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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과천 정부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제2기 법무부 정책블로그 기자단 출범식에서 이귀남 법무장관(앞줄)과 대학생 및 일반인 기자단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번에 출범한 블로그 기자단은 법무부의 정책과 주요 이슈 등을 네티즌에게 보다 알기 쉽고 친숙하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남제현 기자


연초에
일본 연수를 다녀온 덕분에 지난 한달은

온통 일본에 대한 관심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한번 가고 싶은 열망으로 여행관련한 사이트를 뒤지고

수많은 여행기가 실려있는 다양한로그들도 방문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의 일본 연수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과정을 통해 블로그 운영의 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덧붙여 간혹 파워 블로거의 경우 벌이는 안되지만

용돈벌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의 과제를 스스로 상정했습니다.

파워블로거가 되자. 그리고 블로그 운영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그렇게 돈으로 연말에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자!

 

꿈같은 이야기지만,

일단
 이렇게 티스토리에 저의 블로그를 개설했습니다.

 

사실 블로그가 뜨기 위해서는 주제가 명확해야하고

나름의 전문성이 있어야한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블로그의 방향성을 확정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한달 정도 이런저런 다양한 포스팅을 하면서 방향을 잡아 나갈 계획입니다.

이제 10개정도의 포스팅을 하게 되니 처음 하루 한두명에 불과했던 방문객이

10~2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사실 하루 최소 1000명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야만 파워 블로그가 수있을것 같은데

아직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래도 이번로그를 만들면서 많응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이자리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따끈따끈한 지식 두세가지만 공유하고자합니다.

 

1. 보도사진을 비영리 목적으로 마음껏 사용할 있는 길이 최근에 열렸습니다.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가 참가하는 뉴스뱅크이미지F입니다.

http://free.newsbank.co.kr/

가입하시어 많은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사진을 퍼서 개인이나 마을 홈페이지, 까페, 블로그 등에 마음껏 올릴 있습니다.

사이트 덕분에 저는 와이프가 지난 2006 노짱과 함께 찍은 사진을 구할 있었답니다.(저의 티스토리 참조^^*)

 

2. 블러그에 수익프로그램 싣기

블러그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길은 특정 회사에 고용되어 회사나

상품 홍보를 위해 운영하는 블로그가 아니라면 사실 광고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블로그 운영하는 개인이 어디가서 광고를 올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블로그들에 활용할 있는 다양한 광고 프로그램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구글의 애드센스와 올블릿 등이 있는데 저는 둘을 우선 저의 블로그에 심을 계획입니다.

 벌써 올블릿은 실험적으로 운영을 시작했고, 애드센스는 신청을 상태입니다.

그렇게 하면 저의 블로그에 광고가 뜨고 방문자가 클릭하거나 클릭 상품 구매를 하면

일정액이 저의 계좌로 적립이 되는 방식입니다.

사실 한국의 파워블로그라고 봐야 50만원 벌이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돈을 보고는 블로그 운영을 못하지만, 블로그 운영의 부수입으로는 괜찮은 같습니다^^*

 

3. 인터넷 서점 예스24 개인 블로그를 운영할 있습니다.

여기에 리뷰 등을 싣을 있는데, '애드온' 선택하면

자신이 리뷰를 읽고 책을 구입하는 고객이 있으면 책값의 3%가

리뷰어의 계좌로 적립이 된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애드온' 프로그램은 외부 블로그(티스토리 ) 심어

운영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잽싸게 저의 블로그에 YES24 애드온을 심었습니다.

우선 6권의 책을 선택해 광고되도록 놓았습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 공유하고픈 지식이나 사상을 홍보하는 기회도 되고

덤으로 책을 사볼 수 있는 적립금까지 쌓일 수 있다면 

성과가 10원이 되든 100원이되든 신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언제 돈이 될지 모르지만 벌써 부자가 기분입니다.

(참고사항:YES24 적립금은 현금성이 아니고 책을 구입할수 만 있답니다.)

덧붙여 저는 올해 YES24블로그에 50권의 리뷰를 작정입니다.

 

이상 저의 천박한 돈만들기 지식 전수를 마치겠습니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댓글로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블로그를 개설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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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문展 / KANGSUKMOON / 姜錫汶 / painting   2009_1223 ▶ 2010_0110

강석문_풀과 친구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_98×33cm×4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20080723e | 강석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122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9:00pm

갤러리 쌈지_GALLERY SSAMZIE 서울 종로구 관훈동 38번지 쌈지길(아랫길 B1) Tel. +82.2.736.0900 www.ssamziegil.com

인사동 갤러리 쌈지에서는 2009년12월23일부터 2010년 01월10일까지 19일간 강석문 개인展을 전시합니다. 강석문은 삶의 터전(과수원)에서 늘 함께 하는 풀과 벌레와 나무의 모습들을, 하루하루 엮어가는 소소한 일상과 진정한 삶의 모습들로 작업의 화두를 삼고 있습니다. '안에서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자연 속에서 풀들과 대화하고 나무와 이야기하노라면 어느덧 자연과 동화된다'라고 말하며 작가는 화폭 속에 자연이 주는 생명의 소중함과 가족애를 담아 표현합니다. 2009년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과 2010년의 새로운 다짐의 1월의 메시지는 사랑입니다. 작품을 통해 따뜻함을 나누고 행복을 전하는 작가 강석문의 작품 세계에서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을 기대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0호-100호 크기의 다양한 작품 30여 점이 전시됩니다. 또한 연말연시 선물 시즌을 맞아 20-30만원 가격대의 소품들도 선보입니다. ■

강석문_풀 친구들 1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33×196cm_2009 강석문_풀 친구들 2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33×196cm_2009

우주의 중심엔 나무가 있었네 ● 강석문의 그림은 착하다. 하지만 그림을 '착하다'고 하면 비난이기 쉽다. '경쟁'이 세상을 움직이는 유일원리로, '경쟁력'을 지배적 가치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착함은 무능력이거나 무기력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류적 가치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한 없이 착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착함'이, '착한 그림'이 흉이 되는 세상을 향해 풀벌레보다 작은 소리로 외친다. 생명의 본질은 경쟁이나 지배가 아니고 조화와 협력임을! 그리고 그 외침을 화폭으로 옮겨 작은 세상을 이루었다. 그 세상은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뭍 생명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과수원'이다. '과수원'이 품고 있는 작은 '생명'들과 그 생명의 존재 원리이자 기초인 '가족성'은 그의 작업의 근간이자 끝없이 천착해 오고 있는 화두이다. 나무, 풀, 새, 그리고 작은 곤충들, 가끔 씩은 사람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자연과 구별되는 사람이 아니라 의인화된 나무에 벌레와 더불어 깃들여 사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은 평생을 나무와 더불어 살아 나무를 닮아 버린 사람-아버지(큰 나무)이고 그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온 아들-강석문(작은 나무)이다. 사람이 있고, 사람과 구별되는 나무가 있고, 풀과 풀벌레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작은 울타리 안의 우주-과수원의 뭍 생명들이 더불어 한 가족인 세상이 화폭 안으로 옮아왔다.

강석문_큰나무작은나무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162×130cm_2008
강석문_연인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101×34cm_2009 강석문_나무와 친구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143×78cm_2008

의인화된 생명체들로 가득한 그의 그림은 「소란한 봄날, 2009」조차 요란스럽지 않다. 폭발하는 생명의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한 봄날의 분주한 하루일 망정 결코 시끄럽지 않다. 사람의 눈으로 사람의 손으로 의인화된 나무와 벌레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 서로를 닮아버린 착한 자연-착한 생명만이 가득한 세상은 가을밤 암컷을 부르는 귀뚜라미의 애절한 소리조차 없다. 먹과 청과 적이 맞서는 것 같지만 결국 거친 붓 터치로 조화를 이루듯 갈등구조가 사라진 그의 화폭에서는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소리가 이내 잠잠해져 버린다. 그가 그려낸 세상은 산들바람에 풀잎 부딪는 작은 소리들, 풀벌레의 작은 몸을 쓸고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이 일으키는 작은 소리들만 가득한 청아한 세상이다. 「키스, 2007」와 「연인, 2008」이 사랑과 화해를 보여준다면, 「풀과 친구, 2009」 「꽃과 벌레, 2008」는 모든 생명들 간의 연대,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존재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인과 연으로 묶여있듯이 그의 작품 속에서 모든 사물과 생명들은 연인이자 친구다. 서로는 맞서거나 쟁투하지 않는다. 「손을 잡다, 2009」 「걱정마, 2007」라고 다독거리고 「할 수 있어, 2008」라고 격려한다. 모든 부정적인 가치가 사라진 그의 화폭에서는 세상의 그렇지 못함을 탓하지 않는다. 착함이 흉이 되는 세상과 맞서지 않고 그냥 착한 세계를 살아가는 화가의 눈길은 그 착한 눈빛으로 세상과 조우한다. 그는 세상을 향해 '평화'를 외치지 않지만 봄날 매화꽃 향기마냥 낮은 쥐똥나무 울타리를 넘어 세상 밖으로 아름다운 생명의 향기를 퍼뜨린다. ● 강석문의 그림은 이슈를 선점하고, 주목을 받기 위한 오버액션이 없다. 풀벌레보다 몸을 낮춰 이슬이 촉촉한 땅을 벌레와 더불어 기어가는 그의 붓 끝에는 항상 생명의 원천인 흙이 묻어있다. 묵향보다 더 진한 흙 냄새가 묻어나는 그의 붓질은 빠른 손놀림으로 무작위적 흔적을 화폭에 남기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가벼움'조차 작위 하지 않는 원초적 가벼움, 근원적 가벼움을 구현한다는 것이 형용모순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화폭에 이룬 그 가벼움은 의식되거나 추구되지 않아 그냥 然하다. ● 그의 화폭은 먹의 엄숙함이나 근엄함이 사라진 풀밭이다. 포스트모던 하지 않은 가벼움은 수묵의 엄숙함조차 마음 가는 대로 휘저은 붓 놀림 속에 사라져버리게 한다. 풀 끝은 뾰족하나 날카롭지 않고, 먹은 무거우나 위압적이지 않다. 먹이 가득하나 적과 청을 누르지 않고, 아크릴 물감은 날렵하나 비작위적 붓 터치로 먹과 하나가 된다. 나무와 풀조차도 눈 코 입을 가지나 발랄한 붓 터치에 뭉개져 버려 벌레의 다리와 날개와 눈 코 입이 그가 서식하는 나뭇가지와 그 경계가 모연해졌다. 무한 조화의 세계인 그의 화폭에서는 식물성과 동물성은 물론 생명 개체들 간의 경계조차 뭉개져 버린다. 풀과 나무는 눈 코 입을 가지고 곧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올 듯 하고, 새와 벌과 벌레들의 사지는 나뭇가지와 겹치고, 나무 역시 벌레의 사지를 자신의 가지로 삼았다. 사람이 벌레를 닮고 풀을 닮고 나무를 닮았듯 과수원의 뭍 생명들은 또한 사람을 닮았다.

강석문_꽃과벌레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143×78cm_2008

IMF대란 중이던 1998년에 가진 첫 개인전 "일그러진 사물들에 관하여"에서 그는 세상의 아픔에 반향 한다. 쓰임을 잃어버린 연장들과 세상으로부터 가해지는 고통에 일그러진 인간 군상을 담은 첫 번째 개인전 이후, 세상의 아픔을 안고 고향인 풍기로 낙향한다. 낙향 후, 부친과 더불어 과수원을 경작하게 된 그는 농부이면서 화가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탐색하는 작업성과를 모아 2004년 두 번째 개인전 "나도 군자"와 2005년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그는 이 두 번의 개인전에서 자신의 삶이 속한 물리적 공간이동에 따라 친숙하게 된 온갖 풀과 벌레를 통해 자아를 탐색한다. 현대화된 문인화라 해도 좋을 그의 작품은 한 포기 한 포기의 풀과 매화 그리고 벌레의 흔적을 통해, 변화된 존재 조건 속에서 화가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갈구하고 모색한다. 2008년 네 번째 개인전 "소소함과 따뜻함 그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작은 세계-과수원의 뭍 생명들과의 유대와 소통을 통해 화가의 정체성을 찾은 듯 사물을 보는 눈에 온기가 살아나고, 한없이 평화롭고 따뜻한 필치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낸다.

강석문_연인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78×143cm_2008
강석문_할수있어_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채색_78×143cm_2008

그리고 이번 다섯 번째 개인전은 고스란히 네 번째 개인전의 주제의식을 이어받는다. 더 완숙한 평화라고 해도 좋을까? 모든 쟁투가 사라진 공간으로서의 과수원, 그는 그 속에서 생명의 연대와 그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가족에 시야를 모은다. 여전히 화두는 가족이고 근원적 생명현상이지만 그 중심에서 아버지인 나무를 발견한다. 온갖 생명이 깃들여 사는 과수원의 중심에는 나무가 있고 그 나무는 곧 가족이 살아온 생계의 기반이자 삶의 원천이다. 그래서 그 나무는 곧 '아버지'다. 뭍 생명을 보듬고 생명의 끈을 켜켜이 꼬아 만든 우주의 근원적 바탕이자 강석문에게 삶을 부여했고 그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했던 가족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었다. 나무는 강석문이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이지만 타 생명이나 사물에 대해 지배적이지 않고 위엄 하지 않다. 아버지-나무는 가부장적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의 중심이다. 그래서 강석문의 나뭇가지는 뭍 생명을 잔뜩 이고 살지만 무겁거나 힘겹지 않다. 그냥 然하다. 아버지라는 큰 나무의 그늘아래 뭍 생명의 연대와 소통으로 이룬 과수원-우주의 큰 평화가 화폭 가득 그윽하다. ● 강석문의 세계-과수원이 매화꽃 가득 넘치는 환희의 봄날을 맞듯 그의 그림세계도 그렇게 활짝 꽃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그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의 성실함과 철저함, 그리고 세상을 향한 화가로서의 따스한 눈길과 손길 때문이다. ● 그림은 무엇인지, 화가는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낮은 쥐똥나무 울타리 넘어 늘 희구네 과수원을 들여다보고 사는 이웃마을 비나리 농부 송성일 감히 쓰다. ■ 송성일

Vol.20091227c | 강석문展 / KANGSUKMOON / 姜錫汶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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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코엑스대서양홀에서 열린 전원마을 페스티발 개막식에 참석한 노무현대통령이 전시관들을 둘러보고 있다

2006년 농림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귀농자를 대표하는 신분으로 노무현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우리 부부를 정식으로 초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노짱을 가까이서 뵐 수 있다는 한가지 기대로 선뜻 승락하고, 밭끝에서 머리 끝까지 15만원짜리 이마트 패션으로 치장을 하고, 봉화군청에서 기사와 함께 내어준 시커멓고 커다란 차에 올랐습니다. 서울행 내내 가슴두근거렸지만 막상 행사장에 도착해서는 경호원들의 움직임과 경호견, 그리고 주위의 모든 진기한 풍경에 넋을 잃었습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봉화군청 직원이 급히 넥타이를 구입해 오고 그리고 그 넥타이 매는 법을 잊어버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꿈에 그리던 노짱이 입장하고 계셨습니다. 마음깊이 우러나는 존경과 사랑으로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었습니다.
갑자기 농림수산위원장이라는 국회의원이 예정에 없이 참여하는 바람에 저는 위의 사진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래도 흐뭇한 표정으로 맨오른쪽 저의 와이프가 노짱부부와 함께 기념 사진 찍는 풍경을 바라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찍은 사진은 당시 농림부 직원이 전해 주기로 했지만 결국 받아보질 못했습니다. 그뒤 보도자료나 신문 기사 등에서 저의 와이프 모습이 짤리지 않은 사진을 혹시라도 찾을 수 있을까 몇번이나 검색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몇번 허탕을 치고 기억 속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몇일전, 인터넷 서핑중 우연히 보도사진을 블로거가 공짜로 사용할 수 있게 제공하는 사이트인 [뉴스뱅크이미지 F]가 문을 열었다는 기사을 접했습니다.
올해 새로운 각오로 시작한 블로그를 잘 꾸릴려면 '무료 보도 사진'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뉴스뱅크이미지 F]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포스팅중 보도사진이 필요하게되어 [뉴스뱅크이미지 F]에 접속했습니다. 그리고 언뜻 잊어버린 '전원마을 페스티발 개막식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혹시하는 마음으로 '전원마을'을 검색어로 넣고 클릭을 하자마자 와~~ 그토록 찾아 헤매었지만 결코 찾을 수 없었던 바로 그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즐거웠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이 사진이 너무 반가워 저의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그리고 곧 출력해서 코팅하고, 액자까지 해서 저희집 가보로 모실 작정입니다.
블로그를 꾸리는 데 큰 힘이 될 보도사진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무엇보다 잊어버린 지난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되찾게 해준 [뉴스뱅크이미지 F]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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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라는 부제를 단 [진보의 미래]는 미완의 저술이다. 하지만  '미완'이란 수식어는 나태의 결과나 능력의 부재, 혹은 자연적 한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는 [진보의 미래]에 담고자 했던 바로 그 진보의 진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 의해 강제된 수식어다세상에 어디 완결된 삶이 있고, 완결된 역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많은 독자는 이 책이 미완으로 끝난 것만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완을 강제한 무자비한 권력의 독기가 여전히 서슬퍼른 세상에서처음 가슴으로 받아들였던 진정한 대통령,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도자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다.  

필자 노무현의 손에서 미완으로 남은 책을 전해 받는 순간 나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숨을 가빠졌으며 코 끝에는 희미한 피 냄새와 짙은 국화꽃 향기가 느껴졌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어디 진보의 진전이 저절로 주어진 적이 있었던가. 진보는 투쟁의 산물이며, 소수지배에 대한 다수 인민의 승리의 전리품이었다. 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 '진보의 미래'를 말하고 도모할 수 있겠는가? 지난 봄, 필자 노무현은 우리 곁은 떠나갔고 우리 손에는 그가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진보의 미래'가 고스란히 과제로 남아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필자의 고뇌의 궤적을 따라가는 여정은 필자가 제시하는 역사적 과제의 엄중함과 그 실천의 지난함을 마주하는 엄숙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불가능한 꿈을 가슴에 품은 이상주의자로, 그리고 그 꿈을 현실 정치판에 뛰어들어 실현하려 했던 철저한 리얼리스트로 살았다. 이 책은 그 이상주의자의 현실 속 투쟁의 발자취이자 고뇌의 옹근 결과물이다행간에서 읽는 피와 눈물의 흔적은 그와 같은 투쟁의 여정이 고스란히 책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필자 노무현이 이상주의자인 이유는 이 책을 집어 들고 몇 장 넘기지 않아 금방 드러난다. 성장주의, 개발만능주의, 물질주의가 뼛속까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이고 또한 '역사의 진운이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히 세상을 '더불어 사는 복지 공동체'로 바꾸려는 '불가능한 꿈'을 가슴에 품었다. 그 이상이 필자의 삶을 정치적 실천으로 이끌었고, 정치가의 한 명으로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까지 오르는 정치적 역정을 걷게 했다. 그 역정은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 그의 입신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같이 했고, 그의 좌절은 한국 민주주의의 좌절에 다름 아니었다그것은 그가 정치적 실천의 역정에서 '불가능한 꿈'을 구체적 현실 속에 구현하기 위해 철저한 '리얼리스트'로 고뇌하고 분투한 결과이다그의 두뇌는 명석했고, 그의 가슴은 뜨거웠기에 그의 정치적 선택은 치밀하지만 차갑지 않고, 철저히 현실적이었지만 살가운 온기가 느껴졌다.


이 책은 그의 정치적 역정의 전과정의 발자취를 담고 있지만 특히 정치적 실천의 절정에 섰던 지난 5년간의 대통령직 수행의 과정에서 절감했을 우리 사회의 역사적 한계와 그 한계를 돌파하고자 했던 개혁 정치가의 좌절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의 뒷받침 없이 보수시대에 진보정치를 펼쳤던 외로운 검투사의 좌절감이 행간에 묻어있음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재임 5년의 과제를 연구와 저술을 통해 마저 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마저 꺾인 자리에 남겨진 이 책이 담고 있는 고뇌의 깊이와 넓이는 우리 사회의 실종된 거대담론의 부활을 촉구한다. 필자가 정치의 장에서 수행하고자 했던 역할의 한계는 바로 국민의 사고를 지배하는 근본 프레임의 한계라는 엄연한 진실에 직면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근본 프레임에 대한 회의 없이, 국가 권력이 아직도 국민에 대한 지배수단의 성격을 가지고 국민의 행복한 삶을 증진하는데 기여하는 시민의 자발적 의사 결집체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없이 천박한 정치공학과 미시 정책적 차원의 담론에 매몰된 정치 현실을 질타한다.  

필자는 사람이 성장과 개발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되는 경제만능주의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하지만, 국민의 생각을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거대 미디어이고, 그와 같은 미디어를 지배하는 것은 돈인 세상에서 그 지배권력의 무한 반복하는 연결 고리를 끊을 힘은 어디에서 올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인터넷이란 신병기가 있지만 완벽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책이라는 지적 무기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필자의 선택은 어쩌면 무기력한 자의 불가피한 결정으로 오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한 것은 단기적 정치동학이 아니라 기나긴 역사적 안목에서 인간의 이성적, 문화적 발전의 토대 위에 인간의 사회적 존재조건을 변화시켜나가는 인간 지성의 힘이다그와 같은 인간지성의 힘을 통해 보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조건을 개선시켜나가고자 했던 그의 고민의 지점은 명확했다.

90%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이사회를 지배하고 사회적 산출물을 독점하는 10%밖에 되지 않는 지배계급의 이익에 표를 던지는가?

왜 진보세력은 중도 개혁세력의 성공을 통해 진보의 지평을 넓혀나가지 않고 극우 보수세력과 함께 중도개혁세력을 협공함으로써 중도개혁세력과 동반 몰락의 길을 선택하는가?

왜 사람들은 성장을 통해 복지가 달성된다는 트리클 다운 이론을 맹신하는가? 왜 사람들은 삼성이라는 재벌의 이익이 자신의 주머니 사정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사람들은 자신이 복지정책의 수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복지의 증대가 우리 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가로막고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을 받아들이는가?


학벌주의, 지역주의 , 그리고 재벌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권력, 교육마피아와 검찰마피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 근본적 변혁을 가능케 하는 힘으로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는 극우보수세력의 집단 광기가 자신의 목을 죄어 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위의 과제를 천착했다. 그리고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바꾸고자 했던 그는 그 미완의 과제를 남기고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책을 덮으며, 필자 노무현을 질시하고 저주하고 끝내 살해한 자들에 대한 피끓는 분노로 몸서리치고 ,다시 올 수 없는 길을 떠나며 무거운 역사적 짐을 살아남은 자에게 남기고 간 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가슴 저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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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5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리고
드디어 마지막날이 밝았다.
전날 저녁 난생 처음으로 일본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저녁늦게 까지 호첼객실에서 2차 술자리를 한 탓으로
몸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일본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다 즐겁고 값지게 보내야된다는
기대때문인지 아니면 의무감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직 문을 열지도 않은 
식당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곧이어 몇몇 외국인이 줄을 서고 뒤이어 우리 일행들이 한명 두명 내려왔다.
아침부페를 간단히 들도 곧바로 우리 일행은 새벽 청과물 도매시장으로 향했다. 

아사쿠라농산물도매시장은 인구 120만 도시인 후쿠오카에 있는 다섯개의 농산물 도매시장 중 하나라고 했다. 규모나 시설로 봐서는 사실 이웃 안동농산물 도매시장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었다 시장은 노천에 지붕만 씌운 시설에 불과했고 경매시스템도 현대식 전자경매가 아니라 재래의 방식 그대로 였다.
하지만 우리 공판장과 다른 모습도 확인할 수 잇었다. 우리나라 공판장에 가면 주변에 농산물 포장재로부터 폐농산물 까지 주변에 쓰레기가 늘려 있는데, 아사쿠라도매시장 바닥 어디에도 한개의 쓰레기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깨끗했다.  그리고 출하된 농산물의 상태는 그대로 슈퍼 진열대에 올려놓을 수 있는 완벽한 선별과 세척 그리고 소량포장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일행중 몇몇분이 '뭐, 일본도 별거아니네.'라고 하시면서도 농산물의 선별포장 상태에 대해서만은 감탄을 아끼지 않으셨다.  사실 고급스런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오직 정성으로 완벽한 선별포장을 한 일본사람의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4박5일 여행내내 일본사람이 소리를 지르거나 씨끄럽게 떠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곳 농산물 도매시장에 와서야 처음으로 일본사람이 고함을 지르고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참 다른 일본인과 한국인^^*) 


아사쿠라 농산물 도매시장을 나와 하카타 포트타워로 향했다.
부산에서 카멜리아호라는 여객선을 타면 도착한다는 하카타항이 내려다 보이는
별로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은 하카타 포트타워를 잠시 들러 사진을 찍고,
곧바로 태재부(다이자이후) 천만궁으로 향했다.
후쿠오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다이자이후 시에 있는 신사인 천만궁은 9세기무렵 살았던 스가하라 미치스네라는 사람을 학문의 신으로 받들고 있는데, 입시철이 되면 시험을 잘보게 해달라고 비는 참배객들로 엄청나게 붐빈다고 했다. 인근 학교에서 아예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참배를 오기도 할 정도라고 했다. 우리가 찾았던 그날도 적지않은 학생들이 소원종이(?)를 사서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나무에 매달거나 신사에 헌금을 내고 복을 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쉬운 연수가 마무리되고 김해를 향한 비행기에 오르고 부터 뇌리에 떠나지 않는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짧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일본의 모든 것은 고사하고 일본의 농촌과 농업에 대해서 만이라도 일정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참 좋았을 것이지만 사실 모든 것이 겉핡기에 불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인과 인본 문화에 대한 이해, 일본 농업 농촌에 대한 이해는 뒷날의 과제로 남겨두고 이번 연수를 통해 얻었던 다양한 문제 의식만은 정확히 기록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도 일행과 계속 주고받은 생각들이지만 어떤 분들은 이번 여행을 통해 일본의 '침체'를 절감했다고도 하고, 일본농촌정책은 실패작이라는 판단도 많은 분들이 공유했다. 사실 일본여행중에 호텔 TV를 통해 JAL의 부도 소식을 접했고, 귀국해서도 도요타 사태라든지, 일본의 유명 백화점의 연쇄부도 소식 등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끊이질 않았다. 현제 일본이 막다뜨린 침체의 문제는 일본의 관료주의가 근원이라는 판단듣도 있었고,  부의 불균등한 분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피력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사실 선진대국인 일본거리의 소박함(초라함?), 낡은 호텔이나 관광시설, 거리를 메운 소형차들, 작고 초라한 주택, 화려하지 않은 일본인의 옷차림 등등 일본을 세계2위의 선진국으로 알고 선망해오던 시골분들이 이런 일본을 직접접하고는 실망과 우리 나라의 경제수준에대한 자긍심을 일정가지는 것이 당연해 보이면서도 한편 나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나는 과연 일본은 침체되었는가?라는 판단이 가장 어렵다. 일본의 관료주의, 가난한 개인과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분배의 문제,  지향을 잃어버린 국가나 개인의 정체성의 문제, 불완전고용상태를 초래한 비정규직의 보편화와 고착화된계층 구조로 인한 활력의 상실 등등의 문제는 분명 일본사회가 처한 현실을 나타낼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런 일본의 현실이 침체인지 안정화인지 면밀한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적 지향을 가진 활력이 넘치는 사회가(일제시대 일본의 모습) 정상적인 사회인지 아니면 일상의 소소한 삶속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지금의 일본인의 삶이 정상적인 모습인지 판단하는 것이 그리 쉬운 건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오직 경제성장에 목을 매고 전사회가 매진하는 지금의 거의 광적인 모습이 비정상적인 상태이고,우리 사회역시도 10~20년 내에 지금의 일본의 '침체'된 모습을 띌 것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나치게 활력이 넘치는 사회가 싫다. 일본인같이 경제적으로 소박한 삶을 누리면서 내면의 가치를 천착하고 셰계와 삶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심화하는 그런 삶의 자세가 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는 생각을 포기할 수 없다.

앞으로 공부하고픈 몇가지 주제나 소제를 정리하는 것으로 이번 여정의 기록을 마무리하고 싶다.
1. 일본은 주체성이 강한 나라인가 아닌가?
일본인은 서양지향적인 모습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기독교식의 결혼식이 대표적일 것이다.  사실 일본은 타 종교에 대해 아주 개방적이다. 신도나 불교, 유교가 아주 자연스럽게 융합해 있고, 기독교같은 타종교에 대해서도 훨씬 개방적이다.  하지만 일본인은 우리보다 기독교의 역사가 깊으면서도 기독교 신자가 전국민의 1%도 되지 않는다. 한국은 조선의 붕괴와 함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유교를 내팽겨치고 서양의 사상. 특히 기독교에 바져들었다. 사실 겉은 따라가도 정신만은 놓지 않는 일본이 더 주체적인 나라가 아닌가?

2. 일본의 농촌 정책은 성공적인가?
오래전부터 한국의 몇몇 교수등 전문가 집단은 일본의 정책을 그대로 뱃겨온 사례가 너무나 많다. 사실 별거아니지만 정보를 먼저 접했다는 것 하나로 뭐 대단한 성공사례인양 소개하고, 그리고 그 사례가 우리 농촌을 구원하는 비책이라도 되는 양 피력해 온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농촌의 현실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 먼저 농산물 자급률이 우리보다 훨씬 못하다.(한국 약 30% 전후, 일본 약 20%전후) 사실  일본 농촌 공동체의 붕괴는 한국보다 훨씬 덜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적인 농촌정책때문이아니라 한국과는 다른 지방 중소도시의 활력대문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서울만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아름의 지방 도시들이 자생력을 가지고 번영하고 있다. 그와같은 지방 도시를 둘러싼 일본 농촌은 인근 도시와의 교류와 소통속에서 농촌사회의 유지 발전을 꾀할 수가 있었다. 이는 일본 농업인의 많은 비율이 투잡, 쓰리잡이라는 사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농민은 농한기에 인근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서울 경기만 있고 지방은 다 죽었기 대문이다. 한국 농민은 아예 농촌을 떠날 수 밖에 없다.

3. 일본 농촌 사업은 주민자치역량에 기반하는가, 고도화된 행정서비스에 의존하는가? 그린투어리즘이 침체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잇는가?
연수중에 방문했던 많은 사업단위들에서 사실 주민의 모습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우키하마을, 오쿠니마을은 아예 공무원이 마을 사업을 주관하는 듯이 보였고, 전체적으로는 그린투어리즘에 기반한 도농교류를 통해 많은 농민이 생업기반을 가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린투어리즘이 활성화된 곳에서 마저 전체 농가의 1%미만만이 도농교류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린투어리즘을 한국 농촌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대단한 비책인양 여기는 정책입안자들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것같다. 그렇다고 다른 대책은 없지만 그린투어리즘에 대한 과대 평가는 조심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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