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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은 말이 없습니다.

꽉 다문 입, 싸늘한 눈빛,

가까스레 내민 손을 외면하는 굳은 표정...

그렇게 겨울강은 깊은 침묵속에 세상을 등졌습니다.

멈춰버린 강물을 따라

찬 바람이 쓸고 지나가면

강변의 움추린 갈대들이 으스스 몸을 떱니다.

얼음에 비친 헐벗은 산은 푸른 빛을 잃었고,

지난 여름 강변을 수답게 노닐던 새들의 자취는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겨울 산 넘어 새파란 하늘은 얼음보다 더 차갑고

얼음에 비친 햇살조차 냉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깊어가는 겨울강을 따라

봄의 전령을 찾아 걸었습니다.

바스라지는 얼음사이로 생명의 흔적을 살피고

봄의 기미를 찾아 걷는 겨울 강은 말이 없습니다.

겨울 강을 걸으며 연두빛이 흐드러지는 봄날을 기다리는

비나리마을 주민의 애틋한 마음을

나직히 전했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만치 봄은 또 우리 곁에

한걸음 두걸음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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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부터 15일까지 4박5일간 일본 연수를 다녀왔다.
이번 연수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의 7개리로 꾸려진
청량산비나리권역 주민등 17명이
일본 규슈의 대표적인 농촌마을을 견학하며
마을 공동체 사업을 통해 마을을 활성화한 사례를
밴치마킹하기 위한 '주민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일정과 사전 준비부족으로 충분한 연수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적지않은 배움과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값진 여행이었다.
5일간의 여정을 나름대로 3번에 나누어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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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첫날

5일간의 부재를 대비한 이런저런 정리와
여정을 위한 준비로 새벽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설핏 들자마자 핸드폰 소리가 울리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반,
새벽 4시에 명호에서 출발하기로 되어있는데
위원장님께서는 한잠도 못주무시고
동행할 각 위원님과 관계자분들께 전화를 한 것이다.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얕은 잠을 자다가
3시30분이 되어서야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두어번의 유럽과 후주 여행의 경험때문인지 그리 먼길을 떠나는 기분도 들지 않고
또 긴 일정도 아니어서 전날 간단히 배낭을 꾸려놓았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전날 꾸려 두었던 배낭을 매고
출발지인 명호에 도착해보니 벌써 일행들은 도착해 있었다.
 모두들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급한 인사를 나누고, 5일간의 즐거운 여행을 서로 축원하면서
버스는 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김해공항에서 후쿠오카행 아시아나 항공기는 10시 30분에 이륙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눈길에다가 일본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이른 출발을 재촉했다.
김해 공항을 30여분 남겨두고 청도 휴계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밟고 출국장에 들어서니
드디어 진짜 일본여행을 가긴 가는가보다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콩닥거리고 작은 긴장이 몰려왔다.

개인적인 여행이 아니라 일본 농촌사업을 벤치마킹하기위한
마을주민 연수다 보니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실 명확했다.
마을 사업 추진위원님들간의 유대와 단합의 계기가 되고
그리고 일본의 선진마을 사례를 통해
우리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그래도 이번여행에 거는 나의 개인적인 기대는 없을 수 없었다.
첫 일본여행이기도 하지만 일본에 대한 조금은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2~3년전 와이프의 일본인 친구분들이 우리집에서 3일간 머문적이 있었고
그때나는 직접 그분들을 모시고 안동과 봉화지역을 돌며 안내를 했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떠나며 오사카 방문을 권유했고, 실제 와이프는
오사카 여성영화제에 초대받아 그분들의 집에 수일간 머문적도 있다.
그 이후 메일과 엽서 등을 통해 교류를 한 때문인지
일본이 세상 어떤 나라보다 관심이 가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꼭 그것때문은 아니지만 일본의 문화와 문물을 접하고
낯선 삶 속에서 익숙한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그런 여정이길 기대했다.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이라지만
사실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었다.
김해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겨우 40여분이 될까말까하는 사이
후쿠오카공항에 착륙을 시도했다.
긴 줄을 따라 입국심사를 받고 공항을 나와 후쿠오카 공기를 들이쉬며
바라다본 도시는 낯선 이국이 아니라
너무나 친숙한 풍경이었다.

한국인과 외모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본인들,
차, 건물, 도로 등 어느것 하나 이질적인 것이 없고 친숙했다.
그 친숙하고 다르지 않은 외양속에
또 얼마나 다른 점이 감춰져 있는지 알게 되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나에게
결코 낯선나라가 아니라 친숙하고 또 친절한 이웃으로 남게 되었다.


 김해공항 출국장 풍경.
낯선 나라로 떠나갈 분들의 가벼운 발걸음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 가득하다.

후쿠오카에서 첫 식사를 한 식당이다.
가벼운 소고기 구이와 기무치, 밥과 미소된장국으로 이루어진 식단은
깔끔하고 맛깔스러웠다.
이번 일행중 가장 어린 이웃 욱이 아빠가 폼을 잡고 있다.


첫 식사를 마치고 들런 모모치해안이다.
방조제를 만들고 바다를 메궈 땅을 넓혀나간 자리에
인공으로 모래사장을 만들고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모치 모래사장에서 주운 사랑의 기원을 적은 조개껍질이다.
신년에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에 소원을 적어 바다에 던지는 풍습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랑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하면서 바다로 돌려 보냈다.

첫날 두번째 방문지인 아사히 맥주공장.
공장견학을 마치고 맥주 시음을 할수있는데
일인당 3잔까지 맥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뭐 별다른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장이 인상깊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맥주 석장 얻어마시러 귀한 여행일정을 소비해야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일본의 거리는 겉으로 보이는 깨끗하다는 인상보다 훨씬더
우리와 비교해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의 삶의 태도를 이루는 많은 요소들중에
차와 관련된 것만 한정해서 보고 부러워하거나 비난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인의 운전문화는 우리가 많이 배워야할 것 같았다.
먼저 거리에서 쓰레기를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차가 아무리 많아도 경적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정지선을 지키고 정지했을 때의 충분한 차간거리,
절대로 규정속도를 위반하지 않는 운전습관,
고속도로 규정속도가 시속 80KM라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였다.
일본 고속도로가 나빠서 규정속도가 작은 것도 아니고,
또 고속도록 규정속도가 작아서 일본의경쟁력이 뒤쳐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는
모든 가치를 다 내팽겨치고 오직 경제성장이라는 단일 가치를 향해 질주하는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일행이 4일간 타고 다닌 버스 기사님께
휴계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드렸더니
먹으면서 운전하면 불법이라고 하시면서
승객인 우리들의 양해를 구했다.
그뿐이 아니다.
도로가 갓길에 포크레인이 정지 작업을 하는데
프크레인 기사가 헬멧을 쓰고 작동을 하는 것을 보고
우리 일행은 모두 몰랬다.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라고.
거기다가 3방향에 각 1명씩 3명의 교통통제 요원이 포크레인을 감싸고
차량의 소통을 안내하고 있었다.
일본여행중에 안전과 관련된 그들의 철저한 준비 자세는
혀를 내두를 정도 였다. 참으로 부럽고 또 부러웠다.

구마모토에 도착,최고의 번화가인 '시모도오리(선로드)'를 1시간 정도 돌아봤다.
일본의 대중문화, 특히 청소년 문화를 접하고, 상가의 모습들도 불러볼 수 있었다.
이날은 일본의 공휴일의 하나인 성인의 날이었다고 했다.
거리마다 기모노를 입은 젊은 아가씨와 까만 양복의 청년들이
떼지어 몰려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모두들 올해 스무살이 된 젊은이들이라고 했다.
일본의 성인의 날은 그해 성인이 되는 남녀가 기모노와 양복을 입고
성인식 같은 행사를 치루고 같이 파티도하고 의미있는 시간들도 가지는 그런 날이라고했다.

출국전 딸아이가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음악 CD가 있었다.
"동방신기" 일본어로는 '토호신끼'라고 한다는데
언어도 안되는 낯선 타국에서, 그것도 단체 행동을 해야하는 와중에
CD를 구입하기는 쉬운일이 아닐것 같았다.
연수 이틀째부터는 본격적으로 산골마을을 돌아다니며
견학을 해야하기 때문에 딸아이가 부탁한 음악 CD를 사기에는 이날이
절호의 기회였다. 다른분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일본인의 삶과 문화를 만끽하고 계셨지만
나는 오직 레코드 가게를 찾기위해 온신경을 모았다.
가까스레 레코드 가게를 찾아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지만
돈만있으면 손짓과 표정으로도 충분히 의사를 나누고
물건을 사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모도오리거리를 산책을 마치고 일본에서의 첫날밤을 보낼 숙소인
시로가네호텔에 짐을 풀었다.

일본인의 친절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현지에서 느끼는 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호텔 직원들이
문앞에 나와 있다가 우리를 맞고, 우리 짐을 버스에서 내려
호텔 로비까지 들어다주었다.

침실에 들어가니 차와 간단한 비스킷이 준비되어 있었고,
이는 일본 여행 내내 숙소마다 만날 수 있는 작은 것이지만
낯선여관이 아니라 편안한 내집같은 느낌을 주게되는
소중한 서비스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료칸(온천이 있는 여관)마다 '유까타'라는 전통 옷이 있었다.
온천을 하거나 식사를 할때, 료칸 내에서 마음대로 입고 다닐 수 있는
편한 옷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모두들 우카타를 입고 호텔 로비로 내려와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고 사진을 찍으며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렸다.
이번 여행 일행중에 여성은 딱  두분인데 한분은 봉화군 개발위원인 박여사시고
또 한분은 무리마을 사무장이다. 두분이 우카타를 입고 있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료칸에서 받은 첫 식사다.
일본식 정식이라고 하는 데 먹을 게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푸짐하고 맛깔스런 음식이었다.
남길게 하나도 없는 슬기로운 식단에 매료되어 일본 여행 내내
한번도 음식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다 비웠다.
몇몇분은 일본 음식이 입에 맛지않아 미리 준비해간 고추장을 찾으시거나,
음식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5일 내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호텔 객실은 다다미가 깔린 화실로 2인실이었다.
낡은 듯하면서도 깔끔한 객실은 
한국에서 들렀던 현대적인 모텔에 비해 훨씬더 아늑하고 
잠이 잘 올것같은 그런 방이었다.

호텔 방에 있는 침실내 구닥다리  TV다.
사실 TV뿐 아니라 료칸의 이런저런 물품이나
건물을 살펴보면 어느것 하나 낡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새것에 대한 우리의 집착과는 달리
일본사람들은 낡은 것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한가 보다.
사실 료칸의 등급을 매길때도 얼마나 역사가 깊은 곳인가 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한다. 

일본 여행 첫날의 밤은 깊어가자
몇몇방에서는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파티가 벌어졌다.
하지만 일본에 와서 호텔방에서 소주나 마시고 있는다는 게
나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 호텔을 나섰다.
호텔 입구에는 우리 일행 두명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나와있었지만 마땅히 갈 것을 몰라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가 지내는 호텔은 조금은 외진 구마모토 시의 외곽에 위치한
때문에 사실 호텔 문을 나서도 갈 곳이 없었다.
택시를 불러 시가지로 나서기에는 두려움도 있었고,
또 첫날이다보니 어두컴컴한 호텔 주변 주택가를 산책만 하고 돌아왔다.

호텔 6층에 있는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들뜬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밀린 피곤이 몰려왔다.
새벽부터 움직이다보니 전날 거의 잠을 자지도 못한데다가
항공여행이 주는 긴장감이 피로를 더했는가보았다.

일본 여행 첫날, 잘 보고, 잘 먹고, 온천 잘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누우니 너무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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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농사꾼은 생각이 많다.
몸이 편한만치 마음이 편치 않아서일까?
농사를 계속 지어야 되나, 말아야되나는 생각부터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 보고
새로운 계획들을 세웠다 무너뜨렸다 지붕에 눈쌓이는줄 모르고 겨울밤이 깊어간다.

올 겨울은 늦은 농사갈무리를 하고
마을 사업으로 일본 규슈 연수까지 갖다온뒤,
일본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연수가 아니라 가족여행을 가고싶은 마음에
최소한의 돈으로 갈 수 있는 일본 여행을 꿈꾸며
이런저런 블러그를 떠돌며 일본 여행기를 섭렵했다.
그러다 문득, 네이버 등에서시도하다만 나의 블로그 생각이 났고
방치된 블러그를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블로그를 개설할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더 헤맨 끝에 티스토리로 낙점하고
가입을 위해 초대장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어제부터 시도한 몇번의 초대 신청에도 번번히 거절당하고말았다.
다소 짜증이 나기도 하고,
꼭 그렇게 초대장 제도로 문턱을 높이는 티스토리를 개설해야하는지 회의가 들기 시작할 즈음
갑자기 '티스토리'가 나의 뇌리 깊숙히 낯설지 않은 단어로 기억되어 있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순간, 급히 티스토리 로그인을 시도해본 뒤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우잉~  티스토리 개설해 놓았잖아!!"

초대장 신청한 블로그에 들러 일일이 신청댓글 삭제하려고 하니
다 비밀댓글이라 어느 것이 나의 댓글인지 분간하기도 너무 어렵고 쯥쯥..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동안 뭐했나는 자책마저 들고...
그래도 어쩌냐 이미 엎지러진 물~~

산골농부의 세상읽기에 첫 글을 적으며 다짐해 본다.
이번에 나의 블로그를 절대 흐지부지 방치하지 말아야지,
나의 소중한 새 집을 끝까지 다듬고 꾸미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보물들로 가득 채워놓아야지!!
2010년, 또 한해의 아름다운 나의 삶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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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분노하라

참으라고, 참으면 복이온다고, 그리고 너가 가진 분노의 거의 대부분은 너 자신이 못난까닭에 생겨난 극히 사적인 정서적 장애의 산물이라고 우리는 세뇌되어왔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모든 사회악의 근원인 삼성이라는 재벌이 우리 사회의 모든 부를 독식해 들어가고, 물질적 부를 넘어 우리의 정신세계마저 잠식해 윤리와 가치의 측도마저 그들의 손에 움켜지는 꼴을 보고도 강건너 불구경하듯하고, 법정의가 아니라 검찰마피아집단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이중 삼중의 잣대로 조자룡이 헌칼쓰듯 국민을 향해 마음대로 사법권을 휘두르는 꼴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른다. 

되돌아보면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초등학교시절부터 우리는 복종하는 법만 배웠고, '학교가서 선생님 말씀 잘들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세뇌되어 왔다. 숙제를 안해서, 청소를 못해서, 지각을 해서 그것도 아니면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손바닥을 맞고, 빰을 맞고, 간혹가다간 발길질에 차이면서까지 우리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군대라는 조직속에서 부정과 불의, 그리고 폭력과 야만에 순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길러졌다.

그렇게 공적으로 분노할줄 모르게 길들여진 우리는 분노를 오직 사적인 관계에 국한 해서 폭발시켜왔다. 권위적이고 관료화된 정부를 향해서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동사무소 창구의 말단 직원을 향해 폭언을 하고,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속수무책 당하면서도 미어터지는 지하철 구내에서 가방을 치고 지나가는 어린학생에게 분개한다. 부조리한 세상의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짓눌려 살면서도 내면에 샇여가는 분노를 미쳐 스스로 확인하고 표출하지 못한채 엉뚱한 사적 공간에서 불현듯 터져나오는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맨날 사고를 치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이자 정치가인 스테판 에셀은 세상을 향해 외친다. "분노하라!"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인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프랑스에도 분노할 일이 아직 남아 있는가보네?"라고 중얼거리며! 

필자 스테판 에셀은 레지스탕스활동 과정에서 수립하고 국민적 동의를 획득한 프랑스사회가 추구해나갈 미래상과 가치가 금력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되어 왜곡되고, 국제 정치가 아직 정의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고 있진 않은 현실에 대해 분노할 것을 청년들에게 독려하고 비폭력 봉기에 나설 것을 선동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만 이 책이 200만부이상 팔렸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프랑스는 이 책이 불필요한 사회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분노하라]를 구입한 사람들은 이미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런 부정의에 대한 저항에 나설 것을 동의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프랑스는 대독전쟁이 종결되자 바로 민족반역자를 단호히 처단하고, 레지스탕스활동 성과를 토대로 국가지표를 수립한 나라가 아닌가. 그에 반해 대한민국은 친일반역자에 의해 오히려 독립운동가가 처단되고 오직 그들의 영속적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국가의 정체성이 수립되고 국가의 미래상이 논의되어 온 나라다.  그래서 이 책 [분노하라]는 바로 한국 사회를 위한 책이다.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청년들이 우리사회에 충만한 좌절과 고통, 분노의 진원을 되돌아보고 사적 분노를 넘어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고 정의로운 봉기에 나설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마련하길 빈다.  

이 땅의 청년들은 취업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등록금 하나만은 '선진화'된 대한민국의 대학에 분노해야한다. 이 땅의 교육자는 사회적 낙오자를 양산하고, 인간성마저 파괴하면서도 오직 경쟁제일주의 성적 제일주의로 일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저항해야한다.  어디 그 뿐인가. 이땅엔 왜 그리 분노할 일이 많은지... 소수의 재벌 집안이 국부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세습하는 현실, 국민적 동의없이 국토를 도륙내는 사대강죽이기사업이 버젓이 진행되는 현실, 언론 지식인이 보편적 이익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언론마피아의 조직보호를 위해 부역하는 현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복지 정책 요구가 '거지건성'으로 비하되는 현실... 우리는 모든 부조리에 분노한다.

이 시간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은 전국에서 모인 희망버스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 희망버스는  정당한 분노를 통해 희망을 만든다. 버스가득 분노가 넘치지만 분노버스가 아니라 희망버스인 이유는 그 분노가 정당하고 정의롭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테판에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가 쓴 수십쪽에 불과한 이 글이 뭐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글은 그가 살아온 삶의 진실성에서 우러난  '진실'을 담고 있기때문에 감동을 준다. 이 땅의 대학생들의 손에 이 책 한권씩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을 꿈꿔본다.
 


[YES24] 기로에 선 대한민국을 위한 책,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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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조국 교수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모든 걸 다 갖추고 있으면서 거기다가 '개념'까지 있는 인물이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 하여튼  섹시한 진보 인사의 한명인 조국은 그 뛰어난 상품성으로 인해 앞으로도 한참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의 한마디 한 동작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표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이번 붐은 조국이 낸 [진보집권플랜]과 바로 이 책 [조국,대한민국에 고한다]가 촉발한 듯하지만 그보다는 이명박의 폭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세력화 되고 있지 못한 무능한 진보세력의 현 정치구도에서 대중의 열망이 만들어 낸 측면이 많아보인다. 다시 말해 조국에 대한 인기는 일정정도 대중들이 선호하는 인물, 학벌, 개인적 자질 등등에 기반하고 있는게 사실 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현 정치적 지형이 대안적 진보, 다시말해 '성찰하는 진보' 인사를 요청하고 있기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해 혹은 오해를 가지고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를 읽고나서 솔직히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은연중에 나는 그의 책을 통해 무슨 대단한 신체제에 대한 마스터 플랜이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미래상을 제시하고 그를 구현하기위한 정교한 로드맵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벌써 25년은 된 것 같은데 지금은 까마득히 잊혀졌지만 '사회구성체 논쟁'류의 책이나 당시의 이런저런 정치서적을 통해 늘 단언적이고 명료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교시'를 제공받았던 기억이 난다. 적은 분명하고 적을 물리치고 새롭게 건설될 사회상은 명료했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는 모든 정치 서적이 사회 변혁의 '전략과 전술'을 담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실 그와같은 실천이론의 한계가 진보세력의 답보상태를 지속시키는데 일정정도 기여한 측면이 있고, 여하한 이유에서건 정체된 진보의 이론, 조직, 실천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조국이 말하는 성찰하는 진보의 요구로 나타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때 그 청년들은 세월을 겪고 현실은 훨씬 더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와같은 입장에서 조국은 명료한 시대규정과 체제분석, 그리고 전략 전술을 내어놓지 않고 훨씬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사회의 진보, 우리사회의 진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 진보적 상식 혹은 합리적 상식을 각각의 세력 혹은 분야를 향해 직언한다.

먼저 조국은 MB가 이상사회의 모델로 삼고 있는 두바이와 싱가포르의 허상을 지적함으로써 현정부의 국정철학의 부재 혹은 그 시대적 낙후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어서 한국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을 향해 쓴소리를 내어 놓는다. 그의 발언은 시민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반성을 요청하기도하고 법률가의 눈에 비친 부정의한 법현실을 질타하고 올바른 법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의 한사람으로 나는 그의 자본에 대한 고언에 이 책의 핵심이 놓여있여야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에 대한 규정, 체제모색적 이해없이 현 시대는 극복될 수 없음을 필자 역시 인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부분 역시 충분하지 않은 내용때문에 적잖은 실망을 느꼈다.   

사실 이책은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정리해 놓은 글이 아니다. 좀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단속적으로 언론에 게제한 것을 모아놓은 이 책은 참 쉽게 읽힌다. 하지만 책을 덮고  전체를 아우르는 이해를 도모하기엔 좀 어려움이 따른다. 부분은 다 공감하고 수용하면서도 책을 덮고 그려보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세상의 상은 그렇게 투명하게 다가오질 않기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필자 조국의 다음 저술은, 물론 극단적인 나 개인적 기대에 불과하지만. 좀더 확실한 우리사회의 비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글로 채워졌으면 한다. 
  
물론 독자의 한사람이 갖는 주제넘는 기대와는 별도로 이책은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공이 인정하는 가치 기반을 높이는 작업에 일정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보수와 진보의 대결을 훨씬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야하며, 정정당당한 이념적, 정책적 대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의 만들고 그 수준을 높이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의 보수세력은 합리적 보수세력에 기생하는 극우 파시스트세력을 스스로 떨쳐내가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진보 개혁은 시대정신을 읽고 대중의 열망을 반영하는 진보적 정책, 대안 체제의 발굴에 보다 유능해져야할 것이다.

조국같은 분이 그와같은 상식의 전도사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매개하고, 진보적 가치에 대한 합당한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는  공정한 경쟁을 도모하는 거간꾼으로 나선것에 경의를 표한다. 이 책 한권이 그와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데 얼마만한 효과를 발휘하게 될런지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사회의 정치적 상식의 격을 높이는데에 일정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뭏튼 필자 조국이 건강한 좌파지식인, 한국의  노옴 촘스키로 지속적으로 활동해 나가기를 빈다.  


[YES24] 조국의 상식, 대한민국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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