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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0일 봉화마을길걷기. 명준외 28명의 도반, 삼동 황악마을에서 출발 합강을 지나 재산 갈산교까지 10여km를 아침9시에 출발 12시 15분까지 걷고, 종점인 갈산교에서 아침일찍 미리 대어놓은 차를 타고 명호로 이동, 같이 점심을 먹고, 삼동으로 다시 이동하여 헤어짐.

가까운 친구 몇은 따로 조금 일찍 나와 오늘 걸음의 목적지인 갈산교에 차를 세워두고, 출발점인  '삼동막걸리' 술도가였던 삼동 슈퍼마당으로 돌아와 모두 28명의 도반과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삼동 슈퍼를 출발해서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황학마을을 지키는 280여년이 된 당나무를 마주쳤다.  지하여장군 각시가 쓰러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홀로 꽂꽂이 당나무를 지키는 천하대장군에게 인사를 올리고 우리는 마을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농사철이 되어도 사람구경이 쉽지가 않을 것 같은 소박한 농로를 따라 합강으로 방향을 잡았다. 드문드문 길따라 형성된 밭들 조차 여기저기 묵어가는 한국농촌의 현실을 아프게 자각하며 적당한 경사에 멋진 굴곡을 가진 길을 따라 약 2km를 걸었다. 가파른 비포장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이내 강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바 합강! 태백에서 발원해서 소천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재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합강이라 이름을 얻고 이 물은 다시 흘러 명호소수력댐을 이루고, 명호에서 운곡천을 만나 비로서 낙동강이라 불린다. 합강은 철저히 얼어붙어있었고, 물길을 잃고 얼음에 갇혀 해빙을 기다리는 쪽배는 겨울강의 쓸쓸함을 더했다.

얼어붙은 겨울강은 차갑게 침묵했다. 얇은 얼음을 깨며 걷는 빠른 발걸음소리가 강을 따라 번지기 전까지 겨울강은 죽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강의 묵상을 깨는 부산한 발걸음이 휩쓸고 지나가면 차갑고 조용한 바람이 한줄기 마른 갈대를 훑고 지나가며 우리의 흔적을 지웠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두 초막이 있고 집주인은 형제라고 했다. 강을 건너지기전 삼동리쪽이 큰형이고 강건너 재산쪽에 여덟형제가 살고 있는데 그 중의 한명이 강건너 마주한 초막의 주인이란다. 강을 사이에 두고 쪽배로 오고가는 형제의 삶이 궁금했다. 굳이 관에서 농로 포장을 해주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세상의 번잡함을 피해 차라리 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하겠다는 외딴집의 주인 마음이 느껴져 우리의 소란한 발검음이 움츠려들었다. 그분들의 호젖한 평화를 흩뜨리기 싫어 초막을 스쳐지나니 모처럼 사람을 맞는 진돗개가 못내 아쉬워 낯선 사람의 품에 매달렸다. 애써 매달리는 강아지를 뿌리치고 내길을 가는 마음에 애잔함이 스몄다. 외로움을 감내하며 호젓함을 누리며 사는 집주인과 그래도 사람의 훈기가 좋은 개가 함께 사는 일상의 모습이 궁금했다.

꽁꽁 언 강을 만난 일행들은 신나게 구르고, 사진을 찍고 미끄럼을 탔다. 늙은 소년 소녀들은 언강의 유혹에 혼미한 정신으로 한참을 지체한뒤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합강에서 갈산교에 이르는 길은 길은 오래전 사람 살았던 흔적이  강둑으로, 묵은 밭두렁의 흔적으로 그리고 폐가로 남아있었다. 강변은 예전에 밭이거나 길이었지만 지금은 수양버들과 물참나무 등 물을 좋아하는 나무가 빼곡히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우리는 강을 따라 형성된 너들바위를 밟고 나무를 비집고 재산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합강을 지나 4km를 걸으니 인가가 나왔고 사람드문 산막의 주민은 우리일행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고마움과 함께 마음 한켠에 스스로를 살펴야한다는 마음이 일었다. 혹여나 흔적을 남기고 지나온 길을 더럽히지나 않았을까, 다시 걸음을 가다듬었다.

민가를 만난 시점부터 일종의 강변트레킹코스가 가꾸어져있었지만 지금까지 걸은 길과 별반다르지 않게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거의 없었다. 그 길을 따라 4키로를 더 걸어 12시 15분즈음 목적지인 갈산교 도착했다.  겨울 강을 걷다 계획에 없던 갈산 구곡을 만나 호강을 하고 다른 계절에 다시한번 찾아오자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잠시 잊었던 차에 몸을 싣었다. 

움추린 몸을 풀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걷기의 묘미는 참 깊었다. 걸음은 마을은 짖누르는 일상의 걱정들을 내려놓게 하고, 굳은 의식을 깨워 숨었던 상상의 힘을 회복하게 하고, 기억의 귀퉁이에 쳐박혀 잊혀져 가던 소중한 추억에 생명을 준다. 발걸음의 리듬에 따라 백박이 조응하고, 빨라진 맥박에 몸이 반응하니 몸은 뜨겁게 되살아나고 다시 걸음은 더 생기를 얻는다. 

같은 길을 걷는 도반들은 대화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을 잇고 연대한다. 걷기를 좋아할만한 사람은 사귈만한 사람임을 걷는 사람들은 안다. 이름조차 다 기억하지 못한 28명 도반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오늘 하루 모처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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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휘어 감는 낙동강 따라 걷는 길-명호에서 청량산입구까지 

일시 : 2016년 8월 13일 오전 9시~ 12시 30분

코스 : 명호면 낙동강 시발점 공원 - 고계다리-비나리거리-선유교-관창리 입구-북곡리입구-청량산도립공원상업지구

참가자 : 28명


명호면 소재지에서 낙동강은 시작된다. 

정확히 말해 춘양쪽에서 흘러오는 운곡천과 석포 소천을 지나오는 

명호천이 만나 비로서 하천법상 낙동강이라 불리는 지점이 

명호면 소재의 낙동강 시발점 공원이다. 

이날은 바로 낙동강 시발점공원에서 시작하여 청량산도립공원까지

약 10km를 3시간여에 걸쳐 걸었다.



올해는 유난히도 덥다고들 하지만

하필 이날은 올 여름 치고도 더위의 절정을 기록했다.

걷기 시작하면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서쪽으로 산을 끼고 돌아 오전내 그늘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무너지고

코스 곳곳이 때약볕에 노출되어 있었고 

늦게 걸음을 시작한 덕에 시간이 지날 수록 그늘은 줄고

햇살을 더 뜨거워졌다.



팥죽같이 땀을 흘리는 일행들에게

괜히 눈치가 보일 만치 힘겨운 걸음이었다.

하지만 서울서 오셨다는 봉봉조합원 가족인

건이라는 아이의 씩씩한 발걸음은 

지친 어른의 발걺음을 재촉했고 힘든 내색을 감추게 했다.

사실 이날 걸음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추억이 되었다.


이 힘든 계절을 걸었으니 앞으로

맞은 가을의 걷기가 벌써 기다려지고

어떤 난이도의 길도 거뜬히 걸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덤으로 얻었다. 


이날 코스를 굳이 평가하자면 

전반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았고 

군데군데 코스를 알리는 안내문이 없거나 불확실해 불편함이 있었다.

또 사람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까닥에 

인적이 드물어 풀이 너무 자라 길을 개척해야만하는 곳도 한두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잘 관리만되면 걷기에 좋은 길이 될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강을 따라 걸으며 청량산이 주는 풍광을 두눈에 가득 담을 수 있어 좋았고

조금만 일찍 출발하면 오전에 청량산 산그늘이 코스 전반에 드리우는 점도 

여름 트래킹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봉화주민은 물론 아무런 사적 인연이 없는 영주나 인근 도시, 

멀리는 서울에서 오신 분들과도 단지 같은 길을 걷는 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동질감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던 이날 트래킹을 마치고 나니 

벌써 9월의 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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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때는 의무감이 나를 움직였지만
현동역에서 도반들을 보자마자
나는 짧지만 깊은걷기 여행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밭에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맞았을 태양을
강변길을 걸으며 얼굴도 가슴도 활짝 펴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봉화에 산지 20년이 지났고 앞으로 그만치 더살지 모를 일이지만
차를 타고도 와 볼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을 길을 두발로 걷다보니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희미한 삶의 잔상들이
뚜렷한 현실로 되살아나는 환각처럼
작은 풀잎하나 들꽃 하나 조약돌 하나조차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나를 맞이합니다.
차로 달리는 100km보다 두발로 걷는 10km가
몇백곱절 더 생생하고 풍부했습니다.

2016년 7월 9일 임기분교에서 시작해 두음, 돌띠마을을, 배나들마을을 지나

현동역을 향해12명의 도반과 길을 걷고 기록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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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봉화마을길 걷기


코스: 소천초등학교임기분교~현동역 


출발: 2016.7.2(토) 09시 임기분교 


준비물: 도시락, 물.간식 등


봉화마을길걷기 2번째 걷기 모임이 있습니다.

봉화주민은 물론 이웃 도시민도 함께

심산유곡 봉화 오지마을길을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긱하고 

그 속에 깃들어사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는 작은 걷기 모임입니다.


이번에는 낙동강 줄기 따라 분천역에서 인기분교까지 

길을 걷습니다.

낙동강 줄기따라 길과 강이 만나기도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마을길 계곡길을 걷습니다.

총길이는 10km정도의 평탄한 길로 

느린 걸음으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도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원시의 자연과 촌락의 삶을 느끼고 싶으신 

도시민께서도 참여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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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6년 6월 4일 09시_13시

코스 : 외씨버선길 8코스중 춘양역-씨라리골 구간

참가인원 : 28명

이른 봄 강풍 덕택에 봄농번기가 길어진 탓일까,

예년 같으면 한시름 놓았을 계절이지만

아직 봉화 농민들은 바쁘기만 하다.

하지만 약속이기도 하고, 굳이 약속이 아니라고해도

농사일은 끝이없기에

평생 일만하다 죽을 마음이라면 몰라도

먼저 쉬고 보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옛 어르신들이 들으면 '이놈' 정신차리라고 난리가 날 일이지만

적어도 나는 일만하다 죽을 생각이 없다.

그래서 전지가위도 내려놓고

약대도 놓고 토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9시 집결 시간이 다가오자 춘양역전은

한사람 두사람 아는 얼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출발시간이 되고 보니

막 도착하겠다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29분!

한분이 가족만 내려놓고

도착지에서 다시 만나기로하고 볼일을 보러 떠나시는 바람에

28명의 농부가, 봉화사람이 그리고  낯선 도시민이 함께 길을 걸었다.

 

적어도 봉화농부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고개길 넘으면 마을을 열어주는 아름들이 느티나무가 있고,

늙고 뒤틀린 감나무가 대문을 지키는 몇채의 농가가 있다.

언덕길 돌면 산이 있고

비탈진 밭에 고추며 고구마며 호박이 자라는

내가 매일 일구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작업복에 경운기를 타고 만나는 산하와

등산화에 배낭을 매고 만나는 산하는

같지만 결코 같을 수가 없었다.

 

일로만 환산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신비함으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소소한 뭍 자연의 조각들 생명들이

친근한 눈길로 나를 맞이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역시 사람이다.

봉화에 사는 좋은 사람은 다 모였다고 하면

서운할 분들 많겠지만

오늘 하루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이 웃고 떠들고

물과 김밥을 나누던 28명의 동반자들은

모두 같은 깨달음을 구하는 도반이었고

같은 세상을 꿈꾸는 동지들이었다.

그래서 그냥 좋았다.

보다 풍성한 다음 길을 위한 간단한 평가조차도 사족이 되어버릴 만치

그냥 행복한 느낌 그대로 푹 젖어있을 수 있어 좋았다.

 

다음달 첫째 토요일

임기소수력발전소에서 명호까지

낙동강변길을 다시 걷는다.

꿈을 나누고 정을 나누고

무엇보다 느낌을 나눌 많은 분들이 같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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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를 아름답고 따뜻한 삶의 공동체로 이어가기를 꿈꾸는 몇몇 군민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마을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걸으며 꿈을 나누는

 [봉화마을길걷기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모임은 가입 등 어떤 형식도 없으며 

오직 좋은 분들 손잡고 같이 우리 마을을 걷고 싶으신 분이면

누구나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 꼭 반나절만 도시락 싸들고 같이 만납시다.

봉화군민이 아니신 분이 참여하셔도 좋습니다.

 더 격하게 환영합니다^^


이번주 토요일(6월4일) 첫 걷기를 합니다. 


집결지 : 춘양역앞(8시 50분 집결)
코스 : 춘양역~관석~현동 씨라리골 
준비물 : 물과 점심도시락, 간식(노룻재에서 점심식사 예정)

3시간 정도 걸을 예정입니다. 
점심은 나눠먹게 넉넉하게 준비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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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3일 자정, 또 한번의 비나리마을 동제가 있었다.

마을의 주민이 된지 17년... 벌써 몇번의 동제에 참석했는지 이제 기억도 없다.

단지 동제의 변화된 풍경이 주마등 처럼 지나갈 뿐이다.

사실 한해 한해 표나지 않게 동제의 형식도 간소화되고, 

또 참가하시는 사람들도 바뀌고 줄었다.


올해 역시 유사를 맡아 잡은 돼지를 싣어오고,

하루종일 당나무를 지키며 추위에 떨다가 자정에서야 동제를 올리고

뒷정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올해는 삶은 돼지고기를 가구수로 나누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돼지 한 마리를 비나리 마을 온 가구에 한토막씩이라도 돌아갈 수 있도록 나누다보면

날이 훤히 새기 일쑤다.


올해는 돼지를 직접 잡지도 안았고,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어 덜 고생스러웠다.

동네에 이런저런 번잡한 일도 없어 

동제의 신성함을 지키기에 아무런 흠이 없는 좋은 날이었다.

제사를 올리고, 소지를 올리고

한해 풍작과 마을의 화평, 그리고 모든 생명가지 것들의 안녕을 빌었다.

 

그래도 다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동네 형님과 넋두리를 했다.


"한것 없이 힘드네요 형님."

"힘들고 말고제. 그라이 다 안할라안카나."


이런 현실에서 그래도

같이 하신 주민, 당주 이하 제관과 유사님들

그리고 돼지를 보내준 이슬이 아빠며 여러 찬조자님이 고맙다.

가난한 산골 마을에 이 정도라도 성대한 당제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모두의 정성이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다.


올해 동제를 마치고, 꼭 무엇인가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컴앞에 앉았지만

막상 무엇을 기록할지 모르겠다.

올해 동제가 다른 해와 달리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직 내 머리가 복잡하고

나의 발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냥 기록할뿐!!














* 당주 : 신영록  / 축관 : 강진희 / 유사 : 권희대, 안태랑, 유창목, 정재학,송성일

* 돼지희사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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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저뭅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 가는 해가 아쉬워 뜬눈으로 밤을 샙니다.
초저녁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 새벽2시부터
책상에 앉았습니다.

무엇을 할까 할참을 망설이다가
자판을 두드립니다.
지난 한해 나를 둘러싼 세상에는 어떤 일이 있었고
나는 어떻게 대응하고 무슨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놓쳤는지
정리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농민인 저에게 주어진 지난 한해 최대의 화제는 
한국 농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탄시킬 한중 FTA 협상과
30년래 최대의 농산물가 폭락사태일 겁니다.
한달이 멀다하고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집회를 가야했고
급기야 년말에는 농협은행 마당에 농산물을 쌓고 21일을 넘기며
칼바람 속에서 농산물생산비보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천막노숙투쟁까지 벌였습니다.


지난 한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던 집회와 농성 등이 
외부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대한 일차적 대응이었다면
'봉봉협동조합'은 그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실천이었습니다.
그래서 2013년 저의 삶을 규정하는 최고의 화두는 단연 '협동조합'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극단적 경쟁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왔고
개인의 삶조차 한발짝도 그 지배로 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아가야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감히 '협동과 신뢰'를 기반한 새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협동조합이란 걸 통해 그걸 이뤄보자는 꿈을 나누었습니다.

먼저 시작한 협동조합들도 많고
참 잘하는 협동조합들도 많지만 
우리가 발딛고 사는 조그만 공동체를 기반으로해서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사회를 100개의 한살림과 100개의 아이쿱 그리고 수천개의 
군소 협동조합들로 얽히고 섥힌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상살이는 좀더 아름답고 편안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봉봉협동조합은
몇달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6월 29일 발족을 했고
다시 몇달의 정비기간을 걸쳐
부족한 중에 10월 중순부터 물품공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꿈을 꿀 때와는 달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경영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보고 안되면 말고'가 아니라 꼭 되도록해야한다는 마음의 짐은 참으로 무거웠고
그 짐을 고스란히 지고 나가기엔 허리도 약하고 지혜도 부족했습니다.
좌충우돌하는 지난 몇개월간 낙담을 하고 의기소침하기도 하고
다시 용기를 얻어 일어나 달리기도하고, 넘을 수 없는 벽을 향해 
머리로 부딪혀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맞은 연말,
여러가지 측면에서 되짚고 반성하고 나 자신의 한계, 우리의 한계, 
그리고 시대의 조건에 대해 고민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나누는 일일 것입니다.
지난한해 실수와 실패,  좌절과 고통속에서 나는 무엇을 건졌는지 되돌아보는것 
그것이 송년에 임하는 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주 오래전에 접한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시인의 화두에 비소를 보냈지만
내 삶의 경험속에서 다가온 '사람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은
다시금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화두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합니다.

절임배추 공장과 노숙투쟁천막을 오고가며 지내야하는 와중에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괴로워했지만
또 사람으로 인해 위로받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협동의 편익 이전에 단지 같이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희열은 진정으로 협동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힘은 같이하는 기쁨,
같이 나누는 희열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협동의 참 맛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철처히 가르고 파편화해서 지배하는
이 체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일 것입니다.

봉봉협동조합의 존재이유는 신뢰와 협동에 기반한
새세상의 꿈을 만들어 나가고 나누는 데에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조합원이 꿈을 공유하지 않으면
조합은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를 위해 지난 한해의 과오와 성과를 딛고
새로 맞는 2014 갑오년 봉봉협동조합은
조합원간 교류와 교육 사업에 매진해야 할것입니다.
당장은 '경영적 생존'이 더 절박하겠지만
'생존'을 넘는 지점까지 우리의 눈이 가 있지 않다면
그 생존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생존 넘어 있는 '희망'이 이끌어 주지 않는 조직은
그 동력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한해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 속에서 기뻐했고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모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그 인연 내년한해 더 깊어지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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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협동조합의 '봉봉'은 불어의 'bonbon'이다.

'bon'은 '좋다'는 뜻으로

'도시 좋고 농촌좋고' 봉봉협동조합이라 작명했다. 

처음에 봉화사과 상품명을 정하면서 '청량산 산우리에서 글자란 어쩌구' 하다가

"봉봉사과"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정봉주님을 뜻하는 '봉 도사'라는 뉘앙스도 가지는 게

이래저래 재미있어 보였고, 알고보니 유명한 까페이름이나 

유명하진 않지만 다양한 업종의 상호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우선 무조건 어감이 좋고 재미있어

봉봉이라고 말하는 순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런데 'bonbon'은 과일잼이 들어있는 사탕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연히 마트에서 만난 봉봉사탕 괜히 반갑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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