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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온천하면 그래도 뱃부가 제일 친숙한 곳이다.
물론 일본을 언제 여행해본 적도 없는 나에게 뱃부는 단지 들어서 친숙해진
곳이기는 하지만 알고보니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뱃부의 관광객중 60%가 한국인이란다.
그러면 뱃부는 결국 한국인이 먹여살리는 도시인 셈이다.
그래서 뱃부의 밤거리를 편안하게 헤메보고 싶었지만
매서운 추위한 거센 바닷바람으로 호첼을 나선지 10분도 되기전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고,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호텔방에서
뱃부에서의 밤을 마냥 보내야만 했다.

뱃부의 아침은 아름다웠다.
여기저기 온천에서 내뿝는 수증기로 이국스런 뱃부의 아침은
노을을 닮은 붉은 아침 햇살로 더욱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뱃부 관광에 나섰다.
제일 번저 도착한 곳은 가마도 지옥!
지옥이 웬 말인가 싶었더니 그냥 온천을 地獄이라고 했단다.
아주 옛날부터 온천주위에 정착한 사람들은 
땅속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고, 뜨거운 물이 솟는 현상이
신비스럽다기보다는 거의 공포스러웠을게 틀림이 없다.
그러다보니 온천이라는 온화한 이름보다는 
그냥 지옥이라는 이름이 훨씬더 그네들의 공포심을 잘 표현해주는 명칭이었을 법하다.
그러다보니 아직도 많은 온천이 **온천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가마도 지옥은 넓지 않은 공간에 다양한 형태의 온천이 공존하는 특이한 곳이었다.
색깔이 다른 온천들이 산재하고, 식음용 온천, 얼굴에 김을 쪼이는 온천, 
100도가 넘는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온천.
그리고 족탕 온천까지 짧은 시간에 다양한 온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순전히 온천의 열만으로 삶은 계란을 먹으며 족탕을 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일행들은 벌써 버스에 올라있었다. 
 
뱃부에서의 일정은 가마도지옥 관람이 전부였다.
아직 고속도로 통행금지는 풀리지 않았고,
갈길은 먼데다 또 연수일정으로 우키하마을 방문과
미치노에끼 탐방이 있었다.
그리고 후쿠오카까지 가서 짐을 풀어야되는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경에 묻힌 우키하시의 모습이 아름답다.
산과 들과 도시가 조화로운 아름다운 삶의 터전으로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인구 약 3만 4천의 이상적 모습으로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우키하시를 지나는 국도변에 대규모 농산물 직판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른바 "미치노에끼"(みちのえき, 道の驛)라는 일본 농산물 직거래를 이끄는 대표적인
시설인데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계소 정도 규모로 전국 국도 변에 약 500여개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우키하마을에서 강의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미치노에끼는 초기 사업비 8억엔중 농민이 3.3억엔을 출자하고
나머지는 정부지원으로 제3섹터를 구성하고 이렇게 구성된 제3섹터가 주축이 되어
운영한다고 한다. 우키하미치노에끼에는 인근의 농민이 자발적으로 농산물을
위탁해서 팔수 있는데 온산물의 질과 안전성 등은 자체 검사를 통해
통과된 경우만 참여가 허용되고 이후 반복적으로 잘못이 드러날 경우
퇴출된다고 했다.
미치노에끼의 연매출은 약 7억엔으로 고객의 90%는 현내주민이고
약 10%정도가 외지인 고객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구석에
초라하기 짝이 없는 농산물 판매장을 지어놓고 성과가 적다고
실패한 사업이다 어쩐다면서 농업예산자체를 줄일려고만하는
우리 현실과 비교가 되었다.
 
우키하 미치노에끼를 둘러보고 기념품도 구입하고 하는 사이
이날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우키하마을로 우리를 안내할
공무원인 키구키상이 마중을 나오셨다.
키구키상이 모는 승용차를 따라 우리가 탄 버스는 점차 산속으로,
계곡속으로 접어들었다. 도저히 버스가 지나다닐수 없을 것 같은 길인데도 
계속해서 들어가다 보니 계곡을 따라 논들이 보이고 농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곡의 중간쯤되는 곳에 버스가 섰고 그때부터 한 10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일종의 마을 커뮤니티센타였는데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
원래는 마을 다랭이 논의 정상부까지 올라가서 동네 풍경도 보고, 
다랭이논 농사에 대한 현장설명도 들을 예정이었지만
심한 경사길에 눈까지 쌓여 도저히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우리 일행이 식사를 하는 동안 담당공무원인 키구키상이 식사도 거른채
혼자 걸으서 도로사정을 확인하고 와서 알려준 것이었다.
또 한번 일본 공무원의 그 철저한 서비스정신에 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연수 내내 한번도 즐겁지 않은 식사가 없었지만
이날 우키하에서 받은 식사도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다.
좋은 기분에 모처럼 일본청주 2병을 무려 1800엔을 주고 쏘았는데,
일행인 동윤씨 하는 말 "오래살다보니 송형이 사는 술도 다 먹어보네'란다.
이런~ 돈쓰고 놀림받고 ㅋㅋ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옆방에서 키구키상으로부터 우키하 마을사업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농업 여건이 열악한 다랭이 논을 그냥 방치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고 상품화하여 다른 평지 논에서 생산되는 쌀보다 약 25%비싸게 판매도 하고, 논두렁에 핀 피아나 꽃을 홍보해서 히간바라순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어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경제적으로 재생산이 가능한 마을로 이끈 우키하마을의 사례는 참으로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번 연수증 가장 진솔하고 성실한 강의가 아니었나 생각되었는데, 특히 마을의 자원을 결합해 상품화한다는 '곳단자이론'과 '풍경 10년, 경관 100년, 풍토 1000년'이라는 모토는 한 인간이 지역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하는 가치를 생각케해보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내 살고 가면 그뿐인 것이 아니라 1000년가는 풍토까지 생각하며 살아야한다는 이들의 의식은 거창한 역사의식을 들먹이지 않드라도 충분히 공감가는 바가 많았다. 
물론 35농가중 이제 5농가 정도만 남아 다랭이 논 농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씁한 뒷맛을 남겼고, 마을 주민을 누구도 만나보지 못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없었던 점은 참으로 아쉬웠다.  


우키하시를 벗어나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곧장 우리의 첫 출발지였던 후쿠오카로 향했다.
후쿠오카를 향해 달리는 2시간 내내 비로서 일본의 산천과 도시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한껏 느껴볼 수 있었다. 관광지나 산속 마을이 아니라 들판과 도시 그리고 산이 적당히 어우려져 형성된 삶의 터전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오후 늦게 후쿠오카에 도착했지만 저녁 식사시간은 멀었고, 또 일행중 몇몇분이 산골짜기가 아니라 도시관광도 좀 하자는 요구를 하기도해 버스는 캐녈시티라는 후쿠오카 최대의 도심 복합쇼핑센타에 도착했다. 모두들 산속마을만 돌아다니다가 모처럼 복잡한 도심에 부려지니 어리둥절하니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았다. 일행중 여자2분만 신이나 쇼핑센타를 돌아다니신것 같고 나머지 남자분들은 사실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번잡한 도시가 더 나은지 별로 불만스런 표정은 아니었다.
이어서 텐진거리와 텐진 지하상가를 구경하고,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가진 이름은 잊어버린 '고기부페'집으로 향했다. 성대한 저녁을 먹고 술까지 한잔씩 걸친 일행은 흐쿳한 표정으로 숙소인  후쿠오카 역앞의 미야코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어서 호텔 뒷편 거리의 한 술집에서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고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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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계절따라 나름의 맛과 멋이 있기도하고,
또 산은 산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따로 있을것입니다.

지척에 있어 자주 오르는 청량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지만
그래도 숨겨둔  제멋은 겨울에 더욱 빛이 납니다.
헐벗을 산길을 따라 겨울 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면,
청량사 대웅전 부처님앞에 큰절을 올리지 않아도
번민과 애욕의 무상함을, 우리네 삶과 죽음의 무상함을
깨우치는 큰 스님의 깊은 말씀이 그냥 옷길을 스며드는
바람처럼 다가옵니다.

토요일 늦은 오후, 모처럼 우리 부부는 청량산을 올랐습니다.
일전에 계속되었던 눈덕분인지 황량한 겨울산에
인적마저 드뭅니다. 드문드문 등산객이 세워둔 차들이 있고
간혹 인기척이 들리기도 하지만 응진전을 지나 청량사를 거쳐
하늘다리와 장인봉을 돌아 산을 내려올 때까지 
몇몇 등산객을 마주친 것이 전부, 산은 찬 바람만 가득했습니다.

사람이 많은 날 하는 등산은 그냥 '운동'이지만
이렇게 호젖한 날이면 '반성'과 '사색'의 시간이 됩니다. 

오늘 청량산에서 맑고 찬 바람 싣컷 쐬며
굳은 몸을 풀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집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겨울 청량산은 나의 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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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3일 연수 셋째날
드디어 연수는 중반으로 접어들고 일본이, 그리고 연수가 익숙해져갔다.
먼저 하루에 한번했던 목욕이  
두번째 숙소인 코고노에 하나소우겐 호텔에서부터는 세번으로 늘어났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호텔에 도착해서 저녁 식사가 나오기 전에 한번,
저녁 식사후 휴식을 취하다가 잠을 자기전에 또 한번,
그리고 아침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또 한번의 온천을 하는 것이
온천의 기본 정석이라고 했다.
그리고 낯선 나라에서 어리둥절해 보이던 일행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호텔이나 거리에서 일본사람과 마주치는 상황에서 
자신있게 인사를 먼저 던지는 여유가 그새 생겨났다.
물론 가이드의 부추킴이 제일 큰 원인이겠지만
우리 일행의 입에 일본어 인사가 자연스레 익숙해져갔다.
밥 한공기를 다 먹고나면 빈 밥공기를 높이 들고
'스미마셍~~'을 외치고.
새로 밥 한공기를 더 받으면서 '아리갓도 고자이마스'를 외치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맘껏웃고 놀렸다.
'야, 김이장! 니는 일본에 마 남아라. 그정도면 일본 사람 다 됐다. 두고 가도 굶어 죽지는 않겠는데~~"

여행이 익숙해져가는 만치 일행들의 긴장도 풀리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의 어색함이 사소한 불편함을 잊게 해 주었다면
여행이 진행됨에 따라 이런저런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일행간에 언성을 높이는 일마저 생기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다고 알씨마저 이 모든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가는데 일조했다.

밤새 내린 눈에 도로는 완전히 덮혀있었다.
과연 그날 하루의 일정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모두들 걱정이었다.
그래도 버스 기사의 판단을 믿고 일정을 강행하기로 결정하고
호텔을 나섰다. 레오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라탄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전벨트를 메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자 
모두들 긴장을 감추지 못한채 불안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둘러봤다.
가이드가 전한 도로사정은 고속도로와 산간도로는 통행금지가 되었고,
아직 국도는 통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국도역시도
5cm가량의 눈이 쌓여있었고, 길의 경사나 굴곡은 만만치가 않아 보였다. 

이번 눈은 큐슈지역에서 거의 드문정도의 대폭설이라고 했고,
눈이 많지않은 큐슈지역이라 제설차량도 충분하지 못해 쉬 치울수도 없다고 했다.
마냥 눈길을 달리든지 아니면 꼼짝말고 살골짜기 호텔방에서 시간을 죽여야만하는 상황에서
우리 일행은 그래도 눈길을 달려 일정을 소화하는 길을 택했다.
오쿠니마을은 고고노에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어서
갈 수록 눈발이 거세지고 버스는 느려졌지만
약속시간에 그리 늦지 않게 무사히 도착했다.

오쿠니 마을은 일본에서 가장 흔한 삼나무를 소제로 해서 마을 상징 건물을 만들고
'배움의 마을'이라는 재단을 만들어 '자연학교'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두고
도시민과 교류하고, 도시민의 농촌 정착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마을이란다.
시야를 가릴 만치 굵은 눈발속에 도착한 오쿠니마을의 방문자 센타는
개성있는 외형과 삼나무의 아름다운 결을 살린 내부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바같 날씨가 춥고 매서운 바람이 눈발을 날리고 있어서 였는지 조금은 썰렁하고 
적막한 느낌을주었다.   
 
눈길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한 관계로
도착하자마자 오쿠니 마을의 사례를 듣고 토의하는 시간을 바로 시작했다.
이날의 강사는 사토 토키코 상이라는 여성으로
나중에 질문과정에서 드러났는데 마을사무장이 아니고
마을 담당 파견 공무원이라고 했다.
강의와 토의의 요점을 보면 오쿠니의 그린투어리즘은 '배움'을 핵심으로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늘어나고
자긍심을 고양시킬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마을사업의 큰 경향이나 가능성과 관련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시장 경쟁 속에서 마을 사업의 경쟁력은 과연 있을까,
그리고 시장경쟁력이 없다면 마을 사업을 접어야만 하는가,
시장경쟁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사업을 해야할 이유가 충분하다면
국가의 재정적 뒷받침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가,
국가의 재정에 의존하더라도 마을 자치 역량을 높이고,
사업의 주도성을 주민이 가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또 마을 사업을 위해 담당공무원이 파견되는 상황은
긍정적인 축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느껴졌다.
어쩌면 철저한 대 주민 행정서비스라는 측면과
주민 자치역량의 미비라는 두가지 측면을 다 갖는게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두번째 견학지는 오쿠니 마을에서 1시간거리에 있는 죠카마을로 
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아다치 미찌야쓰씨의 농박농장를 방문했다.
미찌야스씨는 체험농장과 민숙(민박)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의 지도자로
마을 그린투어리즘 연구회를 이끌고 있었고
사업적인 성과도 상당한 것으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죠카마을은 우리 일행의 전 연수일정중에
공히 최악의 견학지로 선택하는데 누구도 망설임이 없는 곳으로 남아버렸다.

힘겹게 눈길을 헤치고 찾아온 마을은 다소 어수선하고
강의와 식사를 한 식당 공간은 너무 초라하고 구질구질하기조차 했다.
특히나 , 농가식이라고 나온 점심은 일본 연수 전 일정중 최악의 식단으로 기록되었다. 
농장주의 사례 발표도 우리 일행의 흥미를 충족시키기엔 너무 일반론에 불구했고,
현내 농민의 1%정도만 참여한다는 도농교류사업도 그리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죠카마을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자 조그마한 절과 폭포가 나왔다.
눈발을 맞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버스는 다음 행선지인 유휴인으로 향했다.
유후인으로 가는 길 역시 첩첩산중을 끼고 도는 눈덮인 국도를 따라 이어졌다.
일행들은 지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불만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산되배기(산중턱)에 살아서 산이라면 징글징글한데 일본까지 와서 산골 촌구석만 돌아다니고 말거냐"
"아무리 연수라지만 관광도 좀 해야되는 거 아이가?"
"도대체 일정을 누가 짠거야?"
"우리 죽이려고 작정을 했나? 왠 위험한 눈길로만 우리를 끌고 다니냐?'

잠시 버스안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위험한 눈길을 달리며 신경이 날까로와진 일행은
오쿠니마을과 죠카마을에서도 별로 감동을 얻지 못하고,
눈덮인 산속으로만 다니다 보니 지루한데다 나중에 배까지 고프게 되었다.
어렵게 만난 휴계소는 눈으로 파량의 왕래가 여렵자 아예 문을 닫아버렸고,
가까운 마을이나 시가지를 드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전체 일행의 인솔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는 난,
개인적으로 낯선 이국에서의 여행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배고픈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너무 좋으니깐 다른분들도 별로 불편할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보니 불만이 불거져 나오게 되었는데
이후 일정을 손봐서라도 재미있고 편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겨우 일행을 무마할 수 있었다.

죠카마을을 떠난지 두어시간이 지나서야 이번 연수의 백미가 된 유후인에 도착했다.



유후인은 일본 여성의 60%이상이 일생에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마을이라고 했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도 나의 유후인에 대한 호기심은 발동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유후인의 어떤 특징이 일본여성을 그렇게 사로잡는지
두눈을 부라리고 유후인의 골목을 누비고 돌아다녔다.
어쩌면 우리 비나리마을의 모델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짧은 시간 둘러본 유후인은 사실 참 아기자기하고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을임을 알 수 있었다.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화려하고 웅장하고 신기한 것만이 아니라
소박한 시골의 모습을 살리면서도 여러가지 문화적 아이템을 갖춘 거리는
우리 마을 사업에서도 충분히 원용가능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도시민들이 농촌마을에 거는 기대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농촌 마을이 현제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그것을 어떻게 배치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도시민에게 드러내고 제공할 것인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친숙하고 소박한 먹거리들, 이쁘고 아기자기한 쇼핑거리들,
그리고 작지만 아름다운 갤러리들로 이루어진 유후인 거리는
세상사에 지친 도시민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고
삶이 주는 긴장을 완전히 놓고 한 이틀 마냥 편안하게
걷고 보고, 먹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거창한 걸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쉬고 싶은 사람에게 쉴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농촌관광의 핵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지만 유후인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우리는 오이타 현청을 향했다.
그린투어리즘의 발상지인 아지무 마을이 있는 오이타 현청의 담당자로부터
오이타현의 농촌관광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현청의 맨 꼭대기 층의 한 구석진 방으로 안내되었고
관광진흥국 외국인 담당인 나와야마상이라는 공무원으로부터 오이타현의 농촌관광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죠카마을에 이어 오이타 현청의 브리핑은 또 한번의 실망을 추가했다. 
먼저 프리핑을 했던 공무원은 그린투어 업무담당이 아니라
관광청의 외국관광객 담당 공무원이란 사실에 실망했다.
이번 연수 프로그램을 자고 일본현지 견학처와 협의했던 여행사의 잘못인지
아니면 오이타현청에서 우리 일행은 단순 관광객으로 대접하는 실수를 한건지 모르지만
그린투어리즘에 대한 심도 깊은 질의와 응답을 나눌 수가 없었고
전반적인 오이타현의 관광현실과 농촌관광에 대한 일반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브리핑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거기다 오이타현청에서처음으로 일본에서 박대받았다는 느낌을 받게되는데
강의실도 구석진 창고같았는데다가, 광광안내책자외에는 음료수도 한잔 내어놓지 않는 무성의도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사실 봉화군청에 일본 연수생이 왔다고하면,
음료수는 물론 갖가지 기념품을 주고
어쩌면 군수가 직접 이들을 모시고 봉화 한약우라도 대접했을지도 모르일이다. 
오이타 현청에서 나오야마상의 브리핑을 듣고 질의 응답을 주고 받았지만
농촌의 개발방향이나 지향해야할 미래농촌상 그리고
그린투어리즘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충분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농촌현실에서 그린투어리즘의 위상은 사실 보잘것이 없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오이타현은 인구 120만으로 그중 농가가 약 5만2천호인데
고작 149가구만이 농박과 민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조차도 너무 많아 상호 경쟁이 문제가 되고 있고
더 이상 확대할 경우 기존 호텔 등 숙박업체와의 마찰도 우려된다고 했다.
한국에 대단한 성공사례로 소개되면서 몇몇 전문가라는 분들이
끝없이 우려먹어 왔고 벤치마킹해야될 사례로 제시했던 아지무 마을의 그린투어리즘이었지만
성공적인 사례라는 오이타 현내에서만 볼때도 일본의 농업, 농촌을 살리는데 차지하는
그린투어리즘의 역할 비중은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오이타현청방문을 마지막으로 일본에서의 3째날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오이타현청에서 우리의 그날 숙소인 하몬드호텔이 있는 뱃부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해 온천욕을 하고 이미 친숙해진 일본의 저녁상을 받았다.
일본의 정식 저녁식사는 가이세키요리라고 하는데 식사와 술을 곁들여서 먹을 수 있는
갖가지 요리를 갖춘 푸짐한 식단이라고 했다.
우리가 먹은 저녁은 정식 가이세키요리라고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분에 넘치게 푸짐했고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 옥상에 있는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몇몇젊은 친구와 같이 뱃부 거리를 나섰다.
폭설과 한파로 인적이 드문 거리를 잠시 헤메다
뱃부 밤거리 산책을 포기하고 호텔 가가이에 있던 슈퍼마켓에 들러
아사히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뱃부에서 일본여행 3일째 밤을 맞으며
깊고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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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은 말이 없습니다.

꽉 다문 입, 싸늘한 눈빛,

가까스레 내민 손을 외면하는 굳은 표정...

그렇게 겨울강은 깊은 침묵속에 세상을 등졌습니다.

멈춰버린 강물을 따라

찬 바람이 쓸고 지나가면

강변의 움추린 갈대들이 으스스 몸을 떱니다.

얼음에 비친 헐벗은 산은 푸른 빛을 잃었고,

지난 여름 강변을 수답게 노닐던 새들의 자취는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겨울 산 넘어 새파란 하늘은 얼음보다 더 차갑고

얼음에 비친 햇살조차 냉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깊어가는 겨울강을 따라

봄의 전령을 찾아 걸었습니다.

바스라지는 얼음사이로 생명의 흔적을 살피고

봄의 기미를 찾아 걷는 겨울 강은 말이 없습니다.

겨울 강을 걸으며 연두빛이 흐드러지는 봄날을 기다리는

비나리마을 주민의 애틋한 마음을

나직히 전했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만치 봄은 또 우리 곁에

한걸음 두걸음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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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부터 15일까지 4박5일간 일본 연수를 다녀왔다.
이번 연수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의 7개리로 꾸려진
청량산비나리권역 주민등 17명이
일본 규슈의 대표적인 농촌마을을 견학하며
마을 공동체 사업을 통해 마을을 활성화한 사례를
밴치마킹하기 위한 '주민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일정과 사전 준비부족으로 충분한 연수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적지않은 배움과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값진 여행이었다.
5일간의 여정을 나름대로 3번에 나누어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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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첫날

5일간의 부재를 대비한 이런저런 정리와
여정을 위한 준비로 새벽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설핏 들자마자 핸드폰 소리가 울리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반,
새벽 4시에 명호에서 출발하기로 되어있는데
위원장님께서는 한잠도 못주무시고
동행할 각 위원님과 관계자분들께 전화를 한 것이다.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얕은 잠을 자다가
3시30분이 되어서야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두어번의 유럽과 후주 여행의 경험때문인지 그리 먼길을 떠나는 기분도 들지 않고
또 긴 일정도 아니어서 전날 간단히 배낭을 꾸려놓았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전날 꾸려 두었던 배낭을 매고
출발지인 명호에 도착해보니 벌써 일행들은 도착해 있었다.
 모두들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급한 인사를 나누고, 5일간의 즐거운 여행을 서로 축원하면서
버스는 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김해공항에서 후쿠오카행 아시아나 항공기는 10시 30분에 이륙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눈길에다가 일본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이른 출발을 재촉했다.
김해 공항을 30여분 남겨두고 청도 휴계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밟고 출국장에 들어서니
드디어 진짜 일본여행을 가긴 가는가보다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콩닥거리고 작은 긴장이 몰려왔다.

개인적인 여행이 아니라 일본 농촌사업을 벤치마킹하기위한
마을주민 연수다 보니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실 명확했다.
마을 사업 추진위원님들간의 유대와 단합의 계기가 되고
그리고 일본의 선진마을 사례를 통해
우리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그래도 이번여행에 거는 나의 개인적인 기대는 없을 수 없었다.
첫 일본여행이기도 하지만 일본에 대한 조금은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2~3년전 와이프의 일본인 친구분들이 우리집에서 3일간 머문적이 있었고
그때나는 직접 그분들을 모시고 안동과 봉화지역을 돌며 안내를 했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떠나며 오사카 방문을 권유했고, 실제 와이프는
오사카 여성영화제에 초대받아 그분들의 집에 수일간 머문적도 있다.
그 이후 메일과 엽서 등을 통해 교류를 한 때문인지
일본이 세상 어떤 나라보다 관심이 가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꼭 그것때문은 아니지만 일본의 문화와 문물을 접하고
낯선 삶 속에서 익숙한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그런 여정이길 기대했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이라지만
사실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었다.
김해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겨우 40여분이 될까말까하는 사이
후쿠오카공항에 착륙을 시도했다.
긴 줄을 따라 입국심사를 받고 공항을 나와 후쿠오카 공기를 들이쉬며
바라다본 도시는 낯선 이국이 아니라
너무나 친숙한 풍경이었다.

한국인과 외모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본인들,
차, 건물, 도로 등 어느것 하나 이질적인 것이 없고 친숙했다.
그 친숙하고 다르지 않은 외양속에
또 얼마나 다른 점이 감춰져 있는지 알게 되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나에게
결코 낯선나라가 아니라 친숙하고 또 친절한 이웃으로 남게 되었다.


 김해공항 출국장 풍경.
낯선 나라로 떠나갈 분들의 가벼운 발걸음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 가득하다.

후쿠오카에서 첫 식사를 한 식당이다.
가벼운 소고기 구이와 기무치, 밥과 미소된장국으로 이루어진 식단은
깔끔하고 맛깔스러웠다.
이번 일행중 가장 어린 이웃 욱이 아빠가 폼을 잡고 있다.


첫 식사를 마치고 들런 모모치해안이다.
방조제를 만들고 바다를 메궈 땅을 넓혀나간 자리에
인공으로 모래사장을 만들고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모치 모래사장에서 주운 사랑의 기원을 적은 조개껍질이다.
신년에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에 소원을 적어 바다에 던지는 풍습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랑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하면서 바다로 돌려 보냈다.

첫날 두번째 방문지인 아사히 맥주공장.
공장견학을 마치고 맥주 시음을 할수있는데
일인당 3잔까지 맥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뭐 별다른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장이 인상깊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맥주 석장 얻어마시러 귀한 여행일정을 소비해야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일본의 거리는 겉으로 보이는 깨끗하다는 인상보다 훨씬더
우리와 비교해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의 삶의 태도를 이루는 많은 요소들중에
차와 관련된 것만 한정해서 보고 부러워하거나 비난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인의 운전문화는 우리가 많이 배워야할 것 같았다.
먼저 거리에서 쓰레기를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차가 아무리 많아도 경적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정지선을 지키고 정지했을 때의 충분한 차간거리,
절대로 규정속도를 위반하지 않는 운전습관,
고속도로 규정속도가 시속 80KM라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였다.
일본 고속도로가 나빠서 규정속도가 작은 것도 아니고,
또 고속도록 규정속도가 작아서 일본의경쟁력이 뒤쳐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는
모든 가치를 다 내팽겨치고 오직 경제성장이라는 단일 가치를 향해 질주하는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일행이 4일간 타고 다닌 버스 기사님께
휴계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드렸더니
먹으면서 운전하면 불법이라고 하시면서
승객인 우리들의 양해를 구했다.
그뿐이 아니다.
도로가 갓길에 포크레인이 정지 작업을 하는데
프크레인 기사가 헬멧을 쓰고 작동을 하는 것을 보고
우리 일행은 모두 몰랬다.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라고.
거기다가 3방향에 각 1명씩 3명의 교통통제 요원이 포크레인을 감싸고
차량의 소통을 안내하고 있었다.
일본여행중에 안전과 관련된 그들의 철저한 준비 자세는
혀를 내두를 정도 였다. 참으로 부럽고 또 부러웠다.

구마모토에 도착,최고의 번화가인 '시모도오리(선로드)'를 1시간 정도 돌아봤다.
일본의 대중문화, 특히 청소년 문화를 접하고, 상가의 모습들도 불러볼 수 있었다.
이날은 일본의 공휴일의 하나인 성인의 날이었다고 했다.
거리마다 기모노를 입은 젊은 아가씨와 까만 양복의 청년들이
떼지어 몰려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모두들 올해 스무살이 된 젊은이들이라고 했다.
일본의 성인의 날은 그해 성인이 되는 남녀가 기모노와 양복을 입고
성인식 같은 행사를 치루고 같이 파티도하고 의미있는 시간들도 가지는 그런 날이라고했다.

출국전 딸아이가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음악 CD가 있었다.
"동방신기" 일본어로는 '토호신끼'라고 한다는데
언어도 안되는 낯선 타국에서, 그것도 단체 행동을 해야하는 와중에
CD를 구입하기는 쉬운일이 아닐것 같았다.
연수 이틀째부터는 본격적으로 산골마을을 돌아다니며
견학을 해야하기 때문에 딸아이가 부탁한 음악 CD를 사기에는 이날이
절호의 기회였다. 다른분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일본인의 삶과 문화를 만끽하고 계셨지만
나는 오직 레코드 가게를 찾기위해 온신경을 모았다.
가까스레 레코드 가게를 찾아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지만
돈만있으면 손짓과 표정으로도 충분히 의사를 나누고
물건을 사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모도오리거리를 산책을 마치고 일본에서의 첫날밤을 보낼 숙소인
시로가네호텔에 짐을 풀었다.

일본인의 친절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현지에서 느끼는 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호텔 직원들이
문앞에 나와 있다가 우리를 맞고, 우리 짐을 버스에서 내려
호텔 로비까지 들어다주었다.

침실에 들어가니 차와 간단한 비스킷이 준비되어 있었고,
이는 일본 여행 내내 숙소마다 만날 수 있는 작은 것이지만
낯선여관이 아니라 편안한 내집같은 느낌을 주게되는
소중한 서비스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료칸(온천이 있는 여관)마다 '유까타'라는 전통 옷이 있었다.
온천을 하거나 식사를 할때, 료칸 내에서 마음대로 입고 다닐 수 있는
편한 옷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모두들 우카타를 입고 호텔 로비로 내려와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고 사진을 찍으며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렸다.
이번 여행 일행중에 여성은 딱  두분인데 한분은 봉화군 개발위원인 박여사시고
또 한분은 무리마을 사무장이다. 두분이 우카타를 입고 있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료칸에서 받은 첫 식사다.
일본식 정식이라고 하는 데 먹을 게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푸짐하고 맛깔스런 음식이었다.
남길게 하나도 없는 슬기로운 식단에 매료되어 일본 여행 내내
한번도 음식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다 비웠다.
몇몇분은 일본 음식이 입에 맛지않아 미리 준비해간 고추장을 찾으시거나,
음식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5일 내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호텔 객실은 다다미가 깔린 화실로 2인실이었다.
낡은 듯하면서도 깔끔한 객실은 
한국에서 들렀던 현대적인 모텔에 비해 훨씬더 아늑하고 
잠이 잘 올것같은 그런 방이었다.

호텔 방에 있는 침실내 구닥다리  TV다.
사실 TV뿐 아니라 료칸의 이런저런 물품이나
건물을 살펴보면 어느것 하나 낡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새것에 대한 우리의 집착과는 달리
일본사람들은 낡은 것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한가 보다.
사실 료칸의 등급을 매길때도 얼마나 역사가 깊은 곳인가 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한다. 

일본 여행 첫날의 밤은 깊어가자
몇몇방에서는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파티가 벌어졌다.
하지만 일본에 와서 호텔방에서 소주나 마시고 있는다는 게
나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 호텔을 나섰다.
호텔 입구에는 우리 일행 두명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나와있었지만 마땅히 갈 것을 몰라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가 지내는 호텔은 조금은 외진 구마모토 시의 외곽에 위치한
때문에 사실 호텔 문을 나서도 갈 곳이 없었다.
택시를 불러 시가지로 나서기에는 두려움도 있었고,
또 첫날이다보니 어두컴컴한 호텔 주변 주택가를 산책만 하고 돌아왔다.

호텔 6층에 있는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들뜬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밀린 피곤이 몰려왔다.
새벽부터 움직이다보니 전날 거의 잠을 자지도 못한데다가
항공여행이 주는 긴장감이 피로를 더했는가보았다.

일본 여행 첫날, 잘 보고, 잘 먹고, 온천 잘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누우니 너무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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