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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 17일)는 상주 승곡체험마을에서 열린

[커뮤니티와 경제]주관의 경북마을/공동체 네트워크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경북의 마을 공동체 사업단위들 중 대표적인 마을과 협동조합, 마을 기업 등

20여개 단위에서 대표자 분들이 참석을 했는데

봉화에서는 두실마을영농조합법인이 마을기업을 대표해서 참석을 하고

청량산비나리마을 영농조합법인도 권역사업을 대표해서 참석을 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지역재단 유정규이사님의 강연과

각 마을공동체 대표자간의 경북 단위 네트워크의 필요성과 형식 등에 대한

허심탄회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날 논의 결과 [경북 마을 공동체 네트워크]는

올 연말까지 2달단위로 3번 더 진행을 하고 그 성과에 대한 평가를 통해

향후 경북 마을 공동체 네트워크의 존립과 발전 방향에 대한 결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남은 3번의 행사는 각 단위의 현황과 과제를 담은 자체 보고서를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 컨설팅(조언)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하면서 구체적인 상호 협력의 가능성도 도출해 보는 곳으로 했습니다.

다가오는 8월 모임은 영양 대티골에서 장소 등 제공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마을공동체 네트워크의 성격과 목적 등의 불확실성에 대한 의견도 있었고 유사한 모임의 과잉속에서 실효성없는 모임이 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향후 모임들 속에서 차차 구체화해 나가야하지만 일차적으로 커뮤니티와 경제의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지원단위와의 인연이 있는  공동체 단위, 사회적 경제 단위들의 네트워크로 시작을 하지만 나름의 가치 기반을 공유하고 공통의 목적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단위간의 학습과 정책개발, 공통의 사업영역의 개발 등으로 사업 방향을 잡아 간다면 의미있는 네트워크로 작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 바쁜 사람들이지만 시간 아깝지 않고 만나서 반갑고 의미있는 모임으로 [경북 마을-공동체 네트워크]가 발전해 나가는데 모두 힘을 보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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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비나리마을학교 강당에서

[봉화공동체 포럼]이 있었습니다.

이번 포럼에는 봉화군 농민회 등 단체와 개인을 포함해

아름답고 활력넘치는 마을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노력해오신

많은 분들이 참가하여 열띤 발표와 토론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참여 단체로는 '교육복지문화공동체 하모니'와

'봉화친환경생산자협동조합', 재산 갈산마을에 둥지를 튼 '별난농부들'

'봉화지역 자활센타', '청량산비나리마을', '봉화국악협회' '봉화귀농인협회'

그리고 '봉화군 농민회'가 같이 했습니다.

 

참가 단체들은 각 단체의 목적과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해 나갈 활동들에 대한 발표를 했고,

향후 지역사회내에서 이들 단체가 연대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꿈들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포럼이 갖는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는

 봉화의 각 지역에서 흩어져 터를 잡고

나름대로 오랜 세월동안 지역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하고 활력넘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분투해 오신 분들이 같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만남의 기쁨과 같이 살아갈 날의 희망을 나눌 수 있었던

이날 회합에 참가하고 나서가지게 된 생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참 외로웠는데 이제 외롭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 봉화에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고

오랫동안 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감동적이다."

 

앞으로 한달에 한번씩 가지게 될

봉화공동체 포럼이 외연을 넓히고

그 내용적 깊이를 더해간다면

봉화를 아름다운 농촌공동체의 새로운 전형으로 거듭다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세대와 신세대, 토착주민과 귀농인,

농업인과 예술인을 포괄해

다양한 세력과 개인이 연대하여

지역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봉화공동체 포럼"의 무궁한 발전이 계속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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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포럼 발제


주민의 삶이 곧 자원이다

: 봉화 지역문화자원의 산업화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문화산업’이라고 하면 문화생산물을 상품화하는 현대의 산업형태를 말한다. ‘지역문화자원의 산업화’란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을 지역주민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기반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지역문화자원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상품화 혹은 산업화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이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하는 두가지 중요한 문제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취사선택 가능한 ‘지역문화자원’의 외연을 확정하는 문제로 지역사회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의 가치를 발굴하거나 부여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구체적 상품 아이템 개발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두 번째 문제는 ‘산업화’의 성공 여부를 확정짓는 핵심적 측면으로 그 지속가능성과 ‘산업화의 결과가 초래할 지역주민의 변화된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문화 자원의 산업화 과정은 ‘지역 문화자원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하되, 전 과정에서 어떻게 지역주민을 참여시키고 주역주민의 이해에 입각해 사업을 수행할 것인가 하는 과제로 집약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을 가진 지역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지역‘축제’와 봉화를 대표하는 ‘청량산’, 봉화의 최대 문화 자산인 ‘마을’ 그리고 근래에 붐이 되고 있는 ‘걷기 길’만들기 사업과 봉화군이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있는 ‘봉화정자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자원 산업화 과정을 되짚고 동시에 각각의 단위 사업들과 관련한 단상을 정리해 본다.

축제

봉화군의 은어축제와 송이축제는 상당한 성공사례로 많은 상도 타고 봉화를 상징하는 축제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하지만 외부적 평가와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적잖은 반론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 부정적 입장은 면단위 간 혹은 농업/상업 간의 이해관계 대립에 연원한 측면도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이들 양대 축제가 지역의 핵심 산업인 농업 자원에 기반 하지 않고 있고, 특히 ‘은어축제‘의 경우 지역 주민의 삶과 밀착된 파급력 있는 자원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것 같다.

다시말해 봉화의 대표적 축제가 외형적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지역민의 삶과 괴리되어 지역민의 삶을 고양하지 못하고 지역민의 경제적 이해와도 일정정도 분리된 채 진행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은어축제, 송이축제는 현재의 성공에 머물지 말고 지역민에게 자긍심을 주고,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민밀착형’축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진행해야 할 것같다. 나아가 이들 대표 축제와 병행해서 이를 보완할 보다 주민밀착형인 작은 ‘마을축제들’의 발굴과 육성이 필요하다.

둘러보면, 우리 지역의 특유한 장례문화, 동제, 풋거 먹는 날(머슴의 날), 초롱계 등 마을축제화 할 수 있는 자원이 산재해 있다. 이들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하면 농촌공동체의 행복한 삶, 아름다운 마을살이를 드러내고, 주민의 삶을 고양하는 축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축제의 최종 목적이 주민의 행복한 삶이고, 주민의 행복한 삶이 바로 관광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비나리초롱축제’가 성공가능할까?)

현재까지 봉화군에 여러 걷기길이 생겼고 지금도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길을 만들고 관리하고 홍보하는데 많은 예산이 들어간 것에 비해 가시적 성과는 크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실 걷기가 붐이 되는 트렌드에 맞춰 걷기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미 선점된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의 성공 사례를 모방하는 방식으로는 그 성공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차라리 상품화된 ‘큰길’이 아니라 봉화지역에 맞는 무수한 작은 길을 만드는 사업이 보다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은길’은 예산중심 사업이 아니라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업으로 ‘돈’보다는 ‘공’이 더 들어가야 하는 사업이다. 나아가 걷기 트렌드를 이끄는 가치(반개발주의, 자연과 일치하는 삶, 마을공동체에 대한 그리움 등)에도 더 부합한다.

봉화만의 작은 길 만들기는 지금은 단절된 마을간 실핏줄을 잇는 작업으로 마을간 소통을 통해 침체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하면서 동시에 농촌과 도시를 잇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이 되지 않을까?

봉화를 대표하는 산은 청량산이다. 청량산은 유불선 문화의 보고로 알려져 있고 숱한 명사들이 다녀갔던 산이다. 그러다보니 100여 편의 유산기와 1,000여 편의 시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풍부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청량산에 대한 개발을 주로 하드웨어적인 개발에 머물렀고 그 문화적 내용을 자원화 하는 데 소홀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산행 중심의 단일한 방문객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공원 상가에서 매출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지역 농민들은 더더군다나 불만을 가지거나 무관심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비춰보면 청량산의 문화적 자원을 상품화하여 방문객을 다양화하고 등산객의 체류시간을 늘이기 위한 작업이 좀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유산기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청량산을 불교 성지화 하는 작업 그리고 다양한 성씨의 역사적 명사들이 다녀간 길을 따라 안내문 등을 설치하여 문중 순례지 등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청량산을 단지 등반용 산이 아니라 문화적 명승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청량산 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청량산 박물관은 청량산의 문화적 자원을 집대성하여 ‘상품화’를 위한 기초 자료를 생산해내는 역할과 더불어 청량산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단위로 거듭나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량산 박물관을 관리사무소 부속 기관에서 독립시키고 대폭적으로 인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청량산 박물관이 청량산의 자연자원, 문화자원에 대한 조사, 각종 연구 및 전시, 방문객이 참여 가능한 상설 프로그램,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수행하는 실행기관으로 청량산 방문객이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명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청량산 도립공원”이라는 상품에 마을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들마을이 보고 싶어, 아름다운 윗뒤실이 보고싶어’ 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 날 수 있도록 ‘청량산’에서 차지하는 마을의 위상을 제고해야한다. 사실 도립공원내 주민들은 ‘도립공원 청량산’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일 경우까지 있다. 도립공원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안될 뿐아니라 불편마저 초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이와같은 현실을 타개하기위한 사업들이 시작되고 있다. ‘북곡리 명품마을 사업’과 공원내 ‘농산물 홍보판매장 설치’ 등이 그것이다.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사업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더 나아가 ‘마을’을 청량산이라는 상품에 결합시키기 위한 작업들은 보다 더 심원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봉화 정자 투어

봉화 정자투어는 대표적인 봉화 관광 투어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봉화가 전국 최다의 정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성립가능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정자를 단일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힘들다. 정자들 간 투어도 성공적이지 못하다. 다시생각해보면 정자라는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을 수는 없다. 따라서 봉화의 훌륭한 자산을 관광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정자가 마을살이에서 가지는 의미를 살리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을과, 마을사람의 삶과 결합된 의미의 정자를 생각한다면 부가적인 보조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정자’가 아니라 정자가 있는 ‘마을사람의 삶’이 상품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기에 덧붙여 ‘정자’를 현대화해서 현대인에게도 친밀한 공간으로 되살려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요구된다. 특히 유교와 연관된 유무형의 자원을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해석‘이 꼭 필요하다. 유교가 ‘충효교육’이나 ‘예절교육’에서 풀려나 스마트한 유교가 될 때만이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 과자축제 : 닭실 마을과 후토스 동산, 전통한과와 현대식 과자의 기묘한 결합이 가져온 작은 성공!)

마을

봉화의 최대 자산은 전통마을들이다. 이골 저골 아름답지 않은 마을이 없다. 앞으로 봉화의 최대 관광자원이 바로 이 마을들이 될지도 모른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공동체가 해체되면 될수록 전통적 마을 공동체에 대한 향수는 늘어날 것이다. 유럽인에게 네팔이나 티벳여행은 일생 일대의 꿈이다. 이곳은 현대문명에 반한 곳이고, 심원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지역이면서 동시에 ‘불행한’ 현대인 자신들과는 달리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봉화의 많은 마을들은 충분히 도시인의 로망에 부합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마을의 상품화는 이제까지 진행되어온 ‘체험마을’ 등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행복한 주민의 삶이 전제되어야만 진정한 행복을 찾는 도시인의 발길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마을이 어떻게 보전되고 어떻게 ‘변화’되어야할지 고민해야한다.

“주민의 삶이 곧 문화자원이고, 문화자원의 산업화의 주체는 지역주민이다.” 충분한 자료를 검토하고 세련된 입론에 입각하지 못했지만, 가능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고, 나름대로 봉화 문화자원을 이용한 관광산업화 과정을 전반적으로 되짚어 보았다. 잘못되고 부족한 생각을 토론과정에서 바로잡고 채울 수 있길 빈다.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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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을 맞아 각 가정의 김장담그기는 물론
각종 단체가 주관하는 이웃돕기 김장담그기 행사가 한창이다.
이에 맞춰 봉화군 농민회는 지난 11월 6일부터 8일까지 
화원들이 재배한 배추와 각종 양념을 모아
500여포기의 [사랑의 김장]을 담았다.
이날 행사는 가진 것이라고는 농사일에 이골이 난 몸과 
직접 키운 농산물밖에 없는 농민회회원이
지역공동체의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었다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특히 이번행사에 올해 새롭게 조직을 복원한
봉화군 농민회 명호지회 회원들이 참가해
지역 사회에 뜻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다.
땅을 일궈 살아가는 농민의 생명사랑과 이웃사랑의 정신을
어려운 조건속에서도 몸소 실천하는
농민회 회원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이번의 작은 활동속에서 지역주민 모두는
앞으로 살아갈 우리 지역사회의
아름다운 미래상을 꿈꿔볼 수 있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켜나가는 일은
농민형제가 먼저 서로 돕고 이웃을 보살피며
마을공동체의 온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만나서 즐겁고 행복한 농민회,
형제같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농민회,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농민회,
무엇보다 가정의 화목을 이끌고
우리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라가는 데
도움이 되는 농민회를 만들어나가자는
농민회 명호지회 회원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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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중학교는 전교생이 31명인 봉화군 명호면 소재지에 있는 조그만 학교입니다.

지난 2월 10일은 그 명호중학교에서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함박웃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면 13명 졸업생의 앞날을 축원했지만

남아있는 18명의 학생과 다음달에 입학할 대여섯명의 학생만 남게될

명호중학교의 앞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굳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지금은 초라한 작은 학교지만 명호중학교는 분교를 거쳐

1971년 정식으로 인가가 난이후

지금까지 3743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깊은 학교입니다.  

명호중학교를 졸업한 그 많은 분들이 우리사회의 요소요소에 진출해

우리 사회의 큰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도시화되면서 어느날 줄어들기 시작한 농촌마을에 지금은

학교을 포함해 이런저런 생활기반이 그 명색만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명호중학교 역시 몇년전부터 인근 학교와의 통폐합을 묻는

학부모 의견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학교의 존폐에 대해 누구하나 섣불리 장담을 할 수 없게 된 처지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지역에 젊은 귀농자들이 늘어나고

출산이 장려되면서 명호초등학교 학생수가

줄지를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 도시학교에 나가지 않고

명호중학교에 입학한다면

명호중학교는 또 오래도록 지역사회의 중심에서

지역공동체의 활력을 북돋는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명호면 지역사회 친구들이 늦동이 아이들을 졸업시키는

명호중학교 졸업식장을 찾아 아이들과 부모님들과 함께

축하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명호중학교의 역사이자 명호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지역사회의 보배들의 사진을 올립니다.

산골마을 중학교의 졸업식은 특별하기에


그 한명한명 졸업생의 얼굴들을 다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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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고추 수확에 정신이 없는 계절이지만
비나리마을 마을활성화센타 공사는 착착 진행중입니다.
7월말께 공사를 시작한 이래 터파기와 기초공사가 이루어졌고
드디어 몇일전부터 고추밭 가는 길에 내려다보이는 공사현장에는
건물의 지상부 벽체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나리마을 활성화센타는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 7개리가 모여 만든
청량산권역 마을종합개발사업의 핵심사업입니다.


비나리마을활성화센타는 25여억원의 예산으로 1,500여평의 터에
강의동과 숙소동을 합해 약 260여평의 건축물로 이루어집니다.
내년 봄이면 완공될 비나리마을 활성화센타는   
마을과 농업의 가치, 공동체와 생태환경의 소중함을 기본으로하는
새로운 세상의 비젼을 담는 알차고 풍부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농민과 도시민이 만나고,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져사는
새로운 세상의 비젼을 확산시키는 농촌문화의 메카가 될것입니다. 


이제 내년 여름이면 마을활성화센타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마을사업을 운영해야할 것입니다.
바쁜 농사일에 한번도 제대로 마을사업의 운영에 대해
고민해보지도 못하고 있지만 긴긴겨울, 우리 마을의 자원을 총동원해
우리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하고 나아가 도시민을 맞아
마을의 활력을 증진시킬 구상을 차근차근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획력도 마케팅 능력도 없지만, 마을의 모든 자원과
주민 모두의 역량을 모아나간다면
비나리마을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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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에서 희망을 본다.

 



인간 삶의 시공간적 근본인 마을을 살리는데 인간 삶의 또 다른 근원인 예술이 기여할 수 있을까?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가능하고, 그렇게 해서 살아난 마을은 또 어떤 모습일까?

 

다 알고 있다시피 이미 전통 농촌 마을은 재생산구조가 파괴되어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다. 경제적 자립구조가 붕괴되어 헤어날 수 없는 부채더미에 신음하고 있고, 삶의 터전인 논밭마저 절반이상이 도시자본에 넘어갔다. 마을 내 의사결정구조인 전통적 자치 기구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전통적 자치기구를 대체해 중앙권력의 지배편리를 위해 만들어져 하부행정단위의 역할을 하는 이반장체제는 주민자치의 꿈을 실현하는 기구로 역할 하기에는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마을 주민을 정신적으로 묶어주던 많은 제도적 문화적 장치들이 형해화 되었다. 두레나 울력 같은 공동노동. 협력노동의 전통은 사라졌고, 동제나 당제 같은 마을신앙도 사라지거나 드문 경우에 그 흔적만 간신히 보존되고 있다. 상여계, 토지계 같이 마을 공동체를 유지시켜주고, 주민의 정체성을 이뤄주는 근간이 되었던 마을 모듬은 약화되고 기금은 고갈되었다. 사실 마을의 근본인 사람이 사라지는 판에 다른 것들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젠 농가부채대책은 없고, ‘희망근로사업도 줄어들고, 농업보조정책도 패지 해 나간단다. 경제적 파탄을 넘어 정책적 방기 속에 농촌 마을은 어떻게 될까? 농촌마을의 미래는 암담하고, 쇠락의 대세는 반전될 어떤 가능성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회복한 성공적인 사례도 없고, 따라서 마을 회복을 위해 분투하는 주민들이 의지할 마을 회복 프로그램도 그 로드맵도 없다.

 

그럼 도시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도시의 거주형태나 시가지 형태는 전통적인 마을 단위의 공간구분을 무의미하게 한다. 그렇다고 도시는 마을이 성립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쩌면 도시의 마을은 도시민의 생활반경, 활동반경이 물리적 공간의 협소한 규정을 넘어 그 필요와 구성원의 가치나 기호에 따라 넓혀짐에 따라 새로운 형태, 새로운 의미의 마을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주민자치, 마을만들기는 농촌에 국한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사람 사는 곳 모두가 마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도 사람이 넘쳐나긴 하지만 마을다운 마을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마을다운 마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한 공간 안에서 정신적, 문화적 일체감이라는 주민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한 경쟁하는 개인들로 꽉 찬 도시는 마을이 성립될 수 있는 토대가 너무 허약하다.

 

농촌마을과 도시마을의 구분을 넘어 인간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으로서의 마을은 똑같다. 사실 원시공동체에 대한 향수가 전통적 농촌 마을에 대해 우선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게 하지만, 전통마을에 대한 향수보다는 새로운 마을의 현재성에 주목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을은 이념이기 이전에 삶이고 현실이다. 그 삶과 결합되지 못하는 예술, 문화, 자치, 환경, 민주주의는 헛구호에 불과하다. 마을의 존립이 시급한 현안이 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언제부턴가 마을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일어나고 농촌에는 귀농과 마을 만들기가, 도시에는 녹색도시’, 도시공공디자인 운동 등이 일어나고 있다. 중앙권력의 민주화, 지배가치의 진보화에 일정한 성과와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 세력들이 주민자치(스와라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스스로 하방을 시작했다. 도시는 아파트의 동, 행정단위인 통반을 넘어 동호인모임,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모임, 정치적 지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정당활동, 구체적 삶의 질을 결정하는 생활환경에 대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시민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자치단위, 새로운 형태의 마을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농촌은 생태환경과 근원적 생명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 사라져가는 마을을 복원하고 마을자치와 마을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나눔과 공생, 순환이 마을의 가치기반이 되고, 자본이라는 단일 권력의 지배에 저항을 시작했다. 마을을 살리기 위한 활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운동, 마을자치운동, 자활농장만들기, 마을 역사연구, 마을박물관만들기, 마을자원조사 등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시도되고 있다.

 

그 연장선일까?  예술로 마을을 살리겠다는 일군의 활동가, 예술가들이 단체를 만들었단다. 일명 예술마을네트워크(예마네)”란다.  예마네는 [마을만이 희망이다]는 기치를 당당히 내걸고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조그마한 연구실을 열었다. 웹상에 그를듯한 까페도 하나 번듯이 차려놓았고 (http://cafe.naver.com/yemane) 예술가가 사는 마을을 탐방하는 것으로 벌써 활동을 시작했다.

 

예마네는 예술이 마을을 진정으로 생각한 적이 없고 마을 또한 예술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원시적 마을이 예술과 함께 했듯 이 둘의 통일을 회복하는 것이 아수라장이 된 우리의 현재적 삶을 혁파하는 첩경임을 주창한다. 이를 위해 예마네는 문화와 예술로 마을을 사유하고 연대하고 소통하고,   마을을 생각하는 모든 활동을 매개하는 연구기지를 자임하고 있다.

예마네가 스스로 상정한 과제는 다양하다. 마을의 생태 환경과, 경관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실태 조사 및 연구, 공동체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 문화예술 공동체 네크워크 구축을 위한 인적 물적 교류사업 등이 그것이다. 이를 좀더 구체화하면, 마을조사 및 마을지표개발, 마을축제 연구기획, 마을 박물관 보급, 마을 디자인, 그리고 마을학 연구라는 과제로 집약된다.

 

사실 예술이 어떻게 마을을 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예술이 살린 마을의 모습은 어떤 형태일지 궁금하다. 마을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는 예술은 예술일반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을 살리는 예술은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무척 힘겹고 고단한 과정임에 분명하다. 또한 단위 마을 내 예술가와 마을주민간의 유대와 교류마저 힘든 현실에서, 예술가가 사는 마을간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는 구상은 대담하나 비현실적이고, 가치 있지만 지난한 작업으로 보인다.
누군들 그 사실을 모르겠냐만 예마네 구성원들이 어디 만만하고 손해보지 않는 작업만 해오는 그런 분들인가? 그래서 차라리 희망적이다. 안되면 당연하고 되면 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꼭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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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빼어난 스승이라 불러도 좋을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의 필담과 대담을 묶은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는 쉽게 읽고서, 어렵게 덮어야 하는 이상한 책이다. '뭐 다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그래서?'라고 '인상비평' 한 줄로 다 읽은 책을 덮어버릴 찰나, 왠지 모를 울림이 가슴에 남아 책을 덮던 손을 멈춘다. 쉬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그리고 계속 읇조린다.'그런데... 그런데...' 그리곤 다시 책 여기 저기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두 분의 삶을 시간의 질서에 따라 서술해 나간다. 그것은 두 분의 철학이나 사상의 근저를 추상적 이론의 구조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궤적 속에서 도출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시인의 삶과 스님의 삶은 출발부터 달랐다. 두 분의 삶을 가른 출생의 조건은 한 분을 시인으로, 또 한 분은 스님으로 키웠다. 여기서 '키웠다'는 것은 두 스승의 독자적 위대성이 아니라 역사의 자식, 세상의 자식으로서의 두 분의 사회적 존재성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시인 김용택의 삶과 도법 스님의 삶은 출발부터 지금의 도정까지 겹치는 부분이 없어 보인다.

시인 김용택은 저 푸른 초원 위에 뛰어 노는 사슴을 노래하는 그런 뜬구름 잡는 시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인은 '전사'의 김남주와 같이 역사의 현장, 가치와 가치,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시대의 접점에서 처절한 혁명투사의 삶을 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인은 가난해서 평화롭고, 단촐해서 아름다운 단아한 농촌마을공동체의 따뜻한 울타리 속에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근저를 들여다보면서 자랐다. 그것을 시인은 '마을정신'이라 이름 붙이고,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원리로 제시한다.

도법 스님은 지옥보다 더한 살육의 현장에서 나서 자라고 그리고 출가했다. 출가로부터 스님을 사로잡은 화두는 죽음과 고통이었는가 보다. 죽음이란 화두를 잡고 구도하고 정진하는 도법스님의 수행과정은 철저히 내면적이고 어쩌면 비인간, 탈인간적이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도법의 발걸음은 토굴이나 골방이 아니라 인간 삶의 현장을 향했다. 그는 세속을 등진 선문답이나 고행이 가져온 고통의 끝에서 다시 세상의 진상을 확인하길 원하는 그런 선승이 되지 못했다철저히 현실적 삶, 현실적 존재조건 속에서 뭇 생명의 구원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르지만 아름다운 두분의 삶이, 그리고 생각의 끝이 어긋난듯 교차하고, 갈린 듯 머주치며 결국은 왠지 서로 합일할 것 같다.

시인은 '마을'에서 구원의 빛을 찾았고, 스님은 또 뭇생명의 공동운명체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았다. 그 순간 시인은 스님이 되고, 스님은 또한 시인이 되었다. 인간공동체-마을이라는 진흙탕속에서 연꽃을 피우기를 갈구하는 두 분의 구도는 시적 세계의 극이 바로 극락이고, 구도의 완성태는 곧 시적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라는 큰 깨달음에 도달했다. 시적 세계의 극치는 극락과 다르지 않고 극락 또한 시적 아름다움의 구현체가 아니겠는가!

이 책의 기획자가 두 분의 필담을 통해 모색하고자 제시한 과제는 ‘시대진단대안 모색이란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시대의 길' '제대로 된 삶' 얻기 위한 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지평에서의 인식을 두 필자에게 요구하는 듯 보이고, 이 과제에 대한 두 분의 화답은 단순 명료하다.

스님은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철학, 종교, 윤리, 가치, 논리를 버리고 존재의 실상에 따라 사는 것이란다. 그런데 문제는 어찌 내 같은 필부가 그와 같은 '존재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단말인가!

시인은 말한다마을 정신이야말로 인류가 함께 아름다운 삶을 이룰 수 있게 한다고. 하지만 그 마을 정신이 뭔지 진짜 마을에 살고 있는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시인과 스님은 끝내 손에 잡히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두 분은 구체적 사회구성원리나 정치철학을 제시하는 사상가가 아니라 차라리 사상가가 탐구의 과정에서 기반해야 될 가치의 지평을 여는 구도자로 남는다. 그래서 갑자기 묘연해진다.

누구나 세상을 진단하고, 나름의 처방을 제시한. 사실 왜 아닌가, 왜 안돼는가를 묻지 않는다면 누구나 그냥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기독교의 사랑이, 불교의 자비가 무엇이고, 평등과 박애,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쟁취되고 작동해 왔는가. 그리고 모든 답은 정답이고, 그렇기 때문에 또 모든 답은 오답이 아니던가? 그래서 모든 근본주의와 환원론은 공허하고 구체적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저 끈적거리고 비린내나는 권력과 금력, 지배와 욕망의 쌍곡선이 그려내는 기기묘묘한 유령의 그림자가 아니든가.

그래도 나는 책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도법스님과 시인 김용택이 꿈꾸는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고비록 '존재의 실상'과 그에 기반한 '마을정신'을 직시할 지혜가 없을지라도 나의 내면의 욕망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욕망을 객관화하고 너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지긋한 눈으로 직시할 수 있다면, 그러면 다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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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다해도, 설날의 정취가 옛날 같지가 않다고해도
비나리마을  떡방앗간은 옛날 못지않은 분주함과 넉넉함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설날이 이삼일 앞으로 다가오면 명호면 골짜기 골짜기마다 
대여섯가구씩 모여사는 산산오지마을 할머님께서 
바리바리 떡쌀을 지고 들고 [명호 떡 방앗간]으로 모여듭니다.
이골짜기 저골짜기 할머니께서 모여드는 그만치
명호 방앗간에는 이 마을 저 마을 기쁜 소식, 슬픈 소식,
이런 사연 저런 사연들이 쌓여갑니다.

[명호떡방앗간]은 몇년전 비나리마을의 새 주민이 된 
나무네가 꾸리는 방앗간입니다. 
명호면 소재지에 하나밖에 없는 방앗간을 운영하시던 전 주인내외께서
오랜전통을 이어오던 방앗간을 나무네한테 물려주게 된 것입니다.
나무네는 방앗간의 이름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추가했지만,
명호떡방앗간의 떡맛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옛주인 내외께서 고객부터 기지떡 만드는 비법까지
어느 전통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 전수해 주셨기 때무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명호떡방앗간]은
젊은 새주인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었고
명호사람은 그냥 [아름다운방앗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방앗간이 '아름다운'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모여듭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들어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풍성하게 이루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방앗간]에 설대목이 시작되면
명호면 젊은 친구들이 하나둘 [아름다운 방앗간]으로 모여듭니다.
역계골 멋쟁이 총각이 할머니들의 주문사항을 체크하고, 
꾸구리 이장인  어진이 아빠가 떡가루를 반죽합니다.
나무엄마 아빠가 이리뛰고 저리뛰고 다된 떡을 포장하고 떡값을 받는 사이
이웃 고계리 청량산장 주인이신 예연이 아빠가 가래떡을 뽑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방앗간]은 아름다운 이웃이 모여
설날 대목을 함께 치룹니다.
어느 한 사람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나무네 대목 큰일을 함께 치루기위해
나무네 [아름다운방앗간]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세상인심이 변하고 두레의 전통이 사라져가는 농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방앗간]은 이웃간의 풍성한 정으로
산골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인심을 이어나갑니다.

떡을 기다리며 방앗간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않은 할머니들은
손자손녀들 보고싶은 마음을  한 보따리 풀어놓으시고
아들자랑 딸자랑에 하루해가 저문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방앗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이웃이 함께 만들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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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에도 일년에 두 세 번은 사람이 붐빌 때가 있습니다.

청량산과 낙동강을 끼고 있고, 낙동강과 나란히 마을 앞을 지나는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 유교문화권이 이어지는 위치한 비나리마을은 여름 휴가철 한 달만은 외지인의 발길이 넘쳐 납니다.


그리고 두 번의 명절, 추석과 설날이 되면 어린 시절을 마을에서 보내고 철들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대구로 부산으로 일자리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출향민들의 귀향발길이 넘쳐납니다. 일년 내내 아이들 울음소리도, 어른들 웃음소리도 드문 마을에 명절 한 때 나마 왁작지걸, 사람 사는 소리와 온기로 넘쳐납니다. 마을 길 여기저기에 승용차들이 서있고, 이웃 할머니의 좁은 마당가에도 반짝이는 승용차가 그 집의 자식들 수 만치 들어서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세대전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 온 마을을 구석구석 쓸고 다니며 고함을 치고, 싸우고, 웃고 그리고 여기저기 저지레를 해 놓습니다.

설날을 기다리는 산골마을 주민들은 풍요로웠던 지난 시절이 되살아나는 그런 신명 넘치는 꿈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산골 마을 비나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바람이 지나가듯 이삼일 그냥 스쳐 지나갈 명절이지만 그날이나마 옛날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으십니다.  집집마다 아홉이나 열씩 자식을 두고 앞마당에 강아지 두어마리와 외양간에 소한마리 그리고 뒷마당에 풀어놓은 닭까지 대여섯마리가 모두 한식구로 살았던 옛날이 그리우신 것입니다. 


<이웃 갈골의 민순기 어르신 부부>같이 늙어가는 산골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옛날을 추억하고 새날을 꿈꾸시는 명절을 코앞에 둔 비나리마을 할머님들은 세상 누구보다 바빠집니다. 설을 쇠고 돌아가는 자식들 차 드렁크에 누렁호박 두어 덩이와 깨끗이 골라 곱게 빻은 고추가루 한 보따리, 그리고 참깨와 콩은 물론 지난 가을 손수 산과 들을 헤매며 캐서 말린 산나물 한 꾸러미까지 차곡차곡 채워주기 위해 지난 한해 가꾸고 다듬은 농산물을 미리 챙깁니다. 기름방에 들러 참기름이며 들기름을 짜고, 고추방앗간에 들러 고추가루를 빻습니다. 마음은 바뿐데 그렇게 준비가 되어가는 만치 설날은 내일 모레로  다가오고, 혹시라도 빠뜨린 것이 없나 헛간을 둘러보고 부엌을 둘러보고 미리 싸둔 보따리를 다시 풀어봅니다.


설날이 눈앞에 다가오면 할머니 마음은 더욱더 바빠져가고 기다림에 지쳐 초조하기 조차 합니다. 아직은 두세 밤은 더 자야 자식이며 손주들이 들이닥칠 것인데 세월은 일년 열두달이 그리도 잘 흘러가다가 왜 명절을 코앞에 두면 이리도 느려터졌는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할머니 마음에도 아랑곳없이 명절분위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동네거리는 여전히 고적하고 찬 바람만 가득한 채 사람 발길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이동슈퍼라도 들어와야 하는데 명절 대목이라도 보러 어디 장터 한 모퉁이에 전을 펼쳤는지 일주일에 두어 번씩 마을을 들르던 이동슈퍼마저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래도 간혹 어디 택배사 트럭이나마 들어오기는 하는데, 명절을 코앞에 둔 택배는 대부분 아쉬운 사연이 묻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귀향을 하지 못할 사정인 자식이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보내는 선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나마도 없으면 자식도 아니겠지만, 그냥 선물 하나 받고 자식얼굴도 못보고 명절을 나기에는 할머니 가슴에 묻힌 그리움이 너무나 큽니다.

마을에는 없어졌지만 산골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이웃이 넘치고 정과 사랑이 넘치던 옛 마을의 모습에 꿈처럼 남아 있습니다. 명절만이 아니라 언제가 비나리마을은 할머니의 뇌리에 남아있는, 이웃의 번잡한 삶이 내삶과 엉켜 두루 즐겁게 살아가던 옛 마을의 영화가 재현되길 마음속 깊이 빌어봅니다.    

올해 비나리마을 설날은 그 어느해보다 풍요롭고 정감넘치는 그런 명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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