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넉넉한 줄 알았던 설 연휴가 다 지나가고 벌써 마지막 날이 저문다. 엄마와 형제 그리고 친구가 있는 진해를 잘 다녀왔고, 나주에서 충분한 휴식도 취했다. 빠뜨린 곳이 더 많지만 그래도 설치레 인사도 마쳤다. 어머니의 건강이 늘 걱정인데 잘 버터내고 계신 것 같아 다행스러웠고, 동심으로 돌아간 엄마가 하루종일 인형과 대화하고 노시는 모습이 이쁘고 또 슬펐다. 진해 친구들도 저마다 우여곡절을 안고서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어떤 친구는 이혼은 했지만 예술을 즐기는 삶을 살고 있었고, 또 어떤 친구는 암수술은 했지만 산책을 통해 걷기의 즐거움을 배워가고 있었다. 삶이란 게 다 그렇지만 희노애락의 날실과 씨실로 짠 슬픈 풍경화 같은 거 아닌가!

그래도 이번설의 최대 이벤트는 둘째형, 동생과 같이 창원의 대표산인 정병산을 올라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주 어릴 때 같이 놀던 기억 이후 어른이 되고 고향을 떠난 뒤 형제간에 한 번도 같이 어디 놀러가거나 여행을 한 적이 없다. 뭐 원수진 것도 아닌데 그를 수 있냐 의아하겠지만 어떻게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나만 빼고 나면 서로 이기려 들지 않는 착한 형제들인데 다 먹고 살기 힘들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일정이 비록 반나절 산행이었지만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 특히 어린 시절 형제가 같이 나누었던 기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 되었다. 다음 휴가 때는 어디 리조트라도 빌려 4형제 모두 조카들까지 포함해 모일수 있는 자리 한번 주선하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내일 시작할 일상을 점치고, 업무를 점검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늦게 배은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늦게 시작해 맛들인 즐거운 직장이 나를 기다린다. 동백꽃이 막 터질 듯 부풀은 출근길을 따라 봄을 향해 나아가자.

 

반응형
반응형
아침 늦게 까지 숙소에서 놀다가 11시가 넘어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을 들러기전에
먼저 해금강을 가기위해 '바람의 언덕'이 있는 도장포로 향했습니다.
연휴가 시작되고 바람마저 불어 해금강 유람선이 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배는 연휴 뒤에나 운항을 한다고 했습니다.
몇년전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기전에 [바람의 언덕]을 들런적이 있는데
그때 역시도 명절연휴때라 유람선을 타지 못했는데
해금강 유람선은 저하고 인연이 없나봅니다.
어쩔수 없이 눌러쓴 모자마저 날릴듯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름 그대로의 '바람의 언덕'을 올라 보고 급히 내려와
바로 통영으로 향했습니다.
거제도는 바닷가만 보아왔지 한번도 재대로 내륙을 가로질러 본적이 없었는데
이날은 처음으로 거제의 중심을 가로질러 구거제대교를 통해 거제를 벗어났습니다.
 
이날 통영의 첫 목적지는 중앙동 충무김밥 거리입니다.
고속도로 휴계소 등에서 자주 먹어봐서 잘 알고 있는 [충무김밥]이지만
이전에 충무를 들러서도 결코 본토의 원조 충무김밥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큰 마음먹고 아예 주요 목적지 중의 하나로 [충무김밥골목]을 정하고
사전에 [다음지도]에서 지도까지 출력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충무김밥집은 통영 여객선터미날에서
동피랑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주변 건물들도 다 마찬가지였지만
초라하다못해 조금은 구질구질한 외관에 실내 역시 좁고 어수선했습니다.
그래도 원조충무김밥을 찾는 사람이 많고 가게들이 성업중인것은
갯마을 선술집같은 작고 초라하지만 갯사람의 깊은 정감이 물씬 풍겨져 오는
바로 그 정취때문일 겁니다.

길가에 하고 많은 충무김밥집 중에 우리가 들어서 식당은 [일번지 할매충무김밥].
역시 작고 초라하고 못해, 손님용 테이블 한개, 그리고 방바닥 테이블 한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  김밥을 사서 들고 나가시는 손님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잘오셨다면서 자리를 권했습니다.
이웃 단골이시라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주인보다 앞서
가게 선전에 열릉 올립니다.

벽 한쪽 전면을 장식하다싶이한 메모지를 가리키며
이 식당에 들런 손님들이 남긴 감사 메모라며
우리도 나갈 때 메모 한장 남기라고 권하십니다.
따로 주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김밥을 말기 시작한 주인 할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대었습니다.

1인분에 4000원해서 4명 1600원 짜리 밥상이지만
해물된장국 한 냄비가 떡하니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바지락이랑, 홍합을 듬뿍 넣어 시원한 해물 된장국을
떠먹어가며, 통영 본거지에서 먹는 충무김밥은
전날 옥포에서 먹은 4만원짜리 아구찜보다 차라리 나았습니다.
성씨가 고씨인 주인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원래 충무김밥은 연안 고기잡이를 떠나는 뱃사람들이
점심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가던 음식이랍니다.
바쁜 와중에 주변에 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무우김치와 삶은오징어무침, 그리고 
따로 속을 넣지 않은 김밥은 물때를 맞춰야하는
바쁜 뱃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점심 도시락이 되었는가 봅니다.
참,  삶은 오징어 무침에는 어묵이 꼭 들어가야지만
원조 충무김밥이 된답니다.

배불리 먹고 [일번지 할매 충무김밥]집을 나서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피랑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동피랑 언덕 골목골목을 돌고 내려오니
언덕아래 이어지는 골목에 어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싱싱한 횟거리며 갖가지 해물을 담은 다라이를
끊임없이 호스를 통해 공급되는 바닷물이 질퍽하게 흐르는 
노상 좌판에 펼쳐놓고 설대목기댕 들떠있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호객외침이
펄떡이는 생선만치나 힘차게 어시장 여기저기에서 울려퍼졌습니다.
어디가 더 좋고 싸고 할 것도 없이 아무데서나 사려고 하는데
옆좌판의 눈치가 보여 이것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회거리를 3만원어치를 사니
무직하니 양도 많고, 뼈까지 매운탕용으로 얻어담은 비닐 봉투를 드니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통영에서 진해까지는 차로 2시간 정도 걸리지만,
혹시라도 명절 귀향차량으로 길이라도 막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싱싱한 횟거리를 싣고 길에서 몇시간씩 지체하는 일이 일어날까봐
노심초사 신나는 걸음으로 차로 달려갔습니다.


바쁜 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습니다.
중앙동 어시장을 나오자 마자 얼마지나지 않아
옛날 40여년전 저가 초등학교 다니기 시작할 무렵 학교가는 길에
보았던 그런 대장간이 이곳 통영거리에 아직 남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진해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등교길 한 모퉁이를 지날때마다
시뻘건 불과 연신 내려치는 망치 소리가 무섭게 다가왔던
조그마한 대장간이 있었습니다.
그 기억은 희미해 졌고,
그 뒤 고향 진해에서 대장간이라는 것은 영영 사라지고 말았지만 
기억과 상상이 만들어낸 마음속의 대장간은 항상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장간을 생각지도 않은 통영 거리에서 만나다니
여간 감격스럽지 않았습니다.

손에든 횟거리때문에 빨리 진해로 가야된다는 생각을 잊고
바쁜 대장간 아저씨의 손놀림을 따라 나의 두눈은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어설프나마 카메라로 그 풍경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한참을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있다가
필요도 없는 호미를 한개 사게 되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을 붙들고 보나마나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을 것 같은
대장간 아저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층무공작소라는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는 농사용이 아닙니다. 
간판에는 분명 '농기구'라고 쓰여있지만
밭이 아니라 갯벌에 조개를 캐는 용으로 보였습니다.
뭐 어민들에게 농사는 바다농사 갯벌농사니깐 
'농기구'라는 호칭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즐거운 하루는 저물고 귀행길은 귀성차량으로 막혔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고향집에 도착했습니다.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여행모드에서 설날모드로
분위기가 바뀌고 저의 처신도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또 한해의 설날을 맞이했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경남 진해가 고향인 사람이 어쩌다 경북 최북단 봉화에 살게 되다보니
사실 바다가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물론 1시간 30분 거리에 동해바다가 기다리고 있지만
동해의 밋밋한 수평선은 남해의 멋에 중독된 사람에게
그다지 충분한 만족을 주질 못합니다.
원래 자기 고향 것이 최고라고 믿는 합리적이지 못한 욕구겠지만 말입니다.

일년에 최소한 2번, 추석과 설날이면 고향 진해를 다녀옵니다.
그리고 고향길에 꼭 바다를 들르게 됩니다.
올해는 거제시에서 운영하는 '거제자연휴양림'에 미리 방을 예약했습니다.

2월 11일.
설날을 3일 앞두고 귀성길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미리 집을 나섰습니다.
아침 7시 출발 예정이었지만 6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한시간만에 3~4cm나 쌓이는 바람에 출발을 망설이다가
1시간이나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눈이 잦아들것 같지않아 더 지체하다간 완전히
발이 묶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체인을 감고 출발했습니다.
계속되는 눈발속을 거북이 걸음으로 달리는 차장 밖은
완전히 설국으로 변해버렸고,
국도는 거의 인적이 끊기다시피 한산했습니다.
평소 1시간도 안걸리는 안동까지 2시간이나 걸려 도착했지만
안동이 가까워 오면서 길가 여기저기 접촉사고 차량이 늘부러져 있고,
언덕길을 오르지 못해 미끄러지는 차량을 여러대 목격해야했습니다.
안동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체인을 풀고,
녹기 시작해 질척거리는 고속도로를 접어 들었습니다.
거의 군위휴계소 근처까지 오자 고속도로의 눈이 녹아
주행에 어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진해 고향집에 도착한 것이 거의 12시, 바로 동생을 싣고 진해 속청항으로 달려가
거제 실전항 사이를 오가는 1시 30분 발 삼보11호를 탈 수 있었습니다.
명절 직전이라서 그런지 의외로 한산한  배에 올라
눈길 운전으로 쌓인 피곤을 풀고 한껏 바다 향취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진해 속천항을 떠난 배는 오랜 기억속의 흔적을 따라 흔들리며 1시간만에 거제 실전항에 도착했습니다. 지나온 바다는 내해임에도 불구하고 너울이 일어 배가 흔들리고, 찌푸린 날씨에 간간히 가는 눈발마저 날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화속 모험을 떠나는 소년처럼 마냥  가슴두근거리며 내내 갑판과 선실을 오가며 바다와 하늘, 그리고 스쳐가는 섬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실전항은 거제의 북단에 가깝고 숙박지인 자연휴양림은 거제의 남단이다보니 점심은 가는 길 중간쯤인 옥포에서 해결했습니다. 배는 고프고 마땅한 식당은 없고 거리를 잠시 헤메다 들어선 식당에서 아구찜으로 즐겁지 않은 식사를 하고, 다시 차를 달려  구조라를 거쳐 학동몽돌 해수욕장에서 내륙으로 우회전한뒤 얼마지나지 않아 산속의 자연휴양림에 도착했습니다.
 

자연휴양림은 당연히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해안가에서 차로 5분이상 떨어진 첩첩산중의 참나무 숲속에 자리한 숙소였습니다.
10인실, 15평짜리 목조주택으로 많이 낡았지만 그래도 지낼만한  공간이었는데
7만원이라는 비교적 싼가격이었습니다.

애초에는 낚시를 할 계획이었지만 여전히 날리는 싸락눈에 바람까지 불어 취소하고 다뜻한 방안에서 모처럼 TV도 보고, 주변 등산로도 걸으면서 쉴 수 있었습니다.
해가지고, 저녁을 먹고나니 완전히 암흑천지에 고립무원, 이웃의 숙소에는 불빛 하나없고 휴양림전체는 우리 밖에 없는듯 고요했습니다. 마땅히 나갈 곳도 없고 해서 미리 이부자리를 깔고 거제 지도를 펼쳐  다음날의 쾌적한 날씨를  기원하며 이런 저런 계획들로 일정을 짜는 것으로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다음날은 동피랑을 둘러보고 그리고 충무김밥을 꼭 먹어본다는 두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길고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산골 마을에도 일년에 두 세 번은 사람이 붐빌 때가 있습니다.

청량산과 낙동강을 끼고 있고, 낙동강과 나란히 마을 앞을 지나는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 유교문화권이 이어지는 위치한 비나리마을은 여름 휴가철 한 달만은 외지인의 발길이 넘쳐 납니다.


그리고 두 번의 명절, 추석과 설날이 되면 어린 시절을 마을에서 보내고 철들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대구로 부산으로 일자리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출향민들의 귀향발길이 넘쳐납니다. 일년 내내 아이들 울음소리도, 어른들 웃음소리도 드문 마을에 명절 한 때 나마 왁작지걸, 사람 사는 소리와 온기로 넘쳐납니다. 마을 길 여기저기에 승용차들이 서있고, 이웃 할머니의 좁은 마당가에도 반짝이는 승용차가 그 집의 자식들 수 만치 들어서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세대전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 온 마을을 구석구석 쓸고 다니며 고함을 치고, 싸우고, 웃고 그리고 여기저기 저지레를 해 놓습니다.

설날을 기다리는 산골마을 주민들은 풍요로웠던 지난 시절이 되살아나는 그런 신명 넘치는 꿈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산골 마을 비나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바람이 지나가듯 이삼일 그냥 스쳐 지나갈 명절이지만 그날이나마 옛날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으십니다.  집집마다 아홉이나 열씩 자식을 두고 앞마당에 강아지 두어마리와 외양간에 소한마리 그리고 뒷마당에 풀어놓은 닭까지 대여섯마리가 모두 한식구로 살았던 옛날이 그리우신 것입니다. 


<이웃 갈골의 민순기 어르신 부부>같이 늙어가는 산골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옛날을 추억하고 새날을 꿈꾸시는 명절을 코앞에 둔 비나리마을 할머님들은 세상 누구보다 바빠집니다. 설을 쇠고 돌아가는 자식들 차 드렁크에 누렁호박 두어 덩이와 깨끗이 골라 곱게 빻은 고추가루 한 보따리, 그리고 참깨와 콩은 물론 지난 가을 손수 산과 들을 헤매며 캐서 말린 산나물 한 꾸러미까지 차곡차곡 채워주기 위해 지난 한해 가꾸고 다듬은 농산물을 미리 챙깁니다. 기름방에 들러 참기름이며 들기름을 짜고, 고추방앗간에 들러 고추가루를 빻습니다. 마음은 바뿐데 그렇게 준비가 되어가는 만치 설날은 내일 모레로  다가오고, 혹시라도 빠뜨린 것이 없나 헛간을 둘러보고 부엌을 둘러보고 미리 싸둔 보따리를 다시 풀어봅니다.


설날이 눈앞에 다가오면 할머니 마음은 더욱더 바빠져가고 기다림에 지쳐 초조하기 조차 합니다. 아직은 두세 밤은 더 자야 자식이며 손주들이 들이닥칠 것인데 세월은 일년 열두달이 그리도 잘 흘러가다가 왜 명절을 코앞에 두면 이리도 느려터졌는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할머니 마음에도 아랑곳없이 명절분위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동네거리는 여전히 고적하고 찬 바람만 가득한 채 사람 발길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이동슈퍼라도 들어와야 하는데 명절 대목이라도 보러 어디 장터 한 모퉁이에 전을 펼쳤는지 일주일에 두어 번씩 마을을 들르던 이동슈퍼마저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래도 간혹 어디 택배사 트럭이나마 들어오기는 하는데, 명절을 코앞에 둔 택배는 대부분 아쉬운 사연이 묻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귀향을 하지 못할 사정인 자식이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보내는 선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나마도 없으면 자식도 아니겠지만, 그냥 선물 하나 받고 자식얼굴도 못보고 명절을 나기에는 할머니 가슴에 묻힌 그리움이 너무나 큽니다.

마을에는 없어졌지만 산골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이웃이 넘치고 정과 사랑이 넘치던 옛 마을의 모습에 꿈처럼 남아 있습니다. 명절만이 아니라 언제가 비나리마을은 할머니의 뇌리에 남아있는, 이웃의 번잡한 삶이 내삶과 엉켜 두루 즐겁게 살아가던 옛 마을의 영화가 재현되길 마음속 깊이 빌어봅니다.    

올해 비나리마을 설날은 그 어느해보다 풍요롭고 정감넘치는 그런 명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