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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여행이 보편화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조선시대 팔자좋은 양반들은 머슴 등에 식량과 의복을 지우고 팔도의 명승을 찾아 '유람'을 다니기고 했고, 일생에 유산록 몇편은 기본으로 남겨야 선비 소리를 들었다고한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드디어 해외여행허가제가 풀리고 88올림픽 등을 통해 외국의 문물이 물밀듯 들어오고 일반 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그래도 배를 채우고 조금 여유가 있는 수준이 되고 나서야 비로서 '여행' 특히나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었을 것이다.

다시말해 주머니 사정이 '여행'이 가능할 만치 넉넉해진 뒤에야 사람들은 너나 할 것없이 '여행'의 멋과 맛을 찾아 '단체'로 몰려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지 주머니 사정만이 보편화된 여행 풍토를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넉넉해진 주머니 사정에 반비례해 궁핍해져가는 정신, 깊어가는 존재의 목마름이 사람들의 등을 떠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단체 여행객이 홀로걷는 여행으로, 여행이 순례로, 관광이 치유로 바뀌는 동안 세상은 그만치 또 변했고 사람들 역시 변해 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쏱아지는 여행기, 여행안내서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고, 여행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대리만족을 위해서도, 여행을 떠날 사람들을 위한 정보제공을 위해서도 풍성한 양식이 되어 주었다.

이 책 [사람풍경]은 흔해 빠진 단순한 여행 안내서나 여행기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사람풍경]은 변화된 시대를 앞서 구현한 새로운 양식의 여행서 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로마로 오클랜드로 피렌체로 물리적 공간 이동을 계속하지만 더불어 필자의 여정은 무의식에서 콤플렉스로, 불안에서 동일시로 이어지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여행지는 배경일뿐이고, 내면의 여정, 자아찾기의 먼 길을 헤멘 작가의 정신이력이 이 책의 주 테마일것이다.

'내안의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필자가 붙인 서문제목에서 보여지듯, [사람풍경]은 철저히 치유와 명상, 구도의 과정을 담고 있는 십우도이거나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 14처는 한단계 한단계 고양되어가는 정신의 부양을, 영적인 순례 여행을 나타내지만 [사람풍경]은 어떤 절대적인 정신의 고양단계를 향한 여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복잡하게 얼켜있는 인간 내면세계의 미묘한 감정들, 양태들을 엉킨 실타래 풀듯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게 풀어헤친 불안과 우을을 내려놓고, 자기애와 공감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은 그래서 쉽게 이해되고 공감되는 편안한 책이다.

그렇다고 해도 구도의 길은 작가의 글을 통해 대리 체험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이나 감상의 산물이 아니다. 읽은 책을 놓고 다시금 철저히 자신만의 길로 정진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 결국 인간 존재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사실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하나... '여행자'와 여행을 통해 글을 쓰는 '여행작가' 중 누가 더 깊은 여행의 맛과 멋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일화'를 특정한 관념, 혹은 감정에 연결지어 심리적 의미부여와 해석을 하다보니 가지게 되는 작위성이 조금은 거슬린다면... 작가의 존엄을 침해하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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