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초, 마을 사업 관련해서 마을주민과 함께 일본 연수를 떠났고 그때 1시간 정도 유후인을 스쳐 지나갈 수 있었다 눈발이 날리고 찬바람이 몰아쳐 그 짧은 1시간마저 유후인을 보는둥마는둥 보내고 말았지만, 그때 가이드로부터 유후인이 '일본여성이 일생에 꼭 한번 여행을 오고 싶어하는 곳'으로 최고로 인기있는 관광지라는 말이 인상에 남았었다. 그리고 귀국후 이런저런 자료를 보면서 유후인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지난 1월 23일에야 아내와 딸을 동반하고 1박까지 하는 넉넉한 일정으로 유후인을 찾았다.
내가 아는 유후인은 참 특별한 관광지다. 대단한 역사문화적 자산이 남겨진 곳도 아니고, 자연 경관이 유별나서 사람을 매혹시키는 그런 곳도 아니다. 골프장이나 대형 리조트, 호텔 인프라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현대문명의 현란함도 도시적 매력도 없고 그렇다고 전원의 목가적 풍경만으로는 관광지가 되기에 아무리 봐도 부족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 만2천여 명에 동서 8km, 남북 22km의 유후인은 년 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일본 최고의 관광지중 하나다. 유후인은 인구나 도시 면적으로만 본다면 봉화읍 정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지역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매력이 유후인을 그토록 성공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게 했을까?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우선 유후인을 인상짓는 몇 가지 자원을 생각해 봤다. 유후인을 내려다보는 해발 1500m가 넘는 유후다게라는 산이 있다. 유후다케는 아소쿠주 국립공원의 일부로 화산작용으로 생겨난 산이다. 이 유후다케를 비롯해 해발 1000m가 넘는 산록이 유후인을 둘러싸고 있다. 산세로 따진다면 물론 보기에 아름다운 산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유후인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유후다케는 유후인의 명성을 통해 알려진 산으로 유후인의 작은 자원일 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후인을 찾았던 사람들은 유후인의 긴린코 호수를 잊지 못한다. 긴린코 호수는 관광객이 제일 많이 붐비는 거리의 끝에 위치한 조그마한 연못이다. 석양이 비칠 때면 호수에서 뛰어오르는 붕어의 비늘이 금빛으로 빛난다고 해서 긴린코(金鱗湖)라고 이름 붙인 호수다.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 항상 김이 피어나는 신비로운 호수로 주변의 아기자기한 미술관이나 카페들과 잘 어울려 그 아름다움이 빼어난 호수지만 자그마한 크기의 호수에 불과하다. 긴린코 호수가 가진 이름의 의미가 관광객의 흥미를 끄는 것도 사실이고, 주변경관과 어우려져 신비로운 매력을 드러내는 호수의 아름다움에 탄복할 수밖에 없지만 이 역시 유후인의 매력을 다 설명해 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자원이다.
유후인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대표작인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이치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러다보니 이들 만화영화의 주인공을 형상화한 케릭터 상품이 즐비하고, 전문 가게들마저 성업 중이다. 이 역시 유후인의 큰 관광자원의 하나지만 유후인의 명성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유후인의 참 매력을 드러내는 규정은 다름 아닌 “친환경 관광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자원들이 유후인을 친환경관광도시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친환경 관광도시 유후인이 탄생되었는지 살펴보지 않고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유후인은 1975년 오이타현을 중심으로 일어난 지진으로 유후인의 대표적 호텔건물이 붕괴하는 등 참사를 겪었다. 당시 유후인은 인근의 유명한 관광지인 벳부 덕분에 ‘작은 벳부’라고 불리며 지명도가 높아지던 시기였는데 지진에 의해 그 명성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때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지진이 초래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마을재건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마을재건위원회는 대규모 관광단지 조성 사업 같은 개발을 통한 극복 방안과 유후인의 고유한 경관을 보존하면서 주민의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개발 방향을 높고 대립하기도 했지만 결국 투표를 통한 주민의 선택으로 ‘보존’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이후 주민자치위원회는 음악제와 영화제 등을 만드는 등 유후인을 문화와 예술이 넘치는 마을로 만들어가면서 동시에 ‘정감 있는 마을 만들기 조례’를 재정하고 지역의 농업, 관광, 주민의 삶까지 아우르는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지역 개발 모델을 구상하고 실천했다고 한다. 1988년에는 유후인에 3,600실 규모의 대형 리조트 건설이 추진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부 주민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기도 했지만 민관이 함께 이를 저지하고, 아예 1990년에는 유후인 내에 5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는 조례까지 재정해 버렸다고 한다. 그런 주민들의 노력이 오늘날 유후인을 전국 최고의 ‘친환경관광도시’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유후인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것은 유후인의 고유한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고 이를 중심에 놓고 지역의 발전 방향을 잡아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주민자치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고 당연히도 주민주도적인 공유 과정이 선행되었다. 결정과정의 공유는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힘이 되었을 것은 당연지사라 할 것이다. 유후인의 고유한 가치를 찾는 과정은 좁게 보면 유후인 인근의 최대 관광지인 벳부와의 차별성을 찾고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벳부가 일본경제의 상승기에 단체관광, 기업관광이 주를 이룰 때 번성하여 남성중심, 밤거리와 유흥가, 대형 숙박시설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휴후인은 그와 정확히 반대되는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 유후인 관광자원은 여성 중심적이고 가족중심적인 가치에 기반 하여, 예술, 문화쇼핑, 생활체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유후인은 시대적 트랜드의 변화를 먼저 읽고 자신의 고유한 차별적 가치를 그 중심에 세움으로써 성공적인 지역개발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유후인 만의 고유한 관광정신을 가장 잘 구현해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유노쓰보’ 거리다. 이 거리는 유후인역에서 긴린코 호수에 이르는 약 2km정도 되는 거리다. 이 길을 중심으로 작은 골목길들이 이어져 있고, 골목 마다 수십 개의 미술관과 공방, 베이커리, 까페, 그리고 각종 특산물과 기념품, 공예품, 골동품 가게 등이 늘어서 있다. 미술관이라고는 하지만 대단한 시설의 화려한 건물은 하나도 없고 오밀조밀한 거리에 그만그만한 규모의 소박한 미술관들이 전부다. 사실 어느 것이나 하나를 떼어놓고 본다면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런데 유노쓰보 거리의 이들 모든 것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일년에 400만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중심적인 매력으로 승화한다. 사람들은 문화예술의 빛 아래서 나름의 취향에 따라 금상 고로케와 유후인 에끼벤을 사먹고, 유후인 버거와 유후인 롤케익을 즐기며 충만감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 것이다.
유후인은 대중의 소박한 정서에 철저히 부합하는 관광지다. 특별히 화려한 것도 대단한 것도 없는 거리에 대중적 감수성에 부합하는 작은 자원들이 어울려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의 행복한 삶을 우선시 하는 관광개발을 펼쳤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대규모 호텔이 들어설 경우, 지자체는 세입 증대라는 이익이 있겠지만 주민과 관광객의 관계는 단절되고, 고유한 지역의 경관과 정서는 파괴되고 만다. 유후인은 그런 식의 대형 호텔의 건설을 저지하면서 오늘날 100여개의 중소 료칸이 성업하게 되는 여건을 지켜낼 수 있었고, 그렇게 지켜진 료칸 자체가 하나의 중심적인 유후인의 관광자원이 되었다.
유후인 거리를 걷다보면 관광지라기보다는 잠시 산책 나온 거리, 내 집에서 거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친숙하고 마음 편안한 공원에 나온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 그것은 유후인의 거리가 관광이 아니라 ‘생활’, ‘체험’을 모토로 하는 유후인의 관광정신을 철저히 구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처럼의 가족 여행을 유후인으로 선택한 것은 먼저 우리가족이 유후인의 매력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고 그리고 부가적으로 내가 사는 봉화, 그리고 비나리마을의 바람직한 개발 방향에 대한 착안을 얻기 위해서 였다. 1박2일의 유후인 여행으로 뭐 대단한 성과를 얻을 수있겠냐만 그래도 오랫동안 유후인은 나의 뇌리에 남아 곱씹어야 될 생각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다 떠나서도 그 이틀 동안 동안 딸과 아내와 함께 유노쓰보거리를 걸으며 다코야끼를 사먹고, 벌꿀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던 행복한 시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나의 메마른 삶을 훈훈하게 뎁혀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