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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은 늘 고난으로 시작한다

 

2/24(목)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서니 직원분이 눈에 피난거 아냐고 하신다.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이 토끼눈이 되었다. 첫 이사회가 있는 날이라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중찬부터 이어진 첫 이사회에 참석해 처음뵙는 비상임이사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관행적으로 이사회 부의 안건은 이미 여러 절차 속에서 토의된 관계로 상임이사의 경우 발언을 아끼고 주로 비상임 이사님의 의견개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첫이사회를 마치고 오후에는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오는 와중에 어촌수산처 업무보고를 들었다. 그새 피로가 쌓였는지 애써 준비하신 분들게 미안할 정도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반가운 퇴근길에 다짐을 했다. 업무 욕심을 줄이고 건강을 더욱 챙기자고!

2/25(금)

공기업 임원은 공직자다. 그러다보니 그에 준해 신변 정리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먼저 농민의 지위를 잃었다. 각종 보조사업이며, 농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직불금과 면세유 혜택도 끝이다. 재산등록과 가입단체에 대한 정리도 필요한데 자유롭게 구사하던 SNS활동도 이전만치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된다. 개인의 자유로운 사생활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SNS활동 자체를 회피하지는 않겠지만 언행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오후2시 이른 퇴근을 하고 봉화로 향했다. 봉화가는 길 광주들어서는 초입에 헌혈의 집이 있어 평일에 따로 시간내기가 힘든 만치 올해 첫 헌혈을 했다. 작년처럼 올해도 전혈 5회를 목표로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의성에 들러 존경하는 분들 만나 밥먹고 수다떨다 보니 지난 한주의 피로가 싹 가쉰다.

2/26~27(일)

봉화에 돌아오니 할 일이 많다. 오랜만에 트렉터를 몰고 저온창고로 달려갔다. 저온저장고에 남아 상해가던 배추를 이웃 분께 닭먹이로 실어주고, 영주로 안동으로 돌아다니며 지인들 만나고 밥먹고 떠들다 보니 밤 늦은 시간에 나주 귀가길에 올랐다. 싸락눈이 조금씩 날리는 텅빈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1시넘어 나중 도착했다.

일요일 아침 산책겸 왕복 2키로가 넘는 농협마트를 들러 장을 보고, 오후에는 광주에 들러 구두와 옷을 샀다. 밭에서 놀던 사람이 직장생활을 할려다 보니 옷차림부터 부족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2/28(월)

경영간담회가 없는 관계로 부서장회의만 하고, 산재관련 자료를 받아 읽고, 인사처 제출 개인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오전시간이 다갔다. 지난 1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관련 기업은 모두 초비상이라고 한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공사현장 사고가 빈번한 우리처지에서 꼭 필요한 법이고 이번 기회에 많은 나쁜 관행이 사라지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져야 할 것이다.

어촌수산처 직원분들과 점심을 나누고 오후에는 해남으로 출장길에 올랐다. 알고 지내던 농민단체 대표자들께서 면담을 요청했고 흔쾌히 길을 나섰다. 간척지내 유휴지를 농지 잠식없이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주민참여를 통해 활용하는 것과 활용도가 낮은 방조제 관리동 건물을 지자체에 임대해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요청했다. 이왕 가는 길에 해남의 중심지활성화 사업 현장도 방문했다. 업무부담을 드리지 않기위해 비공식 답사로 조용히 다녀왔다. 오래전 참여했던 농촌개발사업의 빛과 그림자가 선명했다.

3/1(화)

오전 내내 구글주소록을 정리하고 페북에 지난 두주사이의 나주생활을 정리했다. 사적 일기와 공적 일지 사이의 적당한 지점에서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정리하고 관계자분들과 공유하여 공감을 끌어내고 지혜를 모으는 채널로 페북을 활용하자는 의도인데 잘 할 수 있을지, 혹은 통념상 수용이 될지 판단하기 어렵다. 지난 두주를 몰아서 정리하다보니 최대한 간략하게 쓰게 되었지만 가능하다면 매일 간단한 상황정리와 자세한 문제의식과 사고의 흔적을 담았으면 한다. 오후에는 모처럼 나주시내를 나들이하며 쉴 수 있었다.

3/4(금)

오후 늦게 새로운 사장에 대한 임명 소식이 들렸다. 현 사장님의 3년 임기 마지막날까지 소식이 없어 거의 연임을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느닷없는 소식이었다. 임명권자의 고충을 알수는 없지만 임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모시고 배우고 싶었던 분을 떠나 보내야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3/5~6(일)

사전투표를 하고, 전동킥보드를 타고, 딸이 나주로 내려온 덕에 주말을 온전히 놀았다. 신안군의 임자도에 있는 대광해수욕장을 걷고, 다시 복귀하는 길에 광주들러 쇼핑도 했다. 그리고 일요일은 운주사를 거쳐 나주목에서 나주곰탕을 나누고 딸을 서울로 보냈다. 

3/7(월)

경칩이 끼인 3월 첫주가 슬그머니 다 지났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듯 공사 10대 CEO께서 임기를 마치고 떠나시고, 새롭게 11대 CEO를 맞이했다. 그 사이 주말내내 동해안 산불로 공사 시설이 경미하나마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등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야했다. 사실 전임 신임 CEO두분 다 오래 모시고 배우고 싶은 분이지만 동시에 모실 수는 없는 이치이니 떠난 분의 유지를 잊지않고 새로이 맞이한 분의 의지를 받들어 구현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하지 않는가!
새봄을 맞고, 새 대통령을 맞고, 새 CEO를 맞아 올해 공어촌공사가 큰 진전을 이루는 원년이 될 수 있기를 마음 모아 빈다!

3/9(수)

대선일 무등산을 올랐다. 초등인 무등산은 나름의 매력이 있었고, 다시 찾을 것을 다짐했다. 산을 내려와 금남로를 걷고 5월 광주의 함성을 가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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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맛보는 퇴근의 기쁨

 

2/17(목)

공식적인 첫 출근을 했다. 집행부 선거중이라 텅빈 노조사무실에 올라가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에 내려와 주관부서의 직원분들로부터 업무관련한 안내를 받는 틈틈이 인사전화를 받고, 인사전화를 드리다 보니 첫근무 하루가 다 지나갔다. 인사드려야할 분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목록까지 만들어가며 전화와 문자를 돌리고 업무 준비를 위한 과업을 머리 속에 나열했지만 어느 순간 머리 속 목록은 흐트려지고 어디까지 전화를 드렸는지, 오늘 처리해야할 일의 우선순위가 어땠는지 혼미해졌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퇴근의 기쁨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2/18(금)

출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업무보고가 이어지고 [농지은행관리원] 출범식이 있었다. 출범식 직전에 있은 김인식 사장님 주관의 간담회에 신정훈의원님 배려로 참석해 김종훈차관님, 이개호의원님, 정현찬농특위원장님 등과 함께 차담을 나누었다. 어색하기 이를데 없는 자리였지만 곧 익숙해져야만할 것이다. 오후에는 홍보실, 환경지질처 등 부서 업무 소개를 받고 어촌수산처 사무실을 방문해 인사를 올리고 처장님 안내로 직원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최대한 가볍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너무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오히러 꼰대스럽지는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말이 너무 많지않았나는 걱정이 남았다. 이어서 직원 숙소마련을 위한 예산변경안 등 결제와 업무 보고가 이어지다 오후 4시에 이른 퇴근을 하고 정리가 덜 끝난 봉화를 향해 달려갔다.

 

2/19~20(일)

야반도주하듯 떠난 집에 돌아오니 정리할게 한둘이 아니다. 오전 내내 집과 주변, 그리고 공장까지 들러 정리하고 못다한 전화를 돌리다보니 하루가 다갔다. 저녁 봉화읍에서 독서모임 친구들을 만나 밥과 차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지만 못다한 말도 남고 다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도 남았다. 그래도 내가 떠난 자리 꿋꿋하게 지키고 있을 친구들이 있어 쉬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안도감이 나를 편하게 했다.

월요일 출근에 앞서 구입하고 정리할 일이 많아 20일 아침 일찍 나주로 돌아왔다. 오늘 길에 광주에 들러 운동화도 사고 이발도 하니 직장인으로 맞은 첫 휴일이 후닥닥 지나갔다.

2/21(월)

첫 월요일 출근 하자마자 사장님 주관의 경영간담회가 있었고, 이어서 소관부서장 간담회를 주관했다. 경영간담회는 첫 자리니 만치 간략한 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고, 현장의 문제의식만 있고 실무경험이 없지만 소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직분을 다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회의를 마치고 막 선거를 끝낸 노조사무실을 다른 선임이사님들과 함께 방문해 연임에 성공하신 노조위원장님과 노조집행부에 축하 인사를 드렸다.

오후에는 다른 이사님과 함께 농촌경제연구원에 들러 원장님께 인사를 드렸고, 농어촌공사의 위상과 사업 범주에 대한 이런 저런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사무실로 돌아와 틈츰히 각종 결제와 대여섯개 부처의 업무 보고가 이어졌고 눈코뜰새없이 첫 월요일이 지나갔다.

2/22(화)

내 소관의 주무부처인 농촌개발처 업무 보고를 듣고 오후에는 취임인사차 농식품부가 있는 세종으로 향했다. 환경 등 사안으로 집회나 오던 곳에 업무차 방문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청사 앞 길가에 쌓여있는 나락 톤백이 눈에 들어왔다. 장관님은 부재중이라 차관님 뵙고 주관부서국장님 과장님들 이어서 인사를 드리다보니 어떤 분을 뵙고 어떤 분을 빠뜨렸는지 혼동스러웠지만 나의 첫 농식품부 방문은 그렇게 끝이 났다. 농민 활동중에 인연이 있는 정책보좌관님을 뵌 것이 이날 최고의 성과라 할만했다. 공사 업무를 익혀감에 따라 점점 협의할 사안들이 늘어나고 농식품부 발걸음도 잦아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정무적 업무가 나의 중심 과업이 되지않을까 예상된다.

2/23(수)

출근하자마자 임원진 간담회에 참석해 '현장의 문제의식을 놓치지 말고 천천히 업무 익혀 나가라'는 사장님의 조언에 힘을 얻고 하루를 시작했다. 다음날 있을 이사회 안건에 대한 각 소관부서의 보고가 있었고, 오후에는 나의 소관 3부서중 하나인 지역개발지원단을 방문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단장님 이하 직원분들과 인사를 하고 업무보고가 진행되었다. 업무 이해를 위한 첫걸음인 만치 욕심가지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듣는데 충실하려 애썼다. 꼼꼼히 준비해주시고 발표해 주신 단장님과 간부진과 함께 식사까지 마치고 나주로 돌아오니 밤10시가 넘었다. 첫출근을 시작하자마자 업무와 조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공사의 역할과 사업 영역에 대해 파악하려 애쓰다보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되었다. 바깥에서 보던 것보다 사업영역이 훨씬 더 넓고, 조직도 복잡하다. 현상 넘어 실상을 파악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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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설레임을 안고 낯선 세상속으로

[비나리농부의 주간업무일지]는 농부가 잠시 삽을 내려놓고 2년 예정으로 전남 나주에 있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재직하는 동안 기록하는 극히 사적인 업무일지입니다. 농부로서의 문제의식을 견지하면서 한명의 공기업 임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그리고 업무를 통해 스스로의 성장을 꾀하기 위해 남기는 극히 사적인 기록입니다.  공적인 업무와 극히 사적인 감수성이 공존하는 새로운 우주를 꿈꿉니다. 

2/14()

아침일찍 농어촌공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임용이 확정되었고 16일 취임후 17일부터 정상 출근하란다. 이날 예정되었던 지지선언을 마지막으로 정치활동을 마무리하고, 2년 예정의 나주생활을 아내와 같이 하기로 결정하고, 급히 이주 계획을 세우고 짐을 챙기고 겨우 몇몇 분을 만나고, 전화를 드리고, 페북에 소식과 소회를 남기고 나니 이틀이 다 지나갔다.

2/15()

오래 묵혀두었던 넥타이를 꺼내 유투브를 보면서까지 매어보는데 도저히 모양을 낼 수 없다. 낡았지만 자크만 올리면 매어지는 넥타이를 그냥 매고 가기로 결정할 즈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동네 형님들이 먼길가는 동생 노잣돈이라도 한푼 쥐어주고 싶다면서 올라오셨다. 월급많이 주는 좋은 자리 간다고 마다했지만, 나의 임용을 자신의 일보다 더 좋아하시는 형님들의 마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고마음을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 먹먹하기만 했다.

2/16()

새벽 5시 집을 나섰다. 트렁크에 가재도구를 잔뜩 싣고 먼길을 달려 10시 조금 넘어 나주 본사에 도착했다. 두어달전 면접때 와보고 두 번째지만 왠지 와야할 곳을 온 듯 낯설지가 않았다. 급히 달려온 직원분들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이 있는 11층에 올라오니 앞으로 있을 2년간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동시에 몰려왔다. 낯설은 의전을 받고, 사장님 뵙고, 선임이사님들 뵙고, 내가 배치될 농어촌개발 본부관할의 부서장님과 직원분들과 상견례를 하고 취임식을 하는 동안 아내는 직원분들의 도움을 받아 공사와 나주 지역을 익히는 시간을 보냈다. 오후 일찍 배정된 아파트에 도착해 직원분들의 도움을 받아 이삿짐을 풀고 급히 가까운 마트로 달려가 덮고 잘 이불을 사고나니, 앞으로 고생을 같이할 관할부서장님들이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피곤했지만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나주에서의 첫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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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이윤기 역

그리스인 조르바

http://www.yes24.com/Product/goods/3647046?art_bl=15991960 

 

그리스인 조르바 - YES24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작품으로,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www.yes24.com

소설을 읽은지 너무 오래되었다. 책은 늘 뒷전이었고 더군다나 문학이 내 일상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허우적거리고 쫓기다 모처럼 남는 시간조차 공허가 갉아먹게 방치하면서도 소설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다. 나의 2021년의 삶은 그랬다.

문학소년의 꿈과 세계를 향한 청년의 열정이 무너지고, 가정과 생계라는 삶의 요구에 대한 무능 사이에서 이루어진 타협은 나를 30대 후반의 나이에 농부로 만들었다. 영혼의 노동인 독서와 육체의 노동인 농사가 어우러진 삶을 살겠다는 소박한 꿈은 생계를 위한 농업 노동 속에서 잊혔고 척박한 삶의 조건을 이유로 내면의 삶은 고갈되었다. 영혼 잃은 육체는 얉고 넓은 사회적 관계와 더 혹독한 노동 속에 갇혔다..

여러 번 읽다가 말고 던져졌던 조르바가 문득 그리워졌다. 나는 자유에 목말랐고, 삶의 압박에 고갈되어 가는 나의 자존이 그리웠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연말연초에 책장을 뒤져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았다. 미리 가졌던 조르바와 연관된 기억을 지우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마주하기로 마음먹고 책장을 넘겼다.

비린내 확 풍기는 항구도시 피라에우스에서 화자인 두목과 코스탄디 조르바의 조우 그리고 두목과 친구 혁명가와의 이별의 기억이 교차하면서 시작된 소설은 500쪽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화자와 조르바와의 만남과 헤어짐, 우여곡절과 내면의 교류를 이어갔다.

소설은 샐비어 술과 조르바의 춤, 부불리나 오르탕스와 조르바의 어설픈 사랑, 오렌지향 과부의 삶과 비극, 영혼 없는 수도원, 갈탄광산 개발과 운반용 삭도 건설 그리고 사업 실패, 오르탕스의 영원한 사랑 카나바로의 이야기로 이어져 나가지만 작가의 메시지는 오직 하나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다.

소설을 읽고 교훈을 생각하다니... 그런데 조르바는 어쩔 수 없었다. 야생의 삶 속에서 자유를 터득한 조르바가 지식과 이념에 오염된 두목에게 설파하는 자유의 메시지는 생활의 강제와 편견의 족쇄에 갇힌 독자에게는 사랑을 설파하는 예수의 산상 교훈처럼 근본적이되 딱 그만치 공허했다. ‘자유하라!’는 조르바의 일갈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만치 청자의 내적인 반향이 없다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시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자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답은 알 수 없지만 부정적 느낌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카자차키스가 갈구한 자유가 과연 민족, 종교, 사상 넘어 어딘가에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식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어떤 자유도 나의 몫이 될 수 없다는 딱 그만치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조르바의 자유를 100$ 공감하기에는 너무 낡았고, 내가 걸치고 있는 세월의 외투가 너무 두터운지도 몰랐다. 기대했던 공감이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은 책을 다 읽고 덮은 뒤에도 한참을 귓전에 남아 맴돌았다.

당신은 자유롭지 않다.’ 당신을 메고 있는 줄이 조금 길 뿐이다.

고독이야말로 인간의 자연스런 상태.

이 세상의 유혹 가운데 가장 무서운 유혹인 희망을 정복하라(카잔차키스)

인간은 마땅히 저 자신의 본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초인이 되어야 한다.. 신의 빈자리를 우리가 차지해야 한다.(니체).(니이체)

인간의 보편적으로 경험해온 기나긴 진화의 역사는 경화된 메커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기 위한 생의 도약의 역사다. (베르그송)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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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뒤 쉬 펼치지 못했다.

바쁜 캠프 활동이 틈을 주지 않았기도 했지만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써 내려간 그의 글을 마주하기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랜전 기억을 소환했다.

함께 연루되었던 사건의 뒷정리를 위해

나의 상도동 단칸 신혼집에서 다른 동지들과 회합을 하고

골목길 너머로 사라지던 그의 뒷모습을 배웅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의 이름이 언론에 회자되고

그의 근황이 지인의 입을 통해 가끔 전해졌지만

지난간 시절 추억을 부러운 마음으로 떠 올렸을 뿐

우리는 아무 연락도 없이 오랜 세월

너무나 다른 각자의 삶을 살았다.

 

그가 청와대 수석이 되고 장관이 되었을 때는

유능한 일꾼으로 사법개혁의 임무를 완수하기를 고대했고

검찰마피아의 집중공격으로 온가족이 만신창이 되었을 때조차

그의 몫을 스스로 감당하고 언젠가 다시 일어설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민주시민의 한사람으로 서초동 촛불집회를 참가했고 멀리서 응원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얼마전 조선일보가 그의 딸의 실루엣을

성매매사건 기사에 갖다붙여

그와 가족을 능욕했다는 기사를 보고

같이 딸키우는 아빠의 마음에

그가 감당해야할 몫이 지나쳐 그를 삼켜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불길하고 절박한 마음에

힘내라는, 그리고 응원한다는 한마디 인사를 겨우 전한뒤

밀쳐 둔 [조국의 시간]을 펼쳐 들었다.

 

[조국의 시간]은 두명의 필자가 있다.

한명은 멸문지화를 당한 통한의 가장이다.

또 한명은 흔들림없이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는 냉철한 구도자다.

그래서 [조국의 시간]

통한의 울분을 담고 있으면서도 사실을 직시하고 평가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냉철함을 담고 있다.

 

[조국의 시간]은 문재인 정부아래 일어난

검찰쿠테타에 관한 보고서다.

수괴 윤석열과 그의 일당이 어떻게 조국을 매개로

검찰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음모를 획책하고

반란을 실행했는지 전 과정을 담고 있다.

 

[조국의 시간]은 과잉사법이 어떻게 한 인간을 무너뜨리고

어떻게 한 인간을 위선자로 상징화하고

어떻게 한 집안 전체를 파멸로 몰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반인륜적 사법과잉사례에 대한 보고서다,

 

[조국의 시간]은 검찰정치를 통해

어떻게 사법엘리트 독재가 실현되는지 보여주는

브라질 룰라의 경우와 비견되는

검찰 사법 스텔스 쿠테타보고서다.

 

그에 대한, 그리고 검찰의 시간에 대한 두 축의 평가가 있다.

진보적 인사의 입을 통한 도덕주의적 비판이 한축이다.

필자는 스스로 진보적 지식인으로 했던 말과 주장이 삶에서는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혜택받은 계층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서 또 혜택받은 계층에 속해있고

불평등의 문제나 부의 세습 문제에 둔감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강남좌파의 한계와 위선적 삶을 반성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듯 근대 형법의 최대 성과는 법과 도덕의 분리.

나는 설사 그가 받는 혐의가 모두 진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그에 대한 과잉처벌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그가 비난받는 강남좌파의 위선

좌파가 되고 싶은 강남의 열망으로 받아들인다.

세상 누구도 조국에게 성인군자가되라거나,

도덕적 완결을 요구할 수 없다.

도덕원리주의가 거악을 불러들이는 대한민국 정치판의 이상한 섭리에 나는 반대한다.

 

또 다른 한축으로 그가 수행한 검찰개혁의 적절성에 대한 입장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다.

 

나는 내내 [조국의 시간]을 읽으며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을 떠올렸다.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고도 남들보기엔 비루한 묵숨을 유지하지만

끝내 울분을 삼키고 역사적 과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마천의 결기가 그에게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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