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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몰린 '지방'을 살리는 힘의 원천을 '지역문화'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이미 서울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지방은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고 더 이상 생존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은 불모의 땅이 된지 오래이다. 돈과 사람을 무제한적으로 흡수하는 블랙홀에 다름없는 서울은 그 대척점에서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지방을 식민통치한다. 그러다 보니 인적 물적 자원은 물론 교육, 행정, 의료, 나아가 문화, 예술 같은 정신적 자원마저 모두 서울로 흡수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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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뉴시스】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아 관객상을 수상한 ‘워낭소리’가 오는 13일부터 22일까지 강릉시 포남동 자비복지원 소극장에서 앵콜 상영된다.(사잔=강릉씨네마떼끄 제공)/ 박진완기자 jwpark@newsis.com <관련기사 있음>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그것도 부족해 국토의 불균형 발전에서 오는 이익을 독점하는 세력은, 모든 자원의 수도권 집중이 가져오는 폐해를 막고, 전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만든 '수도권규제' 법률마저 무력화하려는 욕심을 드러낸다. 그들의 논리를 따르면, 이미 산업, 교육, 문화의 경쟁력을 상실한 지방은, 그들이 생산한 산업과 문화의 상품을 구매하고, 아직도 흡수되지 않고 남아있는 인적, 물적, 문화적 자원을 공급하며 서서히 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입장에서 지역은 여전히 삶의 터전이다.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강구해서, 계속적으로 유지 발전되어야 할 생활공간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가능성을 찾아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산업이 번성하면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면 더 많은 산업이 유치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더 모이는 만큼 생활기반 인프라를 비롯한 교육, 행정, 의료 등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는 그들의 순환논리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지역의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점이 바로 '문화'가 아닐까. 어떻게 문화가 고사 직전의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전략적 영역이 될 수 있는가? 먼저 문화는 우열의 차이가 없는 고유한 삶의 양식으로, 기술경쟁에서 비켜선 비경쟁적 가치를 가진 정신적 자산이다. 따라서 '지역문화'는 중앙의 지배-종속관계에서 자유로운, '대안적 삶의 전망'을 제시해주는 역동성의 근저가 될 수 있다. 중앙의 경제적 지배를 넘어설 힘의 원천을 가진 지역 문화는, 경제적 소외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삶의 풍요로움과 비례해 지역을 활기 있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적 지표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주관적' 생활 만족도, 행복지수가 높은 지역은 의외로 많다. 미국에 비해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방글라데시가 그렇고, 서울에 비해 봉화나 영양 주민의 삶의 만족도가 낮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자기만족이 정체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정체성'의 확보는 변화와 발전을 추동할 전제이자,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단지 그 가능성을 열어줄 또 다른 장치가 필요할 뿐이다.

사실 지역문화는 좁은 의미로 지방의 '문화예술'을 말하기도 하고, 지역의 정신적, 역사적 자산 전체를 일컫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문화라는 폭넓은 저변은 몇 가지의 행정조치나, 몇몇 문화 동호인이나 예술가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지역 문화를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지역문화를 어떻게 지역을 성장시키기 위한 동력이 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그 가능성을 구체화하여 성과를 얻은 많은 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지역문화를 지방을 일으키는 역동성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먼저 '워낭소리'라는 한편의 독립영화가 보여준 힘을 생각해보자. 사실 '워낭소리'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가장 흔한 삶의 풍경을 카메라를 통해 현대인의 요구에 맞게 가공한 것일 뿐이다. 워낭소리 신드롬은 현대인이 농촌이 중심인 우리 지역에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하나의 사건이다. 물론 농촌이 문화적 원료를 제공하고 도시적 기호에 맞춘 가공을 통해 대박을 터트린 문화상품인 ‘워낭소리’는, 그 수혜가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드는 추가 장치가 필요하다.

물질만능주의, 효율만능주의, 경제만능주의가 우리의 삶을 절망과 불안으로 내모는 현대인의 삶에서, 그 대안적 가치인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정서적 가치, 공동체주의는 현대인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우리 지역사회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적 삶을 향유케 하는 기본적인 가치를 '지역문화'로서 구현하고 있고, 바로 여기에 지역사회의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가치가 고갈된 도시문화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지역문화는, 어느 순간 현대를 지배하는 역관계를 전도할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귀농'이 유행이 되었다. 도시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 귀농하게 된 사람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귀농'의 근저에는 살림의 가치. 상생의 가치를 함유한 농촌문화, 공동체 문화 즉, 지역문화에 대한 도시민의 갈구가 있다. 이렇게 '이농'에서 '귀농'으로 시대적 흐름을 바꾼 힘은 바로 지역문화에서 나온다. 자연친화적이고 인간적인 삶을 갈구하는 현대인에게, 우리가 가진 지역문화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인 예는 얼마든지 있다. '안동간고등어'나 '안동버버리찰떡' '닭실한과' 등은 누가 뭐래도 문화상품이다. '안동간고등어'는 안동이 아니면 전국 어디에서도 생산할 수 없는 안동만의 고유한 문화상품이다. 흔해 빠진 고등어가 안동의 고유한 역사적, 문화적 세례를 받는 순간 값진 '안동간고등어'가 되는 것은 고등어의 힘이 아니라 안동이 가진 문화의 힘이다. 봉화 닭실마을에서 만들어지는 '닭실한과'는, 봉화 닭실마을 아주머니들의 손맛이 만든 명품한과지만, 그 맛 역시 닭실마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에서 유래한 것임이 분명하다.

현재 봉화군에서는 '전국스토리텔링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은 지역의 고유한 역사적, 문화적 자산을 토대로, 콘텐츠 제작을 위한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지역의 고유한 역사, 문화, 자연자원을 발굴하며, 지역의 새로운 성장력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시도는, 서울을 떠난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을 유치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 지자체의 이런 노력이 바로 문화를 통해 지역을 살리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문화를 문화의 산업경쟁력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근시안은 피해야하지만, 이는 '문화적이지 못한' 문화산업적인 사고에만 한정된 문제이다. 지역을 살리는 힘은 지역사회에 없는 것을 유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을 유치하고, 공장을 유치하고, 관공서나 공기업을 유치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애써 찾을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주목해 보자. 지역주민의 삶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경제의 활력을 가져다줄 보고가 바로 우리가 가진 '지역문화'라고 생각한다.

 2009-05-12  경북 북부권 문화정보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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