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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를 밝고 활기차게 이끄는 힘은 생동하는 ‘지역문화’에서 나온다. 미래지향적이고 개방적인 지역문화가 지역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문화가 사회 구성원의 행동을 결정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의 문화는 우리 사회를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로 이끄는 힘의 원천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지역만의 문화가 가진 특수성을 진단해야한다.
 
안동사람을 ‘안동사람’이라 하며, 예천사람을 ‘예천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 사람의 몸에 베여있는 소속 사회의 지역성, 달리 말해 그 지역 문화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역문화를 진단하고 그 특수성을 판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경북북부지역의 문화가 가진 특수성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외부에서 보는 지역 문화에 대한 평가나 우리지역주민 자신이 느끼는 지역 문화에 대한 평가도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또한 행정단위를 넘어서는 지역의 범주를 설정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더 큰 어려움은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지역 문화의 특성과 내밀한 속성의 괴리를 밝혀내는 일은 더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지역문화는 몇 가지 시정 슬로건들 속에서 피상적이긴 하지만 단적으로 드러난다.
 
‘선비의 고장 영주’,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충효의 고장 예천’ 등의 슬로건이 함축하는 지역 문화의 특수성은, 먼저 ‘유교적 전통’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부여이다. 지역사회에서 발행되는 다양한 홍보물은 물론 문예지나 전문연구서들에서도 ‘유교적 전통’을 다루거나, 그 덕목을 표명하지 않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반도 전체가 오랜 역사를 통해 유불선의 가르침이 내면화되어 있고, 특히 ‘경세(經世)의 사상인 유학이 현실세계에 가지는 영향력은 단연 우세한 것이 사실이지만, ‘경북 북부지역’은 특히 우리나라 어느 지역사회보다 유별나게 유교적 덕목의 가치가 절대적 우위를 지키고 있다. 그것은 우리 지역사회가 퇴계를 비롯하여 수많은 대 유학자를 배출하고, 오랜 역사와 시대를 이끈 정신적 자산의 생산지로서 그 위상을 유지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조선이 붕괴한 이후 서구적 문물이 주도한 현대화와 산업화의 격동에서 상대적으로 비켜서 전통사회의 틀과 가치를 오랫동안 보존해온 덕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북북부지역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유불선 특히 유학을 중심에 놓지 않고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 우리의 지역문화는 오랜 정신문화의 전통을 보존하고 향유하는 데서 기초하고, 지역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트렌드의 문화를 창달하기 위해서도 이 전통적 기반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전통이 갖는 긍정적 힘은 전통적 기반위에 사는 사람들의 지혜로운 혁신의 자세에 의해 현실화된다. 전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지역사회가 문화적으로 풍부하고 현대화된 삶을 영위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지역문화는 지역성에 대한 건강한 인식에 토대해야 한다. 지역공동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가치부여는 사회의 근원적 병폐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혈연주의, 지연주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지방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아직도 한국사회의 정치를 지배하는 ‘지역주의’는 민주주의 발전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정치가들이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지만, 더 많은 정치가들이 지역주의를 입신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잘못된 무리의식이 초래한 혈연, 학연, 지연중심의 연고주의는, 사회의 합리성을 떨어뜨리고 정의를 실현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학벌, 문벌, 족벌을 넘어 언론 패밀리와 검찰 패밀리를 뜻하는 ‘언벌’, ‘검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는 현실은, 지역성과 공동체성에 대한 새롭고 건강한 인식이 주도하는 탈 연고주의적인 문화트렌드만이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잘못된 지역주의와 집단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과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전환해야 한다. 내 것만이 옳고 오래된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완고한 태도는, 유교의 폐습과 가치 있는 유교 전통과 혼돈하게 한다. 그 결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유교적 엄숙주의, 가부장주의,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가 판치는 박제화된 문화를 지역사회에 온존시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로부터 지역을 소외된 정체의 늪에 빠뜨린다.
 
전통은 미래지향적 가치와 만나 새롭게 태어난다. 사장된 전통을 살리는 힘은 혁신에 있으며, 혁신은 상상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교조화된 경직성을 벗어던지는 순간,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버려야할 봉건시대의 잔재를 전통적 가치로 지키는 어리석은 짓은 과감히 버려야하고, 정태적인 전통문화의 답습은 하지 말아야한다. 최근에 축제가 전통에 토대하면서도 새로운 창작극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전통을 미래지향적으로 재해석하는 산물이다. 하회별신굿놀이에 나타나는 지배계급, 즉 양반에 대한 민중의 저항의식이, 우리 시대의 지배계급인 재벌과 기성 정치권, 물질주의와 성적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종교집단과 사학재단,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보수언론과 권력에 기생하는 검찰 등, 권력을 가진 기관으로 향할 때 그 생명력을 가질 것이다. 지난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 공연되었던 창작 마당극인 ‘굿모닝 허도령’에 대한 인기는 그것을 잘 말해준다.
 
얼마 전 안동의 한 종가에서 이루어진 관례(冠禮)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행사’로만 복원된 관례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정말 소중하다. 관례의 복원은 땅에 떨어진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려는 값진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관례를 참관하면서 ‘낡은 형식에 가치 있는 내용이 얽매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낡은 형식을 바꾸지 않아 그 내용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는 꼴인 것이다. 아직도 전통예절교육, 충효교육이니 하는 고정관념을 강요받으며 자라는 청소년이, 전통은 소중한 것이 아니라 고루하고 답답한 것으로 인식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이 발랄한 현대 문화예술의 부흥을 주도할 때, 우리 지역이 전통문화의 소비지에서 현대문화의 생산지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가 갖는 유구한 역사성이 고리타분한 것으로 간주되고 지역주민들로부터 배타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벗어나, 지역문화가 지역의 역사를 배경으로 발랄한 현대문화로 승화될 수 있도록, 개방되고 참신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고택 복원도 중요하고 전통문화의 수호도 중요하지만, 생동감 있는 현대전위예술 등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생산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이 지역사회에 넘쳐날 때, 지난 조선 500년을 문화적으로 주도했듯이 현대에도 지역사회가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정신문화를 선도하며, 세대, 지역을 통합하고 상생하는 문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송성일 | 2009-06-23    경북 북부권 문화정보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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