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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사람이 된지 12년째지만
아직 봉화를 안다고 하기엔 한참은 멀었습니다.
봉화가 너무 넓기도하고, 또 농사짓고 사는 삶이다보니
이골저골 다녀볼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웃에 비해 그래도 많이 돌아다녀봤다고
자부하면서도 봉화의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터 내리고 살아온 마을들중 나의 발길이 다았던 마을은
전체의 백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가 '봉화 마을 순례'를 나선 첫번째 이유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봉화 마을 순례'를 해 나갈 계획이기 때문에
나머지 이유들은 다음기회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정은 갈골입구에서 시작했습니다.
비나리 집에서 12시 42분에 차로 이동하여
정확히 오후12시49분에 갈골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간략한 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1시40분 이정환씨댁 도착

- 2시 40분 만리산 임도 갈림길에 도착

- 신라리입구도착(갈골입구에서 7.3km지점)

- 문촌(10.5km)

- 토일(12.4km)

- 4시40분 고지바우

- 골안 입구 (14.6km)

- 5시 34분 골안임도입구(17.4km)

- 918번도로 만나는 곳(19km)

918번 지방도를 만나 걷다가 버스를 만나 비나리로 갈 예정이었는데

역계정모씨 덕분에 골안임도입구에서 차를 얻어타고

출발점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오늘은 총 4시간 45분동안 17.4km(알맵으로 측정했을때 그렇게 나온걸 보면 실제는 19~20KM)쯤 걸었습니다.

 

여정중에 '겨우살이'차와 사과를 내놓은신 이정환 형님내외분과,

신라재에서 길을 알려준 산중 암자에 계신 젊은 여승께 감사드립니다.

부디 성불하시길...

 

* 이번 마을 걷기를 통해 한가지 꿈이 또 늘었습니다.
봉화군의 구석구석을 매주 한번씩 걷다보면
[하루 도보여행 코스]가 파악될거고
그러면 그 정보를 모으고 가공해 하루코스의
오지마을 도보여행 코스를홍보하는 겁니다.

제주 올레길과 전라도의 남도길(서편제 배경이 된)처럼
우리 봉화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도보여행코스가 만들어지고
그래서 저가 나중에 봉화도보여행 전문 가이드가 되면
농사지어 먹고살기보다 혹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ㅋㅋㅋ



200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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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걷는 재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많이 걸어본 적도 없고, 걷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지

오래되지도 못했지만 요즘 들어 부쩍이나 걷고 싶습니다.

최근에 소백산도 걷고, 장복산도 걷고, 청량산도 걷고

동네 앞산도 걷고 또 강변길도 걸었습니다.

물론 많이 걸어봤자 10km내외, 반나절 코스였지만

한번 걷고 나면 그 흥이 일주일은 족히 가는것 같습니다.

무미건조한 삶에 활력을 주는 것은 물론

건강이 좋아졌는지 몸도 가벼워지고

우울한 기분도 가쉬고 쾌할함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래서 앞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면, 저가 살고 있는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

이웃마을과 골짜기, 산들을 고루 걸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제대로 알고 느끼고도 싶고,

덤으로 건강한 육체와 맑은 정신도 얻을 것이라 기대도 해 봅니다.

이번주에는 갈곡입구에서 신라리까지 걸어갈 생각입니다.

갈곡입구에서 신라리까지는 10KM가 조금 더 되는 골짜기인데

최근에 입구쪽부터 포장이 되곤있지만

아직 그 원시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맑은 계곡입니다.

신라리는 만리산 건너 상운면이고

다시 비나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봉성면을 지나

명호면 소재지를 돌아 와야합니다.

신라리에서 비나리까지는 차로 20분가량 걸리지만

봉성면 까지 걸어나온다면 10분정도면 충분합니다.

걷다가 지치면 이웃을 호출해 차를 태워  달라고 부탁해

돌아올 생각입니다만

가능한한 멀리 걸을 생각입니다.

같이 걷기를 원하시는 이웃이 있다면

이번주 일요일 오후 1시 갈곡입구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참가비 무료, 준비물은 물과 약간의 간식이면 충분합니다.

그냥 아무말없이 같이 걷고 싶으신분 모두다 환영합니다.

일단 참가자는 저와 저 와이프가 현재로선 전부입니다.

혹시 오지 산골 마을을 탐방하고 싶으신 외지인이나 도시민이 계시면 

함께 하셔도 좋습니다.

낡았지만 가치있는 삶의 흔적을 찾고

아름답고 맑은 자연속에서 같이 반나절을 걷고 나면

모두다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0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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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지인들과 함께 청량산강변길을 걸었습니다.

북곡리에서 국도를 따라 청량산 입구를 지날때면

강건너 청량산 자락을 따라 새롭게 단장된 옛길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난해 수해때 흩어러진 강둑을 보수하면서

자동차가 없던 시절 오랜 세월동안 지역주민이 짚신발로 지게를 지고 다니던

옛길을 되살려 놓았습니다.

청량산 강변길은 청량산을 감아도는 낙동강을 따라

오랜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욱이 이우어 놓은 길이지만

자동차가 생겨나고 새로운 신작로가 나면서서

흙에 묻히고 물에 씻겨 그 흔적만이 겨우 남아 있던 옛길이었습니다.

그 길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 우리 선조의 옛삶의 정취를 느끼고

보다 가깝게 아름다운 자연과 유구한 세월의 깊이을 느낄수 있는

아름다운 길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이웃과 우리 지역을 찾는 많은 분들께 이길을 걷기를 권합니다.

 

산행 코스 :

10시30분 북곡리 출발 - 강변길 걷기 30분 - 청량산입구에서 휴식
- 청량산집인로를 따라 올라가다 도로 오른쪽 넘어 옛길을 걷다 -
청량폭포에서 왼쪽으로 두들마을 가는길 진입 -
두들마을을 지나 서북행(여기서부터 등산로 없음)

-경사가 가파르고 길도 없는 숲을 헤메어 겨우 금강대. 금강굴을 찾음(오후 1시) - 금강굴에서 30여분 휴식후- 입내비마을을 통해 강변길로 내려옮(금강대에서 입내비까지 길이 없음, 칡덩쿨과 칠레 덩쿨을 뚫고 진행 - 북곡리에 도착(오후4시)
 


두들마을 가는길에서 왔던 길을 내려다보다.


두들마을 가는길에 마을을 지키는 당나무


금강굴의 모습. 한때 남로당 경북도당 본부로 사용되었다는 금강굴은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많은 가슴아픈 역사의 상처를 머금고 이제
온갖 산짐승의 안식처로 남아있었습니다.
다시는 없어야될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서 잠시 묵념을 올리고...


금강굴이 신라시대부터 암자터였다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여러시대에 걸친
다양한 기와조각들을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입내비 마을의 고독한 폐가..
최근까지 산사람들이 도딲으러 와서 거쳐하곤했다는데
지금은 사람의 흔적만 남아있을뿐
그 온기는 간데 없이 가혹한 세월의 힘에 침식되고 있었습니다.

<200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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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나리미술관에서 어린이 미술교실이 있었습니다.

따사로운 봄햇살과 훈훈한 봄바람 속에
온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그림은 조금 그렸지만
겨우내 꽁꽁 얼었던 마음을 열고,
온동네가 시끌시끌 할 만치 신나게 뛰어 놀았습니다.
 

올해 부터는 비나리미술관에서 주관하는 밭두렁미술학교를
봉화문화원과 봉화자활센타가 후원하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봉화문화원에서는 월20만원의 강사비를 지원해주고,
봉화자활센타에서는 명호면소재지에서 비나리미술관까지
봉고차를 운영해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전에 평균 15에서 20명 정도의 어린이가 참여를 했는데
이날은 멀리 영주나 춘양에서 오던 아이들이
연락이 늦어 참가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명호면 아이들만 근 30명이 비나리미술관을 찾았습니다.
같이 오신 부모님까지 비나리미술관을 중심으로해서
온 비나리동네가 사람사는 훈기로 가득 넘쳤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교육이 영어 등 기능교육이 중시되면서
아이들의 감수성을 개발하고 북돋우는
예체능 교육이 찬밥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산골마을 비나리에서
아이들이 미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친구와 어울리며,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수업에 참가하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서나
수업을 주관하는 강사의 입장에서나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날 수업을 위해 일찍부터 내려오셨어 미술관 청소며 수업준비를 도와주신
김종미선생님, 그리고 자활센타에서 봉고를 몰고 오신 선생님,
수업 진행에서부터 정리까지 도와주신 관용이 어머니와 용수어머니,
그리고 이날 같이 해주신 모든 학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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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은 무슨 뜻일까? 인문학을 하면 행복해진다? 아니면 인문학은 의당 인간의 행복에 복무해야한다. 그것도 아니면 인문학은 당연히 행복학이다? 아마 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까지 인문학은 인간의 보편적 행복에 기여해오지 못했는가? 아마도 이책은 그점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대중인문학 강연의 성과물일 것이다. 지금까지 인문학이, 아니 일반 학문과 지식이 인간 개개인의 행복과 인류공동체의 선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역할하거나, 학자 개인의 지적 교양적 수단 혹은 생계 수단에 불과했던 측면이 있다. 그래서 '지식소매상'이라는 자조가 학자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오고, 인문학 무용론을 넘어 '인문학의 종말론'까지 회자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는 우리 사회가 가진 특수성에 기인 한 바도 크다.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급속히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전통적 인문학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고, 급조해서 수입한 서구의 인문학은 아직 내재화되지 못한 이런 상태에서 오직 경제성장, 경제대국의 길로 매진해온 우리에게 '인문학'은 거의 말라붙은 개뼈다귀 취급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몇년전부터 갑자기 '인문학강좌'붐이 일었다. 2006년 '가난한 이를 위한 희망수업'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의 방한 즈음해서 한국에도 인문학 강좌가 종교단체나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개설되었다. 2010년 현재는 이곳 경북 봉화군까지 인문학 강좌가 개설되었다는 플랭카드가 거리에 걸려 있을 정도이니 이는 필시 전국적인 현상일거다. 그런데 왜 지금 인문학일까?

막연히 드는 두요인은 서로 상극적이다. 우리사회가 언제부턴가 일정하게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어 이제 인간의 가치, 삶의 질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일정한 경제성장을 뒤이어 국가부도사태라는 IMF와 양극화의 심화가 인간 개개인의 행복과 삶의 안정성을 근본으로부터 흔들어 놓았다. 바로 이 두 요인이 부딧는 자리에 인문학이 개입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고고한 인문학이 천박한 시장거리에서 '무식한'대중을 만나 소통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않다. 인문학이 고작 자본주의체제의 패해를 뒤치닥거리함으로써 체제 안정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해도 좋은가, 오갈데 없는 고학력 실업자들 푼돈벌이 시켜주기 위한 수단아니냐는 의혹이 그것이다.
사실 이런 부정적 의문을 해소하는 길은 인문학이 복지를 강화하고 경쟁을 완화하여 인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제도화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줄 수 밖에는 없어 보인다.
이런 의문의 이면에는 최근의 '인문학 강좌'를  이전의 소위 '의식화'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 '의식화'가 체제저항적 계급의식을 고양하고, 개인을 변혁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학습과정이었다면, 인문학강좌는 체제 내적 인간 개인의 정신적 만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체제에 순치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갈라지는 의견은 봉합하기란 쉽지않다. 근본적인 인식의 기반, 가치 기반 자체가 다를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를 진전시키는 일은 쉽지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래서 [인문학강좌]가 무의미하던가 유해한가 하는 의문에만 답하고 싶다.  모든 시대, 모든 국면에서 근본주의 기획이 항상 올바른 선택, 최고의 지고지순한 도적적 결정으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이 가로 막힌 지점에서 상처받은 체제내적 인간의 개인적 행복을 도모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진보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제도화하고 보편화 함으로써 인간 삶의 가능성을 한단계 끌어올리냐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사회밖으로 내팽겨치진 '하류인간'을 사회와 다시 소통할 수 있게하는 매개로서의 인문학,
'인간'의 무리에서 이탈한 무리를 다시 인간으로 복귀시키는 치유의 인문학을 통해 "일상화된 모욕사회"를 극복하고 인간 개개인이 주체의식을 회복함으로써 얼 숄리스가 제안한 윤리적 민주주의의 구현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처방이 어디있겠는가?
사실 다운그레이도와 귀농, 자발적 가난이 유행인 것만치 체제는 간고하고 개인은 무력하다. 지금 반체제가 아니라 탈체제하는 개인이 늘어나지만 언젠가는 체제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 살아야되는 개개인 삶의 소중함은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 소중함을 찾는데 인문학이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단연 인문학은 행복학일 수 있을 것이다.
 
이책 [희망의 인문학]을 읽는 재미는 무엇보다. 인문학 강의에 참가한 학자들의 글 중간중간에 게제된 수강생의 글을 읽는 데에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공감과 애틋한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이들 글들이 "희망의 인문학 강좌"를 통해 나같은 필부도 공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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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 산수유 꽃봉우리가 한껏 부풀었습니다.
오늘같은 햇살이면 몇일 지나지 않아 
꽃망울을 터뜨리고야 말것같습니다.
요 몇일 꽃샘추위 핑계로 대낮에 방구석에서 책도 읽고,
블로그도 주물럭거리면서 한가로움을 만끽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오후부터 갑자기 풀리기 시작한 날씨는
완연한 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푸른 하늘,
그리고 산들바람조차 훈기를 품었습니다.
드디어 더는 견디지 못하고 작업복을 챙겨입고 마당을 나섰습니다.


지난 몇일사이 고구마와 야콘 모종도 작업을 끝내었습니다.
다음 작업은 한 열흘뒤에 사과나무 500여그루를 심는 일인데
지금쯤 밭정리부터 들어가야합니다.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어 슬슬 일을 시작해야 되는데
다음주초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로하고
오늘 내일은 집주변 대추밭부터 손을 보기로했습니다.


지난 가을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
투명한 빛색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선사해주었던
시들은 국화며 코스모스며 여러가지 꽃 대궁을 거두고
국화꽃을 받쳐주고 있던 철사도 제거하고 
올 봄 나무를 심을 구덩이도 서너개 파놓는 걸로 
오늘 아름다운 봄의 하루 오후를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봄날의 하루는 어떠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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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김연아 선수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김선수가 실수없이 경기를 마치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이종덕 기자


집에서 TV를 없애버린지 몇년이나 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인터넷 상품을 바꾸면서 메가TV를 같이 신청했습니다.
아직 TV도 없는 집에 우선 통신회사 직원이 오시는 김에
우선 TV회선도 설치해 버릴 요량입니다.

7~8년전인가 갑자기 집에서 TV를 없애버린 이유는
무엇보다 TV가 잡아 먹는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저질 드라마나 개그 등이 많이 편성되어
정보적 가치나 정서적, 교양적 가치를 지닌 프로그램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그들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거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 있는 딸아이가 TV앞에 앉아 있는 꼴을 본다는 것도
마음편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때마침 인근도시에 사시는 장모님 TV가 고장났다고 하시기에
그냥 우리집 TV를 떼어다 가져다 드리고
당시 사용하던 스카이라이프를 끊어버렸습니다.

요즘도 식당 같은데서 TV를 접해 보면
연예인들 몇몇이 자기들 끼리 주고받는 잡담을 중심으로 만든 오락프로가
시청자의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조금 오버하면 TV가 바뀌지 않고, 시청자의 기호가 바뀌지 않고는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미디어 비평, 비판을 하시는 분들의 많은 지적이 있었겠지만
아직 TV의 주류는 그런 오락성, 말리말해 비판적 의식을 마취시키는
마취성 프로가 대부분이고 그 경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합니다.

그렇게 TV는 어쩌면 더 나쁜 쪽으로 발전했는데
왜 지금 이마당에 TV를 다시 갖추기로 했냐구요?
일단 TV가 주요 미디어의 하나인 만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TV를 알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동차 문화를 비판한다고 자동차를 타지 않을 수는 없듯이 말입니다.
TV의 소비자가 아니라, TV의 비판자로서 시청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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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세상이 모두 TV를 보는데
우리집에 TV를 갖추지 않아서 생기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뭐 중요한 실황중계 같은 걸 못보는건 그래도 참을 만한데
문제는 노인네들입니다.
우리집에는 장모님이던 저의 부모님이든 
한번 오시면 오래계시질 못합니다.
길고 긴 산골의 밤시간에 TV마저 없으니
노인네들이 심심해서 견뎌내질 못합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우리집에 다시 TV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웃에 TV 없으신 분은 
우리집에 새로 들어오는 TV방송 보러오세요^^* 
네? 벌써 40년전 이야기라구요?
진짜 40여년전 TV있는 이웃집에서 
구박받아가면서 황금박쥐며 프란다스의 개며, 우주소년 아톰
그리고 잊을 수없는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리을 보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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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지난 한해 봉화문화원 미술교실을 맡아 강의를 해왔는데
 [봉화문화]의 청탁을 받고 그 아름다운 시간을 정리한 글입니다.


아름다운 시간들

-류준화

긴장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미술 반 첫 수업이 벌써 일 년 전이 되었다.

작년 초, 그해는 개인전이 잡혀 있는 터라 다른 스케줄은 뒤로 하고 그림에만 올인 해볼 거라고 나름 일 년의 계획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미술 강좌 하나 맡아 달라고 하시면서 ‘바쁘면 더 열심히 살면 되지요. 바쁠수록 더 많은 일을 한답니다.’ 그러시는 문화원 사무국장님의 전화 한 통화에 일 년 계획을 다시 세웠던 기억이 난다.

막상 수업을 하기로 하고 나니 바빠진 일정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수업해할 지가 오히려 더 고민되었다. 무작위 다수를 향한 오픈된 미술수업은 처음이여서 어떤 분들이 강좌신청을 할지도 파악 되지 않았고 대상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 년 과정의 미술 강좌를 꾸린다는 게 덜컥 겁이 나기도 했었다.

또 한편으로는 미술의 경험유무와 상관없이 넘쳐나는 시각문화의 홍수 속에서 미술을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미술이 어떻게 다가가야 되는지, 개개인의 미적 감성을 어떻게 발현시킬 수 있는지를 몸의 총체적 감각 안에서 새로운 소통과 체험들로 변화된 시각문화에 접근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고도 싶었다. 물론 이런 수업은 보다 체계적이고 훈련된 수업준비가 많이 요구되는 것이라 생각으로만 그쳤지만 미술교육을 고민하는 입장에선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이긴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술이 누구에게라도 주눅 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오래된 습관처럼 우리의 미술수업은 늘 기능중심의 수업이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사물과 똑 같게 표현되어지는 것이 기준이었고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을 구분 짓기만 하는 전혀 창의적이지도 미적이지도 않는 수업이었다. 아마 그래서 그림에 재주가 없는 아이로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대다수의 어른들은 학교를 떠남과 동시에 미술과는 벽을 쌓게 되었고 자신의 미감을 절대 발설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것이 지금까지 보아 온 내 주변의 대다수 어른들이 미술을 대하는 태도였다. 몸의 세포 수만큼이나 다양한 감각의 층을 우리의 미술교육은 묘사력 하나로 정리해 버렸다.  

미술은 자유로움이고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어떤 창작품이든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미술로 놀고 미술로 표현하고 삶과 함께 일상 속에서 미술은 즐겨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적어도 나의 수업의 목표는 미술로 인해 주눅 들게 했던 벽을 허무는 것이길 원했고, 두려움을 없애고 나를 즐길 줄 아는 시간이 되길 원했다.

나의 예상대로 수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 이후 거의 미술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셨다. 우리도 잘 그릴 수 있을까요? 라고 첫 수업시간에 내게 물었다.

그렇게 첫 수업에서 보였던 두려움은 몇 번의 수업 후 금방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그녀들을 억압했던 두려움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시켰다. 난 벽을 허물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던 열망들이 곧 열정이 되었고 오히려 내가 학생들의 열정을 따라가기 바빴다.

너무나 즐겁고 신나게 수업을 하느라 학생들 개개인에게 미술이 무엇인지 미술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녀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감성들을 끄집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해내는 것에 자유로웠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손끝에서 나오는 희열들을 맘껏 즐기고 있었고 의도대로 그려지든 그렇지 않든 자기 몸의 모든 감각들이 한곳에 집중되는 쾌를 느끼고 있었다. 잠재되어 있던 오감들이 팽창되어 한껏 부풀어 오른 열정으로 충만했고 나는 살짝 건드리기만 했을 뿐인데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았다.

초등학생에서부터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까지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이 모인 미술수업은 나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오히려 내가 미술을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을 배우는 중이였다. 미술반 강의실 앞을 지나가던 누군가는 미술반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고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핀잔 아닌 질투를 보이기도 했었는데 그 유쾌함이 좋았다. 같은 그림을 반복 또 반복하며 최상의 것을 만들려는 노력과 자신의 감성을 계속 유지하려는 의지와 함께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과도 같은 긴 일 년의 수업과정을 끝내고 그간의 결과물들을 모아 소박하지만 커다란 울림이 있는 전시회를 가졌다.

우리도 잘 그릴 수 있을까요? 라고 첫 수업시간에 했던 질문을 아무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잘 그렸다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린 지도 모른다. 이미 모두들 아름다운 시간들이 무엇인지 알아 버렸고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이 그림들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은 씨앗을 뿌린 기분이었다. 불과 일 년 만에 너무나 훌륭한 작품들을 쏟아 놓으니 다음의 전시가 기대된다. 작은 씨앗 속에 큰 나무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행복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누구도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는 나의 교육목표는 이룬 듯하다.

201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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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비나리 정보화마을 주민 교육이 이특째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블로그와 트위트의 활용]이었습니다.
그동안 막연히 트위터가 무엇인지,
트위터를 블로그에 어떻게 연동한다는 건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교육을 받고는 그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되었습니다.
덤으로 최일규 강사님의 배려로 '아이폰'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접하고 이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 교육에 참가한 주민 모두 유익한 저녁시간을 같이 보내고
즐거운 배움의 기회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교육 덕분에 마을 주민 블로그가 엉청 늘어났습니다.
모두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아기자기 오손도손
나름의 세상을 꾸려 나가실 것입니다.
한번씩 찾아보시고 반가운 인사도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마을 주민 티스토리 블로그를 소개합니다.*

정규상  http://nevercom.tistory.com

이용성  http://namunesup.tistory.com

정근영  http://skylili.tistory.com

김종미  http://whitechocolat.tistory.com

윤미희  http://wowbad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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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야콘 파종을 마쳤습니다.
고구마는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 보일러실에 쌓아두고
주문이 간혹 들어오면 조금씩 팔기도하고,
가까운 이웃과나무어 먹기도하면서 겨울을 나고
이제 다시 싹을 띄우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굽은 소나무가 묘를 지킨다고,
모양이 좋은 놈은 다 팔려나가고 남은 못생긴 놈들만 
고구마농사를 잇기위해 종자로 남았습니다.
작년에 500여평을 심어, 사실 많이 남아버렸는데
올해는 한 300평만 심을 생각입니다.

야콘은 줄기와 먹는 뿌리사이에 돌덩이 은 모양의 '뇌두'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눈이 수십개씩 달려있다가 봄이되어 온도와 습도가 맞으면 싹을 틔웁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을 끝내고 이 뇌두를 컨테이너박스로 5박스정도 모아서
땅을 깊이 파고 묻어 놓았습니다.
50CM깊이로 땅을 파고, 그 밑에 낙엽을 깔고 뇌두를 놓은 뒤에 
이불을 덮고 다시 비닐을 덮은뒤 흙은 두텁게 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빗물이나 눈이 녹은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위해 마 비닐을 씌우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고정시켜놓았습니다.

올 겨울 추위가 대단했기때문에 혹시라도 얼어썩지나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건강히 겨울을 잘 났습니다.   
그 놈들을 캐내어 비닐하우스에 모판을 만들고
나란히 심었습니다.

먼저 고구마를 심고, 다음에 야콘을 심었습니다,
한 하우스안에서 어깨를 맞대고 누워있는 야콘과 고구마가
사이좋게 싹을 틔우고 무럭투럭 자라나길 산신령님께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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