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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지나고 가을비가 그치자마자

비나리마을에 남아있던 지난 여름의 열기는

혼적도 없이 사라져 온데 간데 없고,

아침 저녁 부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낮 최고기온은 20도 이하로, 

아침 최저기온이 10도이하로 내려가면서

올봄에 쳐박아두었던 긴팔옷을 찾아 입고,

창문을 꼭꼭 닫고 이불을 덮고 자는 것도 부족해

우리 집은 벌써 겨울 난방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겨울에 저희 가족의 체온을 지켜줄 나무보일러입니다.

지난 여름내 자라 집을 가리던 나무가지들을 자르고

병든 대추나무도 베어 밭구석에 쳐박아 두었습니다.

우선 그놈들을 끌고 와서 가을 냉기를 면해 봅니다.



굴뚝에 흰연기가 흩날리고 나무타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니

벌써 겨울은 저만치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을 떼니 집안에 훈기가 있고

바같 풍경마저 사람사는 동네 같아 훈훈하니 좋습니다.


우선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미술관에도

나무 난로를 설치했습니다.

정다운 이웃과 같이 장작이 활활타는 난로가에 앉아

같이 사는 이야기 나눌 겨울이 기다려집니다.'

따뜻한 난로가에 커피향기가 흐르고

낡은 오디오서 빈소년합창단이 부르는 캐롤이 흘러나올 때

꼭 그런 날이면 창문밖에는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할 겁니다.



올 겨울내내, 아니 지금 당장부터 양쪽에 나무 해 나른다고

고생 꽤나 해야겠지만,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부지런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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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가을 비가 추적대고

잔뜩 찌푸린 하늘이 계절을 잊게 만들지만

가을은 살그머니 옷갓재넘어 비나리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면에 들러 볼일을 보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국도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는 옷갓재를 넘으며

무심코 고개를 돌려 내다본 고갯길은 완연한 가을입니다.

일상에 묻혀 자연의 변화를 잊어버리곤하지만

문득문득 다가서는 자연의 위대함은 절로 오만한 인간의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절기에 따라 꽃을 피우고, 햇빛을 모아 열매를 맺고

또 그 잎을 떨구고 안식의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숭고함은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입니다.

그 속에 사람이 살아 사람마져 아름다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자연의 위대함인가 합니다.

  

가을은 코스모스를 피우고, 코스모스는 또 가을을 부릅니다.

고개를 넘어 서면 이웃 농가 마당가에 심겨진

세상에서 가장 가을다운 꽃이라 해도 좋을 코스모스가

마을을 찾는 손님들을 반깁니다.

내일이면 비나리마을에서 자라 비나리를 그리며 살아가고 있을 자식들이

옷갓제를 넘어 부모님을 찾을 것입니다.




고향을 찾는 그 분들의 두눈에 코스모스 가득 핀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아름다운 비나리마을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마을의 추억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때문에 더 아름답게 더 값지게 세상살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멀리 고향인 진해를 찾아

눈이 시리도록 바다를 보고 또 보고

가슴에 가득 갯내음을 담고 올 것입니다.

 

이번 비가 한가위와 함께 지나고 나면

마을 가득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가을 걷이가 바빠지고 곧 다가올 겨울 준비가 시작됩니다.

곳간을 채우고, 장작더미를 높이 쌓는 것 못지않게

시린 계절을 참고 이기게 하는 것은

가슴깊이 묻어둔 어린시절의 추억과

풋풋한 사람들과의 그리운 인연일 것입니다.

 

일자리는 줄고 물가는 비싸고, 갈수록 팍팍해지는 세상살이에도

올 추석, 세상사람 모두가 앞산 위에 떠오를 보름달보다

더 큰 사랑과 정을 가슴에 가득 채우시는

즐겁고 행복한 한가위 맞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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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비나리마을 가을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아직 덜 가쉰 한낮의 더위에 비나리농부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고

여름 내 검게 그을린 목덜미에 가을 햇살이 따갑지만

오고 가는 계절은 어쩔 수 없이 이제 가을의 문턱입니다.

늦게 핀 호박꽃은 지난 성하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한웅큼의 가을 햇살이라도 더 받기 위해 자태를 가다듬고

부지런한 꿀벌들은 찬바람 이는 겨울을 준비하느라 날개짓이 바쁩니다.

키낮은 해바라기가 청명한 가을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마당 한켠에 아무렇게나 심어져있던 이런저런 가을 꽃들이

비나리마을의 가을을 향기롭게 합니다.
 

여름의 열정은 식고 곡간은 허전하지만

긴 겨울의 안식을 기다리는 비나리농부의 마음만은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농부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가는 사람도

농부가 좋아 농부가 된 사람도

세상은 농사를 접어라하고 농부의 삶을 미천하게 여겨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비나리마을 농부들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가을은 비로서 농부의 가치를 만천하에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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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 오전, 마을 행사를 치루고 영주에 장을 보러 나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MBC방송국인데 홍수관련하여 비나리마을 주민과 인터뷰를 하겠단다.
인터뷰를 마을 위원장과 이장에게 미루고, 아무 생각없이 장을 보고  그날의 일들은 잊었다.
그런데, 몇일전 우연히 PD수첩에서 4대강사업 홍보의 허구성과 청와대내 비밀 태스크포스팀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중에 비나리마을 관련한 영상과 인터뷰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무슨 회괴망칙한 일인가? 비나리마을 주민도 모르게 4대강사업 홍보에 비나리마을 홍수 영상이 이용되었다니! 비록 뒤늦었지만 PD수첩에서 보도했듯이 비나리마을 홍수예방과 사대강 사업의 연관성이 전혀없다는 사실에 대해 비나리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안할수 없다.



일단, 비나리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 상류 지역은 그 잘난 사대강 사업 영역이 아니다. MB식 어거지에 따르면 하상을 준설하면 지하수면이 낮아져 상류의 홍수가 예방되고, 보를 쌓으면 물조절이 되어 하류의 홍수가 예방된단다. 그리고 상류의 가뭄은 보를 쌓아 물을 가두어 두고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어 예방이 된다나 어쩐다나 '둥근 사각형'같은 말같지 않은 말은 뒷전으로 밀쳐둬도 4대강준설 지역과 비나리마을은 다행히도 너무 멀다.



그리고 2002년 루사나 2003년 매미 때 홍수 피해는 내가 알기는 주로 강원도 지역에 집중했고, 2008년 비나리마을 인근의 춘양면에 홍수가 나고 산사태가 나서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때도 하류지역의 피해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의 최근 홍수 피해는 거의 강의 최상류지역, 산간지역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D수첩 [사대강 수심 6m의 비밀]편에 너무나 잘 나와 있다.
 
그리고 정부는 마을주민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2006년 태풍 매미때 낙동강이 범람해 마을 입구가 물에 잠기고 버스정류장위에 통나무가 올라 앉는 상황을 기기괴괴한 영상효과까지 더해 비나리마을을 상습수해지역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점에 대해 사대강사업 세력은 지금 당장 비나리마을 주민에게 공개사과해야 한다. 비나리마을에 살기 시작한 지 14년동안  비나리마을 앞을 지나는 낙동강 최상류가 범람해 길이 잠긴 것은 3~4번쯤 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 한번 정도는 마을입구쪽의 밭들이 수몰되어 적지않은 농작물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나리마을 안에 홍수 피해가 발생하여 인명이나 재산상의 큰 피해가 난적은 한번도 없다. 정당성을 가지지않은 4대강사업을 홍보하기위해 애궂은 비나리마을을 이용하다니 비나리마을 주민은 기가 차고 억장이 무너진다.



토건세력이 '녹색성장'을 선점하고, 개발론자들이 먼저 환경과 생태에 대해 떠벌리며 그 본질을 왜곡한지 벌써 3년째다. 진실되지 못한 정권으로 말미암아 무엇보다 말의 참뜻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독재자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종미주의자가 민족의 이익과 평화를 독점하려드는 기괴한 상황은 끝이 나야한다. 무엇보다 사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없는 정당성을 억지로 만들어 내기위해 애궂은 비나리마을까지 끌여들여야 하는 궁색한 처지에서 MB정권이 벗어나길 빈다.  

MB의 모든 정치행위를 지배하는 것은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열등감이다. MB에게 조언컨데 죽어서도 산자의 목을 죄는 정적에게 질투만하지말고 배우기 위해 노력하길 빈다. 노무현대통령이 이렇게 시퍼렇게 대중의 사랑속에 살아있는 것은 바로 그의 진실성, 진정성 때문이다.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사대강사업 관련한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있길 빌고, 그 변화는 바로 솔직해지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토론도 가능하고 정치적 조정도 가능하고 타협도 가능하다.  MB 당신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미래상이 토목공화국이 맞다고, 그래서 희생을 치르더라도 토목업자을 살리는 일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환경도 좋지만은 개발이 더 좋고 더 바람직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고 실토를 하면. 그때부터 한국의 미래비젼이 토목중심이어도 좋을지, 한국 사회의 현실이 환경보다는 건설이 우선인 상황인지 토론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여하튼 4대강 사업 홍보에 이용당한 비나리마을 주민의 한사람으로서 한마디안할 수 없어 몇마디 남기지만, 솔직히 이 정권은 구제불능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거짓 세월이 끝나길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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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고추 수확에 정신이 없는 계절이지만
비나리마을 마을활성화센타 공사는 착착 진행중입니다.
7월말께 공사를 시작한 이래 터파기와 기초공사가 이루어졌고
드디어 몇일전부터 고추밭 가는 길에 내려다보이는 공사현장에는
건물의 지상부 벽체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나리마을 활성화센타는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 7개리가 모여 만든
청량산권역 마을종합개발사업의 핵심사업입니다.


비나리마을활성화센타는 25여억원의 예산으로 1,500여평의 터에
강의동과 숙소동을 합해 약 260여평의 건축물로 이루어집니다.
내년 봄이면 완공될 비나리마을 활성화센타는   
마을과 농업의 가치, 공동체와 생태환경의 소중함을 기본으로하는
새로운 세상의 비젼을 담는 알차고 풍부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농민과 도시민이 만나고,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져사는
새로운 세상의 비젼을 확산시키는 농촌문화의 메카가 될것입니다. 


이제 내년 여름이면 마을활성화센타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마을사업을 운영해야할 것입니다.
바쁜 농사일에 한번도 제대로 마을사업의 운영에 대해
고민해보지도 못하고 있지만 긴긴겨울, 우리 마을의 자원을 총동원해
우리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하고 나아가 도시민을 맞아
마을의 활력을 증진시킬 구상을 차근차근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획력도 마케팅 능력도 없지만, 마을의 모든 자원과
주민 모두의 역량을 모아나간다면
비나리마을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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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도 입추도 지나고, 본격적인 수확철에 접어든다는

'풋거먹는 날'도 지났지만, 늦더위에 늦은 장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음은 감자밭에 가 있지만, 땅은 질척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장대비가 내렸다, 가랑비가 내렸다 비는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올해 비나리는 장마같지 않은 마른 장마가 계속되더니, 장마철 다 지나고

때늦은 가을장마가 농부의 속을 태웁니다.

다행히 수박출하기까지는 날씨가 좋아,

이웃 수박농가들은 무사히 좋은 값에 수확을 마쳤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고추 수확에 들어가야할 판에 연일계속되는 비는

올해 고추 작황을 걱정스럽게 합니다.


집마당 한켠 솟대끝에 앉은 기러기는

젖은 날개를 털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날고 싶습니다.

굵어가는 열매를 달고서 무거운 비까지 머금은 대추는

축처진 어깨로 산들바람 부는 가을을 기다립니다.

철늦은 장마가 거친뒤에도 한 더위는 물러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기상청의 발표가

자못걱정스럽지만.. 메뚜기도 한철이고 또 한더위도 한철이겠지요.

가을장마에 마음상하지 말고, 여름을 씻고 가을을 준비하는 반가운 비로 받아들이며

비내리는 한낮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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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나리마을이 발칵 뒤집어 졌습니다.
앞집 창목이 형님내외가 이번 여름내내 비지땀을 흘리며  가꾸어 온 수박이 
출하를 몇일 앞두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어제 창목이 형님 내외분은 모처럼 시간을 내어
봉화은어축제장에 놀러가셨습니다.
수박농사도 그러저럭 다 마무리되어
수집상에게 820만원에 팔기로 계약을 맺었고,
계약금으로 이미 500만원을 받아쥔 상태인데다가 ,
이제 고추수확만 하면 1년 농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모처럼  내외분이
바람을 쇠러 은어축제장엘 나가신 것입니다.


해거름이 다되어 내외분이 돌아오는 길에 집에 거의 도착하기전
길 모퉁이에
수박을 가득싣은 대형트럭이
ㄱ자 길을 빠져나가지 못해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수박을 싣은 트럭이랑 일행으로 보이는 차량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이웃 재학이 형님도 나오시고, 해서
'오라이' '스톱' ' 왼쪽으로'  '오른쪽으로'를 외치며
한참을 동네가 시끌씨끌한 중에
창목이 형님도 같이 거들고, 저 역시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동네가 시끄러워 나갔다가 같이 구경을 했습니다.
가까스레 트럭이 빠져 나가고,  
저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서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이웃 재학이 형님이 창목이 형님한테 말씀하셨습니다.
'형님 인자 수박 나갔으니 속이 시원할씨더~'
재학이 형님 말씀이 떨어지자 말자 놀란 창목이 형님은
'방금 그 차가 우리 수박 싣은차라꼬?'라며 되물었습니다.
창목이 형님은 자신의 수박을 싣어가는 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순간 혼란에 빠진 창목이 형님은
아직 잔금도 안받았는데 수박을 싣어갈 수가 있냐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고,
우리들 역시 잔금을 통장으로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전화 한통없이 수박을 싣어갈 수가 있냐는 둥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는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식탁에 앉아 막 밥을 먹으려는 순간
갑자기 앞집 형수님이 헐레벌떡 달려오시더니 급한 목소리로  
빨리 경찰에 신고 좀 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황스런 상황에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형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수박을 계약했던 수집상에게 전화를 걸어
잔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화도 없이 어떻게 수박을 싣어갈 수 있는지 물을 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수집상은 자신은 지금 서울에 있고,
수박밭은 건드리지도 않았다며
빨리 경찰에 신고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순간 창목이 형님은 다시 한번 확인하러 수박밭으로 달려가고
형수님은 경찰에 신고를 부탁하려 가장 가까운 이웃인 저에게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창목이 형님댁으로 내려가니 이웃들도 여럿 나오시고 해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여러각도로 짐작을 말씀하시기도 하고,
동네 수박재배농가들 마다 전화를 걸어 혹시
오늘 수박 싣어내기로 했던 집이 있는지 확인도 해 주었습니다.
혹시라도 밭을 혼동하여 엉뚱한 수박을 싣어낼 수도 있지 않나해서
확인해 보았지만 한 집도 이날 수박을 싣어내기로 한 집이 없고,
상황자체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낮에 10여명 이상의 사람과 대형트럭을 포함헤 서너대의 차량을 이용해
수박을 훔쳐간다는 것도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가능성은 더 없어보이고
결국 112로 신고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전화는 곧바로 봉화경찰서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수박밭 절도 사건이 일어났으니 '부산'번호의 대형트럭을
길목에서 차단좀 해 주십사 부탁을 했더니
곧 순찰차를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0여분이 지나도 순찰차가 오질 않아 급한 마음에
다시 명호파출소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는 순찰차로 바로 연결이 되었고 차는 벌써 동네에 들어와
이미 창목이 형님 집 근처까지 와 있었습니다.


 
경찰이 오자마자 상황설명을 했고 경찰에선 곧바로  절도혐의 트럭을
경북도경에 연결하여 수배를 내렸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급히 검거업무를 위해 되돌아가고
우리는 앞집 마당에 남아 수박을 싣어간 사람들이 정말 도둑놈일까 아닐까,
도둑놈이라면 거리마다 있는 CCTV를 미리 알고
다 피해가거나 어디 한적한 동네로 들어가
수박을 소형 트럭에 나누어 싣는 등의 방법으로

검문에 걸리지않고 빠져나갈 것이다,
어쩌면 창목이 형님 수박을 계약한 그 상인이 범인들과 한통속인지도 모른다.
동네안에 오늘 창목이형님 내외분이 출타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안나는  등 별의별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만약  도둑을 잡지 못하게 되며 창목이 형님이 감수해야될 피해가 어떨지
모두들 걱정을 나누며 한참을 머물다가
저는 늦은 저녁을 먹으로 집으로 왔습니다.

밥상머리에서 와이프랑 앞집 수박을 무단으로 싣어갈 사람들이 농산물 절도단일까.
수법이 대단하다. 외모가 조폭같았다 등등 나아가 세상이 참 험하다,
여성대상 범죄며, 농산물 절도며 다 사회의  약한 부분으로 범죄가 집중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미 맛을 잃어버린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박도난으로 앞집이 입을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만약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게 될 때 군청이며 농협 등을 통해 
긴급지원 모금운동이라도 벌여야겠다는 등의 생각을 나누다
앞집 상황이 궁금해 내려가 보았습니다.

마침 순찰차가 돌아와 막 우리마을에서 1시간 거리의 풍기 IC입구에서
용의 차량을 적발하여 봉화경찰서로 압송중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모여있던 몇몇 주민을 환호를 하며 그나마 범인을 잡아서 다행이라며
창목이형님 내외분께 위로 인사를 하고 저 역시 와이프에게
앞집 수박 절도범을 잡았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전개되고 창목이 형님은 피해자로 저는 참고인으로
경찰차를 타고 봉화경찰서로 향했는데 가는 길에 명호파출소엘 잠시 들렀습니다.
명호파출소에는 동네 청년들로 이루어진 자율방범대의
금동윤 회장 등도 벌써 출동해서  혹시 한적한 동네에서
수박을 나누어 싣는 경우를 대비해
순찰을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일행이  봉화결찰서에 도착해보니
잡혀온(?) 수박상인은 나름대로 팔방으로 전화를 해서
자신은 절도범이 아니면 밭을 잘못알고 수박을 싣어가는 바람에 절도법으로 몰렸음을
입중했는지 이미 상황은 거의 정리가 되어있었습니다.
상인 분은 우리동네를 비롯해 이웃 면까지 100마지기 정도의 수박밭을 산 사람이고
이웃 수박주산지인 마을에서는 잘알려진 인사였습니다.
이날도 우리동네 다른 수박밭을 사 둔게 있는데
일정을 당겨 갑자기 싣어내게 되어 주인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전화를 안받아 그냥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밭이랑 창목이 형님 밭 위치가 비슷해 순간적으로 착각을 해서
자신들이 산 밭은 그냥두고 엉뚱한 창목이 형님내 수박을
싣어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그 상인이 최소한 돈 1000만원도 안되는 수박밭을 그렇게 무모하게 
도둑질할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일정이 바뀌어 갑자기 자신이 산 수박을 가져 간다고 해도
수박농가에 전화도 한통 안해 줄수 있는지는 끝내 의아스러웠습니다.
 전화를 했는데 밭주인이 전화를 안받아서
그냥 수박값도 완불한 밭이고 해서 수확작업에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여하튼 창목이 형님과 창목이 형님 수박을 산 상인,
그리고 창목이 형님 수박을 실수로 무단으로 싣어간 상인간에
피해 처리에 대한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고 

우리 일행은 다시 경찰차로 동네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어제 비나리마을을 발칵뒤집어 놓은 수박밭 절도사건은
다행스럽게 평화롭게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건사고라고는 평생가도 없는 조용한 비나리마을에
앞으로 10년은 두고두고 회자될  애피소드가 하나 늘었습니다. 
피해를 당할뻔한 앞집형님 내외분은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몇시간이지만
그동안 몇년은 더 늙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형님은 올초에 끊었던 담배마저 이날 서너가치나 피워버리게 되었고, 
연락을 받은 자제분들도 큰 걱정으로 고통받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인가 봅니다.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고 다시 웃음을 띄운 형수님을 보니
지난 하루의 피말리는 사건이 다 지나간  우스개 이야기거리가 되어버린듯
까마득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쪼록 수고하신 명호파출소 봉화경찰서 직원여러분께 감사드리구요.
명호자율방법대 대원님들, 그리고 재학이형님 등 이웃 여러분 덕분에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한 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피해를 당하지 않은 앞집 형님내외분께도 안도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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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산골짜기에도 어제 처음으로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났습니다.
중복과 말복사이 여름의 한가운데 걷혀버린 요 몇일은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아침저녁에 농사일을 조금씩 한다고는하지만
해가 뜨자마자 등판은 뜨거워지고, 땀은 팥죽같이 흐르고
또 한낮의 뙤약볕을 피해 밭으로 나가려고하지만
오후 네댓시가 되어도 한낮의 열기는 쉬 식지 않습니다.

그래도 산골마을에 사는 덕에 열대야가 없어 해만 떨어지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한 여름이라도 이불없이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분들의 부러움을 살만할 것입니다.

한여름의 불볕속에 속을 익혀온 수박이 곧 도시로 팔려갈 채비를 하고 있고,
싱싱한 풋고추가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합니다.
마당가 텃밭에는 참외, 옥수수, 토마토 그리고 가지며 오이가 넘쳐납니다.
양대콩 꽃은 붉게 피고 연두빛 사과는 초록빛이  짙어갑니다.
그렇게 한여름의 햇빛은 자연을 풍요롭게 했지만
여름이 그 절정에 달할수록
우리는 가을이 더 가까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덥다 덥다해도 이번 주말이면 벌써 입추고 말복이랍니다.
그리고 다음절기인 처서를 맞으면 여름의 자취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하늘은 더 높고 청명해지고, 공기는 더 맑고 시원해질 것입니다.

 




여름의 끝자락, 비나리마을의 새벽녘,
동녘하늘을 붉히는 여명이 가을의 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해의 여름은 또 가고
비나리마을 농부들은  풍요로운 가을 들녘에서
지난 여름을 추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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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만나기 전까지 '접시꽃'은 그냥 펑범한 시골 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백합처럼 우아하지도 않으면서,  우리 농촌마을 어디에나 돌담이 있으면 바로 그 옆에 다소곳이 기대어  수더분하고 소박한 미소로 다가오던 접시꽃이었습니다.

이제 접시꽃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우리곁에 다가왔습니다. 늘 옆에있어 소중한지 모르고, 꾸미지 않아 아름다운줄 몰랐던 '오래된 아내'같은 접시꽃이지만 그 꽃의 원래 꽃말이 '열렬한 사랑'이랍니다. 생의 모든 열정을 숨기고 긴 세월 살아왔던 우리네 여인들모양 지금은 그 흔적을 감추고 있지만 그 내면에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듯, 접시꽃은 그렇게 속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우리 농촌의 꽃입니다.


비나리마을에 접시꽃이 넘쳐납니다.
정보센타를 돌아 집으로 올라가는 모둥이 돌담을 돌 때
접시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풍경이 나의 가슴을 적십니다.
살벌하고 삭막한 세상이라 한탄하는 마음도
접시꽃 만발한 돌담길을 지나면서 다 녹아내립니다.
접시꽃이 있어 비나리는 더욱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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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은 쉬 끝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지만 찾아오는 절기는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5월5일 단오입니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다는 단오는 멀리 마한 시절부터 파종을 끝내고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며 음주가무를 즐기던 풍습에서 기원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마을 비나리는 단오라고해서 별다른 풍습이 남아있는게 없습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단오날은 돈을 모아서라도 나들이를 가십니다. 그런데 마을분들이 어디 놀러가시게 되면 꼭 울진 바닷가로 나가십니다.


산속마을에 살다보니 항상 바다가 보고싶으신가 봅니다..
가까이에 소백산도 있고, 주왕산도 있고 태백산도 있지만
산은 다 마다하고 몇년전부터 매년 두어번은 놀러갔었을 울진을 고집하십니다.
바다도 싣컷보시고, 무엇보다 산골사람에게는 귀한 진미인 생선회를 드십니다. 
저도 두어해 따라나섰지만 관광버스에 오르자마자 술을 권하고 가무(!)를 요구하시는 놀이문화에 결국 적응을 못하고 지금은 가능하면 설설 피하고 맙니다^^*


오늘 아침  나들이에 나서시는 동네분들의 분주한 발걸음에 잠을 깨고
사람의 발길이 더물어져 정적이 감도는 마을에 남아 늦은 농사일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열흘전부터 고향 진해에서 올라와 농사일을 돕고 있는 동생과 고추밭골에 풀을 뽑고는 다시 풀이 나지 못하도록 비닐로 멀칭을 하는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작업중에 동생의 한마디에 오늘 오후 일정을 바꾸었습니다.
'형집에 와서 일만하고 낚시도 같이 한번 못하고 가야되네.'라고 하는 동생 말에
콩밭 멀칭 작업을 뒤로 미루고 마을앞 낙동강에 낚시를 가기로 마을먹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낚시를 한대씩 들고 강으로 나갔습니다.
꺽지낚시를 즐기는 동생의 조언과 도움으로 작년에 이어 평생에 두번째로 꺽지 낚시에 나섰습니다. 꺽지 낚시는 '루어낚시'의 일종으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물과 산과 하늘을 바라다보고 상념에 빠질 수 있는 그런 낚시가 아니었습니다.
끊이없이 낚시를 던지고 줄을 감고, 또 던지고 다시 감고... 그리고 입질이 없으면 강을 따라 장소를 옮겨가며 낚시를 해야되는 부지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낚시였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동생을 따라 꺽지 낚시를 갔다가 스피너라고 하는 낚시 바늘과 가짜미끼가 달려있는 뭉치만 서너개 잃어버리고 꺽지는 한마리도 구경도 못했습니다.


오늘도 대단한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강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래도 왠지 작년과는 다른 예감이 들었습니다. 호기롭게 동생한테 '오늘 내가 꺽지를 먼저 잡을 것 같다' 고 큰소리마저 쳤습니다. 두어개의 스피너를 잃어버리고 서너번 장소를 옮긴 뒤에 낚시를 시작한지 거의 1시간만에 오늘의 첫 꺽지를 건졌습니다. 이 놈은 오늘 낚시의 첫 꺽지이기도 하지만 저 일생의 첫 꺽지이기도 합니다. 


다시 30여분 뒤 드디어 동생 낚시대에 대물 한마리가 걸렸습니다.
억지로 줄을 감고 물밖으로 건져 올린 고기는 역시 꺽지지만 아까의 꺽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물이었습니다. 너무 신이나 연신 사진기를 들이대고 오늘 하루 더 이상의 낚시는 필요가 없게 되어 낚시를 접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낚시는 하는 다른 낚시꾼에게 다가가서 괜히 물어보지도 않은 오늘 작항을 자랑하고 대물 꺽지를 바구니에서 건져올려 구경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를 찾아 오늘 잡은 대물 꺽지의 길이를 재어보았습니다.
무려 27.5cm!


동생이 찾아본 바로는 국내 꺽지 낚시 최고 기록이 31.5cm라고 하니 오늘 잡은 꺽지가 얼마나 큰놈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민물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그런 큰 꺽지는 일생에 몇번 잡기가 힘들 정도라니 오늘 하루 농사일을 뒤로 미루고 낚시를 나섰던 보람이 있었습니다.

망중한이라고 바쁜 중에 억지로 만든 오늘 오후의 여유는 또다시 몇달이 지나야 볼 수 있는 동생과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흐르는 물, 파란 하늘, 그리고 산... 그 속에서 동생과 보낸 오늘 하루 오후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저를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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