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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봄언저리에 1박2일 지리산을 다녀왔다. 백무동을 거쳐 장터목에서 1박한뒤 천왕봉을 거쳐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 왔다. 그 여정뒤 아쉬움이 남아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다. 그리고 삶에 쫒기다 2년을 훨씬 넘긴 끝에 이번 추석연휴를 이용해 아내와 지리산 3박4일 종주를 다녀왔다.

9월20일 승용차로 봉화를 출발하여 중산리에 차를 주차하고, 버스로 성삼재까지 가서 걷기를 시작하고 노고단에서 1박, 연하천에서 1박, 그리고 세석에서 1박 한 뒤 중산리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이번 계획을 짜면서 대도시가 아닌 경북 봉화에서 지리산에 접근해서 종주하는데 교통편이 제일 문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자신의 차를 이용해 시작점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를 짜야했는데 이것이 그나마 가장 합리적이라고 짠 코스인 셈이다.  

[코스 개략 ]

9월  20 봉화출발 중산리 도착 -> 버스이동후 노고단 1박 / 21 연하천 1(6시간트렉) / 22 세석 1(6시간 트렉) / 23 중산리하산 (7시간트렉)

산을 걷기 시작하기 까지 종착지에 차를 대고 출발점으로 버스로 이동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무려 4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출발점인 성삼재까지 가는 일은 나름대로 많은 교통 정보가 필요했다. 버스시간 정보를 바탕으로 20일 하루 일정을 정리했고 그일정에 따라 움직였다. 혹시라도 일정이 흐트려지면 돈을 들여 택시로 잃어버린 시간을 많이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서 나름 타이트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중산리-성삼재 버스 이동 정보 ]

봉화출발 5(4시간 소요) 중산리도착 910<여유40>

중산리 09:50 출발(75분 소요) 1105분 진주버스터미날도착 촉석루/점심 <여유2시간25>

진주 13:30 출발 (60분 소요) 하동도착 14:30 <50분여유>

하동 15:20 출발 (40분 소요) 구례도착 16:00 <20분여유>

구례 16:20 출발 (40분 소요) 성삼재도착 17:00 -> 노고단 (도보 40분 소요)

 

  [중산리-성삼재구간 버스 시간표]

중산리 출발 진주행 (75) : 9:50 / 11:00 / 12:20 ........

진주 출발 하동행 (60) : 12:10 / 12:40 / 13:30 / 14:10 / 15:00

하동 출발 구례 (40) : 13:30 / 14:20 / 15:20 / 16:30 / 17:30

구례 출발 성산재 (40분 소요) : 14:20 / 16:20

계획짜기도 쉽지 않았지만 출발 역시 쉽지 않았다. 배낭을 비롯해 구질구질한 장비를 작은 방 가득 늘어놓은지 오래되었지만 사실 출발 당일 새벽에야 짐을 꾸릴 수 있었다. 출발 전날 저녁 상주에서 회의가 있어 출발 당일 새벽두시에나 귀가했다. 그 시간에 급히 답해야할 메일이 와있어 형식적인 답변을 하고 자리에 누우니 몸은 천근인데 잠은 오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야하는데 짐도 싸지못한채 잠을 청하니 어찌 잠이 오겠는가. 두어시간 잔듯만듯 누워있다 일어나 와이프를 깨우고 세수를 하고 짐을 챙기고 정신없이 집을 나서니 벌써 7시가 넘었다. 쉬지 않고 차를 몰아 중산리로 접어드니 계획했던 버스는 중산리 휴게소 10분전에 우리를 스쳐 지나갔. 950분발 버스를 넣치고 11시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페북에 자랑질을 하고나니  버스가 도착했다.

중산리서 진주까지 한시간 조금 더 걸리는 길은 꼬불꼬불한 길이 문제인지 운전이 문제인지 버스는 정신없이 커브길을 꺽고 중앙선을 넘어 흔들렸다. 바깥 풍경을 즐기기에도 부족한 잠을 청하기에도 불편했다. 그 와중에 옆자리 할머니의 사연이 귀에 들어왔다. 버스 옆자리 할머니가 대전 가신단가. 막내아들이 전기공사 일을 하는데 회식을 마치고 나오다 사고를 당해 대전의 중환자실에 있다고 큰아들 연락을 받으셨단다. 큰 아들은 어머니는 괜히 올라 오지마라고 하는데 잠을 잘 수도 없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어 혼자 낯선 대전으로 나서셨단다. 마음 급한 할머니는 원지에서 내려 한시바삐 대전으로 달려 가고싶은 마음에 기사에게 원지에서 대전가는 차를 탈 수 있는지 물으니 기사는 모른단다. 버스가 원지에 도착해 조금의 여유있는 대기 시간이 있어 정류소 직원에게 물으니 하루에 두어번 밖에 없는 노선이니 그냥 진주가서 대전가는 차편 타는게 빠르다는 답이 돌아왔다. 중산리에서 원지까지 할머니 옆자리 손님은 계속 바뀌었고 할머니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하소연을 반복했다. 차는 진주에 도착했고 할머니는 떠나갔지만 추석을 앞두고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할머니 아픈 마음이 뇌리에 남아 지리산종주 내내 다친 아들의 쾌유를 빌었다. 

진주터미널에 도착해서 남은 조금의 시간이나마 알뜰하게 보내기 위해 짐보관소를 찾았다. 안내에 따라 70년대 조폭영화의 아지트같은 터미날 2층사무실에 두개의 배낭을 삼천원에 맡기고 터미날에서 10분거리인 진주성을 향하다. 진주성에 다와서 "북경장"이라는 예정에 없던 맛집을 만나 맜있는 만두와 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역시 맛있는 음식임을 확인하고 서둘러 진주성을 둘러보려 했지만 하동행 버스를 타야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 성 외곽과 축제 준비 중이라고 각가지 조형물이 들어서고 있는 진주 남강을 내려다보는것으로 진주투어를 포기하고 다시 터미날로 북귀했다. 130분발 하동행 버스에 급히 올라 타고 다시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했지만 역시 길은 험하고 운전은 거칠었다.

도착한 하동 터미날은 작지만 깔끔했다. 다시 구례행 버스가 출발하기에는 조금의 여유가 허용되었다. 터미날을 나서서 하동읍을 구경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그냥 터미날에 설치된 TV를 통해 남북 정상의 평화회담 뉴스를 뜨거운 마음으로 시청하다 버스에 올랐다. 구례행 버스 기사는 출발과 동시에 핸드폰을 들고 끝없는 통화를 이어갔다. 기사의 머리 위쪽에는 기사가 핸드폰을 손에 들고 통화할 경우 신고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사는 직전에 승객이 내린뒤 버스는 출발했고 뒤늦게 하차를 요구한 승객이 있어  브레이크를 밟았고 승객은 쓰려진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 이어갔다. 얼마나 다친지 모르지만 병원에 다친 승객을 보냈고 다시 버스를 출발시켰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회사와 보험사, 동료와 가족의 전화가 이어졌다. 가족과 나누는 소소한 사연까지 억지로 듣다보니 하동 구례간 한시간이 금방지났다. 다친 사랑은 신체 및 정신지체 2등급에 나와 같은 62년생인데 70먹은 노인네 몸골을 하고있었단다. 마음이 아렸지만 그분의 삶의 역정이 얼마나 험했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이번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유달리 사연이 많았다.

구례에 도착해 보니  한산한 터미널에 등산객 차림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주로 새벽녘에 성삼재행 등산객이 몰리는 까닭인것 같았다. 버스가 출발하기전 터미날을 둘러보다보니 중산리행 직행 버스가 안내되고 있었다. 지리산 종주를 위해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네 번의 버스 순례를 한 자신이 미워졌고 매표소로 달려가 직원에게 물었다. 자주 받는 질문이었을까 재밌다는 표정으로 이 중산리가 그 중산리가 아니란다. 동명의 지명일뿐이라고 했다. 실망이 아니라 안도감을 느끼며 승차장으로 돌아와 기사도 손님도 없는 성삼재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비가 굵어졌다. 승객이라고는 우리 부부밖에 없는 버스는 경사가 심한 꼬불꼬불한 길에 안개가 짙고 비까지 뿌렸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잘도 달렸다. 도착한 성삼재는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안내소 처마밑으로 비를 피해 배낭을 고쳐 맨뒤 노고단대피소를 향해 걸었다. 비를 맞으며 무거운 배낭을 지고 한시간만에 도착한 노고단 대피소는 우리포함 5명의 등산객이 전부였다. 옷과 신발 건조기가 있어 비에 젖은옷을 말리고 취사실에서 식사를 준비하니 하루의 긴장이 일시에 날아갔다. 이제 진짜 지리산이구나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식사를 마치고 전날 점이 부족한 탓에 9시 소등 무렵 미리 잠에 빠져들었다. 바닥은 차고 딱딱했지만 공기는 훈훈했다. 적은 인원 때문이겠지만 발냄새 없고 코고는 소리 없는 대피소에서 잠을 자는 호사를 누렸다.

새벽두시에 잠이깨고 화장실을 다녀온뒤 자는둥 마는둥 뒤척이다 아침을 맞았다. 지붕에 빗듣는 소리에 모두들 잠저리를 털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7시가 넘어서야 내가 먼저 일어나 전등을 켰다. 밤새 아이 둘을 동반한 여성 한분이 소리없이 숙소에 합류 있었고 대피소 마당에는 아침에 성삼재에 도착해 노고단을 지나는 몇몇 등산객이  보였다. 천천히 준비한 아침을 들고  8시면 퇴소해야 된다며 빗자루를 들고 문앞에 서있는 직원에 쫒겨 대피소를 출발하려고 보니 820분이었다. 두아이팀만 두고 맨마지막으로 대피소를 나서 비오는 노고단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고단고개를 지나 쉬지 않고 비속을 걸었다. 노고단고개를 지나 피아골 삼거리 까지 이르자 빗물이 등줄기를 타고내리고 등산화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커버를 잊고 와 다 젖은 배낭을 뒤늦게 지키려 비옷을 벗어 배낭에 씌웠다. 몸은 이미 다 젖어 더이상 비옷으로 가릴 이유가 없었다. 비속을 걸으니 내가 지라산을 걷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비와 안개가 가린 나의 시야엔 지라산 풍경이라곤 없었다. 한치앞울 분간하기 힘든 짙은 안개와 빗줄기가 나의 시야를 다음 발걸음이 닿은 길바닥에 고정시켰다. 경사가 심해지면 호흡이 가파오다 다시 평지와 내리막을 만나면 호흡을 되찾았다. 비줄기가 굵어뎠다 가늘어뎠다 변화할뿐 나의 걸음은 한결같았고 마음은 걸음이 더할 수록 가벼워졌다.

삼도봉에서 호흡을 고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침일찍 노고단을 먼저 지나쳤던 등산객을 앞지르기도 하고, 낯선 분들이 우리를 앞서가기도하는데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두 아이 일행은 따라오지 않았다. 오후부터 큰 비가 예보된 상황에서 걷기 시작했지만 토기봉에 이르자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비가 아무리 와봤자 연하천까지는 얼마남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근래에 나를 감싸던 어려운 결정의 순간이 떠올랐다. 그 결정의 연장선에서 나는 이번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다. 지리산에 와서 나는 무슨 결정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결정을 지리산에 고하고 조그만 위안이라도 안고 삶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나의 결정은 순수한가,  합리적이고 온당하기나 한 것인가... 산사람들의 아우성이 빗속에 전해왔다.  나의 걸음은 더 빨라지고 1시를 조금 넘어 연하천에 도착했다. 6시간 코스를 한시간 줄여 5시간만에 도착했지만 우중산행이니 만치 쉬운 길은 아니었다.

연하천대피소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입실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식으로는 오후 6시가 입실시간이지만 4시이후에는 허용하겠다는 산장지기의 전언을 받았다. 미리 도착한  서너팀 10여명은 점심 식사후 취사실바닥에 비닐을 깔고 앉거나 누워 오후 4시까지 춥고 불편하고 무료한 시간을 견뎠다. 노고단에서 같이 지냈던 외국인 젊은 커플은 전날 저녁식사를 신라면으로 하더니 오늘 점심은 햇반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카드가 아니라 화투놀이로 즐거웠다. 한국에 유학온지 1년되었다는 외국인 청년 커플의 현지 문화에 대한 적응력이 놀라웠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4시를 넘기자 규정보다 미리 입실을 허용했다.  큰 선심이라도 쓰는쓱대는 직원덕에 숙소에 들어서니 노고단에 비해 좁고 누추했고 건조기 등 설비도 없었다. 그래도 안까지 젖은 배낭을 쏟아 붇고 젖은 옷을 온기가 있는 바닥에 펴고 추위에 지친 몸을 침상에 뉘웠다. 해가 지자 온기를 회복한 몸을 일으켜 저녁을 해결하고 침실로 돌아오니 어제와는 달리 사람으로 붐비고 젖은 옷가지로 습하고, 사람 냄새와 소음으로 가득찬 불편한 잠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전 노고단에서 만난 두 아이와 고모되는 분이 도착했다. 하루종일 걱정했던 아이들을 만나니 반갑고 고마웠다.  

연하천의 아침이 밝았다. 새벽 두어시에 잠이 깨서 마당을 서성인뒤 다시 잠자리에 들어 뒤척이다 창밖이 밝아오는 것을 확인한뒤 잠자리를 틀고 일어났다. 그래도 새벽 잠이 들었는지 숙소의 많은 침상은 비어 있었다. 세석까지의 짧은 일정 때문에 일찍 출발할 필요가 없다보니 느긋하게 아침을 해먹고 연하천대피소를 나섰다. 어제비로 말쑥히 씻긴 투명한 하늘이 우리를 반겼고 아침 걸음을 독려했다. 비록 덜마른 옷을 입고 여전히 첨벙대는 등산화를 신고 나선 걸음이지만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을 따사로왔다. 지리산에서 두밤을 지낸 뒤 처음으로 지리산의 풍모를 느끼고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아직은 멀었지만 살짝 선보이기 시작한 단풍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겹겹히 이어지는 넉넉한 지리산 자락이 그윽하게 다가왔다.

삼각봉과 형제봉을 지나 공사로 폐쇄된 벽소령에 도착해 늦은 아침을 라면으로 대신했다. 다시 벽소령을 출발해 이번 일정의 마지막 숙소인 세석평전을 향해 나아갔다. 전날까지 비속에 묻힌 지리산 자태를 재대로 느낄 수 없었기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이전의 코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좋았다. 골짜기로 인해 시야가 갇히거나, 숲으로 인해 지리산의 진면모를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을 방해받지 않는 환상적인 길이 이어졌다. 연하천과 세석의 중간지점인 선비샘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자 한걸음 한걸음이 남은 길을 줄여나가는 기쁨이 아니라 남은 알사탕을 한알한알 까먹는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선비샘터를 지나자마자 아내의 등산화가 문제를 일으켰다. 그 신발은 2년전 안나푸르나 라운딩 때 신발 바닥이 분리되어 네팔 현지에서 수리한 신발이었다. 그 사실을 잊고 아무 거리낌없이 신고 왔는데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걸음을 조심해서 이번 일정을 마무리하고싶었지만 한번 분리되기 시작한 바닥은 금새 걷기가 불가능할만치 벌어져버렸다. 임시방편으로 고무줄을 매고 결국은 양말로 신발에 신기는 조처로 위기는 모면하는 듯 했지만 불편한 신발이 걷는 자세를 흐트려버렸는지 아내는 갑자기 무릅통증으로 걷기가 불편해졌다.  할 수없이 걷는 속도를 줄이고 예정보다 늦게 세석에 도착했는데 세석대피소는 시골 장터 못지 않게 인파로 넘쳐났다. 식사를 할 수 있는 마당의 탁자는 빈자리가 없었고, 양방향으로부터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이 도착을하고 또 쉬었던 사람들이 떠나갔다.

세석의 밤이 다가오자 숙소는 배정되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짐을 챙겨 침낭으로 기어들었다. 세석대피소의 침상은 너무좁았다. 옆사람과 분리된 조금의 공간도 없는 그야말로 옆사람과 어깨가 부딪는 잠자리였다. 나는 숙면을 위해 거실같은 공간으로 잠자리를 옮겼고, 밤새 사람들이 들고 날고 조금 춥기가지한 잠자리였지만 차라리 낯선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자는 것 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거실에 잠자리를 편 덕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밤새도록 사람들은 야간산행을 떠나고 대피소에 도착하고 있었다. 안전상행을 위해 몇시 이후에는 출발하지 못하게하는 규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두운 뒤에 중산리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새벽 두어시가 되자 짐을 꾸려 대피소를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3박4일의 지리산 종주를 마감하는날 새벽 5시에 잠자리를 걷고 일어나 과일로 요기를 하고 5시 30분경 길을 나섰다. 이른 시간인줄 알았지만 취사실은 일출을 보기 원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우리와 비슷하게 숙소를 나서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숙소를 나선지 얼마되지 않아 완만한 언덕을 한참 오르니 일출 조망이 좋은 촛대봉에 이르렀다. 벌써 많은 분들이 카메라 삼각대를 펼치고  대기하고 있었고, 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우리도 배낭을 벗어던지고 동쪽 하늘을 향해 바위에 걸터 않았다. 남은 과자로 요기를 하고 구름에 가려 지체된 일출을 기다리다가 붉은기운이 번지는 아침 하늘을 폰에 담은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길을 걸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을 포기하고 중산리로 하산을 시작했다. 고장난 신발과 아내의 무릎탓도 있었지만 2년전 올랐던 찬왕봉을 이번에는 왠지 남겨두고 싶었다.

장터목에서 중산리까지의 길은 계곡의 흐름과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며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졌다. 길과 계곡이 교차하고, 멋진 폭포와 큰 바위로 이루어진 중산리 계곡은 기대하지않은 큰 선물로 다가왔다. 큰 산이 만든 큰 계곡은 나름의 멋을 뽐내고 있었고 중산리의 유명세가 이해되었다. 3시간거리를 거의 5시간만에 주파하고 중산리 출발점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보니 자동차키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농사 동료이자 이웃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고 늦었지만 무사히 추석 전날 늦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더 늦기 전에 경험한 지리산 종주기도 했고 나름의 큰 결정 뒤에 마음을 다잡기 위한 산행이기도 했던 3박 4일의 지리산 종주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뒤돌아보니 잊지 못할 벅찬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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