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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은 딸아이가 방학중에도 학교 기숙사에 남아있는 바람에
우리 부부와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강아지 초롱이
 이렇게 세식구가 긴겨울을 나야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겨울의 초입 아무도 모르게 거실로 스며들어
우리 부부와 함께 겨울나기를 원하는 또 하나의 생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 청개구리가 그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먹을 것도 없는 겨울 거실에서 연약한 청개구리 한마리가
긴겨울을 이기고 봄을 맞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가고 겨울이 깊어가면서 점점더  개구리 울음소리는 약해져만갔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개구리 소리는 사라지고 저의 관심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고, 설을맞고 입춘을 맞고 정원대보름과 우수가 지난 몇일전
갑자기 우릉찬 개구리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반가운 마을에 아내가 카메라들 들고 화분을 뒤져
긴긴 겨울을 이기고 당당히 울어재끼는 청개구리를 담았습니다.


개구리가 살아남기에는 참 혹독한 환경이었을 거실에서
긴 고난의 시간을 잘 버텨낸  개구리가 너무나 기특합니다.
이제 열흘만 지나면 경칩입니다.
드디어 거실을 벗어나, 따사로운 봄햇살을 받으며
연두빛 마당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길고 외로운 겨울내내 우리집 한 식구로 같이 지낸 청개구리의 안녕과 행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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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들어서고 나서 전정권과 민주세력에 대한 치졸한 보복과 탄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문화단체에 지급해왔던 사회단체 보조금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며 예술인을 모욕하는 지경에 이르렸습니다. 그동안 문화단체나 기관의 유능한 인사들에 대해 불법적이고 야만적인 모욕과 협잡을 통해 자리빼앗기 만행을 저지르더니 이제 지역의 문학단체에 까지 마수를 뻗쳐 고사작전에 들어갔나봅니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를 지지하는 한 시민으로서 아래 보도자료를  게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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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할 수 없는 사회단체 보조금

작가회의 경북지회는 보조금 수령을 거부한다.
 
 
1월 31일 경북도청은 2011년 사회단체 보조금 지원액을 각 사회단체에 통보했다. 128개 단체가 보조금을 신청했으나 30여개 단체가 탈락되고 100여 개의 단체에 총16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게 된 단체는 한국예총경상북도연합회로 운영비 5천만 원을 지급받게 되었고, 가장 적은 단체는 청소년행복세상 경북지부의 200만 원이다.
 
경북도는 각 사회단체로부터 보조금신청서를 받아서, 외부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공정하게 지급했다고 하지만,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는 공정성과 기준을 믿을 수 없다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작가회의 경북지회는 심사위원 명단과 심사점수를 공개해 줄 것을 경상북도에 정보공개 신청을 했으나 아직 아무런 답이 없다고 한다. 해당 기준에는 경상북도를 대표하는 사회단체여야 함에도 일부 지역의 동호인 성격의 단체도 포함되어 있고, 같은 성격의 단체의 같은 사업임에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지회장 권석창 시인)는 11년째 매년 850만 원 가량의 지원을 받아, 문집 <작가정신>과 <경북작가 시선집>을 발간하고, 문학 강연회, 경북문학인의 밤 등의 행사를 열어왔는데, <작가정신> 발간비 500만원이 삭감되어 제 12호 <작가정신>을 발간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의 같은 사업을 하는 문학단체인 한국문인협회 경북지회에는 <경북문단> 발간에 1,800만 원이 지급된 데 비해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에 350만 원이 지급된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 했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 권석창 지회장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대다수의 문인들이 소속된 한국작가회의의 지역 단체인 경북지부가 350만 원으로 문학 활동을 하라는 것은 문인을 모욕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한국작가회의에 대한 모욕이다. 전국의 어느 광역시, 도도 한국작가회의 지회에 이런 보조금을 주는 지자체는 없다. 보조금 수령을 정중히 거절한다.’고 말했다.
 
또 박승민 사무국장은 ‘정신을 중요시하는 작가에게 모욕을 주는 경상북도의 문화 행정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면서 회원들이 가진 지면을 통해서 혹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이러한 문화 행정이 바로잡힐 때까지 저항의 글쓰기를 펼쳐나가겠다.’
고 말했다.
 
며칠 전 운명하신 작가회의 소속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문상 오는 가난한 문인들에게 일체의 조의금을 받지 말고 후하게 대접하라.’고 유언을 했을 만큼 문인들은 가난하다. 작가회의 경북지회는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단체를 운영해야 할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회원들은 말한다. 11년 동안 발간되던 <작가정신> 발간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료제공 :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 (지회장 권석창, 사무국장 박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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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지인들과 함께 겨울 청량산을 올랐다.
아침 9시, 인적이라곤 없는 청량산 입구에서 만나
눈길을 헤치고 응진전 까지만 올랐다가
청량사 지현스님을 뵙고 차 한잔 얻어 마시고 하산을 했다.
이번 산행에서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사시사철 아름다운 청량산은
그래도 겨울산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신록으로 우거진 성하의 청량산보다  
잎은 다 비우고 흰눈으로 정화된 겨울청량산 풍경이
더욱더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청량산 눈덮일 산길을 걸으며 겨울의 깊이에 빠져들다가
어느새 저 산넘어 어디쯤 오고있을 봄을 맞을 꿈에 가슴 부푼다.

짧은 산행이었지만 반가운 분들과 함께한
긴 여운과 깊은 서정을 남긴 즐거운 산행이었다.

겨울이 끝나가는 날,
아름다웠던 겨울 청량산 풍경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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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4일 유후인을 떠나 후쿠오카의 엑셀도큐하카다호텔에 짐을 풀고,
텐진거리와 캐널시티 등 도심을 둘러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다음날 일찍 텐진역에서 기차로 한시간 거리인 운하의 도시 야나가와로 향했다.
나카야마 미호가 출연했던 [도코맑음]이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했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야나가와 수로이야기]로 알려진 야나가와는  
최근 MB표 운하를 선전한는데 이용되면서 한국인에게 더욱 친숙해진 곳이다.


이번 규슈여행에서 야나가와 코스를 선택한 것은
도시를 실핏줄처럼 잇는 수로를 따라 가와쿠다리라는 뱃놀이를 즐기며
가족이라는 인연의 고마움을 다시 생각하면서
결혼 생활 20년이라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기위해서 였다.
또한 아직도 개발광풍이 몰아치고
개발만능이라는 야만이 지배하는 나라에 살다보니
개발과 환경,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구현한
아름다운 도시의 한 전형을 보고싶고 또 걷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MB의 야만적 토건주의를 옹호하기위해 이용했다는 야나가와 운하는
환경재앙적 개발주의와 극단적으로 다른 환경 친화적 개발의 산표본이었다.
야나가와 운하가 생기게 된 배경부터가 4대강사업과는 극단적으로 판이했다. 
한때 도시를 가르는 물길이 쓸모가 없어지고 오염되어 흉물이 되어가자 
시당국은 수로를 콘크리트 관으로 다 대체하고
묻어버리는 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하려 했다고 한다.
이때 야나가와의 한 말단 공무원이 이 계획을 반대하고 나서서
손수 혼자서 도랑을 치우고, 물길을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시민들이 호응하면서 개발계획은 철회되고 쓸모가 없어진 운하가
야나가와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서서히 바뀌어 나가게 되었다.
오늘날 물의 도시 야나가와를 상징하는 운하는 
바로 그와같은 반개발주의 시민운동의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야나가와는 상징적인 친환경적 도시로 부각되면서
년 100만명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고 한다.


텐진역에서 가와쿠다리 티킷을 산뒤, 기차를 타고 한시간을 달린 뒤 야나가와 역에 내려섰다. 조그만 시골 기차역같은 한산함과 소박함이 묻어나는 역사를 벗어나오자 가와쿠다리를 안내하는 안내원이 10분뒤에 셔틀버스기 온다며 대기실로 안내했다. 조그마한 대기실은 훈기가 넘쳤지만 야나가와 안내 팜플릿 몇 종류와 야나가와를 홍보하는 영상을 내보내는 TV가 전부인 소박한 공간이었다. 젊은 한국인 커플 한쌍과 관광객이 아니라 바같 추위를 피해 들어온듯한 일본 노인 한분이 전부인 탓에 자그마한 대기실도 조금은 허전해 보였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셔틀버스가 도착했고, 셔틀 버스에 오른지 5분도만에 드디어 가와쿠다리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나루터에는 같은 모양의 작은 배들이 나란이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쌀쌀한 날씨와 이른 시간때문인지 한산하기만 했다. 주변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다가, 얼마 기다리지 않아 아이와 함께 나온 일본인 가족과 한국인 커플 그리고 우리 가족해서 8명이 한 배를 탔다. 신발을 벗고 배에 오르자 작은 배는 한사람 한사람이 탈때마다 좌우로 크게 흔들려 금방이라도 뒤집어 질듯했다. 배의 중간에는 일본식 난방탁자인 코타츠가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코다츠에 발을 넣었다. 이내  할아버지 사공이 삿대를 젓자 배는 수로를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야나가와를 물의 도시, 운하의 도시라고 하지만 야나가와의 운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운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친환경적인 작은 수로에 불과했다. 이들 수로들은 집과 집을 잇고, 길과 길을 이으며 야나가와 항구까지 이어지는 작은 뱃길이면서 동시에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랑이기도 했다. 수로를 따라 늘어진 나무와 숲,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작은 집들의 아기자기한 정원들, 그리고 그 수로가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라 오리들 자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라는 사실을 시위하는 오리떼 가족... 배는 물위를 흐르듯 나아가고, 나의 상념은 지난 세월을 지나 다가올 먼 미래를 오가며 흔들렸다. 수로의 폭은 점점 넒어지고 물길이 깊어지다가 어느새 샛강으로 접어 들기도하고, 다시 넒은 수로로 나아가기를 여러번  능수능란한 늙은 사공의 숨결이 가빠져 갔지만 작은 배는 물살을 일으키며 중심을 잡아 흔들림이 없었다.    


약 1시간의 뱃놀이는 금방 끝이 났다. 발걸음은 선착장에 올려놓자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까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하지만 다 저 물처럼 흘러가는 것. 향유했던 지난 시간의 기억이나마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니겠는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시간을 배로 내려온 수로를 거슬러 이번에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로와 도로가 헤어지고 한참을 주택지 사이를 헤메기도하면서 원래의 출발지인 야나가와 역을 찾아 나갔다. 깨끗하고 소박한 야나가와의 골목골목을 헤메는 재미에 푹빠져 한시간을 넘어 걷다가 결국 길을 놓쳐버려 다시 한시간을 더 묻고 찾고 한 끝에 야나가와 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랜동안 가졌던 야나가와 방문의 꿈, 카와구타리를 해 보고 싶었던 꿈은 실현되었지만 야나가와를 떠나는 기차를 기다리는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찼다. 세상의 모든 삶의 터전이 다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과 인공이 조화롭게 어우려져 사는 삶의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경우인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삶의 터전은 바로 이렇게 가꾸어나가야하지 않을까는 생각이 이어지고, 기차는 다시 후쿠오카로 향했다.


후쿠오카로 향하는 기차간에서 멀리 일본의 도시와 농촌의 풍경을 두눈 가득 담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일본이 부러워졌다. 최소한 환경과 전통에 대한 일본인의 애착만큼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배워와야할 것들이 아닌가? 아직까지 박정희식 개발만능주의가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고, 바로 그와같은 국민의 의식이 MB라는 구시대의 괴물을 현실에 불러들이는 악마의 주술에 빠져있는  우리 사회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오늘의 일본인들 그와같은 개발만능의 시기가 없었겠는가. 시행착오를 피하면 좋겠지만 인간은, 인간의 세상은 그렇게 완벽할 수가 없는걸 어떻하겠는가. 그래서 인간세상인 것을!


하루의 여정으로 끝이 난 야나가와는 하루보다는 훨씬 더 큰 기억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 오랫동안 나의 삶을 데워줄 것이다. 반추할 수 있는 행복했던 시간을 선사한 야나가와와의 인연에 감사하면서 2011년 야나가와 여행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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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강이 녹듯 MB폭정 3년동안 얼어붙은
민주주의가 새 싹을 피우고 생명을 얻는 봄입니다.
멀리 있어 같이 할 수 없지만 반가운 소식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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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비나리마을동제가있었습니다.

비나리마을동제는 비나리입구 당나무에 깃든

임장군을 모시고 한해의 풍요와 마을의 안녕을 비는

오랜 전통의 마을 제사입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구제역 한파로 마을 분위기도 침체되고,

물가는 폭등하여 산골마을을 살아가는 농민의 얼굴에도 주름이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동제의 가장 중요한 행사의 하나인 돼지 잡기를 포기했지만

그만치 제사를 올리는 주민의 마음은 더 절실하고 진지했습니다.

 

비나리마을뿐아니라, 명호지역 나아가 세상의 모든 마을이

올 한해 평화롭고 풍요롭기를 비는 마음을 담아

비나리 동제 모습과 보름행사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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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은 신과 인간, 삶과 죽음,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존재다. 그들은 신의 권능을 빌어 권세를 얻고 간혹 세상을 호령하기도 하지만, 주로 세상의 권능이 비켜선 곳에 없는듯 숨어살면서 5,0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5,000년 동안 무당은 시대에 따라 사회적 대우를 달리 받았지만 세상의 처분과 무관하게 항상 세상의 시시콜콜한 잡사에 관여해 왔다. 서구적 합리성이 우리사회를 지배한 현대에 들어와 그들의 사회적 존재감은 현격히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존재가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주류사회의 제도화된 종교를 통해 세상 속에 공인된 지위와 부, 권능을 인정받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종교상인'들과는 달리 제도권밖에 축출되어 음지에 숨어 살면서도 한번도 세상과의 끈을 놓친 적이 없다.  무당은 그들을 축출한 지배권력마저 존재의 실존적 한계와 탐욕의 괴리 속에서 그들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 잘났다는 정치인들 조차 선거철이 되면 바리바리 돈보따리를 싸들고 그들 '무당'의 권능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기 때문이다.
   

있지만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왔던 '무당'이 다큐멘타리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창재 감독은 만신 이해경을 통해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합리와 광기의 사이에서 무당이 되어가는 법과 살아가는 법을 드러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합리의 영역에서 축출된 무속의 세계를 다시 합리와 광기의 사이에 걸쳐놓는다. 그럼으로써 이창재는  합리성의 단독지배로 만신창이되고 신성이 제거된 현대인의 삶을 구원하고자 하는지 모른다.

[사이에서]는 '인희'라는 20대 중후반의 여성이 무병을 앓다 무당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을 전편을 통해 추적한다. 왜, 어떤 사람이, 어떻게 무당이 되는가? 그렇게 운명이든, 팔자든 무당이 된 사람들은 이세상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세상과 관계하는가? 감독의 시선은 주류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편향적일지 모른다. 카메라의 눈은 제3자적 입장을 견지하는 엑션을 취하지만, 관객은 금새 만신 이해경의 눈에서 감독의 눈길을 읽고 만다. 감독은 철두철미하게 카메라 앵글에 잡힌 바로 그 사람의 눈으로 다시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그 지점에서 공감과 연민이 피어나고, 관객인 나도 감독의 눈과 만신이해경의 눈으로 [사이에서]에 몰입해버린다.

관객의 관점을 훔친 다큐멘타리는 성공작일 것이다. 그점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남는 의문은 부정할 수 없다. [사이에서]는 탈아가 단순히 이상심리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지, 합리성의 지배영역 바같에 있는 초자연적 광기가 있는 것인지, 제도권 종교와 달리 체계도 경전도 교리도 없는 무속이 우리 삶속에 5,000년의 역사를 끈질기게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다 말해주지 않는다. 이점 신성은 부정하지 않지만, 종교는 인정하지 못하고, 무속의 존재가치가 부당하게 폄화되는 현실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스스로 무속의 권능을  인정할 수 없는 나 스스로의  인식이 갖는 한계가 야기하는 의문인 것이 분명할 것이다.  
아뭏튼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의 삶, 우리의 의식속에 감춰진 샤머니즘을 드러냄으로써 최소한 '무당'이라고 불리는 우리사회의 한 부류의 소수자의 삶을 양지로 끌어내어 그들 삶의 고유한 가치를 만천하에 공포한 [사이에서]는 명작 다큐멘타리임엔 틀림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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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규슈 방문 때 일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두번째 규슈방문때 일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본 여행이라고 해봤자 두번의 규슈 여행이 전부지만, 난 벌써 일본 마니아가 되었고 일본여행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여행정보서를 벗어나 김남희의 [일본의 걷고싶은 길] 2편 규슈/시코쿠 편을 먼저 읽고, 추가로 1편 홋가이도/혼슈편을 구입해 손에 쥐었다.

몇편의 여행서를 읽어 나가다 보니 어느순간 내가 여행서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해 보게되었다. 먼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여행 계획이 있거나 최소한 머지않은 미래에 여행을 갈 수 있을 것 같거나 최소한 가고싶은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서를 읽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여행을 갈 것 같지 않은 지역에 대한 여행서라도 어떤 대리 경험이나 대리 만족을 위해 여행서를 읽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여행서는 하도 낡아서 여행정보서로서의 의미도 없고 대리경험을 줄 것 같지도 않지만 읽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는 여행서가 여행서의 한계 넘어 인간 삶의 이해를 깊이하는 역사적 안목이나, 철학적 지혜를 담고 있는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나에게 김남희의 책[일본의 걷고싶은길 1편 홋카이도 혼슈]는 어떤 책일까?  나는 가까운 미래에 혼슈를, 구체적으로는 오사카와 교토 그리고 도쿄를 여행하고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한 그 열망을 1년이상 유예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임박한 여행 목적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위해서 읽지는 않았다. 한달쯤 뒤에 이 책에서 다룬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지금 나에게 혼슈와 홋카이도는 구체적인 여행정보가 필요한 곳은 아니다. 그러면 나는 이책을 여행의 간접경험을 얻거나 삶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깊이하기 위해 읽었던 것일까? 일정정도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꼭 그렇다고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바로 이점에서 나는 [일본의 걷고싶은길 1편 홋카이도 혼슈]에 몰입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김남희의 글을 몇편 읽었고, 그리고 서가에는 앞으로 읽기 위해 미리 구입해둔 [유럽의 걷고 싶은 길]과 [소심하고..... 산티아고]가 꽂혀있다. 나름 김남희 마니아를 자처하지만 솔직히 이젠 조금 식상해지기 시작하는 면이 있다. 김남희의 소녀적 감수성이 주는 편안함과 따스함에 반했지만 그녀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깊이를 더해가는 삶을 이해하는 통찰력이라든지 세상을 바라다보는 인식의 폭같은 것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속좁은 독자의 투덜거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지만 나는 적어도 여행서를 읽는 재미는 최소한 세상을 바라다 보고 이해하는 안목을 넑히는데 있다고 본다.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지금 여행설 ㄹ 한가롭게 읽고 잇을 처지가 아니라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여행서가 철학서가 되어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점에서 김남희가 옳은 것은 분명하다.

하여튼 이책을 통해 레분토와 북알프스 다테야마 여행의 꿈을 가질 수 있게된 점, 필자에게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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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끝났다. 돌아오는 카멜리아호에서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나는 망망대해를 보고 싶었다.
별이 쏱아지는 밤바다를 보고싶었고 바다위에서 일출과 일몰을 맞이 하고 싶었다.
그모든 것을 다 누리고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새로운 여행을 꿈꾸기 시작한다.

세상은 떠나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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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중학교는 전교생이 31명인 봉화군 명호면 소재지에 있는 조그만 학교입니다.

지난 2월 10일은 그 명호중학교에서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함박웃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면 13명 졸업생의 앞날을 축원했지만

남아있는 18명의 학생과 다음달에 입학할 대여섯명의 학생만 남게될

명호중학교의 앞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굳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지금은 초라한 작은 학교지만 명호중학교는 분교를 거쳐

1971년 정식으로 인가가 난이후

지금까지 3743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깊은 학교입니다.  

명호중학교를 졸업한 그 많은 분들이 우리사회의 요소요소에 진출해

우리 사회의 큰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도시화되면서 어느날 줄어들기 시작한 농촌마을에 지금은

학교을 포함해 이런저런 생활기반이 그 명색만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명호중학교 역시 몇년전부터 인근 학교와의 통폐합을 묻는

학부모 의견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학교의 존폐에 대해 누구하나 섣불리 장담을 할 수 없게 된 처지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지역에 젊은 귀농자들이 늘어나고

출산이 장려되면서 명호초등학교 학생수가

줄지를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 도시학교에 나가지 않고

명호중학교에 입학한다면

명호중학교는 또 오래도록 지역사회의 중심에서

지역공동체의 활력을 북돋는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명호면 지역사회 친구들이 늦동이 아이들을 졸업시키는

명호중학교 졸업식장을 찾아 아이들과 부모님들과 함께

축하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명호중학교의 역사이자 명호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지역사회의 보배들의 사진을 올립니다.

산골마을 중학교의 졸업식은 특별하기에


그 한명한명 졸업생의 얼굴들을 다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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