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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야콘 파종을 마쳤습니다.
고구마는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 보일러실에 쌓아두고
주문이 간혹 들어오면 조금씩 팔기도하고,
가까운 이웃과나무어 먹기도하면서 겨울을 나고
이제 다시 싹을 띄우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굽은 소나무가 묘를 지킨다고,
모양이 좋은 놈은 다 팔려나가고 남은 못생긴 놈들만 
고구마농사를 잇기위해 종자로 남았습니다.
작년에 500여평을 심어, 사실 많이 남아버렸는데
올해는 한 300평만 심을 생각입니다.

야콘은 줄기와 먹는 뿌리사이에 돌덩이 은 모양의 '뇌두'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눈이 수십개씩 달려있다가 봄이되어 온도와 습도가 맞으면 싹을 틔웁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을 끝내고 이 뇌두를 컨테이너박스로 5박스정도 모아서
땅을 깊이 파고 묻어 놓았습니다.
50CM깊이로 땅을 파고, 그 밑에 낙엽을 깔고 뇌두를 놓은 뒤에 
이불을 덮고 다시 비닐을 덮은뒤 흙은 두텁게 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빗물이나 눈이 녹은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위해 마 비닐을 씌우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고정시켜놓았습니다.

올 겨울 추위가 대단했기때문에 혹시라도 얼어썩지나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건강히 겨울을 잘 났습니다.   
그 놈들을 캐내어 비닐하우스에 모판을 만들고
나란히 심었습니다.

먼저 고구마를 심고, 다음에 야콘을 심었습니다,
한 하우스안에서 어깨를 맞대고 누워있는 야콘과 고구마가
사이좋게 싹을 틔우고 무럭투럭 자라나길 산신령님께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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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청량산비나리마을 정보센타에서
개방형 블로그 활용 교육이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중에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운영중이거나
앞으로 운영할 의향이 있는 10여분이 한자리에 모여
최일규 강사님(씨앤제이 대표/경북 경산시)의 열강을 들었습니다.
막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한 저와 나무아빠,
막 귀농하셨지만 올해 당장 대추를 팔아야할 민서네 부부,
밭두렁 공부방 블로그를 운영할 생각이신 김종미 선생님 내외분,
마을종합개발사업 사무장이신 정근영아씨 등
우리 마을의 젊음이가 거의 총출동을 했습니다.


도대체 블로그가 무엇인지,
특히나 개방형 블로그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는 물론 
개방형 블로그를 대표하는 티스토리는 어떻게 만들고 운영해야할지
저녁 늦은 시간까지 식사도 거르고 최일규님 강사님께서 열강을 해 주셨습니다.
수강생 10명인 소박한 교육이다보니 편하게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면서,
우스개 소리도 주고 받으며 밤깊어가는 줄 모르고 교육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내일, 모레까지 계속될 이번 교육을 통해
마을에는 갑자기 트위터와 아이폰 같은 첨단 IT정보를 갖춘
티스토리 블로그 운영자가 늘어날 것 같습니다.


밤 10시가 다 되어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마을 운영위원장이신 김신현 형님께서 
안동찜닭이며, 닭튀김에다가 맥주까지 한 보따리 사들고 
찾아 주셨습니다. 
교육에 참여해주신 주민들도 고맙고,
밤 늦도록 열강해주신 강사님도 고맙고,
밤늦은 시간 참까지 공수해 주신 위원장님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강사님과 교육생이 함께  밤참을 먹으며
강의 시간보다 더 열띤 토론과 정보공유의 시간을 자정이 다 되도록 이어갔습니다.
서로의 블로그를 평가하고, 자신의 블로그 운영과정에서 느낀 문제의식도 풀어놓고 함께 고민하면서 맥주를 한잔 나누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어떻게 저 자신의 조건에 맞는 포스팅 방향을 설정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농촌의 정보화를 이루기 위한 '농촌 정보화마을 사업'이
언제부턴가 투입대비 효율이란 잣대로 부정적 평가를 받고
언론이나 정치권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는다고 하지만
정보화마을 주민의 입장에서 '정보화마을사업'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이렇게 마을 주민이 모여 밤늦도록 첨단 IT에 대한 정보도 습득하고
블로그 운영 등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다 '정보화마을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가꾸는 청량산비나리정보화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람살만한 마을로 이어져 나가것이라 생각됩니다.
청량산비나리정보화마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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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비나리 동제가 있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이번 동제에도 유사를 맡아 방금 귀가해서 

올해의 비나리마을 동제를 기록해 봅니다.

이렇게나마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이유는

비나리마을 동제가 언제까지 존속할까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비나리마을 동제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아

그 정확한 유래를 알수 없지만 주민들은 적어도

수백년동안 전해져 왔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비나리마을 동제는 아기장수 임장군의 전설과 결합되어

임장군을 동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를 미루어 봐도 비나리마을 동제의 역사는 실로 깊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근년에들어 동제를 치룰 사람이 부족해진데다.

종교적인 이유로 동제에 참가하지 않으시는 분도 생기고,

또한 동제가 주는 마을주민의 화합과 정체성강화 기제도 줄어들다보니 

마을 동제가 얼마가 존속할지 몇년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당제에 들어가는 비용과 찬조금의 액수를 비교해봐도 확연합니다.

오래전에는 비용보다 찬조금이 더 많이 들어왔었지만,

10여년 전부터 비용과 찬조금이 비슷해지다가

최근에는 찬조금이 급격히 줄어들어 많지도 않은 동네기금이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그러다보니 몇년전부터 동제를 없애자는 의견도 마을회의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형식을 간소하게 하거나, 뜻있는 몇몇분이서나마 명맥을 유지하자는 등의

논란이 오고가고 있습니다.

 

저는 몇년전부터 유사로 마을제에 참가한 뒤로 최근에는

계속해서 유사를 맡고 있습니다.

유사는 동제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여러 잡무를 보는 역할로

장을 보고, 돼지를 잡고, 상을 차리고, 당나무 주변을 청소하

거의 대부분의 실무를 담당합니다.

그런제 당제는 제관과 당주가 주로 진행을 하다보니

유사는 그냥 시키는 데로 따라만 할뿐 제사의 형식이나 절차에 대해

무관심한게 사실입니다.


 
비나리 동제는 정원 초사흘날 당주를 뽑고 축관1,

제관3, 유사 5명을 정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를 당주뽑기라고도 하고 '청과고미'라고도 하는데

청과고미가 어떤 어원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10명의 사람들은 정월 12일날 새벽 집대문에 금줄을 걸고,

새벽일찍 동네 다른 주민의 눈에 띄이지 않게 당제에 제물 장을 보러 갑니다.

그리고 당제가 있는 날 까지 내내 몸과 마을을 정갈히 합니다.

당제를 지내기 전까지 이웃과 다툼을 한다던지,

노름이나 과음을 한다던지 하면

부정이 끼어 마을에 재앙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때 붉은 흙을 퍼와서 마을 입구에서부터

당나무를 지나 당주집까지 한삽씩 부어놓습니다.

잡귀를 막는 의미랍니다..



정월열사흘날 유사들이 모여 당나무 주변을 청소합니다.

정원 열날흘날 아침 일찍부터 유사들은 역할을 나눠 돼지를 사러가고,

제기와 여타 집기를 챙기고,

당나무 밑에 불을 지피고 솥을 걸어 돼지를 잡을 준비를 놓습니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마을 주민들은 가구별로  

당나무 아래서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장작더미를 날라다 줍니다.

가구마다 지게로 한짐씩 날라오는데 기력이 없는 노인분은

조금만 가져와도 돼지만 , 어떤 분들은 한경운기 가득 싣어오시기도 합니다.

 

돼지를 사오고 나면 유사들이 모두 모여 돼지를 잡습니다.

돼지를 잡는 일은 동제의 가장 큰 일입니다.

살생을 꺼리는 분도 계시고, 그 즈음 혼례가 있거나 손주를 보거나

하는 길흉사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돼지를 잡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아예 제사에 참가하지도 않는 분도 계십니다.

잡은 돼지는 각을 떼어 당나무밑에 나무를 걸치고

나무에 고기를 묶어 달아놓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당주가 준비한 밥을 지게에 지고 내려옵니다.

당주는 제사준비의 잡일은 보지 않지만 가장 신경을 많이 책임이 크십니다.

그러다보니 유사들 고생한다고 점심까지 준비해서 대접해야합니다.

유사들이 먹을 밥은 생선이나 육고기 반찬이 들어가면 절대로 안됩니다.

오직 나물같은 식물성으로만 이루어진 식단을 준비해야 한답니다.

 

오후가 되면 나무에 달아놓은 고기를 풀어 삶기 시작합니다.

고기를 삶기 전후해 장작을 지고 오신 주민이나 당나무 앞을 지나가는

주민들이 합류해 같이 일을 거들거나 술도 나누면서 덕담도 합니다.

이때 어떤 분들은 술과 음료나 먹을 거리를 준비해서 유사들을 대접하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면 조를 나누어 유사들은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목욕을 한후 다시 당나무 밑으로 모입니다.

그렇게 해서 10시정도면 본격적인 제사상 준비에 들어갑니다.

먼저 백설기를 앉힙니다.

간을 하지 않고 작은 떡찜기에 떡가루를 담고 나무불로만 떡을 찝니다.

그리고 곁에는 역시 작은 솥에다 흰밥을 합니다.

떡은 당주가 해야하고, 밥은 유사들이 합니다.

밥쌀은 9번을 씻어 앉혀야되고,

밥을 하는 중에는 절대 솥뚜껑을 열면 안된답니다.

그러다보니 불세기를 잘 조정해서 밥을 타지 않게 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많은 정성을 들여서 떡과 밥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형식들입니다.

 

오후 1130분정도가 되면 제관과 당주가 모이고

보격적으로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물은 모두 당주가 준비를 합니다.

집에서 담은 막걸리와 당나무 아래에서 직접 지은 ,, 탕국,

그리고 여러가지 제물을 절차와 순서에 따라 상에 올립니다.

자정이 되면 당주 주관으로 제사를 올립니다.

모두 절을 하고 축관이 축을 하고 나면

당주가 마을을 대표해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소지를 올립니다.

당주가 소지를 올리고 나면

이날 제사에 찬조를 하면서 소지를 부탁한들의 소지를 올립니다.

그리고 제관과 유사들도 나름대로 집안의 건강과 안녕,

올 한해 풍년농사를 비는 소지를 올립니다.

 

자정을 넘기고 12 30분이면 제사가 끝나고

제관과 당주는 대부분 집으로 돌아갑니다.

유사들만 제물을 거두고 모든 기자제나 장비를 거두어 마을 회관으로 갑니다.

마을 회관에는 두어분의 부녀회원이 기다리고 계신데 이분들과 함께

다음날 마을 주민에게 나누어줄 돼지고기를 자릅니다.

50가구에 돌아가도록

고기를 자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고기를 잘라 50등분으로 나누고 나면 모든 절차가 끝이 납니다.

유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날이 밝으면

마을회관에 온 주민이 모여 마을 총회를 열고

술과 음식을 나무며 잔치를 벌립니다.

 

올 한해 비나리주민 모두 건강하시고,

집안 두루 편안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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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은 말이 없습니다.

꽉 다문 입, 싸늘한 눈빛,

가까스레 내민 손을 외면하는 굳은 표정...

그렇게 겨울강은 깊은 침묵속에 세상을 등졌습니다.

멈춰버린 강물을 따라

찬 바람이 쓸고 지나가면

강변의 움추린 갈대들이 으스스 몸을 떱니다.

얼음에 비친 헐벗은 산은 푸른 빛을 잃었고,

지난 여름 강변을 수답게 노닐던 새들의 자취는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겨울 산 넘어 새파란 하늘은 얼음보다 더 차갑고

얼음에 비친 햇살조차 냉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깊어가는 겨울강을 따라

봄의 전령을 찾아 걸었습니다.

바스라지는 얼음사이로 생명의 흔적을 살피고

봄의 기미를 찾아 걷는 겨울 강은 말이 없습니다.

겨울 강을 걸으며 연두빛이 흐드러지는 봄날을 기다리는

비나리마을 주민의 애틋한 마음을

나직히 전했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만치 봄은 또 우리 곁에

한걸음 두걸음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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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부터 15일까지 4박5일간 일본 연수를 다녀왔다.
이번 연수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의 7개리로 꾸려진
청량산비나리권역 주민등 17명이
일본 규슈의 대표적인 농촌마을을 견학하며
마을 공동체 사업을 통해 마을을 활성화한 사례를
밴치마킹하기 위한 '주민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일정과 사전 준비부족으로 충분한 연수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적지않은 배움과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값진 여행이었다.
5일간의 여정을 나름대로 3번에 나누어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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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첫날

5일간의 부재를 대비한 이런저런 정리와
여정을 위한 준비로 새벽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설핏 들자마자 핸드폰 소리가 울리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반,
새벽 4시에 명호에서 출발하기로 되어있는데
위원장님께서는 한잠도 못주무시고
동행할 각 위원님과 관계자분들께 전화를 한 것이다.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얕은 잠을 자다가
3시30분이 되어서야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두어번의 유럽과 후주 여행의 경험때문인지 그리 먼길을 떠나는 기분도 들지 않고
또 긴 일정도 아니어서 전날 간단히 배낭을 꾸려놓았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전날 꾸려 두었던 배낭을 매고
출발지인 명호에 도착해보니 벌써 일행들은 도착해 있었다.
 모두들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급한 인사를 나누고, 5일간의 즐거운 여행을 서로 축원하면서
버스는 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김해공항에서 후쿠오카행 아시아나 항공기는 10시 30분에 이륙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눈길에다가 일본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이른 출발을 재촉했다.
김해 공항을 30여분 남겨두고 청도 휴계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밟고 출국장에 들어서니
드디어 진짜 일본여행을 가긴 가는가보다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콩닥거리고 작은 긴장이 몰려왔다.

개인적인 여행이 아니라 일본 농촌사업을 벤치마킹하기위한
마을주민 연수다 보니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실 명확했다.
마을 사업 추진위원님들간의 유대와 단합의 계기가 되고
그리고 일본의 선진마을 사례를 통해
우리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그래도 이번여행에 거는 나의 개인적인 기대는 없을 수 없었다.
첫 일본여행이기도 하지만 일본에 대한 조금은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2~3년전 와이프의 일본인 친구분들이 우리집에서 3일간 머문적이 있었고
그때나는 직접 그분들을 모시고 안동과 봉화지역을 돌며 안내를 했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떠나며 오사카 방문을 권유했고, 실제 와이프는
오사카 여성영화제에 초대받아 그분들의 집에 수일간 머문적도 있다.
그 이후 메일과 엽서 등을 통해 교류를 한 때문인지
일본이 세상 어떤 나라보다 관심이 가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꼭 그것때문은 아니지만 일본의 문화와 문물을 접하고
낯선 삶 속에서 익숙한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그런 여정이길 기대했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이라지만
사실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었다.
김해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겨우 40여분이 될까말까하는 사이
후쿠오카공항에 착륙을 시도했다.
긴 줄을 따라 입국심사를 받고 공항을 나와 후쿠오카 공기를 들이쉬며
바라다본 도시는 낯선 이국이 아니라
너무나 친숙한 풍경이었다.

한국인과 외모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본인들,
차, 건물, 도로 등 어느것 하나 이질적인 것이 없고 친숙했다.
그 친숙하고 다르지 않은 외양속에
또 얼마나 다른 점이 감춰져 있는지 알게 되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나에게
결코 낯선나라가 아니라 친숙하고 또 친절한 이웃으로 남게 되었다.


 김해공항 출국장 풍경.
낯선 나라로 떠나갈 분들의 가벼운 발걸음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 가득하다.

후쿠오카에서 첫 식사를 한 식당이다.
가벼운 소고기 구이와 기무치, 밥과 미소된장국으로 이루어진 식단은
깔끔하고 맛깔스러웠다.
이번 일행중 가장 어린 이웃 욱이 아빠가 폼을 잡고 있다.


첫 식사를 마치고 들런 모모치해안이다.
방조제를 만들고 바다를 메궈 땅을 넓혀나간 자리에
인공으로 모래사장을 만들고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모치 모래사장에서 주운 사랑의 기원을 적은 조개껍질이다.
신년에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에 소원을 적어 바다에 던지는 풍습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랑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하면서 바다로 돌려 보냈다.

첫날 두번째 방문지인 아사히 맥주공장.
공장견학을 마치고 맥주 시음을 할수있는데
일인당 3잔까지 맥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뭐 별다른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장이 인상깊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맥주 석장 얻어마시러 귀한 여행일정을 소비해야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일본의 거리는 겉으로 보이는 깨끗하다는 인상보다 훨씬더
우리와 비교해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의 삶의 태도를 이루는 많은 요소들중에
차와 관련된 것만 한정해서 보고 부러워하거나 비난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인의 운전문화는 우리가 많이 배워야할 것 같았다.
먼저 거리에서 쓰레기를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차가 아무리 많아도 경적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정지선을 지키고 정지했을 때의 충분한 차간거리,
절대로 규정속도를 위반하지 않는 운전습관,
고속도로 규정속도가 시속 80KM라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였다.
일본 고속도로가 나빠서 규정속도가 작은 것도 아니고,
또 고속도록 규정속도가 작아서 일본의경쟁력이 뒤쳐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는
모든 가치를 다 내팽겨치고 오직 경제성장이라는 단일 가치를 향해 질주하는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일행이 4일간 타고 다닌 버스 기사님께
휴계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드렸더니
먹으면서 운전하면 불법이라고 하시면서
승객인 우리들의 양해를 구했다.
그뿐이 아니다.
도로가 갓길에 포크레인이 정지 작업을 하는데
프크레인 기사가 헬멧을 쓰고 작동을 하는 것을 보고
우리 일행은 모두 몰랬다.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라고.
거기다가 3방향에 각 1명씩 3명의 교통통제 요원이 포크레인을 감싸고
차량의 소통을 안내하고 있었다.
일본여행중에 안전과 관련된 그들의 철저한 준비 자세는
혀를 내두를 정도 였다. 참으로 부럽고 또 부러웠다.

구마모토에 도착,최고의 번화가인 '시모도오리(선로드)'를 1시간 정도 돌아봤다.
일본의 대중문화, 특히 청소년 문화를 접하고, 상가의 모습들도 불러볼 수 있었다.
이날은 일본의 공휴일의 하나인 성인의 날이었다고 했다.
거리마다 기모노를 입은 젊은 아가씨와 까만 양복의 청년들이
떼지어 몰려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모두들 올해 스무살이 된 젊은이들이라고 했다.
일본의 성인의 날은 그해 성인이 되는 남녀가 기모노와 양복을 입고
성인식 같은 행사를 치루고 같이 파티도하고 의미있는 시간들도 가지는 그런 날이라고했다.

출국전 딸아이가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음악 CD가 있었다.
"동방신기" 일본어로는 '토호신끼'라고 한다는데
언어도 안되는 낯선 타국에서, 그것도 단체 행동을 해야하는 와중에
CD를 구입하기는 쉬운일이 아닐것 같았다.
연수 이틀째부터는 본격적으로 산골마을을 돌아다니며
견학을 해야하기 때문에 딸아이가 부탁한 음악 CD를 사기에는 이날이
절호의 기회였다. 다른분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일본인의 삶과 문화를 만끽하고 계셨지만
나는 오직 레코드 가게를 찾기위해 온신경을 모았다.
가까스레 레코드 가게를 찾아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지만
돈만있으면 손짓과 표정으로도 충분히 의사를 나누고
물건을 사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모도오리거리를 산책을 마치고 일본에서의 첫날밤을 보낼 숙소인
시로가네호텔에 짐을 풀었다.

일본인의 친절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현지에서 느끼는 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호텔 직원들이
문앞에 나와 있다가 우리를 맞고, 우리 짐을 버스에서 내려
호텔 로비까지 들어다주었다.

침실에 들어가니 차와 간단한 비스킷이 준비되어 있었고,
이는 일본 여행 내내 숙소마다 만날 수 있는 작은 것이지만
낯선여관이 아니라 편안한 내집같은 느낌을 주게되는
소중한 서비스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료칸(온천이 있는 여관)마다 '유까타'라는 전통 옷이 있었다.
온천을 하거나 식사를 할때, 료칸 내에서 마음대로 입고 다닐 수 있는
편한 옷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모두들 우카타를 입고 호텔 로비로 내려와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고 사진을 찍으며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렸다.
이번 여행 일행중에 여성은 딱  두분인데 한분은 봉화군 개발위원인 박여사시고
또 한분은 무리마을 사무장이다. 두분이 우카타를 입고 있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료칸에서 받은 첫 식사다.
일본식 정식이라고 하는 데 먹을 게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푸짐하고 맛깔스런 음식이었다.
남길게 하나도 없는 슬기로운 식단에 매료되어 일본 여행 내내
한번도 음식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다 비웠다.
몇몇분은 일본 음식이 입에 맛지않아 미리 준비해간 고추장을 찾으시거나,
음식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5일 내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호텔 객실은 다다미가 깔린 화실로 2인실이었다.
낡은 듯하면서도 깔끔한 객실은 
한국에서 들렀던 현대적인 모텔에 비해 훨씬더 아늑하고 
잠이 잘 올것같은 그런 방이었다.

호텔 방에 있는 침실내 구닥다리  TV다.
사실 TV뿐 아니라 료칸의 이런저런 물품이나
건물을 살펴보면 어느것 하나 낡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새것에 대한 우리의 집착과는 달리
일본사람들은 낡은 것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한가 보다.
사실 료칸의 등급을 매길때도 얼마나 역사가 깊은 곳인가 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한다. 

일본 여행 첫날의 밤은 깊어가자
몇몇방에서는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파티가 벌어졌다.
하지만 일본에 와서 호텔방에서 소주나 마시고 있는다는 게
나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 호텔을 나섰다.
호텔 입구에는 우리 일행 두명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나와있었지만 마땅히 갈 것을 몰라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가 지내는 호텔은 조금은 외진 구마모토 시의 외곽에 위치한
때문에 사실 호텔 문을 나서도 갈 곳이 없었다.
택시를 불러 시가지로 나서기에는 두려움도 있었고,
또 첫날이다보니 어두컴컴한 호텔 주변 주택가를 산책만 하고 돌아왔다.

호텔 6층에 있는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들뜬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밀린 피곤이 몰려왔다.
새벽부터 움직이다보니 전날 거의 잠을 자지도 못한데다가
항공여행이 주는 긴장감이 피로를 더했는가보았다.

일본 여행 첫날, 잘 보고, 잘 먹고, 온천 잘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누우니 너무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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