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경북 봉화군 명호면 7개리로 구성된 '청량산비나리권역"
마을종합개발사업이 시작된지 벌써 3년째인데 그동안
이런저런 주민역량강화사업이 진행되었고
최초의 시설 공사가 
다음달이면 착공이 될것 같습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올 가을정도에 청량산 도립공원내에
농산물홍보관이 준공이 되고,
내년봄이면
비나리 마을활성화센타가 역시 준공될 예정입니다.

마을 활성화센타는 강의와 숙박, 식사가이루어지는
 마을사업의 핵심 시설로 일종의 '학교'로 활용될 것입니다.
가칭 '비나리시민학교'는 문화 예술 등 다양한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할 예정이나 기본적으로 농촌마을 사업이
일반적으로 대상으로하는 고객과는 다른 새로운 대상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할 계획입니다.
마을 사업을 통해, 도농간의 이해를 깊이하고,
농업농촌의 가치를 확산하고, 농촌공동체 문화를 되살리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도움이 되는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될 목표지만,
우리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고 민주주의를 성숙하게하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민주주의 시민강좌도 개발 운영할 생각입니다.

현제 진해중인 이런 저런 사업들이 완료단계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현 추진위원회는 마을운영위원회로 전환이 되고
출자를 통한 법인을 설립하여 완공된 시설의 운영권을
봉화군으로부터 이양받습니다.

그러면 그대부터 마을사업은 본격적인 경영단계에 들어갑니다.
아직 시간이 많지만 향후 마을사업 경영을 위한
조직적 준비, 사업 아이템 준비 등을 슬슬 시자할 때가 되어
아래와 같은 토론자료를 기초로하여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청량산비나리주민여러분은 물론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을 추진중인 타권역,
나아가 농업 농촌에 대한 관심을 가진 많은 분들과 청량산비나리권역의
마을사업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자

미흡하나마 아래의 토론자료를 올립니다.
많은 고민하시고 많은 좋은 생각을 모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청량산 비나리권역 운영방안(토론자료) 

 

작성일 : 2010415

 

       1.     본 토론자료는 향후 정밀한 운영방안을 마련하기위한 기초 토론자료임.

2.     지금까지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토론되어 온 내용을 중심으로 위원들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될 주요 지점을 짚어보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됨.

      3.     향후 토론을 통해 각사안을 분류하고 정리하여, 우선 결정되어야 할것이   
             무엇인지 순위를 정하고,
사안별로 중점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하여
             토론을 거친 후 결정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됨

4.     토론을 통해 정리된 보고서는 컨설팅을 받기 위한 기초자료로 유현소프트에 제공될 것임.


 

현재 사업의 추진 상황은 기본계획과 이에 따른 주민교육, 연수 등 소프트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시설 관련해서는 세부설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사업 관련한 부지 매입이 막바지에 이르렀음.  

1차사업의 주요시설물에 대해 발주와 착공이 있고, 마을활성화센타(학교), 청량산 도립공원 농산물홍보관,

귀농연수시설 등이 2012년초까지 완공될 예정이고, 실제적인 사업운영 시작 시점은 2011년 여름부터로 예상됨.

개별 사업별로 보면 운영이 필요한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고계리 담장사업,

북곡리 환경개선 사업, 만리산 마을회관 사업 등은 완공과 동시에 사업이 완료되고, 마을커뮤니티센타,

농산물홍보관, 귀농연수시설, 장류가공사업 등은 완공과 동시에 경영(운영)이 필요한 사업임.

현단계에서 제일 중요한 과제는 사업 경영을 위한 조직을 꾸리는 것이고(법인), 장류 가공시설 설치에 필요한 마을자부담금과 시설 완공 후 초기 운영자금의 마련 방안을 세우는 일, 그리고 그 시설들을 경영할 세부 계획을 세우는 일 등임.

이에 따라 시설물의 공사진행의 일정과 맞춰 운영위원회의 준비 스케줄을 예상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법인설립 2010

2.     농산물홍보관 운영시작 20109

3.     마을활성화센타 운영자금마련 2011 4

4.     마을활성화센타 운영시작 2011 5(개관식)

5.     마을축제 시작 2011 5

6.     귀농연수관 운영시작 2012 5

7.     장류가공시설 자부담금 마련 2012 12

8.     장류가공시설 운영 시작 2013 10  


 

1.     법인 설립과 운영조직(이사회) 구성

1.1   법인설립

-       원칙적으로 단일 법인으로 해야 운영의 효율화를 기할 수 있다

-       출자는 마을주민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       이사회는 주민총회(주주총회)에서 구성한다.

-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외부 출자자도 허용한다.(출향인 등)

-       출자 주체는 개인이어야 한다.

-       개인의 출자한도는 출자 총액의 30%이하로 제한하여 의사결정의 독점을 막는다.

-       출자금은 장류가공시설 자부담품 포함 1억에서 15천만원 정도가 적절하다.

-       출자금은 일정기간동안 이익 배당을 보류하여, 법인설립에서 출자 완료기간 동안 출자 시기에 따른 권리 차별을 두지 않는다.

-       현 위원은 모범적으로 출자에 참여하여 여타 마을 주민의 출자 의지를 북돋는다. 

 

타 권역의 사례

1.     예천회룡포권역

-       농산물 가공시설을 별도 법인으로 하고 모법인에 보조금의 1% 지불 

2.     상운권역

-  마을별 대표1인으로 운영위 구성, 1인당 50만원 출자로 모법인 구성. 개인자격으로 출자

-  저온저장고, 장류가공시설은 별도 법인으로 하고 보조금의 년 1%를 모법인에 납부.

 

3.     춘양서벽권역

- 솔잎엑기스공장, 장류공장 등은 별도 법인, 저온저장고등은 모법인 소유로 작목반 등에 임대

- 보조법인은 보조금의 년3% / 15년동안 모법인에 납부.

 

1.2   운영위(법인)구성

                   - 운영위(이사회)는 운영위원장, 사무국장(총무/회계), 경제사업부장
                      (
부위원장), 탄매팀장
  가공팀장, 교육사업부장(부위원장),
                       
학교사업팀장, 귀농귀촌지원팀장 등으로 구성한다.

- 운영초기에는 경제사업장이 가공팀장(공장장), 교육사업부장이 귀농지원팀장을 겸임하는 등  조직구성을 단촐하게 할 수도 있다.

- 판매팀은 농산물홍보관을, 가공팀은 가공공장을, 학교사업팀은 활성화센타를 귀농지원팀은 귀농연수관을 관리, 운영한다.

 

1.3 출자금 모집 방안

- 초기에는 운영위원들이 일정액을 모범적으로 출자한뒤, 법인을 등록하고, 이후 공개적으로 마을주민에게 홍보하여 출자에 참여토록 유도한다.

- 법인 설립을 위한 최소 출자액을 1,000만원으로 하고 이를 빠른 시일내 달성토록 노력한다.

  

2.     사업별 운영방안

2.1   농산물 홍보관

-       임대, 위탁운영 혹은 직영할 수 있다.

-       임대 시 안정적인 임대료를 받을 수 있고, 업무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       위탁운영시 <() 만리산사과작목반)> 판매량에 따라 수수료를 징수하는 방법이 있다.

-       직영 시 농산물 판매에 따른 수수료를 징수 하고, 시설 관리, 판매 등에  인력을 배치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가능 수입을 증대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시설의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       임대시 연 임대료를 500만원으로 한다.

 

2.2   귀농연수관

-       예비귀농자 대상 장기 임대(3개월에서 1년단위)를 주로 하고  년 임대료 1~200백만원 정도가 적절하다고 본다.(전기세, 연료비 등 별도)

-       6채를 전부 귀농연수관으로 임대하지 않고 2~3채는 펜션으로 사용해 수입 증대를 기할 수도 있다.

-       년 총 1,000만원 수입 중 관리비, 관리인건비 충당후 순수익 500만원 정도 예상된다.

-       현 귀농 상담자의 수요만 보아도 운영에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2.3   마을활성화센타

- 주시설 : 강의실, 침실, 식당, 휴게실(까페)로 구성  

- 주사업 :

1) 공간 임대 및 숙식 제공 : 단체 MT, 연수를 위한 공간으로 임대하고, 관내 레프팅 업체 등과 협약하여 숙박을 제공한다.

2) 교육사업/문화예술, 농업농촌 관련 교육사업 중심으로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 건강관련 프로그램, 시민강좌 등을 개설하여 도시민을 유치한다.

 

- 운영방안

1) ‘교육사업의 성격을 정확히 하여, 타권역과 차별성있는 최고의 강좌,  최고의 강사로 꾸려진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2) 지역내 다양한 인재를 발굴 육성하여 프로그램 진행에 적극 활용한다   () 심마니, 서예가(정민호학예사), 헬스전문가, 태권도유단자, 미술가, 생태해설가  숲해설가, 농사이야기꾼, 사과박사, 마을나룻터지기 등을 임명하여 프로그램 진행에 참여토록 한다.

3) 마켓팅 대상을 정확히 하여 고객유치를 위한 외부 자문단을 꾸리고 이를 적극 활용한다.

4) 강의실은 연 50, 숙박시설 연 100일 이상 운영을 초기목표로 한다.

5) 식당은 마을 부녀회를 활용 지원팀을 꾸려 직접 운영하거나, 지역 업체에 운영을 위탁할 수 있다.

6) 휴게실은 음악까페로 활용한다. 직접 운영도 가능하나. 위탁운영, 임대도 가능하다 년 임대료 3~500만원 예상.

7) 마을활성화센타내 명호관광안내소를 설치 운영한다. 지역내 식당, 민박, 래프팅 등   업체로부터 유상등록케하여, 각종 인쇄물 등에 홍보해주고 고객 유치하여 배정하고 적정한 수수료를 받음.< () 매출의 5% >
 

* 학교 운영관련 외부 자문윈원단을 구성중.

- 자문위원단은 년 1회정도 학교사업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보고받고,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에서 지원할 방안을 강구하는 것을 의무로 합니다.

현재까지는 예술문화 관련한 영역에 계신 분을 위주로 구상 중인데 '사업에 도움이 될만한' 분이 계시면 추가해 나가야. 현재까지 접촉했거나 제안하면 승락해 주실 분은 다음과 같음.

<개인신상정보로 생략>


 2.4   장류가공시설 (다음으로 연기)

 

 

초롱축제 기초기획안 

-       착안: 초롱계를 모태로 하여 그 문화와 정신을 계승 지역 통합과 활성화를 도모할 마을 축제를 개발한다.

-       초롱계란? 마을에 전기가 없던 시절, 이웃의 대소사에 주민들이 초롱불을 만들어 걸어주고,

        두부나 떡을 부조하던 풍습. 비나리, 고계리 등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전함

-       1970년대에 사라졌지만 2003년 비나리미술관 개관식 재현하여 많은 호응을 받음(4개방송국 방영)

-       이를 마을내 행사에서 권역의 축제로 확대 발전시키는 형태가 될 것

-       주민의 통합, 마을 간의 통합, 그리고 서로 돕고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 공동체의 건강한 원시성을 드러내는 축제가 될 것임.

-       구체적 안으로는 각리별 대항 올해의 초롱시상제, 각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 초롱을 들고 활성화센타로 모여듬.

-       활성화센타에서 다양한 공연, 행사 등을 진행

-       12일 정도의 축제로, 5월고추정식 직후 정도에 맞추면 좋을 것 같음

-       1일차 만리산 사과과수원 찍기 사진대회, 위뒷실 마을 그리기 사생대회초롱행렬, 공연 및 잔치, 장터운영, 농촌미술제, 농촌문학제 등 진행,

-       2일차 올해의 초롱선발 및 시상식, 사생대회 평가 및 시상식

-       마을 역사 사진전 개최,

-       마을이야기 구술대회 등 개최

-       주민 솜씨 자랑 농부는 예술가전 개최

-       초기에는 주민 단합과 지역 홍보, 지역 문화수집에 집중하나 장기적으로는

-       농촌공동체 문화의 성지로 키워나갈 것을 도모한다.

-       농촌다문화축제 인터빌리지구상

-       사라져 가는 농촌 공동체 문화를 수집, 복원, 집약하여 농촌다문화 축제로 만드는 과정은 봉화군내 타 권역과 공동으로 추진 가능.

 

재정 계획 기초기획안 

-       출자금 : 1 ~ 15

-       년 예상 수입

농산물홍보관 임대료 : 500만원

학교임대료(숙박포함) : 1 (50명기준) 50만원*50 = 2,500만원

식당운영(임대)수입 :  40*100*2*5,000 = 4,000만원

까페임대료 : 300만원

강좌진행수입 : 3,000만원(10강좌/ 20/20만원)

귀농자연수관임대료 : 1,200만원

 

합계 11,500만원 중 목표 70% 달성시 약 8,000만원

 

-       비용

건물유지관리 : 수도료, 전기료, 연료비, 보수, 소모품 등 : 1,000만원

프로그램진행비, 강사료 등 : 1,000만원

식재료비 : 2,000만원

시설관리자인건비 : 500만원 (자활기관 청소사업활용)

식당운영인건비 : 1,000만원

전담자 인건비 : 1,000만원(사무장 외 1)

 

-       순수익

2011년 수익 0를 목표

2012년부터 수익 +로 전환

2014년부터(장류사업시작년도) 출자배당을 하는 것을 목표

 --------- 이상 -------------

반응형
반응형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도립공원 서쪽 맞은편에 만리산이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명호면 관창리와 상운면 신라리에 걸쳐있는 만리산은
해발 792m로 정산부근에 비교적 완만한 지형의 넓은 농토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직접 가보기 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들만치 
산 정상부근에 넓은 농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밭은 옛날부터 소 9마리가 갈아야 할 만치 넓은 밭이라고
구우전(九牛田)이라 불려 왔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민들은 이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구우전을 중심으로 10여가구가 삶의 터전을 일구며 마을을 이루어 있는데
1950년대는 빨치산과 내통한다고 한 때 마을주민 모두가
강제 이주당하기도 했고,
1960년대는 울진삼척 일대의 독농가들이
무장공비와 내통할 우려가 있다고 하여
이 마을로 강제 이주당하기도 한
특이한 내력을 가진 마을입니다.
지금도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집단이주민 주택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마을은 최근까지 고냉지 채소재배단지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고냉지 채소를 많이 재배하기도 하지만 
10수년 전부터 사과과수원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봉화군내에서도 사과 재배단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몇년전 마을 작목반에서 재배한 사과가 [탑푸르트]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국내뿐 아니라 수출용으로도 각광을 받는
품질좋은 사과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저가 이 마을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이유는 사과맛이 아니라
마을과 과수원의 풍광때문이기도 하고
그 마을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 때문입니다.
10여년전부터 마을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귀향을 하고
지금은 40대의 젊의 친구들이 4가구나 고향마을을 지키며
아름다운 과수원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처자식과 더불어 만리산 기슭에
아름다운 과수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타인의 가슴에 온기를 전해주기에 충분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서 더욱 아름다운 만리산 과수원은
낙동강을 사이로 청량산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마을의 동쪽 기슭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강을 건너 청량산이 우뚝솟아 마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시사철 밭에서, 집에서 고개만 돌리면
멀리 청량산과 청량산 기슭에 자리잡은 또다른 마을인
윗뒤실마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시사철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지만
특히나 사과꽃만발한 봄이나
과수원의 사과가 익어가는 늦가을이면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마을이 있을까 싶을만치
구우전 마을의 아름다움은 그 극에 도달합니다.



그러다보니 봄이면 사과꽃 그늘아래서 
봄날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찾아오는 도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아마추어나 프로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진가들이 몰려듭니다.
가을이면 사과다기 체험을 하기위한 도시민의 발길이 
또 한번 몰려듭니다. 아직 마을까지 대형 버스가 올라올 수 있는 
도로 여건은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마을아래에서 승용차나 승합차,
어떤 때는 동네 트럭에 나누어 타고 사과수확체험에
나서는 도시민의 상기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곳 구우밭마을의 과수원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몇일전 우리집 사과나무 심기를 도와준 친구네 과수원에서
추가로 조성하는 사과밭의 나무심기 작업을 하였습니다.
삽질에 허리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고개를 들어 멀리 청량산을 바라다 보면
어느덧 육체적 고통이 가쉬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 더욱 아름다운
만리산 사과과수원에서 보낸 오늘 하루.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 '마을운동'과 '마을사업'의 통일을 추구하며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 마을 사업이란 것을 시작한지 벌써 7~8년이 지났다.
그동안 마을 주민과 지도자 여러분과 함께 노력한 덕분으로
2002년부터 농협주관의 <팜스태이마을>, 농림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
행자부의 <정보화마을>사업에다가 최근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까지
우리 지역에 유치하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만 본다면 우리지역은 엄청난 정책적 수혜를 본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하고 주민이 주도한 이런 사업을 통해
지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마을에 근접하게 되었는지 재대로 짚어본 적이 없다..
그들 사업의 중심에 서서 함께 노력한 주민의 한 사람이자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
그 각각의 사업이 마을에 어떤 부정적 , 긍적덕 영향을 미쳤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뒤돌아보면 각각의 사업이 애초에 목적한 바가 무엇인지 불명확가운데
우선 욕심에 사업을 유치한 경우도 있었고,
유치당시 생각했던 취지나 의의를 잊고 왜곡되거나 정체되어버린 사업도 없지않다.
또한 각각의 사업 관련 주문 기관도 행정기관 개편이나 정권이 바뀜에 따라
덩달아 바뀐 경우도 많았고, 그와 동시에 사업의 중심 성격도 바뀌어 온 면이 많다.
근본적인 문제는 마을 사업이 마을 주민과 괴리된채 굴러 오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문제의식으로 갖고도 극복하는데 상당히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 점 역시 뒤짚어 보는 과정에서 그 사업의 본질적 성격과 한계, 그리고 성과가 드러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농촌마을 사업에 대한 평가에 앞서 어떤 잣대를 들이될 것인가,
어떤 가치에 기반한 시각이 타당한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농촌마을 사업에 대한 보다 정확한 평가를 가능하게 하고,
주민의 입장에서, 주민의 이익이라는 면에서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의 예산 지원을 받는 마을 사업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자주 보아 왔고,
또한 마을의 보전하고 북돋아야할 가치나, 마을의 미래, 마을 주민의 삶의 질에 무관하게
무조건 관의 예산을 따 오는 것만을 능사로 아는 사업주체들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농촌 공동체를 새로운 미래 사회의 대안공동체로 이상화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편에서 농촌을 산업경쟁력이란 면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현대화를 통해 개조, 계몽해야할 지역으로
극단적으로는 해체하고 정리해야할 지역으로 보기도 한다.
어떤 가치 포지션을 갖는가는, 그 평가자의 정치적 포지션과 일치하기도 하는데
이 점이 농촌마을 사업에 대한 평가가 정치성을 띠거나
가치논쟁으로까지 나아가야될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농촌 공동체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의 보존을 주장하는 편에서도
'마을사업'과 '마을운동'을 갈라놓고 
마을 사업의 타협성을, 마을 운동의 관념성을 서로 질타하기도 한다.
이 또한 마을관련한 논의를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사실 MB정권 들어오고나서 농촌관련 사업이 대폭 축소되었다.
예산상의 수치도 면밀히 검토해봐야겠지만
농촌 주민으로서 체감하는 정책적 수혜는 대폭 줄거나 까다로와졌다.
당장 [농촌마을 종합개발 사업] 대상지를 더이상 선정하지 않게되었다고 한다.
지방정부에 이 사업 자체를 이양한다고 한다.
당연히 MB정부들어 부자 감세를 감행하다보니 지방 교부금이 줄어들었고,
지자체는 당연히 이사업을 계속 해 나갈 여력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정보화마을사업, 녹색체험마을 사업도
거의 신규사업을 선정하지 않거나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듯하다.
당장 우리마을도 올해부터 월급 120만원짜리 녹색체험마을 실무자 한명의
일자리가 날아가 버렸다.
없어지는 농촌사업은 많은데 새로운 신규 농촌 사업은 없다.
농촌대한 사업 비중이 줄어든 만치
농촌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할까?
분명한 것은 MB정부에게 농촌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지만
이 모든 점이 농촌공동체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어떤 가치를 보전하고 육성할 것인지?
현대 산업사회사회,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농촌 공동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마을의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을 무엇인지
그려나가는 작업의 필요성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농민의 한 사람으로, 다양한 마을 사업의 실무경험자의 한사람으로
미천한 블로그에 다양한 마을사업의 경험을 토대로
그 한계와 성과, 바람직한 농촌마을 운동/사업의 형태와
농촌의 미래상과 관련한 단상을 
10여회에 나누어 정리해 볼 예정이다.
 
반응형
반응형

몇일전 면소재지 명호농협 경제 사무실에
엔진 톱 윤활유를 사러 간길에
이웃 고계리 형님을 한분 만났습니다.
이 형님은 새마을 지도자로
청량산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저랑 같이 활동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형님께서는 평소에도 친절하고 좋은 인상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이날따라 특별히 반가워하시며
잠시 부탁을 좀 할게 있다며 저를 잡아 끌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부탁을 듣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마을 기록 공원] 사업 추진 기획서를
한장 작성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형님의 입을 통해 들은 내용에
저 자신의 생각을 곁들인 이 사업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고계리는 고인돌이 많은 마을인데
그 고인돌이 개발의 여파로 하나둘 사라져 왔고 이제 몇 기 남아 있지도 않다.
마을의 유구한 역사의 상징과 같은 고인돌이 사라지듯,
마을 주민들도 계속 줄어왔다.
지금 같아선 언제 마을마저 사라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2. 마을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기존 마을 구성원은 늙어가고
귀농자들이 새로 들어온다고해도 마을의 정체성, 연속성을 사라질 수 있다.

3. 따라서 지금까지의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고 후대에 남겨
마을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하고
후대까지 마을에 대한 사랑을 보전하도록 한다.

4. 그를 위해  생존해 계신 어른들을 중심으로 
앞 뒤 2~3대의 가문 조사를 해서 책으로 묶고, 
지금까지 마을에 보관하고 있는 초롱계, 두레 관련 문서를 정리하여
보존 처리를 하자.
 
5. 내년에 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마을 전체를 돌담장을 쌓는 등 마을이
획기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마을의 요지에 평소에 마을주민의 쉼터이자,
마을 잔치 등을 열수 있는 마을광장으로 기능하는
'마을기록공원'을 만들어, 고인돌을 마을 상징물로 세우고,
그 아래 마을역사기록물 등을 담은 타임캡슐을 묻어 영구 보관토록하자. 

여기다가 사업 추진위 구성부터, 재원조달, 사업의 절차 등을 추가하는
세부 기획을 이번 주말에 초안 수준에서 완성할 계획입니다.

사실 이번 사업 제안을 받고 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를 비롯해 지역 사회에 나름대로 대학고 나오고 
도시생활의 경험도 있는 젊은 주민들이 드물지 않게 있지만
이렇게 마을 공동체의 유구한 삶에 대한 사랑과
그 미래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희생적으로 이를 복원하고 보전하는데 나서는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50대 중반의 마을 주민이 그와같은 생각을 가지고
몸소 실천하는 모습은 저에게 큰 같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형님의 부탁을 받고 저는 흔쾌히 이 작업에 동참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물질적 보상은 없지만 워낙 취지가 좋은 일이다보니
저는 바로 그 마을의 주민이 아니라
이웃마을 주민일 뿐이지만
저가 랄 수 있는 문서작성이나 자료정리,
사업설명 등이 필요할 경우 등을 통해  무한 봉사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더 큰 배움을 얻고 또 다른 형태로 발전시킨
마을을 보전하고 사람의 온기가 넘치는 마을을 만드는 일에
활용해 나갈 것입니다.

사라져 가는 마을,
마을 역사를 살려서 마을을 보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반응형
반응형

청량산비나리 정보화마을 주민 교육이 이특째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블로그와 트위트의 활용]이었습니다.
그동안 막연히 트위터가 무엇인지,
트위터를 블로그에 어떻게 연동한다는 건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교육을 받고는 그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되었습니다.
덤으로 최일규 강사님의 배려로 '아이폰'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접하고 이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 교육에 참가한 주민 모두 유익한 저녁시간을 같이 보내고
즐거운 배움의 기회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교육 덕분에 마을 주민 블로그가 엉청 늘어났습니다.
모두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아기자기 오손도손
나름의 세상을 꾸려 나가실 것입니다.
한번씩 찾아보시고 반가운 인사도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마을 주민 티스토리 블로그를 소개합니다.*

정규상  http://nevercom.tistory.com

이용성  http://namunesup.tistory.com

정근영  http://skylili.tistory.com

김종미  http://whitechocolat.tistory.com

윤미희  http://wowbada.tistory.com

반응형
반응형

오늘 저녁에 청량산비나리마을 정보센타에서
개방형 블로그 활용 교육이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중에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운영중이거나
앞으로 운영할 의향이 있는 10여분이 한자리에 모여
최일규 강사님(씨앤제이 대표/경북 경산시)의 열강을 들었습니다.
막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한 저와 나무아빠,
막 귀농하셨지만 올해 당장 대추를 팔아야할 민서네 부부,
밭두렁 공부방 블로그를 운영할 생각이신 김종미 선생님 내외분,
마을종합개발사업 사무장이신 정근영아씨 등
우리 마을의 젊음이가 거의 총출동을 했습니다.


도대체 블로그가 무엇인지,
특히나 개방형 블로그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는 물론 
개방형 블로그를 대표하는 티스토리는 어떻게 만들고 운영해야할지
저녁 늦은 시간까지 식사도 거르고 최일규님 강사님께서 열강을 해 주셨습니다.
수강생 10명인 소박한 교육이다보니 편하게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면서,
우스개 소리도 주고 받으며 밤깊어가는 줄 모르고 교육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내일, 모레까지 계속될 이번 교육을 통해
마을에는 갑자기 트위터와 아이폰 같은 첨단 IT정보를 갖춘
티스토리 블로그 운영자가 늘어날 것 같습니다.


밤 10시가 다 되어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마을 운영위원장이신 김신현 형님께서 
안동찜닭이며, 닭튀김에다가 맥주까지 한 보따리 사들고 
찾아 주셨습니다. 
교육에 참여해주신 주민들도 고맙고,
밤 늦도록 열강해주신 강사님도 고맙고,
밤늦은 시간 참까지 공수해 주신 위원장님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강사님과 교육생이 함께  밤참을 먹으며
강의 시간보다 더 열띤 토론과 정보공유의 시간을 자정이 다 되도록 이어갔습니다.
서로의 블로그를 평가하고, 자신의 블로그 운영과정에서 느낀 문제의식도 풀어놓고 함께 고민하면서 맥주를 한잔 나누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어떻게 저 자신의 조건에 맞는 포스팅 방향을 설정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농촌의 정보화를 이루기 위한 '농촌 정보화마을 사업'이
언제부턴가 투입대비 효율이란 잣대로 부정적 평가를 받고
언론이나 정치권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는다고 하지만
정보화마을 주민의 입장에서 '정보화마을사업'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이렇게 마을 주민이 모여 밤늦도록 첨단 IT에 대한 정보도 습득하고
블로그 운영 등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다 '정보화마을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가꾸는 청량산비나리정보화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람살만한 마을로 이어져 나가것이라 생각됩니다.
청량산비나리정보화마을 화이팅!! 
반응형
반응형
아침 일찍부터 우리집 마당 앞 언덕 소나무에 메달린 스피커에 
이장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오늘은 농자금을 분배하는 날이 오니 주민 께서는 각 반별로 ..."
9시30분에 마을회관에 갔습니다.
미리 나와계신 반장님과 주민 몇몇분이 한상 둘러앉아
농자금 이야기는 뒷전이고 고추모종이며, 날씨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농자금은 농사 규모와 주민 수에 따라 각 마을별로 배당된 1년짜리 저리 융자금입니다.
가구별로 1000만원이 한도이고, 융자 절차는 다른 대출상품보다 훨씬 간편하고 이자도 연리 3%에 불과합니다. 그 이자조차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시군 예산으로 전액 보전해주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 봉화군은 50%를 나중에 돌려줍니다. 그러니 실 이자는 연 1.5%에 불과합니다.

사실 이자율만 놓고 보면 '와 농촌은 좋겠다'고 하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농업현실에서 1.5%의 이자조차 결코 만만한게 아닙니다.
농업 생산성이 그만치 낮고, 농산물의 상대적 가치가 그만치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도 우리 동네에는 대출금이 연체되어 논밭이 전부 경매에 넘어가신 분이 계십니다.
한해한해 가면갈수록 이동네 저동네에서 한 농가, 두 농가가 그렇게 무너져 내립니다.
올해도 벌써 어느 동네 어느 분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식의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가평균소득은 지난 9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줄어 도시가구 평균소득의 65% 전후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매년 실질 소득은 줄어들고 도시와의 소득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연리 1.5%짜리 농자금도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당장 저부터 이자만 갚고 아직 갚지 못한 작년 농자금을 대환하면 
그뿐입니다. 마을회관에 모인 이웃들의 사정도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모두들 돈 들어갈 때는 많고 소득은 없으니 어쩌다 생긴 빚을 갚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한국 농촌의 현실입니다.


사실 아무리 농촌이 어렵다고 아우성쳐도 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정부의 정책적 배려는 포기한지 오래고, 그냥 자연감소와 사회적 이탈을 통해 지금 농가인구의
1/4정도를 적정 농가인구로 보고 비대한 농촌인구를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 적정인구수준으로 끌어내리겠다는게 그 잘난 정책당국의 속마음이니... 어쩝니까? 그냥 열심히 농사지어 개인적으로라도 살아남아야죠^^*

농자금 나누는 날은 왠지 우울합니다.
반응형
반응형
어제는 아침부터 이웃 은혜네 집 비닐하우스에
마을 젊은이가 모였습니다.
마을 젊은이라고 해봤자 50대 중반인 은혜아빠와
내일모레면 50인 저가 거의 전부였는데
근년에 귀농하신 40대초반인 꺼굴재 정형과 30대 후반인 양지마 은서아빠가
함께 하시니 진짜 '젊은이'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잠시지만 50대 과수원집 한형과 개울건너 김형이 합류하다보니
그럴듯한 마을 일꾼이 마을 꽃길가꾸기에 다 나선 셈입니다.

이날 할일은 마을을 꾸밀 접시꽃을 포트에 파종하는 일입니다.
상토를 날라 포트에 담고, 포트에 한알 한알 접시꽃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몸으로 하는 일이 대부분 다 그렇듯 처음에는 별거아니네 하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가고 허리에 피로가 쌓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아이고 허리야, 와이리 일이 더디노?"라며 중얼거리게 됩니다.

다행이 아침 9시30분부터 따뜻한 비닐하우스안에서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 나누며 정겨운 이웃과 
접시꽃씨를 심는 정취는 이곳 산골마을살이를 하는 사람이아니고는
맛볼 수 없습니다.
은혜 아빠가 말씀하십니다.
 "나중에 접시꽃 만발할 때 도종환시인 함 마을에 청하면 어떨니껴?"
옹기종기 모여낮아 꽃씨를 심던 사람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침니다.
"좋십미더. 도종환 시인 청해갔고, 마을 잔치도 하고, 축제도 하면 좋겠는데예!"

그렇게 일은 점심께가 되자 마무리되고
모두들 아쁜 허리를 펴고 뒷정리를 한뒤,
모두 같이 맛난 점심을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이날 따라 비나리마을이 더욱 아름다와 보입니다.

반응형
반응형

방금 전 비나리 동제가 있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이번 동제에도 유사를 맡아 방금 귀가해서 

올해의 비나리마을 동제를 기록해 봅니다.

이렇게나마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이유는

비나리마을 동제가 언제까지 존속할까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비나리마을 동제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아

그 정확한 유래를 알수 없지만 주민들은 적어도

수백년동안 전해져 왔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비나리마을 동제는 아기장수 임장군의 전설과 결합되어

임장군을 동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를 미루어 봐도 비나리마을 동제의 역사는 실로 깊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근년에들어 동제를 치룰 사람이 부족해진데다.

종교적인 이유로 동제에 참가하지 않으시는 분도 생기고,

또한 동제가 주는 마을주민의 화합과 정체성강화 기제도 줄어들다보니 

마을 동제가 얼마가 존속할지 몇년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당제에 들어가는 비용과 찬조금의 액수를 비교해봐도 확연합니다.

오래전에는 비용보다 찬조금이 더 많이 들어왔었지만,

10여년 전부터 비용과 찬조금이 비슷해지다가

최근에는 찬조금이 급격히 줄어들어 많지도 않은 동네기금이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그러다보니 몇년전부터 동제를 없애자는 의견도 마을회의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형식을 간소하게 하거나, 뜻있는 몇몇분이서나마 명맥을 유지하자는 등의

논란이 오고가고 있습니다.

 

저는 몇년전부터 유사로 마을제에 참가한 뒤로 최근에는

계속해서 유사를 맡고 있습니다.

유사는 동제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여러 잡무를 보는 역할로

장을 보고, 돼지를 잡고, 상을 차리고, 당나무 주변을 청소하

거의 대부분의 실무를 담당합니다.

그런제 당제는 제관과 당주가 주로 진행을 하다보니

유사는 그냥 시키는 데로 따라만 할뿐 제사의 형식이나 절차에 대해

무관심한게 사실입니다.


 
비나리 동제는 정원 초사흘날 당주를 뽑고 축관1,

제관3, 유사 5명을 정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를 당주뽑기라고도 하고 '청과고미'라고도 하는데

청과고미가 어떤 어원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10명의 사람들은 정월 12일날 새벽 집대문에 금줄을 걸고,

새벽일찍 동네 다른 주민의 눈에 띄이지 않게 당제에 제물 장을 보러 갑니다.

그리고 당제가 있는 날 까지 내내 몸과 마을을 정갈히 합니다.

당제를 지내기 전까지 이웃과 다툼을 한다던지,

노름이나 과음을 한다던지 하면

부정이 끼어 마을에 재앙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때 붉은 흙을 퍼와서 마을 입구에서부터

당나무를 지나 당주집까지 한삽씩 부어놓습니다.

잡귀를 막는 의미랍니다..



정월열사흘날 유사들이 모여 당나무 주변을 청소합니다.

정원 열날흘날 아침 일찍부터 유사들은 역할을 나눠 돼지를 사러가고,

제기와 여타 집기를 챙기고,

당나무 밑에 불을 지피고 솥을 걸어 돼지를 잡을 준비를 놓습니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마을 주민들은 가구별로  

당나무 아래서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장작더미를 날라다 줍니다.

가구마다 지게로 한짐씩 날라오는데 기력이 없는 노인분은

조금만 가져와도 돼지만 , 어떤 분들은 한경운기 가득 싣어오시기도 합니다.

 

돼지를 사오고 나면 유사들이 모두 모여 돼지를 잡습니다.

돼지를 잡는 일은 동제의 가장 큰 일입니다.

살생을 꺼리는 분도 계시고, 그 즈음 혼례가 있거나 손주를 보거나

하는 길흉사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돼지를 잡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아예 제사에 참가하지도 않는 분도 계십니다.

잡은 돼지는 각을 떼어 당나무밑에 나무를 걸치고

나무에 고기를 묶어 달아놓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당주가 준비한 밥을 지게에 지고 내려옵니다.

당주는 제사준비의 잡일은 보지 않지만 가장 신경을 많이 책임이 크십니다.

그러다보니 유사들 고생한다고 점심까지 준비해서 대접해야합니다.

유사들이 먹을 밥은 생선이나 육고기 반찬이 들어가면 절대로 안됩니다.

오직 나물같은 식물성으로만 이루어진 식단을 준비해야 한답니다.

 

오후가 되면 나무에 달아놓은 고기를 풀어 삶기 시작합니다.

고기를 삶기 전후해 장작을 지고 오신 주민이나 당나무 앞을 지나가는

주민들이 합류해 같이 일을 거들거나 술도 나누면서 덕담도 합니다.

이때 어떤 분들은 술과 음료나 먹을 거리를 준비해서 유사들을 대접하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면 조를 나누어 유사들은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목욕을 한후 다시 당나무 밑으로 모입니다.

그렇게 해서 10시정도면 본격적인 제사상 준비에 들어갑니다.

먼저 백설기를 앉힙니다.

간을 하지 않고 작은 떡찜기에 떡가루를 담고 나무불로만 떡을 찝니다.

그리고 곁에는 역시 작은 솥에다 흰밥을 합니다.

떡은 당주가 해야하고, 밥은 유사들이 합니다.

밥쌀은 9번을 씻어 앉혀야되고,

밥을 하는 중에는 절대 솥뚜껑을 열면 안된답니다.

그러다보니 불세기를 잘 조정해서 밥을 타지 않게 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닙니다.

많은 정성을 들여서 떡과 밥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형식들입니다.

 

오후 1130분정도가 되면 제관과 당주가 모이고

보격적으로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물은 모두 당주가 준비를 합니다.

집에서 담은 막걸리와 당나무 아래에서 직접 지은 ,, 탕국,

그리고 여러가지 제물을 절차와 순서에 따라 상에 올립니다.

자정이 되면 당주 주관으로 제사를 올립니다.

모두 절을 하고 축관이 축을 하고 나면

당주가 마을을 대표해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소지를 올립니다.

당주가 소지를 올리고 나면

이날 제사에 찬조를 하면서 소지를 부탁한들의 소지를 올립니다.

그리고 제관과 유사들도 나름대로 집안의 건강과 안녕,

올 한해 풍년농사를 비는 소지를 올립니다.

 

자정을 넘기고 12 30분이면 제사가 끝나고

제관과 당주는 대부분 집으로 돌아갑니다.

유사들만 제물을 거두고 모든 기자제나 장비를 거두어 마을 회관으로 갑니다.

마을 회관에는 두어분의 부녀회원이 기다리고 계신데 이분들과 함께

다음날 마을 주민에게 나누어줄 돼지고기를 자릅니다.

50가구에 돌아가도록

고기를 자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고기를 잘라 50등분으로 나누고 나면 모든 절차가 끝이 납니다.

유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날이 밝으면

마을회관에 온 주민이 모여 마을 총회를 열고

술과 음식을 나무며 잔치를 벌립니다.

 

올 한해 비나리주민 모두 건강하시고,

집안 두루 편안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반응형
반응형

어제는 우리 명호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졸업생보다 참가한 기관장이 더 많은 산골학교 졸업식이지만

세상의 어느 졸업식 못지않은 의미있고 아름다운 졸업식이었습니다.

 

두 학교 졸업생을 다 합쳐 10여명을 조금 넘는 학생이 졸업을 했지만

우리 명호에서 가장 멋진 졸업생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다동이 엄마이신 예연이 어머니십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 되고

정부는 뒤늦게 출산장려다 어쩐다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산골마을은 벌써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기고

산골학교는 비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귀하게 된 것은,

그만치 아이키우기가 어려워진 세상 탓일겁니다.

 

이전시대에는 잘사니 못사니 해도 아버지의 벌이로 한가족이 먹고살고,

가족의 틀내에서 아이의 양육이 어떤 식으로든 보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어 물량으로는 더 풍요로와졌지만

마음으로는 더 쫓기고 가난해졌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까지 돈벌이에 나서야만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맞벌이는 보편화되었지만

그에 맞춰 육아와 양육이 사회적으로 지원되고 보장되지 못하다보니

당연히 사람들은 출산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 왔지만

예연이 엄마는 당당한 다동이 엄마입니다.

예연이, 시연이, 청년이, 서연이

이렇게 네 자녀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그런 다동이 엄마가 어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네 자녀의 엄마로서도 하나도 부족함없이,

그리고 한명의 아내로서나, 시부모님의 며느리로서나

흠잡을 데 없는 모범 아내, 모범 며느리로 생활하면서,

그것도 "청량산장"(http://www.crsanjang.com/)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시면서
 
언제 어떻게 공부하시고 학교를 다니셨는지

지역 주민 모두가 깜짝 놀랬습니다.

 

사실 요즘의 졸업은 그렇게 어렵거나 귀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입학하고, 그리 어렵지 않게 졸업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예연이 엄마의 졸업이 그렇게 값진 것은

4아이의 엄마로서, 또 그렇게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그 모든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성취한 졸업이기 때문입니다.

 

축하케익을 자르고 건배를 올리면서 예연히 엄마는

오히러 졸업의 공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돌렸습니다.

 

"다 예연이 아빠 덕분입니다. 저희 남편께 감사드리구요.

그리고 기다려준 우리 아이들도 너무 고마워요."

 

모두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예연히 아빠의 이해와 마음의 지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의 졸업이 가능했겠습니까.

하지만 예연히 엄마였기에 여러가지로 어려운 형편속에서도

대학을 다니고 이렇게 졸업까지 하실 수 있었을 겁니다.

예연이 가족의 사랑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의 한사람으로서 무엇보다 더 고마운 것은

예연히 엄마를 통해 지역에 배움의 가치가 확산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두가 굳이 대학을 졸업할 필요도 없습니다만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배움의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연이네는 세상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지 위한

복지 사업에 대한 큰 희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정은 끊임없는 봉사와 배움의 과정들로 채워져야 할 것입니다.

그 원칙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배우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계신

예연이네 부부께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날 저녁 마을의 젊은 친구들이 예연이 엄마의 졸업을 축하드리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사실, 먹고 마시다보니 나중에는 졸업을 축하드리는 자린지,

줄업축하를 빌미로 술먹고 놀기 위한 자린지 불명확하게 되었지만

10여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윷판까지 벌려가면서

모처럼 흥겹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내린 눈때문에 졸업식에도 못가보고
이러헤 저녁파티 사진으로만 예쁜 소식 꾸몃습니다.
예연이 엄마의 졸업을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