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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만나 사랑과 신뢰를 쌓고

혼인을 결심하고

혼례를 준비하는 긴 과정을 거쳐

오늘 혼례식을 무사히 치러

드디어 성혼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잘 자라준 딸과 사위에게,

딸을 잘 키운 아내에게,

그리고 듬직한 사위를 길러 내신 사돈 내외께

고맙다는 말씀을 올리면서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성 혼 선 언 문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는 경사스러운 날에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주신 양가 친지와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의 사위가 될 신랑 *** 군과

저의 사랑하는 딸 신부 ** 양이 부부가 되려 합니다.

 

결혼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서로를 동반자로 선택해 무한한 사랑으로 보살피며 살아가겠다는

두 사람의 약속입니다.

 

삶은 늘 환희와 고난이 교차하는 미로 속에 있지만

둘이 서로의 등불이 되어 의지하기에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더 큰 행복을 찾아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두 사람의 앞날을 축원해 주시기를

하객 여러분께 당부드립니다.

 

이제 두 사람의 결혼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음을

양가 친지와 하객 여러분 앞에 선언합니다.

 

2023415

 

신부 아버지 ***

 

성혼선언문 낭독에 이어

부부라는 새로운 인생의 길로 첫발을 내딛는

신랑 신부에게

아빠로서 두세 가지 당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먼저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시간은 흘러가 버린 뒤에야 그 소중함이 드러납니다.

청춘은 늘 시간을 허비하기 쉽고

노년은 헛되이 흘려버린 시간을 아쉬워하며 후회로 가득차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 순간순간이 금쪽같은 축복이고

다시 못 올 내 인생의 화양연화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한순간도 미워하지 말고,

매순간 사랑으로 가득 찬 인생을 만들어가기 바랍니다.

 

두 번째,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을 아끼고 가꾸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맺는 인연의 산물입니다.

부모자식의 인연, 친구의 인연, 직장 동료와의 인연

이 모든 것이 나를 이루기에

이들 인연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리고 그 인연을 넓혀

나를 둘러 싼 가장 큰 인연인 세상의 도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아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간과 성장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나무의 크기는 나무를 비켜간 세월의 크기입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은 시간이 저절로 성장시키지 않습니다.

시간은 천사의 앞 얼굴과 악마의 뒷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잘 산 세월은 정답고 아름답고 그립지만

헛되이 보낸 시간은 나를 지치게 하고 남루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

늘 스스로 가꾸고 다듬고 성장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드리면서

아빠의 짧은 당부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이제 사위 ***과 딸 **

온전히 둘의 인생을 위해

힘차게 세상 밖으로 출발하기 바랍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큰 박수로 둘의 행복을 축원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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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노래를 저렇게 다르게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Summertime은 알고보니 조지 거슈인(Geoge Gershwin) 이 1934년 작곡했다고 한다.
그 뒤 시대와 국경을 넘나 들며 수많은 가수들이 이 곳을 노래했다.
내가 알기로도 빌리 홀리데이, 사라본, 엘라 피츠제럴드 등은 물론
한국의 페티김과 자우림 등도 불러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중 가장 대비되는 두 사람을 고르라면 단연 Charlotte Church와 Janis Joplin이다.
샤롯처치는 그냥 숨만 쉬어도 대중의 사랑과 찬사를 넘어 숭배를 받는 사랑스런 여신이다.
인간이 천사 소녀에 덪씌울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이제 그녀도 어른이 되었겠지만
소녀 시절 공연 동영상을 다시봐도 천사의 현현을 느끼게 한다.
제니스 조플린은 대학시절 캠퍼스에서 ‘가장 못생긴 남학생’ 이라고 놀림을 받던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노래를 통해 남성중심적 성윤리와 외모지상주의에 맞서 싸웠지만
그녀의 저항은 노래에 머물지 않았다.
삶 전체를 받친 처절한 저항 끝에 27살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고
대중적 기준에선 못생기고 문란하고 마약중독자에 불과했던 삶을 마감했다.
 
사실 이곡 Summertime의 가사를 보면
가벼운 동화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수도 있지만
그녀의 해석은 달랐던 것 같다.
한 아이에게 주어진 삶의 축복보다는
이후의 삶을 지배할 인생의 가혹한 섭리를  떠올리며 이곡을 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연히 들은 Janis Joplin 의 Summertime에 전율했고 
가슴으로 노래를 토해내는 그녀의 summertime 에 매료되었다.
생명 에너지의 마지막 한방울 마저 노래에 받친 그녀를 나는 추앙하게 되었다.
 
샤롯처치와 Janis Joplin 의 Summertime 을 들으면
하나의 곡에 대한 해석의 범위와 인간 목소리의 한계가 어딜까 궁금해진다.

https://youtu.be/TYxMNrt0p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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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f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017 

 

 [농업·농촌의 길 2022] 새로운 시대, 농업농촌의 길 - 농수축산신문

팬데믹, 탄소중립, 인구감소, 세계패권 다툼 등 새로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업·농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이 마련돼 주목을 받았다. GS&J 인스티튜트, (사)농식

www.aflnews.co.kr

농업농촌의길 2022 심포지엄이 있었네요. 기사를 보고 공부하다가 총 10가지의 주제로 10분의 전문가가 발표한 내용중 관심가는 새 꼭지만 정리해 봅니다.

서진교위원의 식량안보 개념을 곡물자급률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먹거리를 적정가격에 공급될 수 있는 상태로 바꾸어야한다는 주장은 자칫 개념의 전환이 아니라 곡물자급률 방어나 향상을 포기하자는 오해를 줄 수 있다. 기사로만 봐서는 곡물중심에서 과일 등 먹거리 전체 자급율로 식량안보개념을 확대하자는 건지, 적정가격 공급중심으로 수입을 포함한 공급의 안정성중심으로 바꾸자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인 것 같은데 전자는 동의하지만 후자는 동의할 수 없다. 필요하지만 곡물자급율을 수입선 안정화로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태연교수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 개념의 재규정을 제안하는데, 농업의 다원적 기능중 긍정적 효과를 발생하는 부분을 공익적 기능이라하고, 공익적 기능중 농민의 사적이익과 연결된 부분을 뺀 부분을 공공재 공급기능이라 규정하자는 내용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나 공익적 기능을 혼용해서 사용하다 보니 정부 정책의 개입 경계가 모호하고 정책의지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어 경관 환경보전이나 생물다양성 보전, 기후변화대응 기능은 공익적 기능으로 정부의 직접 지원대상으로 삼고, 식량안보나 식품안정성 확보, 농촌삶의 질 개선 등은 사익과 시장이 작동하는 영역으로 정책개입을 자제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문제제기의 신선함이 덪보이지만 워낙 예민한 주제다 보니 보다 섬세하고 예리한 연구가 추가되어야할 것 같다.

박진도 교수는 지역살리기를 위해 수도권과 지방의 이분법을 벗어나서 지역주민의 삶을 최우선으로하는 지역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지역소멸 개념은 지역문제를 인구감소 문제로 치환하는 오류를 담고 있고, 지방도 나름의 위계와 특수성에 기반한 맞춤형정책이 나와야함을 역설하고 있다. 일본의 지방창생정책으로 알려진 거점화와 네트워크화 방향의 지역 활성화정책이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농어촌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지역주민의 행복을 위한 정책을 촉구했다. 특히 관계인구 개념의 부상에 대해서도 지역에 사는 사람의 우선성을 강조했다. 정리하면 지역 정책이 국가 경제성장률 달성등 자본의 요구에 부응할 것이 아니라 주민의 행복 중심으로 전환되어야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여기까지 다 동의하는데 주민 행복중심의 실현 가능한 구체적 정책 수립에서 늘 어려움에 봉착한다. 내가 식견과 지혜가 모자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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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기본소득제로 농업 선진국으로 진입하자!

 

힘든 농업노동도 부족해 농산물가격인상 투쟁을 병행하며, 밭농사에 아스팔트농사까지 해야지만 옳은 농사꾼이라는 슬픈 우스개가 있다. 농업은 무역협상의 희생자로 늘 상대국가에게 던져주는 먹잇감이 되었고, 조금만 정상 가격을 회복할라치면 적폐언론으로부터 물가인상의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 그것도 모자라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 무너지면서 나라님도 하늘도 지켜주지 못하는 우리 농민의 신세를 한탄해 왔다. 우리 농민은 하루하루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는 바람 앞에 선 등불이다.

 

권력자들은 선거철이면 늘 똑같은 공약 제시했다. “농민이 농사만 열심히 지으면 잘 살 수 있는 농촌을 만들겠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별반 무소식! 여전히 농민은 바람 앞에 등불모양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래서 농민의 소원은 늘 한 가지였다. “우리 농민은 부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삶이 유지될 수 있는 안정적인 농산물 가격과 소득구조다.”

 

이번 정부도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전의 적폐권력과 달리 이번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그런데 비책이 나왔다. 농민에게는 절실한 기원이고 그들에겐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던 안정적인 농민의 삶을 실현할 유일하고 근본적인 정책적 대안이 나왔다. 그것은 바로 농민기본소득제.

 

농민기본소득제는 농업의 공익적 기여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해 주는 사회적 보상체계다. 농민만 힘들다고 주어지는 구제정책이 아니다. 농업은 건강한 식량 공급과 생태계 보전은 물론 공동체 유지 등 한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시장경쟁구조에서 응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농민의 소득은 도시근로자의 절반이하수준까지 떨어졌고, 농촌은 귀농지원 등 다양한 인구보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분해가 가속되고 있다. 백약이 무효하다는 이러한 농촌 현실에서 농민기본소득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으로 농민 삶의 지속성을 보장함으로써 농민은 물론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시켜주는 최적의 정책이다.

 

그런데 반농업세력들은 또 예산타령이다. 사실 우리의 요구는 소박하다. 농민기본소득제를 최소한의 수준에서 시작하자는 것이다. 사실 농업예산은 늘 적폐 언론의 먹잇감이었다. 무능력한 농업 관료와 도덕적 해이에 빠진 농민이 작당하여 농업보조금을 착복하여 국고를 탕진한다는 투의 기사는 잊을만하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사실 그동안의 정부 보조 사업은 농촌 현장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구호아래 관변 농업인의 육성에 낭비되곤 했다. 농민기본소득제의 제원은 일차적으로 너무나 종류가 많아 일반 농민은 잘 알지도 못하고, 행정적 관리 비용만해도 엄청난 비효율적인 각종 보조사업을 정리하는 데서 가져올 수 있다. 나아가 OECD평균의 2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종류만 많고 실효성도 없는 각종 직불금을 통합하고, 비현실적이고 경직된 예산 산정으로 거의 매년 집행되지 못하는 농업예산의 10%가 넘는 불용예산만 가져와도 농민 1인당 월30만원 정도의 최소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5조전후의 예산은 충분히 확보가능하다. 나아가 국가예산 증가율에 상응하는 농업예산증가율을 확보하고 전체 국가예산에서 차지하는 농업관련 예산의 비율을 5%선 까지 유지한다면 선진국의 농업직접지불금 수준에 도달하는데 그리 많은 세월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시작하자. 그리고 최소 수준에서 시작하는 농민기본소득제가 몰고 올 우리 농촌과 농민 삶의 변화 추이에 따라 보다 진전된 제도로 나아가면 된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그리고 농민의 합의와 결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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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거실 안으로 들어와 더위를 피하던 우리 초롱이 모습입니다. 

애기도 아닌것이 궁둥이를 밀어도 버팅기며 더위가 가쉰 해거름이나 되어야 거실을 나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런 초롱이가 겨울에 접어들 무렵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배아래 혹이 생겨 점점 커지면서 피도 나곤했었는데 이제는 자유롭게 걷지도 못하고 잘못 움직이다가 한번씩은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물을 계속해서 마시고 고통으로 신음하다가 눈동자의 촛점이 풀어지기도 합니다. 눈빛이 하도 초롱초롱해서 초롱이라 이름지어 불렸던 우리 초롱이가 죽음의 고통에 눈동자가 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기만 너무 가슴아픕니다.

 

수의사 친구에게 물으니 13살 나이면 수술을 해도 치료를 장담할 수 없고, 마취에서 회복도 어렵고 하니 그냥 살아있는 동안 좋아하는 음식이나 싣컷 주라고 합니다. 생명가진 모든 것은 결국 그 생명을 누린 값을 치루기 위해 죽음의 고통을 감내해야한다지만 신음하는 초롱이를 곁에서 지키는 일은 너무 힘듭니다.

초롱이가 너무 고통스러워 보일 때는 집에 있던 진통제를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진통제를 먹은 초롱이는 하루정도 눈빛도 맑아지고 동작도 활발해지다가 다시 고통스런 모습으로 되돌아옮니다. 더이상 어떻게 해줄수 있는 것이 없다는 판단입니다. 단지 우리 초롱이가 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할수있기를 빌 따름입니다. 

초롱이가 우리집 식구로 같이 산 13년 세월이 그리움으로 남기전 초롱이와의 인연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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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정부 수매를 19일 부터 한다고한다. 지지난주부터 고추 보유량 조사를 하라고 해서 수매에 응할 의사가 있는 동네 주민들로부터 신청량은 받아 농협에 제출했다. 그런데 지난주 다시 연락이 와서 배정물량이 많으니 보유량을 부풀리지 말고 실보유량을 신청하면 거의 전량 수매가 될것이라고 재조사를 하라고했다. 사실 고추 정부 수매가 농민이 원하는 양만치 된 적이 없기 때문에 농민들은 수매를 원하는 양에서 몇배로 부풀려 신청을 하는게 관례화되어 있다.

올해는 배정량이 많아 신청량 거의 전량을 수매한다고 하니 실보유량을 알려달라고 해서 조사결과를 농협에 제출했다. 그리고 오늘 농협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수매 물량이 농가별로 배정되었고 수매고추를 담을 푸대가 나왔으니 해당 주민들께 나눠주라고 했다. 그래서 내일 농협에 나갈 계획이었는데 방금 이웃 친구로 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은 7000근을 신청했는데1500여근밖에 배정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배정 기준도 모르겠고 정부가 생색내기나 하는 것에 불과한데 몇푼 더 받자고 정부수매에 응해야하냐는 것이었다. 내일 농협에 항의 방문을 할 건데 농민회도 같이 가자고 한다. 그리고 우선 친구들 뜻을 모아 수매 거부를 하겠단다. 농민회는 농민의 일에 당연히 앞장서야하기에 내일 농협에 같이 나갈 생각인데 "고추 정부 수매 거부"는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정부는 고추가 거의 다 상인손으로 넘어간 뒤에 꼭 정부수매안을 내 놓는다. 농민살리자는 건지, 농민 놀리자는 건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꼭 물량도 생색내기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고추값 하락으로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게 된 농민들이 겨울날일이 걱정인데 차라리 없는게 더 나은 정부는 하는짓 마다 뻘짓이다. 마음같으면 광화문에 고추를 산처럼 쌓아놓고 불이라도 싸지르고 싶다.

농협말 믿고 실보유량을 조사한 이장도 농민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되었다. 이장도 못해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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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군항제는 1963년에 시작되었고 올해가 53회째라고 했다. 62년생인 나와 한살차이 동생인 셈이니 같이 늙어 갈 좋은 도반이다. 진해는 나의 고향이다. 6살에 춘천 오음리에서 외갓집이 있는 진해로 이사를 와서 스무살이 넘어 진해를 떠났고, 진해를 떠난 뒤로도 일년에 서너번부모님을 뵈러 방문해야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진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던 다섯 외삼촌댁과 이모댁을 내집같이 드나들며 외사촌들이랑 같이 자라다시피했고, 진해 시가지는 물론이고 행암이며 속천 그리고 멀리 웅천 바닷가와 장복산 구석구석까지 나의 발길이 닫지 않은 곳이 없도록 돌아나녔다. 참 말할 수 없이 많은 추억이 서려있고, 나의 삶을 따듯하게 유지시켜주는 마르지 않는 온기의 원천이 바로 진해다. 

그중에서도 군항제는 빼어놓을 수 없는 내 어린 시절 추억의 특별한 보고다. 진해에 봄이오면어디론가 꼭 떠나야만 할것 같은 가슴벅찬 설레임, 거부할 수 없는 미지의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 저항할 수 없는 유랑의 유혹에 몸부림쳐야했다. 어쩌면 나는 그냥 벗꽃에 미쳐버렸다고해도 좋을 정신상태에 빠져들었다. 할일없이 벗꽃장을 쏴 다니는 것만으로 뜨거운 가슴을 식혀야 했지만 그것은 유독 나만의 정서는 아니었다. 군항제가 끝나고나면 꼭 한반에 한두명씩 가출해 버린 친구의 소식을 들어야만했기 때문이다. 

53회 군항제 전야제가 있던 날, 부슬부슬내리는 봄비를 가르며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반만에 진해에 도착했다. 그리고 1박1일의 짧은 진해 투어를 시작했다. 해군통제본부를 시작으로 해군사관학교 그리고 진해루, 경화역을 거쳐 여좌천과 내수면 양어장을 두루 둘러보는 초압축일정을 소화했다. 일본에서 귀향한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가마니로 움막을 짓고 살던 동네라고 어릴적 '가마니골'이라고 불렸던 동네의 새롭게 들어선 현대적 까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한잔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저녁 늦게 고향친구를 만나 명물인 '가야밀면'을 한그릇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봉화로 돌려야했다.  

이번 군항제 투어는 사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여행이었다. 어머니의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에 지나간 추억을 반추하고, 나중에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따듯한 어떤 느낌만이라도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강행한 여정이었다. 사실 마음뿐이고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힘들기만 했던 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네째 아들이 같이한 군항제의 기억이 어머니의 뇌리 깊이 스며들길 비는 마음으로 2015년의 3월의 마지막날에 시작하여 4월의 첫날에 마친 진해 군항제 투어의 거친 기록을 남긴다.

20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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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증후군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고향 진해를 가는 대신 이번 설은 두형과 동생 그리고 모친이 봉화를 방문했다. 짧은 1박2일의 명절을 보내고 다들 내려가시고 나니 왠지 마음이 허하다. 할일은 많은데 명절날 밭에 나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책상머리에서 해야될 일들도 영 손에 잡히지 않는다. 덕분에 오늘 하루종일 '네팔병'에 빠져 살았다. 공정무역과 그와 연관된 협동농장 사례를 찾다가 이전에 알았지만 건성으로 지나치던 까페하나를 완전히 통독했다. 네팔 트레킹에서 이주까지 까페 주인이 카트만두에서 십몇년을 살면서 터득한 지혜를 하루동안 섭렵했다. 나중에 따로 인사라도 남겨야할 것이다.
그냥 지금 사는 삶이 고루해지고 미래를 꿈꾸게하는 동력이 소진되었을 때 나는 또 가슴에 스미는 바람을 느낀다. 농사경력 18년... ... 내가 생각해도 참 대견하게 오래 버텄다. 잘한건지 못한건지 모르지만... 요즘은 가끔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한다. 네팔... 그냥 한낮의 짧은 낮꿈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여기에 너무 많아 삶을 무겁게 하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여기에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로 가득찬 나라 네팔로 향하는 그리움... 안나푸르나를 다녀온지 이제 만 3년이 지났고 5년안에 다시 찾겠다던 스스로의 약속도 2년밖에 남지 않았다. 2016년 12월 적어도 2달 많게는 한 일년정도 히말라야의 언덕에서 네팔리와 함께 살아보고 싶다. 꼭 그래야지! 

 
오늘 하루 나에게 네팔의 삶을 꿈꿔보게 해준 아래 까페의 주인님께 감사드린다.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의 베이스캠프 "우리집"
http://cafe.daum.net/kanti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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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대한도 지나고 이제 입춘을 기다리는 계절
아직 절기는 겨울의 한가운데지만
밤새 눈대신 비가 내리고
창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로운 봄을 느끼게 합니다.

한해의 끝마무리도 안된 어수선한 와중에
벌써 봄을 맞이하려고 보니
아직 정리할 것도 많고 
다시 시작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작은 친목회에서부터 농민회활동,
마을사업과 봉봉협동조합 관련 업무들은 물론
개인 농사와 생활계획들 까지
어느것 하나 만만한게 없이 혼란스럽습니다.

다른 일들이 아무리 많고 복잡하다해도
그래도 오늘을 사는 한국인 누구에게나 
가슴을 짓누르는 가장 큰 돌은
'세월호'일 것입니다.

그냥 같이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년초 미루고 미루던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아직도 아이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먼 바다를 보며
가슴에 작은 약속하나를 담고 돌아왔습니다.

"불의와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
가난하지만 의로운 삶, 당당한 삶을 살아야지!"

5월광주가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우리 세대 삶의 지표였다면,
이제 팽목항은 남은 우리 삶을 이끄는 등대가 될 것입니다.
세월호는 정의롭지 못한 권력이 가져온 학살에 다름아니고
우리 사회에 넘치는 물질적 욕망들이 모여 초래한
집단살육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권력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아픔을 외면하다못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만행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지만
세월호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유족과 시민사회의 모습에서 
우리가 나아갈 따뜻한 공동체의 꿈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팽목항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 아름답다고만 말할 수 없는 먼 바다를 보고 차를 세웠습니다.
 
마른 가지에 벗꽃이 달리고,
연두빛 새싹이 눈을 틔울때 즈음
모든 기다림이 끝나고 
모두의 가슴에 따뜻한 봄햇살이 비추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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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없는 자식이 된지 벌써 6개월...

돌아가신뒤 처음 맞는 생신날 당신의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죽음을 맞던 당신의 고통과

그 고통을 넘어 마침내 영원한 평화를 얻으시던 마지막 모습이

문득문득 저의 일상을 깨고,

생명과 죽음, 그리고 가족과 세상살이의 의미를 묻게하였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눈꼽만치도 나누지 못하는

생명의 섭리에 눈물흘리면서도

그래도 저 자신을 포함한 남은 가족들이 모두 행복해야된다는

주관적 당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세상을 떠난 뒤 처음 맞는 생신날

남은 가족 모두는 웃음으로  보냈습니다.

생전에 3번의 전쟁을 겪은 당신과는 달리

자식인 저는 결코 국립묘지가 편안한 마지막 안식처가 될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단지 당신의 뜻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승리'가 아닌 '평화'의 상징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당신의 선택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당신과 맺은 부자의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생전에 저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마침내 내 삶이 끝나는 날

당신의 삶과 죽음이 주었던 의미만치 나의 자식에게도 그런 아버지로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 사랑 잊지 않고 저에게 주어진 삶 성실히 살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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