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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덤으로 얻은 휴가

3일간의 투발루 현지 출장을 마무리하고 도착한 수바공항은 벌써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공항 이미그레이션 직원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고 쉽게 입국 절차를 진행해 주었다. 공항에서 나와 다시 The Grace Road Kitchen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동행했던 일부 민간업체 분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분들은 제일 먼저 난디와 시드니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는 귀국길에 올랐고 나와 다른 한명은 다음날 그리고 나머지는 2~3일 더 피지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었다. 떠날 분은 떠나고 아직 업무가 남은 6명만 노보텔 수바 라미 베이에 짐을 풀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투발루에서 진행된 협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지친 몸과 마음에 엄습했다. 편안한 마음에 호텔 풀장에서 몸을 적시고 밀린 빨래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67일 수바를 떠나기 전 반나절의 여유를 누리기 위해 부지런히 수바 시내를 돌아다닐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첫 목적지로 수바박물관을 선택했다. 박물관을 이루는 정원과 열대 정원수들은 화려했지만 박물관 전시물들은 비교적 소박했다. 그렇지만 시간 내어 방문할 가치는 충분해 수바 여행객이라며 적어도 빼먹지 말고 꼭 방문해야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어딘가 익숙한 차림의 일군의 사람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고, 물어보니 한국 대사 일행이었다.

박물관이 최근 보수 뒤 재개장해서 대사의 축하 방문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대에 절묘하게 우리가 조우하게 된 셈이었다. 대사 일행의 관람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가 별도의 공간에서 투발루 사업의 진행사항을 공유하고 향후 진행될 착공식에 초청을 드렸다. 대사게서 흔쾌히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전체 사업과정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결국 비행기 결항으로 일정이 늘어나면서 일정을 잡을 수 없었던 핵심적인 협의 상대였던 투발루 수산통상부장관과 피지한국대사를 모두 만나 협의 성과를 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세상사가 잠 오묘했다.

대사와 작별뒤 피지 대통령궁과 대법원 등 시내 주요 명소를 주유하고 중심 쇼핑가를 돌아다녔다. 피지 고유 의상인 술루(남자치마)와 하와이안 셔츠를 사서 입고 피지 사람이 다 된양 즐거운 오후시간을 보내며 출장의 긴장을 다 날려 버렸다. 하지만 수바의 날씨는 도착날부터 떠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비가 내렸다. 어쩌면 그래서 더위가 덜해 돌아다니기엔 좋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바 시내 투어에 정신이 없다가 호텔로 돌아와 급히 짐을 싸고 Nausori공항을 향해 가는 길은 퇴근시간 체증으로 모두를 초조하게 했다. 겨우 체크인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하고 같이 했던 동료들과 작별하고 우리 일행 두명은 난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난디에 도착하니 저녁늦은 시간이라 급히 난디공항에서 멀지않은 Nalagi Hotel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역시 비가 내리는 옥상에서 칵테일을 한잔 하며 피지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68일 새벽 6시에 조식을 하고 7시에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타니, 우리가 탄 비행기는 정확히 9시 20분에 시드니를 향해 이륙했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서 전에 묵었던 Central Studio Sydney Hotel 로 가는 길에 작은 식물원 같은 가족 레스토랑인 The Grounds of Alexandria에 들러 버거로 점심을 대신했다. 다음날 새벽에 인천행 비행기가 있으니 이날 오후가 자유시간으로 주어졌고 우리는 이 시간을 최대한 만끽하기 위해 서둘렀다. 사실 조금은 피곤에 지쳐 그냥 호텔에서 쉴까하는 선택지를 두고 한참 고민하기도 했지만 과감히 박차고 호텔 체크인을 하자 마자 바로 시드니의 거리로 나섰다.

말로만 듣고 유투브에서만 보던 시드니 트램을 타고 Circular Quay에 도착, 바로 패리를 타고 Manly Wharf까지 달리며 나는 시드니항의 바람을 맞고, 바다향기에 취해 멀리 아름다운 도시 시드니에 빠져들었다. 나도 모르게 옆에 아내와 딸이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anly Wharf에 내려 Manly Art Gallery & Museum을 방문하고, 다시 Manly Beach까지 걸어 젊은이들이 서핑을 하는 해변에서 모레를 밟으며 멀리 남태평양의 수평선을 바라다보았다. 가까이 만리비치가 보이는 Starbucks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패리를 타러 돌아가는 길에 Coles Manly Corso라는 수퍼에 들러 이러저런 선물용 잡동사니를 쇼핑했다.

이번 시드니 방문에서 인상깊었던 한 장면으로  Manly로 가는 패리에 휘날리던  LGBT깃발과 그 너머 하버브릿지에 걸린 원주민 깃발이 호주 국기와 나란히 걸린 모습을 기록에 남기고 싶다. 사실 Aborgine이라는 호주 원주민은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보다 훨씬 가혹한 인종말살 정책의 대상이었다. 19세기까진 거의 말살 정책의 대상이 되다가 20세기 들어와 전쟁 등 필요성에 의해  통합정책이 펼쳐지고 원주민 어린이 10만명 이상이 강제로 탈취되어 백인 가정에 강제입양되어 백인 종교와 문화를 강제주입하는 야만적 역사가  진행되었다. 그 과오를 외면하던 호주정부는 21세기 들어와 겨우 잘못을 시인하고 일부 보상을 실시했다. 그러다보니 이웃 유질랜드 원주민은 인구의 약 9%가량을 차지하지만 호주원주민의 고작 3.3%에 머물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성적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보호 그리고 소수민족에 대한 동등한 대우를  표방하게 된것은 상징적인 역사적 진전이 아닐 수 없다.  

Circular Quay로 돌아가는 배는 고속 패리를 선택했지만 속도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았고,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라 멋진 노을에 젖어들 수 있어 좋았다. 항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여객선터미널을 중심으로 시드니 항 일대 전체가 “2023 VIVID SYDNEY”라는 빛의 축제가 진행되고 있어 그야말로 축제의 중심으로 우리는 빨려즐어갔다. 라멘집에 들러 저녁을 먹고 오페라하우스 앞에 있는 Opera Bar에 들러 축제를 즐기는 인파에 묻혀 맥주를 한잔 하는 것으로 시드니의 밤을, 열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69일 새벽 5시에 호텔을 나와 시드니공항에 도착,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10여시간의 비행동안 두편의 영화를 보고 지난 출장길을 회상하고 정리했다. 걱정 았던 출장이 꿈같은 추억을 남기고 끝났다.

 

6. 투발루 출장이 남긴 3가지 기억

화폐단위가 510이 아니고 7달러짜리라니??? 인구 90만의 작은 나라 피지가 유독 럭비에서만은 세계 정상인데 2016년 리오에 이어 2020년 도쿄올림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기념해 발행한 화폐가 있다. 7은 행운의 7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7명이 뛰는 7인 럭비에서 금메달을 딴 걸 기념해서 7달러가 되었다고한다. 그 귀한 피지7달러 화폐를 기념품으로 선물 받았고 귀국후에도 많은 분들에게 선물로 나눠줄 수 있었다.

피지 수바에서 투발루 푸나후티 공항을 들어갈 때는 전 산출력된 항공권을 받았는데 다시 나올 때는 수기로 작성된 항공권을 받았다. 평생 처음 받아본 수기 항공권이다. 업무차 만난 투발루 공직자에게 나의 명함을 드리고 나서 기다렸지만 자기들은 명함이 없다며 주지 않았다. 들어보니 인구 만명인 투발루에는 인쇄 기계가 없어 명함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투발루 푸나푸티 라군호텔에 머물 때 하루는 오후 정부 협의를 끝내고 들어와 덥고 피곤한 탓에 잠시 침대에 누워있는데 살포시 호텔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나더니 눈을 떠니 10살이 안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보다 더 놀래 후닥닥 도망가는 아이를 따라 나갔다가 잡지는 않고 호텔 로비에 이야기만 해 주었다. 야간에 3명의 가드가 호텔을 경비한다고 하더니 대낮에도 호텔에 좀도둑이 들었다.

 

7.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이번 일정을 함께 한 진용은 참 다양한 분으로 구성되었다. 해수부를 중심으로 농어촌공사가 전체 실무를 주도하고 원양산업협회, 해외수산협력센타, 연안항만() 15분이 같이 했다. 건축, 해양토목, 전기, 기계 전문가 등 20대 청년부터 60대 장년 까지, 정부와 준정부기관 구성원에서 민간인까지, 토목에서 통역까지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어떤 마찰이나 불협화음 없이 함께 돌보며 즐겁게 일정을 수행한 결과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투발루 정부와 공식협의가 있던 날이 나의 61번째 생일이었고, 협의를 마친 저녁 만찬 자리에서 생일서프라이즈를 준비해 준 직원들 덕분에 투발루 수산통상부 Kitiona Tausi 장관부부와 차관, Sam Finikaso 수산청장이 함께 불러주는 투발루 축가를 듣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고 고조된 분위기에 힘입어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하고 우호적인 의사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

아름다운 섬나라 투발루 출장길은 신비로운 라군으로 이루어진 남태평양 섬나라를 구경하는 행복한 경험을 얻고, 피지와 시드니에서도 다시 누리기 힘든 경험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과정에서 전체 실무를 이끈 농어촌공사 직원의 헌신과 열정에 탐복 했고, 전체 일정에서 업무 균형을 잡아주고 우호적인 내부 분위기를 이끌어준 해수부의 역할에 감사했다. 출장길에 같이 오르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업무 지원한 직원들의 노고도 잊을 수가 없다. 기대이상의 성과와 더불어 참 값지고 고마운 출장길이었다. 올해 10월 성대한 착공식이자 투발루 국민축제를 시작으로 큰 성과 있는 사업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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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발루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투발루를 향해, 중간 기착지인 피지로 들어가는 날 아침, 호텔 인근의 거리식당에서 버거로 아침을 때웠다. 여행객들이나 출근길 손님이 주요 고객인 듯 아침부터 손님이 많았는데, 반갑게도 가게는 젊은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가볍게 아침을 해결하고 남는 오전 시간에 "로열 보태닉 가든"을 산책하고 조금 일찍 시드니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체크인을 하고 Airside에 들어서 점심을 해결했다. 시간이 남아 면세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는데 전광판에는 오직 우리 비행기만 보딩 시간이 뜨지 않았다. 피지항공 부스에 들러 보딩 지연에 따른 30달러의 보상 쿠폰까지 받아 스넥과 음료를 마시고 놀다가 오후 시간을 다 보내 뒤에야 겨우 피지의 난디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난디행 피지항공은 편안했고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일정을 챙기다 보니 4시간이 훌쩍 지나 난디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난디에서 바로 수바행 비행기를 타야지 다음날 아침 투발루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데 이미 수바행 비행편의 출발 시간을 넘겨버린 것이다. 항공사측과 지루한 공방 끝에 난디에서 자고 새벽 비행기로 수바로 이동, 투발루행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덕분에 우리 일행 등 2~30명의 승객은 난디공항에서 버스로 20여분을 달려 "Double Tree Resort"라는 고급 리조트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짐을 풀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리조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하는 것도 이국적이었고, 리조트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불라라고 외치며 환대해 주던 이벤트도 인상적이었다. 피곤한 몸이지만 나도 모르게 같이 활짝 웃으며 불라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고급리조트에서 자정넘어 저녁을 먹고 새벽 430분에 다시 공항을 향해야하는 짧은 일정이 불만스러웠지만 어쩔수 없었다. 혼자 자기에 그리고 고작 3시간만 눈을 붙이고 나오기에는 너무 아쉬운 리조트였다. 새벽에 난디를 출발한 72인승 프로펠라 비행기는 걱정과는 달리 우리를 편안히 수바에 내려 놓았다. 수바 공항에는 우리보다 몇일 앞서 출장와 끼리바시 ODA사업관련 업무를 미리 보고 피지에 도착한 5명의 일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강한 모습에 서로 반가운 마음을 나누기도 잠간 투발루행 비행기가 결항이라는 소식이 전해왔다. 연료 수급에 문제가 생겨 투발루행 비행기가 결항이 되었고, 다음 비행기는 3일뒤에나 있으니 표를 바꾸고 미리 체크인을 하면 그 비행편은 꼭 태워주겠다는 것이었다. 선택지가 없으니 수용할 수 밖에 없었고 우리는 수바에서 억지로 3일을 머물게 되었다.

공항에서 숙소인 노보텔 수바 라미 베이를 향해 가는 길에 한국인이 하는 식당(The Grace Road Kitchen)에서 점심을 먹고, 유심을 갈고 아래층에 있는 마트에서 간단한 음료 등을 샀다. 일행이 늘어나다 보니 유심을 가는 데만도 시간이 한참을 지체하고 숙소에 들러 양말 등 간단한 빨레를 하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저녁은 호텔에서 10분여 거리에 있는 한식당인 Korea House Restaurant 에서 성대히 가졌다.

62일 금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나머지 일행들은 피지 현지 업체와 미팅이 잡혀 다 나가고 우리 일행 4명만 피지 현지 명예수산관을 만나 한국선원묘지를 참배하고, 한인회 회장단을 만나 피지 한인사회의 소식과 한국정부에 바라는 기대 등에 대해 청취하고, 오후에는 한국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님이 태도국회의가 있는 부산으로 출장을 떠나 있어 참사관을 만나 교민사회의 고민을 공유하고 끼리바시와 투발루 ODA사업 관련한 협력과 지원을 요청했다. 수바에 있는 대사관은 피지를 포함한 5개의 남태평양 소국의 통합 대사관 역할을 하고 있어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수바거리에 K-POP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도 보이고, 대사관 건물에는 한국영화제를 알리는 포스트를 볼 수 있는 듯 다양한 활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 시간에 호텔 로비에서 호텔을 지키는 경비원과 안내인 등이 공식 공연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며 노래를 불렀다. 맥주 한잔에 흥이 올라 같이 박수를 치며 흥얼대면서 수바의 밤을 만끽했다. 행복했다.

63일 토요일 새벽 일찍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서니 7시였다. Suba Nausori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보딩을 기다리는 동안 지난번 출장 때 투발루 정부와 협상을 이끌었던 직원이 갑자기 투발루인으로 보이는 분에게 달려갔다. 둘은 끌어 안고 반갑게 서로 이사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다음아닌 이번 출장시 협의할 업무 책임자이신 Kitiona Tausi 투발루 수산통산부장관님이셨다. 부산에서 열린 태평양도서국 포럼 참석으로 이번 출장시 면담을 잡을 수 없었는데 우리가 수바에서 비행기 결항으로 일정이 늘어지면서 부산 출장으로 마치고 귀국하던 장관을 투발루로 들어가는 수바 공항에서 조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사는 참 알 수 없다. 새옹지마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비행기 결항덕분에 갑자기 협상의 격이 높아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4. 모든 것이 늘 상상이상인 투발루

투발루 수산해양부 장관 부부와 차관과 함께 72인승 프로펠라 비행기를 3시간 30분 달려 드디어 투발루 상공에 도착했다. 산호로 이루어진 환으로 이루어진 육지와 그 육지로 둘러쌓인 라군 그리고 육지 밖의 남태평양이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풍광이 시야 가득 다가왔다. 사진에서만 보던 풍경을 직접 바라다 보는 감동을 가득 안고 비행기는 푸나푸티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비행기를 내려 투발루 땅을 밟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나를 감쌌다. 순간 견디기 힘든 더위를 느꼈지만 이내 편안해지며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소문대로 공항에 연접한 휴게소 같은 곳에는 막 도착한 우리 일행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주민들이 먼저 우리를 반겼다. 세상과 단절된 무료한 작은 섬나라에서 외부의 물문과 소식을 싣고 오는 비행기는 확실한 구경거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를 찍는 사람들을 우리도 같이 사진을 찍으며 함박웃음 지어 보이고 손을 흔들었다.

공항에 들어서자 마자 영국기술자문 Michael Batty 씨가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인사를 나누고 공항 인근의 통신사에 들어가 유심을 교환했는데 16명의 유심교환에 족히 한시간을 넘게 시간이 지체되었다. 어렵게 유심을 갈고 걸어서 바로 인근의 푸나푸티 라군 호텔에 짐을 풀었다. 짐을 풀자마자 한국에서 공수해온 햇반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가볍게 투발루 도착 첫날의 과업을 수행했다. 각 그룹별로 흩어져 그룹별 과업수행을 위한 현지 방문을 수행하고 우리나라가 몇 년 전에 지원했지만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제빙기와 훈연기가 있는 수산청 건물옆 수산물 가공공장을 방문했다. 직원이 없어 설비실을 들어갈 수 없어 한참을 사람을 찾고 난리를 치룬 뒤에 해맑은 청년의 도움으로 기계에 접근이 가능했고, 동행한 기술자가 문제해결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사이 나는 해변을 걷고 태양을 보고 라군을 누렸다. 기술자가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은 뒤 우리 일행은 같이 차를 타0여분 달려고우리가 있는 투발루에서 제일 큰 섬인 퐁가페일의 북단까지 갔다가 돌아오면서 남태평양과 라군에 물드는 석양을 황홀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64일은 일요일이다 보니 정부 관계자와 실무 협의를 진행할 수 없어 제빙기 기술자는 어제 하던 과업을 계속 수행했고, 나머지 인원은 영국인 기술고문과 함께 사업이 시행될 각 사이트와 하역을 위한 부두, 하역장 등을 두루 살펴봤다. 향후 500명 이상의 하객을 모시고 착공식을 진행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고, 투발루의 전반적인 삶의 여건, 상품, 물류 등 행사나 이후 공사 진행과정에서 필요한 물적 인적 자원의 공급과 보관 등의 조건도 알아보고 이후 진행될 공사의 인부 숙소문제까지 전반적인 상황을 기술고문의 안내로 두루 둘러볼 수 있었다. 이날 제일 큰 성과는 확실한 행사장을 발견한 것이다. 최대 1000명은 유치 가능할 정도의 실내 공간이 정부종합 청사 인근에 지어져 있었다. 이후 협의 과정에서 확인해봐야겠지만 일단 공항 등 실외에서 행사를 하게 되면 천막 등 비 대비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야하는 걸 피할 수 있어 무척 다행스러웠다.

일요일이라고 레스토랑도 운영하지 않는 호텔이지만 리셉션에 근무자가 있고, 맥주 등 음료는 판매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우리는 로비와 접한 식당공간에서 컵라면과 햇반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리셉션 근무자와 친숙해 지면서 투발루에 대해 좀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일고 우선은 간단한 투발루어 인사말에 대해서 묻고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리셉션 근무하시는 분을 통해 배운 인사말은 쉽게 입에 익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찬자리에서 마누이아를 외치고 투발루를 떠나면서 호텔과 공항에서 토파를 외칠 수 있었다. [ 파카탈로파 아투=안녕하십니까(간단하게 TALOPA = Hello), 마누이카=행운을 빈다=건배,   FAKAFETAI = Thank you, AU KO SEE = Sorry, TOFA = Farewell ]

하루가 저물 무렵 몇몇 일행과 함께 바다로 나가 해지는 투발루 라군을 바라다 보았다. 내 생애 참 많은 석양을 보았지만 40년전 해상기지 지원을 마치고 해지는 바다를 바라다보며 진해로 돌아오며 보았던 석양과 몇 년전 지금은 돌아가신 장모님을 모시고 우리식구 다 같이 갈치낚시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해지는 목포 앞바다를 가로질러 갈치 잡이를 나갈 때 보았던 석양과 함께 평생 기억에서 지우지 못할 3번째 석양을 투발루에서 맞이할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10시부터 투발루 정부 측과 실무 협의가 있어 각 팀별로 아침부터 서둘기 시작했다. 사업에 대해 브리핑하기로 한 팀은 밤새 프로젝트 파일을 수정하고 브리핑 문안을 가다듬고 또 연습을 한다고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다. 호텔에서 청사까지 5분 정도 달려 도착하니 투발루 정부측 인사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이내 수산청장을 중심으로 수산통상부 차관이 참석한 협의를 진행할 수 있었는데 시간은 예상외로 길어졌다. 중간에 다과가 나오고 브레이크 타임도 가지며 점심시간을 넘기며 협의가 이어졌다. 전체적으로 우리 쪽 준비는 깔끔해서 진행에 무리가 없었고, 투발루 측도 몇몇 추가적인 요구를 제안하기는 했지만 비용 등 여러 가지 불가능한 조건들을 설명하면 이내 수긍해 주었지만 워낙 세세한 사안들이 많다보니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특이 사항은 차관과 수산청장은 이전에 협의된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 착공식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 협의의 중요 사안중의 하나는 10월 예정된 현지 착공식 행사의 성격과 규모 등에 대한 완전한 합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의를 통해 그 사안에 대한 인식차이를 좁히고 사업 수행을 위한 부두사용, 공사를 위한 부대 부지 사용, 기자재 관세 부과 그리고 인허가 진행 등과 관련해 전적인 편의를 제공받기로 합의 하는 등 예상한 것보다 훨씬 훌륭한 협의 결과를 얻고 회의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투발루 출장의 하이라이트는 이날 저녁에 이루어졌다. 수산통상부장관 내외와 차관 그리고 수산청장을 비롯한 수산청 주요 인사를 호텔로 초대해 만찬을 진행했는데 이날이 하필 나의 61번째 생일날이었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었는데 이미 동행한 직원들은 내 몰래 이벤트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한참 만찬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갑자기 호텔 직원들이 케이크를 날아오고 저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자 갑자기 수산통상부장광내외가 투발루측 인사를 모두 앞으로 불러내어 축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생애 가장 화려한 생일 파티를 이국 투발루에서 그것도 수산통상부 장관 내외를 비롯한 현지인들의 축가를 들으며 맞이하다니 더없이 행복하다는 말 이상의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66일 화요일 아침 10시에 어제 진행된 협의문에 대해 이상 없음을 상호 확인하고 확약서를 교환하는 작은 식을 가진 뒤 바로 출국을 위해 푸나푸티 공항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수산청장이 조개목걸이를 우리쪽 15명의 인사들 한분 한분께 선물로 걸어주었고, 공항에 도착하니 영국인 기술고문이 또 다시 같은 선물을 우리들 목에 걸어주었는데, 마지막으로 수산통상부 장관이 직접 공항에 마중을 나와 우리 모두에게 다시 조개껍질 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주며 우리의 전도를 축복해주셨다. 무려 3개의 목걸이를 목에 걸치니 발길이 무거워져 쉬 투발루를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오후 1시경 비행기는 투발루 푸나푸티 공항을 이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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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도 해외출장이다!

제일 맛있는 음식이 미리 준비해간 컵라면과 햇반이고, 호텔에서 바퀴벌레와 베드버그를 걱정해야 되는, 편도 4번의 비행기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나라에 출장을 다녀왔다. 비록 힘들었지만 출장이 아니면 평생 가볼 기회가 없을 아름다운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 투발루 출장을 지극히 사적인 관점에서 기록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닷물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남태평양의 소국 투발루로 출장을 다녀왔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 공적원조사업)의 일환으로 소형 부두와 커뮤니티센타, 수산물 판매장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예산은 67억 정도지만 단순 물품지원이 아닌 첫 SOC포함 해외어촌개발 사업인 만치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해 모델을 구축해야 하는 중대한 미션을 농어촌공사가 부여받은 셈이다.

투발루는 인구 1만명 남짓에 불과한 세계 4대 소국이다. 국토가 9개의 산호섬이 모여 환으로 이루어져 있고, 국토의 폭이 최대 350m에 불과하고 좁은 곳은 20~30m밖에 되지 않는다. 국토의 고도는 평균 2m로 해수면이 매년 4mm씩 상승해 언제 지도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에 처해있다. 현재 유엔의 도움으로 라군(산호호수)의 모레를 퍼 올려 국토를 보강하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한국의 SK의 협력으로 메타버스 국가를 구축할 준비도 하고 있다. 국토가 사라져도 주권은 남아 세계 참치 어획량의 많은 몫을 차지하는 투발루 수역의 권리를 유지하고 국가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과업이라고 했다.

투발루와 대한민국의 인연은 깊다. 한국의 원양어선이 40년이상 투발루 해역에서 쿼터를 받아 참치잡이를 해 오고 있다. 인연이 오래된 만치 인적 네트워크나 신뢰관계가 비교적 돈독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예정된 ODA사업은 안정적인 참치 쿼터 확보와 협조 강화를 위한 목적과 더불어 2030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투발루의 지지를 얻기 위한 측면도 포함된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지난 3월 실무팀이 사업 개요에 대한 협의를 잘 진행한 성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설계 작업에 들어가기 전 최종 사업리스트를 확정짓고 사업에 수반된 다양한 실무적 문제를 (건축물디자인, 규모, 기자제에 대한 관세, 항만 부두 사용 비용, 인부 숙소, 작업부지 등)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더불어 10월 착공식 관련한 투발루 정부 측의 의사를 최종 확인해 행사의 컨셉과 규모 등을 확정하고 관할 피지 대사관의 협조를 구하고 피지 등 기자재 등을 공수할 물류 기지가 될 인근 도시의 여건을 살피고 구체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eJIGGd4lco 

일정은 529일 아침에 나주를 출발하여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다음날 아침 시드니에 도착하고, 시드니에서 하루를 체류한 뒤 FijiNandi로 날아가 Fiji 국내선으로 피지의 수도인 Suba로 이동후 일박을 하고, 다음날 Tuvalu로 들어가 63일 까지 업무를 진행하고 다시 수바로, 난디로, 시드니로, 인천으로 66일 돌아오는 일정을 계획했다. 하지만 수바에서 투발루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연료부족으로 결항하면서 3일간 발이 묶이고 전체 일정이 69일까지 연장되었다. 덕분에 예정에 없는 공백을 이용해 피지 교민회장단과 면담을 진행하고, 한국선원묘지 찹배와 대사관 면담 등을 진행, 사업 수행을 위한 주변 조사, 협의 등을 추가로 수행할 수 잇었다.

 

2. 시드니야, 오랜만이다.

529일 아침 일찍 나주를 출발했지만 인천공항을 통해 시드니에 도착하니 30일 아침이다. 2006년에 경상북도로부터 지역개발분야 농정대상을 받고 부상으로 뉴질랜드와 호주의 농촌을 10일간 연수한 뒤 처음이니 거의 17년 만의 호주 방문이다. 그때의 기억은 가물가물해 그냥 한국 농업 현실과 비교되는 뉴질랜드와 호주의 농업 여건에 기가 죽어 희망이 아니라 절망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우리 농민이 호주의 농민 같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부상으로 열흘간의 짧은 연수를 오긴 했지만 내 인생에서 다시 호주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업무 출장으로 호주를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입국 수속을 밟고 유심을 갈고 공항을 벗어나니 피지로 가기 전 호주에서 체류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반나절쯤 남았다. 알뜰하게 일정을 잡아 바닷가를 중심으로 해수욕장과 선착장, 해변 공원 등을 차를 타고 둘러보고 잠시 산책까지 한 뒤 날이 저물었다. 시드니를 둘러보는 내내 17년전 첫 시드니 여행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지만 쉽지가 않았다. 기억속의 Gap 해변은 실제의 Gap해변과 어긋났다. 그동안 변질된 기억은 오페라하우스와 페리 선착장의 위치도 왜곡해 버렸다.

 

호주는 지금 겨울이다 보니 해는 짧고 밤은 길어 11명의 일행이 첫 미팅을 하고 한식당에 저녁을 먹은 뒤 각자의 숙소로 일찍 흩어졌다. 하지만 시드니의 밤이 아쉬워 나는 젊은 친구 한명과 같이 숙소 근처의 빠(Incafe)에 들러 칵테일 한잔을 놓고 시드니의 밤거리를 눈에 담았다. 중앙역 근처의 Central Studio Hotel에서 여정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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