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17년 1월9일 란드룩을 출발하여  담푸스에서 걸음을 멈추고, 1월10일 안나푸르나를 벗어나 멀리 포카라가 내려다보이는 사랑곳에서 짐을 풀었다.

란드룩에서 보낸 반나절은 참 값졌다. 걸음을 시작한뒤 첫 휴식이었고 전체 여정의 절반이 지나는 시점에서 한 호흡을 쉬며 남은 여정을 준비하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예정되었던 일행과의 작별에 이어 작은 분란뒤에 예정에 없던 작별마저 있은 뒤라 분위기 쇄신차원에서라도 뭔가 마디가 필요하기도 했다. 지누단다에서 란드룩까지 이르는 길은 모디콜라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뉴브릿지마을을 만나 모디콜라를 건너고 다시 계곡을 따라 걸으며 서서히 오르막을 올라 강건너 간드룩이  마주보이는 높이에 이르러 자리잡은 마을이었다. 같은 고도의 마을이지만 상행길에 만난 간드룩은 산마을이자 트레커들을 위한 마을같은 느낌이었다면 하행길에 만난 란드룩은 그냥 산록 농촌마을로 다가왔다. 안나푸르나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농촌마을에서 하루를 쉬고 본격적으로 하행길로 접어드는날 우리는뒤돌아 안나푸르나를 바라다보고 등을 돌려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찍었다.

란드룩 이후의 길은 편안했다. 완만했지만 그래도 내리막길을 따라 안나푸르나를 등지고 걷고 또 걸었다. 하산한다기 보다는 수평의 길을 걷는 느낌은 담푸스까지 이어졌다. 상승하는 삶은 이미 지나갔고 그리고 하강하기엔 뭔가 억울하지만 그래도 이제 수평적인 삶마저 끝나간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되는 우리는 우리 삶을 닮은 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가 걷는 한걸음 한걸음마다 안나푸르나는 멀어져가고 그만치 고도가 줄었다. 고도가 즐어드는 만치 초록빛은 늘어가고 우리는 네팔리 농부들이 가꾸어 놓은 이쁜 밭두렁길은 걸었다. 늘 논밭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논밭을 가꾸어 놓은 농부의 삶은 고달프다. 농부로 사는 내가 한국에서 그렇듯 네팔의 농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농부는 수도자이고 농사는 수행인지도 모른다. 금전적 보상이 충분이 주어지지 않지만 피땀을 흘려가며 뭍생명의 먹을 거리를 만들고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니 세상의 모든 농부가 성자가 아니면 누가 성자일 수 있겠는가. 나는 자격있는 트레커로 네팔리 농부가 가꾸어 놓은 아름다운 밭두렁길을 기쁜 마음으로 걸었다.   

두달일정의 이번 여정에서 친구들과의 첫 트래킹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우리는 안나푸르나품을 떠나 포카라로 되돌아간다. 영원히 잊지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일행과의 여정이 하루하루 줄어들자 나의 뇌리에는 지금 이 순간을 지속시킬 묘안이 떠올랐다. 가이드 라마를 통해 얻어들은 정보지만 네팔 산골에 조그마한 학교 하나를 짓는데 3천만원이면 되고, 교사 월급이 1인당 10만원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도반들이 작당하고, 뜻을 같이하는 분들을 모아 힘을 합친다면 네팔에 작고 초라할 망정 학교 하나 정도를 운영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교를 중심으로 친구들이 인연을 엮고 그 학교에서 남은 삶을 살아도 되겠다는 막연한 기대도 생겨났다. 한 평생을 살면서 일정기간 자신의 삶의 한부분이라도 누군가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는 삶이 될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좋은 인연들과 작당하는 재미까지 있으니 더더욱 기쁜 일일 것이다. 현실화하기에는 더 많이 고려해야할 것들이 있겠지만 일단은 내 마음속에 수많은 꿈들중의 하나로 소중히 모셔두기로 했다.

담푸스는 아늑했다. 골목길 가득 친구들의 고함소리가 번지고, 옆집 누렁이 짓는 소리에 엄마가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까지 들릴것 같이 유년의 한때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히 아름답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저녁 무렵 수학여행을 온듯한 수십명의 학생들이 들이닥치지 않았다면 편하고 조용한 잠자리가 되었을터인데 밤새 학생들의 조잘거림과 동네 가득 울리는 개짓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밤의 소란은 아침 해와 함께 사라졌지만 어쩌면 산을 나와 도시가 가까워지는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생기였느지도 모르겠다.

잠을설친 새벽일찍 롯지를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전망대를 올랐다. 아직 공사가 덜된 전망대를 오르자 지나온 안나푸르나 산군이 한눈에 들어왔다. 담푸스전망대에서 바라다 보는 안나푸르나는 푼힐에서 보던 풍경과는 또다른 멋을 보였다. 푼힐에서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가까이 느껴졌던 산과 달리  산에서는 한발짝 멀어졌지만 마을 넘어로 보이는 산은 보다 현실적이었다. 아쉬움을 달래고 돌아온 롯지는 정적이 흘렀다.  밤새 떠들던  학생들은 잠을 자는지 벌써 길을 떠났는지  알 수없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롯지를 나왔다. 담푸스를 벗어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시 오르막길이더니 금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고 한시간여만에 포카라-바글룽 하이웨이를 만났다. 

걸으러 왔다는 사람이 차 못탄지 몇일이나 되었다고 차를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대기하고있던 마이크로버스에 오르자 차는 바글룽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차는 더 오래 타고 싶은 내 마음을 아랑곳없이 이내 사랑곳 입구에 도착했고, 우리를 내려주고는 제 갈 길을 떠나갔다. 노점에서 밀감과 포도를 사들고 라마가 가리키는 길을 접어드니 우리를 맞는 길은 한창 공사중인 찻길로 흙먼지가 앞을 가렸다. 차라도 한대 지나칠 때면 숨을 쉬기 조차 힘들만치 먼지가 날리는 도로를 따라 사랑곳으로 향했다. 포카라를 떠나 트레킹을 시작한 뒤 최악의 길을 만나 힘든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도시와 산의 중간쯤에 있는 네팔리의 삶속을 걷는 경험은 즐거웠다.

 

Lake View Lodge Sarangkot에 짐을 풀고 멀리 내려다 보이는 페와호수와 포카라의 풍경을 만끽하며 네팔여정의 첫 트레킹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제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할 우리 부부와는 달리 곧 여정을 접고 귀국해야하는 친구들은 아쉬움이 많은 것 같았다. 산을 통해 느낀 몸과 다스린 마음은 비로소 도시를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이번 트레킹을 어떻게 느끼고 정리해서 기억의 한켠을 채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번 트레킹을 통해 모두의 얼굴은 더 밝아지고 목소리의 생기가 더 높아졌다. 옥상에 빨래를 걸어 바람을 맞히니 우리는 롱다가 된 빨래와함께 포카라와 페와호수, 그리고 사랑곳의 전망좋은 롯지를 더욱 풍요롭게하는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어둠이 롯지를 삼키니 멀리 포카라의 야경이 선명히 살아났다. 이제 우리는 안나푸르나의 대자연을 떠나 도시가 가까워졌음을  느껴야했다. 아랫배가 살짝 아파왔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