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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에서 연극 활동중인 [나무닭움직임연구소]
http://namoodak.wordpress.com/ 에서 연락이 왔단다.
국제환경연극 프로젝트에 참가해 [움직이는 전설]이라는 타이틀로
한여름 연극예술잔치를 가지게 되었는데
일정이 임박해져 소품 제작을 도와달란단다. 
8월 9일,그림을 그리는 아내덕에 오랜만에 청송으로 달렸다.
청량산을 가로질러 부슬비가 내리는 몇개의 지방도를 달리고
영양과 청송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하게되어 경찰관에게 참고인으로 명함까지 남긴뒤
어렵게 청송에 도착했다.
 

주어진 과업은 고래두마리를 채색하는 일!
우리가 채색할 고래는 어미고래와 새끼고래 각 1마리로
종류는 귀신고래라고 했다.
찾아보니 귀신고래의 국제적 명칭은  Korean Gray Whale로
유일한 한국계 고래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울산 장생포가  오염되고 뱃길이 분주해지면서
벌써 삼십몇년동안 귀신고래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단다.
무려 45톤이나 나가기도 하는 대형고래면서
귀신같이 바위사이를 잘 빠져다녀
이름 붙었다는 귀신고래가 
이제는 한국의 환경재앙을 상징하는

슬픈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료가 없어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출력한 조그마한 사진에 의존해
귀신고래를 그렸지만 오후 늦게 빗발이 날리기 시작할 때까지 
어미고래 한마리만 겨우 완성을 하고,
아직 천도 씌우지 못하고 있던 새끼고래는 
시작도 못하고 청송을 떠나와야했다.


근 2년만에 들른 '나무닭'은 그동안 많은 활동을 해온
흔적을 구석구석 간직하고 있었다.
2년전에 비해 훨씬 정리된 주변환경도 그렇고
이런저런 소품들도 그동안 상당히 늘어나 보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무닭연구소가 사용하고 있는 폐교 건물공간마다
지역의 어린이들부터, 멀리 남미에서 온 연극인,
타지역의 대안교육기관의 학생들까지
사람의 온기가 넘쳐난다는 사실이었다.


지역에서 온갖 열악한 조건을 다 감수하면서
지역문화예술을 일구는 장소익 선생과 동료분들의 열정에 탐복하고,
폐교를 꽉채운 지역주민과 어린이, 연극인의 열기와
아름다운 소품들을 사진기에 담았다.


'연극'이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기척 자체도 귀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귀한 농촌에서
연극을 통해 사람을 모으고 정을 나누고
지역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다.
개인적인 욕망을 접어둔채 청송의 작은 마을에서
연극을 통해 지역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나무닭]의 활동에 한량없는 부러움과 존경심이 일었다.
하루낮의 나무닭 순례를 마치고
나의 삶의 터전인 비나리마을로 돌아온 저녁

나는 황량한 벌판을 처음 마주한 얼치기 농부의 마음으로
나의 삶과 나의 마을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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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사람은 물론이지만 소돼지같은 짐승들에겐
다시는 없어야될 참혹한 시절이었습니다.
수천 수만마리 소와 돼지가 오직 구제역이라는 전염병이 번져
고기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위한다는 이유로
마무가내로 생매장되고 대량 살육되었습니다.

인간이 참 죄가 많습니다.
신이 없기에 다행스럽긴하지만,
인간의 죄를 누가 물을까 두렵습니다.


이웃 마을까지 구제역이 번져 이웃 소들이 살처분되는 와중에도
비나리 소들은 다행히 구제역 참화를 비켜났습니다.
전래가 없는 대량 살육의 와중에 태어난 송아지가 이만치 자라
어미의 사랑속에서 따사로운 봄햇살을 맞고 있습니다.
생명의 안스러움과 그 애틋함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간디가 그랬답니다.
"문명사회의 척도는 그 사회에도 동물들을 어떻게 대우하는가이다"
잡식성 동물인 인간이 육식을 회피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채식주의자들이 있긴하지만 인류의 0.1%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고기를 위해 짐승을 키우고, 그 고기를 죄책감없이 취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한 생명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좀더 경건해져야할 것입니다.
저 애틋한 송아지의 맑은 눈을 바라다보면서 
지금 당장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지만
이제부터 가능한 육식을 줄여 나가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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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날, 강건너 거무실을 걸었습니다.

늦은 아침, 살을 에는 추위가 한낮의 햇살에 누그러들자

간단한 간식을 챙기고 아내와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이런저런 핑게로 오랫동안 떠나지못한 마을길 순례를

이번은 사전 계획도 없이 갑자기 나서게 되었습니다.

 

거무실은  비나리마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입니다.

비나리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쪽으로 오백미터만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초방산 가는 길이 나오는데, 바로 그 반대편 강건너

보일듯 말듯 골짜기에 숨어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몇년전에야 겨우 전기가 들어가면서 언론도 타고,

그 덕분에 외부에 알려지게된 거무실은

직선거리로 따진다면 국도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마을앞은 낙동강으로 막히고 마을뒷길은 청량산의 한자락인

문명산에 가로막혀, 차로는 당연히 접급할 수도 없고

걸어서도 접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세상에 숨겨진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비나리마을에서 출발해서 옷갓재를 지나 고계다리를 건너고,

고계리 마을을 관통하다 오른쪽으로 틀어 산길을 접어듭니다.

고계리를 지나 30분쯤 산길을 오르다보면

정상쪽으로 난 가파른 비포장길과 오른쪽 강쪽으로 나있는

오솔길로 나누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파른 산길에는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차바퀴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산이 깊어질수록 그 길마저 사라집니다.

매서운 추위가 살을 애는 한겨울에도 등에 땀이 흐를 만치 걷다보면

그 길의 끝에서 민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세상이 싫어서 이렇게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가 싶기도하고, 어쩌면 옛 고향집을 꾸며

간혹 들러서 쉬어가는 집같기도했지만

아무리 불러봐도 사람은 나오지 않고 빈마당엔 겨울 바람만 가득했습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강쪽으로 갈라진 오솔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첩첩산중이지만 그래도 가는 길목마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가쉰 폐가들을 만날 수 있고,

잘 손질된 잔디가 덮인 무덤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대신해 객을 반깁니다.

 

풀숲을 더듬어 없는 길을 만들어 30분쯤 더 걷다보면

이제는 포기하고 돌아서야지 하고 마음먹기 시작할 즈음

오랜동안 그리도 가 보고싶었던 거무실 아랫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는 두어집이 남아 동네를 지키지만

가파른 산능선에 심겨진 대추나무와

겨울 찬바람에 마른 고추댓궁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천연덕스럽게 지난 여름 받았을

따뜻한 사람의 손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두어채의 폐가와 사람사는 흔적이 있는 또다른 두어채의 집이 전부인 마을에는

인기척이라곤 찾아볼수 없고

낯선 객을 반기는 강아지 한마리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명산자락이 모은 빗물이 지나는 거무실 계곡은

도연명이 찾던 무릉도원이 꼭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치

선계를 닮아있습니다.

큰물에 씻긴 집채만한 바위로 이루어진 거무실계곡은

언제 다시한번 꼭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찾고 싶습니다.

계곡을 이루는 바위위에 작은 상을 차리고 오늘은 만나지 못했던

거무실 사람들과 잔을 비우며 물소리와 함께

거무실 사는 이야기라도 듣고싶습니다.

 

한해를 보내야하는 즈음,

거무실을 걷기는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 비나리마을에서 거무실까지 왕복 10km // 일부구간 난코스

* 소요시간 4시간

* 거무실마을 도착후 낙동강을 따라 북상, 고계 다리에서 강을 건널 수 있지만 비나리마을 앞 구간에서 강변을 따라 지나기에 어려운 코스가 있다.

* 고계리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를 시작하면 넉넉잡아 3시간이면 거무실 마을 걷기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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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가을 비가 추적대고

잔뜩 찌푸린 하늘이 계절을 잊게 만들지만

가을은 살그머니 옷갓재넘어 비나리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면에 들러 볼일을 보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국도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는 옷갓재를 넘으며

무심코 고개를 돌려 내다본 고갯길은 완연한 가을입니다.

일상에 묻혀 자연의 변화를 잊어버리곤하지만

문득문득 다가서는 자연의 위대함은 절로 오만한 인간의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절기에 따라 꽃을 피우고, 햇빛을 모아 열매를 맺고

또 그 잎을 떨구고 안식의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숭고함은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입니다.

그 속에 사람이 살아 사람마져 아름다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자연의 위대함인가 합니다.

  

가을은 코스모스를 피우고, 코스모스는 또 가을을 부릅니다.

고개를 넘어 서면 이웃 농가 마당가에 심겨진

세상에서 가장 가을다운 꽃이라 해도 좋을 코스모스가

마을을 찾는 손님들을 반깁니다.

내일이면 비나리마을에서 자라 비나리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을 자식들이

옷갓제를 넘어 부모님을 찾을 것입니다.




고향을 찾는 그 분들의 두눈에 코스모스 가득 핀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아름다운 비나리마을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마을의 추억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때문에 더 아름답게 더 값지게 세상살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멀리 고향인 진해를 찾아

눈이 시리도록 바다를 보고 또 보고

가슴에 가득 갯내음을 담고 올 것입니다.

 

이번 비가 한가위와 함께 지나고 나면

마을 가득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가을 걷이가 바빠지고 곧 다가올 겨울 준비가 시작됩니다.

곳간을 채우고, 장작더미를 높이 쌓는 것 못지않게

시린 계절을 참고 이기게 하는 것은

가슴깊이 묻어둔 어린시절의 추억과

풋풋한 사람들과의 그리운 인연일 것입니다.

 

일자리는 줄고 물가는 비싸고, 갈수록 팍팍해지는 세상살이에도

올 추석, 세상사람 모두가 앞산 위에 떠오를 보름달보다

더 큰 사랑과 정을 가슴에 가득 채우시는

즐겁고 행복한 한가위 맞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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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가 내렸던 지난 토요일 저녁, 경북 봉화군 명호면 소재지 면사무소 건너 편 농협경제사무소 마당에서 작은 규모지만 큰 의미가 있는 [밭두렁공부방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하루종일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이번 음악회를 준비해 온 밭두렁 공부방 학부모들께선 행사가 비로 무산될까 하루종일 걱정해야했습니다. 무대는 어쩔 수 없이 천막으로 덮었고, 관객석도 비를 피할 수 있는 농협 물류창고옆 상하차 작업장에 마련했습니다. 리허설중인 오후 내내 내리던 비가 다행히 행사가 시작되면서 기적같이 그치고 마당 가득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채우며 작은 음악회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회는 먼저 봉화주민인 청초이순섭 화백의 개막 퍼포먼스로 시작되었습니다. 청초님께서 대형 광목에 큰 붓으로 용을 그리고  '이나리강에 용나다'라는 글귀를 쓰주셨습니다. 이나리강은 명호 아이들이 뛰어놀고 자라나는 삶의 터전입니다. 그 강에서 이 아이들 하나하나가 바로 '용'으로 자라나길 기원하는  청초 이순섭선생의 마음을 표현한 글귀였습니다. '용'이 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고 출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가꾸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명의 인간으로 자라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농촌에 살고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라고 주눅즐지 않고  당당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기원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은 글귀입니다.



이어서 [나무피리 요술피리]라는 음악공원을 가꾸고 계신 이웃 법전면의 조성용선생님께서 직접 만든 악기를 소개도 하고 연주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연주체험도 하는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날 행사의 백미인 밭두렁공부방아이들의 태권체조와 노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산골이 좋아 비나리에 정착한지 일년도 되지않는 전직 태권도 도장 관장님이 지도한  공부방아이들의 이날 공연은 태궈도를 배우기 시작한지  한달여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치 씩씩하고 멋있었습니다. 이어서 공부방을 직접 운영하시는 4분의 선생님께서 그동안 지도로 준비한 노래  '과수원길'과 '꼬부랑할머니'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너무나 이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날 작은 음악회의 초정가수는 이지상과 손병휘님입니다.  두분은 주로 거리와 광장에서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호흡을 같이하며 노래를 해 오신 '민중가수'입니다. 두분다 4집까지 앨범도 내고, 이지상님은 성공회대학교 경임교수로도 재직중이십니다. 작은 경비에도 마다않고 농촌마을의 작은 공연을 찾아주신 이지상님은 이번 공연을 기획한 이웃의 친구십니다. 그 인연에 얹혀 우리 마을과 관계가 맺어진 두분과 지속적인 연대가 이어질 수 있었으면 참좋겠습니다.

저녁 9시가 넘어 공연이 끝나고 뒷정리가 시작되면서 공연자를 모시고 먼저 뒷풀이장소로 안내를 했습니다. 늦은 저녁식사와 술을 나누며 가진 뒷풀이 시간을 통해 공연자 여러분들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었고 특히나 이지상님과 손병휘님의 소탈하고 호쾌한 기상에 인간적으로 매료되었습니다. 다음날까지 이러진 개인적인 뒷풀이까지 주말 이틀이 작은 음악회로 가득찼습니다. 




이번에 가진 [밭두렁공부방 작은 음악회]는 특별합니다. 먼저 300만원 가량의 적은 예산으로 진행한 마을 음악회 입니다. 그리고 그돈 마저 주민과 후원인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마련하였습니다.  대구에서 치과를 운영하면서 단지 우리 마을이 좋아 자주 걸음하시는 지인한분이 100만원의 거금을 쾌척했지만 나먼지는 많게는 10만원 작게는 2~3만원의 후원으로 음악회가 열릴 수있었습니다. 공부방의 운영주체가 봉화자활후견기관이긴하지만 이 기관으로부터도 물질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오직 학부모의 정성과 노력으로 아름다운 음악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가수를 초정하기도 했지만 지역의 어린이와 지역 예술인의 공연을 기본 프로그램으로 채웠습니다. 이 음악회를 기획한 것도 마을주민이고, 행사 진행자도 마을주민의 한사람이었습니다. 면사사무소에서 음료수를 지원받기도 했지만 그것이 관공서로부터 받은 지원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민중가수인 이지상님과 손병휘님이 단지 농촌마을주민의 자력으로 여는 음악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소한의 경비만 받고 출현했습니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 지역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활력을 되찾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제일좋았습니다. 학부모와 청년들이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의자를 나르고, 관객을 안내하고, 음료수와 떡을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지역의 작은 행사 하나하나가 지역의 생기를 북돋고 지역주민에게 자긍심과 애향심을 불러일으키고 지역 사회에 대한 사랑과 애착을 키워나간다면 우리 지역사회의 미래는 밝기만합니다. 작은 음악회를 통해 지역주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신 관계자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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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어제 오전 비나리마을 청년들이 모여

마을길에 접시꽃을 심었습니다.

올봄 일찍 포트에 파종을 하고 접시꽃 모종을 길러 왔습니다.

고추 정식도 끝나고 모종 하우스가 비어가는데, 마지막 남은 접씨꽃 모종 포트를

트럭에 싣고 마을 안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빈터마다 심었습니다.

온 동네가 모내기에 정신이 없었지만 자신의 일을 잠시 뒤로 미룬채

은혜아빠, 와우네, 산이네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이서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을 안길은 마을 주민 모두의 정원입니다.

그렇지만 다들 농사일에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항상 풀만 우거지고 가꿀 틈이 없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마을총회에서 마을안길 꽃길가꾸기에

사용해라고 30만원의 식대를 배정해 주셨습니다.

은혜아빠를 중심으로 청년들이 함께 마을 길을 가꾸어 나가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올해는 우선 접시꽃으로 마을 길을 장식하지만

내년에는 길 둔덕마다 개나리를 심고

노란 국화를 심을 계획도 세웠습니다.

마을 청년들이 같이 마을길을 가꾸면서

서로 마을 일을 걱정하고,

마을의 미래상을 논의해 보는 것은

어쩌면 꽃 몇포기보다 더 가치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마을을 어떤 마을로 만들어나갈 것인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그 공통 분모를 찾아

최소한의 실천을 해 나가는 마을의 미래는 밝기만 합니다.

 

접시꽃이 활짝핀 마을길을 미리 상상해보고

마을의 인심도, 마을의 미래도 접시꽃처럼

넉넉하고 아름다운 세월을 꿈꿔봅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있고,

또 그 가치에 반해 그 삶을 닮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비나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습니다.

세상 모든 마을이 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득 차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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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박을 예감케하는 비나리패션을 소개합니다.
비나리하고도 웃마, 고개하나 넘으면 역계땅이 지척인
대추나무골 새주인 비나리마녀가
올 한국 패션계를 강타할 신작 비나리패션을 선보였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알지만
모르는 분은 또 다 모르는 이제 고작 귀농한지 서너달 된
민서엄마 비나리마녀께서
올 봄 선보인 비나리농부패션은
농사를 지어도 한 50년은 지었을 것 같은 농부의 포스가 느껴지는
최고의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작품입니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오신 동네 할머니들이 보면
뒤로 자빠지질 만한 농부패션을 자랑하시는 비나리마녀님은
올해 무려 300여평의 밭에 감사, 고구마, 고추 거기다가 야콘과 옥수수까지
온갖 농사를 다 지을 예정이랍니다.
벌써 아랫골 100여평에는 부지런히 심은 감자가 뿌리를 내리고
오늘내일 봄 햇살 속으로 싹을 내밀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비나리마녀네는 패션만 농부스러운게 아니라
마을주민들과 어울려 벌써 비나리마을 주민의 한 가족으로
알콩달콩 이쁘게 생활하시는 모습도 참 이쁩니다.
오랜세월 한마을에 살면서 터득할 수 있는
농촌공동체의 생활방식을 선천적으로 타고 나신 분 같습니다.

다음 달이면 소위 흙부대공법으로 멋진 집을 짓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의 터전을 가꾸어나가실 것입니다.
우선은 1500여평의 대추나무밭을 가꾸며,
소박한가족의 생계를 잇고, 마을공동체에 뿌리내리기 위한
다양한 모색을 해 나가실 계획이랍니다.

 다음달부터는 명호밭두렁공부방에서
명호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태권도도 가르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귀농직전까지 부산에서 부부가 같이 태권도도장을 운영하신 노하우도 살려
지역 사회에 봉사도 하고 주민들과도 어울려 나가시기위한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비나리마녀님과 서방님, 아들 민서, 딸 지형이 그리고 새식구 강아지 와우까지
다섯식구가 마을에 들어오신지 몇달되지 않지만
여러가지로 새로운 생활을 잘 적응해 나가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만 비나리에 귀농을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인심좋고 아름다운 마을 비나리에 살게되면
누구나 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턴가 작은 마을 비나리엔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넘쳐납니다.
 

비나리마녀네 블로그 : http://blog.naver.com/bada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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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나리농장에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농사 13년 동안 몇번을 생각하고 망설이던 사과농사를
좋던 사과값 다 떨어지고 나서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0~40년전에 사과농사는 많은 농민이 선망하는
돈되고 폼나는 농사였다고 합니다.
사과과수원을 조금만 가꾸면 자식 몇 대학보내는 것이
문제없을뿐 아니라 몇몇 농사가 잘된 사람들은 서울같은 도시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과농사는 아무나 할수 있는 농사가 아닙니다.
나무를 심고 첫수확까지 3~4년이란 시간이 필요한데다
농장은 사과농사를 할 만한 토질과 기후조건이 되는 곳이어야되고
그리고 전지나 시비 기술도 뛰어나야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흘러 사과과수원이 늘어나고,
사과재배기술도 변하면서 왜성밀식재배라는 
신기술이 도입되는 등 수확량도 늘어나고
무엇보다 수입과일이 사시사철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그 좋던 사과값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어제 M26대목으로 250여그루의 부사와
100여그루의 홍로, 80여그루의 아오리를 심었습니다.
사과를 심기로 결정한 이유는 돌많고 경사진 밭에
일반 경작물을 재배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자상거래 위주로 농산물을 판매해오던 저에게
사과라는 품목의 판매가 더 용이하다는 면도 있었습니다.
또한 늦어도 내년 중반까지 비나리마을에는 '마을활성화센타'가 들어섭니다.
마을 방문자가 늘어나면 이분들을  타킷으로 한
사과따기 체험농장으로 활용도 할 계획입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웃 만리산에서 아름다운 사과과수원을 가꾸고 있는
한 친구 금동윤씨의 권유때문입니다.
멋진 사과과수원를 꾸리면서 지역사회에서 많은 봉사도 하는 그분의 과수원은
멀리 청량산이 내려다 보이는 만리산 산꼭데기에 위치해 있는데
한번씩 갈 때마다 멋진 과수원이 부럽기 짝이었었습니다.
매년 얻어먹는 사과도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과수원을 가꾸시는 분이 
사과재배와 관련한 모든 자문과 기술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물론 그분만 믿고 시작할 수 있는 사과농사가 아니지만
이렇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준 그분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과나무를 심는 작업에는 이웃 젊은친구들이 대거 같이하셨습니다.
만리산 근동윤씨 내외, 만리산 여포도령님, 비나리 꺼꾸제 정형,
비나리양지마 민서네 내외,  그리고 나무아빠가 같이했는데
누구보다도 우리앞집 형님이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모든 분의 정성이, 아름다운 마음이 그대로 우리집 사과나무를
키우는 밑거름이 될것입니다.
맛있고 이뿐 사과 줄주렁 달리는 날,
제일 먼저 같이 사과나무를 심은 이웃께
한아름씩 우리집 사과를 선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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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번째 만리산길 걷기를 마지막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을걷기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새 봄을 맞아 올해 다시 마을걷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제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아이들 손마저 빌려야 된다는 농번기이지만
그만치 마을길을 걷는 우리의 발걸음도 소중하기에
과감히 바쁜 일도 뒤로하고 길을 나설 생각입니다.

이번코스는 반나절 코스로 각자 점심을 먹고
간단한 간식과 목을 축일 물만 가지고 길을 떠납니다.

총 걷는 거리는 10km정도지만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는 난코스라서
그렇게 만만하지많은 않을것 같습니다.



항상 국도를 달리며 강건너 거무실이 궁금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세상이 다 바뀌어도 바뀔거 같지 않은 거무실에
몇년전 전기가 들어오고
동시에 전기가 없이 살던 마을이라는 기사가 언론에 났지만
접근하기가 워낙 불편해서 그런지
아직 거무실은 태고의 마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마을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편함에 기대어
주관적 희망을 투사하는 저 자신의 이기심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거무실의 지금 모습 그대로 언제까지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았지만 미리 공지합니다.
 
= 일정
  2010년 4월 11일 오후1시 출발 / 비가 오면 1주 연기됩니다.

= 코스 및 기타 안내
오후 1시 비나리마을입구에서 출발 - 고계 다리를 건너 - 고계리 공마를 지나 거무실까지 걷고 -  거무실을 지나 강을 건너 - 초방산으로 향합니다. - 초방산마을을 들러 - 갈골 을 통해 하산하여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 갈골 민경동 댁에서 징코민토종닭 백숙을 먹고 비나리 입구가지 민사장 차를 이용해 이동한뒤 해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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