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추 정부 수매를 19일 부터 한다고한다. 지지난주부터 고추 보유량 조사를 하라고 해서 수매에 응할 의사가 있는 동네 주민들로부터 신청량은 받아 농협에 제출했다. 그런데 지난주 다시 연락이 와서 배정물량이 많으니 보유량을 부풀리지 말고 실보유량을 신청하면 거의 전량 수매가 될것이라고 재조사를 하라고했다. 사실 고추 정부 수매가 농민이 원하는 양만치 된 적이 없기 때문에 농민들은 수매를 원하는 양에서 몇배로 부풀려 신청을 하는게 관례화되어 있다.

올해는 배정량이 많아 신청량 거의 전량을 수매한다고 하니 실보유량을 알려달라고 해서 조사결과를 농협에 제출했다. 그리고 오늘 농협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수매 물량이 농가별로 배정되었고 수매고추를 담을 푸대가 나왔으니 해당 주민들께 나눠주라고 했다. 그래서 내일 농협에 나갈 계획이었는데 방금 이웃 친구로 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은 7000근을 신청했는데1500여근밖에 배정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배정 기준도 모르겠고 정부가 생색내기나 하는 것에 불과한데 몇푼 더 받자고 정부수매에 응해야하냐는 것이었다. 내일 농협에 항의 방문을 할 건데 농민회도 같이 가자고 한다. 그리고 우선 친구들 뜻을 모아 수매 거부를 하겠단다. 농민회는 농민의 일에 당연히 앞장서야하기에 내일 농협에 같이 나갈 생각인데 "고추 정부 수매 거부"는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정부는 고추가 거의 다 상인손으로 넘어간 뒤에 꼭 정부수매안을 내 놓는다. 농민살리자는 건지, 농민 놀리자는 건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꼭 물량도 생색내기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고추값 하락으로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게 된 농민들이 겨울날일이 걱정인데 차라리 없는게 더 나은 정부는 하는짓 마다 뻘짓이다. 마음같으면 광화문에 고추를 산처럼 쌓아놓고 불이라도 싸지르고 싶다.

농협말 믿고 실보유량을 조사한 이장도 농민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되었다. 이장도 못해먹겠다!


반응형
반응형

 

잠결에 경운기 소리를 듣고 눈을 떠니 새벽 4시 반이 조금 넘었다. 오늘은 앞집 형님댁이 고추를 심는 날이다. 늘 신세만 지고 살다보니 일년에 하루라도 농사일을 돕고 싶었는데 오늘도 오전에 군청에 들어갈 약속이 있다. 그래도 이왕 눈 뜬 김에 일찍이라도 나가서 돕다가 볼 일을 보러 갈 요량으로 집을 나서니 5시 20분이다. 바로 형님댁 비닐하우스에서 고추 모종을 싣기 시작했다.

 

 

형님 내외는 벌써 밭에 가서 계시질 않았지만, 마냥 기다리기에도 그렇고 또 밭으로 나가보기에도 일단 고추 모종이라도 트럭에 싣고 있으니 형수님이 모종 한 경운기를 밭머리에 싣어다 놓았다며 돌아오셨다. 그렇게 형님 내외랑 오늘 심을 고추 모종 나르기를 시작했다. 서너 트럭을 나르고 나니 형수님께서 이른 아침상을 차려 놓으셨다.

 

 

아침상머리에는 벌써 이웃들이 모여계셨다. 도시에 나가 사시다가 내년부터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시겠다는 이웃 할머니의 자제분과 늘 씩씩하게 사시는 수야 어머님과 같이 고추 모종을 한차 더 싣고 밭에 도착했다. 모종을 내리고 작업 준비를 시작하니 길학이 형님내외, 심봉남 전부녀회장님, 성철이 어머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밭으로 모여드셨다.

 

 

북삽을 들어본지 참 오랜만이었다. 딱 1년만에 잡아 보는 북삽을 들고 밭골에 앉으니 고향집에 온듯 마음 편안했다. 3마지기 밭에 일꾼만 10여명 모였으니 오전이면 여유롭게 일을 마무리할 거 같았다. 창목이 형님이 앞장을 서서 이랑에 구명을 뚫고 나가면 한 사람이 모종을 넣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북삽을 들고 모종에 북을 주며 그 뒤를 따랐다. 간혹 한명이 호스를 당기거나 모종을 나르고 그렇게 손밭이 착착 맞아 드니 일이 일같지가 않고 재미가 났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구름이 몰려오고 청명한 봄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8시가 조금 넘어 한줄기 소나기가 내리기 까지 했다. 애간장을 태우는 반갑지 않은 비를 맞으며 하늘을 보시는 밭주인 앞집 형님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어떻게든 오전에 고추 정식을 끝내보려고 모두가 하나같이 비에도 아랑곳없이 고추를 심어나갔다.

 

 

 

오전 9시가 되자 밭이 절반이나 줄었다. 10시 약속 때문에 죄송한 마음만 남겨둔체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갑자기 굵은 소나기가 쏟아 붙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비나리마을에는 일꾼을 사온 주민까지 여러가구가 고추를 심고 있었는데 더 이상 견뎌볼 수 없는 거친 소나기가 대지를 쓸어내렸다.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마을을 떠나 하루 볼일을 다 마치고 오후 일찍 들어오니 다시 마을은 봄 햇살이 쨍쨍했다. 언제 비에 쫏겨 달아났냐는 듯 온 주민이 고추밭마다 매달려 고추를 심고 있었다.



 

큰 비든 센 바람이든 자연은 잠시잠깐 농부를 놀래키고 일손을 놓게 하지만, 망연자실 하늘을 보던 농부는 이내 굳건한 표정으로 밭으로 향한다. 농부가 가진 그런 결기가 척박한 사회적, 자연적 조건속에서 우리 농업을 지켜오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오늘 애간장을 태우고, 비에 쫏겨 도망까지 치며 심은 곡절 많은 고추는 틀림없이 씩씩하게 잘 자라 넉넉한 가을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올 가을 고추농사 대풍이뤄 함박웃음 머금은 앞집 형님내외 얼굴을 꼭 보고 싶다.


반응형
반응형


1978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소위 '고추파동'이 났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내가 살던 진해서는 아예 국내산 고추를 구경조차 하기 어려웠던것 같다. 어머니가 고추를 사지 못해 걱정하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결국 인도, 멕시코 등으로 부터 수입했다는 모양도 다르고 맛도 맵기만 한 이상한 고추를 평년의 고추값보다도 더 비싸게 사서 먹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까마득이 잊었다. 내 자신이 농사꾼이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1년에 우리가족이 고작해야 5근의 고추도 먹지 않는 식생활의 변화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나는 얼치기 농사꾼이 되어 벌써 15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추값은 내가 고추농사를 하든 말든 매년 가을만 되면 나의 주관심사의 하나가 되었다. 고추값은 이곳 산골 농민의 1년 생계가 달린 문제고, 그에 따라 당연히 지역 상가의 경기와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1997년 IMF로 온나라가 들썩이던 그 때, 내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비나리마을은 IMF보다도 고추값 폭락으로 더 고통받고 있었다. 고추 상품 1근 600g가격이 2,200원전후로 형성이 되면서 끝물 고추수확을 포기한 집이 한집두집이 아니었다. 그해 고추수확에 나선 할머니들의 하루 일당이 20,000원에서 22,000원 정도 였으니 하루 일당으로 약 10근의 상품 건고추를 받아가는 셈이었다. 숙련된 한명의 인부가 하루수확하는 건고추 양이 약 40~50근 정도이고, 또 인부들은 따로 교통비를 지불하고 인근의 영주 등으로부터 매일 공수해 오든지 아니면 아예 가을 내내 불러서 같이 지내면서 먹이고 재워야했기 때문에 인부를 사서 수확을 하느니 차라리 하품은 수확을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고추값 폭락의 와중에 고추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사고속에서 하나의 로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른바 "1978년 고추파동의 추억"이었다. 

1978년 도시에 살던 우리 가족이 고추를 구하지 못해, 아니 고추 살 돈이 없어 헉헉되던 시절  고추농사를 짖던 분들은 일생에 다시 못올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고 한다. 고추 한근을 보자기에 싸서 봉화장엘 들고 나가 팔면, 이런저런 부식거리도 사고, 고무신도 사서 들어오는 길에 선술집에서 막걸리한잔을 하고도 돈이 남았다고 했다. 도대체 고추한근이 얼마였기에 그럴수 있었는가하면 그때 가격으로 무려 만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대충 6~7만원으 족히 될것이다. 그러니고추 한근이면 충분히 그럴말한 값어치가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가 죽기 1년전, 한국 농촌에 선물로 남긴 것이 바로 고추 1근 1만원의 신화다. 이는 새마을운동이란 무기로 한국 농촌공동체를 해체한 일등공신인 박정희가 아직도 옛어르신의 뇌리에 위대한 지도자로 남아있을 수 있게 하는데 적지 않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직도 '그때가 좋았는데...'를 읊조리는 어르신은 꼭 고추 한근 1만원의 신화를 입에 올리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33년만에 다시 '고추파동'이 났다. 하지만 이번 고추파동은 평년작의 50% 이상 감수한 1978년 정도의 파동에는 미치지 못하는가보다. 오올해  평년수확량의 약 34% 정도가 감수된 전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격면에서도 1978년의 만원은 지급 가격 2만원의 족히 3배이상의 화폐 가치를 띤다고 볼 때 올해의 고추값 상승은 '고추파동'이라고 이름붙이기에는 조금 지나치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올해 고추 수확예상량은 평년보다 약 34% 정도 감수된 7만9천여톤으로 보고 있다. 신문들을 보면 현재 소비자 가격은 약 2만원 정도로 형성되고 있는데 정부의 개입으로 매주 400여톤, 총 8,000여톤의 정부물량이 시장에 풀릴 것으로 보이고, 또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추석이 지나면서 고추값이 하락세로 접어 들것이라는 기사가 넘쳐난다.

이들 고추 관련 기사들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의 전제는 현재 형성되고 있는 고추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이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MB가 국가 경제를 파탄시키고 물가고로 서민의 목을 죄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아무리 농민이지만 지나친 농사물 가격상승은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동감한다. 하지만 올해 고추가격과 수확량을 감안하면 평년에 비해 농민이 얼마정도 경제적 이익을 보았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산량 감소에 따른 가격 상승은 시장경제의 신봉자들인 그들에겐 '공정'하기 이를데 없는 현상인데, 농산물 가격하락에 그렇게도 둔감한 정부가 가격 상승에는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니 참 어이가 없다.

아뭏튼 나는 고추의 생산 전과정을 소상히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한국 농촌공동체의 유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고추 한근 2만원은 결코 지나치게 비싼 가격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라 믿는다. 곧 지나가버라겠지만, 나는  올해 처음으로 정상적인 고추가격을 기쁜마음으로 목도하고 있다. 
반응형
반응형




비나리 여름이 깊어갑니다.

장마비가 계속되고

그 사이사이 퇴약볕이 내리쬐는 비나리마을 길모퉁이마다

붉은 접시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지난 겨울 몸을 드러냈던 거친 산전은

무성한 고추잎으로 덮여 초록빛이 가득합니다.


산은 더 검푸른 빛을 띠고,

바람은 또 그만치 더 시원해져가는 비나리 여름은

이번 비가 그치면 여름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겠지요.


긴 수박밭골에 앉아 비와 퇴약볕을 번갈아 맞아가며

막바지 수박 순치기로 여름을 맞는

비나리 농부들의 등짝이 애닮프지만

그렇게 또 절기가 지나 가을이 오면

이 모든 고역은 다 보상받고도 남을

넉넉한 수확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장마비가 계속되는 비나리마을 아침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비가 내린다.

어설픈 겨울의 흔적을 마지막 씻고 내려가는 비가 내린다.

밭 장만이 끝나고 채 고추를 심지 못한 농부들은

애간장이 타 들어가고,

고추를 심어 한숨을 돌렸던 어르신 역시  고추모 쓰러지고,

밭둑 떠내려가는 장대비에 가슴을 졸인다.

농사가 없어 날품을 파는 사람은

하루 벌이가 없어 딱 그만치 가벼워진 마음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

마당에 듣는 비소리에 이끌려

유념의 달콤한 꿈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봄비 같지 않은 비가 봄의 대지를 적시는 날 아침,

나는 창을 열고 산천을 내다보고,

나의 삶을 들여다 본다.

비가 와서 좋은 아침이다 

반응형
반응형

아직 늦더위가 계속되고는 있지만 처서를 코앞에 둔 초가을.
가을 수확기에 앞서 머슴을 배불리먹이던 풍습이었던
'풋거먹는날'이 지나자마자 비나리마을은 본격적인 고추 수확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첫농사를 지은 이웃 민서네는 벌써 초벌 수확을 끝내고
비닐하우스 한쪽 구퉁이에 귀한 고추를 늘어놓았숩니다.
가을장마도 지나고 이제 맑은 날씨거 계속될 예정이라고 하니
잘 마른 멋진 태양초가 될것 입니다.

여름 해를 닮아 빨갛게 익은 고추 하나하나가 다 귀하고 이쁘기 이르데 없지만,
한 푸대 두 푸대 양이 늘어나고, 비닐하우스 가득 펼쳐놓다보면,
고추의 가치는 근당 얼마라는 가격으로만 남습니다.

텃밭 농사를 지을 때 탐스럽던 고추가
밭마지기 수가 늘어나자마자 원수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고추농사 몇년하다보면 고추만 봐도 허리가 아파올 지경입니다^^*

올해 우리집 고추 농사는 약2마지기 600여평입니다.
혼자 따기에는 많고, 품을 사기에는 적은 애매한 양이지만
늦은 감자 수확을 내일까지 하고나면
이번 주말부터 본격적으로 고추수확에 나설 예정입니다.

올해 햇고추값이 약세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출하기가 되면 가격이 어떻게 될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제발 올해 고추값이 좋아서 비나리 농부님들 얼굴에 주름살이 펴지고
함박웃음이 넘쳐나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고추수확... 두어달 동안 계속될 고행의 시작이지만
값이라도 좋아 신나고 즐거운 고행일 수 있기를 천지신명께 빕니다.

반응형
반응형


말복도 입추도 지나고, 본격적인 수확철에 접어든다는

'풋거먹는 날'도 지났지만, 늦더위에 늦은 장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음은 감자밭에 가 있지만, 땅은 질척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장대비가 내렸다, 가랑비가 내렸다 비는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올해 비나리는 장마같지 않은 마른 장마가 계속되더니, 장마철 다 지나고

때늦은 가을장마가 농부의 속을 태웁니다.

다행히 수박출하기까지는 날씨가 좋아,

이웃 수박농가들은 무사히 좋은 값에 수확을 마쳤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고추 수확에 들어가야할 판에 연일계속되는 비는

올해 고추 작황을 걱정스럽게 합니다.


집마당 한켠 솟대끝에 앉은 기러기는

젖은 날개를 털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날고 싶습니다.

굵어가는 열매를 달고서 무거운 비까지 머금은 대추는

축처진 어깨로 산들바람 부는 가을을 기다립니다.

철늦은 장마가 거친뒤에도 한 더위는 물러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기상청의 발표가

자못걱정스럽지만.. 메뚜기도 한철이고 또 한더위도 한철이겠지요.

가을장마에 마음상하지 말고, 여름을 씻고 가을을 준비하는 반가운 비로 받아들이며

비내리는 한낮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면 좋겠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비나리 산골짜기에도 어제 처음으로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났습니다.
중복과 말복사이 여름의 한가운데 걷혀버린 요 몇일은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아침저녁에 농사일을 조금씩 한다고는하지만
해가 뜨자마자 등판은 뜨거워지고, 땀은 팥죽같이 흐르고
또 한낮의 뙤약볕을 피해 밭으로 나가려고하지만
오후 네댓시가 되어도 한낮의 열기는 쉬 식지 않습니다.

그래도 산골마을에 사는 덕에 열대야가 없어 해만 떨어지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한 여름이라도 이불없이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분들의 부러움을 살만할 것입니다.

한여름의 불볕속에 속을 익혀온 수박이 곧 도시로 팔려갈 채비를 하고 있고,
싱싱한 풋고추가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합니다.
마당가 텃밭에는 참외, 옥수수, 토마토 그리고 가지며 오이가 넘쳐납니다.
양대콩 꽃은 붉게 피고 연두빛 사과는 초록빛이  짙어갑니다.
그렇게 한여름의 햇빛은 자연을 풍요롭게 했지만
여름이 그 절정에 달할수록
우리는 가을이 더 가까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덥다 덥다해도 이번 주말이면 벌써 입추고 말복이랍니다.
그리고 다음절기인 처서를 맞으면 여름의 자취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하늘은 더 높고 청명해지고, 공기는 더 맑고 시원해질 것입니다.

 




여름의 끝자락, 비나리마을의 새벽녘,
동녘하늘을 붉히는 여명이 가을의 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해의 여름은 또 가고
비나리마을 농부들은  풍요로운 가을 들녘에서
지난 여름을 추억할 것입니다.

반응형
반응형

끝날 것 같지 않던 봄농사가 오늘로 드디어 끝났습니다. 올봄 사과 농사 2,000여평을 새로 시작하면서 일손이 밀리기 시작했지만 사실 봄농번기에 4번의 행사에 무려 12일이나 봉화군 홍보 행사에 미술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위한 출장을 다녀오는 등 외유를 하다보니 일손을 놓치지 않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멀리 진해에서 동생까지 불러올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마다않고 밀어붙인 덕분에
오늘 팥과 기장, 수수 파종을 마치고,
집텃밭에 파모종까지 정식을 하고나니 이제사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온것 같습니다.
게으른 농사꾼이 이제사 봄농사를 끝냈지만 
그래도 큰 강을 건넌듯 뿌듯하고 흐뭇합니다.



항상 한해 농사를 마치고 나면
'내년에는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지' 혹은
'내년에는 이러지 말아야지'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저가 매년 하는 다짐 중의 하나가 '내년에는 일손을 놓치지 말자'입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새 농사가 시작되면 이내 일에 쫒기기 시작하고
결국 손을 놓쳐 밭의 일부를 묵히곤합니다.
그래서 새로 하게된 다짐이 '농사를 추스릴 수 있을 만치만 벌이자' 입니다.



그렇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꼭 봄이면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다 그렇겠지만
무엇이라도 해 낼 것 같고,
다 잘 될 것 같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4월이 지나면 점점 불안해 지기 시작하고
5월이면 이미 작기를 놓치기 시작해서
6월이면 이미 수습이 불가능해서 손을 놓는 작목이 생겨납니다.

예년에 비해서 올해는 그래도 일손을 따라잡아 아직까지는 손을 놓은 작목은 없습니다.
면적은 많지 않지만 감자, 고구마, 고추는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바이러스로 수확을 전혀 못했던 감자도 잘 자라고 있고,
500여평을 심은 고추도 현재까지는 진디물도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니다.

고구마도 미리 심은 놈은 활착이 되어 줄기가 뻣기 시작했고,
야콘, 땅콩, 속청은 모종을 해서 본밭에 정식을 잘 마쳤고,
팥, 쥐눈이콩, 수수, 기장 등은 이제야 파종을 마쳤습니다.
돈이 될만한 농사는 없지만 그래도 작목은 가지가지 골고루 심은 올해 농사가
한여름 퇴얔볕아래 무럭무럭 자라, 모진 비바람과 병해충을 다 이기고
풍성한 결실을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 

게으른 비나리농부는 오늘부터 풍요롭고 행복한 가을을 기다립니다^^*  

반응형
반응형

비가 오니 온 세상이 고요합니다.
정신없이 쳐내고 있는 봄농사도
넉넉한 봄비에 일단 멈추었습니다.
아무리 바쁜철이라지만
비속을 헤매며 쳐낼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기때문이기도하지만
봄비를 핑계로 쉬지않으면 사람 몸인들 어디 견뎌낼 수있겠습니까?

모처럼 한낮에 컴퓨터앞에앉아
그동안 밀린 자료들도 챙기고 소월했던 마을 홈피도 챙기고
블로그 글도 남겨봅니다.
그래도 욕심은 끝이 없어 벌써 머리속에는 치워내야할 일들의 목록이 계속
늘어나고 컴퓨터앞에 앉아있는 마음이 무조건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고구마도 심어야하고, 콩도 심어야하고, 야콘도 심어야하고
그리고 호두밭 작년 비닐도 벗기고 로타리도 쳐
깨심고 수수심고 팥심을 밭도 만들어야되고...


비어가는 모종하우스만치 마음도 한가로워져야하는데
아직은 머리속에 일들로 꽉차있습니다.
당장 오늘 제주도 올레길탐방결과를 정리해서 마을 홈피와 블로그에 올리고
덤으로 작년 제주여행도 정리해 개인 블로그에 담아야하고,
그리고 이웃 비나리마녀님이 만든 우리마을 홍보 티셔츠와
각종 꽃잎차도 사진에 담아 마을홈피에도 올리고
그리고 그동안 밀린 책도 좀 읽어야하고
또 무엇보다 비어가는 모종하우스를 정리도 하고
고구마 모종도 미리 뽑아나야겠습니다.

바쁜 마음에 아무렇게나 심은 고추며 감자가 따가운 봄햇살에 시들거리다가
이번 비에 완전히 살음을 할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러다가 고추 다 죽이는거 아닌가 싶을 만치 고추가 시들어 있었는데
이제 아무 걱정이 없게 되었습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부지런히 몸을 놀려 그동안의 게으름은 만회해야겟습니다.
6월 3일부터 6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봉화군 축제홍보행사에 참여해야하고,
6월12일에는 여의도에서 또 봉화 홍보행사를 치뤄야합니다.
적어도 6월3일 이전에 바쁜 농사일은 다 마무리짓고
편안한 마음으로 서울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할일은 많고 마음은 바쁘지만
그러나 어쩌게습니까, 하늘이 쉬어라면 쉬어야지요~~

봄비가 흠뻑 내린 오늘 지상의 모든 농부가
편안하고 게으른 하루보내실 수 있길 기원합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