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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농사 14년째로 접어 들지만,
정미소는 오다가다 보고 어쩌다 남따라 구경만 갔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직접 이용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미소는 그야말로 쌀을 찧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고
쌀농사를 짓지 않는 저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곳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든 것이 작년에 처음으로 수수와 기장, 그리고 조 농사를 짓게 되면서 
정미소와의 생각지도 않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남들 다 수확 끝낸 초겨울, 어렵사리 수수와 기장, 조를 수확 해서
거의 한달 가량을 집의 비닐 하우스에 늘어 놓았습니다.
처음으로 지은 잡곡 농사라서 사실 어떻게 수확을 해서 탈곡을 하고,
그리고 정미를 하는지 안무런 감도 없이 오직 이웃어른께 여쭙고 
어림짐작으로 그 모든 과정을 해치워야 했습니다.
다행이 수확한 양이 많지 않아 3~4일을 쭈구려 앉아
일일이 알곡 송이를 손으로 비벼 탈곡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정미를 해야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용 소형 정미기가 있는 동네 형님들 신세를 질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계는 조는 되는데 수수는 안되고,
또 어떤 기계는 기장이 잘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저런 기계에 따라 용도가 달라
3가지 곡식을 빻을려고 하면 이집 저집 들고 다녀야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웃 형님 한분께서 소개해 주신 안동에 있는 정미소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잡곡이라도, 그리고 적은 양이라도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빻아주는 정미소라는 것이었습니다.


안동 근처에 볼인 보려 가는 길에 소개받은 정미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종류는 3가지나 되는데 양은 얼마되지 않아 못빻아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해서라도 빻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건데
주인 아주머니가 하도 싸늘하게 말씀하시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나왔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안동의 또 다른 정미소를 찾아 갔습니다만
이번에는 잡곡을 정미하는 기계 자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허탕을 치고, 몇일뒤 봉화읍 나가는 길에 봉화의 한 정미소를 들러 봤습니다.
역시 잡곡을 빻는 기계가 없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잡곡이 건강 식품으로 인기를 회복하고 값도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다른 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이 쉬운만치 가격이 워낙 형편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농사 조건이 열악한 두메산골에서나 조금 지었지 
잡곡 농사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되었고,
정미소에서도 잡곡 정미를 위한 기계를 갖추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농가에서는 가정용 정미기를 갖추어 집에서 먹고 자식들 나누어 줄
쌀이나 잡곡을 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일을 트럭에 싣고 다니던 잡곡은 영 엉뚱한 곳에서 정미를 하게 되었습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바로  저가 살고 있는 명호면 소재지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국도변에
정미소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없는 잡곡용 정미기가 당연히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에 찾아가 봤더니 잡곡용 정미 기계도 있을뿐아니라
소량을 알곡도 혼쾌히 정미를 해 주시겠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다시 정미소를 찾아 작업을 끝낸 수수와 조를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기장은 탈피가 잘 안되어 정미소에 딸린 따뜻한 방바닥에
늘어 놓으시고는 설지나서 정미를 해 놓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집 수수랑, 기장이랑, 조를 정미해 주신
명호면 도천리에 있는 명호정미소 박종석 사장님께 감사드리구요.
올해는 본격적으로 잡곡 농사를 지어 좀 많은 양을 들고
다시 정미부탁드리려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 이 포스트에 나오는 정미소 풍경 사진은 모두 명호 정미소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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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음력으로 섣달(12월) 25일로 비나리마을 초롱계가 있는 날입니다.
초롱계는 비나리마을의 전통으로 전기가 없던 시절,
큰일을 치루는 이웃에 초롱불로 부조를 하던 전통으로부터 전래되었습니다.
이웃에 상이나, 혼례가 있으면  집집이 한손에는 두부나 떡을 해 들고, 
또 한손에는 초롱불을 들고 큰일을 치루는 집으로 향했답니다. 
그렇게 이웃을 도와 가며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나마
마음 넉넉하게 살아올 수 있게 했던 아름답고 지혜로운 전통이었습니다.  
이웃의 도움으로 큰일을 치룬 주인은 그뒤 자신의 사정에 맞춰
적당한 금액의 돈을 초롱계 기금으로 내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인 돈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새마을운동으로 전통 공동체 문화가 쑥대밭이 되기전인
1970년대 초까지 이어져오던 초롱계는 그뒤 마을의 쇠락까지 겹쳐
그 흔적만이 남아 동네 상여계와 합쳐져 유지되고 있습니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나서 초롱을 부조하던 전통은 사라지고,
초롱계의 형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동네에 상이 났을 때 상주가 상여꾼에게 주는 노잣돈을 모아
여러가지 마을행사 비용이나 마을 공용 비품을 조달하는데 사용하고,
그러고도 남는 기금은 마을 주민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일정한 이자를 물고 1년단위로 빌려주는 '계'가 '초롱계'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초롱계 날은 그렇게 빌려간 돈을 이자와 함께 모아서,
지난 일년간 동네일로 쓴 금액을 제하고
나머지를 다시 필요한 주민에게 빌려주고,
그 모든 내용을 기록하고 서명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치고,
술과 음식을 나누며 주민 모두가 하루를 즐기는 그런 날입니다. 

비나리마을 초롱계 기금은 이제 몇백만원 남지 않았습니다.
10수년 전만해도 동네에 상이나면  이웃 주민이 상여꾼으로 돕고,
상주가 내어놓은 노잣돈은 초롱계 기금으로 모았습니다.
하지만 마을에 인구가 줄고, 특히 상여를 맬 청장년이 줄어들면서 
초롱계 기금으로 모으던 노잣돈을 상여꾼의 일당으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해가 갈수록 기금이 줄어들어
앞으로 몇년이나 더 초롱계가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초롱계의 형식은 세월따라 바뀌었지만 이웃의 대사에
초롱을 부조하는 아름다운 전통은
'비나리 초롱축제'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입니다.
몇년전 비나리산골미술관 개관식에 맞춰 초롱을 부조하는 초롱행렬을
개관식 참가객과 주민이 함께 재현한 적이 있습니다.
세월따라 알게 모르게 침체되고 생기를 잃은 마을이
수많은 초롱행렬로 아름답게 되살아나는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초롱행렬의 재현은 연년이 이어지지 못하고
예산의 벽에 부딪혀 중단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끊어진 초롱축제가 곧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한 청량산 인근마을과 더불어,
주민과의 연대와 소통에서, 마을과 마을의 연대와 소통을 이루는
축제의 장으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늦어도 내년가을이면 재현될 비나리초롱축제를  
올 한해 내내 조사하고 궁리하여 멋들어진  마을 축제로 준비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소멸되어가든 마을이 비나리초롱축제를 매개로 활력과 신명이 넘치는,
사람사는 마을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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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어디에서도 마찬가지 겠지만
산골에서 겨울나기에는 꼭 필요한 두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배를 불릴 양식은 밀할 것도 없고 
몸의 체온을 지켜줄 뗄감이 그것입니다.
가을 걷이가 마무리되면 산골 농부는 본격적으로 산을 오릅니다.
죽어 말라 비틀어진 나무부터, 지나치게 우거진 숲의 잡목까지
그리고 오고가는 농로나 밭을 가리는 성가신 나무까지 
닥치는데로 베어서 집으로 나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오는 나무로는 겨울나기가 쉽질 않습니다.
사실 집만해도 옛집이 아닙니다.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오는 초간 3간이 아닌다음에는
나무로 난방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뗄감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춥게 살고 아껴가며 불은 뗀다고해도
겨울 3~4달동안 1톤트럭으로 7~8대는 들어가야합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온돌아궁이가 아니고,
축열식 온수파이프방식의 난방을 하는 경우는 거의 '감당이 불감당'입니다.
우리집에도 작년 5월달에 나무보일러를 설치했습니다.
군청에서 석유연료 절약을 위해 보조금까지 주고 보급하는 덕분에 
보조 100만원 자부담 150만원짜리 나무보일러를 설치하게된 것입니다.

그전에 산을 개간하여 밭을 만들면서 베어놓은 나무들이 있어
가을에 되고 겨울이 와도 아무걱정없이 따뜻한 물을 만껏 쓰고
따뜻한 방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추위가 몰아닥치자 어지간히 나무를 해되지 않고서는
한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미리해 둔 나무는 떨어져가고 할 수없이, 눈길을 헤치고
산속을 헤메며 나무를 하러 나섰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올 한해 겨울은 쉽게 나게 되었습니다.
마을 인근의 산들에서 숲가꾸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벌목 전문가들이 산을 돌아다니며 잡목을 베고 우거진 숲은 정리하면서
그렇게 치워진 나무를 마음대로 싣어가도록 허락했습니다.

덕분에 어제  1톤 트럭으로 2대를 포함해 7~8대의 나무를 싣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적어도 내년 가을까지는  뗄감 걱정을 들었습니다.
그냥 배부르게 먹고 뜨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봄이 오기만을 가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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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문화예술의 존재조건

- 산업화의 중심에서 문화 예술을 통한 탈산업화의 상징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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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은 제철의 도시다. 철의 이미지는 차갑고 딱딱하다. 하지만 포항은 문화예술의 대척점에 서있을 것 같은 제철산업의 도시를 문화화, 예술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꽃과 그림이 가득한 푸른 청림동 만들기]등 각종의 공모 지원 사업 등 포항을 풍성한 문화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를 해오고 있고, 지역 미술문화의 전당인 포항시립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130억 원의 예산을 들인 포항 시립미술관은 기초자치단체가 건립한 경북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지역미술문화는 물론 한국미술 발전의 일익을 담당하고자 하는 포부를 표명하고 있다. 포항시립미술관은 다음 달 22일부터 내년 3월 14일까지 그 설립취지에 맞춰 ‘신철기 시대의 대장장이’를 주제로 개관전을 갖는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포항시립미술관 인근에 곧 ‘경북학생문화회관’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 시설은 경상북도 교육청이 420억의 예산을 들여 각종 공연장과 수련시설을 갖춰 경북의 청소년뿐 아니라 시민의 문화적 수요를 충당할 예정이다. 새로 건립되는 시설 뿐 아니라 포항 문화예술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포항문예회관은 근년에 들어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가지면서도 대중적인 각종 전시와 공연을 기획함으로써 시민친화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시도하고 있고, 일정한 성과도 얻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가 포항은 축제의 도시라 해도 가히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수많은 축제를 열어오고 있다.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비롯해 과메기축제, 포항 바다 국제연극제, 영일만축제, 구룡포 해변축제, 포항 국제 불빛축제, 정몽주축제, 일월문화제, 아트페스티발 등 포항은 연중 축제가 끊이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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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두고 보면 포항은 문화예술측면에서 가히 “꿈과 희망의 도시 글로벌포항”을 향한 순풍을 만난 듯하다. 하지만 최근 포항시가 추진 중인 전통문화체험관 건립이 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리는 등 문화 시설에 대한 과잉 투자와 과시적 행사가 과연 포항 지역 예술문화발전에 도움이 되는가는 의문이 싹트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문화공연시설이 그 규모에 걸 맞는 알찬 운영을 뒷전으로 한 채 과시적이고 행정적인 성과에 집착해 설립 운영되면서 철학의 결핍과 부실한 내용으로 운영의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엄청난 예산을 들여 지은 포항시립미술관이 그 외형적 규모에 어울리는 탄탄한 내실을 갖추고 지역주민의 삶을 문화 예술적으로 고양하는 미술관으로 운영될 수 있기 위한 인적, 내용적 준비를 건축 공사의 진척에 맞춰 갖추어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경북 지역의 학생 야영장, 청소년 수련관, 청소년 수련원의 경우도 꼭 필요한 지역에 설립하거나 낙후 시설에 당장 필요한 유지보수나 보완, 인적자원의 지원, 내용성 강화 등에 필요한 예산은 아끼면서 편협한 지역 이기주의와 행정 성과주의에 빠져 무분별하게 신설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설되고 있는 경북학생문화회관의 경우도 지역편중과 과잉 투자 문제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나 프로그램 개발에 인색한 채 오직 시설투자에만 올인 하는 문화적이지 못한 문화 행정의 산표본이 되지 않을까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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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에 조성된 해맞이 광장에 설치된 작품 '상생의 손'

포항은 제철산업을 중심으로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대표적 산업 도시로, 한국 사회가 가진 급속한 산업화의 성과와 그 한계를 오롯이 안고 있는 상징적 도시이다. 절대적 가난으로부터의 탈피가 범국가적인 절대절명의 과제이던 시절, 국가주의로 무장한 산업화 세력은 거의 전 국민적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내며 오직 경제성장에 매진했다. 산업화 세력은 경제적 합리주의와 개발주의를 앞세워 지난 시대로부터 전승되어 오던 공동체주의를 위시한 전통적 가치는 물론이고, 개발주의세력이 그 역할모델로 삼고자 했던 구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조차 그 존립의 근거로 받아들였던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 기회의 균등성,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최소한의 근본가치들마저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팽개쳐 버렸다. 산업화세력이 초가지붕을 강압적으로 제거할 때 초가지붕아래서 보전해오던 온갖 정신적 가치와 전통문화들도 함께 버려졌다. 그렇게 성장 제일주의라는 불도저가 밀고 지나간 자리에 공장과 빌딩이 들어서고 현대화된 고속도로가 놓여졌다. 개인들의 소비수준을 급격히 증대되었고, 꿈에 그리던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러나 폭발하는 한국경제의 성장이 저절로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었던 윤택한 개인적 삶은 표피에 그쳤고 정신적 빈곤과 문화적 갈증은 경제적 성장에 비례해서 높아만 갔고, 그와같은 상황에서 또 수많은 개인들은 물질적 성장의 혜택에서 마저 철저히 유리된채 물질적 정신적으로 이중의 피폐한 삶으로 몰아넣어졌다. 더불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경제 성장세가 주춤거리기 시작하자 한 시대를 지배한 성장제일주의는 회의의 대상이 되었고, 절대적 가치로 받아들여졌던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쉽게 내동댕이쳤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인간적 삶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가치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지역문화’도 그 즈음에 탄생한다. ‘지역문화’는 지역과 문화의 철저한 파괴를 통해 그 의미를 획득했다. ‘독립’의 의미가 주권을 잃은 뒤에야 극명해지듯, 일제강점기를 통해 민속문화-전통문화로 이루어진 지역문화에 대한 가치부정과 상징파괴가 수반된 뒤, 그리고 일제의 지배정신을 잇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새마을 운동을 통해 대대적인 지역문화-공동체문화의 말소작전이 자행된 뒤 비로소 ‘지역문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인식이 전면적으로 대두한다.

산업화 시대와 산업화의 극복이 과제가 되는 시대를 관통해 포항은 한국 사회의 중심에서 한발작도 벗어난 적이 없다. 한국 산업화의 과정, 그리고 한국식 산업화의 한계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의 문화화, 예술화가 과제로 제기되고 수행되는 시대의 중심에 바로 포항이 있다. 경북 지역사회로 한정해 보더라도 포항은 특별한 지위를 갖는 도시다. 포항은 구미와 더불어 경제적 자생력을 갖춘 경북의 두세 도시 중의 하나라고 보아도 무방하고, 그와 같은 경제적 자생력을 기반으로 해 도시를 예술-문화화 하는 선봉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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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산업의 도시를 예술-문화화 하는 과제가 시대적 화두가 되는 시점에서 한국사회의 문화적이지 못한 문화 행정을 극복하고, 산업화의 기반위에서 포항의 지역문화예술이 활짝 꽃피기 위해서는 문화와 예술이 무엇인지, 그것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시민의 삶과 융화되어 인간적 삶의 가치를 고양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 확산에 기여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더불어 문화예술이 어떻게 탄생하고 생존하고 번성하는가는 문화생태학적 고찰과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삶을 이끄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포항이라는 도시의 특성과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포항은 예술-문화의 가치기반을 되짚고, 그 지향을 뚜렷이 하는 한에서만 진정으로 ‘꿈과 희망의 도시 글로벌 포항‘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지난 산업화 시대를 주도한 도시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 가치의 생산지이자 보급의 전진기지가 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포항은 산업화 시대를 이끈 토건국가의 전위에서 산업화시대가 남긴 정신적 상흔을 치유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가치의 원천을 되짚고 가치지향을 뚜렷이 하는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포항의 문화예술이 새로운 시대에 기반 해야 할 가치는 산업화 시대를 이끈 물질 만능주의에 맞선 공동체주의와 인류의 보편적 인권, 그리고 자연을 무분별하게 착취하는 개발주의에 맞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자하는 생태주의이다. 이들 가치에 기반 할 때만이 포항의 문화 예술은 제철산업을 중심으로 한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희생된 가치와 정서를 회복하고 기형화된 도시적 기능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나아가 지역의 건강한 정체성을 세워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정신문화, 예술을 창조하고 통합과 상생의 문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포항이 탈경제의 가치를 주도하는 지역문화를 꽃피울 수 있길 기대한다. 한국 사회의 모든 고질적 현대병을 일으키는 암세포는 한국인의 의식을 철저히 지배하고 있는 경제 일원론에 기생한다. 이는 무분별한 산업화가 낳은 정신문화적 상흔이지만 경제에 마저 걸림돌이 될 만치 그 암 덩어리가 커져 벼렸다. 경제일원론으로 바라다본 한국 사회의 문제 해법은 오직 경제성장 이다. 그와 같은 사고가 교육에 전이되어서는 성적 지상주의, 학벌주의로 귀착되고, 사회는 복지 없는 경쟁만능주의로 내몰려 가족과 개인의 삶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내재적, 정신적 가치를 배제하고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시장주의가 황폐화시킨 세상을 치유하고, 경제의 단일 지배로부터 다양한 가치를 지키는 문화는 지역사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역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중앙으로부터 소외된 공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제라는 단일가치의 지배를 전복할 반역의 싹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획일화된 경제 만능주의의 지배 구조를 밝히는 과정이고, 지역의 차별적 위상을 또렷이 마주하는 작업이다. 지역의 위상을 분명히 인식하는 순간 지역의 정체성은 반경제, 반중앙에 기반한 대안문화 대안가치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전화되고 이렇게 만들어가는 지역의 정체성은 지역자치, 지역문화자치로 꽃피고, 탈경제의 가치를 지역문화라는 무기로 퍼뜨리는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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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포항은 식민화된 지역문화의 해방을 이끄는 지역문화예술의 성지로 거듭나야한다. 서울이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서울 문화가 표준 문화로 강요되는 시대에 포항은 다른 지역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울공화국의 변방이 가지는 지역성을 피할 수 없다. 지역의 여타 시군과 마찬가지로 포항 역시 ‘돈 벌어 서울 가서 사는 것’이 많은 시민의 평범한 꿈이고, 아이들 키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서울로 올려 보내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인생계획인 지역 사회의 일부이다. 따라서 포항 지역의 문화 예술은 지역의 삶, 지역의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해 지역민의 정체성을 찾는데 기여하는 지역성을 담보해야 한다. 서울문화를 추종하고 답습하여 그 아류가 되는 방식으로는 결코 포항이 문화예술의 도시가 될 수 없다. 포항의 문화예술이 그 지역성을 확고히 할 때 지역의 문화 공간들은 서울문화, 중앙문화를 지역에 배급하는 문화 대리점이 아니라 지역과 중앙의 문화와 삶이 만나고 소통하는 ‘장터’가 될 수 있고, 포항이 독자적 가치를 가진 주체적 문화 예술 도시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가치기반위에 세워질 포항의 문화예술은 현대화된 산업 기반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동적이고 전위적인 문화예술로 꽃피어야한다. 포항은 현대적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한국의 산업화를 선도한 현대공업도시인 포항은 산업화를 통하여 물질적 경제적 조건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경북의 다른 시군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교적 경건성, 박제화 된 교양주의 문화, 고루한 토호문화로부터 자유스러운 도시이다. 그 물질적 조건위에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 기반을 조성하고, 생동감 넘치는 현대적 전위예술이 꽃핀다면 포항은 하이브리드, 퓨전, 크로스오버가 보편화된 시대를 이끌 새로운 정신문화의 성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제는 오롯이 포항의 문화예술인, 더 중요하게는 시민의 몫이다. 미래적 가치와 문화가 융합되고, 문화와 시민의 삶이 일치되는 도시, 도시의 거리가 예술로 넘쳐나고 풍성한 정신문화가 시민의 일상을 행복으로 이끄는 그런 ‘글로벌 도시 포항’을 보고 싶다. [2009.12.10 / 송성일:농민]

 <참고자료>

“경북 '그저 그런' 학생 수련시설 70곳 … 실효성 논란”, 이영균, 경북일보, 2009.5.6.

[지역문화 그 진단과 처방], 임재해 저, 지식산업사, 2002.

[지역창조] 화천군지역혁신협의회 저, 도서출판 다움, 2007.

<이명박시대의 문화운동-문화정책 토론자료집>, 전효관, 민예총, 2008.

[왜 지역문화인가], 이현식 저, 로크미디어, 2007.

[당신의 문화 쾌적합니까], 문화연대 저, 문화과학사, 2001.

<상식으로 엮어낸 진보적 지역문화의 로드맵>, 목수정 저, 민노당정책연구원, 2006.

<탈경제의 가치를 지역문화가 주도하자> 등, 송성일, 컬처라인,2009.

[한국의 지역문화:현황 및 정책방향을 중심으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저, 대왕사, 2008.

 

 포항예술문화연구소 발간 [아트포럼] 2009.12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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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경제의 가치를 지역문화가 주도하자.

- '경제'를 극복한, '경제'를 압도하는 문화가 꽃피는 지역사회를 꿈꾼다 -

지역 문제의 근원은 '빈곤'일까? 절대적 빈곤의 문제가 '상대적 빈곤'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빈곤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지역의 문제를 경제적 소외, 경제적 박탈감이 중심이고, 문화적 소외나 교육, 의료의 결핍은 경제적 소외의 결과물로만 이해해도 좋을까? 지역 문제를 지역경제 활성화의 문제로 환원하고, 지역 문화를 지역 경제 활성화의 보조수단 쯤으로 바라다보아도 좋을까? 지역의 정치인은 중앙정부의 보조금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는가에 따라 정치적 운명을 달리해야하고, 지역주민은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언제라도 떠나도 좋은 곳으로 지역사회를 바라다본다. 이런 경제 일원론의 시대에 지역이란 무엇이며, 지역문화는 어떤 가치에 토대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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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홍대 앞 서교지하보도에서 지역주민과 인디문화 아티스트들이 인디문화 활성화 및 지역문화 공간의 대안 "서교지하보도 매립"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외부인이 바라보는 ‘지역’과 지역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지역민에게 이해되는 ‘지역’은 다르다. 외부인에게 ‘지역’은 과거를 추억하는 장소이거나,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과정에서 경쟁력을 잃고 밀려난 성장의 주변부, 시대의 잔존물로 연민의 대상이거나 질주하는 한국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거추장스런 걸림돌일지도 모른다.
 
지역민에게는 삶의 터전인 ‘지역’이 외부인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지역사회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이 일자리를 따라 잠깐 머물게 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지역’과, 누대에 걸쳐 살면서 조상의 묘와 그 흔적을 고스란히 보전하며 살아가는 터줏대감이 느끼는 고향으로서의 ‘지역’의 의미는 하늘과 땅차이일 것이다.
 
지역을 단순히 지리적 경계로 받아들인다면 그 경계는 불확실하다. 지역은 지리적 경계를 바탕으로 하지만, 또한 지리적 경계를 넘는 문화적 정체성에 토대한다. 하지만 그 문화적 정체성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난제는 문제의 근원을 모두 경제로 돌림으로서 실종되어 버렸다. 근원적 사고가 사라진 자리에는 천박한 물질주의가 자란다.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지역문화와 문화관련 사업이 논의되고 추진되는 현실은, 삶이 없는 문화와 문화 없는 문화상품화를 초래했다. 문화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지역문화를 일구는 전부가 되고, 문화예산은 건설토목예산의 경계에서 그 특성을 잃어버린다.  
   
지역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와 같은 경제 환원주의다. 경제일원론으로 바라다본 한국 사회 문제의 해법은, 오직 경제성장, 결국 성장제일주의이다. 그것이 교육의 장에서는 성적 지상주의, 학벌주의가 팽배하고, 권력과 돈의 독식구조가 안착되면서 개인의 삶은 질곡에 빠지고 소시민적 행복조차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개인의 삶을 이끄는 가치나 덕목은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돈과 돈을 위한 지위를 추구하는 현상이 차지했다. 돈으로 가늠되는 ‘성공’이라는 결과는 모든 비도덕적, 반사회적 과정을 정당화한다. 이 모든 현상을 경쟁사회의 당연한 귀결로, 성장통의 부수적 문제로 치부하는 순간 ‘위대한 서울민국’이 탄생했다. 사람과 돈, 권력의 서울 집중은 세종시 논란에서 보이듯 이미 고착화 단계에 들어갔다. 지역의 균형발전이란 화두는 서울, 경기의 지가하락과 이에 따른 경기하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이 문제의 이해당사자라고 간주되는 이 지역에 사는 인구가 국민의 절반을 넘는 상황에서 합리적 토론과 합의를 통한 세종시의 존속과 지역 균형발전은 불가능하다.
 
비나리마을에서 가진 소외지역 어린이를 위한 거리 연극 공연을 마친 뒤 뒤풀이 자리에서 볼리비아의 연극인은 물었다.
"이 아이들이 소외계층인가요?"
가난한 볼리비아 연극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두메산골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누린다. 사실 한국은 세계 수위의 경제대국이고, 1인당 국민소득 면에서도 구미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유국가다. 몇 번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비록 많은 개인의 삶이 파탄 나고 단란한 가정이 파괴되었지만, 이를 잘 극복해서 모범적으로 성장의 도정에 북귀했다. 언론은 그런 경제지표상의 성과를 대서특필하고, 지표상의 경제 성과와 괴리된 개인의 힘겹고 불안한 삶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화려한 경제지표 뒤에서 국민 대다수는 경제적 결핍에 허덕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 모든 현실은 경제가 나아진다고, 국민소득이 3만 불 시대에 도달한다고 해결된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부의 불균등을 해소하고, 복지정책을 강화함으로써 문제의 많은 부분이 해결되겠지만, 경제가 모든 가치, 모든 삶의 지향들을 몰아내어 생긴 상처의 치유는 경제로부터 삶의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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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의 지배로부터 다양한 가치를 지키는 문화는 지역사회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지역은 경제적으로, 중앙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공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제라는 단일가치의 지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싹이 자라는 땅이다. “지역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1)이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만들어가는 것은 획일화된 경제만능주의의 지배구조를 밝히는 과정이고, 경제만능주의가 낳은 국토의 기형적 발전으로 추락한 지역과 마주하는 작업이다. 지역의 위상과 마주하는 순간 지역의 정체성은 반 지배, 반 경제, 반중앙의 인식위에서 세워질 대안문화, 대안가치에 자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역의 정체성은 지역 자치, 지역문화자치로 꽃피고, 탈 경제의 가치를 지역문화로 확산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역문화란 지역에서 사는 일이며 지역민의 일상 속에서 만들어 가는 일"2)이다. 지역 문화는 정치적 구호가 대신할 수도 깃발 몇 개를 세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한 삶의 과정에서 파생한 가치와 지역민의 삶이 뒤엉킨 그 언저리 어디쯤에서 꽃피는 것이 바로 문화일 뿐이다. 그래서 문화운동은 정치운동과는 등치될 수 없는 고유영역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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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역문화 만들기는 지역 만들기가 기초이며, 지역 만들기는 사람 만들기가 필수조건이다.3) 결국 사람 사는 마을 만들기가 지역문화 만들기의 기본인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주민의 삶과 문화를 일치시키고 가치와 문화를 융합시키는 작업, 공동체의 정체성을 세우고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 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하고 공동체의 문화를 복원 혹은 새롭게 창조하는 일, 마을의 존재 가치를 확산하는 도농 간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것 등, 세계의 중심이 지역공동체, 나아가 마을에 있음을 확실히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와 같은 작업을 통해 지역이 사람 사는 공간, 삶과 문화, 역사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탈 경제의 새로운 가치를 탐색하고 실험하고 실현하는 기반으로서의 마을 공동체가 새 시대를 이끌 가치의 생산기지이자 전파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은 지역을 죽였지만, 지역은 서울을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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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동규 등 저,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가는 지역창조』, 다움, p. 4.
 2) 정찬용, 천승룡, 문충선 공저,『송산마을 속으로 들어가다』, 희망제작소, p.5.
 3) 위의 책, p.5, p.141.

송성일 | 2009-11-25  경북 북부권 문화정보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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