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부터 농사를 지었으니 벌써 올해까지 꼭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고 적지 않은 변화도 있었지만
꼭 그때 15년전 내가 첫발은 디뎠던
비나리마을의 가을을 잊을 수 없다.
그 고즈넉한 가을 하늘아래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전경...
살다보면 사람일은 알수 없으니 내가 설혹 비나리마을을 떠나
또 다른 낮천 거리에 헤메게 될지라도
그 때 그 비나리마을의 풍광은
고스란히 나의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해 두해 농사를 지어 가면서
그 평화로운 풍경뒤에 감춰진 한국 농촌의 참담한 현실을
눈으로 몸으로 느껴갈 수 밖에 없었다.
말로서, 글로서 알고 있덨던 실상보다 춸씬더
참혹한 농촌의 실상은 그 어떤 처방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고,
한 때는 내 자식을 키우며 살아갈 터전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탈농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든 살아보겟다고 농사를 벌이고,
정부가 지원하는 이런 저런 마을사업을 벌이면서도
그 어떤 것도 근본적인 처방이 될수가 없다는 점에
늘 목말라하면서 결국 농촌, 농업의 문제는
농민이 주체적으로 나서
해결할 수 밖에 없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농민회에 가입하고 농민동지들과 전망을 찾고
한국 농촌의 미래 비젼을 공유하고자 했지만
처음 몇년은 우선 내 농사기반이라도 닦고 나서 가입하자고
미루게 되었고, 다음 몇년은 이런저런 마을 사업에 정신이 팔려
미쳐 농민회 가입을 생각지도 못했고,
그리고 최근까지는 농민회의 이념적 지향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몇가지 점들과 지역농민회와의 연결의 어려움 때문에
가입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미뤘던 농민회 가입이 이뤄지고
지난 금요일에는 명호면에서 농민회가 소집한
자역 농업인대표자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선 자리, 두려운 자리였지만
농민회의 뚝심과 지역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을 몸소 느낄수 있었고,
비록 조직이 쇠락했지만 여전히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민회가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농민회 회원 개개인의 무한정한 헌신의 삶을 목도할 수 있었고,
그동안 관변단체로 여겨 배제했던 농업경영인회 등도
농민회와 동반자로서
투쟁에 같이 나서는 모습을 확인하는 기쁨도 있었다.
나아가 지역 각종 농민단체의 조직원으로 활동하시는
지역 형님들 선배님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으로부터도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의 다른 농민단체 형님들께서도
지금은 와해된 봉화군 농민회 명호면 지회를 복원하는 과제를
맡기면서 도와주시겠다고 나서는데 고무되어
나는 연말까지 봉화군 농민회 명호면 지회를
복원하겠다는 공언을 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를 통해 10월 10일 경북도내 각 시군 농민단체와 마찬가지로
봉화군 농작물피해대책위원회에서도
버스 10대 이상을 동원하기로 하고,
이에 명호면은 버스 한대를 맞춰 각 단체가 인원과 비용을 배정하여
경북 도청앞으로 집결 [경북농민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의 했다.
농민회를 가입하자마자 벌써 몸이 바빠지게되었다.
아직 밭에 할일도 태산인데 내 주머니에서 비용을 갹출해 가면서
집회에 참가하게 되니 이게 무슨 망조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농사 15년 만에 농민회 가입을 통해
나의 삶이 또 다른 비약을 하게 된 것임을 확신하다.
나는 이제 진짜 농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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