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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8년전이다. 지역을 좀더 알고 건강도 챙기자는 마음으로 마을길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행없이 우리 부부만 걸었는데 두번째 부터는 이웃들과 같이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지를 했다. 예상밖으로 많은 분들이 걸음에 동참했던 첫길이 북곡리 윗뒤실 길이다.

처음 시작한 마을길 걷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중단되었지만, 2년전 좋은 친구들 덕분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덕분에 어제 다시 8년전 그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난 8년의 세월을 지고 걸었다. 그때 손을 잡고 같이 걸었던 이웃 아이들은 다 자라 마을을 떠났고 40대 중반의 동행들은 오롯이 50대 중반의 중년으로 바뀌었다. 그땐 분명히 지역학교와 교육의 문제가 화두였었는데 어제는 건강이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투병중인 동행이 있어 더 그랬겠지만 어떻게 건강한 삶이 가능한지 그리고 현대 의료의 문제와 대체의학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산길 내내 이어졌다.

걷기는 아침 9시 명호면 북곡리 소재, 폐교된 북곡분교에서 시작했다.  목적지 재산면 남면리에 있는 역시 폐교된 남면분교장까지 10km의 거리를  청량산과 문명산이 만나는 능선을 타고 걷는 길이었다. 북교초등학교를 나와 윗뒤실까지 가파른 마을길을 걸으며 고개를 돌려 멀리 만리산자락의 마을을 건너다 보는 것도 좋았고, 청량산 북쪽 사면의 언덕길을 오르며  햇살속에 번지는 청량산의 자태를 바라다 보는 것도 너무 좋았다. 게곡에는 아직 두터운 얼음이 얼어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봄기운을 느낄수 있어 좋았고, 끝나가는 겨울과 아직 시작하지 못한 봄이 만나는 경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 더욱 좋았다.

윗뒤실 마을 입구 당나무 아래서 간식을 나누며 쉬다가 마을을 가로질러 비포장을 길을 접어들었다.  청량산 자소봉과 장인봉 사이의 하늘다리가 보이고 봄의 기운이 번지는 탓일까, 엷은 안개가 산을 휘감고 역광 속에서 겹겹히 드러나는 청량산의 자태가 너무나 신령했다.  길의 정상부위였던 지명이 '옥새이'에 펼쳐져 있던 빈밭이 인상적이었는데 새로 난 길은 옥새이를 거치지 않고 거리를 줄이며 바로 천애수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천애수를 지나며 뒤돌아 보는 천량산의 산새가 아름다웠는데 남면리 쪽으로 난데 없는 댐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100억원의 돈을 들여 작년 연말에 완공했다는데 댐의 용도는  '다목적 농촌용수 댐'이라고 했다. 완공된지 얼마되지 않아서겠지만 댐은 비어 있었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시야를 압도했다. 하지만 저 정도의 돈으로 산과 계곡을 밀어 만들어진 댐이  얼마나 소용에 닿을지는 알 수 없었다. 자연과 마을을 만나기 위해 걷던 중에 만난 이질적인 풍경은 뒷맛이 무지 썼다. 

이번 마을길 걷기는 아이들이 떠나고 없는 빈 교정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마을의 빈교정에서 끝났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에서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며 끝나가는 겨울의 하루를 만끽했다. 이제 곧 봄이오면 교정에는 다시 풀이 자라고 들꽃이 피어나겠지? 그렇다고 떠나간 아이들은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햇살 가득한 봄 교정에서 좋은 친구들과 다시 한번 마을의 삶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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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걷기가 끝난뒤 쓴맛은  남긴 또 하나의 화두가 있었다. 소위 귀농자와 현지 주민과의 갈등에 관한 것인데 내 스스로 봉화에 농부로 정착한지 20여년을 넘기다보니 양쪽으로 부터 다른 입장의 말을 들어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나는 귀농인과 현지인을 나누는 것 자체를 반대할 뿐아니라, 각각이 상대를 이해하는 부정적인 내용의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농업농촌정책에서 귀농정책으로 특화해 차별적인 지원을 하는 방식의 정책에도 동의하지 않으며, 농업농촌의 문제가 해결될 때 농민의 재생산 문제는 큰 틀에서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사실 귀농인에 대한 차별적 지원이 현지인에게는 박탈감을 주고, 현지인의 귀농인에 대한 시각을 왜곡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지방권력은 자신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가로막기위해 귀농인을 관변화하고 또 하나의 기득권으로 육성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현주민들은 귀농자들이 원재 자신의 몫이어야할 농업 예산을 따 빼아간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귀농자들은 자신이 막닥뜨리는 지방 유지나 토호의 특권적 행태를 현주민 일반의 경우로 확대 해석하게 된다. 대부분 갈등의 경우 각자의 인격이 문제겠지만 제도적 문제는 이와 같은 갈등을 조장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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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0일 봉화마을길걷기. 명준외 28명의 도반, 삼동 황악마을에서 출발 합강을 지나 재산 갈산교까지 10여km를 아침9시에 출발 12시 15분까지 걷고, 종점인 갈산교에서 아침일찍 미리 대어놓은 차를 타고 명호로 이동, 같이 점심을 먹고, 삼동으로 다시 이동하여 헤어짐.

가까운 친구 몇은 따로 조금 일찍 나와 오늘 걸음의 목적지인 갈산교에 차를 세워두고, 출발점인  '삼동막걸리' 술도가였던 삼동 슈퍼마당으로 돌아와 모두 28명의 도반과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삼동 슈퍼를 출발해서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황학마을을 지키는 280여년이 된 당나무를 마주쳤다.  지하여장군 각시가 쓰러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홀로 꽂꽂이 당나무를 지키는 천하대장군에게 인사를 올리고 우리는 마을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농사철이 되어도 사람구경이 쉽지가 않을 것 같은 소박한 농로를 따라 합강으로 방향을 잡았다. 드문드문 길따라 형성된 밭들 조차 여기저기 묵어가는 한국농촌의 현실을 아프게 자각하며 적당한 경사에 멋진 굴곡을 가진 길을 따라 약 2km를 걸었다. 가파른 비포장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이내 강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바 합강! 태백에서 발원해서 소천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재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합강이라 이름을 얻고 이 물은 다시 흘러 명호소수력댐을 이루고, 명호에서 운곡천을 만나 비로서 낙동강이라 불린다. 합강은 철저히 얼어붙어있었고, 물길을 잃고 얼음에 갇혀 해빙을 기다리는 쪽배는 겨울강의 쓸쓸함을 더했다.

얼어붙은 겨울강은 차갑게 침묵했다. 얇은 얼음을 깨며 걷는 빠른 발걸음소리가 강을 따라 번지기 전까지 겨울강은 죽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강의 묵상을 깨는 부산한 발걸음이 휩쓸고 지나가면 차갑고 조용한 바람이 한줄기 마른 갈대를 훑고 지나가며 우리의 흔적을 지웠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두 초막이 있고 집주인은 형제라고 했다. 강을 건너지기전 삼동리쪽이 큰형이고 강건너 재산쪽에 여덟형제가 살고 있는데 그 중의 한명이 강건너 마주한 초막의 주인이란다. 강을 사이에 두고 쪽배로 오고가는 형제의 삶이 궁금했다. 굳이 관에서 농로 포장을 해주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세상의 번잡함을 피해 차라리 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하겠다는 외딴집의 주인 마음이 느껴져 우리의 소란한 발검음이 움츠려들었다. 그분들의 호젖한 평화를 흩뜨리기 싫어 초막을 스쳐지나니 모처럼 사람을 맞는 진돗개가 못내 아쉬워 낯선 사람의 품에 매달렸다. 애써 매달리는 강아지를 뿌리치고 내길을 가는 마음에 애잔함이 스몄다. 외로움을 감내하며 호젓함을 누리며 사는 집주인과 그래도 사람의 훈기가 좋은 개가 함께 사는 일상의 모습이 궁금했다.

꽁꽁 언 강을 만난 일행들은 신나게 구르고, 사진을 찍고 미끄럼을 탔다. 늙은 소년 소녀들은 언강의 유혹에 혼미한 정신으로 한참을 지체한뒤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합강에서 갈산교에 이르는 길은 길은 오래전 사람 살았던 흔적이  강둑으로, 묵은 밭두렁의 흔적으로 그리고 폐가로 남아있었다. 강변은 예전에 밭이거나 길이었지만 지금은 수양버들과 물참나무 등 물을 좋아하는 나무가 빼곡히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우리는 강을 따라 형성된 너들바위를 밟고 나무를 비집고 재산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합강을 지나 4km를 걸으니 인가가 나왔고 사람드문 산막의 주민은 우리일행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고마움과 함께 마음 한켠에 스스로를 살펴야한다는 마음이 일었다. 혹여나 흔적을 남기고 지나온 길을 더럽히지나 않았을까, 다시 걸음을 가다듬었다.

민가를 만난 시점부터 일종의 강변트레킹코스가 가꾸어져있었지만 지금까지 걸은 길과 별반다르지 않게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거의 없었다. 그 길을 따라 4키로를 더 걸어 12시 15분즈음 목적지인 갈산교 도착했다.  겨울 강을 걷다 계획에 없던 갈산 구곡을 만나 호강을 하고 다른 계절에 다시한번 찾아오자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잠시 잊었던 차에 몸을 싣었다. 

움추린 몸을 풀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걷기의 묘미는 참 깊었다. 걸음은 마을은 짖누르는 일상의 걱정들을 내려놓게 하고, 굳은 의식을 깨워 숨었던 상상의 힘을 회복하게 하고, 기억의 귀퉁이에 쳐박혀 잊혀져 가던 소중한 추억에 생명을 준다. 발걸음의 리듬에 따라 백박이 조응하고, 빨라진 맥박에 몸이 반응하니 몸은 뜨겁게 되살아나고 다시 걸음은 더 생기를 얻는다. 

같은 길을 걷는 도반들은 대화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을 잇고 연대한다. 걷기를 좋아할만한 사람은 사귈만한 사람임을 걷는 사람들은 안다. 이름조차 다 기억하지 못한 28명 도반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오늘 하루 모처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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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휘어 감는 낙동강 따라 걷는 길-명호에서 청량산입구까지 

일시 : 2016년 8월 13일 오전 9시~ 12시 30분

코스 : 명호면 낙동강 시발점 공원 - 고계다리-비나리거리-선유교-관창리 입구-북곡리입구-청량산도립공원상업지구

참가자 : 28명


명호면 소재지에서 낙동강은 시작된다. 

정확히 말해 춘양쪽에서 흘러오는 운곡천과 석포 소천을 지나오는 

명호천이 만나 비로서 하천법상 낙동강이라 불리는 지점이 

명호면 소재의 낙동강 시발점 공원이다. 

이날은 바로 낙동강 시발점공원에서 시작하여 청량산도립공원까지

약 10km를 3시간여에 걸쳐 걸었다.



올해는 유난히도 덥다고들 하지만

하필 이날은 올 여름 치고도 더위의 절정을 기록했다.

걷기 시작하면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서쪽으로 산을 끼고 돌아 오전내 그늘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무너지고

코스 곳곳이 때약볕에 노출되어 있었고 

늦게 걸음을 시작한 덕에 시간이 지날 수록 그늘은 줄고

햇살을 더 뜨거워졌다.



팥죽같이 땀을 흘리는 일행들에게

괜히 눈치가 보일 만치 힘겨운 걸음이었다.

하지만 서울서 오셨다는 봉봉조합원 가족인

건이라는 아이의 씩씩한 발걸음은 

지친 어른의 발걺음을 재촉했고 힘든 내색을 감추게 했다.

사실 이날 걸음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추억이 되었다.


이 힘든 계절을 걸었으니 앞으로

맞은 가을의 걷기가 벌써 기다려지고

어떤 난이도의 길도 거뜬히 걸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덤으로 얻었다. 


이날 코스를 굳이 평가하자면 

전반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았고 

군데군데 코스를 알리는 안내문이 없거나 불확실해 불편함이 있었다.

또 사람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까닥에 

인적이 드물어 풀이 너무 자라 길을 개척해야만하는 곳도 한두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잘 관리만되면 걷기에 좋은 길이 될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강을 따라 걸으며 청량산이 주는 풍광을 두눈에 가득 담을 수 있어 좋았고

조금만 일찍 출발하면 오전에 청량산 산그늘이 코스 전반에 드리우는 점도 

여름 트래킹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봉화주민은 물론 아무런 사적 인연이 없는 영주나 인근 도시, 

멀리는 서울에서 오신 분들과도 단지 같은 길을 걷는 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동질감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던 이날 트래킹을 마치고 나니 

벌써 9월의 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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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때는 의무감이 나를 움직였지만
현동역에서 도반들을 보자마자
나는 짧지만 깊은걷기 여행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밭에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맞았을 태양을
강변길을 걸으며 얼굴도 가슴도 활짝 펴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봉화에 산지 20년이 지났고 앞으로 그만치 더살지 모를 일이지만
차를 타고도 와 볼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을 길을 두발로 걷다보니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희미한 삶의 잔상들이
뚜렷한 현실로 되살아나는 환각처럼
작은 풀잎하나 들꽃 하나 조약돌 하나조차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나를 맞이합니다.
차로 달리는 100km보다 두발로 걷는 10km가
몇백곱절 더 생생하고 풍부했습니다.

2016년 7월 9일 임기분교에서 시작해 두음, 돌띠마을을, 배나들마을을 지나

현동역을 향해12명의 도반과 길을 걷고 기록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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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봉화마을길 걷기


코스: 소천초등학교임기분교~현동역 


출발: 2016.7.2(토) 09시 임기분교 


준비물: 도시락, 물.간식 등


봉화마을길걷기 2번째 걷기 모임이 있습니다.

봉화주민은 물론 이웃 도시민도 함께

심산유곡 봉화 오지마을길을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긱하고 

그 속에 깃들어사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는 작은 걷기 모임입니다.


이번에는 낙동강 줄기 따라 분천역에서 인기분교까지 

길을 걷습니다.

낙동강 줄기따라 길과 강이 만나기도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마을길 계곡길을 걷습니다.

총길이는 10km정도의 평탄한 길로 

느린 걸음으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도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원시의 자연과 촌락의 삶을 느끼고 싶으신 

도시민께서도 참여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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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6년 6월 4일 09시_13시

코스 : 외씨버선길 8코스중 춘양역-씨라리골 구간

참가인원 : 28명

이른 봄 강풍 덕택에 봄농번기가 길어진 탓일까,

예년 같으면 한시름 놓았을 계절이지만

아직 봉화 농민들은 바쁘기만 하다.

하지만 약속이기도 하고, 굳이 약속이 아니라고해도

농사일은 끝이없기에

평생 일만하다 죽을 마음이라면 몰라도

먼저 쉬고 보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옛 어르신들이 들으면 '이놈' 정신차리라고 난리가 날 일이지만

적어도 나는 일만하다 죽을 생각이 없다.

그래서 전지가위도 내려놓고

약대도 놓고 토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9시 집결 시간이 다가오자 춘양역전은

한사람 두사람 아는 얼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출발시간이 되고 보니

막 도착하겠다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29분!

한분이 가족만 내려놓고

도착지에서 다시 만나기로하고 볼일을 보러 떠나시는 바람에

28명의 농부가, 봉화사람이 그리고  낯선 도시민이 함께 길을 걸었다.

 

적어도 봉화농부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고개길 넘으면 마을을 열어주는 아름들이 느티나무가 있고,

늙고 뒤틀린 감나무가 대문을 지키는 몇채의 농가가 있다.

언덕길 돌면 산이 있고

비탈진 밭에 고추며 고구마며 호박이 자라는

내가 매일 일구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작업복에 경운기를 타고 만나는 산하와

등산화에 배낭을 매고 만나는 산하는

같지만 결코 같을 수가 없었다.

 

일로만 환산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신비함으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소소한 뭍 자연의 조각들 생명들이

친근한 눈길로 나를 맞이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역시 사람이다.

봉화에 사는 좋은 사람은 다 모였다고 하면

서운할 분들 많겠지만

오늘 하루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이 웃고 떠들고

물과 김밥을 나누던 28명의 동반자들은

모두 같은 깨달음을 구하는 도반이었고

같은 세상을 꿈꾸는 동지들이었다.

그래서 그냥 좋았다.

보다 풍성한 다음 길을 위한 간단한 평가조차도 사족이 되어버릴 만치

그냥 행복한 느낌 그대로 푹 젖어있을 수 있어 좋았다.

 

다음달 첫째 토요일

임기소수력발전소에서 명호까지

낙동강변길을 다시 걷는다.

꿈을 나누고 정을 나누고

무엇보다 느낌을 나눌 많은 분들이 같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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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를 아름답고 따뜻한 삶의 공동체로 이어가기를 꿈꾸는 몇몇 군민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마을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걸으며 꿈을 나누는

 [봉화마을길걷기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모임은 가입 등 어떤 형식도 없으며 

오직 좋은 분들 손잡고 같이 우리 마을을 걷고 싶으신 분이면

누구나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 꼭 반나절만 도시락 싸들고 같이 만납시다.

봉화군민이 아니신 분이 참여하셔도 좋습니다.

 더 격하게 환영합니다^^


이번주 토요일(6월4일) 첫 걷기를 합니다. 


집결지 : 춘양역앞(8시 50분 집결)
코스 : 춘양역~관석~현동 씨라리골 
준비물 : 물과 점심도시락, 간식(노룻재에서 점심식사 예정)

3시간 정도 걸을 예정입니다. 
점심은 나눠먹게 넉넉하게 준비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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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세 협동조합 조합원이 같이하는 
"조합원 가족 산골 마을길 걷기" 행사에
봉봉협동조합 조합원 여러분을 초대드립니다. 
따뜻한 공동체를 꿈꾸는 협동조합인 가족들이  함께
아름다운 낙동강 최상류 분천길을 걸으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생명의 터전을 둘러보고
조합 상호간 연대를 다지는 행사를 갖습니다.

* 누가 : 봉봉협동조합 외 조합원 가족(남녀노소)
* 일시 : 2015년 5월 16일 오전10시~오후 4시
* 어디: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역~양원역까지
* 얼마나 : 편도 약 8km 강변길을 왕복 
* 난이도 : 평탄한 강변길로 왕복 약 4시간 소요
* 준비물 : 음료, 간식, 김밥 등 서로 나누어 먹을 만치  
* 복장 : 간편복에 운동화, 모자 착용
* 기타 : 조합에서 일정한 음료 및 다과 등 먹거리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분천역 출발 -  비동역 - 양원역 도착 중식후 다시 원점인 분천역으로

* 봉봉협동조합 조합원에 한해 행사전후 숙박 혹은 
캠핑 사이트를 조합이 무료로 제공합니다.

연락처 : 010-6345-6234 / 054-673-8651 봉봉협동조합 송성일

* 아래사진은 2014년 지인들과 함께 분천 강변길에서 캠핑하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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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내성천-영주댐 순례를 마치고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상주시 중동면에 있는 '새중동식당'이다. 평범한 외관과 단초로운 메뉴지만 나온 음식에는 시골인심이 듬뿍 담겨있다. 마음씨 좋아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지율스님을 반가이 맞이하는 걸 봐서 두분의 인연이 깊어보였다.


밥을 먹으며 지율스님과 가벼운 말씀을 몇마디 나눈 것에 불과 했지만 식사를 마치자 나도 모르게 스님의 삶에 대해, 스님의 생각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 그분의 삶에 대해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 앙상한 뼈대가 승복위로 들어나고 왠지 조금의 걸음에도 지쳐보이시는 모습을 대할 때는 가슴 깊이에서 울컥 생명가진 모든 것의 어쩔 수 없는 안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냥 맛난 것 드시고, 따뜻한 방에서 편히 지내셔도 좋을 분이 어찌 그리도 힘든 삶을 살으시는지 안스럽기도 하고 감히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불경스러움에 놀래기도 했다.


나중에 아내가 지율스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언론에 비친 지율스님은 엄격하고 강인한 인상으로 다가왔는데, 직접 뵈니 너무 가날프고 여린 분이더라. 그런데 어떻게 그런 분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그렇게 힘든 싸움을 할 수 있었을까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분 자신이 약하고 여리기 때문에 세상의 여리고 약한 뭍 생명들에 대해 무심할 수 없었는가보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상주보 공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강이 있고, 마을이 있고, 두어마리 물새가 한가로히 놀고 있는 그런 강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우리를 맞은 강은 그야말로 공사현장 그자체였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과 인간 마음대로 막고 틀은 물이 고여 썩어가고, 그리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듯, 레미콘차들은 오고가며 계속 콘크리트를 붓고 있었다.
 


모든 자연스러움이 야만이고, 자연은 철저히 정복해야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권력을 쥐고, 대중은 그런 권력자의 생각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마찰을 회피하기위해 모른척 외면함으로써 눈앞의 저런 파괴와 뭍생명에 대한 대량 학살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 자신도 분노만할뿐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혼동스럽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상주보를 뒤로하고 경천대로 향하는 길에 경천교를 건넜다. 운전을 하지 않는 일행들은 차에서 내려 다리를 걸어서 건넜고, 차를 운전하는 분들은 차를 다리 건너 자전거박물관 옆에 주차를 해 놓고 역시 다리에 올라 모래를 퍼담는 포크레인과 질주하는 덤프트럭이 점령하고 있는 낙동강을 내려다봤다. 모래를 싣은 덤프트럭이 눈으로봐서 시속 7~80k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속도로 강둑을 질주했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 바람에 흩날리고 강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의연했지만
고통을 참고 속깊은 울음을 삼키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강은 죽어가는데 경천대를 찾는 상춘객의 발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50대 후반의 남여가 무리지어 와작지껄하게 웃으며 개나리꽃이 만발한 산길을 쓸고 지나갔지만 그들은 고개를 조금만 돌려 보면 보이는 강의 파괴현장에 대해선 무관심해 보였다. 눈 앞의 봄꽃을 즐기면서도 바로 발아래서 일어나고 있는 대대적인 자연파괴행위에 대해선 무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궁금했다.    


경천대에 올라  비록 상처투성이일망정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운 강이 그냥 죽어가도록 바라다보고만 있어야하는 현실이 가슴아팠다. 단지 강의 마지막 모습을 내려다 보고 마음속 깊이 그 풍경을 새기고 또 새겼다. 일행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고 지율스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이날의 순례는 마무리했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에 경천대에 있는 정자를 지났다. 정자는 이름하여 무우정이란다. '걱정이 없다'는 무우정이지만 무우정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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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죽이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지만 아직도 강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김준기 큐레이터와 일행 10여명이 4대강 공사 현장을 순례하기 위해 봉화엘 왔다. 봉화는 4대강 공사 영역은 아니지만 낙동강의 한 시발점으로 본격적인 4대강 공사현장인 영주의 영주댐과 안동, 그리고 예천, 상주로 이어지는 낙동강 상류 4대강 현장으로 나가는 출발점이다. 토요일 예천 회룡포와 안동 화회를 순례한 일행은 밤이 늦은 시간에 봉화 우리집으로 집결했다. 


미처 낮시간에 합류하지 못해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까지 모여든 분들의 면면은 다채로왔다. 4대강 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다가 이번 순례를 통해 그 실상을 알게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대학원 과정 학생부터, 4대강 현장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고 싶었던 젊은 작가분들, 그리고 마음으로 아파했지만 4대강 공사 현장까지 와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교수님들까지 함께했다. 예술을 빼고는 공통분모가 많지 않은 분들이 오직 한분의 적극적인 독려로 4대강 사업 현장의 내성천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고 했다.

 

낙동강 답사를 위해 비나리마을에 모여들었지만, 모처럼 산골마을에서 보내는 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준비해 둔 술이 동이 나자 몇몇분들은 왕복 한시간이 걸리는 봉화읍까지 가서 술을 공수해가며 산골마을 비나리의 밤을 밝히기도 했다.
 


술과 함께 새벽을 맞은 분들이지만 하루 일정을 위해 어김없이 아침 7시에 기상을 하고,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내성천을 향했다. 약속장소인 평은초등학교는 한참을 헤맨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울타리에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영주댐 공사와 관련한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적힌 플랭카드와 영주댐공사 시행처에서 걸어놓은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이쁜 시골학교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내성천을 걸으며 봄날의 하루 낮을 보낼 수 있었으면 더 좋겠지만 학교울타리에 걸린 플랭카드만 보고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봄볕 가득한 평은 초등학교 교정을 10여분 거닐다가 이날 우리 일행을 안내할 분들을 맞았다. 이날 같이할 분들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맞이하고 보니 이날 우리 일행을 이끌어주실 분은 천성산지킴이이신 지율스님아니신가. 지율스님과 같이 오신분들은 비디오작가한분과 사진작가 한분 그리고 지금 조계사내에서 진행중인 '스페이스 모레'를 기획한 박은선 작가였다. 이분들 모두 4대강 사업에 맞서 낙동강을 기록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여 낙동강의 원시적 아름다움과 그 야만적 파괴과정마저 기억시키는 일에 몰두해 오고 계신 분들이었다.


낙동강 가까이 살면서도 늘 함께하지 못해 마음 무거웠는데 막상 이분들과 첫 맞남을 가지자마자 오히려 늘 이렇게 같이 해 온양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것은 강과 함께 해 온 분들이 타인의 삶에 대해 가지는 강물같이 넉넉한 포용력과 사랑 때문인 것만 같았다.

 


일행들과 함께 두터운 양말과 신발을 벗고 운곡천이 가마득히 잊어버린 만들어낸 금빛 모래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발바닥에 와닿는 모래의 촉감이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불러내고, 몸속 깊이 숨어버린 자연과의 교감능력을 되살리는 듯 나의 숨은 가빠지고 몸을 나를듯 가벼워졌다. 차가운 강물로 내려서자 온못에 찌릿하게 전해져 오는 한기가 자연이 내게 전해주는 어떤 메시지 같았다. "정신차려라. 너가 사는 꼴의 전체를 둘러봐라. 너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몸이 자연과 닿는 순간 나는 인간 문명의 편리함 속에서 잃어버린 원시적 생명력, 자연적 삶의 건강성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율스님은 모래와 물의 이야기를 통해 강의 소중함, 그리고 바로 이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전해주셨다. 지율스님의 꾸밈없는 말씀, 군더더기없이 담백한 말씀엔 깉은 깨달음이 묻어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이게 되었다. 모래 한알의 소중함, 물 한방울의 신비함을 공감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이 어떠해야하는지 저절로 터득하게 될 것 같았다. 지율스님의 말씀은 단지 MB의 사대강 죽이기에 반대하는것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의 양식 전반에 대해 되돌아보게하는 울림이 있었다.


모래를 밟고 강물에 발을 적시고, 모래알 한알 한알을 만지고 놀면서 내성천에서 노는 시간은 행복했다. 내성천은 순레의 장소가 아니라 놀이의 장소였다. 그냥 강의 아름다움에 빠져 놀다보면 저절로 그 순간만이라도 생태주의자가 되고 환경운동가가 될 것 같았다. 지율스님이 왜 사람들의 발길을 강으로 모으려고하셨는지 강에 와서 보니 저절로 알것 같았다. 구구절절한 설명도 필요없이 그냥 고즈넉이 흐르는 강을 바라다만 보아도 왜 4대강 사업이 저질러져서는 안될 자연에 대한 가공할 파괴행위이고, 강에 깃들여사는 뭍 생명에 대한 대량학살행위인지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을 위해 강을 나오면서 낯익은 분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천경배님이 아니신가. 성공회신부이신 천경배님은  영주지역에서 오롯이 내성천을 지키기위해 삶을 받쳐오고 계신 분이신데 이전에 블로그 등을 통해 인사만 주고 받다가 이날 처음으로 직접 뵙게되었다. 그것도 내성천에서 모래를 딛고 서서 천경배신부님을 뵙게 되니 이것도 무슨 전조를 드러내는 의미가 있는것만 같았다. 앞으로 자주뵙고 현장에서 같이 할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하면서 작별을 했다.   


내성천에서 발길을 돌려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영주댐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봄의 강은 아름다웠고, 강이 길을 따라 흐르는지, 길이 강을 따라 이어지는지 모를만치 길조차 자연스러운 네성천을 따라 금강마을에 도착했다. 금강마을은 영주댐으로 인해 곧 철거되고 수몰될 마을이라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들이 물속에 잠겨버리다니, 마을에서 삶의 영위해 오던 숱한 사람들의 가슴에 또 얼마만한 상처를 남기고 이 마을이 사라져 갈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마을회관에서 도시에서 할머니를 뵈러 온 아이들이 놀고 있고, 아직 마을 들녘에 경운기 소리가 들리지만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모든것이 다 사라질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보상은 거의 다 끝난것 같았고, 마을은 이미 비어지기 시작했지만 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아직 어디로 가서 살지 마음도 정하고 있질 못하셨다. 도시에 있는 아들집으로 갈지 무몰지 밖에 조성될 이주단지로 들어갈지 아니면 멀리 영주시에 단간방이라도 얻어서 들어가야할지도 마음정하지 못한 할머니의 얼굴에 수심만 가득했다. 


금강마을의 문화재인 장씨 고택을 들어서자 고택을 지키고 살고계신 할머니께서 우리를 맞이 하신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는 게절인데도 한데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고 찬물에 머리를 감고 계셨다. 급히 일행을 맞아 경황없어 하시면서도 꼿꼿하고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장씨고택의 할머니께서도 아직 어디로 가실지 마음을 못정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냥 사람들이 찾아와서 좋다고만 하시고 번거롭게만 해드리고 집을 나서는 우리 손을 잡으시고 그냥 '맨입'에 보내는게 마음아프다시면서 뭐라도 하나 먹고 가라고 붙드신다.    


할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서 나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할머니의 삶을 포함해 이 모든 것이 댐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질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울려오는 포크레인 소리가 마을의 평온을 흔들었지만 그래도 끝내 이 모든 것이 물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의 힘은 우리의 이 소박한 희망들을 무자비하게 꺽어버리겠지...

 

영주댐 공사현장을 둘러보는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아무도 입을 떼지 않고 묵묵히 공사현장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이 참혹한 현장에서 무슨 말인들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는 생각에 모두가 공감하는듯 한참의 침묵이 흐른뒤에 언덕을 내려왔다. 오전의 내성천 순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영주댐 공사현장의 참혹함이 대비되어 오랜동안 나의 뇌리에 남아  나의 비겁함을 일깨우는 죽비소리를 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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