 정치적 기반이 조금은 다르고 무엇보다 일상의 삶에 쫒겨 이내 잊어 버리고 말았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존경심을 가지고 정치적 지지자로서 그의 정치적 꿈을 실천하는 한명의 시민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이지만  참여당의 당원이 아닌 타당의 당원인 사람으로 이날 모임에 참가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기우와는 달리 행사 참여자 모두가 반겨주시고 배려해 주신 덕에 참으로 편안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나 행사 예상 참여자가 대폭 줄어들어 힘빠지고, 성의없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나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모이신 한분한분이 열정과 동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즐겁고 진지한 행사를 진행해나갔다.

행사중에 참여자 한분한분이 자기소개를 하는 기회가 있 을때 나는 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봉화군 같은 지역사회에서 진보 개혁을 표방하는 사람이라면 설사 당을 달리할지라도 당원동지나 진배없이 반갑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나아가 수구 한나라당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경북북부지역의 봉화군 같은 지역사회에서는 최소한 반한나라당을 지향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동지적 연대를 가지고 서로 협력해야함을 주장했다. 

이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봉화군에 참여당  진성당원이 불과 수명에 불과하고, 잘 모르긴 해도 사회당이나 진보신당은 물론 민주노동장, 나아가 민주당 마저 진성당원이 몇명에 불과하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지역 현실에서 서울 중심의 중앙정치무대에서  진보개혁진영의 정당들이 뿔뿔이 흩어지도록 하는 작은 정치적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비록 정치적 지향이 달라 정당을 달리할 지라도 동일한 정치적 실천의 기반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

지난 재보선이후 이명박정부, 수구 한나라당을 제압하고 다시 우리 사회를 진보의 길, 평화의 길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면서 진보개혁진영의 통합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진행은 지지부진하고  통합을 위한 논의과정이 생산적이지 못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진보개혁세력의 대통합과 민주개혁정부로의 교체를 희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다소간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현실에서 봉화군같은 정치적으로 척박한 토양에서 몇몇에 지나지 않는 진보개혁인사들이 지역사회에 진보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실천을 같이하고 통합을 위한 토론과 학습을 선도적으로 진행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아가 밤낮 정치권을 비판하는 민주시민 개개인이 자신이 상대적으로나마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을 하고 큰 틀에서 우리사회가 진전시켜나가야할 가치를 진작시키는 일에 작은 실천들을 같이 해 나간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중앙'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작은 지역에서 해 내고 오히러 '중앙'에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한 당의 당원이 서너명에 불과한 봉화군이지만  "봉화군 진보개혁군민 연석회의"같은 모임을 하면서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큰 차이의 해법을 찾아내는 작업을 선도적으로 해나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나는 그날 참여당 봉화군 지구당 준비위원회 위원장님과 그외의 당원들의 열정, 그리고 그 순수한 인간미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역사회의 좋은 분들이 한분두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을 하고, 그런 분들이 어떻게든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지역사회에서 사회당 당원이 참여당의 지구당이 건설될 수 있도록 당원모집에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4대강 죽이기 같은 명백한 정치적 이슈에 공동대응을 한다면, 지리멸렬한 중앙정치가 바귀고 나아가 불의한 세상조차 쉽게 바꿔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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