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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 17일)는 상주 승곡체험마을에서 열린

[커뮤니티와 경제]주관의 경북마을/공동체 네트워크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경북의 마을 공동체 사업단위들 중 대표적인 마을과 협동조합, 마을 기업 등

20여개 단위에서 대표자 분들이 참석을 했는데

봉화에서는 두실마을영농조합법인이 마을기업을 대표해서 참석을 하고

청량산비나리마을 영농조합법인도 권역사업을 대표해서 참석을 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지역재단 유정규이사님의 강연과

각 마을공동체 대표자간의 경북 단위 네트워크의 필요성과 형식 등에 대한

허심탄회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날 논의 결과 [경북 마을 공동체 네트워크]는

올 연말까지 2달단위로 3번 더 진행을 하고 그 성과에 대한 평가를 통해

향후 경북 마을 공동체 네트워크의 존립과 발전 방향에 대한 결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남은 3번의 행사는 각 단위의 현황과 과제를 담은 자체 보고서를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 컨설팅(조언)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하면서 구체적인 상호 협력의 가능성도 도출해 보는 곳으로 했습니다.

다가오는 8월 모임은 영양 대티골에서 장소 등 제공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마을공동체 네트워크의 성격과 목적 등의 불확실성에 대한 의견도 있었고 유사한 모임의 과잉속에서 실효성없는 모임이 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향후 모임들 속에서 차차 구체화해 나가야하지만 일차적으로 커뮤니티와 경제의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지원단위와의 인연이 있는  공동체 단위, 사회적 경제 단위들의 네트워크로 시작을 하지만 나름의 가치 기반을 공유하고 공통의 목적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단위간의 학습과 정책개발, 공통의 사업영역의 개발 등으로 사업 방향을 잡아 간다면 의미있는 네트워크로 작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 바쁜 사람들이지만 시간 아깝지 않고 만나서 반갑고 의미있는 모임으로 [경북 마을-공동체 네트워크]가 발전해 나가는데 모두 힘을 보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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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포럼 발제


주민의 삶이 곧 자원이다

: 봉화 지역문화자원의 산업화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문화산업’이라고 하면 문화생산물을 상품화하는 현대의 산업형태를 말한다. ‘지역문화자원의 산업화’란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을 지역주민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기반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지역문화자원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상품화 혹은 산업화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이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두가지 중요한 문제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취사선택 가능한 ‘지역문화자원’의 외연을 확정하는 문제로 지역사회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의 가치를 발굴하거나 부여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구체적 상품 아이템 개발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두 번째 문제는 ‘산업화’의 성공 여부를 확정짓는 핵심적 측면으로 그 지속가능성과 ‘산업화의 결과가 초래할 지역주민의 변화된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문화 자원의 산업화 과정은 ‘지역 문화자원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하되, 전 과정에서 어떻게 지역주민을 참여시키고 주역주민의 이해에 입각해 사업을 수행할 것인가 하는 과제로 집약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가진 지역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지역‘축제’와 봉화를 대표하는 ‘청량산’, 봉화의 최대 문화 자산인 ‘마을’ 그리고 근래에 붐이 되고 있는 ‘걷기 길’만들기 사업과 봉화군이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있는 ‘봉화정자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자원 산업화 과정을 되짚고 동시에 각각의 단위 사업들과 관련한 단상을 정리해 본다.

축제

봉화군의 은어축제와 송이축제는 상당한 성공사례로 많은 상도 타고 봉화를 상징하는 축제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하지만 외부적 평가와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적잖은 반론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 부정적 입장은 면단위 간 혹은 농업/상업 간의 이해관계 대립에 연원한 측면도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이들 양대 축제가 지역의 핵심 산업인 농업 자원에 기반 하지 않고 있고, 특히 ‘은어축제‘의 경우 지역 주민의 삶과 밀착된 파급력 있는 자원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것 같다.

다시말해 봉화의 대표적 축제가 외형적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지역민의 삶과 괴리되어 지역민의 삶을 고양하지 못하고 지역민의 경제적 이해와도 일정정도 분리된 채 진행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은어축제, 송이축제는 현재의 성공에 머물지 말고 지역민에게 자긍심을 주고,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민밀착형’축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진행해야 할 것같다. 나아가 이들 대표 축제와 병행해서 이를 보완할 보다 주민밀착형인 작은 ‘마을축제들’의 발굴과 육성이 필요하다.

둘러보면, 우리 지역의 특유한 장례문화, 동제, 풋거 먹는 날(머슴의 날), 초롱계 등 마을축제화 할 수 있는 자원이 산재해 있다. 이들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하면 농촌공동체의 행복한 삶, 아름다운 마을살이를 드러내고, 주민의 삶을 고양하는 축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축제의 최종 목적이 주민의 행복한 삶이고, 주민의 행복한 삶이 바로 관광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비나리초롱축제’가 성공가능할까?)

현재까지 봉화군에 여러 걷기길이 생겼고 지금도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길을 만들고 관리하고 홍보하는데 많은 예산이 들어간 것에 비해 가시적 성과는 크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실 걷기가 붐이 되는 트렌드에 맞춰 걷기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미 선점된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의 성공 사례를 모방하는 방식으로는 그 성공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차라리 상품화된 ‘큰길’이 아니라 봉화지역에 맞는 무수한 작은 길을 만드는 사업이 보다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은길’은 예산중심 사업이 아니라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업으로 ‘돈’보다는 ‘공’이 더 들어가야 하는 사업이다. 나아가 걷기 트렌드를 이끄는 가치(반개발주의, 자연과 일치하는 삶, 마을공동체에 대한 그리움 등)에도 더 부합한다.

봉화만의 작은 길 만들기는 지금은 단절된 마을간 실핏줄을 잇는 작업으로 마을간 소통을 통해 침체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하면서 동시에 농촌과 도시를 잇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이 되지 않을까?

봉화를 대표하는 산은 청량산이다. 청량산은 유불선 문화의 보고로 알려져 있고 숱한 명사들이 다녀갔던 산이다. 그러다보니 100여 편의 유산기와 1,000여 편의 시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풍부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청량산에 대한 개발을 주로 하드웨어적인 개발에 머물렀고 그 문화적 내용을 자원화 하는 데 소홀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산행 중심의 단일한 방문객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공원 상가에서 매출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지역 농민들은 더더군다나 불만을 가지거나 무관심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비춰보면 청량산의 문화적 자원을 상품화하여 방문객을 다양화하고 등산객의 체류시간을 늘이기 위한 작업이 좀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유산기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청량산을 불교 성지화 하는 작업 그리고 다양한 성씨의 역사적 명사들이 다녀간 길을 따라 안내문 등을 설치하여 문중 순례지 등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청량산을 단지 등반용 산이 아니라 문화적 명승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청량산 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청량산 박물관은 청량산의 문화적 자원을 집대성하여 ‘상품화’를 위한 기초 자료를 생산해내는 역할과 더불어 청량산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단위로 거듭나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량산 박물관을 관리사무소 부속 기관에서 독립시키고 대폭적으로 인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청량산 박물관이 청량산의 자연자원, 문화자원에 대한 조사, 각종 연구 및 전시, 방문객이 참여 가능한 상설 프로그램,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수행하는 실행기관으로 청량산 방문객이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명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청량산 도립공원”이라는 상품에 마을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들마을이 보고 싶어, 아름다운 윗뒤실이 보고싶어’ 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 날 수 있도록 ‘청량산’에서 차지하는 마을의 위상을 제고해야한다. 사실 도립공원내 주민들은 ‘도립공원 청량산’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일 경우까지 있다. 도립공원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안될 뿐아니라 불편마저 초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이와같은 현실을 타개하기위한 사업들이 시작되고 있다. ‘북곡리 명품마을 사업’과 공원내 ‘농산물 홍보판매장 설치’ 등이 그것이다.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사업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더 나아가 ‘마을’을 청량산이라는 상품에 결합시키기 위한 작업들은 보다 더 심원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봉화 정자 투어

봉화 정자투어는 대표적인 봉화 관광 투어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봉화가 전국 최다의 정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성립가능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정자를 단일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힘들다. 정자들 간 투어도 성공적이지 못하다. 다시생각해보면 정자라는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을 수는 없다. 따라서 봉화의 훌륭한 자산을 관광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정자가 마을살이에서 가지는 의미를 살리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을과, 마을사람의 삶과 결합된 의미의 정자를 생각한다면 부가적인 보조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정자’가 아니라 정자가 있는 ‘마을사람의 삶’이 상품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기에 덧붙여 ‘정자’를 현대화해서 현대인에게도 친밀한 공간으로 되살려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요구된다. 특히 유교와 연관된 유무형의 자원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해석‘이 꼭 필요하다. 유교가 ‘충효교육’이나 ‘예절교육’에서 풀려나 스마트한 유교가 될 때만이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 과자축제 : 닭실 마을과 후토스 동산, 전통한과와 현대식 과자의 기묘한 결합이 가져온 작은 성공!)

마을

봉화의 최대 자산은 전통마을들이다. 이골 저골 아름답지 않은 마을이 없다. 앞으로 봉화의 최대 관광자원이 바로 이 마을들이 될지도 모른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공동체가 해체되면 될수록 전통적 마을 공동체에 대한 향수는 늘어날 것이다. 유럽인에게 네팔이나 티벳여행은 일생 일대의 꿈이다. 이곳은 현대문명에 반한 곳이고, 심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지역이면서 동시에 ‘불행한’ 현대인 자신들과는 달리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봉화의 많은 마을들은 충분히 도시인의 로망에 부합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마을의 상품화는 이제까지 진행되어온 ‘체험마을’ 등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행복한 주민의 삶이 전제되어야만 진정한 행복을 찾는 도시인의 발길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마을이 어떻게 보전되고 어떻게 ‘변화’되어야할지 고민해야한다.

“주민의 삶이 곧 문화자원이고, 문화자원의 산업화의 주체는 지역주민이다.” 충분한 자료를 검토하고 세련된 입론에 입각하지 못했지만, 가능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고, 나름대로 봉화 문화자원을 이용한 관광산업화 과정을 전반적으로 되짚어 보았다. 잘못되고 부족한 생각을 토론과정에서 바로잡고 채울 수 있길 빈다.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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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름이 띠띠미란다. 그 이름에 끌려 기억하게된 띠띠미는 산수유로 유명한 마을이다. 수령이 100년에서 400년에 이르는 산수유 나무들이 밭이며 길이며 할것없이 온 동네안에 사람의 발길이 닫는 곳마다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마을이름은 산수유와는 무관하게 마을의 골짜기가 문수산으로 막혀 있다고 해서 막다른 마을, 두동(斗洞)이라고도 하고, 뒷드물이라고도 하는데 발음하기 좋게 '띠디물', '띠띠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봉화문학회에서 벌써 5회째 띠띠미마을에 산수유가 만개할 때에 맞춰 시낭송회를 가져오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왔지만 올해 처음으로 띠띠미마을을 찾게 되었다. 화창한 봄날 토요일 오후 지인과 아내와 함께 띠띠미 가는 길에 있는 우곡약수터에 들러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잠시나마 길을 헤메다가 산불조심 계도 중인 공무원인듯한 분의 안내를 받아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 있는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 숲이 낯선 방문객을 반긴다.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고 마을의 자존심을 지켜온 '마을숲'이 남아있는 마을을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괜히 경건해진다. 마을숲이 보전되어 온 마을은 그냥 흔한 그런 마을이 아니라 왠지 더 깊은 유래와 더 넉넉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을로 다가온다. 유구한 세월동안 겪어왔을 온갖 세파와 천재지변속에서도 바로 마을숲이 있어 그 마을은 그렇게 지켜지고 이어져왔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을숲을 지나자 밭을 밀어 임시로 닦아 놓은 주차장에 수십대의 차량이 정열해있었고, 벌써 도착한 낯익은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급한 인사를 나누고 마을 길을 따라 산수유 꽃그늘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늦은 한파에 아직은 만개하지 못한 산수유 꽃봉우리가 아쉬웠지만 그래도 산수유마을 띠띠미 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고, 산수유가 만개한 띠띠미의 모습 마저 마음에 그려졌다.  산수유나무 그늘을 찾아 걷는 한무리의 사람들의 스쳐지나기도 하고, 행사 진행요원으로 보이는 공무원들과 마주쳐 인사를 나누기도하면서 이내 시낭송이 있을 마을의 끝자락의 고택에 당도했다. 


고택을 들어서는 길가에는 봉화문학회 회원의 시에  청초 이순섭님이 그린 시화판들이 놓여져 있었고, 고택의 정문에는 공무원들이 손을 맞는 문지기를 서고 있었다. 반가운 인사를 맞으며 들어선 고택마당에는 벌써 모듬북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진런히 놓여진 관람석은 텅비었지만 다행히 마당안밖에 모여든 사람들은 마당 가득놓인 좌석을 채우고도 남을만했다.


하지만 손님의 면면을 둘러보고 행사 프로그램의 구성등을 눈여겨보니 이 행사가 마을의 행사가 되지 못하는구나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마을 청년회회장님이 연세가 65세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냐마는 그래도 마을의 산수유꽃을  맞이하는 행사가 단지 마을의 옛영화를 추억하거나 이런저런 문화 예술 행사를 위한 사라져 가는 풍광을 제공하는 배경으로만 이용되는 것 같기만 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마을 부녀회에서 순두부와 파전을 만들어 팔고, 마을주민 한분이 조금의 농산물을 들고 나와 마을길가에서 팔고있는 모습은 볼 수 이써 그나마 다행이었다. 



식전공연이 끝나고 공식적인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 고택을 나섰다. 작은 문화행사에서마저 늘어놓는 인사말 잔치가 지겹기도했고, 사실 행사 프로그램보다 '띠띠미마을'이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둘러보는 마을은 한국 농촌의 여느 마을에 비해 전통적인 마을의 풍광이 휠씬 더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에 의한 침식과 시대적 풍조에 따른 이농으로 인해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띠띠미 마을은 남루하고 무기력했다.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사라진 마을에는 노인네들의 발길마저 드물었다. 꽹한 바람이 마을길을 휩쓸고 지나가자 여기저기에 펄럭거리는 폐비닐 조각이 마을을 더욱 스산하게 했다.

 


마을을 한바뀌 둘러보고 집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 멋이 살아있는 농촌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농촌에는 불편함과 가난 때문에 사람들이 살지않게되었다. 더 이상 인적 순환이 불가능해 사그라들고 있는 마을에 도시민이 찾아들어 농촌의 향수를 느끼고 즐긴다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년에 하루 이틀있는 이런 류의 행사가 이 마을에는, 아 마을에 사는 주민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사람의 발길이 그리운 마을에 일년에 단 하루라도 외지인의 발길이 부산하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다면 그나마도 무조건 좋은 일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찬바람만 가득찬 꽹한 마을길에 아이들이 몰려다니고, 쓰러져가는 돌담위로 정겨운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나눠먹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과한 욕심을 가진 나같은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어떻게 마을에 새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어디서 마을 재생의 희망이 올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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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고추 수확에 정신이 없는 계절이지만
비나리마을 마을활성화센타 공사는 착착 진행중입니다.
7월말께 공사를 시작한 이래 터파기와 기초공사가 이루어졌고
드디어 몇일전부터 고추밭 가는 길에 내려다보이는 공사현장에는
건물의 지상부 벽체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나리마을 활성화센타는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 7개리가 모여 만든
청량산권역 마을종합개발사업의 핵심사업입니다.


비나리마을활성화센타는 25여억원의 예산으로 1,500여평의 터에
강의동과 숙소동을 합해 약 260여평의 건축물로 이루어집니다.
내년 봄이면 완공될 비나리마을 활성화센타는   
마을과 농업의 가치, 공동체와 생태환경의 소중함을 기본으로하는
새로운 세상의 비젼을 담는 알차고 풍부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농민과 도시민이 만나고,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져사는
새로운 세상의 비젼을 확산시키는 농촌문화의 메카가 될것입니다. 


이제 내년 여름이면 마을활성화센타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마을사업을 운영해야할 것입니다.
바쁜 농사일에 한번도 제대로 마을사업의 운영에 대해
고민해보지도 못하고 있지만 긴긴겨울, 우리 마을의 자원을 총동원해
우리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하고 나아가 도시민을 맞아
마을의 활력을 증진시킬 구상을 차근차근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획력도 마케팅 능력도 없지만, 마을의 모든 자원과
주민 모두의 역량을 모아나간다면
비나리마을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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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베푼 기억이 거의 없다. 세상살이가 제각각인 시대를 탓하며 어느 누구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고 살아가지만,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일까... 참 많이도 세상 신세를 지고 살고 있다. 보답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고마움의 마음도 전하지 않은 채 그냥 주니깐 받는 몰염치에도 불구하고 착하고 너그럽고 마음 넉넉한 분들과의 인연이 늘 이어지니 바로 그분들은 물론이고 하늘에도 감사를 드려야할 것 같다.

어제는 마을 한가운데 공사장에 예취기를 들고 날품팔이를 갔다. 건물과 주차장 등이 들어 설 1,500여평의 밭에 풀을 베는 작업중에 택배사에서 전화가 왔다. 택배가 올만한게 없는데 뭔지 궁금했는데 예취기를 끄고 받아든 택배는 다름아닌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같은 농번기가 되면 일고싶은 책은 한권두권 사 모으는데 별로 읽지는 못한다. 그러다보니 읽어야 될 책들이 밀린 숙제 처럼 계속 쌓여간다.  그래도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겨울 농한기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박스를 뜯고 책을 꺼냈다.  얼마전 국정원의 불법사찰로 고통받았던 박원순 변호사의 [마을이 학교다]와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그리고 구도완의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사실 내게 필요한 책이면서도 또 너무 낯익어 돈을 주고 사기에는 좀 망설여지던 책들이다. 아마 익숙한 것들을 저평가하는 비합리적 습성때문일 것이지만 나는 교훈적이거나  정서적인 내용을 담을 책들을 잘 사지 않게 된다. 아마도 책이 가르키는 데로 살 자신이 없고, 또 책은 풋풋한 삶의 향기보다 뭐 대단한 진리라도 담고 있어야된다는 강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문한 적이 없었지만 내손에 들린 책을 한참들여다 보며 도대체 누가 보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지인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포장 박스를 이리지러 다시 살폈다. 결국 인터넷 서점에서 직접 보낸 책이다보니 주문자 이름이 나와있었다. 책을 선물로 보내주신 분을 확인하고선 고맙고 기쁜 마음 한편으로 부담스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일어났다. 왜 그분은 내게 이런 책들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니 선물이 아니라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비나리 마을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산지 벌써 십수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작목반을 만들고 없애고, 가입하고 탈퇴하고, 팜스태이사업, 녹색체험마을 사업, 정보화마을 사업, 마을종합개발사업도 추진하고 그리고 마을 공부방과 청량산문화연구회 등 이런 저런 임의 단체를 만들거나 가입한 것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마을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마을로 되어가길 그리고 영원히 사람 사는 마을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도한 것들이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다. 내용없이 액션만 큰 셈이다. 사람은 쉬 지쳐가고  성과는 더디 타나는게 마을사업의 이치기도 하고 또 나 자신의 무능력과 불성실 때문이기도 하다. 참 멀리 온것 같지만 되돌아 보면 그자리다.  

책을 보내주신 을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나를 독려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
"힘내세요. 아직 포기할 땐 아닙니다." 
사실 맞는 말이다. 마을은 쉬 변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깊이 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을은 학교다.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을은 오래 익은 술처럼 깊은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보물창고다. 그래서 마을에서 '희망' 만날 수 있다.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그분'께 고마운 마을을 전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기분좋은 선물인 책을 보내주신 그 분은 젊지만 가진 것 별로 없어 보이는  경북의 한 작은 지자체의 말단 공무원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도정에서 늘 가까이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다짐하고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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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에도 일년에 두 세 번은 사람이 붐빌 때가 있습니다.

청량산과 낙동강을 끼고 있고, 낙동강과 나란히 마을 앞을 지나는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 유교문화권이 이어지는 위치한 비나리마을은 여름 휴가철 한 달만은 외지인의 발길이 넘쳐 납니다.


그리고 두 번의 명절, 추석과 설날이 되면 어린 시절을 마을에서 보내고 철들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대구로 부산으로 일자리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출향민들의 귀향발길이 넘쳐납니다. 일년 내내 아이들 울음소리도, 어른들 웃음소리도 드문 마을에 명절 한 때 나마 왁작지걸, 사람 사는 소리와 온기로 넘쳐납니다. 마을 길 여기저기에 승용차들이 서있고, 이웃 할머니의 좁은 마당가에도 반짝이는 승용차가 그 집의 자식들 수 만치 들어서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세대전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 온 마을을 구석구석 쓸고 다니며 고함을 치고, 싸우고, 웃고 그리고 여기저기 저지레를 해 놓습니다.

설날을 기다리는 산골마을 주민들은 풍요로웠던 지난 시절이 되살아나는 그런 신명 넘치는 꿈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산골 마을 비나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바람이 지나가듯 이삼일 그냥 스쳐 지나갈 명절이지만 그날이나마 옛날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으십니다.  집집마다 아홉이나 열씩 자식을 두고 앞마당에 강아지 두어마리와 외양간에 소한마리 그리고 뒷마당에 풀어놓은 닭까지 대여섯마리가 모두 한식구로 살았던 옛날이 그리우신 것입니다. 


<이웃 갈골의 민순기 어르신 부부>같이 늙어가는 산골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옛날을 추억하고 새날을 꿈꾸시는 명절을 코앞에 둔 비나리마을 할머님들은 세상 누구보다 바빠집니다. 설을 쇠고 돌아가는 자식들 차 드렁크에 누렁호박 두어 덩이와 깨끗이 골라 곱게 빻은 고추가루 한 보따리, 그리고 참깨와 콩은 물론 지난 가을 손수 산과 들을 헤매며 캐서 말린 산나물 한 꾸러미까지 차곡차곡 채워주기 위해 지난 한해 가꾸고 다듬은 농산물을 미리 챙깁니다. 기름방에 들러 참기름이며 들기름을 짜고, 고추방앗간에 들러 고추가루를 빻습니다. 마음은 바뿐데 그렇게 준비가 되어가는 만치 설날은 내일 모레로  다가오고, 혹시라도 빠뜨린 것이 없나 헛간을 둘러보고 부엌을 둘러보고 미리 싸둔 보따리를 다시 풀어봅니다.


설날이 눈앞에 다가오면 할머니 마음은 더욱더 바빠져가고 기다림에 지쳐 초조하기 조차 합니다. 아직은 두세 밤은 더 자야 자식이며 손주들이 들이닥칠 것인데 세월은 일년 열두달이 그리도 잘 흘러가다가 왜 명절을 코앞에 두면 이리도 느려터졌는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할머니 마음에도 아랑곳없이 명절분위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동네거리는 여전히 고적하고 찬 바람만 가득한 채 사람 발길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이동슈퍼라도 들어와야 하는데 명절 대목이라도 보러 어디 장터 한 모퉁이에 전을 펼쳤는지 일주일에 두어 번씩 마을을 들르던 이동슈퍼마저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래도 간혹 어디 택배사 트럭이나마 들어오기는 하는데, 명절을 코앞에 둔 택배는 대부분 아쉬운 사연이 묻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귀향을 하지 못할 사정인 자식이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보내는 선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나마도 없으면 자식도 아니겠지만, 그냥 선물 하나 받고 자식얼굴도 못보고 명절을 나기에는 할머니 가슴에 묻힌 그리움이 너무나 큽니다.

마을에는 없어졌지만 산골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이웃이 넘치고 정과 사랑이 넘치던 옛 마을의 모습에 꿈처럼 남아 있습니다. 명절만이 아니라 언제가 비나리마을은 할머니의 뇌리에 남아있는, 이웃의 번잡한 삶이 내삶과 엉켜 두루 즐겁게 살아가던 옛 마을의 영화가 재현되길 마음속 깊이 빌어봅니다.    

올해 비나리마을 설날은 그 어느해보다 풍요롭고 정감넘치는 그런 명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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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음력으로 섣달(12월) 25일로 비나리마을 초롱계가 있는 날입니다.
초롱계는 비나리마을의 전통으로 전기가 없던 시절,
큰일을 치루는 이웃에 초롱불로 부조를 하던 전통으로부터 전래되었습니다.
이웃에 상이나, 혼례가 있으면  집집이 한손에는 두부나 떡을 해 들고, 
또 한손에는 초롱불을 들고 큰일을 치루는 집으로 향했답니다. 
그렇게 이웃을 도와 가며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나마
마음 넉넉하게 살아올 수 있게 했던 아름답고 지혜로운 전통이었습니다.  
이웃의 도움으로 큰일을 치룬 주인은 그뒤 자신의 사정에 맞춰
적당한 금액의 돈을 초롱계 기금으로 내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인 돈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새마을운동으로 전통 공동체 문화가 쑥대밭이 되기전인
1970년대 초까지 이어져오던 초롱계는 그뒤 마을의 쇠락까지 겹쳐
그 흔적만이 남아 동네 상여계와 합쳐져 유지되고 있습니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나서 초롱을 부조하던 전통은 사라지고,
초롱계의 형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동네에 상이 났을 때 상주가 상여꾼에게 주는 노잣돈을 모아
여러가지 마을행사 비용이나 마을 공용 비품을 조달하는데 사용하고,
그러고도 남는 기금은 마을 주민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일정한 이자를 물고 1년단위로 빌려주는 '계'가 '초롱계'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초롱계 날은 그렇게 빌려간 돈을 이자와 함께 모아서,
지난 일년간 동네일로 쓴 금액을 제하고
나머지를 다시 필요한 주민에게 빌려주고,
그 모든 내용을 기록하고 서명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치고,
술과 음식을 나누며 주민 모두가 하루를 즐기는 그런 날입니다. 

비나리마을 초롱계 기금은 이제 몇백만원 남지 않았습니다.
10수년 전만해도 동네에 상이나면  이웃 주민이 상여꾼으로 돕고,
상주가 내어놓은 노잣돈은 초롱계 기금으로 모았습니다.
하지만 마을에 인구가 줄고, 특히 상여를 맬 청장년이 줄어들면서 
초롱계 기금으로 모으던 노잣돈을 상여꾼의 일당으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해가 갈수록 기금이 줄어들어
앞으로 몇년이나 더 초롱계가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초롱계의 형식은 세월따라 바뀌었지만 이웃의 대사에
초롱을 부조하는 아름다운 전통은
'비나리 초롱축제'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입니다.
몇년전 비나리산골미술관 개관식에 맞춰 초롱을 부조하는 초롱행렬을
개관식 참가객과 주민이 함께 재현한 적이 있습니다.
세월따라 알게 모르게 침체되고 생기를 잃은 마을이
수많은 초롱행렬로 아름답게 되살아나는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초롱행렬의 재현은 연년이 이어지지 못하고
예산의 벽에 부딪혀 중단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끊어진 초롱축제가 곧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한 청량산 인근마을과 더불어,
주민과의 연대와 소통에서, 마을과 마을의 연대와 소통을 이루는
축제의 장으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늦어도 내년가을이면 재현될 비나리초롱축제를  
올 한해 내내 조사하고 궁리하여 멋들어진  마을 축제로 준비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소멸되어가든 마을이 비나리초롱축제를 매개로 활력과 신명이 넘치는,
사람사는 마을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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