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개인전 오픈을 마치고 서울서 새벽4시를 넘어 내려온 날, 얕은 아침 잠을 자고, 오후 늦게 부석사를 향했다. 15여년전 비나리마을에 자리잡은 뒤, 안동 봉정사와 함게 영주 부석사는 집에서 1시간도 안되는 거리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빼어난 아름다움에 반하여 비교적 자주 들렀던 곳이다. 마음같이 않게 일상에 쫒겨 자주 들러지 못하게 될 때도 늘 마음만은 그 곳으로 향하던 곳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점점 발길이 줄었다. 봉정사는 영국 엘리자베뜨 여왕이 왔다가고 뒤이어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절로 들어가는 길과 주차장이 닦이고 주차료를 징수하면서 발길을 끊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봉정사로 향하는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한 때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부석사 역시 언제부턴가 주차장을 닦고 주차비를 징수하기 시작했고, 관광객의 발길이 무척이나 늘어나면서 자연히 나의 발길은 줄어들었다. 다행히 가까이에 청량사라는 좋은 절이 있고, 덕망있으신 지현 주지스님이 계시기도 했지만 나는 블교신도로서가 아니라 단지 불교의 문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봉정사는 봉정사 나름대로의, 부석사는 부석사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에 반해 발길을 이어왔다.
특히 부석사는 10여년전 언젠가 아내와 둘이서 해직무렵 들렀다가 저녁예불 장면을 목격하고 그냥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인간과 자연이 더 이상 조화로울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저녁예불 모습에 나는 세상을 등진 마음을 풀었고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그 기억이후 수시로 부석사 저녁예불을 보러가겠다고 다짐과는 달리 일상의 관성에 밀려 부석사 저녁예불은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이날은 서울서 늦게 돌아온 덕분에, 하루종일 피곤이 가쉬기 않아 일을 하기에는기운이 없고 그냥 이부자리에 뒹굴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아 모처럼 부석사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3000원의 주차비를 지불했다. 지역주민에게는 좀 부담을 줄여줘 자주 편안하게 들를수 있게해야하지 않겠냐며 주차비징수원에게 이야기했지만, 영주가 아니라 봉화주민이라 해당사항이 없다는 사실을 들어야했다. 주차장 인근 절 진입로 양편에 즐비한 식앙중한 곳에서 산채비빔밥을 사먹고 6시가 되기전에 무량수전에 도착하기 위해 발길을 독촉했다.
부석사 입구 매표소에서 1인당 12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물어보니 저녁예불이 7시라고 알려줬다. 부석사를 비교적 자주 들렀지만 평생처음으로 1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사찰 경내에서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없이 어슬렁거릴 수 있었다. 그냥 절 구석구석을 거닐며 승과 속을 경계에서 세상사를 되짚고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음미했다. 그리고 드디어 저녁 7시 무량수전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를 시작으로 벅고와 목어, 운판소리로 이어지는 저녁예불은 소백자락에 울러퍼지는 범종소리로 마무리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가진 것들이 그 업과 고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불구 사물의 소리를 뒤로하고 대지를 번져나는 석양을 받으며 훨씬 맑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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