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은 쉬 끝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지만 찾아오는 절기는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5월5일 단오입니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다는 단오는 멀리 마한 시절부터 파종을 끝내고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며 음주가무를 즐기던 풍습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마을 비나리는 단오라고해서 별다른 풍습이 남아있는게 없습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단오날은 돈을 모아서라도 나들이를 가십니다. 그런데 마을분들이 어디 놀러가시게 되면 꼭 울진 바닷가로 나가십니다.
산속마을에 살다보니 항상 바다가 보고싶으신가 봅니다..
가까이에 소백산도 있고, 주왕산도 있고 태백산도 있지만
산은 다 마다하고 몇년전부터 매년 두어번은 놀러갔었을 울진을 고집하십니다.
바다도 싣컷보시고, 무엇보다 산골사람에게는 귀한 진미인 생선회를 드십니다.
저도 두어해 따라나섰지만 관광버스에 오르자마자 술을 권하고 가무(!)를 요구하시는 놀이문화에 결국 적응을 못하고 지금은 가능하면 설설 피하고 맙니다^^*
오늘 아침 나들이에 나서시는 동네분들의 분주한 발걸음에 잠을 깨고
사람의 발길이 더물어져 정적이 감도는 마을에 남아 늦은 농사일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열흘전부터 고향 진해에서 올라와 농사일을 돕고 있는 동생과 고추밭골에 풀을 뽑고는 다시 풀이 나지 못하도록 비닐로 멀칭을 하는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작업중에 동생의 한마디에 오늘 오후 일정을 바꾸었습니다.
'형집에 와서 일만하고 낚시도 같이 한번 못하고 가야되네.'라고 하는 동생 말에
콩밭 멀칭 작업을 뒤로 미루고 마을앞 낙동강에 낚시를 가기로 마을먹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낚시를 한대씩 들고 강으로 나갔습니다.
꺽지낚시를 즐기는 동생의 조언과 도움으로 작년에 이어 평생에 두번째로 꺽지 낚시에 나섰습니다. 꺽지 낚시는 '루어낚시'의 일종으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물과 산과 하늘을 바라다보고 상념에 빠질 수 있는 그런 낚시가 아니었습니다.
끊이없이 낚시를 던지고 줄을 감고, 또 던지고 다시 감고... 그리고 입질이 없으면 강을 따라 장소를 옮겨가며 낚시를 해야되는 부지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낚시였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동생을 따라 꺽지 낚시를 갔다가 스피너라고 하는 낚시 바늘과 가짜미끼가 달려있는 뭉치만 서너개 잃어버리고 꺽지는 한마리도 구경도 못했습니다.
오늘도 대단한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강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래도 왠지 작년과는 다른 예감이 들었습니다. 호기롭게 동생한테 '오늘 내가 꺽지를 먼저 잡을 것 같다' 고 큰소리마저 쳤습니다. 두어개의 스피너를 잃어버리고 서너번 장소를 옮긴 뒤에 낚시를 시작한지 거의 1시간만에 오늘의 첫 꺽지를 건졌습니다. 이 놈은 오늘 낚시의 첫 꺽지이기도 하지만 저 일생의 첫 꺽지이기도 합니다.
다시 30여분 뒤 드디어 동생 낚시대에 대물 한마리가 걸렸습니다.
억지로 줄을 감고 물밖으로 건져 올린 고기는 역시 꺽지지만 아까의 꺽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물이었습니다. 너무 신이나 연신 사진기를 들이대고 오늘 하루 더 이상의 낚시는 필요가 없게 되어 낚시를 접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낚시는 하는 다른 낚시꾼에게 다가가서 괜히 물어보지도 않은 오늘 작항을 자랑하고 대물 꺽지를 바구니에서 건져올려 구경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를 찾아 오늘 잡은 대물 꺽지의 길이를 재어보았습니다.
무려 27.5cm!
동생이 찾아본 바로는 국내 꺽지 낚시 최고 기록이 31.5cm라고 하니 오늘 잡은 꺽지가 얼마나 큰놈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민물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그런 큰 꺽지는 일생에 몇번 잡기가 힘들 정도라니 오늘 하루 농사일을 뒤로 미루고 낚시를 나섰던 보람이 있었습니다.
망중한이라고 바쁜 중에 억지로 만든 오늘 오후의 여유는 또다시 몇달이 지나야 볼 수 있는 동생과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흐르는 물, 파란 하늘, 그리고 산... 그 속에서 동생과 보낸 오늘 하루 오후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저를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