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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지난해는 다사다난했다고 한다.

나에게 지난해 역시 그랬다.

봄가뭄과 고라니로 고생만 한 밤호박 농사,

다시 초가을 가뭄과 초겨울 장마 그리고 늦더위로 역시 고생만 한 배추농사로

한해 참 힘겹게 보냈다.

그리고 한중 FTA 등으로 농업의 사회적 여건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위해 

동분서주한 농민회 활동과 11월 14일 전국민중대회를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던 투쟁 그리고 백남기 농민형제가 쓰러진 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농성...

그뿐 아니라 책임을 지고 있는 봉봉협동조합의 출구없는 경영악화,

비젼과 에너지가 고갈된 10몇년을 종사해온 비나리마을 공동체 사업...

이 모든 것이 지난 3월 27일 봉봉협동조합 총회를 기점으로 일단락지어졌다. 

지난 일은 다 묵은 해의 기억들이 되었고 이제부터 만들어나갈 시간은 고스란히 내 손아귀에 있으니...

총회가 끝나자 마자 바로 배낭을 쌌다. 

지리산 장터목 1박을 시작으로 이후 일정을 정해나갔는데

막연히 가보고 싶었던 여수 밤바다에서 1박,

그리고 유년의 기억을 확인하고 싶어 마지막 1박을 진해 군항제 전야제에 맞첬다.



늘 산언저리에서 얼정거리기만 했던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산을 통해 사람과 역사를 느끼고, 

천왕봉에서 넘실넘실 펼쳐진 산의 바다를 바라다 보며

고갈된 삶의 에너지를 채웠다.

산사람의 함성을 들으며 그들이 꿈꿨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그리고 그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했다.

세상은 여전히 정의롭지 못하고 

그들 산사람들이 가졌던 그런 비장함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삶과 역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장터목 대피소의 1박은 불편했지만 설레였고

백무동의 무미건조하고 가파르기만 한 등산로는 나를 지치게 했지만

그래도 오르락내리락거리면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살만한 삶을 기대하게 하는 기운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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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서편으로 반바퀴 돌아 두시간에만에 도착한 여수 밤바다.

새로운 삶을 향한 모험이 시작되는 항구의 서정에 끌려 도착한 여수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설레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갯내음 맡으며 바닷가를 걷고, 한상 가득 해물이 넘치는 밥상을 받고

도시와 바다가 만나는 어시장을 스쳐지나 항구의 밤을 만끽했다.

난생 처음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낯선 젊은 친구들을 만나 

여행의 설레임과 삶의 희망들을 나누었던 기억은 참 오래갈것 같다.

나에게 난생 첫 게스트하우스가 된 여수 곰하우스가 번창하길 빌어본다.



http://gomguesthouse.modoo.at/


승용차를 버리고 케이블카와 버스 그리고 걷기로 여수의 하루를 보냈다. 

돌산도와 향일암, 그리고 오동도... 어디를 가도 바다는 시원했고, 마을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산세와 만난 바다가 멋진 해안선을 만들고

갈매기는 파도소리에 맞춰 생명의 자유를 춤췄다.

봄햇살과 바닷바람 맞으면 걷는 돌살도의 길은

언젠가 다시 한번 더 멀리 오랜시간 걷고 싶은 위시리스트로 남았다.



여수와 순천 그리고 진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지는 해를 맞으며,

유년의 기억을 찾아 진해로 향햤다. 

1963년부터 시작한 군항제는 한해 먼저 세상에 태어난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 이제 54회를 맞았단다.

화려한 불꽃놀이로 시작되던 군항제는 전국의 거리예술가와 스커스단은 물론

소매치기와 야바위꾼이 다 몰려 세상의 온갖 볼거리와 먹을 거리 그리고 즐길거리로 가득찾던 

시절로 나의 유년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유년의 기억 뒤엔 한번도 군항제 전야제의 불꽃을  볼 수 없었다.

모처럼 만든 기회에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와 함께

지난 기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진해거리를 나섰다.

진해의 거리를 걷고 ,어깨 부딪고, 먹고, 놀았다. 



 

3박4일의 지리산-여수-진해 여행을 마쳤고,

다시 한해의 농사와 농민회 그리고 봉봉협동조합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지쳐 스러질것 같은 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졌고

다시 힘겨운 일년을 견딜 자신을 얻었다.

여행은 참 좋다. 세상의 모든 행위에는 후회를 남긴다. 사랑조차도 그렀다.

하지만 오직 여행만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 후회되는 여행은 없다.

자 다음 여행을 위해 올 한해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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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관내 3개 협동조합 조합원 가족이 모여 분천에서 양원까지 강변길 걷기를 했습니다. 

봉봉협동조합, 봉화친환경생산자 협동조합. 봉화자활협동조합이 

조합간 우애와 연대를 다지기 위해 기획한 이번 첫 행사는 사실 요란하지 않게 준비되었고

참가자도 서른명을 넘겼지만 마흔명이 되지 않는 작은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멀리 서울서 오신 조합원 부부님도 계셨고

대구경북 협동조합 지원센타서도 3명이 참가를 하셨습니다. 

세상에 태어난지 6개월밖에 안된 아기가 최연소 참가자 였고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여럿 같이 걸었습니다. 


몇번을 다른 일로 갔었던 분천역은 산타마을 협곡열차 덕에 

관광지로 변했고, 주말을 맞아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그 사이에 스며들어 지역주민이 아니라

똑같은 트레킹 객이 되어 분천강변길을 걸었습니다.

봄날의 끝자락, 걷기에 딱 좋은날  

비록 소박하고 짧은 코스였지만 착한 세상을 꿈꾸는 

협동조합가족 여러분들과 함께한 하루는 참 즐겁고 가치있는 하루였습니다


트레킹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협동조합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연대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할 것인지 대화를 하다가 

마침대 아름다운 낙동강을 중금속으로 더럽히는

영풍석포제련소 문제 등 지역사회의 현안들과 지역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하는 

참 어려운 주제까지 길고 진지한 대화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행복하고 의미깊은 하루 같이 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까망돼지 두루치기를 만들어 분천역까지 날라주신 명호 산들내식당 사장님부부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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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세 협동조합 조합원이 같이하는 
"조합원 가족 산골 마을길 걷기" 행사에
봉봉협동조합 조합원 여러분을 초대드립니다. 
따뜻한 공동체를 꿈꾸는 협동조합인 가족들이  함께
아름다운 낙동강 최상류 분천길을 걸으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생명의 터전을 둘러보고
조합 상호간 연대를 다지는 행사를 갖습니다.

* 누가 : 봉봉협동조합 외 조합원 가족(남녀노소)
* 일시 : 2015년 5월 16일 오전10시~오후 4시
* 어디: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역~양원역까지
* 얼마나 : 편도 약 8km 강변길을 왕복 
* 난이도 : 평탄한 강변길로 왕복 약 4시간 소요
* 준비물 : 음료, 간식, 김밥 등 서로 나누어 먹을 만치  
* 복장 : 간편복에 운동화, 모자 착용
* 기타 : 조합에서 일정한 음료 및 다과 등 먹거리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분천역 출발 -  비동역 - 양원역 도착 중식후 다시 원점인 분천역으로

* 봉봉협동조합 조합원에 한해 행사전후 숙박 혹은 
캠핑 사이트를 조합이 무료로 제공합니다.

연락처 : 010-6345-6234 / 054-673-8651 봉봉협동조합 송성일

* 아래사진은 2014년 지인들과 함께 분천 강변길에서 캠핑하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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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 이후

2여년을 넘기는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7.000여개에 육박하는 협동조합 창립붐이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 내실있는 협동조합 발전의 사회적 기반이 확보되지 못한 형편입니다.
많은 협동조합이 설립만 마친채 방치되어 있거나
겨우 운영을 이어나가는 어러운 과정을 경과하고 있습니다.
봉봉협동조합도 이런 현실에서 예외일 수 없고 
나름의 길을 찾아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하고,
그 길은 같은 여건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협동조합간 연대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봉봉협동조합은 대구 안심협동조합, 푸른평화 협동조합 등과
의미있는 연대를 이어가고 있는 중에
무엇보다 봉화군 지역내 타 협동조합과의 연대가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봉봉협동조합과 교류중인 봉화군 관내 협동조합은 
봉봉보다 먼저 설립된 봉화친환경생산자 협동조합
얼마전 법인 전환한 봉화자활 사회적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이 세 협동조합은 지난 해 여러번 논의가 오간끝에 
상호 연대의 장을 넓혀나가기로 하고 각 조합은 총회에서
조합간 연대사업의 건으로 결의를 모았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세 협동조합의 대표와 실무책임자가 
첫 모임을 가지고 모임을 정례화하고 구체적인 연대사업을 펼쳐나가기로 결정하고
지난 주 두번째 모임에서 몇가지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각 조합별 물품을 상호 공유하고 무 수수료를 원칙으로 한다. .
2. 조합원 교육, 체험 프로그램 등을 공동으로 개최한다.

물품 공유를 통해 
각 조합은 물품 다양성을 확보하고, 
소비자 조합원 공유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교육, 체험 프로그램 등의 공동 개최를 통해 
영세한 조합의 비용 절감과 함께 조합간 연대를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미약한 힘에 불투명한 미래지만
움츠리지 않고 한발한발 내딛고 모색하는 길만이 
봉봉협동조합을 의미있는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 키워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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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싶어 안달하던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이왔습니다.

하루종일 봄비가 오락가락 게으른 사람은 낮잠자기 딱 좋은 날씨에

부지런한 저희는 비닐하우스로 집결했습니다.

비오는 날은 비닐하우스에서 호박파종하기로 해 놓은 계획에 따라

5,000알의 밤호박,

800알의 일반 단호박,

600알의 누렁호박(멧돌호박)을 50공 포트에 한알한알 담았습니다.

풍요한 가을 살림 넉넉한 겨울을 꿈꾸며

정성을 다해 올해 첫 파종을 마쳤습니다.

올 농사 대풍을 예고하는 듯 춘양 도래기제 형님내외,

존경하는 이웃 송선생님 등 비닐하우스는 정겨운 이웃의

발길과 손길로 북적거렸습니다. 

이제 모종관리하면서 4월 한달은 밭에서 살아야합니다.

작년 농사 뒷설거지부터, 새밭장만을 5월초 까지 끝내야하기 때문입니다.

밭주변 묶은 풀을 베어내고, 고라니를 막던 그물망도 걷어내고

비닐도 걷고 그리고 퇴비를 뿌리고 로타리를 치고 두둑을 만들어 비닐을 씌우는 작업까지

사실 할일은 많고 부르는 데도 많고....

정신없는 한달이 예고됩니다.

 봉글봉글 맛난 봉봉밤호박을 위하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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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두물머리] 함께 보아요~

농사일이 조금씩 시작되는 절기, 더 바빠지기 전에 할일들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모처럼 주민 여러분과 함께 우리 농업을 지키려는

다른 농부들의 이야기를 나눠 보는 시간 가지고 싶습니다.


2014년 갖종 다큐멘타리영화제에 출품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던 서동일 감독의 다큐 [두물머리] 

비나리마을학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일시/장소 :


2015년3월 11일(수) 저녁 7시~9시 / 비나리마을학교

영화관람후 감독과의 대화 및 막걸리 파티가 있습니다.


* 참가비는 무상이지만

[다이빙 벨]등  다음 작품  초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소액의 자발적 후원은 받습니다.


문의 : 비나리마을학교 054-673-1927  

주관자 : 봉봉협동조합 010-2008-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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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되기 전에 나는 농협이 다른 많은 은행들 중 하나인 줄 알았다. ‘농협이 협동조합을 말하는 것인지, ‘협동조합이 뭐하는 것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농민이 되자마자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나는 농협과 부대기며 살아야했다. 한해 두해 농사를 지어가면서 농협은 협동조합이고 적어도 이런저런 은행 중의 하나는 아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농사를 짓고 먹고 산 17년 세월동안 농협은 더 은행스러워졌고, 덜 협동조합다워졌다. 이제는 간판 자체도 바꿔 달았다. “농협은행이라고!

도시생활을 접고 봉화 산골짝 비나리마을에 짐을 푸니 이웃어르신께서 알려주셨다. 농사를 지으려면 농협 조합원으로 무조건 가입하라고! “왜요?”라는 철없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농협조합원이 되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긴 설명이 이어졌다. 먼저 농자금을 받을 수 있고, 농자재를 외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명절이면 선물도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생산한 농산물도 출하할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아이고 고마워라, 농협은 참 좋은 곳이구나며 달려가 조합원 가입원서를 내 밀었다. 아직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조합원가입을 위해 서너 번을 더 농협을 찾아야했다. ‘다음 이사회 때 가입신청을 일관 처리할 예정입니다.’ ‘깜빡 잊고 가입원서를 본점에 넘기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처리해도 별 문제될 것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번 이사회에서 안건이 많아 조합원 가입신청 안건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런 무성의한 답변을 듣고 몇 달이 지난 다음에야 조합원 출자 증서를 두 손에 받아 쥐었다.

하지만 조합원 가입 출자증서를 받고 뿌듯해 하던 순간은 짧았고, 나의 농협과의 악연은 아직까지 길게 이어져오고 있다. 사실 농자재 외상이야 읍내 농자재가게 어디서라도 얻을 수 있고, 명절에 주는 조합원 선물이라야 소금 20kg 한포, 3kg 한포가 전부였다. 그나마 지역농협에서 농산물 집하와 출하를 수행하는 농협의 역할은 충분히 의미 있고, 조합원 농민의 입장에서 요긴하긴 하지만, 농산물 유통이 농민들이 농협에 바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알고 보니 농자금이나 정부정책자금은 농협조합원이 아니라도 받을 수가 있었고, 바로 여기에 농협과 농민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놓여 있었다. 농업정책자금 대출로 생기는 이익이 농산물 유통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크고 손쉽다 보니 농협은 농산물 유통조직이 아니라 농민상대로 정부의 정책자금을 대출해주고 이익을 취하는 대출 업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가진 것 없이 산골에 짐을 풀고 농사를 시작하다보니 농협과의 첫 거래를 농가주택 신축자금대출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농사실패는 우선 빼어먹기 좋은 곶감처럼 달콤한 농자금대출로 눈을 돌리게 했고 농사 시작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아 상당한 부채로 불어났다. 흔히 이웃들이 농협직원 월급주려고 농사짓는다고 쓴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내 자신이 바로 그 꼴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농협대의원이란 걸 자의반 타의반으로 맡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처음 대의원 총회를 참석해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조합장이 총회장 입구에 서서 입장하는 대의원에게 일일이 허리 숙여 악수를 청했다. 다른 임직원들도 황송할 정도의 응대로 몸 둘 바를 모르게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꾸벅꾸벅 졸고나면 농사일 하루 일당보다 훨씬 많은 돈을 수당이랍시고 주고, 선물과 푸짐한 점심식사까지 대접했다.

한번 두 번 총회 참석이 늘어나면서 마음 한구석에 일말의 미안함이 싹텄다. 우리 마을 조합원을 대표해서 조합원의 이익과 편익을 늘이기 위해 총회에 참석해서 농협 경영을 감시하고 시책 제안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 대의원의 역할 일진데 내 자신은 물론 대의원 거의 모두가 묵묵부답 말이 없었고 총회는 일사천리로 지나갔다. 배포된 사업계획서나 예결산 자료를 이해할 수도 이해할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을로 돌아와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농협을 지칭할 때 그 도둑놈의 새끼들이라는 수식어를 빼먹지 않았다. 간혹 오다가다 농협창구에서 큰 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장 만만한 창구직원에게 어거지성 호통만 치는 조합원뿐이었다. 발언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으면서 농협에 적의만 가지고 있는 조합원은 바로 자신이 비난하는 그 조합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합이 바로 자신들 것이라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눈치도 없이 대의원 총회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요주의 대의원으로 찍힐 게 분명하지만 나름대로 할 말을 하는 대의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적은 내부에 있다고 하듯, 농협임직원들보다 대의원들 중에서 직접적인 반감이 표출되었다. “대충 하이소. 밥 묵으러 가입시더.”

농민의 농협을 진정한 농민 자신의 것으로 돌려놓기 위해 농민회 회원들은 농협을 방기해 놓을 것이 아니라 대의원으로 참여해서 발언하고, 대의원 총회의 분위기부터 바꾸어보자는 작당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엉뚱한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바로 협동조합 기본법발효에 따라 새로운 협동조합운동이 봇물 터지듯 일어나면서 우리 지역에서도 나름대로 농민회중심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모아졌다. 농민회회원들은 끊임없이 농협개혁을 요구하면서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드는 시도도 같이 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봉봉협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보니 농민회에 열심히 참여하는 회원들 대부분이 임원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타 조합의 임원은 농협 대의원을 겸임할 수 없다는 법적인 자격문제가 있을 줄 미처 몰랐다.

그렇다고 봉봉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을 해 나가면서 농협은 남의 일로 방치할 순 없었다. ‘협동조합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끊임없이 배우고 고민하는 과정과 병행할 때만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조직이었다.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협동조합에 대해 알게 되는 만치 농협에 대한 요구도 더 늘어났다. 누가 뭐래도 농협은 한국 협동조합의 맏형이다. 설립 배경과 그동안의 역사를 도외시하자는 말이 아니라 현실적인 규모나 농촌에서의 영향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현재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협동조합 붐이 우리사회를 움직이고, 우리의 생활을 규정짓는 원리들을 그 저변에서부터 바꾸는 역할을 재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끄는데 농협이 할 역할이 분명이 있고, 그것도 지대할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 설립 붐은 농협의 토대를 위협하는 불순한 움직임이 아니다. 농촌에서 생겨나는 신생 군소 협동조합의 설립 붐은 농협이 우리 사회에서 가질 바른 위상을 찾고 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하고, 그럴 때 농협은 한국 협동조합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농협이 협동조합의 맏형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 모두 다 언감생심이라고 면박을 줄 것이다. 농협이 나서서 지역사회 내 소규모 신생 협동조합들을 지원하고 이끌어야하지만 현실을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기대를 하는 자신조차 농협에 무슨 요구를 할 것인지, 지역사회 내 사회적 경제를 구축하는데 어떤 역할을 기대할 것인지 참 막연하다. 하지만 농협이 농민의 것이기에 결코 포기할 순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주 기본에서 시작하면 될 것 아닌가.



사실 나는 농협 조합원 17, 대의원 6년 동안 단 한 번도 협동조합이 무엇 하는 조직인지, 협동조합의 정신이 무엇이고 농협은 또 어떤 조직이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어쩌다가 신규 대의원 교육이라는 이름의 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지만 농협 자신의 경영성과에 대한 자화자찬과 대의원을 위무하는 유흥으로 채우진 일정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었다.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조합원 교육이 조합의 사활을 건 중심적 활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적어도 농협은 조합원 교육을 스스로 방기해 왔고, 의도적으로 회피해 왔다. 복식부기를 이해하고, 대차대조표를 읽을 줄 알고, 농협경영에 토 달 수 있는 조합원을 스스로 키워낼 정도로 농협은 성실하지도 당당하지도 않았다. 이제 비록 미미한 존재지만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볼 거울이 생겼다. 이번 기회에 협동조합 교육의 장을 농협 주도로 지역사회 내 신생 협동조합들과 연대하여 만들어보자.

지금은 거의 껍데기만 남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농협 업무에는 분명히 지도사업이라 것이 있다. ‘작목반같은 생산자 조직 지원이나 팜스태이같은 도농교류 사업 지원 등을 일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역 내 농업관련 협동조합의 조합원 대부분은 동시에 농협 조합원이다. 결국 농협과 신생 협동조합의 관계는 농협과 작목반의 관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작목반의 활성화가 농협의 이익에 도움이 되듯, 지역사회 내 다양한 농업관련 협동조합이 활력을 가진다면 곧바로 지역 농협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농협이 나서서 지역내 신생 협동조합이 자리 잡고 재대로 운영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둘러보고, 무엇을 지원하고 어떻게 이끌 것인지 지도사업의 범주 내에서나마 고민하길 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생산자협동조합이 농협의 준조합원으로 가입을 하던지 필요하다면 다른 관계 방식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공동 교육이나 지도사업을 통해 만나게 될 신생협동조합은 거대 농협으로 하여금 지금은 잃어버린 초심을 돌아보게 할 것이다.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물적 기반과 경영 능력과 성과 면에서 거대 농협의 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 신생 협동조합은 대신에 헌신적인 조합원, 조합원과 조합의 밀착된 동반관계, 신뢰와 협동에 기반한 운영, 경영 자료의 공개와 공유를 위한 노력, 교육에 대한 갈망, 너 나아가 세상을 따뜻한 공동체로 바꾸겠다는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공룡 같은 농협과 개미만한 신생 협동조합이지만 충분히 서로 주고 받을 것이 있다고 믿는다. ‘교육에서 시작하는 공동사업을 통해 농협은 재벌적 경영주체가 아니라 그야말로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가치와 덕목을 회복하고, 신생 조합은 농협으로부터 경영 노하우와 최소한의 물적 기반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농협은 우리 농촌, 나아가 우리 사회를 생존경쟁만 있는 정글이 아니라 서로 돕고 사는 따뜻한 인류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냥 헛된 꿈인지도 모른다. 모든 농민이 자신이 농협의 조합원인 사실을 자랑스레 여기고, 농협 임직원이 농민을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과 성취감을 느끼는 세상. 이는 먼저 농협이 농민과의 거리를 좁히는 작업들로 시작해야 한다. 사실 농협점포에 들어서면 다 아는 얼굴이다. 한해 두해 농사지은 것도 아니고 좁은 지역사회 에서 모르는 얼굴이 있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농협 직원 들은 조합원이 점포에 들르면 늘 반갑게 인사하고 커피부터 권한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이전하고는 퍽 달라진 풍경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안면관계를 넘어 농민과 농협이 마주한 지점에는 늘 긴장감이 흐른다. 농민은 농협에 대해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낀다. 왜일까? 농민과 농협의 이익이 서로 맞서있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최소한 이익을 같이하는 운명공동체라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농민의 소득과 농협 직원의 임금은 연동시키거나 상징적으로 조합장 연봉만이라도 연동하는 방법도 강구해 볼만하다. 그것이 어렵다면 농협은 농협이 버려둔 공터에서 자라나, 농협이 방기한 가치를 기반으로 자라나고 있는 신생협동조합과 손을 잡고 농민 곁으로 다가가면 된다. 그것도 교육같은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

힘들게 농사 뭐하려 짓냐는 짓궂은 물음에 농협직원 월급주려고 짓는다는 쓰라린 자조를 사라지게하고, 사회적 경제의 큰 주체로서 농업협동조합이 우뚝 설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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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0일(금요일) 봉봉 사무실에서 조합원 교육이 있었습니다. 

인근의 조합원님을 중심으로 서른 분 정도가 참가하여 

귀한 배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교육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는데

초대 강사 선생님은 한국 농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오신 

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권영근 선생님이었습니다.

 

강사님은 경제학의 개념부터 정의하시면서

2차세계 대전 전후 부터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 태동하고 발전해왔고

그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 2시간을 열강하셨습니다.


특히 한국 협동조합(생협)의 태동에서 부터 늘 함께해오신

경험을 토대로 협동조합은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을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특히 주식회사형 경영을 도입하게되면서 어떻게 대형 협동조합들이 파산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한국의 현재 대형 협동조합들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이탈하는 측면에 대한 비판 

그리고 유럽형 사회적 기업과 미국형 사회적 기업의 차이에 대한

내용은 우리의 향후 행보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이번 교육을 계기로 가능한 매달 1회 협동조합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여

조합원간의 친교의 시간도 가지고 봉봉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지적 정신적 밑천도 두둑히 마련하겠습니다.

조합원 여러분의 지속적인 참가 당부드립니다.


7월 교육계획은 별도 공지하겠습니다.



<6월 강의 모습... 처음 15명의 수강생으로 시작해서 많이 서운했는데 

곧 30명의 수강생이 강당을 채웠습니다. 

밤늦도록 아무도 졸지 않고 열공하시는 조합원님의 진진한 표정을 보니 봉봉의 미래가 밝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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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모처럼 조합원 교육이 있던 날
라티는 점심을 마치자 마자 분주합니다.
새벽부터 물에 불려두었던 콩을 차에 싣고
명호소재지의 봉봉조합원이 운영하고 있는
[아름다운방앗간]으로 달려갔습니다.

잽싸게 콩을 갈아오자마자
큰 솥에 물을 끓이고 드디어 봉봉 특별 두부만들기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몇시간의 공을 들여 만든 봉봉 손두부^^가 드디어
완성되자 교육에 참가하기 위한 조합원님이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가 우선 대여섯모를 먼저 홀딱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의 교육을 마치고 밤 10시나 되어서야
두부김치와 막거리가 있는 조합원 간담회와 친교의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무려 새벽2시 넘어까지 이어진 막걸리 파티...
참가하신 모든 조합원님께 감사드리구요.
강사님 접대에 새벽을 맞은 정도윤 조합원님
이날 빈약할 뻔한 행사를 알차게 만들어주신
라띠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 교육때도 지속적으로 두부 부탁드립니다~~
특히 다음에는 순두부로도 좀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용~
그리고 이번에 라티표 손두부를 맛보지 못하신 조합원님은
다음에 꼭 참가하시어 
같이 손두부 만들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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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3일 자정, 또 한번의 비나리마을 동제가 있었다.

마을의 주민이 된지 17년... 벌써 몇번의 동제에 참석했는지 이제 기억도 없다.

단지 동제의 변화된 풍경이 주마등 처럼 지나갈 뿐이다.

사실 한해 한해 표나지 않게 동제의 형식도 간소화되고, 

또 참가하시는 사람들도 바뀌고 줄었다.


올해 역시 유사를 맡아 잡은 돼지를 싣어오고,

하루종일 당나무를 지키며 추위에 떨다가 자정에서야 동제를 올리고

뒷정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올해는 삶은 돼지고기를 가구수로 나누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돼지 한 마리를 비나리 마을 온 가구에 한토막씩이라도 돌아갈 수 있도록 나누다보면

날이 훤히 새기 일쑤다.


올해는 돼지를 직접 잡지도 안았고,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어 덜 고생스러웠다.

동네에 이런저런 번잡한 일도 없어 

동제의 신성함을 지키기에 아무런 흠이 없는 좋은 날이었다.

제사를 올리고, 소지를 올리고

한해 풍작과 마을의 화평, 그리고 모든 생명가지 것들의 안녕을 빌었다.

 

그래도 다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동네 형님과 넋두리를 했다.


"한것 없이 힘드네요 형님."

"힘들고 말고제. 그라이 다 안할라안카나."


이런 현실에서 그래도

같이 하신 주민, 당주 이하 제관과 유사님들

그리고 돼지를 보내준 이슬이 아빠며 여러 찬조자님이 고맙다.

가난한 산골 마을에 이 정도라도 성대한 당제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모두의 정성이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다.


올해 동제를 마치고, 꼭 무엇인가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컴앞에 앉았지만

막상 무엇을 기록할지 모르겠다.

올해 동제가 다른 해와 달리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직 내 머리가 복잡하고

나의 발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냥 기록할뿐!!














* 당주 : 신영록  / 축관 : 강진희 / 유사 : 권희대, 안태랑, 유창목, 정재학,송성일

* 돼지희사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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