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롱을 벗어나기위해 Chhomrong Khola(촘롬천)까지 2,400여개의 돌계단을 걸어 해발 600m 정도를 내려갔다. 한 숨을 돌리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길을 힘겹게 걸어 고도 800m 정도를 올리니 Upper Sinuwa다. 촘롱과 시누와 사이의 계단길은 알려진 데로 가히 '죽음의 계단'이라고 말할만 했다. 길이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피곤한 근육도 풀리고 숨도 돌리고 해야하는데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한 방향으로만 계속 이어지면 그땐 걷는 맛이 죽을 맛이 된다. 오늘이 그랬다. Siwal에서 간드룩 가는 길이 그랬고 오늘 촘롱에서 시누와가는 길이 그랬다. 그보다는 덜했지만 Bamboo를 향해 이어지던 내리막 돌계단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내리막길이 하행길에는 다시 오르막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아내는 파샹이 말한 계단의 수가 맞는지 세어본다며 촘롱천까지 내려가는 길에 아무 말이 없었다. 계단 수를 세어보는 아내를 방해하기 위해 말을 걸어도 단답형 대답만 하고 이내 계단 세기에 몰두했다. 결국 끝까지 계단을 세어 본 아내는 계단이 넓어 서너발씩 걸은 칸을 고려한다면 대충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시누와에서 물을 마시고 잠시 쉬었다. 포카라 호텔에서 20루피하던 1리터짜리 미네랄워터가 간드룩부터는 120루피 이상 했다. 파샹은 비싼 물을 얻어 먹는게 부담스러웠는지 내외국인 이중가격제를 이용해 자신이 물을 살테니 저녁 때 돈을 계산해 달라고 했다. 나는 'Good idea!'라고 답했고, 이후 반값에 물을 먹을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도반에서부터는 롯지 주인이 네팔리가 미네랄워터를 사서 먹을 리가 없다는 이유로 파샹에게 물을 팔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역시 장사하는 사람은 눈치가 빨랐다. 그러고 보니 롯지에서 네팔리에게 미네랄워터를 반값인 7~80루피에 팔아서는 전혀 이문이 없는 것 같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켐프에 다가갈수록 당연히 고도가 높아진다. 오늘 묵게 된 히말라야 마을은 해발 2900m. 그런데 고도가 높아지는 꼭 그만치 물가도 따라 올랐다. 방값, 물값, 음식값 모두 비싸다. 시누아까지는 조랑말이 들어온다고 했다. 거기서부터는 식자재며 생활용품을 모두 사람이 직접 지고 날라야한다. 조랑말과 사람이 직접 날라온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싸니 비싸니 말하는 것도 우습고 당연히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내일 도착할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나 ABC(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는 여기 히말라야 보다도 훨씬 더 비쌀 것이란다. 당연할 일이다.
오늘 점심을 먹은 밤부에서 파샹도 달밧을 250루피나 주었단다. 투어리스트에세 350루피를 받으니 포터에게는 단지 100루피만 깍아준 셈이었다. 라운드 코스에서는 투어리스트 2명을 대동한 네팔리에게 방값과 음식값을 전혀 받지 않았다. 숙식이 공짜일뿐아니라 특별히 덤으로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최소한 파샹의 달밧에는 우리가 먹는 달밧에는 없는 야크 고기나 계란후라이가 거의 항상 올라가 있었다. 우리 트레커는 왜 '플레인 달밧'이고, 너 파샹은 '스페셜 달밧'이냐며 놀리기라도 하면 파샹은 자기 접시에 올라와있는 야크고기를 아내와 나에게 한조각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런데 ABC코스에 접어 들면서 파샹도 돈을 내고 밥을 사 먹어야 했고, 처음 사울리바자르에서 100루피를 내던 달밧을 이곳 히말랴야에서는 250루피나 내게 되었다. 계속 밥값을 대신 내어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미 숙식비를 포함한 하루 12불이라는 포터비를 지불한 상태고, 또 여정이 끝나면 일정한 팁도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냥 두기로 했다.
ABC코스에 접어들어 오늘 처음으로 다이님 룸에 스토브를 켰다. 스토브는 유료였고, 1인당 100루피씩 이었다. 호주와 영국인팀, 한국인 팀을 합하니 스무명가량되었는데 트레커들에게만 받는건지 네팔리들에게도 받는 건지 알수 없지만 여하튼 100루피씩 받아가지고 비싼 석유값이 충당이 될지 궁금했다. 안그래도 비싼 석유를 말통에 담아 당나귀 등에 지워 시누와까지 나르고, 다시 그 말통을 사람이 짊어지고 이곳까지 날라왔을 걸 생각하니 1인당 100루피가 싸게 느껴졌다. 스토브는 저녁 식사 전에 불을 붙여 식사후 두어시간 켜 주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곤한 몸이지만 추운 방으로 돌아가기 싫은 트레커들은 그 시간동안 인사도 하고 여행정보도 나누고 수다도 떨었다. 영어가 능통해서 영국과 호주에서 온 청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세계평화에 대해, 영국의 이라크 침공의 부당성에 대해, 신자유주의의 미래에 대해 청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니 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게 뒤늦게 후회되었다. 다음 여행을 위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하고 또 헛된 다짐을 했다.
이제 내일이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달할것이다. 이제 긴 여행은 거의 종반으로 접어들었다. 12월 29일 집을 나와 1월 26일 귀가 예정이니 이제 일정이 열흘쯤 남은 셈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얻었을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라 비우러 오는 곳이 네팔이라는데... 나는 그동안 무엇을 버렸는지 모르겠다. 텅빈 머리, 고갈된 열정, 잃어버린 꿈.... 아직모르겠다. 동생에게 떠밀려 시작한 이번 여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신의 나라 - 안나푸르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을 그리워하는 도시 - 페디 지나 포카라까지(12.01.20) (0) | 2012.03.30 |
---|---|
고도는 줄고 삶은 무거워진 길 - 란드룩 지나 오스트렐리안 캠프까지(12.01.19) (0) | 2012.03.28 |
사랑의 설레임이 피어나던 시누아 - 지누단다 지나 뉴브릿지까지(12.01.18) (2) | 2012.03.26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딛고 - 시누와까지(12.01.17) (0) | 2012.03.24 |
걸어서 하늘까지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12.01.16) (0) | 2012.03.23 |
가까워져 비현실이 된 마차푸차레 - 간드룩에서 촘롱까지(12.01.14) (2) | 2012.03.21 |
안나푸르나 품속으로 가는 길 - 나야풀지나 간드룩까지(12.01.13) (0) | 2012.03.19 |
휴식과 도전의 설레임이 교차하는 안나푸르나의 도시 - 포카라(12.01.12) (0) | 2012.03.17 |
산보다 도시가 좋은 파샹과 걷는 길 - 참체지나 베시사하르까지(12.01.11) (0) | 2012.03.16 |
붉은 깃발과 맛있는 김치가 있는 마을 - 카르테 지나 딸까지(12.01.10) (4) | 2012.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