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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종합사업 청량산비나리권역 위원들과

횡성군 공근면 금계리에 있는 금계권역에 견학을 다녀왔다.
금계권역은 2009년도 평가에서 전국 최우수 권역으로 선정되어
추가 상사업비 5억원을 받을 정도로 
성공적인 마을사업의 사레로 알려져 왔다.

곧 마을사업 운영을 시작해야된 우리 권역의 입장에서는
앞서가는 마을의 사례를 통해 우리마을의 발전방향을 타진해보고
세세한 마을운영의 노하우를 배우는 기회가 필요했기때문에
고추와 사과 수확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바쁜철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서게 되었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마을사업이 잘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고,
각종 평가에서 높은 정수를 받은 맣은 마을들을 견학가 봤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획기적인 마을,
참으로 성공적인 마을은 많이 보질 못했다.
이번 견학에는 무엇보다 소득사업을 어떻게 착안하여 만들어 내고
주민들과 함께 운영해 나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근 3시 을 달려 도착한 금계권역은 특별한 관광자원이 없고
유명한 횡성 한우를 사육하는 농가가 많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밭농사보다는 논농사가 많아 보였다.

마을위원장으로 부터 전해들은 금계 권역은
마을사업이 주민의 생업인 농업과 폭넓게 결합하고 있는 면도 그렇고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마을 운영의 노하우도 그렇고
여러가지 면에서 부러운 점이 많은 마을이었다.


무엇보다 오랜 친환경 벼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살림 생협과 협력사업을 해오고 있는 점은 너무 부러왔다.
그리고 그 기반위에 친환경 쌀을 공급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원재료를 가공해 누룽지를 만들어 또 한살림에 공급하고 있었다.
마을 종합개발사업이 그렇게 구체적인 마을 농업 자원과 결합되어
생산성있는 가공 사업으로 자연스레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우로 유명한 횡성에 걸맞게 
한우 체험장을 만들어 위탁사육으로 소득을 올리는 모습도 좋았고,
고냉지 배추를 기반으로해서 준비중인 김치가공공장,
마을주민을 고객으로 한 마을방앗간 등도
지역에 맞는 아이템으로 성공가능성이 엿보였다.


특히 권순근 마을운영위원장의 훌륭한 마을운영마인드가 덧보였다.
마을 주민을 설득해 체험학교 운영자를 외부에서 영입해 마을 자원으로 만든다던지, 능력있는 마을사무장을 영입하여
마을 사업을 꾸려나가시는 모습은 마을사업이 어떻게 운영되어야하고
어떤 발전 방향성을 가져야되는지 명확히 인식하고
책임감있게 활동해 나가시는 모습으로 보였다. 참 존경스러웠다.


공동 생산과 유통의 경험의 거의 없고
대신 관광레저업이 다른 농촌마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은 우리 권역에서는
또 나름의 독자적인 마을사업의 방향성을 찾아야겠지만

우선적으로 지역 농업기반에서 출발해서 
자연자원과 인문학 등 문화 예술자원을 개발,
농촌관광을 결합해 나가는 로드맵을 명확히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관광레저사업이 농업과 결합하지 못한 채로 추진된다면
마을사업이 지역주민의 이해관계와 괴리될 수 밖에 없고
결국 사업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성공적인 사례로 알려진 대부분의 마을사업이
관계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타 마을의 선진지 견학 고객을 베이스로 하여 발전해 나가다가
그자체에 매몰되어 자립성을 상실하는 경우들이 드러있는데,
그 점에있어서 금계권역은 다른 부정적인 사례와는 달리
튼튼한 농업기반을 갖추고 있는 점이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하루 낮의 짧은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이번 견학을 준비하신
유현소프트 조석호과장님,

농촌공사 영주지사 김태어 감독님, 그리고
바쁜 일을 잠시 놓고 기꺼이 견학에 참여해 주신
마을 위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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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밭두렁공부방 학부모회의가 있었다.

그동안 밭두렁공부방은 명호면민회관을 빌려

명호 어린이들의 방과후 휴식과 보호, 학습 등을 진행해 왔는데

급작스럽게 공부방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비워줘야할 형편이 되어버렸다.

명호면에 '어린이 집'이 들어오면서 지금 공부방으로 사용중인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기로 했기때문이다.

공부방이나 어린이집이나 똑같이 명호면민을 위한

육아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소중한 사업들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공간문제로 이 두 사업이 충돌을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사업 추진 결정과정에서 충분히 공부방의 의견을

수렴 하는 노력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충분한 논의와 대책마련없이 사업이 추진되면서

공부방이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민간이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 공부방을 가볍게 여기고

전경련의 지원과 군의 예산으로 하는사업에만 올인하는 

관료적이고 성과주의적 관의 모습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정을 알게 된 몇몇 주민들이

다양한 채녈을 통해 공부방사업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고

중단기적인 문제해결 방안까지 마련되게 되었다.

장기대책으로는 2013년까지 명호초등학교와 교섭하여

마을종합개발사업 예산으로 아동센타겸 실내체육관을

짓도록 추진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아직까지 변수가 많지만 지연민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준비해 나가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명호면의 협조를 구해 면장 사택을

공사기간중 사용할 수 있도록 추진해 보기로 했고,

그리고 면민회관 1층을 어린이집으로 리모델링 하듯

군청에 별도의 예산을 요구해 2층을 공부방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는 지역의원을 비롯해

많은 지역일꾼들이 참석해 나름대로 위의 결정사항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결의할 수 있었다.

모처럼 밭두렁공부방 학부모 회의에

학부모도 아닌 사람이지만 참석하여

지역민의 현안을 같이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어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공부방을 위해 늘 애써온 봉화자활후견센타,

그리고 학부모여러분들의 노고가 우리 지역을 더 아름답고

사람살만한 마을로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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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나리와 이웃 마을들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오랜 전통인 '풋거 먹는 날'이었습니다. 
'풋거 먹는 날'은  여름의 정점이자 가을의 시작점인 백중날,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이날부터 기세를 잃어갈 마을길 풀도 베고,
조촐한 술과 음식을 나누며
곧 맞이할 수확철을 준비하는 날입니다.



'풋거 먹는 날'은 달리 '머슴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풋거'는 덜 일은 곡식이나 과일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추석을 한달여 앞둔 시점에
여름내내 고생만한 머슴들에게
힘겨운 가을 추수에 들어가기전
일종의 격려 차원에서
덜 익은 곡식이라도 거둬 잔치를 열어준데서
"머슴의 날"이
연유했다고 합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농민 모두가 세상의 머슴이 되었지만
아무도 농민을 위한 잔치를 베풀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직접 풋거먹는 날을 챙겨
스스로를 격려하고 곧 시작할 고추 수롹에 앞서
한더위에 흐트러진 마음을 다 잡습니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마을 주민들은 
온종일 일손을 놓고
  싣컷 먹고, 웃고, 즐겨야합니다.
 

3개 반으로 이루어진 비나리마을은
풋거 먹는 잔치를 각 반별로 가져오고 있는데,
올해 내가 속한 3반은
비나리마을의 새주민이 된지 2년차인
민서네 집으로 모였습니다.
민서네는 얼마전 TV의 한 다큐프로그램에서
 낯선 마을에 들어와 손수 흙푸대집을 지으며
산골마을 주민으로 정착해 나가는 과정을 방송하여
큰 인기를 얻고 갑자기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했던
바로 그집 입니다.
http://binari.invil.org/servlet/org/invil/commonbank/board/PgRetrieveBoardSrv



민서네 집에 모인 3반 주민들은
TV에서나 보던 민서네 흙푸대집을 안밖을 드나들면서
구석구석 살펴보고 집주인의 솜씨에 탐복하기도 하고,
비나리마을의 새 주민이 된 민서네를 격려했습니다.
모처럼 주민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마을 어르신의 당부말씀도 듣고
마을 현안에 대한 의견도 나누면서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비나리마을의 여름은 가고
풍요로운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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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여름이 깊어갑니다.

장마비가 계속되고

그 사이사이 퇴약볕이 내리쬐는 비나리마을 길모퉁이마다

붉은 접시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지난 겨울 몸을 드러냈던 거친 산전은

무성한 고추잎으로 덮여 초록빛이 가득합니다.


산은 더 검푸른 빛을 띠고,

바람은 또 그만치 더 시원해져가는 비나리 여름은

이번 비가 그치면 여름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겠지요.


긴 수박밭골에 앉아 비와 퇴약볕을 번갈아 맞아가며

막바지 수박 순치기로 여름을 맞는

비나리 농부들의 등짝이 애닮프지만

그렇게 또 절기가 지나 가을이 오면

이 모든 고역은 다 보상받고도 남을

넉넉한 수확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장마비가 계속되는 비나리마을 아침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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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청량산비나리정보화마을 정보센타에 화상상봉 시스템이 설치되었습니다. 마을 정보센타의 활용도도 높이고 특히 외국에서 한국 농촌마을에 시집와서 지내시는 다문화가족들이 원활히 고국의 가족 등과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비나리정보화마을이 있는 명호면에는 모두 15명 가량의 외국인 새댁이 계십니다. 하지만 바쁜 농사일과 이동거리가 먼 문제로 많은 분들이 이 화상상봉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차량지원을 자원봉사로 해결하는 등 이용을 종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분들의 고국의 인테넷 사정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고, 충분히 홍보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갈골 사는 왠티화 민경동 부부가 아들 선홍이를 데리고 모처럼 비나리마을정보센타에 나들이를 왔습니다. 바쁜 하루일과를 끝내고 멀리 고국 베트남에 있는 친구들과, 그리고 한국에 모두 시집와서 오손도손 잘 살고 있는 세 자매들이 모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묻기위해서입니다.


가입절차가 까다로운 정보화마을 회원가입을 하다가 여권 번호가 필요해 다시 갈골 집까지 다녀와야했는데, 또 바쁜 손님이 집에 왔다는 연락을 받고 또 다시 집까지 다녀와야했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야후메신저 등을 이용해 화상채팅을 해오긴 했는데 정보화마을 시스템을 통해 시도하다보니 여러가지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 저녁 내내 고생을 해야했습니다. 평낵에 사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접속을 요청하고, 또 광주에 사는 언니에게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첫날의 시도는 화상상봉시간보다 전화 통화시간이 훨씬 더 길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드디어 접속이 되었지만 화상이 떠질 않아 실망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날 정보화마을에 가입을 하고, 화상상봉시스템을 체험을 하고 덧붙여 모처럼 이웃과 같이 정보센타에서 냉면과 탕수욕을 시켜놓고 담소도 나누는 즐거움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멀리낯선 타국에 시집와서 착하고 멋진 남편만나 이쁜 아들 선홍이를 낳고 오손도손 살아가는 왠티화님이 참 아름답습니다. 산골마을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농사일과 식당을 겸해 바쁘게 살아가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왠티화님께 우리 지역사회는 큰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마을을 사람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나가는 민경동, 왠티화, 선홍이 가족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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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나리마을 주민이 모여 옷갓재 풀을 베었습니다.

매년 6월이 오고 장마비에 풀숲이 우거지기 시작하면

젊은 비나리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옷갓재를 비롯해

마을 안길 풀베기를 해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낫을 들고

또 어떤 분들은 예초기를 짊어지고

미리 정한 날에 맞춰 새벽부터 옷갓재로 모여듭니다.

마을입구쪽에 살아 일년내내

옷갓재를 한번도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분들도 나오시고,

연로하시어 마을 공동작업에 나오시지 않아도

누구하나 흉할 것 없으신 분들도 낫을 들고 따라나섭니다.

한해두해 세월이 지나면서

낯익은 어르신의 얼굴이 보이질 않게되고

비나리마을에 새둥지를 튼 낯선분들의 얼굴로 바뀌어가지만

마을의 아름다운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나오지 않은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의 예초기로

자신이 산 휘발유를 사용해 마을 길을 베는 일에 불평하지않고

그냥 묵묵히 마을길을 베고 농사일에 쫒겨 묻지 못했던

이웃의 안부를 묻고, 잠시잠깐 담소를 나누다

또 급히 자신의 밭으로 돌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행정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농촌마을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부당한 부역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이 작은 전통조차 비나리마을이

아직 건강한 공동체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미풍양속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마을 동제가 살아있고,

풋거먹는날과 마을 풀베기가

여전히 공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은

아직은 분명 사람살만한 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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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마을 눈덮인 빈밭이 을씨년스럽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부지런한 계절은 벌써 여름의 초입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늙은 황소 느린 걸음으로 언제 그 너른 밭을 다 갈았는지,
할머니 쑤셔오는 무릎으로 언제 그 긴골에 비닐을 다깔았는지

 

비나리마을 마지막 서리가 지나간 5월 첫날이 지나자,
비나리 비탈진 밭마다 고추와 수박이 심기고,
옥수수와 땅콩이 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름비 같은 비가 내린 요 몇일 사이
비나리마을은 여름을 닮아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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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비나리마을에 명호초등학교 스쿨버스가 들어왔습니다.

이번 일은 비나리마을이 생기고 나서 있었던 가장 큰 사건들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명호초등학교가 생긴지 74년이 넘었고, 이웃 고계초등학교가 폐교를 하는 바람에 보상차원에서 고계리마을만 스쿨버스가 다니기 시작한지 근 10여년만에 이번주부터 비나리마을에도 스쿨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14년전 비나리마을에 처음 이사왔을 때 딸애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애가 벌써 대학 2학년생이 되었습니다. 그아이를 6년 내내 아침저녁으로 차로 등하교시킨다고 무진장 고생을 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정확히 10리길인데 마을안길을 1km쯤 걷다가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차들이 쌩쌩 달리는 국도를 따라 3km를 더 가야만 학교가 있으니 저는 도저히 아이를 학교까지 걸려서 다니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딸애랑 동네아이둘이랑 3명을 싣고 5년을 등하교를 시켜야만 했습니다.

최근에는 비나리마을에 귀농자가 들어오고 해서 총 5명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아빠나 할아버지 차를 이용해 등하교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바쁜 농사철에 아침저녁으로 두번씩이나 아이를 데리려 학교까지 갔다오는 일은 없어도 좋게 되었습니다. 비나리 아이들의 등교풍경을 보니 부럽기도하고 또 딸아이를 등하교시키던 지난 시간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소식을 듣고 마을회관엘 달려가니 버스 도착시간인 8시 45분이 되기 전에 벌써 아이들이 하나둘 마을회관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45분이 다가오자 저 멀리 노란색 스쿨버스가 마을안길을 따라 달려오고 있는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버스는 도착하고 면소재지의 이웃 아주머니가 안전요원으로 카고계시다가 비나리마을의 5명의 아이들이 질서있게 버스에 오르는 것을 돕와주셨습니다. 이내 버스는 차를 돌려 마을회관을 뒤로한채 멀어져 갔습니다.비나리마을에 최근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를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나니 마음속에서는 또다른 욕심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비나리마을에 마을버스가 들어와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좀 편리하게 장을 보러도 가시고 보건소도 다니실 수도 있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될것같습니다. 하루빨리 비나리마을에 인구가 늘고 또 지자체에서도 노인들의 이동권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가져 마을버스가 다닐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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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비나리마을동제가있었습니다.

비나리마을동제는 비나리입구 당나무에 깃든

임장군을 모시고 한해의 풍요와 마을의 안녕을 비는

오랜 전통의 마을 제사입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구제역 한파로 마을 분위기도 침체되고,

물가는 폭등하여 산골마을을 살아가는 농민의 얼굴에도 주름이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동제의 가장 중요한 행사의 하나인 돼지 잡기를 포기했지만

그만치 제사를 올리는 주민의 마음은 더 절실하고 진지했습니다.

 

비나리마을뿐아니라, 명호지역 나아가 세상의 모든 마을이

올 한해 평화롭고 풍요롭기를 비는 마음을 담아

비나리 동제 모습과 보름행사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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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중학교는 전교생이 31명인 봉화군 명호면 소재지에 있는 조그만 학교입니다.

지난 2월 10일은 그 명호중학교에서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함박웃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면 13명 졸업생의 앞날을 축원했지만

남아있는 18명의 학생과 다음달에 입학할 대여섯명의 학생만 남게될

명호중학교의 앞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굳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지금은 초라한 작은 학교지만 명호중학교는 분교를 거쳐

1971년 정식으로 인가가 난이후

지금까지 3743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깊은 학교입니다.  

명호중학교를 졸업한 그 많은 분들이 우리사회의 요소요소에 진출해

우리 사회의 큰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도시화되면서 어느날 줄어들기 시작한 농촌마을에 지금은

학교을 포함해 이런저런 생활기반이 그 명색만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명호중학교 역시 몇년전부터 인근 학교와의 통폐합을 묻는

학부모 의견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학교의 존폐에 대해 누구하나 섣불리 장담을 할 수 없게 된 처지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지역에 젊은 귀농자들이 늘어나고

출산이 장려되면서 명호초등학교 학생수가

줄지를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 도시학교에 나가지 않고

명호중학교에 입학한다면

명호중학교는 또 오래도록 지역사회의 중심에서

지역공동체의 활력을 북돋는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명호면 지역사회 친구들이 늦동이 아이들을 졸업시키는

명호중학교 졸업식장을 찾아 아이들과 부모님들과 함께

축하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명호중학교의 역사이자 명호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지역사회의 보배들의 사진을 올립니다.

산골마을 중학교의 졸업식은 특별하기에


그 한명한명 졸업생의 얼굴들을 다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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