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의 논쟁과 소동으로 불편했던 잠을 깨고 그나마 가라앉은 마음으로 아침을 나누었다. 다라파니의 Superview lodge를 나서자마자 우선생 부부는 자신의 길로 떠났다. 간드룩 방향으로 산을 내려가 따로 룸비니 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가이드 라마는 같이했던 한명의 포터를 딸려서 포카라까지 안내하도록 조치했다. 여정을 먼저 끝내기가 아쉬운 포터를 같은 마음으로 보내고나니 오늘은 여정 일주일만에 출발시에는 예정에 없던 작별마저 예고되어 있었다. Tadapani를 출발해 추일레를 거쳐 또 한번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는 촘롱입구에 도착했다. 촘롱을 통해 시누와를 거쳐 안나푸르나 베니스캠프로 올라가는 길과 오른쪽 내리막으로 길을 잡아 모디콜라를 향해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의 롯지에서 차를 나누었다. 그리고 갑자기 흩뿌리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송선생님과의 어설픈 이별식을 준비했다. 같이 했던 포터를 한분 동행하게 하고 급히 마을에서 가이드를 한분 더 구했다. 츄리닝 홑바지 차림의 가이드와 준비가 부족한 포터에게 우리가 가진 여분의 옷가지와 장갑 등을 나누었다. 한명의 트레커와 두명의 어시스트는 산으로 올라가고 6명의 트레커와 4명의 어시스트는 안나푸르나 능선에 뿌리내리고 사는 마을을 찾아 길을 나섰다.
마음에 남은 앙금이 없진 않겠지만 우리는 뜨겁게 포옹하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했다. 촘롱에서 지누단다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고 우리는 이내 마을에 도착했다. 처음 들어간 숙소가 마음에 안든다며 라마는 우리를 끌고 다른 롯지를 찾아 갔다. 지누단다 초입의 Ever Green Hotel 에 짐을 풀고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뜨거운 물을 찾아 길을 나섰다. 모디콜라(모디강)가에 형성된 조그만 자연온천에서 묵은 때를 씻고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식사와 함께 맥주파티까지 곁들였다. 작은 사안이지만 생각이 갈리고 그것이 다시 감정선을 건드리는 데 까지 나아갈때 연배차이까지 의사소통을 방해한다면 어쩔 수 없이 서로의 판단을 존중하는 수밖에 없다. 우린 그렇게 일행이 줄어 이제 우리의 여정을 돕는 가이드와 포터까지 합쳐 10명이라는 단촐한 그룹이 되어 있었다.
다음날을 뉴브릿지를 통해 란드룩까지 걸었다. 출발하면서 일찍 걸음을 멈추고 그동안 밀린 빨래도 하고 그냥 편안히 쉬자고 마음 먹었다. 막연히 계획했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한걸음한걸음 멀어져가고 우리는 상승이 아니라 평탄한 길들을 걸어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모디콜라 계곡 넘어 간드룩과 마주한 란드룩이란 마을의New Peaceful Guest House에서 일찍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남은 하루의 시간을 알뜰하게 즐겼다. 빨래를 널고 햇살을 받으며 졸다가, 지루해지면 일어나 마을을 걸었다. 마을을 스쳐 지나가는 걸음이 아니라 마을 속을 샅샅히 걷는 훨씬 더 느린 걸음이었다. 네팔리의 일터인 논두렁을 걷고, 마을의 중심인 학교를 찾아 구경도 하고, 그리고 언덕위에 올라 멀리 지는 석양 빛에 마음까지 물들었다.
이선생은 메모 수첩을 잃어버려 마을위 언덕을 두어번 다시 올라야했지만 우리는 모두 석양빛에 물들어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고,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꿈꾸었다. 나는 흐려진 유년의 기억들, 잊혀저가는 청춘의 꿈을 다시 움켜지기위한 헛된 노력들을 차분히 내려놓고 지나온 시간보다, 그리고 다가올 시간보다 지금 이 순간에 더 충실한 삶을 다짐하며 언덕을 내려왔다. 우리는 걷기 위해 왔지만 이날 하루는 적게 걸어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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