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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비나리 동제가 있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이번 동제에도 유사를 맡아 방금 귀가해서 

올해의 비나리마을 동제를 기록해 봅니다.

이렇게나마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이유는

비나리마을 동제가 언제까지 존속할까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비나리마을 동제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아

그 정확한 유래를 알수 없지만 주민들은 적어도

수백년동안 전해져 왔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비나리마을 동제는 아기장수 임장군의 전설과 결합되어

임장군을 동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를 미루어 봐도 비나리마을 동제의 역사는 실로 깊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근년에들어 동제를 치룰 사람이 부족해진데다.

종교적인 이유로 동제에 참가하지 않으시는 분도 생기고,

또한 동제가 주는 마을주민의 화합과 정체성강화 기제도 줄어들다보니 

마을 동제가 얼마가 존속할지 몇년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당제에 들어가는 비용과 찬조금의 액수를 비교해봐도 확연합니다.

오래전에는 비용보다 찬조금이 더 많이 들어왔었지만,

10여년 전부터 비용과 찬조금이 비슷해지다가

최근에는 찬조금이 급격히 줄어들어 많지도 않은 동네기금이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그러다보니 몇년전부터 동제를 없애자는 의견도 마을회의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형식을 간소하게 하거나, 뜻있는 몇몇분이서나마 명맥을 유지하자는 등의

논란이 오고가고 있습니다.

 

저는 몇년전부터 유사로 마을제에 참가한 뒤로 최근에는

계속해서 유사를 맡고 있습니다.

유사는 동제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여러 잡무를 보는 역할로

장을 보고, 돼지를 잡고, 상을 차리고, 당나무 주변을 청소하

거의 대부분의 실무를 담당합니다.

그런제 당제는 제관과 당주가 주로 진행을 하다보니

유사는 그냥 시키는 데로 따라만 할뿐 제사의 형식이나 절차에 대해

무관심한게 사실입니다.


 
비나리 동제는 정원 초사흘날 당주를 뽑고 축관1,

제관3, 유사 5명을 정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를 당주뽑기라고도 하고 '청과고미'라고도 하는데

청과고미가 어떤 어원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10명의 사람들은 정월 12일날 새벽 집대문에 금줄을 걸고,

새벽일찍 동네 다른 주민의 눈에 띄이지 않게 당제에 제물 장을 보러 갑니다.

그리고 당제가 있는 날 까지 내내 몸과 마을을 정갈히 합니다.

당제를 지내기 전까지 이웃과 다툼을 한다던지,

노름이나 과음을 한다던지 하면

부정이 끼어 마을에 재앙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때 붉은 흙을 퍼와서 마을 입구에서부터

당나무를 지나 당주집까지 한삽씩 부어놓습니다.

잡귀를 막는 의미랍니다..



정월열사흘날 유사들이 모여 당나무 주변을 청소합니다.

정원 열날흘날 아침 일찍부터 유사들은 역할을 나눠 돼지를 사러가고,

제기와 여타 집기를 챙기고,

당나무 밑에 불을 지피고 솥을 걸어 돼지를 잡을 준비를 놓습니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마을 주민들은 가구별로  

당나무 아래서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장작더미를 날라다 줍니다.

가구마다 지게로 한짐씩 날라오는데 기력이 없는 노인분은

조금만 가져와도 돼지만 , 어떤 분들은 한경운기 가득 싣어오시기도 합니다.

 

돼지를 사오고 나면 유사들이 모두 모여 돼지를 잡습니다.

돼지를 잡는 일은 동제의 가장 큰 일입니다.

살생을 꺼리는 분도 계시고, 그 즈음 혼례가 있거나 손주를 보거나

하는 길흉사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돼지를 잡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아예 제사에 참가하지도 않는 분도 계십니다.

잡은 돼지는 각을 떼어 당나무밑에 나무를 걸치고

나무에 고기를 묶어 달아놓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당주가 준비한 밥을 지게에 지고 내려옵니다.

당주는 제사준비의 잡일은 보지 않지만 가장 신경을 많이 책임이 크십니다.

그러다보니 유사들 고생한다고 점심까지 준비해서 대접해야합니다.

유사들이 먹을 밥은 생선이나 육고기 반찬이 들어가면 절대로 안됩니다.

오직 나물같은 식물성으로만 이루어진 식단을 준비해야 한답니다.

 

오후가 되면 나무에 달아놓은 고기를 풀어 삶기 시작합니다.

고기를 삶기 전후해 장작을 지고 오신 주민이나 당나무 앞을 지나가는

주민들이 합류해 같이 일을 거들거나 술도 나누면서 덕담도 합니다.

이때 어떤 분들은 술과 음료나 먹을 거리를 준비해서 유사들을 대접하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면 조를 나누어 유사들은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목욕을 한후 다시 당나무 밑으로 모입니다.

그렇게 해서 10시정도면 본격적인 제사상 준비에 들어갑니다.

먼저 백설기를 앉힙니다.

간을 하지 않고 작은 떡찜기에 떡가루를 담고 나무불로만 떡을 찝니다.

그리고 곁에는 역시 작은 솥에다 흰밥을 합니다.

떡은 당주가 해야하고, 밥은 유사들이 합니다.

밥쌀은 9번을 씻어 앉혀야되고,

밥을 하는 중에는 절대 솥뚜껑을 열면 안된답니다.

그러다보니 불세기를 잘 조정해서 밥을 타지 않게 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많은 정성을 들여서 떡과 밥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형식들입니다.

 

오후 1130분정도가 되면 제관과 당주가 모이고

보격적으로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물은 모두 당주가 준비를 합니다.

집에서 담은 막걸리와 당나무 아래에서 직접 지은 ,, 탕국,

그리고 여러가지 제물을 절차와 순서에 따라 상에 올립니다.

자정이 되면 당주 주관으로 제사를 올립니다.

모두 절을 하고 축관이 축을 하고 나면

당주가 마을을 대표해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소지를 올립니다.

당주가 소지를 올리고 나면

이날 제사에 찬조를 하면서 소지를 부탁한들의 소지를 올립니다.

그리고 제관과 유사들도 나름대로 집안의 건강과 안녕,

올 한해 풍년농사를 비는 소지를 올립니다.

 

자정을 넘기고 12 30분이면 제사가 끝나고

제관과 당주는 대부분 집으로 돌아갑니다.

유사들만 제물을 거두고 모든 기자제나 장비를 거두어 마을 회관으로 갑니다.

마을 회관에는 두어분의 부녀회원이 기다리고 계신데 이분들과 함께

다음날 마을 주민에게 나누어줄 돼지고기를 자릅니다.

50가구에 돌아가도록

고기를 자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고기를 잘라 50등분으로 나누고 나면 모든 절차가 끝이 납니다.

유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날이 밝으면

마을회관에 온 주민이 모여 마을 총회를 열고

술과 음식을 나무며 잔치를 벌립니다.

 

올 한해 비나리주민 모두 건강하시고,

집안 두루 편안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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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과 좌절]은 노무현대통령의 유고다. 그런데 이 책이 못다한 그의 삶, 정치적 역정을 담담히 정리하고, 완결 지은 유고라면 얼마나 좋을까. 통탄스럽게도 이 책은 미완이다. 그래서 많은 아쉬움과, 많은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다. 그가 남긴 또 다른 유고인 [진보의 미래]가 대통령 노무현의 [정치철학]을 피력했다면, [성공과 좌절]은 인간 노무현의 정치 역정을 비롯한 일생을 담은 [회고록]이다. [진보의 미래]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과제를 남겼다면 바로 이 책 [성공과 좌절]은 한국사회에서 성공적인인간의 삶, 성공적인 정치가로서의 삶이 가능한 사회는 어떤 세상일까를 묻고 있다.

 

[성공과 좌절]은 그가 삶의 종비부를 찍으며 남긴 짧은 유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퇴임후 고향 봉하마을에 돌아와 측근과 친인척의 비리로 궁지에 몰리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최소의 가치들마저 철저히 농락당한 상태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입장 그리고 그 즈음의 활동에 대한 글로 나아간다. 그리고 2장에서 자신의 출생에서 성장, 대통령 당선과 재임, 퇴임과 귀향의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으로 이끌었던 참여정부 5년의 공과에 대한 입장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정치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시민주권시대에 대한 뜨거운 희망으로 책을 맺는다.

 

사실 파란만장한 굴곡을 겪고 정치적 입지에 성공한 [노무현대통령]이지만 그가 발 딛고 선 정치적 입지가 세력화되지 못하다보니 재임기간 내내 제대로 자신의 정치 철학을 펼쳐보지 못한다. 그의 정치적 지지 기반은 돈, 지위, 학벌, 특정지역이라는 기성 특권에 기생하지 않은 자발적인 불특정 다수이다. 그러다보니 재벌, 파시스트잔당, 그들의 선전지인  조중동을 필두로 한 언론마피아, 바로 그들의 지배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권력기관인 검찰마피아 등의 집요한 공격과 음해에 쉽게 무너져 내린다. 그는 기득권의 조롱과 한편이어야했던 많은 정치 세셕의 조소를 받으며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외롭고 비참한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 자신의 정치적 역정을 비탄하거나 세상의 몰이해, 세상을 지배하는 더러운 힘을 저주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하지만 그는 숙명론자나 온갖 악에도 저항하지 않는 무한 자비의 부처는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자신이 서있던 역사적 지점을 정확히 꿰뚫는 역사인식과 그러한 역사적 인식 위에서 도출한 시대적 과제 그리고 그  자신의 정치적, 인간적 처신에 대한 처절한 인식이다. 안타깝지만 여기서 우리는 인간 노무현의 진면목을 만난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나 정책적 호오의 차원을 넘어 인간 노무현의 진정성에 그의 모든 매력의 비밀이 있다. 그리고 이책 [성공과 좌절]은 그에 대한 나의 판단이 그르지 않음을 그리고 왜 그의 죽음에 왜그리도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분노했는지 알수 있게 해 준다.

 

사족을 달자면, 제목 [성공과 좌절]은 시간의 순서에 따른 성공 후의 좌절로 오해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현실 정치 국면에서 좌절한 정치적 이상에 대한 많은 이갸기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또한 그의 정치 역정을 통해 성취했던 정치적 이상, 꿈에 대한 자부도 그에 못지않은 비중으로 담고 있다. 그가 스스로 실패한 삶, 실패한 정치인으로 자기규정을 내렸다고해도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였고, 훌륭한 인간이었다. 그가 남긴 정치적 영향력, 펼치고자했던 정치적 꿈은 향후 한국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은 죽었지만 노무현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스스로 묻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대통령을 가져봤다는 가슴 뭉클한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까?' ' 그런 대통령을 더러운 권력의 음모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자가 그를 존경할 자겨이나 있기나 할까? 그리고 더 큰 물음에 빠져든다. 역사란 무엇인지, 정의는 무엇인지 그리고 참된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한 인간의 삶은 또 어떠해야 하는지...

 

온갖 술수와 음모, 거짓이 난무하는 혼란스런 시대에 우리는 진정성’에 목마르다.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바꾸려 한,  불경한 꿈을 가졌던 대통령 노무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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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빼어난 스승이라 불러도 좋을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의 필담과 대담을 묶은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는 쉽게 읽고서, 어렵게 덮어야 하는 이상한 책이다. '뭐 다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그래서?'라고 '인상비평' 한 줄로 다 읽은 책을 덮어버릴 찰나, 왠지 모를 울림이 가슴에 남아 책을 덮던 손을 멈춘다. 쉬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그리고 계속 읇조린다.'그런데... 그런데...' 그리곤 다시 책 여기 저기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두 분의 삶을 시간의 질서에 따라 서술해 나간다. 그것은 두 분의 철학이나 사상의 근저를 추상적 이론의 구조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궤적 속에서 도출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시인의 삶과 스님의 삶은 출발부터 달랐다. 두 분의 삶을 가른 출생의 조건은 한 분을 시인으로, 또 한 분은 스님으로 키웠다. 여기서 '키웠다'는 것은 두 스승의 독자적 위대성이 아니라 역사의 자식, 세상의 자식으로서의 두 분의 사회적 존재성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시인 김용택의 삶과 도법 스님의 삶은 출발부터 지금의 도정까지 겹치는 부분이 없어 보인다.

시인 김용택은 저 푸른 초원 위에 뛰어 노는 사슴을 노래하는 그런 뜬구름 잡는 시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인은 '전사'의 김남주와 같이 역사의 현장, 가치와 가치,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시대의 접점에서 처절한 혁명투사의 삶을 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인은 가난해서 평화롭고, 단촐해서 아름다운 단아한 농촌마을공동체의 따뜻한 울타리 속에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근저를 들여다보면서 자랐다. 그것을 시인은 '마을정신'이라 이름 붙이고,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원리로 제시한다.

도법 스님은 지옥보다 더한 살육의 현장에서 나서 자라고 그리고 출가했다. 출가로부터 스님을 사로잡은 화두는 죽음과 고통이었는가 보다. 죽음이란 화두를 잡고 구도하고 정진하는 도법스님의 수행과정은 철저히 내면적이고 어쩌면 비인간, 탈인간적이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도법의 발걸음은 토굴이나 골방이 아니라 인간 삶의 현장을 향했다. 그는 세속을 등진 선문답이나 고행이 가져온 고통의 끝에서 다시 세상의 진상을 확인하길 원하는 그런 선승이 되지 못했다철저히 현실적 삶, 현실적 존재조건 속에서 뭇 생명의 구원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르지만 아름다운 두분의 삶이, 그리고 생각의 끝이 어긋난듯 교차하고, 갈린 듯 머주치며 결국은 왠지 서로 합일할 것 같다.

시인은 '마을'에서 구원의 빛을 찾았고, 스님은 또 뭇생명의 공동운명체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았다. 그 순간 시인은 스님이 되고, 스님은 또한 시인이 되었다. 인간공동체-마을이라는 진흙탕속에서 연꽃을 피우기를 갈구하는 두 분의 구도는 시적 세계의 극이 바로 극락이고, 구도의 완성태는 곧 시적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라는 큰 깨달음에 도달했다. 시적 세계의 극치는 극락과 다르지 않고 극락 또한 시적 아름다움의 구현체가 아니겠는가!

이 책의 기획자가 두 분의 필담을 통해 모색하고자 제시한 과제는 ‘시대진단대안 모색이란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시대의 길' '제대로 된 삶' 얻기 위한 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지평에서의 인식을 두 필자에게 요구하는 듯 보이고, 이 과제에 대한 두 분의 화답은 단순 명료하다.

스님은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철학, 종교, 윤리, 가치, 논리를 버리고 존재의 실상에 따라 사는 것이란다. 그런데 문제는 어찌 내 같은 필부가 그와 같은 '존재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단말인가!

시인은 말한다마을 정신이야말로 인류가 함께 아름다운 삶을 이룰 수 있게 한다고. 하지만 그 마을 정신이 뭔지 진짜 마을에 살고 있는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시인과 스님은 끝내 손에 잡히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두 분은 구체적 사회구성원리나 정치철학을 제시하는 사상가가 아니라 차라리 사상가가 탐구의 과정에서 기반해야 될 가치의 지평을 여는 구도자로 남는다. 그래서 갑자기 묘연해진다.

누구나 세상을 진단하고, 나름의 처방을 제시한. 사실 왜 아닌가, 왜 안돼는가를 묻지 않는다면 누구나 그냥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기독교의 사랑이, 불교의 자비가 무엇이고, 평등과 박애,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쟁취되고 작동해 왔는가. 그리고 모든 답은 정답이고, 그렇기 때문에 또 모든 답은 오답이 아니던가? 그래서 모든 근본주의와 환원론은 공허하고 구체적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저 끈적거리고 비린내나는 권력과 금력, 지배와 욕망의 쌍곡선이 그려내는 기기묘묘한 유령의 그림자가 아니든가.

그래도 나는 책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도법스님과 시인 김용택이 꿈꾸는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고비록 '존재의 실상'과 그에 기반한 '마을정신'을 직시할 지혜가 없을지라도 나의 내면의 욕망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욕망을 객관화하고 너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지긋한 눈으로 직시할 수 있다면, 그러면 다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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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일본 규슈를 4박5일동안 다녀왔다.
농업 선진지 연수라는 테마로 지역 주민15명 가량이 같이한 여행이었다.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로, 아소산에서 쿠로가와온천으로, 그리고 뱃부와 유후인을 다녀왔다. 동선을 보면 관광여행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각 관광지 인근의 농촌마을을 탐방하고 농촌관광과 관련한 일본 관광의 풍토변화를 느껴보기 위한 연수과정이었다. 

나에게 이번 연수는 난생 처음 해보는 일본 여행이었지만, 개인여행이 아니라 단체 연수라는 성격때문에 별반 설레임도 없이, 사전준비도 아무 것도 없이 무작정 따라갔다온 여행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여행이 재미없거나 무의미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국의 거리를 혼자서 걷는 가슴두근거리는 자유,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다음에 닥칠 난관이 무엇일지 모르는 그 불안한 설레임은 없었지만 그것 빼고는 다 있었다.

낯선 풍경과 풍물들, 낯선 사람들과 음식, 그리고 편안한 사람들과 낯선 세상을 여행하는 그 일체감같은 것이 주는 즐거움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큰 기쁨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돌아온뒤 몇일 지나지 않아 책을 한권 샀다.
그것도 다름아닌 [규슈100배줄기기]를!

기가 막힐 노릇아닌가? 진즉에, 일본으로 출국하기 한달쯤 전에 사서 달달 외우다시피, 책 모서리가  뭉개질만치 읽었어야 되는 책이 아니든가?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산 [규슈100배 즐기기]는 규슈여행의 새꿈을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언젠가 (물론 그렇게 먼 미래는 아닐것이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규슈가족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시코쿠 순례로 이어지는 코스로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연수와 여행이 다르고, 여행과 순례는 또 다른 차원이지만, 꼭 한가지 길을 떠난다는 점에서 똑같고 따라서 길떠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 또한 똑같을 수밖에 없다. 한정된 시간에 일정한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객의 주관심사는 어떻게 보다 효율적으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깊이 느낄 수 있을까하는 점일 것이다. 물론 덤으로 더 싸게 그러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최소한 규슈여행에 국한 해서 본다면 이책 [규슈100배즐기기]가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너무 후한 평일까? 일정한 돈과 여권, 이 책 한권이면 규슈주민 같지는 않더라도,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에 놀러오거나 경상도 사람이 함경도 쯤에 놀러간 정도의 긴장만 있으면 먹고 놀고 보고 즐기에 충분할 것 같다.
덧붙이자면 물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희망사항인지 모르지만, 이 책이 내용을 아무 것도 버리지 않고도 조금 얇아지고 기벼워질 수 있지않을까는 생각이 든다. 하다못해 내용적으로 편집을 다시 해 그날그날 필요한 부분만 들고 다닐 수 있는 분권형태로 책을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책을 들고 규슈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드는 생각이다.

나는 참 욕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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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된지  얼마된 것 같지 않는데 벌써 딸아이가 대학진학을 했습니다.
어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다고 수원에 있는 동생집에 자기가 직접 전화를 해서 잠자리를 청했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오리엔 테이션을 마치고 나면, 일주일 뒤에 입학식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이별에 익숙할만도 한데
모처럼 한달여 집에서 지내고나서 또 멀리 딸아이를 낯선 도시로 떠나보내려하니 사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리사회에서 교육은 곧 입시를 말합니다.
인성, 인격, 교양 등 진정한 교육의 핵심이 떨어져나가고 
오직 지식 습득 능력과 경쟁력만을 추려 '교육'이란 이름을 붙여놓았지만
누구나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입시'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와 같은 경쟁력의 전능함을 현실로써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능이 영어몰입으로 대체되고,
실익이 명분을 목조르고,
결과적 성공이 과정의 가치를 내팽겨쳐도 좋은 세상에서
'교육'의 그렇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설득한다는 것은 
저 스스로에게 조차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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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학원-대성마이맥이 주최하는 대학지원전략 설명회가 13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행사에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가 주최측의 설명을 듣고 있다. 2009.12.13 /양윤모기자yoonmo@ hankyung.c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내적 외적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왜 공부가 중요한지. 왜 좋은 대학을 가야하는지 딸아이를 설득하는데
사실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저 자신마저 자신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주장이엇기 때문일 겁니다.
그와 같은 갈등 속에 딸아이는 훌쩍 자라버렸고,
이제 의엿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모든 갈등을 해소해 준 셈입니다.

책을 많이 읽어라, 교양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자식이 명문대를 합격해서 미래를 보장받기를 바라고 있는 이중성에
스스로 괴로워해야되는 우리사회 입시생 부모의 처지를 이제 벗어났지만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금 교육이 무엇인지 어떤 교육이 참교육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산골에서 자라 남들 다 시키는 학원이랑 과외도 없이
그만치 공부한 딸아이가 대견스럽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대학시절, 낭만이 넘치고 의미있는 켐퍼스 생활이
우리 딸의 앞날에 무궁무진 펼쳐지길 천지신명께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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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여행이 보편화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조선시대 팔자좋은 양반들은 머슴 등에 식량과 의복을 지우고 팔도의 명승을 찾아 '유람'을 다니기고 했고, 일생에 유산록 몇편은 기본으로 남겨야 선비 소리를 들었다고한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드디어 해외여행허가제가 풀리고 88올림픽 등을 통해 외국의 문물이 물밀듯 들어오고 일반 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그래도 배를 채우고 조금 여유가 있는 수준이 되고 나서야 비로서 '여행' 특히나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었을 것이다.

다시말해 주머니 사정이 '여행'이 가능할 만치 넉넉해진 뒤에야 사람들은 너나 할 것없이 '여행'의 멋과 맛을 찾아 '단체'로 몰려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지 주머니 사정만이 보편화된 여행 풍토를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넉넉해진 주머니 사정에 반비례해 궁핍해져가는 정신, 깊어가는 존재의 목마름이 사람들의 등을 떠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단체 여행객이 홀로걷는 여행으로, 여행이 순례로, 관광이 치유로 바뀌는 동안 세상은 그만치 또 변했고 사람들 역시 변해 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쏱아지는 여행기, 여행안내서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고, 여행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대리만족을 위해서도, 여행을 떠날 사람들을 위한 정보제공을 위해서도 풍성한 양식이 되어 주었다.

이 책 [사람풍경]은 흔해 빠진 단순한 여행 안내서나 여행기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사람풍경]은 변화된 시대를 앞서 구현한 새로운 양식의 여행서 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로마로 오클랜드로 피렌체로 물리적 공간 이동을 계속하지만 더불어 필자의 여정은 무의식에서 콤플렉스로, 불안에서 동일시로 이어지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여행지는 배경일뿐이고, 내면의 여정, 자아찾기의 먼 길을 헤멘 작가의 정신이력이 이 책의 주 테마일것이다.

'내안의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필자가 붙인 서문제목에서 보여지듯, [사람풍경]은 철저히 치유와 명상, 구도의 과정을 담고 있는 십우도이거나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 14처는 한단계 한단계 고양되어가는 정신의 부양을, 영적인 순례 여행을 나타내지만 [사람풍경]은 어떤 절대적인 정신의 고양단계를 향한 여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복잡하게 얼켜있는 인간 내면세계의 미묘한 감정들, 양태들을 엉킨 실타래 풀듯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게 풀어헤친 불안과 우을을 내려놓고, 자기애와 공감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은 그래서 쉽게 이해되고 공감되는 편안한 책이다.

그렇다고 해도 구도의 길은 작가의 글을 통해 대리 체험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이나 감상의 산물이 아니다. 읽은 책을 놓고 다시금 철저히 자신만의 길로 정진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 결국 인간 존재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사실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하나... '여행자'와 여행을 통해 글을 쓰는 '여행작가' 중 누가 더 깊은 여행의 맛과 멋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일화'를 특정한 관념, 혹은 감정에 연결지어 심리적 의미부여와 해석을 하다보니 가지게 되는 작위성이 조금은 거슬린다면... 작가의 존엄을 침해하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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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철 노는 재미가 농사짓고 사는 가장 큰 이유인데
왜 이리 겨울이 짧은지 모르겠습니다.
 
  


저가 사는 봉화는 겨울이 춥고 긴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아무 일도 없을 때는 그리도 춥고 긴 겨울이
꼭 농사일을 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면 
왜 그리 짧기만한 겨울인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은 한 철인데 저의 마음속에는
긴겨울과 짧은 겨울이 동시에 들어가 있는가 봅니다. 

 

우수가 지난 요 몇일 사이 본격적인 새해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닐하우스의 낡은 비닐을 걷어내어 새비닐로 바꾸고,
모판을 놓을 자리를 다듬고 전열선을 깔고, 속 터널을 만들고,
그리고 상토를 담은 모판에 고추씨를 부었습니다.
터널안에 모판을 늘어놓고 또다시 비닐과 이불을 덮어주고나니
이제 곧 고추를 딸 수 있을 것 같이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올해 고추 농사는 1200립짜리 8봉을 파종했습니다.
90%가 발아하고, 포트에 이종해서 활착한다치면
약 8~9천 포기 가량을 심게 됩니다.
고추 농사를 주로 하는 이웃에 비하면 너무 작은 양이지만
사실 혼자하는 농사치고는 만만한게 아닙니다.
거기다 주로 잡곡 농사를 위주로 하면서
덤으로 하는 농사다 보니 나중에 수확기가 되면
혼자 다 따기에 버거울 정도입니다.
그렇더라도 올 한해 고추 농사 잘되어
다 딸 수 없을 만치 주렁주렁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



한해의 희망을 담은 고추씨가 
봄기운 듬뿍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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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번은 순례여행을 떠나라'(경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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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지방의 88개 성지순례 사찰 중 75번 사찰인 젠츠우지를 순례 중인 일본인들. 이들은 이승의 업장을 없애기 위해서 흰색 수의를 입고 다니며 88개 사찰을 순례한다./김은진 기자
 

책 제목만 보고 나는 대답했다.

'그래. 떠나자 한번쯤은...'

하지만 금새 의문이 떠올랐다.

'중세도 아닌데 갑자기 순례길이라니?'

'나는 종교인도 아니잖아?'

그리고 짧은 망설임끝에 보다 근본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역시 일생에 한번은 순례길을 떠나야지.

아니 우리 인생이 바로 순례길의 연속이 아니든가?'

 

'' '걷기'가 유행이 되는 시절을 낳은

인간이 지나온 역사를 뒤돌아보자.

인간은 어느날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존재를 식민통치하는 신으로부터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낡은 신과 더불어 새로운 신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신을 통해 인간은 지상의 천국을 열망했고,

그리고 지상의 천국이 세워지는 하늘에는 항상 낡은 신의 호위가 있었다.

그렇게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려했지만,

새로운 신은 또다시 인간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고자 했다.

결국 낡은 신은 두터운 철문과 높은 담이 둘러처진 교회에 갇혔고,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 새로운 신은 베일을 벗고 본색을 드러냈다.

그것은 '자본'이었다.

위대한 조물주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계약은 깨어지고,

세상은 '자본'의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고,

인간은 자본의 지배를 수행하는 '총독'이 되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포기하고,

자본의 노예로서 인신포기각서에 서명해야했다.

이제 인간은 물량화되고, 계량화되고

그리고 이윤을 위한 '투입 요소'가 되었다.

그것도 위대한 '자본'의 하위 범주로 말이다.

 

그리고 자본의 지배가 정교해지는 만치

인간은 인간 본연의 모습에 목말라했다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고자하는 꿈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제 그 스스로의 삶의 지배자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인간은 새로운 신도 낡은 신도 아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섬기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섬기면서 동시에 섬김을 받는자가 되고자 했다.

 

그 깨달음의 끝에 사람들은 갑자기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기 삶의 가치를 찾아 길을 떠난단다.

신경정신과가 보편화되고,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세상,

온갖 치유 프로그램이 범람을 하고,

기성종교의 틀을 넘어 새로운 종교마저

위대한 과학의 시대를 침범하는데

 

인간은 다시 흙과 바람과 태양과 몸이 만나는 원초적 경험을 찾아 나선 것이다.

'걷기'는 그렇게 붐이 되었고, 카미노데 산티아고가 오시코쿠순례길이

그리고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탄생했다.

 

순례길에서는 지친 다리의 노고를 들어주고,

순례 도중에 죽음을 맞이할 경우 비목으로 쓸 지팡이 츠에는

어쩌면 순례가 끝난 뒤에서 영원히 가슴 속에 담고 다녀야할 지팡이 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서 의지타가, 죽어서 비목으로 남길 손때 찌든 지팡이 하나쯤 가슴속에 안고 산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그래도 덜 천대하고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인생의 한번은, 최소한 한번은 스스로의 삶을 찾아 먼 순례길을 떠나야 한다. 그길은 영원한 방랑의 길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아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리고 순례를 떠나기 전과는 다른, 순례를 다녀왔던 사람의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이 책이 테어나도록 한, 필자의 우울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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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그런 날이 온다. 다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고, 가던 길을 그냥 가기에는 왠지 억욱한 순간.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나이'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그런 날"



경향신문에실린 "[세계의 컬드여행지] 카미노 데 산티아고 800km도보 순례" 의 한 구절이다.

작년 어느날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저 한 구절에 나는 갑자기 '산티아고 데 카미노'에 빠져들었다. 저녁 내내 인터넷을 뒤지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의 블로그 순례기를 쫒아 산티아고 길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이렇게 살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는 순간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순례기를 서핑하는 일을 포기하면서 하나의 다짐을 하고  한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하나의 다짐은 2010년 가을 걷이가 끝나면 나 역시 먼저 떠난 순례자들의 발자국을 따라 길을 나서겠다는 것이었고, 한 권의 책은 바로 그 길의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줄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만날 때마다 내가 산티아고 이야기를 해대는 통에 도무지 궁금해서 베길수가 없었던 친구가 사서 읽고 나에게 선물한 책이다.
블로그의 짧은 순례기를 부담없이 읽다가 갑자기 한권의 책으로 다가온 산티아고 순례기가 사실은 좀 부담되었다. 미지의 길을 나서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 이상의 것을 취한다는 것은 그 길을 떠나느 설레임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금방 사라지고 서서히 책 속으러 빨려 들어갔고, 필자 최미선의 꽁무니를 쫒아 구멍난 운동화를 싣고 카미노를 쫄레쫄레 따라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김에 따라 점점 더 구체화되는 스페인의 들녘, 마을들 그리고 순례객들의 표정은 나의 마음속에 큰 흔적을 남겼다. 눈을 감으면 파스타의 향기가 코끝에 느껴졌고, 잠이 들면 생장 피드포르를 지나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덮으며 다시금 '길'과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사실 '여행'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여행은 여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필자가 전하는 산티아고 보다 그 글을 통해 받아들이는 독자의 산티아고는 더 절실함을 가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은 생각한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하는 의문을 10대에 가져 내일모레 오십이 다 된 지금까지 짊어 지고 온 인생길은 사실 좀 팍팍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 11월이면 산티아고 길을 떠나 2011년 신년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지나 '피니스테레'에서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멀리 석양에 젖은 대서양을 바라보며 나의 짐들을 내려 놓고 싶다. 짐을 가득 담은 배낭보다 더 무거운 '왜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하는 강박을 낡은 운동화와 함께 불사르고 그 연기 냄새만 코끝에 조금 남겨서 지금 이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읽는 책이 아니라, 같이 떠나는 책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돈과 명예, 지위를 지키는 사람이 줄어들고 이 모든 것을 다 가볍게 여기고 같이 길을 떠나는 도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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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우리 명호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졸업생보다 참가한 기관장이 더 많은 산골학교 졸업식이지만

세상의 어느 졸업식 못지않은 의미있고 아름다운 졸업식이었습니다.

 

두 학교 졸업생을 다 합쳐 10여명을 조금 넘는 학생이 졸업을 했지만

우리 명호에서 가장 멋진 졸업생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다동이 엄마이신 예연이 어머니십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 되고

정부는 뒤늦게 출산장려다 어쩐다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산골마을은 벌써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기고

산골학교는 비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귀하게 된 것은,

그만치 아이키우기가 어려워진 세상 탓일겁니다.

 

이전시대에는 잘사니 못사니 해도 아버지의 벌이로 한가족이 먹고살고,

가족의 틀내에서 아이의 양육이 어떤 식으로든 보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어 물량으로는 더 풍요로와졌지만

마음으로는 더 쫓기고 가난해졌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까지 돈벌이에 나서야만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맞벌이는 보편화되었지만

그에 맞춰 육아와 양육이 사회적으로 지원되고 보장되지 못하다보니

당연히 사람들은 출산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 왔지만

예연이 엄마는 당당한 다동이 엄마입니다.

예연이, 시연이, 청년이, 서연이

이렇게 네 자녀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그런 다동이 엄마가 어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네 자녀의 엄마로서도 하나도 부족함없이,

그리고 한명의 아내로서나, 시부모님의 며느리로서나

흠잡을 데 없는 모범 아내, 모범 며느리로 생활하면서,

그것도 "청량산장"(http://www.crsanjang.com/)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시면서
 
언제 어떻게 공부하시고 학교를 다니셨는지

지역 주민 모두가 깜짝 놀랬습니다.

 

사실 요즘의 졸업은 그렇게 어렵거나 귀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입학하고, 그리 어렵지 않게 졸업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예연이 엄마의 졸업이 그렇게 값진 것은

4아이의 엄마로서, 또 그렇게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그 모든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성취한 졸업이기 때문입니다.

 

축하케익을 자르고 건배를 올리면서 예연히 엄마는

오히러 졸업의 공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돌렸습니다.

 

"다 예연이 아빠 덕분입니다. 저희 남편께 감사드리구요.

그리고 기다려준 우리 아이들도 너무 고마워요."

 

모두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예연히 아빠의 이해와 마음의 지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의 졸업이 가능했겠습니까.

하지만 예연히 엄마였기에 여러가지로 어려운 형편속에서도

대학을 다니고 이렇게 졸업까지 하실 수 있었을 겁니다.

예연이 가족의 사랑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의 한사람으로서 무엇보다 더 고마운 것은

예연히 엄마를 통해 지역에 배움의 가치가 확산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두가 굳이 대학을 졸업할 필요도 없습니다만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배움의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연이네는 세상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지 위한

복지 사업에 대한 큰 희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정은 끊임없는 봉사와 배움의 과정들로 채워져야 할 것입니다.

그 원칙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배우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계신

예연이네 부부께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날 저녁 마을의 젊은 친구들이 예연이 엄마의 졸업을 축하드리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사실, 먹고 마시다보니 나중에는 졸업을 축하드리는 자린지,

줄업축하를 빌미로 술먹고 놀기 위한 자린지 불명확하게 되었지만

10여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윷판까지 벌려가면서

모처럼 흥겹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내린 눈때문에 졸업식에도 못가보고
이러헤 저녁파티 사진으로만 예쁜 소식 꾸몃습니다.
예연이 엄마의 졸업을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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